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春秋左氏傳(1)

춘추좌씨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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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좌씨전(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經]五年春正月甲戌己丑 陳侯鮑 卒注+未同盟而書名者 來赴以名故也 甲戌 前年 十二月 二十一日 己丑 此年 正月六日 陳亂 故再赴 赴雖日異 而皆以正月起文 故但書正月 故從赴兩書하다
환공 5년 봄 정월 갑술일‧기축일에 진후陳侯하였다.注+동맹국同盟國이 아닌데도 이름을 기록한 것은 이름을 기록해 부고赴告하였기 때문이다. 갑술일은 전년前年 12월 21일이고, 기축일은 금년今年정월正月 6일이다. 나라에 난리가 나서 혼란하였기 때문에 부고를 두 차례 보낸 것이다. 부고에 날짜는 비록 다르지만 모두 정월正月로 글을 일으켰기 때문에 정월正月만을 기록한 것이고, 의심스러운 일을 신중愼重히 기록하려 하였기 때문에 보내온 부고에 적힌 대로 양일兩日을 모두 기록한 것이다.
[經]夏 齊侯鄭伯如紀注+外相朝 皆言如 齊欲滅紀 故書하다
여름에 제후齊侯정백鄭伯나라에 갔다.注+외국外國으로 조현朝見하러 가는 것을 모두 ‘’라 한다. 나라가 격멸擊滅하려 하니, 기인紀人이 두려워서 나라에 와서 고하였다. 그러므로 기록한 것이다.
[經]天王使仍叔之子來聘注+仍叔 天子之大夫 稱仍叔之子 本於父字 幼弱之辭也 譏使童子出聘하다
천왕天王잉숙仍叔의 아들을 나라에 사신으로 보내 와서 빙문聘問하였다.注+잉숙仍叔천자天子대부大夫이다. 잉숙仍叔의 아들이라고 칭한 것은 아비의 밑에 아들이라고 붙여 어린 것을 나타낸 말이니, 동자童子를 보내어 빙문하게 한 것을 비난한 것이다.
[經]葬陳桓公注+無傳하다
진환공陳桓公을 장사 지냈다.注+이 없다.
[經]城祝丘注+無傳 齊鄭將襲紀故하다
축구祝丘을 쌓았다.注+이 없다. 를 습격하려 하였기 때문이다.
[經]秋 蔡人衛人陳人從王伐鄭注+王自爲伐鄭之主 不書 不以告 [附注] 林曰 自伐鄭無功而後 王命始不行於天下하다
가을에 채인蔡人위인衛人진인陳人주왕周王을 따라 나라를 정벌하였다.注+주왕周王이 스스로 나라를 치는 주장主將이 되었으니, 군신君臣 사이의 말이다. 주왕周王의 군대가 패전敗戰한 것을 기록하지 않은 것은 노나라에 통고하지 않았기 때문이다.[부주]林: 나라 정벌에서 전공戰功을 세우지 못한 뒤로 주왕周王천하天下에 행해지지 않기 시작하였다.
[經]大雩注+傳例曰 書 不時也 失龍見之時 [附注] 林曰 書大雩之始하다
우제虞祭를 지냈다.注+전례傳例에 “기록한 것은 때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니, 이 나타나는 때를 어긴 것이다.”고 하였다.[부주]林: 이것이 를 기록한 처음이다.
[經]螽注+無傳 蚣蝑之屬爲災 故書하다
메뚜기의 재해災害발생發生하였다.注+이 없다. 공서蚣蝑(공서 : 여치과에 속하는 곤충) 등이 재해災害를 입혔기 때문에 기록한 것이다.
[經]冬 州公如曹注+不書奔 以朝出也 爲下實來書也 曹國 今濟陰定陶縣하다
겨울에 주공州公나라로 가서 조현朝見하였다.注+’이라고 기록하지 않은 것은 조현朝見하기 위해 나갔기 때문이다. 아래 글에 ‘실래實來’라고 기록한 장본張本이 되었다. 조국曹國은 지금의 제음濟陰정도현定陶縣이다.
[傳]五年春正月甲戌己丑 陳侯鮑卒하니 再赴也
5년 봄 정월 갑술일‧기축일에 진후陳侯하였으니, 양일兩日을 기록한 것은 두 차례 부고하였기 때문이다.
