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春秋左氏傳(1)

춘추좌씨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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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經]二十有八年春王三月甲寅 齊人伐衛하니 衛人及齊人戰타가 衛人敗績注+齊侯稱人者 諱取賂而還 以賤者告 不地者 史失之하다
28년 봄 3월 갑인일에 제인齊人나라를 토벌하니, 위인衛人제인齊人과 전쟁하다가 위인衛人대패大敗하였다.注+제후齊侯를 ‘’이라 칭한 것은 뇌물賂物을 받고 환군還軍한 것을 숨기고 또 미천微賤한 자를 나라에 보내어 통고하였기 때문이다. 전쟁한 지명地名을 기록하지 않은 것은 사관史官이 지명을 잊었기 때문이다.
[經]夏四月丁未 邾子𤨏卒注+無傳 未同盟而赴以名하다
여름 4월 정미일에 주자邾子𤨏하였다.注+이 없다. 동맹同盟하지 않았는데도 이름을 기록해 부고하였기 때문에 기록한 것이다.
[經]秋 荊伐鄭하니 公會齊人宋人救鄭注+[附注] 林曰 諸侯救 始此하다
가을에 (楚)이 나라를 토벌하니, 장공莊公제인齊人송인宋人과 연합하여 나라를 구원하였다.注+[부주]林: 제후諸侯가 서로 구원하는 것이 이때부터 비롯하였다.
[經]冬 築郿注+郿 魯下邑 傳例曰 邑曰築하다
겨울에 에 성을 쌓았다.注+나라의 하읍下邑이다. 전례傳例에 “에 성을 쌓는 것을 ‘’이라 한다.”고 하였다.
[經]大無麥禾注+書於冬者 五穀畢入 計食不足而後 書也하다
보리와 벼가 모두 흉작凶作이었다.注+겨울에 이를 기록한 것은 오곡五穀을 모두 수확收穫해 들여 식량을 계산해 보아 부족한 뒤에야 기록하기 때문이다.
[經]臧孫辰告糴于齊注+臧孫辰 魯大夫 臧文仲하다
장손신臧孫辰나라로 가서 양곡糧穀판매販賣를 요청하였다.注+장손신臧孫辰나라 대부 장문중臧文仲이다.
[傳]二十八年春 齊侯伐衛하다
28년 봄에 제후齊侯나라를 토벌하였다.
하야 敗衛師하고 數之以王命하고 取賂而還注+[附注] 林曰 言不能正衛之罪하다
전쟁하여 위사衛師패배敗北시키고서 주왕周王으로 를 꾸짖고는 뇌물을 받고 돌아왔다.注+[부주]林: 나라의 를 다스리지[正] 못했다는 말이다.
[傳]晉獻公娶于賈 無子注+賈 姬姓國也하고 烝於齊姜注+齊姜 武公妾하야 生秦穆夫人及大子申生하고
진헌공晉獻公가국賈國에서 아내를 맞이하였으나 아들을 낳지 못하였고,注+가국賈國희성姬姓의 나라이다. 제강齊姜간음姦淫하여注+제강齊姜진무공晉武公이다.진목공秦穆公부인夫人태자太子신생申生을 낳았고,
又娶二女於戎하니 大戎狐姬生重耳注+大戎唐叔子孫別在戎狄者 [附注] 朱曰 大戎 唐叔之後姬姓 出自狐伯行 故以狐爲氏하고 小戎子生夷吾注+小戎 允姓之戎 子 女也하다
에서 두 여자를 맞이하였는데, 대융大戎호희狐姬중이重耳를 낳고,注+대융大戎당숙唐叔의 자손으로 갈리어 융적戎狄으로 가서 거주居住한 자이다.[부주]朱: 대융大戎당숙唐叔후손後孫으로 희성姬姓인데, 호백행狐伯行으로부터 출발했기 때문에 로 삼았다. 소융자小戎子이오夷吾를 낳았다.注+소융小戎윤성允姓융적戎狄이다. 이다.
晉伐驪戎 驪戎男女以驪姬注+驪戎 在京兆新豊縣 其君姬姓 其爵男也 納女於人 曰女하니하야 生奚齊하고 其娣生卓子하다
나라가 여융驪戎을 토벌할 때 여융남驪戎男여희驪姬헌공獻公에게 주니注+여융驪戎경조京兆신풍현新豊縣에 있는데, 그 임금은 희성姬姓이고, 그 작위爵位이다. 딸을 남에게 주는 것을 ‘’라 한다. 그녀를 데리고 돌아왔는데, 여희驪姬해제奚齊를 낳고 여희驪姬의 동생은 탁자卓子를 낳았다.
