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春秋左氏傳(1)

춘추좌씨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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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經]六年春 鄭人來渝平注+和而不盟曰平 [附注] 朱曰 書渝平 以志諸侯之合 書及鄭平 以志諸侯之散 諸侯合而天下始多故也 하다
6년 봄에 정인鄭人이 와서 과거의 원한을 버리고 화평하기로 하였다.注+화평조약和平條約만 맺고 결맹結盟하지 않는 것을 이라 한다. [부주]朱: ‘투평渝平’이라고 기록하여 제후가 화합和合한 것을 나타내고 ‘급정평及鄭平’이라고 기록하여 제후가 이산離散한 것을 나타내었다. 제후가 화합하자 천하에 비로소 일이 많이 생겼다.
[經]夏五月辛酉 公會齊侯盟于艾注+泰山牟縣東南 有艾山 [附注] 林曰 艾 齊地 此齊魯交好之始 하다
여름 5월 신유일에 은공이 제후齊侯회합會合하여 에서 결맹結盟하였다.注+태산모현泰山牟縣 동남에 애산艾山이 있다. [부주]林: 나라 땅이다. 이것이 제나라와 노나라가 국교國交를 맺어 우호友好한 시초이다.
[經]秋七月注+雖無事而書首月 具四時以成歲 他皆放此 이라
가을 7월이다.注+아무 사건事件이 없어도 그 철의 수월首月(첫달)을 기록하는 것은 사시四時를 갖추어 한 해를 이루기 위해서이다. 다른 곳도 이와 같다.
[經]冬 宋人取長葛注+秋取 冬乃告也 上有伐鄭圍長葛 長葛 鄭邑可知 故不言鄭也 前年冬圍 不克而還 今冬乘長葛無備而取之 言易也하다
겨울에 송인宋人장갈長葛을 취하였다.注+가을에 취하고서 겨울에서야 노나라에 통고하였다. 상문上文송인宋人나라를 공격하여 장갈長葛을 취한 기록이 있으니, 장갈이 나라의 임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나라라고 말하지 않은 것이다. 전년 겨울에 포위했을 때는 승리하지 못하고 돌아갔는데, 금년 겨울에는 장갈長葛대비對備가 없는 틈을 타서 취하였으니, 힘들이지 않고 쉽게 취하였다는 말이다.
[傳]六年春하니 更成也注+渝 變也 公之爲公子 戰於狐壤 爲鄭所執 逃歸怨鄭 鄭伐宋 公欲救宋 宋使者失辭 公怒而止 忿宋則欲厚鄭 鄭因此而來 故經書渝平 傳曰 更成 [附注] 林曰 更成 言變更而爲平成
6년 봄에 정인鄭人이 와서 과거의 원한을 버리고 화평하였으니 과거의 원한을 화평으로 변경한 것이다.注+변경變更하는 것이다. 은공이 공자公子로 있을 때 호양狐壤에서 전쟁하다 나라의 포로로 잡혔다가 도망해 돌아왔으므로 정나라에 원한이 있었다. 정나라가 송나라를 공격할 때 은공隱公나라를 구원하고자 하였으나, 송나라 사자使者가 말을 잘못했으므로 은공이 노하여 구원하려던 계획을 중지하였다. 송나라에 분노하여 정나라를 후대厚待하고자 하였기 때문에 정나라가 이로 인하여 온 것이다. 그러므로 에 ‘투평渝平’이라고 기록하였는데, 에서는 이를 ‘경성更成’이라고 하였다. [부주]林: 경성更成구원仇怨화평和平으로 변경한 것이다.
