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春秋左氏傳(7)

춘추좌씨전(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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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좌씨전(7)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經]元年春 王注+公之始年 而不書正月 公卽位在六月故三月 晉人執宋仲幾于京師注+晉執人于天子之側 而不以歸京師 故但書其執 不書所歸 [附注] 林曰 大夫專執 於是始하다
원년元年주왕周王注+정공定公의 첫해인데도 정월正月이라고 기록하지 않은 것은 정공定公즉위卽位가 6월에 있었기 때문이다. 3월에 진인晉人경사京師에서 나라 중기仲幾체포逮捕하였다.注+나라가 천자天子의 곁에서 사람을 체포하고서도 〈그 사람을〉 경사京師로 보내지 않았다. 그러므로 다만 체포한 것만을 기록하고 보낸 곳은 기록하지 않은 것이다. [부주]林: 대부大夫가 멋대로 사람을 체포하는 것이 이때부터 비롯하였다.
[經]夏六月癸亥 公之喪至自乾侯注+告於廟 故書至하다
여름 6월 계해일癸亥日소공昭公상구喪柩건후乾侯에서 돌아왔다.注+종묘宗廟하였기 때문에 ‘’라고 기록한 것이다.
[經]戊辰 公卽位注+定公不得以正月卽位 失其時 故詳而日之 記事之宜 無義例하다
무신일戊辰日정공定公즉위卽位하였다.注+정공定公정월正月즉위卽位하지 않았으니 그 시기時期를 잃은 것이다. 그러므로 그 날짜를 상세히 기록한 것이다. 대사大事를 기록하는 도리道理일 뿐이고 〈날짜를 기록하는〉 의례義例는 없다.
[經]秋七月癸巳 葬我君昭公注+公在外薨 故八月乃葬하다
가을 7월 계사일癸巳日에 우리 임금 소공昭公을 장사 지냈다.注+소공昭公외국外國에서 하였기 때문에 여덟 달 만에 장사 지낸 것이다.
[經]九月 大雩注+無傳 하다
9월에 우제雩祭(祈雨祭)를 지냈다.注+이 없다. 때가 지난 것이다.
[經]立煬宮注+煬公 伯禽子也 其廟已毁 季氏禱之 而立其宮 書以譏之하다
양궁煬宮(煬公의 사당祠堂)을 세웠다.注+양공煬公백금伯禽의 아들이다. 그 를 이미 훼철毁撤하였는데, 계씨季氏양공煬公에게 기도祈禱하고서 그 를 세웠으므로 이를 기록하여 비난한 것이다.
[經]冬十月 隕霜殺菽注+無傳 周十月今八月 隕霜殺菽 非常之災하다
겨울 10월에 서리가 내려 콩잎을 죽였다.注+이 없다. 주정周正의 10월은 지금의 8월이다. 〈8월에〉 서리가 내려 콩잎을 죽인 것은 예사롭지 않은 천재天災이다.
[傳]元年春王正月辛巳 晉魏舒合諸侯之大夫于狄泉하니 將以城成周
원년元年주왕周王정월正月신사일辛巳日나라 위서魏舒적천狄泉에서 제후諸侯대부大夫들과 회합會合하였으니, 이는 성주成周수축修築하기 위해서였다.
魏子涖政注+涖 臨也 代天子大夫爲政하다
위자魏子천자天子대부大夫를 대신해 그 정무政務(築城에 관한 일)를 처리하였다.注+이니, 천자天子대부大夫를 대신하여 정사政事를 처리한 것이다.
衛彪傒注+衛大夫曰 將建天子注+立天子之居하니 非義也注+[附注] 林曰 以晉大夫 代周大夫爲政 是易位以號令諸侯
나라 표혜彪傒注+표혜彪傒나라 대부大夫이다. 말하기를 “천자天子를 위하여 성장城牆건조建造하려 하면서注+천자天子거처居處을 세운 것이다. 자기의 지위地位를 넘어 명령을 내렸으니 이는 도의道義가 아니다.注+[부주]林: 나라 대부大夫로서 나라 대부大夫를 대신하여 정사政事를 처리하였으니, 이것이 바로 위치를 넘어 제후諸侯호령號令한 것이다.
大事奸義하니 必有大咎注+[附注] 林曰 爲大事而奸犯君臣大義리라
중대한 일에 도의를 범하였으니, 반드시 큰 가 있을 것이다.注+[부주]林: 중대한 일을 하면서 군신君臣대의大義를 범하였다는 말이다.
晉不失諸侯 魏子其不免乎注+[附注] 林曰 晉若不失諸侯 墮其霸業 魏舒其必不免於禍ᄂ저
나라가 제후諸侯를 잃지 않는다면 위자魏子가 아마도 화를 면하지 못할 것이다.注+[부주]林: 나라가 만약 제후諸侯를 잃어 그 패업霸業쇠퇴衰頹[墮]하지 않는다면 위서魏舒는 아마도 를 면하지 못할 것이라는 말이다. ”고 하였다.
是行也 魏獻子屬役於韓簡子及原壽過注+簡子 韓起孫不信也 原壽過 周大夫 하고 而田於大陸하야 焚焉注+禹貢 大陸 在鉅鹿北 嫌絶遠 疑此田在汲郡吳澤荒蕪之地 火田 幷見燒也 爾雅 廣平曰陸하다
이번 걸음에 위헌자魏獻子축성築城의 일을 한간자韓簡子원수과原壽過에게 맡기고서注+간자簡子한기韓起의 손자 불신不信이고, 원수과原壽過나라 대부大夫이다. , 자기는 대륙大陸으로 가서 사냥을 하면서 불을 놓아 짐승을 잡았다.注+우공禹貢〉에 의거하면 대륙大陸거록鉅鹿 북쪽에 있다. 매우 머니 아마도 이 사냥은 급군汲郡오택吳澤황무지荒蕪地에서 한 듯하다. 불을 놓아 사냥하면[火田] 모든 것이 불태워짐을 당한다. 《이아爾雅》에 “광대廣大평원平原을 ‘’이라 한다.”고 하였다.