於是陳亂하여 文公子佗殺大子免而代之注+佗 桓公弟五父也 稱文公子 明佗非桓公母弟也 免 桓公太子하다
이때에 나라에 난리가 나서 문공文公의 아들 태자太子을 죽이고 대신 임금이 되었다.注+진환공陳桓公의 아우 오보五父이다. 문공文公의 아들이라고 칭하여 환공桓公모제母弟가 아님을 밝혔다. 진환공陳桓公태자太子이다.
公疾病而亂作하니 國人分散이라
진환공陳桓公위중危重할 때 난리가 일어나니 국인國人이 사방으로 분산分散하였다.
故再赴하다
그러므로 부고를 재차 보낸 것이다.
[傳]夏 齊侯鄭伯朝于紀하야 欲以襲之하니 紀人知之注+[附注] 林曰 假朝禮 將以襲紀 紀人知其詐하다
여름에 제후齊侯정백鄭伯나라로 가서 조현朝見하고 기회를 보아 를 습격하려 하니, 기인紀人이 그 계획을 알아차렸다.注+[부주]林: 조현朝見가탁假托하여 를 습격하려 하니, 기인紀人이 그 속임수를 알아차린 것이다.
[傳]王奪鄭伯政하니 鄭伯不朝注+奪不使知王政 [附注] 朱曰 隱年 隱公三年 周人將畀虢公政 八年虢公作卿士于周 至是 王盡以政與虢 不使莊公復知王政 莊公積恨 不復朝桓王하다
주왕周王정백鄭伯에게 맡겼던 정권政權을 빼앗으니 정백鄭伯조근朝覲하지 않았다.注+맡겼던 정권政權을 빼앗아 왕실王室의 정치를 맡지 못하게 한 것이다.[부주]朱: 노은공魯隱公 3년에 주인周人괵공虢公에게 정권의 일부를 맡겨 주려 하였고, 은공隱公 8년에 괵공虢公주왕실周王室경사卿士로 삼았는데, 이때에 와서 주왕周王이 정백에게 맡겼던 정권을 빼앗아 다 괵공에게 주고, 정장공鄭莊公에게 다시는 왕실王室의 정치를 맡지 못하게 하니, 정장공은 원한怨恨이 쌓여 다시는 환왕桓王에게 조근朝覲하지 않았다.
王以諸侯伐鄭하니 鄭伯禦之하다
가을에 주왕周王제후諸侯를 거느리고 정나라를 정벌하니 정백鄭伯방어防禦하였다.
王爲中軍하고 虢公林父將右軍하니 蔡人衛人屬焉注+虢公林父 王卿士하고 周公黑肩將左軍하니 陳人屬焉注+黑肩 周桓公也하다
주왕周王중군中軍을 거느리고, 괵공虢公임보林父우군右軍을 거느리니 채인蔡人위인衛人이 이에 예속되고,注+괵공虢公임보林父주왕周王경사卿士이다. 주공周公흑견黑肩좌군左軍을 거느리니 진인陳人이 이에 예속되었다.注+흑견黑肩주환공周桓公이다.
鄭子元請爲左拒하야 以當蔡人衛人注+子元 鄭公子 拒 方陳 [附注] 林曰 請爲左軍結方陳하고 爲右拒하야 以當陳人曰
자원子元좌거左拒를 만들어 채인蔡人위인衛人대항對抗하고,注+자원子元공자公子이다. 방진方陳이다.[부주]林: 좌군左軍으로 방진方陳을 만들기를 청한 것이다.우거右拒를 만들어 진인陳人을 대항하기를 청하며 말하기를
陳亂하야 民莫有鬪心하니 若先犯之 必奔이오 王卒顧之 必亂注+[附注] 林曰 顧見陳奔 必驚而亂하리라 蔡衛不枝 固將先奔注+不能相枝持也 [附注] 林曰 蔡衛固將先王卒而奔敗하리니
나라는 동란動亂 중이어서 백성들에게 투지鬪志가 없으니, 만일 먼저 진인陳人을 공격한다면 반드시 도망갈 것이고, 주왕周王의 군대가 이들이 도망하는 것을 보면 반드시 혼란해 질 것이고,注+[부주]林: 진인陳人이 도망하는 것을 보면 반드시 놀라 혼란해진다는 말이다. 채인蔡人위인衛人도 지탱할 수 없어서 먼저 도망가려 할 것입니다.注+서로 지원支援할 수 없다는 말이다.[부주]林: 채인蔡人위인衛人주왕周王의 군대보다 먼저 패배해 도망갈 것이라는 말이다.
