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5월 무인일에 장공莊公이 송군宋軍을 자鄑에서 패배시켰다.注+자鄑는 노魯나라 땅이다. 전례傳例에 “적敵이 진陳을 치기 전에 공격해 승리하는 것을 ‘패모사敗某師’(아무 나라 군대를 패배시켰다)라 한다.”고 하였다.
가을에 송宋나라에 큰 물이 졌다.注+장공莊公이 사신使臣을 보내어 위문慰問하였기 때문에 기록한 것이다.
겨울에 왕희王姬가 제齊나라로 출가出嫁하였다.注+노魯나라가 혼사婚事를 주관하였기 때문에 기록한 것이다. 제후齊侯가 맞이하였다고 기록하지 않은 것은 장공莊公을 만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傳
11년 여름에 송宋나라가 작년에 승구乘丘에서 패배했던 전쟁을 보복하기 위해 우리나라를 침범하였다.
장공莊公이 이들을 방어할 때 송군宋軍이 진陣을 치기 전에 공격하여 자鄑에서 패배시켰다.
전쟁에 적敵이 진陣을 치기 전에 공격하여 패배시키는 것을 ‘패모사敗某師’(아무 군대를 패배시켰다)라 하고,注+권모술수權謀術數를 써서 적敵에게 승리하는 것을 모두 ‘패모사敗某師’라 이른다. 피아彼我가 전열戰列을 이루지 못하였거나 전열을 이루었으나 그 전열을 사용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진陣을 치기 전에 일방적으로 공격해 패배시킨 것으로 글을 만든 것이다.양군兩軍이 모두 진陣을 친 뒤에 공격하는 것을 ‘전戰’이라 하고,注+견고히 대비하고서 각각 진지陣地를 확보하면 승패勝敗가 군대들의 의지意志와 용력勇力에 의해 결정된다.크게 붕궤崩潰되는 것을 ‘패적敗績’이라 하고,注+언덕과 산이 무너지듯이 군대가 꺾여 패배하면 공적功績을 상실喪失하기 때문에 ‘패적敗績’이라 한다.우두머리를 잡는 것을 ‘극克’이라 하고,注+준儁은 태숙太叔단段처럼 재주와 힘이 대중을 복종시키기에 충분하고, 위엄과 권한이 자신의 위치를 공고鞏固히 하기에 충분한 자를 이른다. 그러나 앞으로는 외구外寇로서 강强한 적敵이 되지도 못하고, 뒤로는 교활狡猾하고 용감勇敢하여 임금이 둘인 것 같은 난리를 일으키지만 사실은 임금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 자를 잡고 승리하면 저들이 ‘패적敗績’했다고 말하지 않고 다만 ‘극克’한 상대의 이름만을 기록할 뿐이다.복병伏兵으로 적敵을 기습奇襲해 패배시키는 것을 ‘취모사取某師’(아무 군대를 모두 잡았다)라 하고,注+복覆은 위엄威嚴과 힘을 겸비하여 숨어 있는 물고기를 일망타진하듯이 전군全軍을 다 포로로 잡는 것을 이른다. 그러므로 ‘취取’라고 글을 만든 것이다.경사京師(周王의 군대)가 패배하는 것을 ‘왕사패적우모王師敗績于某(周王의 군대가 아무에게 대패大敗하였다)라 한다.注+왕자王者는 천하에 대적對敵이 없으니, 천하에 누구도 왕자王者와 전쟁할 수 없다. 그러나 춘추시대春秋時代에는 도리어 그런 일이 있어서 그 일이 경經에 열기列記되었으니, 그 뜻을 자세히 밝히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므로 왕사王師가 패敗하는 경우가 있으면 스스로 패敗한 것으로 글을 만들어 천하에 누구도 왕사王師에 대항할 수 없음을 밝혔다.
