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春秋左氏傳(3)

춘추좌씨전(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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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좌씨전(3)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經]十有一年春王三月 公至自晉注+正月 公在晉 不書 諱見止 하다
11년 봄 주왕周王삼월三月성공成公나라에서 돌아왔다.注+정월正月성공成公나라에 있었는데, 에 이를 기록하지 않은 것은 억류抑留당한 것을 숨긴 것이다.
[經]晉侯使郤犫來聘하다
진후晉侯극주郤犫를 보내 와서 빙문聘問하였다.
己丑 及郤犫盟注+郤犫 郤克從父兄弟 하다
기축일己丑日극주郤犫결맹結盟하였다.注+극주郤犫극극郤克종부형제從父兄弟(四寸兄弟)이다.
[經]夏 季孫行父如晉하다
여름에 계손행보季孫行父나라에 갔다.
[經]秋 叔孫僑如如齊하다
가을에 숙손교여叔孫僑如나라에 갔다.
[經]冬十月이라
겨울 10월이다.
[傳]十一年春王三月 公至自晉하다
11년 봄 주왕周王삼월三月성공成公나라에서 돌아왔다.
晉人以公爲貳於楚
진인晉人성공成公나라에 두 마음을 품었다고 여겼다.
故止公하다
그러므로 성공成公억류抑留[止]한 것이다.
公請受盟하니 而後使歸注+前年七月 公如晉弔 至是乃得歸하다
성공成公맹약盟約접수接受하겠다고 한 뒤에 성공成公을 돌려보냈다.注+전년前年 7월에 성공成公나라에 조상弔喪 갔다가 이제야 돌아오게 된 것이다.
[傳]郤犫來聘하고注+公請受盟 故使大夫來臨之하다
극주郤犫가 와서 빙문聘問하고서 결맹結盟이맹涖盟하였다.注+성공成公맹약盟約접수接受하겠다고 하였기 때문에 나라가 대부大夫를 보내 와서 결맹結盟한 것이다.
[傳]注+聲伯之母 叔肹之妻 不聘 無하니 穆姜曰 吾不以妾爲姒注+昆弟之妻 相謂爲姒 穆姜 宣公夫人 宣公叔肹同母昆弟 라하다
성백聲伯(公孫 영제嬰齊)의 모친母親빙례聘禮하지 않고 성백聲伯부친父親동거同居하니,注+성백聲伯모친母親숙힐叔肹의 아내이다. 불빙不聘매례媒禮거행擧行하지 않은 것이다.목강穆姜이 “나는 을 동서로 삼을 수 없다.”注+남편 형제兄弟를 ‘동서[姒]’라 한다. 목강穆姜선공宣公부인夫人이다. 선공宣公숙힐叔肹동모형제同母兄弟이다. 고 하였다.
生聲伯而出之하니 嫁於齊管于奚注+[附注] 林曰 管 氏 名 于奚 하야 生二子而寡 以歸聲伯注+[附注] 林曰 以其所生子一男一女 歸於聲伯 하다
성백聲伯을 낳은 뒤에 그녀를 축출逐出하였는데, 그녀는 나라 관우해管于奚에게 재가再嫁하여注+[부주]林: 이고, 이름이 우해于奚이다. 자식 둘을 낳고 과부寡婦가 되자 그 자식들을 데리고 성백聲伯에게 돌아왔다.注+[부주]林: 성백聲伯모친母親이 자기가 낳은 자식 1 1를 데리고 성백聲伯에게 돌아온 것이다.
聲伯以其外弟爲大夫注+外弟 管于奚之子 爲魯大夫 하고 而嫁其外妹於注+孝叔 魯惠公五世孫 하다
성백聲伯은 그 외제外弟(아비 다른 아우)를 대부大夫로 삼고,注+외제外弟관우해管于奚의 자식이다. 그를 나라의 대부大夫로 삼은 것이다. 외매外妹(아비 다른 누이)를 시효숙施孝叔에게 시집보냈다.注+효숙孝叔노혜공魯惠公오세손五世孫이다.