旣而萃於王卒이면可以集事라한대 從之注+萃 聚也 集 成也하다
그런 뒤에 주왕周王의 군대를 집중적으로 공격하면 성공할 수 있습니다.” 라고 하니, 정백鄭伯이 이 말을 따랐다.注+는 모이는 것이고, 은 이루는 것이다.
[傳]曼伯注+曼伯 檀伯爲右拒하고 祭仲足爲左拒하고 原繁高渠彌以中軍奉公하야 爲魚麗之陳하야 先偏後伍하고 伍承彌縫注+司馬法 車戰二十五乘爲偏 以車居前 以伍次之 承偏之隙而彌縫闕漏也 五人爲伍 此蓋魚麗陣法하야
만백曼伯注+만백曼伯단백檀伯이다.우거右拒을 맡고 채중족祭仲足좌거左拒을 맡고, 원번原繁고거미高渠彌중군장中軍將으로 정장공鄭莊公호위護衛하고서 어리진魚麗陳을 만들어 을 앞에, 를 뒤에 배치하여 의 빈 틈을 미봉彌縫하게 하였다.注+사마법司馬法에 “차전車戰에는 25을 한 편대偏隊로 만들어 수레를 앞에, 를 뒤에 배치하여 편대와 편대 사이에 공간空間이 생기면 가 뒤따라가며 그 공간空間미봉彌縫한다.”고 하였다. 5인으로 구성된 부대部隊를 ‘’라 한다. 이것이 아마도 어리魚麗진법陣法인 듯하다.
戰于繻葛注+繻葛 鄭地할새 命二拒曰 旝動而鼓注+旝 旃也 通帛爲之 蓋今大將之麾也 執以爲號令하라
그리고서 수갈繻葛에서 전투할 때注+수갈繻葛나라 땅이다.좌우左右양거兩拒에 명하기를 “가 움직이거든 진격進擊의 북을 치라.注+이니 통폭의 비단으로 만든 것이다. 오늘날 대장大將지휘기指揮旗와 같은 것인 듯하다. 이 를 들고서 호령號令한 것이다.”고 하였다.
蔡衛陳皆奔하니 王卒亂이어늘
과연 채인蔡人위인衛人진인陳人이 모두 도망가니, 주왕의 군대가 혼란하였다.
鄭師合以攻之한대 王卒大敗하다
정나라 군대가 합세하여 주왕의 군대를 공격하니 주왕의 군대가 대패大敗하였다.
祝聃射王中肩이로되 王亦能軍注+雖軍敗身傷 猶殿而不奔 故言能軍이라 祝聘請從之注+[附注] 朱曰 欲追王也한대
축담祝聃이 주왕에게 활을 쏘아 어깨에 부상을 입혔으나, 주왕 또한 군대를 잘 지휘하였다.注+비록 전쟁에 패배하고 부상負傷을 입었으나 그래도 군대의 후미後尾에서 지휘하며 도망하지 않았기 때문에 ‘능군能軍’이라 한 것이다. 축담이 추격하기를 청하니,注+[부주]朱: 주왕周王추격追擊하고자 한 것이다.
公曰 君子不欲多上人이온 況敢陵天子乎
정장공鄭莊公은 “군자는 남보다 올라가기를 바라지 않는 것이데, 하물며 감히 천자를 능멸할 수 있겠는가.
苟自救也하야 社稷無隕이면 多矣注+鄭於此收兵自退라하고
가령 스스로를 구제하여 나라가 망하지 않는다면 이것으로 만족한다.注+나라는 이때 군대를 철수해 스스로 물러갔다.”고 하였다.
