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孔子家語(1)

공자가어(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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相魯 第一注+魯定公相位闕하여 孔子攝行相事 故以名篇하니라
標題句解孔子家語 卷上
猷堂 王廣謨 景猷 句解
제1편 나라 재상의 일을 섭행함注+ 定公 때 재상의 자리가 비어 孔子가 재상의 일을 攝行하였기 때문에 이렇게 篇名을 붙인 것이다.
孔子中都宰司空大司寇 등을 역임하면서 백성을 예절로 다스리고 나라 定公을 보좌한 言行을 기록한 편이기에, 편명을 ‘相魯’로 삼았다. 은 재상이라는 뜻도 있지만, ‘도와주다’‧‘보조하다’라는 뜻도 있다. 中都 邑宰로 1년 동안 치적을 쌓자 서쪽 제후들이 이를 본받았으며, 2년이 되자 定公司空에 임명하여 토지를 맡게 하였고, 大司寇에 임명하여 刑獄을 맡게 하였다. 孔子의 정치력을 보여주는 편이다.
孔子初仕 爲中都宰注+孔子初仕 魯爲中都宰 中都 魯之屬邑이라하여 制爲養生送死之節注+定生事死葬之禮하여 使無過不及이라 故謂之節이라한대 長幼異食注+老少所食不同이라 禮年異食이라하고 彊弱異任注+任謂力作之事 各從所任하고 不用弱者也하고 男女別塗注+男女有別하여 不同路而行이라하고
孔子가 처음 벼슬길에 올라 中都邑宰가 되어서,注+孔子가 처음 벼슬길에 올랐을 때 노나라가 그를 中都邑宰로 삼은 것이다. 中都는 노나라 屬邑이다. 을 제정하였다.注+살아계실 때 섬기고 돌아가셨을 때 장사 지내는 예를 제정하여 더하거나 덜함이 없이 알맞게 하였으므로 이라고 한 것이다. 그러자 어른과 아이가 먹는 것을 달리 하고,注+늙은이와 젊은이가 먹는 것이 같지 않은 것이다. ≪禮記≫에 라고 하였다. 강한 자와 약한 자가 맡은 일을 달리 하며,注+은 힘으로 하는 일을 말하니, 각자 소임을 따르고 약한 자는 〈힘으로 하는 일에〉 쓰지 않은 것이다. 注+남녀가 구별이 있어 같은 길로 다니지 않은 것이다.
路無拾遺注+道上失物 人不敢取하고 器不彫僞注+器尙質하여 不飾詐하며 爲四寸之棺注+ 喪具이니 木厚四寸이라 五寸之槨注+ 盛棺之具이니 木厚五寸이라하고 因丘陵爲墳注+因地勢高下爲墓호되 不封不樹注+不聚土爲墓하고 不植松栢이라하다
또 길에 떨어진 물건을 줍지 않고,注+길에 떨어진 물건을 사람들이 감히 취하지 않은 것이다. 그릇은 거짓으로 꾸미지 않았다.
注+그릇은 질박함을 숭상하여 거짓으로 꾸미지 않은 것이다.
4치의 注+喪具이니, 나무의 두께가 4치이다. 5치의 을 만들고,
注+을 담는 喪具이니, 나무의 두께가 5치이다. 注+地勢의 높낮이에 따라 무덤을 만든 것이다. 注+흙을 쌓아 무덤을 만들지 않고, 소나무와 잣나무를 심지 않은 것이다.
行之一年注+爲政得一歲 而西方之諸侯則焉注+魯國居東이라 故西方諸侯 皆法之하니라 定公謂孔子曰注+定公顧謂子曰 學子此法注+效子治中都之法이라하여 以治魯國 何如注+以此法治魯國可乎
이렇게 시행한 지 1년이 지나자注+정사를 행한 지 1년이 된 것이다. 서쪽 제후들이 이를 본받았다.注+노나라가 동쪽에 있기 때문에 서쪽 제후들이 모두 본받은 것이다. 이 공자에게 물었다.注+정공이 돌아보고 공자에게 말한 것이다. “그대의 이 법을 배워서注+그대가 中都를 다스린 법을 본받는다는 것이다. 노나라를 다스린다면 어떻겠습니까?”注+이 법으로 노나라를 다스리는 것이 가능하겠냐고 물은 것이다.
孔子對曰注+孔子答言이라 雖天下라도 可乎注+以此法으로 治天下라도 亦可 何但魯國而已哉注+何止可治魯國而已리오리오하다
공자가 대답하였다.注+공자가 대답하여 말한 것이다.天下를 다스리는 것도 가능하니,注+이 법으로 천하를 다스리더라도 또한 괜찮다는 것이다. 어찌 노나라를 다스릴 뿐이겠습니까?”注+어찌 노나라만 다스릴 수 있을 뿐이겠느냐고 대답한 것이다.
역주
역주1 1-1 : 저본의 표제에 “공자가 中都의 邑宰가 되다.[孔子爲中都宰]”라고 되어 있다.
역주2 산……예절 : ≪孟子≫ 〈離婁 下〉에 “산 사람을 봉양하는 것은 큰일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다. 오직 죽은 사람을 장사 지내는 것이 큰일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養生者不足以當大事 惟送死可以當大事]”라고 하였고, ≪禮記≫ 〈禮運〉에 “산 사람을 봉양하고 죽은 사람을 장사 지내는 일이야말로 귀신을 섬기는 큰일이다.[所以養生送死 事鬼神之大端也]”라고 하였다.
역주3 50세가……한다 : ≪禮記≫ 〈王制〉에 “50세가 되면 먹는 것을 〈젊은 사람과〉 달리 한다.[五十異粻]”라고 하였다.
역주4 남자와……하였다 : ≪禮記≫ 〈內則〉에 “도로에서 남자는 우측으로, 여자는 좌측으로 다닌다.[道路男子由右 女子由左]”라고 하였다.
역주5 어른과……않았다 : 이상은 산 사람을 봉양하는 예절이다.
역주6 4치의……만들고 : ≪禮記≫ 〈檀弓〉에 “夫子가 中都의 수령으로 있으면서 棺槨의 제도를 제정하였는데, 棺은 4치로 하고 槨은 5치로 하였으니, 이를 통해 빨리 썩기를 원치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夫子制於中都 四寸之棺 五寸之槨 以斯知不欲速朽也]”라고 하였다.
역주7 4치의……않았다 : 이상은 죽은 사람을 장사 지내는 예절이다.
역주8 封墳하거나……않았다 : ≪周易≫ 〈繫辭傳 下〉에 “옛날 장례하는 자들은 섶을 두껍게 입혀서 들 가운데에 장례하여 봉분하거나 나무를 심지 않았으며, 喪期에 일정한 數가 없었다.[古之葬者 厚衣之以薪 葬之中野 不封不樹 喪期无数]”라고 하였다.
역주9 定公 : 魯나라의 군주로 襄公의 아들이다. 재위기간은 B.C. 509~B.C. 495년이다. 三桓인 季孫氏, 孟孫氏, 叔孫氏에 의해 형 昭公이 齊나라로 망명한 뒤에 즉위하였다.
역주10 (十五)[五十] : 저본에는 ‘十五’로 되어 있으나, 四部叢刊本에 의거하여 ‘五十’으로 바로잡았다.

공자가어(1) 책은 2020.11.2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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