郤犫來聘하고 求婦於聲伯하니 聲伯奪施氏婦以與之하다
나라 극주郤犫나라에 와서 빙문聘問하고는 성백聲伯에게 아내감을 구해 달라고 요구要求하니, 성백聲伯시씨施氏에게 주었던 외매外妹를 빼앗아 극주郤犫에게 주었다.
婦人曰 鳥獸猶不失儷注+儷 耦也 하니 子將若何 曰 吾不能死亡注+言不與郤犫婦 懼能忿致禍 이라하니 婦人遂行하야 生二子於郤氏하다
그때 부인婦人시씨施氏에게 “금수禽獸도 오히려 제 짝을 잃으려 하지 않는데,注+는 짝이다. 당신은 장차 어찌할 생각이오.”라고 묻자, 시씨施氏는 “나는 당신을 지키려다가 살해殺害되거나 축출逐出되는 를 당할 수 없소.”注+극주郤犫에게 아내로 주지 않을 경우, 극주郤犫분노忿怒하여 를 부르게 될까 두렵다는 말이다.라고 하니, 부인婦人은 드디어 극주郤犫를 따라가서 극씨郤氏에게서 자식 둘을 낳았다.
郤氏亡 晉人歸之施氏하니 施氏逆諸河할새 沈其二子注+沈之於河하다
극씨郤氏멸망滅亡하자 진인晉人이 그녀를 시씨施氏에게 돌려주니, 시씨施氏황하黃河에서 그녀를 맞이할 때 그 두 아이를 황하黃河에 던져 죽였다.注+극씨郤氏의 두 아이를 황하黃河에 던져 넣은 것이다.
婦人怒曰 己不能庇其伉儷而亡之注+伉 敵也 [附注] 朱曰 言孝叔旣不能庇其匹偶而爲郤氏所奪하고 又不能字人之孤而殺之注+字 愛也 하니 將何以終注+[附注] 林曰 將何以得善終이리오하고 遂誓施氏注+約誓不復爲之婦也 傳言郤犫淫縱 所以亡也 하다
부인婦人하여 말하기를, “당신은 제 아내도 비호庇護하지 못하고 잃더니,注+대등對等[敵]이다.[부주]朱: 효숙孝叔은 이미 그 아내를 비호庇護하지 못하고 극씨郤氏에게 빼앗겼다는 말이다. 또 남의 고아孤兒마저 사랑하지 못하여 저들을 죽였으니,注+는 사랑함이다. 장차 어찌 끝이 좋을 수 있겠소.”注+[부주]林: 장차 어떻게 잘 죽을 수 있겠느냐는 말이다. 라고 하고서, 드디어 시씨施氏의 아내가 되지 않겠다고 맹서盟誓하였다.注+다시 효숙孝叔의 아내가 되지 않겠다고 맹서盟誓한 것이다. 전문傳文극주郤犫음란淫亂방종放縱멸망滅亡하게 된 원인임을 말한 것이다.
[傳]夏 季文子如晉하니 報聘이오 且涖盟也注+
여름에 계문자季文子나라에 갔으니, 이는 극주郤犫내빙來聘보답報答하고, 또 결맹結盟참여參與하기 위해서였다.注+극주郤犫문자文子가 번갈아 나라와 나라 임금과 결맹結盟한 것은 그 뜻이 같다. 그러므로 극주郤犫의 ‘내맹來盟’만을 기록하여, 한 것은 들고 한 것은 생략省略하였다.
[傳]周公楚惡惠襄之偪也注+惠王襄王之族 하고 且與伯與爭政注+伯與 周卿士 이나 不勝注+[附注] 林曰 周公不勝하니 怒而出하다
주공周公혜왕惠王양왕襄王종족宗族핍박逼迫하는 것을 미워하고,注+혜왕惠王양왕襄王종족宗族이다.백여伯與정권政權을 다투었으나注+백여伯與나라 경사卿士이다. 이기지 못하자,注+[부주]林: 주공周公이 이기지 못한 것이다.하여 나라를 떠났다.
