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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詩三百首(3)

당시삼백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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韋應物
獨憐幽草澗邊生
上有深樹鳴
帶雨晩來急
無人舟自橫
[集評]○ 入畵 - 宋 魏慶之, 《詩人玉屑》 卷3
○ 沈密中寓意閑雅 如獨坐看山 澹然忘歸 - 明 敖英, 《唐詩絶句類選》
○ 野興錯綜 故自勝絶 - 明 吳逸一, 《唐詩正聲》
○ 宋趙章泉韓澗泉 選唐詩絶句 其評注多迂腐穿鑿
如韋蘇州一首 獨憐幽草澗邊生 上有黃鸝深樹鳴 以爲君子在下小人在上之象 以此論詩 豈復有風雅耶 - 淸 王士禎, 《唐人萬首絶句選凡例》
○ 此種筆墨 分明是一幅圖畵 - 淸 黃叔燦, 《唐詩箋注》
○ 神韻古澹 - 淸 李瑛, 《詩法簡易錄》 卷14
○ 寫景淸切 悠然意遠 絶唱也 - 淸 宋顧樂, 《唐人萬首絶句選》


〈滁州의 서쪽 시내〉
위응물
시냇가의 그윽한 풀이 유독 사랑스럽고
위에선 깊은 숲 꾀꼬리가 운다
봄 물결 비를 띠고 저물녘엔 세차게 흐르는데
인적이 끊긴 교외 나루엔 배만 홀로 비껴 있다
[集評]○ 그림의 경지에 들어가 있다.
○ 깊고 조밀한 가운데 붙인 뜻이 閑雅하여 마치 홀로 앉아 산을 바라보며 담담히 돌아갈 것을 잊은 듯하다.
○ 자연과 흥취가 잘 어우러져 절로 뛰어나다.
○ 宋나라 趙章泉과 韓澗泉이 당시절구를 선집하였는데, 그 評과 注에는 구태의연하고 천착한 것이 많다.
예컨대, 韋蘇州(위응물)가 지은 시 한 수의 ‘獨憐幽草澗邊生 上有黃鸝深樹鳴’에 대하여, 군자가 아래에 처해 있고 소인이 위를 차지하고 있는 象이라고 하였는데, 이렇게 시를 논한다면 어찌 다시 風雅가 있겠는가.
○ 이와 같은 필치는 분명 한 폭의 그림이다.
○ 신운이 예스럽고 담박하다.
○ 경치를 묘사한 것이 맑고 핍진하며 유연히 뜻이 심원하니, 절창이다.


역주
역주1 滁州 : 당나라 때 淮南東道에 속한 곳으로, 지금의 安徽省 滁縣 지역이다.
역주2 西澗 : 滁州城 서쪽에 있는 개천을 지칭한다. 《一統志》에 “西澗은 주의 성 서쪽에 있는데 세간에서 ‘上馬河’라고 부른다.[西澗在州城西 俗名上馬河]”라고 하였다.
역주3 黃鸝 : 黃鶯, 즉 꾀꼬리의 별칭이다.
역주4 春潮 : 봄 2, 3월에 江河에 물이 불어난 것을 지칭한다.
역주5 野渡 : 郊外에 있는 나루로, 외딴 곳에 있는 나루라는 뜻으로 쓰였다.
역주6 寇萊公의 시 : 寇萊公은 宋代의 문신 寇準으로, 그의 시 〈春日登樓懷歸〉를 가리킨다. 구준은 字가 平仲으로, 華州人이다. 太平興國(976~984) 연간에 進士가 되고, 그 후 여러 관직을 거쳐 眞宗 때 尙書右僕射, 集賢殿大學士, 中書門下平章事에 제수되며 萊國公에 봉해졌다.
역주7 후대 사람들은……어째서인가? : 寇準의 시구에 대하여, 朱子가 편찬한 《宋名臣言行錄》(前集 卷4)에는 “당시에 만약 임용된다면 반드시 큰 냇물을 건너는 솜씨가 될 것이라고 여겼다.[時以爲若得用 必濟大川手]”라고 하였고, 宋代 蔡正孫이 편찬한 《詩林廣記》에는 “당시 사람들은 이 시구로 그가 재상의 공업을 세웠을 것임을 예견하였다.[時人以此覘其相業]”라고 하였다. 큰 냇물을 건너는 솜씨란 帝王을 보좌하는 어진 재상을 의미한다. 《書經》 〈商書 說命 上〉에 殷나라 高宗이 傅說에게 명하기를 “내가 만일 큰 냇물을 건너게 된다면 그대를 배와 노로 삼으리라.[若濟巨川 用汝 作舟楫]”라고 한 데에서 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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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삼백수(3)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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