[傳]翼頃父之子嘉父逆晉侯于隨注+翼 晉舊都也 唐叔始封 受懷姓九宗 職官五正 遂世爲晉强家 五正 五官之長 九宗 一姓爲九族也 頃父之子嘉父 晉大夫하야 納諸鄂하니 晉人謂之鄂侯注+鄂 晉別邑 諸地名疑者 皆言有 以示不審 闕者 不復記其闕 他皆放此 前年桓王 立此侯之子於翼 故不復得入翼 別居鄂라하다
구종오정九宗五正경보頃父의 아들 가보嘉父로 가서 진후晉侯(隱公 5년에 로 도망갔던 익후翼侯)를 맞이해 와서注+나라의 구도舊都이다. 당숙唐叔이 처음 해질 때 회성懷姓구종九宗직관職官오정五正을 받았으므로 이들이 드디어 대대로 나라의 강족强族이 되었다. 오정五正오관五官이고, 구종九宗은 한 이 갈리어 구족九族이 된 것이다. 경보頃父의 아들 가보嘉父나라 대부大夫이다.에 머물게 하니, 진인晉人이 그를 악후鄂侯라 하였다.注+나라의 별읍別邑이다. 의심스러운 지명들은 모두 다른 곳도 이와 같다. 전년前年환왕桓王악후鄂侯의 아들을 의 임금으로 세웠기 때문에 다시 으로 들어갈 수가 없어서 따로 거주居住한 것이다.
[傳]夏 盟于艾하니 始平于齊也注+春秋前 魯與齊不平 今乃棄惡結好 故言始平于齊
여름에 노은공이 제희공齊僖公에서 결맹하였으니, 노나라가 비로소 제나라와 강화講和한 것이다.注+춘추 이전에는 노나라가 제나라와 관계가 좋지 않았는데, 지금에서야 과거의 원한을 버리고 우호友好를 맺었기 때문에 제나라와 비로소 강화하였다고 말한 것이다.
[傳]五月庚申 鄭伯侵陳하야 大獲注+[附注] 林曰 大獲 俘馘하다
5월 경신에 정백이 진나라를 침공侵攻하여 대획大獲하였다.注+[부주]林: 대획大獲을 많이 생포生捕하고 많이 죽인 것이다.
往歲 鄭伯請成于陳注+成 猶平也 陳侯不許하니 五父諫曰 親仁善隣 國之寶也 君其許鄭注+五父 陳公子佗하소서
지난해에 정백鄭伯나라에 화평和平을 청하였을 때에注+과 같다.진후陳侯가 허락하지 않으니, 오보五父가 간하기를 “인자仁者를 가까이하고 인국隣國과 사이 좋게 지내는 것이 나라의 보배이니, 주군主君께서는 정나라의 요청要請을 허락하소서.注+오보五父나라 공자公子이다.”라고 하였다.
陳侯曰 宋衛實難注+可畏難也 [附注] 林曰 宋衛大國 實可畏難이어니와 鄭何能爲注+[附注] 林曰 鄭 小國 何能爲害리오하고 遂不許하다
그러자 진후陳侯는 “나라와 나라는 실로 우리에게 화난禍難을 끼칠까 두렵지만注+화난禍難을 끼칠까 두렵다는 말이다. [부주]林: 나라와 나라는 대국大國이니, 실로 화난을 끼칠까 두렵다는 말이다. 정나라야 우리에게 무슨 해를 끼칠 수 있겠는가?注+[부주]林: 나라는 소국小國이니 우리에게 무슨 를 끼칠 수 있겠느냐는 말이다.”라고 하고서 끝내 허락하지 않았다.
君子曰
이에 대해 군자는 다음과 같이 논평하였다.
善不可失이오 惡不可長이라하니 其陳桓公之謂乎注+[附注] 林曰 此言陳桓公不許鄭成 是失善機而長惡念ᄂ저
“옛말에 ‘을 잃어서도 안 되고 을 키워서도 안 된다.’고 하였으니, 이는 아마도 진환공陳桓公을 두고 한 말인 듯하다.注+[부주]林: 이는 진환공이 강화講和하자는 정나라의 요청를 허락하지 않은 것이 바로 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잃고 악념惡念을 키웠다는 말이다.
