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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詩三百首(3)

당시삼백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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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翃
無處不飛花
寒食東風
[集評] ○ 此詩作於天寶中 其時楊氏擅寵 國忠銛與秦虢韓三姨號爲五家
豪貴榮盛 莫之能比 故取漢王氏五侯喩之
卽賜火一事 而恩澤先沾於戚畹 非他人可望
其餘錫予之濫 又不待言矣
寓意遠 托興微 眞得風人之遺 -淸 賀裳,《載酒園詩話》
○ 翃寒食詩云 春城無處不飛花 寒食東風御柳斜 日暮漢宮傳蠟燭 輕烟散入五侯家 唐之亡國由于宦官握兵 實代宗授之以柄
此詩在德宗建中初 只五侯二字見意 唐詩之通于春秋者也
○ 黃公詩話言翃已有聲於天寶中 詩蓋爲楊氏而作
考翃乃天普進士 則五侯比楊氏審矣 -淸 黃生,《唐詩摘鈔》
○ 句逗出寒食 次句以御柳斜三字引線 下漢宮傳蠟燭便不突
散入五侯家 謂近幸者先得之 有托諷意 -淸 黃叔燦,《唐詩箋注》
○ 西京雜記 寒食禁火日 賜侯家蠟燭
又漢書 成帝封諸舅 王譚等五人 同日爲侯 世謂之五侯 桓帝封宦者 單超等五人 同日爲侯 世亦謂之五侯
唐自肅代以來 宦者擅權 德宗時益甚 君平此詩 託諷婉至
德宗以制誥缺人 批與韓翃
幷書此詩以示中書曰 與此韓翃
想亦有感悟之意 而特用之歟 -淸 李鍈,《詩法易簡録》卷14七言絶句
○ 骨高妙不待言 用五侯寓諷更微 -淸 宋顧樂,《唐人萬首絶句選》
○ 代宦官之盛 不減於桓靈 此詩托諷深遠 -淸 孫洙,《唐詩三百首》
○ 句言處處飛花 見春城之富麗也 次句言東風寒食 紀帝京之佳節也
三句言 漢宮循寒食故事 賜燭近臣 四句言 侯家拜賜 輕煙散處 與佳氣同浮
二十八字中 想見五劇春濃 八荒無事
宮廷之閑暇 貴族之沾恩 皆在詩境之內 以輕麗之筆 寫出承平景象 宜其一時傳誦也 -現代 兪陛雲,《詩境淺說》
○ 是一首諷刺詩也 是借漢事以喩唐事的
據西京雜記所載 在漢代 寒食那一天 雖然全國都禁火 但皇帝卻賞賜封侯的貴族們以蠟燭 特許照明 以示恩寵
此詩卽借古喩今 以見皇家恩澤 只及上層 卽使是生活中的小事 他們也是擁有特權的
前兩句寫京城春色
春色可寫者多 但這裏只突出御柳飛花 作爲代表 從個別見一般
一上來以春城二字點明時令和地點
飛花上 又冠以無處不三字 則御柳夭斜 隨風飄拂 而枝頭白絮 遍地漫天 都被描繪了出來
而寒食之時 春光濃麗 無所不在 也就非常淸晰地在人目前了
起句首先就點明春天
下面的御柳飛花寒食東風 都從春字生出
而飛花與柳斜則有東風貫串起
御柳引出漢宮 寒食又是傳蠟燭的根據
從這些地方 可以看出詩人的苦心經營 細針密線
後兩句寫當時情事
寒食禁火 所以夜間也不許點燈
但在傍晩時分 宮廷卻已派人將蠟燭頒賜到五侯的家中了
從這樣一件小事中 詩人寫出了貴族們所享受的特權以及皇帝對他們的寵愛