及陽樊注+陽樊 晉地 王使劉子復之하니 盟于鄄而入이라가 三日 復出奔晉注+王旣復之而復出 所以自絶於周 爲明年周公出奔傳 鄄 周邑 하다
양번陽樊에 이르렀을 때注+양번陽樊나라 땅이다. 주왕周王유자劉子를 보내어 그를 돌아오게 하니, 그는 에서 유자劉子결맹結盟하고서 나라로 들어왔다가 3일 만에 다시 나라로 출분出奔하였다.注+주왕周王이 이미 그를 돌아오게 하였는데도 다시 출분出奔한 것은 스스로 나라와 관계關係단절斷絶하기 위함이다. 명년明年주공周公출분出奔배경背景이다. 나라 이다.
[傳]秋 宣伯聘于齊하니 以脩前好注+鞍以前之好 [附注] 林曰 宣伯卽叔孫僑如
가을에 선백宣伯나라에 가서 빙문聘問하였으니, 이는 전일前日우호友好중수重修하기 위함이었다.注+이전以前우호友好이다. [부주]林: 선백宣伯은 곧 숙손교여叔孫僑如이다.
[傳]晉郤至與周爭鄇田注+鄇 溫別邑 今河內懷縣西南 有鄇人亭 하니 王命劉康公單襄公訟諸晉하다
나라 극지郤至나라 왕실王室후전鄇田을 차지하려고 다투니,注+별읍別邑이다. 지금 하내河內회현懷縣 서남쪽에 후인정鄇人亭이 있다. 주왕周王유강공劉康公선양공單襄公에게 하여 나라에 가서 쟁송爭訟하게 하였다.
郤至曰 吾故也 故不敢失注+言溫郤氏舊邑 이라 劉子單子曰 昔周克商하고 使諸侯撫封注+各撫有其封內之地 蘇忿生以溫爲司寇하야 與檀伯達封于河注+蘇忿生 周武王司寇蘇公也 與檀伯達俱封於河內 하니라
극지郤至가 말하기를, “은 우리의 옛 봉지封地이기 때문에 감히 잃을 수가 없다.”注+극씨郤氏구읍舊邑이라는 말이다. 고 하니, 유자劉子단자單子가 말하기를, “예전에 나라가 나라를 격멸擊滅[克]하고 제후諸侯들에게 봉지封地점유占有(撫有)하게 하였는데,注+각각 그 봉강封疆 안의 땅을 점유占有[撫有]하게 한 것이다. 그때 소분생蘇忿生봉지封地로 받고 주왕조周王朝사구司寇가 되어, 단백檀伯과 함께 황하黃河지방地方해졌다.注+소분생蘇忿生주무왕周武王사구司寇소공蘇公인데, 단백檀伯과 함께 하내河內해졌다.
蘇氏卽狄이나 又不能於狄而奔衛注+事在僖十年 하니 襄王勞文公而賜之溫注+在僖二十五年 하다
뒤에 소씨蘇氏나라를 배반背反하고 에 붙었으나, 또 적인狄人과 사이가 좋지 못하여 나라로 도망가니,注+이 일은 희공僖公 10년에 있었다. 양왕襄王진문공晉文公위로慰勞하기 위해 이 나라에 주었다.注+이 일은 희공僖公 25년에 있었다.
狐氏陽氏先處之注+狐溱陽處父先食溫地 하고 而後及子하니 若治其故 則王官之邑也注+[附注] 林曰 若欲治其故舊所有 則溫舊爲王官之邑
호씨狐氏양씨陽氏가 이곳에 먼저 거주居住하였고,注+호진狐溱양처보陽處父가 먼저 온읍溫邑채지采地로 받아 그곳의 조세租稅를 받아먹었다는 말이다. 뒤에 그대 일족一族에게 미친 것이니, 만약 그곳의 옛 주인主人을 말한다면[治]주왕周王임명任命관원官員[王官]의 이다.注+[부주]林: 만약 옛날의 소유자所有者를 말한다면 은 옛날에 주왕周王임명任命관원官員이라는 말이다.