長惡不悛이면 從自及也注+悛 止也 從 隨也 雖欲救之라도 其將能乎
을 키우고 개전改悛하지 않으면 그 가 자신에게 미칠 것이니,注+은 멈춤이고, 은 따름이다. 아무리 구제하고자 한들 어찌 구제할 수 있겠는가.
商書曰 如火之燎于原하야 不可鄕邇注+尙書盤庚 言惡易長 如火焚原野 不可鄕近어늘 其猶可撲滅注+言不可撲滅
상서商書》에 ‘이 뻗어 나는 것이 마치 불이 평원平原을 태우는 것처럼 빨라서 가까이 갈 수도 없는데注+상서商書》는 반경편盤庚篇이다. 악이 쉽게 자라는 것이 마치 불이 평원平原을 태우는 것과 같아서 가까이 갈 수도 없다는 말이다. 오히려 그 불을 끌 수 있겠는가.注+박멸할 수 없다는 말이다.’라고 하였고,
周任有言曰注+周任 周大夫 爲國家者 見惡如農夫之務去草焉注+[附注] 林曰 見惡 非獨惡人 凡惡念惡事 皆是하야 芟夷蘊崇之하고 絶其本根하야 勿使能殖이면 則善者信矣注+芟 刈也 夷 殺也 蘊 積也 崇 聚也 [附注] 朱曰 如此則惡之不長 如草之不復生也 善惡無兩立之理 惡者不長 則善者伸也라하니라
주임周任은 말하기를注+주임周任나라 대부大夫이다. ‘국가를 다스리는 자가 을 보면 마치 농부가 힘써 잡초를 제거하듯이 잡초雜草를 베어 내어注+[부주]林: 견악見惡의 ‘’은 악인惡人만이 아니라 악념惡念악사惡事가 모두 이에 해당한다. 한 곳에 모아 쌓고 남은 뿌리를 잘라서 다시 번식繁殖할 수 없게 하면 신장伸長될 것이다.’고 하였다.注+은 베는 것이고, 는 죽이는 것이다. 은 쌓는 것이고, 은 모으는 것이다. [부주]朱: 이렇게 하면 이 자라지 않은 것이 잡초가 다시 나지 않는 것과 같다는 말이다. 선악善惡양립兩立하는 이치는 없으니, 이 자라지 않으면 선이 신장伸長된다.
[傳]秋 宋人取長葛하다
가을에 송인宋人장갈長葛을 취하였다.
[傳]冬 京師來告饑어늘
겨울에 경사京師에서 사람이 와서 기근饑饉을 고하였다.
公爲之請糴於宋衛齊鄭하니 禮也注+告饑 不以王命 故傳言京師 而不書於經也 雖非王命 而公共以稱命 己國不足 旁請隣國 故曰禮也 傳見隱之賢 [附注] 林曰 京 大也 師 衆也 天子之居 必以衆大之辭言之 五穀不熟曰饑
은공이 나라를 위하여 에게 양곡판매糧穀販買를 청하였으니, 에 맞는 처사였다.注+기근饑饉을 통고한 것이 주왕周王의 명이 아니었기 때문에 에는 ‘경사京師’라고 말하고, 에는 기록하지 않은 것이다. 비록 주왕周王의 명이 아니었으나, 은공隱公은 공손히 부응副應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자기 나라에는 양곡이 부족하므로 널리 이웃 나라에 청하였다. 그러므로 “에 맞는 처사였다.”고 한 것이다. [부주]林: 도시都市가 큰 것이고 는 사람이 많은 것이다. 천자天子가 사는 곳은 반드시 사람이 많고 도시가 크다는 말로 칭한다. 오곡五穀이 익지 않는 것을 라고 한다.
[傳]鄭伯如周하니 始朝桓王也注+桓王卽位 周鄭交惡 至是乃朝 故曰始
정백鄭伯나라에 갔으니, 비로소 주환왕周桓王조현朝見한 것이다.注+환왕桓王이 즉위한 뒤 이 서로 미워하여 관계가 좋지 않았으므로 이때에 와서야 비로소 조현朝見한 것이다. 그러므로 ‘비로소[始]’라고 말한 것이다.
