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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詩三百首(2)

당시삼백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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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登樓〉
杜甫
花近高樓傷客心
萬方多難此登臨
春色來天地
浮雲變古今
北極朝庭終不改
莫相侵
日暮聊爲
[集評]○ 七言難於氣象雄渾
句中有力而紆徐 不失言外之意
自老杜錦江春色來天地玉壘浮雲變古今 與五更鼓角聲悲壯 三峽星河影動搖等句之後 常恨無復繼者 - 宋 葉夢得, 《石林詩話》
○ 老杜七言律詩一百五十九首 當寫以常玩 不可暫廢 今於登覽中 選此爲式
錦江玉壘一聯 景中寓情 後聯 卻明說破道理如此 豈徒模寫江山而已哉 - 元 方回, 《瀛奎律髓》 卷1
○ 劉云 先主廟中乃亦有後主 此亡國者 何足祠 徒使人思諸葛梁甫之恨而已 梁甫吟 亦興廢之感也 武侯以之 - 明 高棅, 《唐詩品彙》 卷84
○ 三四空頭 且帶俚氣
凡說豪說霸說高說大說寄說怪 皆非本色 皆來人憎
第五句有疵 結二語 渾渾大家 - 明 陸時雍, 《古詩境》 〈唐詩鏡〉 卷26
○ 此詩妙在突然而起 情理反常
令人錯愕 而心傷之故 至末始盡發之 而竟不使人知 此作詩者之苦心也
萬方多難 因可傷心 意猶未露 不過揭出登臨二字耳
首聯寫登臨所見 意極憤懣 詞却寬泛 此亦急來緩受 文法固應如是
言錦江春色與天地俱來 而玉壘雲浮與古今俱變 俯視宏闊 氣籠宇宙 可稱奇傑
而佳不在是止 借作過脈起下 云北極朝廷如錦江水源遠流長 終爲不改 而西山寇盜如玉壘浮雲 倏起倏滅 莫來相侵
曰終不改 亦幸而不改也 曰莫相侵 亦難保其不侵也 終有微意在
……至結語忽入後主 必非無爲 而未有能知之者
蓋後主初年 亦無他過 而後來一用黃 遂至亡蜀 肅代信任李輔國 程元振魚朝恩 正與後主之任皓無異
雖有賢臣如李泌子儀輩 而不得展其略 蓋幸而不亡耳
公因萬方多難 深思其故 不勝憤憊 無從發泄而借後主以泄之
公屢遊先主廟 後主從祀 亦素懷不平
故有感而發
且云日已暮矣 天下事無可爲矣 聊爲梁父吟 爲當時有孔明之才而不得施者一致慨焉
此其所爲傷心者也
傷心之極 故高樓之花 最堪娛目 而反以爲恨也 - 明 王嗣奭, 《杜臆》 卷6
○ 氣象雄渾 籠蓋宇宙 此杜詩中之最上者 - 淸 沈德潛, 《唐詩別裁集》 卷13
○ 上四 登樓所見之景 賦而興也 下四 登樓所感之懷 賦而比也
以天地春來 起朝廷不改 以古今雲變 起寇盜相侵 所謂興也
時郭子儀初復京師 而吐蕃又新陷三州故 有北極西山句 所謂賦也
代宗任用程元振魚朝恩 猶後主之信黃皓 故借祠託諷 所謂比也
梁父吟 思得諸葛以濟世耳
傷心之故 由於多難 而多難之事 於後半發明之 其辭微婉而其意深切矣 - 淸 仇兆鰲, 《杜詩詳註》 卷13


〈누대에 오르다〉
두보
高樓에 가까이 핀 꽃 나그네 마음 아프게 하니
온 세상이 어지러운 때 이곳에 오른다
錦江의 봄빛은 천지에 가득찼고
玉壘의 뜬구름처럼 고금이 변하누나
우리 조정 북극성같이 끝내 바뀌지 않으리니
서산의 도적들은 침범할 수 없으리라
딱하구나, 後主가 아직도 사당에 있으니
해 저물녘 오로지 〈梁甫吟〉을 읊는다
[集評]○ 철언율시는 기상이 웅혼하기 어렵다.
한 구 속에 힘이 있으면서도 여유로워 언외의 뜻을 잃지 않아야 한다.
老杜(杜甫)의 “錦江의 봄빛은 천지에 가득찼고, 玉壘의 뜬구름처럼 고금이 변하누나.[錦江春色來天地 玉壘浮雲變古今]”와 “五更의 북과 호각 소리 비장하고, 三峽의 강물에 별그림자 흔들린다.[]”는 등의 구절 이후에 다시 뒤를 잇는 자가 없는 것이 항상 한스럽다.
