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春秋左氏傳(1)

춘추좌씨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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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經]十有九年 春 王正月이라
[經]夏 四月이라
[經]秋 公子結媵陳人之婦于鄄하고 遂及齊侯宋公盟注+無傳 公子結 魯大夫 公羊穀梁 皆以爲魯女媵陳侯之婦 其稱陳人之婦 未入國 略言也 大夫出竟 有可以安社稷利國家者 則專之可也 結在鄄聞齊宋有會 權事之宜 去其本職 遂與二君爲盟 故備書之 本非魯公意 而又失媵陳之好 故冬各來伐하다
[經]夫人姜氏 如莒注+無傳 非父母國而往 하다
[經]冬 齊人宋人陳人伐我西鄙注+無傳 幽之盟 魯使微者會 鄄之盟 又使行 所以受敵 鄙 邊邑하다
[傳]十九年春 楚子禦之라가 大敗於津注+禦巴人 爲巴人所敗 津 楚地 或曰 陵縣 有津鄕하고하니 鬻拳弗納이어늘
遂伐黃注+鬻拳 楚大閽 黃 嬴姓國 今弋陽縣 [附注] 林曰 弗納楚子 欲激其志 使別立功하야 敗黃師于踖陵注+踖陵 黃地하고이라가 及湫有疾注+南郡鄀縣東南 有湫城하야 夏六月庚申하다
鬻拳葬諸夕室注+夕室 地名하고 亦自殺也어늘 而葬於絰皇注+絰皇 冢前闕 生守門 故死不失職하다
鬻拳强諫楚子로되 楚子弗從하니
臨之以兵하니 懼而從之하다
鬻拳曰 吾懼君以兵하니 罪莫大焉이라하고 遂自刖也하니
楚人以爲大閽하야 謂之大伯注+若今城門校尉官 [附注] 林曰 以大伯異其名稱 示寵異이라하고 使其後掌之注+使其子孫 常主此官하다
君子曰
鬻拳 可謂愛君矣로다
諫以自納於刑하고 刑猶不忘納君於善注+言愛君 明非臣法也 楚能盡其忠愛 所以興 [附注] 이라하다
[傳]初 王姚嬖于莊王하야 生子頹注+王姚 莊王之妾也 姚 姓하니 子頹有寵하야 蔿國爲之師하다
及惠王卽位注+周惠王 莊王孫하야 取蔿國之圃以爲囿注+圃 園也 囿 苑也하고 邊伯之宮近於王宮하니 王取之注+邊伯 周大夫하고 王奪子禽祝跪與詹父田注+三子 周大夫하고 而收膳夫之秩注+膳夫 石速也 秩 祿也하다
故蔿國邊伯石速詹父子禽祝跪作亂하야 因蘇氏注+蘇氏 周大夫 桓王 自此以來遂不和하다
[傳]秋 五大夫奉子頹以伐王注+石速 士也 故不在五大夫數이나 不克하야 出奔溫注+溫 蘇氏邑하다
蘇子奉子頹以奔衛하니 衛師燕師伐周注+燕 南燕 [附注] 林曰 故蘇子奉子頹以奔衛하야 立子頹하다


19년 봄 주왕周王 정월이다.
여름 4월이다.
가을에 공자公子진후陳侯에게 출가出嫁하는 여자의 잉첩媵妾으로 가는 나라의 딸을 호송護送으로 가다가 에 이르러 드디어 제후齊侯송공宋公결맹結盟하였다.注+이 없다. 공자公子나라 대부이다. 《공양전公羊傳》과 《곡량전穀梁傳》에는 모두 진후陳侯에게 출가出嫁하는 여자의 잉첩媵妾으로 가는 나라 딸이라고 하였다. 에 ‘진인陳人’라 한 것은 그 여자가 아직 나라에 들어가기 전이므로 간략하게 말한 것이다. 대부大夫국경國境을 나갔을 때 사직社稷을 안정시키고 국가國家를 이롭게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면 임금의 을 기다리지 않고 마음대로 결정하는 것이 옳다. 에서 회합會合이 있다는 말을 듣고는 일의 정황情況을 헤아려 호송護送하는 직무職務를 버리고 드디어 두 나라 임금과 회맹會盟한 것이다. 그러므로 자세히 기록한 것이다. 그러나 본래 노공魯公의 뜻이 아니었고, 또 나라에 잉첩媵妾호송護送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우호友好를 잃었다. 그러므로 겨울에 세 나라가 각각 와서 나라를 친 것이다.