注+하늘의 민조愍弔(가엾게 여겨 위로함)를 받지 못했다는 말이다.[부주]林: 하늘의 민조愍弔를 받지 못했으니 이 일을 장차 어쩌면 좋겠느냐는 말이다.”라고 하니, 송민공宋閔公이 대답하기를 “고孤가 실로 하늘을 공경하지 않아 하늘이 재앙을 내린 것인데, 도리어 군君(魯莊公을 기리킴이다)께 근심을 끼쳐 관심關心을 보여주시니 감당할 수 없습니다.注+후厚하게 위문慰問하는 명命을 감사히 받겠다는 말이다.”고 하였다.
이 말을 듣고 장문중臧文仲이 말하기를 “송宋나라는 아마도 부흥復興할 것이다.注+장문중臧文仲은 노魯나라 대부이다.
우禹‧탕湯은 죄罪를 자신에게 돌렸으므로 그 흥興하는 것이 빨랐고,注+패悖는 성盛한 모양이다.걸傑‧주紂는 죄를 남에게 돌렸으므로 그 망亡하는 것이 빨랐다.注+홀忽은 빠른 모양이다.
열국列國에 흉재凶灾가 있으면 그 나라 임금이 자신을 ‘고孤’라고 칭하는 것이 예禮이다.注+열국列國은 제후諸侯이다. 흉재凶灾가 없으면 임금은 항상 자신을 ‘과인寡人’이라 칭한다.
송공宋公은 말이 공구恐懼스러웠고 명칭名稱이 예禮에 맞았으니 거의 부흥할 수 있을 것이다.注+언구言懼는 죄를 자신에게 돌린 것이고, 명례名禮는 자신을 ‘고孤’라고 칭한 것이고, 기서其庶는 부흥復興하기에 가깝다는 말이다.”라고 하였다.
얼마 뒤에 그 말이 공자公子어열御說의 말이었다는 것을注+어열御說은 송장공宋莊公의 아들이다. 듣고 장손달臧孫達注+[부주]林: 곧 장문중臧文仲이다.이 말하기를 “이 사람은 응당 임금이 될 것이다.
백성을 걱정하는 마음이 있다.”라고 하였다.
傳
겨울에 제후齊侯가 노魯나라로 와서 공희共姬를 아내로 맞이해 갔다.注+제후齊侯는 제환공齊桓公이다.[부주]林: 공희共姬는 바로 경經에서 말한 왕희王姬이다.
傳
승구乘丘의 전쟁戰爭 때注+장공莊公 10년에 있었다.장공莊公이 금복고金僕姑로 남궁장만南宮長萬을 쏘아 맞히니注+금복고金僕姑는 화살 이름이다. 남궁장만南宮長萬은 송宋나라 대부이다.장공莊公의 거우車右천손歂孫이 그를 생포生捕하였다.注+박搏은 취取하는 것이다. ‘획獲’이라고 기록하지 않은 것은 이때 장만長萬이 경卿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송인宋人이 그를 돌려달라고 요청하니, 노魯나라는 그를 돌려보냈다.
그가 송宋나라로 돌아가자 송공宋公이 그를 조롱嘲弄하기를注+조롱嘲弄하여 상대를 부끄럽게 하는 것을 ‘근靳’이라 한다. 노魯나라가 돌려달라는 송宋나라의 요청을 들어준 것이다. “과거에는 내가 그대를 존경尊敬했지만 지금 그대는 노魯나라의 포로이니 나는 그대를 존경하지 않는다.”라고 하니, 남궁장만南宮長萬은 이 말을 치욕恥辱으로 여겼다.注+장만長萬이 농담弄談으로 여기지 않고 자신의 치욕으로 여긴 것이다. 이것이 송만宋萬이 그 임금을 시해한 전傳의 배경이 되었다.
역주
역주1未 :
대본에는 ‘朱’로 되어 있으나 《十三經注疏》本에 의거하여 ‘未’로 바로잡았다.
역주2拜命之辱 :
당시의 慣用語로 後代의 ‘承蒙關注實不敢當(관심을 보여주시니 실로 감당할 수 없다’는 말과 같다. 〈楊注〉
역주3하늘이……않겠는가 :
杜注의 해석에 따르면 “어째서 하늘의 愍弔(가엾게 여겨 위로함)를 받지 못하였는가.”로 번역해야 한다. 그러나 譯者는 이 說을 따르지 않고 ‘어찌 위로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로 번역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