○ 老杜(杜甫)의 칠언율시 159수는 마땅히 베껴서 평소 감상하고 잠시라도 폐해서는 안 되기에, 지금 登覽하고 지은 시편 가운데 이 시를 뽑아 법식으로 삼는다.
‘錦江’과 ‘玉壘’ 1聯은 景 속에 情을 담아놓고, 後聯에서는 그에 대해 설명하여 道理를 설파한 것이 이와 같으니, 어찌 한갓 강산을 模寫하는 것에 그친 것이겠는가.
○ 劉辰翁이 말하기를 “先主(劉備)의 사당 안에 역시 後主(劉禪)의 사당이 있다고 하였는데, 이와 같이 나라를 망하게 한 자가 어찌 사당이 있겠는가. 다만 사람들로 하여금 제갈량이 〈양보음〉을 읊은 恨을 생각하게 하고자 한 것일 뿐이다. 〈양보음〉 또한 흥망성쇠에 대한 감회를 표현한 것이니, 武侯(諸葛亮)가 이 때문에 읊은 것이다.
○ 3‧4구는 앞이 비었으며 또한 속기를 띠고 있다.
일반적으로 ‘호방하다, 으뜸이다, 높다, 크다, 기이하다, 괴이하다’고 말하는데, 모두 본질적 것(本色)을 지적한 것이 아니니, 모두 남들의 미움만을 초래할 뿐이다.
제5구는 결점이 있으며, 결구의 두 연은 渾渾한 大家이다.
○ 이 시의 묘함은 갑작스러운 돌출에 있으니, 情理가 일반적인 것과 다르다.
사람으로 하여금 놀라게 하며 슬픔을 느끼게 하는 까닭이 결말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다 드러나지만, 끝내 남들이 알도록 하지는 않았으니 이것이 시를 지은 사람이 고심한 부분이다.
‘萬方多難’으로 인하여 슬프다고 하였는데 그 뜻을 드러내지 않고 ‘登臨’ 두 글자만을 제시하였다.
첫 연에서는 누대에 올라 본 것을 묘사하였는데, 뜻은 극히 悲憤하지만 언어는 오히려 여유가 있고 범범하니 이것이 또한 ‘급하게 오는 것은 천천히 받는다.’는 것으로, 글을 쓰는 법식이 진실로 이와 같아야 한다.
‘錦江春色’이 天地와 함께 왔다고 하고, ‘玉壘浮雲’이 고금과 더불어 모두 변한다고 하여 위아래로 돌아본 시야가 광활하고 기세가 우주를 덮으니 기걸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아름다운 점은 여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앞의 맥락을 이어 ‘北極朝庭’이 마치 錦江의 水源이 멀고 유장한 것과 같아 끝내 바뀌지 않을 것이며, ‘西山寇盜’는 마치 玉壘浮雲이 갑자기 일어났다 갑자기 사라지는 것과 같아 침입하여 들어올 수 없다고 말한 데 있다.
‘終不改’라고 한 것은 역시 요행으로 바뀌지 않을 것이고, 또 ‘莫相侵’이라 한 것은 역시 그들이 침입하지 않을 것을 보장하기 어려움을 말한 것이니, 결국 은밀한 뜻이 담겨 있다.
……결구에 이르러서 홀연히 後主의 일을 인용하였으니 반드시 이유가 없는 것이 아니나 이것을 아는 자가 없었다.
대개 후주의 초창기에는 다른 과오가 없었으나 뒤에 와서 黃皓를 임용하여 결국 蜀漢을 망하게 만들었으니, 당나라 肅宗과 代宗이 李輔國, 程元振, 魚朝恩 등을 신임한 것은 후주가 황호를 신임한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비록 어진 신하인 李泌과 郭子儀 등이 있었지만 그들의 지략을 펼칠 수 없었으니 대개 요행으로 망하지 않고 있었을 뿐이다.
公(杜甫)은 ‘만방에 난리가 끊이지 않는다.’고 한 원인을 깊이 생각하고는 참을 수 없는 비분한 마음을 발설할 길이 없어 후주의 역사를 빌려서 말하였다.
공은 여러 차례 선주의 사당을 방문하였으므로, 후주를 배향한 것에 평소 불만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유감이 있어 말한 것이다.
