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春秋左氏傳(1)

춘추좌씨전(1)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춘추좌씨전(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經]注+經之首時必書王 明此歷天王之所班也 其或廢法違常 失不班歷 故不書王 嬴 齊邑 今泰山嬴縣하다.
3년 봄 정월에 환공桓公제후齊侯에서 회견會見하였다.注+수시首時(四時의 첫 달) 밑에 반드시 ‘’을 기록하여 이 천왕天王반포班布한 것임을 밝혔다. 그러나 혹 법을 저버리고 상례常禮를 어겨 주왕周王이 잊고서 을 반포하지 않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을 기록하지 않은 것인 듯하다. 나라 으로 지금의 태산泰山영현嬴縣이다.
[經]夏 齊侯衛侯胥命于蒲注+申約言以相命而不歃血也 蒲 衛地 在陳留長垣縣西南 [附注] 林曰 惟天子稱命 此私相命也 諸侯不請命而私相命 於是始하다
여름에 제후齊侯위후衛侯가 포에서 서명胥命하였다.注+서명胥命약속約束한 말을 되풀이해 서로 하기만 하고 피는 마시지 않는 것이다. 나라 땅으로 진류陳留장원현長垣縣 서남에 있다.[부주]林: 오직 천자天子만이 ‘’이라 칭할 수 있는데, 이것은 사사로이 한 것이다. 제후가 천자에게 을 청하지 않고 사사로이 서로 명한 것이 이때부터 비롯하였다.
[經]六月 公會紀侯于郕하다
6월에 환공이 기후紀侯에서 회합하였다.
[經]秋七月壬辰朔 日有食之 旣注+無傳 旣 盡也 曆家之說 謂日光以望時遙奪月光 故月食 日月同會 月奄日 故日食 食有上下者 行有高下 日光輪存而中食者 相奄密 故日光溢出 皆旣者 正相當 而相奄間疏也 然聖人不言月食日 而以自食爲文 闕於所不見하다
가을 7월 초하루 임진일에 일식이 있었으니 개기일식皆旣日食이었다.注+이 없다. 는 다한 것이다. 역가曆家에 의하면 망월望月이 될 때이면 일광日光이 멀리에서 월광月光을 빼앗기 때문에 월식月食이 생기고, 해와 달이 함께 만날 때이면 달이 해를 기리기 때문에 일식日食이 생긴다. 해의 위쪽이나 아래쪽에 먹히는 현상이 생기는 것은 해가 운행하는 궤도軌道고하高下가 있기 때문이고, 해의 테두리는 남고 중앙만 먹힌 현상이 생기는 것은 가리고 있는 달이 매우 가까이 있기 때문에 일광日光이 새어 나와서이고, 개기일식은 해가 달과 마주 서 있으나 가리고 있는 사이가 멀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인聖人께서 달이 해를 했다고 말하지 않고 해가 스스로 했다고 글을 만든 것은 직접 보지 못한 바이기 때문에 제쳐놓고 말하지 않은 것이다.
[經]公子翬如齊逆女注+禮 君有故則使卿逆하다
공자 가 제나라로 가서 여자를 맞이하였다.注+에 임금이 유고有故하면 을 시켜 대신 맞이하게 한다.
[經]九月 齊侯送姜氏于讙注+讙 魯地 濟北蛇丘縣西 有下讙亭 已去齊國 故不言女 未至於魯 故不稱夫人하니 公會齊侯于讙注+無傳하다 夫人姜氏 至自齊注+無傳 告於廟也 不言翬以至者 齊侯送之 公受之於讙하다
9월에 제후齊侯강씨姜氏(文姜)를 호송護送하여 에까지 오니,注+나라 땅이다. 제북濟北사구현蛇丘縣 서쪽에 하환정下讙亭이 있다. 이미 제나라를 떠났기 때문에 ‘’라고 말하지 않았고, 아직 나라에 오지 않았기 때문에 ‘부인夫人’이라 말하지 않은 것이다. 환공桓公이 제후와 환에서 회합會合하였다.注+이 없다. 부인 강씨가 제나라에서 노나라로 왔다.注+이 없다. ‘’라고 한 것은 종묘에 고했기 때문이다. “이지以至(부인을 데리고 오다)하였다.”고 말하지 않은 것은 제후齊侯까지 호송하였고, 환공이 환에서 부인을 인수引受하였기 때문이다.
[經]冬 齊侯使其弟年來聘하다
겨울에 제후齊侯가 그 아우 을 노나라에 보내어 빙문聘問하였다.
[經]注+無傳 五穀皆熟 書有年이라
풍년이 들었다.注+이 없다. 오곡五穀이 모두 잘 익은 것을 ‘유년有年’이라고 기록한다.