挨家挨戶地頒賜 所以說傳 傳字與下五侯相應
蠟燭質量愈高 煙子愈少 所以說輕煙
五侯本是漢朝典故
西漢成帝時 外戚王譚等五人同日封侯 世稱五侯
東漢順帝時 外戚梁冀的兒子和叔父五人封侯 世稱梁氏五侯
桓帝時 宦官單超等五人封侯 世稱五侯
總之不是指外戚 就是指宦官
韓翃於玄宗天寶十三載進士及第 在德宗時以駕部郞中知制誥
這首詩的寫作年代不可考 如果是天寶年間的作品 則應是諷刺楊國忠兄妹的
如果是安史之亂以後所寫 則可能是諷刺肅宗代宗以來專擅朝政的宦官的了
這首詩的特點是用意深刻而表現含蓄
從表面上看 它只是描寫了寒食的景色 記載了一件當時在這個傳統節日中皇家的一件例行故事
甚至於可以將它看成是一篇對皇帝的頌歌 頌揚他對臣下施加恩
在詩人晩年家居的時候 德宗因爲欣賞這首詩 還起用他知制誥 起草詔書
可見這位最高統治者是將詩中的諷刺誤會爲歌頌了 -現代 沈袓棻,《唐人七絶詩淺釋》


〈한식〉
한굉
봄날 성에는 꽃이 날리지 않는 곳 없고
한식날 동풍에 궁궐 버들이 휘날린다
날 저물어 漢宮에서 초를 전하니
가벼운 연기 五侯家로 흩어져 들어간다
[集評] ○ 이 시는 天寶 연간에 지은 것으로, 당시 楊氏들이 총애를 믿고 권력을 휘둘렀는데, 國忠‧銛과 秦‧虢‧韓 세 자매를 五家라 불렀다.
부와 권세가 가득하여 견줄 데가 없었으므로, 옛 漢 왕조의 王氏五侯에 빗대어 비유한 것이다.
불을 하사한 한 가지 일만을 보더라도 다른 친척들보다 은혜를 먼저 입은 것이니, 이는 다른 사람들이 바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그 나머지 재물을 넘치게 준 것은 또 말할 필요도 없다.
우의가 깊고 托興이 은미하니, 참으로 시인의 전통을 제대로 이었다고 하겠다.
○ 韓翃의 〈寒食〉 시 〉 “春城無處不飛花 寒食東風御柳斜 日暮漢宮傳蠟燭 輕烟散入五侯家”는, 당나라의 亡國은 宦官이 병권을 장악한 데서 연유하였지만, 실제로는 代宗이 그들에게 권력을 준 것임을 말한다.
이 시는 德宗 建中 연간 초기에 대해서 단지 ‘五侯’ 두 자만으로 뜻을 드러냈으니, 唐詩가 《春秋》와 통하는 것이다.
○ 賀黃公(賀裳)의 시화에 “한굉이 이미 天寶 연간에 문명이 있었는데, 시는 대개 양씨 일가 때문에 지었다.”고 하였다.
살펴보면, 한굉은 天寶 연간에 진사가 되었으니 五侯는 양씨를 빗대었음이 분명하다.
○ 첫 구는 한식을 이끌어내었고, 다음 구는 ‘御柳斜’ 3자로 연결하여, 아래의 ‘漢宮傳蠟燭’이 돌출되지 않는다.
‘散入五侯家’는 近臣들이 蠟燭을 먼저 얻음을 말하여, 풍자하는 뜻이 있다.
○ 《西京雜記》에 “한식은 불을 금하는 날이기 때문에 제후 집에 납촉을 준다.”고 하였다.
또 《漢書》에 “成帝가 여러 외삼촌을 봉하여 王譚 등 다섯 사람이 같은 날 侯가 되니, 세상에서 이들을 五侯라 하였다.”라고 하였고, “桓帝가 환관들을 봉하여 單超 등 다섯 사람이 같은 날 후가 되니, 세상에서 이들 역시 五侯라고 하였다.”는 기록이 보인다.