驪姬嬖하니 欲立其子하야 賂外嬖梁五與東關嬖五注+姓 梁 名 五 在閨闥之外者 東關嬖五 別在關塞者 亦名五 皆大夫 爲獻公所嬖幸 外事하야 使言於公曰 曲沃 君之宗也注+曲沃 桓叔所封 先君宗廟所在 蒲與二屈 君之疆也注+蒲 今平陽蒲子縣 二屈 今平陽北屈縣 或云二當爲北 不可以無主니이다
헌공獻公이 여희를 총애寵愛하니, 여희는 제 자식을 태자太子로 세우고자 하여, 외폐外嬖양오梁五동관폐오東關嬖五에게 뇌물을 주고서注+이고 이름이 인데, 규달閨闥(임금이 거처하는 궁전宮殿) 밖에 있는 자이다. 동관폐오東關嬖五는 따로 관새關塞(邊方의 관문關門)에 있는 자인데 그 또한 이름이 이다. 이들은 모두 대부大夫로서 헌공獻公의 사랑을 받아 외부의 소식을 정탐해 보고하는 자들이다. 그들을 시켜 헌공獻公에게 “곡옥曲沃은 임금님의 종묘宗廟가 있는 곳이고,注+곡옥曲沃환숙桓叔해진 곳으로 선군先君종묘宗廟가 있는 곳이다. 와 두 굴읍屈邑은 임금님의 변경邊境이니,注+는 지금의 평양平陽포자현蒲子縣이다. 이굴二屈은 지금의 평양平陽북굴현北屈縣이다. 혹자或者는 “으로 고치는 것이 마땅하다.”고 하였다.주관主管하는 사람이 없어서는 안 됩니다.
宗邑無主 則民不威하고 疆埸無主 則啓戎心이니
종묘宗廟가 있는 고을에 주관主管하는 사람이 없으면 백성들이 위복威服(두려워 복종함)하지 않고, 변경邊境주관主管하는 사람이 없으면 융적戎狄에게 침범할 마음을 갖도록 인도하는 것입니다.
戎之生心 民慢其政 國之患也니이다
융적戎狄이 침범할 생각을 내고 백성들이 임금의 정령政令경시輕視하는 것은 국가國家우환憂患이니,
若使大子主曲沃하고 而重耳夷吾主蒲與屈이면 則可以威民而懼戎이오 且旌君伐注+旌 章也 伐 功也이리이다
만약 태자太子에게 곡옥曲沃주관主管하게 하고, 중이重耳이오夷吾에게 주관主管하게 하신다면 백성들을 위복威服시키고 융적戎狄을 두렵게 할 뿐만 아니라 임금님의 공덕功德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注+은 드러내는 것이고, 이다.”라고 말하게 하였다.
使俱曰 狄之廣莫 於晉爲都 晉之啓土 不亦宜乎注+廣莫 狄地之曠絶也 卽謂蒲子北屈也 言遣二公子出都之 則晉方當大開土界 獻公未決 故復使二五俱說此美잇가
여희驪姬는 또 두 사람에게 함께 가서 헌공獻公에게 “융적戎狄광대廣大한 땅이 나라의 도시都市가 될 수 있으니, 나라가 강토疆土개척開拓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습니까.”라고 말하게 하였다.注+광막廣莫융적戎狄의 땅이 광절曠絶(廣闊한 황무지荒蕪地)하다는 말이니, 바로 을 이른다. 두 공자公子를 그곳으로 내보내어 도읍都邑하게 하면 나라가 바야흐로 국토의 경계境界를 크게 개척開拓할 수 있다는 말이다. 헌공獻公이 결정을 하지 않기 때문에 여희驪姬가 다시 두 를 시켜 이렇게 좋은 일이 있다고 자세히 말하게 한 것이다.
晉侯說之하야 使大子居曲沃하고 重耳居蒲城하고 夷吾居屈하고 羣公子皆鄙注+鄙 邊邑하고 唯二姬之子在絳하다
그러자 진후晉侯는 기뻐하여 여름에 태자太子곡옥曲沃으로, 중이重耳포성蒲城으로, 이오夷吾로, 여러 공자公子들을 모두 변방邊方으로 보내어注+는 변방의 읍이다.거주居住하게 하고, 오직 여희와 그 동생의 아들만을 에 남아 있게 하였다.
二五卒與驪姬譖羣公子而立奚齊하니 晉人謂之二五耦注+二耜相耦 廣一尺共起 言二人俱共墾傷晉室若此라하다
양오梁五동관폐오東關嬖五가 마침내 여희와 함께 여러 공자公子들을 참소讒訴하고서 해제奚齊를 태자로 세우니, 진인晉人이 이를 ‘이오우二五耦’라 하였다.注+두 개의 보습으로 짝을 이루면 넓이가 1척으로 일벌一伐을 일으키는데, 두 사람이 함께 짝이 되어 나라 공실公室간상墾傷(損傷)하는 것이 이와 같다는 말이다.