또 ‘날이 이미 저물었다.’고 한 것은 천하에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이요, 애오라지 〈양보음〉을 읊는다고 한 것은 당시 孔明(諸葛亮)의 재능이 있으면서도 쓰지 못함에 비분을 공감하였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傷心’ 한 까닭이다.
상심이 극에 달하였으므로 높은 누대에서 본 꽃들은 가장 눈을 즐겁게 하는 것인데도 반대로 한이 되고 말았다.
○ 기상이 웅혼하여 우주를 덮으니 이는 杜甫의 시 중 최상의 작품이다.
○ 앞의 4구는 누대에 올라가 바라본 전경을 賦와 興으로 표현하였으며, 뒤의 4구는 누대에 올라가서 느낀 감회를 賦와 比로 표현하였다.
천지에 봄이 온다는 구절로 조정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구절을 일으켰고, 고금에 구름이 변화한다는 구절로 도적이 침략하였다는 구절을 일으켰으니 이른바 興이다.
이때에 郭子儀가 처음 장안을 수복하고 토번이 또다시 세 주를 함락시켰기 때문에 ‘北極’과 ‘西山’의 구절을 말하였으니 이른바 賦이다.
大宗이 程元振와 魚朝恩을 임용한 것이 後主(劉禪)가 黃皓를 신임하였던 것과 같으므로 사당을 빌어 풍자를 부쳤으니 이른바 比이다.
〈梁父吟〉은 제갈량을 얻어 세상을 구제할 것을 생각한 것이다.
‘傷心’의 이유가 ‘多難’에서 비롯된 것이며 ‘多難’의 사건들을 후반부에 밝혀놓았는데, 시어는 은미하고 완곡하지만 표현한 뜻은 매우 절실하다.


역주
역주1 錦江 : 四川省 岷江의 지류이다. 성도에서 나는 비단을 이 강에서 씻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역주2 玉壘 : 四川省 灌縣 서북쪽에 있는 산이다.
역주3 西山寇盜 : 吐蕃을 지칭한다. 寶應 元年(762) 토번이 西山의 合水城을 뚫고 들어와 이듬해인 廣德 元年(763) 10월에 長安을 점령한 뒤 도주한 代宗을 대신하여 廣武王 李承宏을 세우고 15일 만에 퇴각, 다시 12월에 松州‧维州‧保州 등 四川省 일대를 점령한 일련의 사건을 지칭한다.
역주4 後主還祠廟 : 後主는 劉備의 아들 劉禪을 지칭한다. 先主 劉備의 廟는 成都의 錦官門 밖에 있는데, 서편에 武侯 제갈량의 묘가 있고, 동편에 後主 劉禪의 廟가 있다.
역주5 梁甫吟 : 樂府의 곡명으로 ‘梁父吟’이라고도 칭한다. 梁甫는 태산 아래 있는 산으로, 이곳에서 장례를 치렀으므로 〈梁甫吟〉은 장례곡이라고 전한다. 郭茂倩이 편찬한 《樂府詩集》 〈相和歌辭〉 楚調曲에 제갈량이 지었다는 가사가 전한다. 《三國志》의 〈諸葛亮傳〉에 “제갈량이 몸소 언덕 위의 밭을 갈면서 〈양보음〉을 읊기를 좋아하였다.[亮躬耕隴畝 好爲梁父吟]”라고 하였다. 춘추시대 齊나라 景公을 섬기던 公孫接, 田開疆, 古冶子 등 세 열사의 무덤을 보고 지은 작품으로, 晏子가 복숭아 두 개를 주어 공로가 제일 많은 자가 먹게 하였는데, 세 명이 공을 다투다가 마침내 모두 자책하여 자살한 사연을 담고 있다. 《악부시집》의 해제에는 “《蜀志》에 제갈량이 〈양보음〉을 읊기를 좋아하였다고 하였는데, 그렇다면 제갈량으로부터 기원한 것이 아닌 듯하다.……살펴보건대 양보는 산 이름으로 태산 아래 있으며, 〈양보음〉은 대개 사람이 죽으면 이 산에 장사를 지냈으므로 이 역시 장례 때 부르는 노래이다.[諸葛亮好爲梁甫吟 然則不起於亮矣……按梁甫 山名 在泰山下 梁甫吟 葢言人死葬此山 亦葬歌也]”라고 하였다.
역주6 五更鼓角聲悲壯 三峽星河影動搖 : 杜甫의 〈閣夜〉 중 3‧4구로 뒤의 189번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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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87 등루 118

당시삼백수(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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