子安得之리오
그대가 어찌 차지할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晉侯使郤至勿敢爭注+傳言郤至貪 所以亡 하다
그러자 진후晉侯극지郤至에게 쟁송爭訟하지 말도록 하였다.注+전문傳文극지郤至탐욕貪慾멸망滅亡하게 된 원인임을 말한 것이다.
[傳]宋華元善於令尹子重하고 又善於欒武子하다
나라 화원華元나라 영윤令尹자중子重과도 사이가 좋고, 나라 난무자欒武子와도 사이가 좋았다.
聞楚人旣許晉糴茷成하고 而使歸復命矣注+在往年 [附注] 林曰 晉糴茷前年如楚 楚旣許成 하다
화원華元초인楚人이 이미 적패糴茷화의和議허락許諾하고서 적패糴茷에게 돌아가서 복명復命하게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注+적패糴茷나라에 간 것은 전년前年에 있었다. [부주]林: 나라 적패糴茷전년前年나라에 갔을 때 나라는 이미 화평和平허락許諾하였다.
華元如楚라가 遂如晉하야 合晉楚之成注+爲明年盟宋西門外張本 하다
그러므로 겨울에 나라에 갔다가 드디어 나라로 가서 나라와 나라의 우호友好[成]를 체결締結[合]시켰다.注+명년明年나라 서문西門 밖에서 결맹結盟장본張本이다.
[傳]秦晉爲成注+[附注] 林曰 秦晉交兵不和 至是爲平 하야 將會于令狐하다
나라가 나라와 화평和平하기 위해注+[부주]林: 나라와 나라는 교전交戰으로 인해 불화不和하다가 이때에 와서 화친和親한 것이다.영호令狐에서 회합會合하기로 하였다.
晉侯先至焉하니 秦伯不肯涉河注+[附注] 林曰 秦桓公見晉侯先至 遂懷疑 不肯涉河 하고 次于王城하야 使史顆盟晉侯于河東注+史顆 秦大夫 하다
진후晉侯가 먼저 영호令狐에 도착하자, 진백秦伯황하黃河를 건너려 하지 않고注+[부주]林: 진환공秦桓公진후晉侯가 먼저 이른 것을 보고서 드디어 의심이 생겨 황하黃河를 건너려 하지 않은 것이다. 왕성王城에 머물러 있으면서 사과史顆하동河東으로 보내어 진후晉侯결맹結盟하게 하였다.注+사과史顆나라 대부大夫이다.
晉郤犫盟秦伯于河西注+就盟王城하다
나라 극주郤犫하서河西로 가서 진백秦伯결맹結盟하였다.注+왕성王城으로 가서 결맹結盟한 것이다.
范文子曰 是盟也何益이리오
범문자范文子가 말하기를, “이런 결맹結盟이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
齊盟 所以質信也注+齊 一心 質 成也 會所 注+[附注] 林曰 所 地也 言約會之所 乃二國質信之始 어늘 始之不從하니質乎
재계齋戒하고서 결맹結盟하는 것은 약정約定을 성실히 지키겠다는 보증保證[質]이고,注+일심一心이고, 이다. 회맹會盟장소場所약정約定하는 것은 신의信義실천實踐하는 시작인데,注+[부주]林: 장소場所이다. 회맹會盟장소場所약정約定하는 것이 바로 두 나라가 신의信義성취成就하는 시작이라는 말이다. 시작부터 약정約定을 따르지 않았으니, 어찌 신의信義보증保證할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秦伯歸而背晉成注+爲十三年伐秦傳 하다
과연 진백秦伯은 돌아간 뒤에 나라와 맺은 화친和親[成]을 배반背反하였다.注+성공成公 13년에 나라가 나라를 토벌討伐배경背景이다.