○ 당나라는 肅宗 연간 이후부터 宦官들이 권력을 천단하였고, 德宗 때에는 더욱 심하였는데, 君平(한굉)의 이 시는 풍자한 것이 완곡하면서도 지극하다.
덕종 때에 지제고 자리가 비었는데, 한굉을 낙점하였다.
아울러 이 시를 써서 中書舍人에게 보여주며 말하기를 “이 시를 한굉에게 주어라.”(당시 조정에 두 명의 한굉이 있었다)라고 하였다.
생각하건대 또한 이 시를 보고 깨달은 뜻이 있어 특별히 그를 채용한 것일 것이다.
○ 氣骨이 높고 오묘하여 말이 필요 없고, ‘五侯’를 써서 풍자한 것이 더욱 은미하다.
○ 唐代에 宦官의 득세가 桓帝‧靈帝 때보다 덜하지 않으니, 이 시가 풍자한 것이 深遠하다.
○ 첫 구는 곳곳에서 날리는 꽃을 말하여 봄날 장안성의 화려함을 드러내었고, 다음 구는 봄바람과 한식을 말하여 京城의 아름다운 명절을 기록하였다.
3구는 〈漢宮에서 한식절의 고사를 좇아 近臣에게 초를 하사한 것을 말하였고, 4구는 〉제후 집에서 절하고 받으니 촛불의 가벼운 연기가 흩어지는 곳에 아름다운 기운도 함께 떠다님을 말하였다.
28자에서 사방에 봄기운이 완연하고, 천하가 태평함을 떠올릴 수 있다.
궁정의 한가함과 귀족들이 황제의 은혜를 받음이 모두 詩境 안에 있어서 가볍고 아름다운 필치로 태평한 모습을 그려내었으니 한때에 전송됨이 마땅하다.
○ 이 시는 한 편의 풍자시로, 漢나라의 일을 가지고 唐나라의 일을 비유하였다.
《서경잡기》에 보면, 한나라 때 한식날에는 전국이 모두 불을 금하였지만 황제가 오히려 제후 등 귀족에게 납촉을 하사하여 불 밝힐 것을 특별히 윤허함으로써 은총을 보였다고 한다.
이 시는 곧 옛일을 빌려 오늘을 비유함으로써, 皇家의 은택이 상층부에만 미쳤음을 나타내었으니, 생활 속의 작은 일도 그들에게 특권을 갖게 해준 것이다.
○ 앞의 두 구는 京城의 봄빛을 묘사하였다.
봄빛을 묘사할 만한 것이 많지만, 여기서는 ‘御柳’와 ‘飞花’만을 드러내어 대표로 삼았으니, 개별적인 것을 통해 일반적인 것을 보인 것이다.
먼저 처음에 ‘春城’ 두 자에서 시기와 장소를 밝혔다.
‘飛花’ 앞에 또 ‘無處不’ 석 자를 올려놓았으니, 곧 御柳가 한껏 비껴서 바람 따라 흔들거리고 나뭇가지의 하얀 버들개지가 땅과 하늘에 가득함을 모두 묘사하였다.
이를 통해 한식 즈음 도처에 널려 있는 봄날의 아름다움이 매우 분명하게 눈앞에 펼쳐진다.
첫 구는 먼저 봄임을 분명하게 나타내었다.
다음의 ‘御柳’,‘飛花’,‘寒食’,‘東風’은 모두 ‘春’자에서 나왔다.
그리고 ‘飛花’와 ‘柳斜’는 ‘東風’과 연관시켜 썼다.
‘御柳’는 ‘漢宮’을 이끌어내었고, ‘寒食’은 또 ‘傳蠟燭’의 근거가 된다.
이러한 부분에서 시인이 고심하여 구상하고 세밀하게 조직했음을 알 수 있다.
○ 뒤의 두 구는 당시의 사건을 묘사하였다.
한식에는 불을 금하였기에 밤에도 등불 켜는 것을 금했다.