[傳]三年春 曲沃武公伐翼하야 次于陘庭하다
3년 봄에 곡옥무공曲沃武公을 치기 위해 형정陘庭에 주둔하였다.
韓萬御戎하고 梁弘爲右注+武公 曲沃莊伯子也 韓萬 莊伯弟也 御戎 僕也 右 [附注] 林曰 凡師再宿爲信 過信爲次하야 逐翼侯于汾隰注+汾隰 汾水邊 [附注] 林曰 下濕曰隰이러니 驂絓而止注+ [附注] 林曰 蓋哀侯驂 絓於木而止어늘 夜獲之하고 及欒共叔注+共叔 桓叔之傅 欒賓之子也 身傅翼侯 父子各殉所奉之主 故並見獲而死하다
한만韓萬융거戎車가 되고, 양홍梁弘가 되어注+무공武公곡옥장백曲沃莊伯의 아들이고, 한만韓萬장백莊伯의 아우이다. 어융御戎(수레를 모는 사람)이다. 융거戎車이다.[부주]林: 군대가 이틀 주둔하는 것을 ‘’이라 하고, 이틀 이상 주둔하는 것을 ‘’라 한다. 분수汾水 가의 습지濕地注+분습汾濕분수汾水가이다.[부주]林: 저지대의 습한 곳을 ‘’이라 한다.에서 익후翼侯를 추격하는데, 익후의 참마驂馬가 나무에 걸려 정지停止하니,注+비마騑馬이다.[부주]林: 애후哀侯의 참마가 나무에 걸려 멈춘 것인 듯하다. 밤에 익후翼侯난공숙欒共叔을 잡았다.注+공숙共叔환숙桓叔보좌輔佐난빈欒賓의 아들로 익후翼侯의 보좌이다. 부자父子가 각각 자기가 모시는 주군主君을 위하여 순사殉死하였기 때문에 잡혀 죽은 것을 아울러 드러낸 것이다.
[傳]會于嬴하니 成昏于齊也注+公不由媒介 自與齊侯會而成昏 非禮也
에서 회합하였으니 나라와 성혼成婚하기 위함이었다.注+환공桓公매개媒介를 통하지 않고 스스로 제후齊侯회견會見하여 혼사婚事를 매듭지었으니, 가 아니다.
[傳]夏 齊侯衛侯胥命于蒲하니 不盟也
여름에 제후齊侯위후衛侯에서 서명胥命하였으니 결맹結盟하지 않은 것이다.
[傳]公會杞侯于郕하니 杞求成也注+二年入杞 故今來求成
환공이 기후杞侯에서 회합하였으니, 이는 나라가 화평和平를 요구하였기 때문이다.注+환공桓公 2년에 나라가 나라로 쳐들어갔기 때문에 지금 와서 화평을 요구한 것이다.
[傳]秋 公子翬如齊逆女하니
가을에 공자 가 제나라로 가서 환공의 부인이 될 제나라 여자를 맞이하였으니 선군先君 때의 우호를 중수重修한 것이다.
故曰 公子注+昏禮雖奉時君之命 其言必稱先君以爲禮辭 故公子翬逆女 傳稱脩先君之好 公子遂逆女 傳稱尊君命 互擧其義라하다
그러므로 ‘공자公子’라고 한 것이다.注+혼례昏禮는 당시 임금의 명을 받들어 거행하지만 그 말은 반드시 선군先君을 들어 예절禮節에 맞게 겸사謙辭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의 ‘공자휘역녀公子翬逆女’에 대해 에 “선군先君 때의 우호友好중수重修한 것이다.”라고 칭하고, 선공宣公원년元年의 ‘공자수역녀公子遂逆女’에 대해 에 “임금의 존중尊重한 것이다.”고 하여, 저곳과 이곳에 그 뜻을 들어 말하였다.
齊侯送姜氏하니 非禮也
제후齊侯강씨姜氏를 호송하였으니 가 아니다.
凡公女嫁于敵國 姊妹 則上卿送之하야 以禮於先君注+[附注] 林曰 以加禮於先君之遺體하고 公子 則下卿送之注+[附注] 林曰 公所自生之女 降姊妹二等하며
공녀公女가 대등한 나라로 시집갈 경우, 그 공녀가 임금의 자매姉妹이면 상경上卿이 호송하여 선군先君예우禮遇하고,注+[부주]林: 선군先君유체遺體(子女)에 대해 상례常禮 이상으로 후대厚待하는 것이다. 임금의 딸이면 하경下卿이 호송하며,注+[부주]林: 의 딸일 경우에는 의 자매를 대우하는 에 비해 2등을 낮추는 것이다.