역주
역주1 涖盟 : 涖盟은 相對國에 가서 結盟하는 것이다. 涖는 位이다. 我國이 相對國과 協商해 結盟하기로 決定한 뒤에 我國이 相對國에 大夫를 보내어 結盟하는 것을 ‘涖盟’이라 하고, 相對國이 我國과 協商해 結盟하기로 決定한 뒤에 相對國이 我國에 大夫를 보내어 와서 結盟하는 것을 ‘來盟’이라 한다. 兩者의 協商으로 盟約의 條件이 이미 決定되었기 때문에 단지 協商代表의 자리(位)로 가서 盟約을 맺을 뿐이다. 〈穀梁傳僖公 3년 傳〉
역주2 聲伯之母不聘 : 《禮記》 〈內則〉에 “聘(男子 쪽에서 女子 쪽에 媒妁을 보내어 閨秀의 이름과 生年月日을 묻고서 定婚함)하면 妻가 되고, 奔(婚禮를 擧行하지 않고서 여자가 스스로 남자에게 감)하면 妾이 된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下文에 穆姜이 그를 ‘妾’이라고 한 것이다. 〈楊注〉
역주3 媒禮 : 남자 쪽에서 媒人을 보내어 婚姻을 請하고서 納采, 問名, 納吉, 納徵, 請期, 親迎 등의 六禮를 擧行하는 것.
역주4 二[之] : 저본에는 ‘二’로 되어 있으나 《四庫全書左傳杜林合注》本에 의거하여 ‘之’로 바로잡았다.
역주5 施孝叔 : 魯惠公의 아들 施父의 四世孫이기 때문에 施를 氏로 삼은 것이다.
역주6 郤犫文子交盟魯晉之君……擧重略輕 : 杜注의 理解를 돕기 위해 〈疏〉를 紹介한다. 晉臣이 魯나라에 와서 結盟한 것과 魯臣이 晉나라에 가서 結盟한 것은 모두 서로의 要求에 의한 것이니, 그 뜻이 같다. 뜻이 이미 같다면 하나(郤犫가 온 것)를 기록해 둘(文子가 간 것)을 包含시키되, 重한 것을 들고 輕한 것을 省略하는 것은 마땅하다. 使臣을 보내는 것은 輕한 일이고 임금이 친히 結盟하는 것은 重한 일이기 때문에 郤犫에 대해서는 ‘聘’과 ‘盟’을 기록하고, 文子에 대해서는 ‘如晉’만을 기록하고 그 ‘聘’은 省約한 것이다.
역주7 鞍戰 : 成公 2년 傳에 자세히 보인다.
역주8 : 溫은 郤氏의 采邑이다. 그러므로 成公 16년과 17년 傳에 郤至를 溫季로 稱한 것이다. 郤至는 溫은 본래 郤氏의 所有이고, 鄇는 溫의 別邑이니, 응당 자기에게 歸屬해야 한다고 여긴 것이다. 〈楊注〉
역주9 齊盟……信之始也 : 杜注를 따르면 “兩國이 一心으로 盟約하는 것은 信義를 成就하기 위함이고, 會合할 場所를 定하는 것은 信義를 行하는 시작이다.”로 飜譯되어야 한다. 그러나 譯者는 〈楊注〉의 “齊는 齋戒의 齊이다. 옛 사람들은 盟誓할 때 반드시 먼저 齋戒하였기 때문에 盟誓를 ‘齊盟’이라고도 하였다.”고 한 說과, 《漢語大詞典》의 ‘質信은 誠實을 保證함’이라고 한 解釋을 取하여 이상과 같이 飜譯하였다.
역주10 〈可〉 : 저본에는 ‘可’자가 없으나 《十三經注疏》本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

춘추좌씨전(3) 책은 2019.05.2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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