鄭伯使祭足勞王하고 且問左右注+祭足 卽祭仲之字 蓋名仲 字仲足也 勞王 問左右 言鄭志在苟免 王討之非也 [附注] 朱曰 愚按 莊公以不朝見討 不知服罪請命 敢抗王師 至於射王中肩 其無君不道 甚矣 杜註 乃謂鄭志在苟免 王討之非也 毋乃未之思歟하다
밤에 정백이 채족祭足을 보내 주왕周王을 위로하고 또 그 좌우左右에게도 문후問候하게 하였다.注+채족祭足은 바로 채중祭仲이니, 이름이 이고 중족仲足인 듯하다. 주왕周王을 위로하고 그 좌우에게도 문후問候하게 한 것으로 보아 정백의 뜻이 화란禍亂을 면하고자 하는 데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주왕이 그를 친 것은 잘못이다.[부주]朱: 나는 고찰하건대, 장공莊公조현朝見하지 않은 죄로 토벌을 당하고도 승복承服하여 용서의 명을 청할 줄을 모르고, 감히 천왕天王의 군대에 대항對抗하여 천왕에게 활을 쏘아 어깨에 부상을 입히기까지 하였으니, 임금을 무시하고 도리道理를 무시함이 심하였다. 그런데도 두주杜注에 “정장공鄭莊公의 뜻은 화란禍亂을 면하고자 하는 데 있었는데, 주왕周王이 그를 친 것은 잘못이다.”고 하였으니, 생각이 깊지 못한 말이 아닌가?
[傳]仍叔之子 弱也注+仍叔之子來聘 童子將命 無速反之心 久留在魯 故經書夏聘 傳釋之於末秋
잉숙仍叔의 아들이라고 한 것은 어렸기 때문이다.注+잉숙仍叔의 아들이 와서 빙문聘問하였다는 것은, 동자童子사명使命을 받들고 와서 속히 돌아가려는 마음이 없어서 나라에 오래 체류滯留하였다. 그러므로 에 “여름에 와서 빙문聘問하였다.”라고 한 것을 에서 계추季秋로 해석한 것이다.
[傳]秋하니 不時也注+十二公傳 唯此年 及襄二十六年 有兩秋 此發雩祭之例 欲顯天時以事 故重言秋 異於凡事
가을에 우제雩祭를 지냈으니 기록한 것은 때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注+춘추春秋》의 12 가운데 오직 이해와 양공襄公 26년에만 ‘’가 두 번 보이는데, 이는 우제雩祭를 드러내고, 천시天時를 밝혀 일의 태만을 지적하고자 한 것이다. 그러므로 를 거듭 말하여 보통 일과 달리 기록한 것이다.
凡祀 啓蟄而郊注+言凡祀 通下三句天地宗廟之事也 啓蟄 夏正建寅之月 祀天南郊하며 龍見而雩注+龍見 建巳之月 蒼龍 宿之體 昏見東方 萬物始盛 待雨而大 故祭天 遠爲百穀祈膏雨하며 始殺而嘗注+建酉之月 陰氣始殺 嘉穀始熟 故薦嘗於宗廟하며 閉蟄而烝注+建亥之月 昆虫閉戶 萬物皆成 可薦者衆 故烝祭宗廟 釋例 論之備也하나니
제사는 경칩驚蟄이 되면 교제郊祭를 지내고注+모든 제사는 하문下文의 세 에서 말한 천지天地종묘宗廟의 제사를 통틀어 말한 것이다. 계칩啓蟄하정夏正건인지월建寅之月(正月)이니 이때 남교南郊에서 하늘에 제사를 지낸다. 창룡성蒼龍星이 나타나면 우제雩祭를 지내고,注+창룡성蒼龍星이 나타나는 것은 하정夏正건사지월建巳之月(4월)이다. 창룡성은 성수星宿집합체集合體인데, 초혼初昏동방東方에 나타난다. 이때에는 만물이 무성해지기 시작하지만 비가 와야 자란다. 그러므로 하늘에 제사를 지내어 풍년을 바라는 심원深遠한 마음으로 백곡百穀을 위해 비를 비는 것이다. 가을의 쌀쌀한 기운이 비로소 일어나면 상제嘗祭를 지내고,注+건유지월建酉之月(8월)에는 음기陰氣가 비로소 쌀쌀해지고 가곡嘉穀이 비로소 익는다. 그러므로 종묘宗廟신곡新穀을 맛보게 하는 상제嘗祭를 지내는 것이다. 벌레가 땅 속으로 들어가면 증제烝祭를 지낸다.注+건해지월建亥之月(10월)에는 곤충昆蟲폐호閉戶(冬眠하기 위해 땅속으로 들어감)하고 만물이 모두 성숙成熟하므로 올릴 만한 제물祭物이 많다. 그러므로 종묘에 증제烝祭를 지낸다. 《석례釋例》에 자세히 논하였다.