王不禮焉이어늘 周桓公言於王曰 我周之東遷 晉鄭焉依注+周桓公 周公黑肩也 周 采地 扶風雍縣東北 有周城 幽王爲犬戎所殺 平王東徙 晉文侯鄭武公 左右王室 故曰晉鄭焉依하니 善鄭以勸來者라도 猶懼不蔇注+蔇 至也 [附注] 林曰 厚善撫鄭 以勸獎諸侯來朝 猶恐諸侯之不至 況不禮焉이리잇가
환왕桓王이 그를 예우하지 않으니, 주환공周桓公환왕桓王께 말하기를 “우리 나라가 동천東遷할 때에 나라와 나라에 의지하였으니,注+주환공周桓公주공周公흑견黑肩이다. 는 그의 채지采地인데, 부풍扶風옹현雍縣 동북에 주성周城이 있다. 유왕幽王견융犬戎에게 살해되자 평왕平王동천東遷하였는데, 그때 진문후晉文侯정무공鄭武公왕실王室을 보좌하였다. 그러므로 “에 의지하였다.”고 한 것이다.나라를 잘 대우해서 오지 않는 제후들을 권장하더라도 오히려 오지 않을까 두려운데,注+는 이르는 것이다. [부주]林: 후대하여 정나라를 잘 어루만져서 제후諸侯들이 내조來朝하도록 권장하여도 제후들이 오지 않을까 두렵다는 말이다. 하물며 예우하지 않는 데이겠습니까?
鄭不來矣注+爲桓五年 諸侯從王伐鄭傳리이다
정나라는 앞으로 다시 오지 않을 것입니다.”注+이것이 환공桓公 5년에 제후가 주왕周王을 따라 나라를 토벌한 의 배경이다.
역주
역주1 鄭人來渝平 : 渝는 變更이니, 곧 지난 원한을 우호로 변경한다는 말이다. 隱公이 公子로 있을 때 狐壤의 戰鬪에서 정나라의 포로가 되었다가 도망한 일이 있었고, 은공 4년에 노나라 大夫羽父가 군대를 거느리고서 宋‧陳‧蔡‧衛와 연합하여 정나라를 친 일이 있으므로 두 나라 관계가 매우 좋지 않았다. 그러나 은공 5년에 鄭이 邾와 연합하여 송을 칠 때 은공이 송의 구원 요청을 거절하였으므로 정나라는 이를 고맙게 여겨, 노나라에 사신을 보내어 舊怨을 버리고 修好한 것이다.
역주2 九宗五正 : 《正義》에 의하면 九宗과 五正을 관리하는 관직명이다. 周成王이 唐叔을 처음으로 唐에 封할 때 懷氏의 九族과 殷나라 때 五官의 長을 지낸 사람의 자손들을 당숙에게 주었다.
역주3 有라고……기록하지 않았다 : 杜氏가 모든 地名 밑에 그 城邑의 所在地를 기록하면서 확실한 곳은 ‘在’字를 쓰고, 의심스러운 곳은 ‘有’字를 썼으며, 또 성읍의 소재지를 기록하지 않고 빼버린 곳은 다시 빼버렸다고 언급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예를 들면 隱公元年經의 “公及邾儀父盟于蔑” 注에 “蔑魯地……有姑城”이라고 한 것과, 隱公 5년 傳의 “曲沃莊伯伐翼” 注에 “翼晉舊都……在平陽絳邑縣東” 이라고 한 類이다.
역주4 惡之易也 : 易은 延(뻗다)의 뜻이다. 《書經》 〈商書盤庚上〉에는 ‘惡之易也’란 글귀가 없다.
역주5 傳의……드러낸 것이다 : 經에는 이 일을 기록하지 않았는데도 傳을 달았기 때문에 杜氏는 隱公의 어짊을 드러내기 위해 傳을 단 것으로 해석하였다.

춘추좌씨전(1) 책은 2019.05.2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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