부인夫人강씨姜氏나라로 갔다.注+이 없다. 부모父母의 나라가 아닌데도 갔으니, 이를 기록한 것은 간음姦淫하기 위해 갔기 때문이다.
겨울에 제인齊人송인宋人진인陳人이 우리나라 서쪽 변방을 쳤다.注+이 없다. 에서 동맹同盟할 때는 나라가 미천微賤한 자를 보내어 회맹會盟에 참여시켰고, 에서 결맹結盟할 때는 또 잉신媵臣으로 하여금 가서 참여하게 하였기 때문에 침입侵入을 받은 것이다. 변방邊方이다.
19년 봄에 초자楚子파군巴軍방어防禦하다가 에서 대패大敗하고注+파인巴人의 공격을 막다가 도리어 파인巴人에게 한 것이다. 나라 땅이다. 혹자或者는 “강릉현江陵縣진향津鄕이 있다.”고 하였다. 돌아오니, 육권鬻拳성문城門을 닫고 받아들이지 않았다.
초자楚子는 어찌 할 수 없어 발길을 돌려 드디어 황국黃國을 토벌하여注+육권鬻拳나라의 대혼大閽(守門將)이다. 영성嬴姓의 나라인데, 지금의 익양현弋陽縣이다.[부주]林: 초자楚子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초자楚子의 뜻을 자극刺戟하여 특별한 을 세우도록 하고자 한 것이다. 착릉踖陵에서 황사黃師패배敗北시키고서注+착릉踖陵나라 땅이다. 돌아오다가 에 이르러 병이 나서注+남군南郡약현鄀縣 동남에 추성湫城이 있다. 여름 6월 경신일에 하였다.
육권鬻拳초자楚子석실石室에 장사 지내고 나서注+석실夕室지명地名이다.자살自殺하자, 그를 질황絰皇에 장사지냈다.注+질황絰皇은 무덤 앞에 있는 궁궐宮闕이다. 생전生前수문장守門將이었으므로 죽어서도 그 직무職務를 잃지 않게 한 것이다.
당초에 육권鬻拳초자楚子에게 강력히 간하였으나(戰爭인 듯함) 초자楚子가 따르지 않았다.
무기武器를 들고 위협威脅하니 초자楚子는 겁이 나서 그의 말을 따랐다.
그러자 육권鬻拳은 “내가 무기를 들고 임금에게 겁을 주었으니 이보다 큰 죄는 없다.” 하고서, 드디어 스스로 두 발을 잘랐다.
초인楚人(楚子를 이름)은 그를 대혼大閽으로 삼아 태백太伯이라 명칭名稱하고서注+지금의 성문교위관城門校尉官 같은 것이다.[부주]林: 태백太伯이라고 명칭名稱을 달리하여 특별히 총애寵愛하는 뜻을 보인 것이다. 그의 후손에게 대대로 그 관직官職을 맡게 하였다.注+그 자손으로 하여금 항상 이 관직官職을 맡게 한 것이다.
이에 대해 군자君子는 다음과 같이 논평하였다.
육권鬻拳은 참으로 임금을 사랑했다고 할 만하다.
임금에게 간한 것 때문에 스스로 월형刖刑을 받았고, 월형을 받고도 임금을 에 들도록 인도하기를 잊지 않았으니 말이다.”注+애군愛君’이라 말하여 신하의 법도法度가 아님을 밝혔다. 나라는 신하들이 그 임금에게 충성과 사랑을 다하였기 때문에 나라가 흥성興盛하였다.[부주]朱: 육권鬻拳의 행위는 신하의 법도法度가 아닌데, 에 ‘그가 임금을 사랑했다.’고 칭찬하였으니, 이는 좌씨左氏식견識見이 미치지 못한 것이다.