過則書注+卜日有吉否 過次節 則書以譏慢也니라
그런데 만약 이 시기가 지난 뒤에 우제를 지내면 기록한다.注+점을 쳐서 제삿날을 정하는데, 날을 점치면 길일吉日도 있고 흉일凶日도 있다. 날이 불길하다 하여 다음 달의 절기節期로 넘겨 제사를 지내면 기록하여 태만함을 나무란다.
[傳]冬 淳于公如曹하야 度其國危하고 遂不復注+淳于 州國所都 城陽淳于縣也 國有危難 不能自安 故出朝而遂不還하다
겨울에 순우공淳于公나라로 가서 조현朝見하고는 자기 나라가 위태로워질 것을 헤아리고서 드디어 돌아가지 않았다.注+순우淳于주국州國수도首都성양城陽순우현淳于縣이다. 주국州國에 위험한 화난禍難이 있어 스스로 안정할 수 없기 때문에 조현朝見하러 나갔다가 드디어 환국還國하지 않은 것이다.
역주
역주1 愼疑審事 : 愼審疑事의 倒置句로 疑事를 愼審한다는 말인데, 愼審은 愼重의 뜻이다. 이에 대해 朝鮮의 徐壽錫은 “갑술 밑에 陳佗가 亂을 일으킨 일에 대한 기록이 있어야 하는데, 全簡이 떨어져 나갔다. 三傳에는 모두 闕疑(의심스러운 것은 제쳐둠)의 도리를 講究하지 않고, 가당치도 않는 말을 억지로 끌어다가 말을 만들어 原義를 歪曲한 것이 이에 이르렀으니, 매우 怪異하다.”라고 하였고 《潁水全集》, 楊伯峻은 “《公羊傳》에는 ‘陳侯가 갑술일에 宮에서 없어졌고, 기축일에 그 屍身을 찾았으니, 그 死亡日을 정확히 알 수 없었다. 그러므로 兩日에 卒하였다고 한 것이다.’라고 하였고, 《穀梁傳》에는 ‘진후가 갑술일에 出宮하였고, 기축일에 屍身을 찾았으니, 그 사망일을 알 수 없었다. 그러므로 兩日을 들어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두 傳의 뜻을 미루어 보면 精神病을 앓고 있는 陳桓公이 갑술일에 혼자서 도망갔다가 16일이 지난 기축일에 그 屍身이 발견되었으니, 그 죽은 날을 정확히 알 수 없기 때문에 兩日을 들어 말한 것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再赴한 것이다.’는 左氏의 說이 비교적 準信할 만하다.”라고 하였다. 《春秋左傳注》
역주2 紀人懼而來告 : 朝鮮李惟樟의 《春秋輯註》에는 “齊와 鄭이 紀에 가서 朝見한 것은 기회를 보아 紀國을 습격하려는 의도였는데 紀人이 그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齊는 諸侯로서 이웃 나라를 해치려 하였으니 不道함이 매우 심하였다. 그런데 鄭伯은 그를 도왔으니, 그 罪가 같다.”고 하였다.
역주3 君臣之辭 : 周王이 主將이 되었기 때문에 蔡‧衛‧陳의 임금을 ‘人’이라 칭한 것이니, 이는 君臣 사이의 位階를 규정한 말이라는 뜻이다.
역주4 王師敗 : 楊伯峻의 《春秋左傳注》에 “《詩經王風兎爰序》에 ‘桓王이 信義를 잃으니 제후들이 王을 배반하여 서로 원한을 맺고 禍亂이 계속되었으므로 王師가 傷敗(敗戰)한 것이다.’고 하였는데, 《詩經》에 ‘傷敗’라고 말한 것은 아마도 이 전쟁에서의 실패를 이른 듯하다. 春秋 때에 天子의 親征은 오직 이 전쟁 한 번뿐이었다.”고 하였다.
역주5 蒼龍星 : 二十八宿 가운데 東方七宿의 총칭이다.
역주6 : 대본에는 ‘雱’으로 되어 있으나 《十三經注疏》本에 의거하여 ‘雩’로 바로잡았다.
역주7 : 대본에는 ‘指’로 되어 있으나 《十三經注疏》本에 의거하여 ‘相’으로 바로잡았다.

춘추좌씨전(1) 책은 2019.05.2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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