[傳]楚令尹子元欲蠱文夫人注+文王夫人 息嬀也 子元 文王弟 蠱 惑以淫事하야 爲館於其宮側하고 而振萬焉注+振 動也 萬 舞也 [附注] 林曰 蓋作樂以蠱之하니
나라 영윤令尹자원子元문부인文夫人고혹蠱惑하고자 하여,注+문부인文夫人초문왕楚文王부인夫人식규息嬀이다. 자원子元문왕文王의 아우이다. 는 음란한 일로 미혹迷惑시키는 것이다. 그녀의 곁에 집을 짓고서 방울을 흔들며 만무萬舞를 추니,注+은 흔드는 것이고, 은 춤이다.[부주]林: 음악을 연주하여 그를 고혹蠱惑하려 한 것이다.
夫人聞之하고 泣曰 先君以是舞也 習戎備也注+[附注] 朱曰 蓋舞有 卽陳法也러니 今令尹不尋諸仇讎하고 而於未亡人之側하니 不亦異乎注+尋 用也 婦人旣寡 自稱未亡人 [附注] 林曰 仇讎 謂鄭也
부인夫人이 듣고 눈물을 흘리며 “선군先君께서는 이 춤으로 전비戰備(전쟁준비)를 연습演習하였는데,注+[부주]朱: 춤에도 부곡部曲항오行伍가 있으니, 이것이 바로 진법陣法이라는 말이다. 지금 영윤令尹은 이것을 원수를 치는 데에 사용하지 않고 미망인未亡人 곁에서 추니, 이상하지 않은가.注+은 사용하는 것이다. 부인婦人과부寡婦가 되면 스스로 ‘미망인未亡人’이라 칭한다.[부주]林: 구수仇讎나라를 이른다.”라고 하였다.
御人以告子元注+御人 夫人之侍人한대 子元曰 婦人不忘襲讎어늘 我反忘之注+[附注] 林曰 文夫人乃婦人 尙能不忘討襲仇讎之國 我爲丈夫而反忘仇讎之當討로다
어인御人이 이 말을 자원子元에게 고하니,注+어인御人부인夫人을 모시는 사람이다. 자원子元은 “부인夫人도 오히려 원수를 습격襲擊하기를 잊지 않고 있는데, 나는 도리어 잊었구나.”라고 하였다.注+[부주]林: 문부인文夫人은 여자인데도 오히려 원수 나라를 토벌해 습격하기를 잊지 않고 있는데, 나는 사내가 되어 도리어 원수에 대한 토벌을 잊었다는 말이다.
子元以車六百乘伐鄭注+[附注] 朱曰 欲以說息嬀也하야 入于桔柣之門注+桔柣 鄭遠郊之門也하다
가을에 자원子元병거兵車 6백 을 거느리고 나라를 침공侵攻하여注+[부주]朱: 식규息嬀를 즐겁게 하고자 해서이다. 길질문桔柣門(혈절문)으로 쳐들어갔다.注+길질문桔柣門나라 원교遠郊에 있는 이다.
子元鬪御彊鬪梧耿之不比爲旆注+子元自與三子 特造以居前 廣充幅長尋 曰旐 繼旐 曰旆하고 鬪班王孫游王孫喜殿注+三子在後爲하야 衆車入自純門하야 及逵市注+純門 鄭外郭門也 逵市 郭內道上市 縣門不發하고 楚言而出이어늘
자원子元투어강鬪御彊투오鬪梧경지불비耿之不比(先鋒)가 되고注+자원子元이 세 사람과 함께 특별히 를 만들어 선봉先鋒에 선 것이다. 넓이가 1(1尺 2)이고 길이가 (8尺)인 것을 라 하고, 의 끝에 베 조각을 붙여 제비꼬리처럼 만든 것을 라 한다. 투반鬪班왕손유王孫游왕손희王孫喜殿(後軍)이 되어,注+세 사람은 뒤에 있으면서 반어反禦가 된 것이다. 모든 전거戰車순문純門으로 들어가서 규시逵市에 이르렀으나,注+순문純門나라 외곽外廓이다. 규시逵市외곽내外廓內도로道路가에 있는 시장市場이다. 나라는 내성內城현문縣門(閘門)도 내리지 않고 나라 병사兵士들이 나라 말을 흉내내며 나왔다.
子元曰 鄭有人焉注+縣門 施於內城門 鄭示楚以閑暇 故不閉城門 出兵而效楚言 故子元畏之 不敢進이라하다
그러자 자원子元은 “나라에 인재人材가 있다.”고 하였다.注+현문縣門내성內城에 설치한 것이다. 나라가 초사楚師에게 한가로움을 보이고자 했기 때문에 현문縣門을 내리지 않은 것이고, 나라가 군대를 내보내어 나라 말을 흉내내게 했기 때문에 자원子元은 두려워서 감히 진격進擊하지 못한 것이다.