당초에 왕요王姚장왕莊王의 사랑을 받아 자퇴子頹를 낳으니,注+왕요王姚장왕莊王이다. 이다.장왕莊王자퇴子頹를 총애하여 위국蔿國을 그의 스승으로 삼았다.
혜왕惠王이 즉위한 뒤에注+주혜왕周惠王장왕莊王의 손자이다. 위국의 채포菜圃를 탈취하여 로 만들고,注+이고, (짐승을 기르는 곳)이다. 왕궁王宮과 가까이 있는 변백邊伯의 집을 왕이 탈취하고,注+변백邊伯나라 대부이다. 왕이 자금子禽축궤祝跪첨보詹父의 땅을 빼앗고,注+세 사람도 나라 대부이다. 선부膳夫(料理師)의 봉록俸祿몰수沒收하였다.注+선부膳夫석속石速이다. 祿이다.
그러므로 위국蔿國변백邊伯석속石速첨보詹父자금子禽축궤祝跪반란叛亂을 일으켜 소씨蘇氏에게 의지하였다.注+소씨蘇氏나라 대부였는데, 환왕桓王이 그의 12을 빼앗아 나라에 준 뒤부터 드디어 왕실王室불화不和하였다.
가을에 다섯 대부大夫자퇴子頹를 모시고 혜왕惠王을 공격하였으나注+석속石速였기 때문에 다섯 대부의 에 들지 않은 것이다. 이기지 못하여 으로 도망하였다.注+소씨蘇氏이다.
소자蘇子자퇴子頹를 모시고 나라로 도망가니, 위군衛軍연군燕軍나라를 쳐서注+남연南燕이다.[부주]林: 위혜공衛惠公장왕莊王항거抗拒하고서 나라로 들어간 자이므로 나라와 불화不和하였다. 그러므로 소자蘇子자퇴子頹를 모시고 나라로 도망간 것이다. 겨울에 자퇴子頹주왕周王으로 세웠다.


역주
역주1 書姦 : 楊伯峻은 “杜注에 ‘書姦’이라 한 것은 옳지 않은 듯하다. 文姜이 魯桓公 3년에 魯나라로 시집와서 이때 이미 35년의 세월이 흘렀으니, 그 나이가 이미 50여 세가 넘었을 것이다.”고 하였다.
역주2 媵臣 : 媵臣은 시집가는 임금의 딸을 扈從하는 신하인데, 바로 公子結을 이른다.
역주3 : 대본에는 ‘近’으로 되어 있으나 《十三經注疏》本에 의거하여 ‘江’으로 바로잡았다.
역주4 朱曰……此左氏見識不到處 : 신하가 임금에게 諫할 때 위급한 일이 아닌데도 무기로 위협한다면 이는 簒奪과 弑害의 길을 여는 것이다. 그런데도 左氏는 이를 ‘愛君’이라 하였기 때문에 朱氏는 左氏의 識見이 미치지 못했다고 한 것이다.
역주5 奪其十二邑以與鄭 : 12邑을 빼앗아 鄭나라에 준 일은 隱公 11년 傳에 보인다.
역주6 衛惠公……與周不和 : 衛惠公은 急子를 謀殺한 자로 魯桓公 12년에 衛宣公의 뒤를 이어 임금이 되었으나 4년 뒤인 魯桓公 16년에 左右公子에 의해 축출되었고, 축출된 지 8년 만인 魯莊公 6년에 魯‧齊‧宋‧陳‧蔡의 도움으로 들어와 임금이 되었는데, 이때 周莊王은 子突을 보내어 그의 귀국을 막았으나 실패하였다. 그러므로 莊王의 命을 항거하였다고 한 것이다.

춘추좌씨전(1) 책은 2019.05.2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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