그런데 저녁이 될 무렵 궁중에서 오히려 五侯의 집에 사람을 보내어 납촉을 나눠주었다.
이 작은 사건을 통해, 시인은 귀족들이 특권을 누리고 있음과 황제가 그들을 총애함을 표현하였다.
집집마다 나눠주었기에 ‘傳’이라고 말하였고, ‘傳’자는 아래의 ‘五侯’와 상응한다.
납촉은 질이 좋을수록 연기가 적기에 ‘輕煙’이라고 하였다.
‘五侯’는 본래 漢 왕조의 典故이다.
西漢 成帝 때에는 外戚 王譚 등 다섯 사람이 같은 날 侯에 봉해져 세칭 ‘五侯’라 불렸고,
東漢 順帝 때에는 외척 梁冀의 아들과 叔父를 위시하여 다섯 사람이 후에 봉해져 세칭 ‘梁氏五侯’라 불렸으며,
桓帝 때에는 宦官 單超 등 다섯 사람이 후에 봉해져 세칭 ‘오후’라 불렸다.
이들을 총괄하면, 외척이 아니면 환관을 가리킨다.
韓翃은 玄宗 天寶 13년(754)에 진사에 급제하여 德宗 때에 駕部郞中 知制誥가 되었다.
이 시의 창작시기는 고찰할 수 없으나, 만약 天寶 연간의 작품이라면 楊國忠의 형제와 자매를 풍자한 작품이고,
安史의 난 이후의 작품이라면 肅宗‧代宗 이후 환관들이 조정을 천단한 것을 풍자한 것이다.
○ 이 시의 특징은 깊이 있는 주제와 함축적인 표현에 있다.
표면적으로 보면 이는 단지 한식의 풍경을 그린 것으로 당시의 전통 명절에 皇家에서 으레 행하는 故事를 기록한 것인데,
심지어 한 편의 황제에 대한 頌歌로 황제가 신하들에게 은택을 베푼 것을 찬양한 작품으로 보았다.
그리하여 시인이 만년에 한거하고 있을 때, 德宗이 이 시를 감상하고는 그를 知制誥로 기용하여 詔書를 起草하게 하였으니,
지위가 가장 높은 통치자가 이 시의 풍자를 頌祝으로 오해한 것을 알 수 있다.


역주
역주1 寒食 : 절기명으로, 《荊楚歲時記》에 “동지로부터 105일째인데, 이때는 바람이 거세고 비가 와서 한식이라고 한다.”라고 되어 있다. 또 불에 타 죽은 晉나라 介子推의 혼령을 위로하기 위해 불을 피우지 않고 찬 음식을 먹은 데서 유래한 것이라고도 한다. 〈寒食卽事〉로 되어 있는 본도 있다.
역주2 春城 : 봄날의 장안성을 말한다.
역주3 御柳 : 궁궐 안의 버드나무를 지칭한다.
역주4 漢宮傳蠟燭 : ‘漢宮’은 漢代의 궁궐인데, 唐詩에서 ‘漢’은 唐을 비유하는 말로 쓰였다. 따라서 여기서의 ‘한궁’은 당나라 궁궐을 말한다. ‘傳蠟燭’은 《西京雜記》에 “한식은 불을 금하는 날인데, 제후의 집에 초를 준다.[寒食禁火日 賜侯家蠟燭]”는 기록이 보인다.
역주5 輕煙 : ‘靑煙’으로 되어 있는 본도 있다.
역주6 五侯家 : 《漢書》 〈元后傳〉에 “漢 成帝가 같은 날에 王譚을 平阿侯에, 王商을 成都侯에, 王立을 紅陽侯에, 王根을 曲陽侯에, 王逢時를 高平侯에 봉했다.”는 기록이 보인다. 즉 ‘五侯’는 동시에 侯에 봉해진 다섯 사람을 지칭하는데, 역사적으로 五侯는 상당히 많다. 여기서는 당시 황제의 총애를 받던 宦官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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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삼백수(3)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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