於大國에는 雖公子라도 亦上卿送之하고
큰 나라로 시집갈 경우에는 비록 임금의 딸이라 해도 상경上卿이 호송하고,
於天子에는 則諸卿皆行호되 公不自送하며
천자天子에게 시집갈 경우에는 모든 이 다 함께 호송하되, 임금이 스스로 호송하지는 않으며,
於小國에는 則上大夫送之니라
작은 나라로 시집갈 경우에는 상대부上大夫가 호송한다.
[傳]冬 齊仲年來聘하니 致夫人也注+古者女出嫁 又使大夫隨加聘問 存謙敬 序殷勤也 在魯而出 則曰致女 在國而來 則摠曰聘 故傳以致夫人釋之
겨울에 나라의 중년仲年이 와서 빙문聘問하였으니 부인夫人강씨姜氏위문慰問한 것이다.注+옛날에 딸을 출가出嫁시키면 또 대부大夫로 하여금 따라가서 빙문聘問하고서, 겸손과 공경의 뜻을 담아 위문하여 깊은 정을 드러내게 하였다. 나라에서 가는 경우에는 ‘치녀致女’라 하고, 다른 나라에서 오는 경우에는 모두 ‘빙문聘問’이라 한다. 그러므로 에 빙문을 ‘치부인致夫人’으로 해석한 것이다.
[傳]芮伯萬之母芮姜 惡芮伯之多寵人也
예백芮伯의 어머니 예강芮姜이 예백이 총애하는 사람이 많은 것을 미워하였다.
故逐之하니 出居于魏注+爲明年秦侵芮張本 芮國 在馮翊臨晉縣 魏國 河東河北縣 [附注] 林曰 萬 芮伯名 姜 母之姓 以芮伯內寵外寵 皆非賢德之人 逐芮伯하다
그러므로 그를 축출逐出하니 예백芮伯나라로 나가 살았다.注+명년明年나라가 예국芮國침입侵入장본張本이다. 예국芮國풍익馮翊임진현臨晉縣에 있고, 위국魏國하동河東하북현河北縣이다.[부주]林: 예백芮伯의 이름이고, 은 그 어머니의 이다. 예백이 총애한 여자와 남자가 모두 어진 이 있는 사람이 아니므로 예백을 축출한 것이다.
역주
역주1 三年春正月……于嬴 : 春 밑에 王을 쓰지 않은 것에 대해 李惟樟의 《春秋輯註》에는 “桓公이 임금을 시해하고 임금이 되었으므로 元年에 ‘王’을 기록하여 王法으로 그 罪를 다스렸고, 3년에는 ‘王’을 기록하지 않아 환공이 王을 무시한 죄를 드러내었다.”고 하였고, 李震相의 《春秋集傳》에는 “春 밑에 ‘王’을 기록하지 않은 것은 告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고 하였다. 告朔은 은공 원년의 역주 참조.
역주2 有年 : 이에 대해 朝鮮李惟樟의 《春秋輯註》에는 “ ‘有年’을 기록한 것은 怪異함을 기록한 것이다. 아래의 人事가 도리에 맞으면 위의 天氣도 調和를 이룬다. 그런데 환공은 임금을 弑害하고 스스로 임금이 되어 天理를 거스르고 人倫을 어지럽혔으니, 천지의 기운도 어그러져 水旱의 凶災가 생기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금년에 풍년이 들었으므로 怪異함을 기록한 것이다.”하였다.
역주3 戎車之右 : 수레에는 세 사람이 타는데, 左側에는 임금이나 主將이 타고, 중앙에는 수레를 모는 御가 앉아서 수레를 몰고, 右側에는 勇力이 있는 武士가 앉아서 임금이나 주장을 警護한다.
역주4 騑馬 : 수레에는 네 匹의 말을 메워 끌게 하는데, 가운데에 있는 두 필의 말을 ‘服馬’라 하고, 양쪽에 있는 두 필의 말을 ‘驂馬’ 또는 ‘騑馬’라 한다.
역주5 修先君之好 : 《正義》에 “宣公元年經의 ‘公子遂逆女’에 대해 傳에 ‘尊君命’이라 한 것이 바로 時君의 命을 奉行한 것이고, 여기의 ‘公子翬逆女’에 대해 傳에 ‘修先君之好’라 한 것이 바로 先君을 들어 말한 것이다.”고 하였다.
역주6 : ‘他’가 대본에는 ‘地’로 되어 있으나 《十三經注疏》本에 의하여 바로잡았다.

춘추좌씨전(1) 책은 2019.05.2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18 By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