諸侯救鄭하니 楚師夜遁하다
제후諸侯나라를 구원救援하니 초사楚師가 밤에 도주逃走하였다.
鄭人將奔桐丘注+許昌縣東北有同丘城러니 諜告曰 楚幕有烏注+諜 間也 幕 帳也 [附注] 林曰 大將所居 以幕帳蔽禦風雨 軍衆屯聚 烏不敢止 今楚幕有烏 知楚師已遁也라하야늘 乃止하다.
이때 정인鄭人동구桐丘로 도주하려 하였는데,注+허창현許昌縣 동북에 동구성同丘城이 있다. 첩자諜者가 와서 “나라 군영軍營에 까마귀가 앉아 있다.”고 보고하였으므로注+간첩間諜이다. 장막帳幕이다.[부주]林: 대장大將이 거처하는 곳에는 장막帳幕을 쳐서 풍우風雨를 막는다. 군대가 주둔駐屯해 있으면 까마귀가 와서 앉을 수 없는데, 지금 나라 장막帳幕에 까마귀가 앉은 것으로 보아 초군楚軍이 이미 도주逃走했음을 안 것이다. 도주할 계획을 취소하였다.
[傳]冬 어늘 臧孫辰告糴于齊하니 禮也注+經書大無麥禾 傳言饑 傳又先書饑在築郿上者 說始糴 經在下 須得糴 嫌或諱饑 故曰禮
겨울에 기근饑饉이 들자, 장손신臧孫辰나라로 가서 양곡糧穀판매販賣를 요청하였으니, 에 맞는 처사였다.注+에는 ‘대무맥화大無麥禾’라고 기록하였는데 에는 ‘’라고 말하였고, 에 또 ‘’를 ‘축미築郿’의 위에 먼저 기록한 것은 구매購買의 시작을 설명한 것이고, 이 아래에 있는 것은 구매購買가 끝나기를 기다려 기록했기 때문이다.
[傳]築郿하니 非都也
에 성을 쌓았다고 하였으니 도성都城이 아니기 때문에 ‘’이라 한 것이다.
凡邑有宗廟先君之主曰 都 無曰 邑이니 邑曰 築이요 都曰 城注+周禮 四縣爲都 四井爲邑 然宗廟所在 則雖邑曰都 尊之也 言凡邑 則非例이라
종묘宗廟선군先君신주神主가 있는 곳을 ‘’라 하고, 없는 곳을 ‘’이라 하는데, 에 성을 쌓는 것을 ‘’이라 하고 에 쌓는 것을 ‘’이라 한다.注+주례周禮》 〈지관地官소사도小司徒〉에 “4이 ‘’이고, 4이 ‘’이다.”고 하였다. 그러나 종묘宗廟가 있는 곳은 비록 이라 해도 ‘’라고 하니, 종묘宗廟 때문에 높여 하는 것이다. ‘범읍凡邑’이라고 말하였으니, 기타의 은 이 무관無關하다.
역주
역주1 視聽 : 남의 耳目 노릇을 한다는 뜻으로 소식을 정탐하여 보고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역주2 一伐 : 伐은 쟁기로 갈아 일으킨 흙이다. 《周禮》 〈考工記匠人〉에 “一耦之伐廣尺深尺”이라고 보이는데, 두 개의 보습으로 짝을 이루면 넓이 한 자, 깊이 한 자의 흙을 갈아 일으킨다는 말이다.
역주3 部曲 : 군대의 編制로 大將軍의 軍營에는 5部가 있고, 部 밑에 曲이 있다.
역주4 行伍 : 군대의 編制로 伍는 5人이고, 行은 25인이다.
역주5 : 군대가 出動할 때는 旆가 맨 앞에 가기 때문에 先鋒의 뜻으로 쓰인다.
역주6 反禦 : 정확히는 알 수 없으나, 退軍할 때 後尾에서 敵의 奇襲을 防禦하는 部隊인 듯하다.
역주7 經에……것이다. : 經文에 ‘大無’라 하여 ‘饑’를 숨긴 듯하기 때문에 ‘禮’라고 했다는 杜氏의 설은 옳지 않은 듯하다. 흉년이 들면 政府에서 糧穀을 輸入해 백성을 救恤하는 것은 당연한 도리이다. 그러므로 ‘禮’라 한 것이다.
역주8 他築 : 기타의 築이란 臺의 構築, 園囿의 築造, 家屋의 建築 등을 이른다.

춘추좌씨전(1) 책은 2019.05.2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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