타가 卒於寗注+寗 今修武縣 近吳澤하다
사냥을 마치고 돌아오다가 에서 죽었다.注+은 지금의 수무현修武縣으로 오택吳澤에서 가깝다.
范獻子去其하니 以其未復命而田也注+范獻子代魏子爲政 去其柏椁 示貶之ᄅ새니라
〈그를 장사 지낼 때〉 범헌자范獻子가 측백나무로 만든 그의 외곽外椁제거除去하였으니, 이는 그가 복명復命도 하지 않고서 사냥하였기 때문이다.注+범헌자范獻子위자魏子의 뒤를 이어 집정執政이 되어, 위자魏子백곽柏椁을 제거하여 폄하貶下의 뜻을 보인 것이다.
孟懿子會城成周注+不書公 未卽位 [附注] 林曰 孟懿子 卽仲孫何忌하야 庚寅注+栽 設하다
나라는〉 맹의자孟懿子가 〈역도役徒을 거느리고 가서〉 성주成周에 성을 쌓는 일에 참가하여注+을 기록하지 않은 것은 아직 즉위卽位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부주]林: 맹의자孟懿子는 바로 중손하기仲孫何忌이다. 경인일庚寅日판축板築을 설치하였다.注+판축板築설치設置함이다.
宋仲幾不受功曰 滕薛郳 吾役也注+欲使三國代宋受功役也 郳 小邾 薛宰注+[附注] 林曰 薛大夫 曰 宋爲無道하야 絶我小國於周하야 以我適楚
나라 중기仲幾할당割當공정功程을 받아들이지 않으며 말하기를 “나라, 나라, 나라에서 온 역도役徒는 우리 나라를 대신해 온 역도役徒입니다.注+세 나라로 하여금 나라를 대신해 공역功役을 받게 하고자 한 것이다. 소주小邾이다.”고 하자, 나라의 재신宰臣(宰相)이注+[부주]林: 나라 대부大夫이다. 말하기를 “나라가 무도無道하여 우리 소국小國들을 나라와 관계를 단절시키고 나라를 따르게[適] 하였습니다.
故我常從宋하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나라에 복종하였습니다.
晉文公爲踐土之盟注+在僖二十八年曰 凡我同盟 各復舊職하라하니 하리라
그런데 진문공晉文公천토踐土에서 회맹會盟할 때注+희공僖公 28년에 있었다. ‘우리 동맹국同盟國들은 각각 옛 직위職位를 회복하라.’고 하였으니, 혹은 천토踐土맹약盟約을 따를 것인지, 혹은 나라를 따를 건인지는 나라가 하는 대로 따르겠습니다.”고 하였다.
仲幾曰 踐土固然注+固曰從舊 薛舊爲宋役이라
중기仲幾가 말하기를 “천토踐土회맹會盟에서 약정約定한 것은 본래 그대 나라가 우리 나라에 복속服屬하는 것이었소.注+굳이 옛 직위職位를 따르겠다고 한다면 나라의 옛 직위는 나라의 복역僕役이었다는 말이다. ”라고 하니,
薛宰曰 薛之皇祖奚仲居薛하야 以爲夏車正注+皇 大也 奚仲爲夏禹掌車服大夫하고 奚仲遷于邳注+邳 下邳縣 仲虺居薛하야 以爲湯左相注+仲虺 奚仲之後 [附注] 林曰 當如奚仲仲虺 奉天子爲王官하니
나라 재신宰臣이 말하기를 “나라의 황조皇祖해중奚仲께서 에 사시면서 나라의 거정車正이 되셨고注+이다. 해중奚仲하우夏禹거복車服을 맡은 대부大夫였다. , 해중奚仲로 옮겨가신 뒤에注+하비현下邳縣이다. 중훼仲虺에 사시면서 탕왕湯王좌상左相이 되셨으니注+중훼仲虺해중奚仲후예後裔이다. [부주]林: 해중奚仲중훼仲虺처럼 천자天子를 받드는 왕조王朝관원官員이 되어야 마땅하다는 말이다. ,
若復舊職이면 注+承 奉也리오
만약 옛 직위職位로 회복한다면 우리 나라는 왕조王朝관직官職을 받는 것이 마땅[將]한데, 무엇 때문에 제후諸侯에게 복역服役하겠습니까?注+(받듦)이다. ”라고 하였다.
仲幾曰 三代各異物하니 薛焉得有舊注+言居周世 不得以夏殷爲舊 [附注] 林曰 言夏殷周三代 物事各有不同리오
중기仲幾가 말하기를 “삼대三代는 각각 사정事情[物]이 다르니 나라가 어찌 〈시대時代에 지낸 관직官職을 가지고〉 구직舊職이라 할 수 있겠소.注+나라 시대時代에 살면서 나라와 나라 때에 지낸 직위職位구직舊職으로 삼을 수 없다는 말이다. [부주]林: , , 삼대三代물사物事(事情)는 각각 같지 않음이 있다는 말이다.
爲宋役 亦其職也니라
나라에 복역服役하는 것이 그대들의 직책職責이오.”라고 하였다.
士彌牟曰 注+言范獻子新爲政 未習故事하니 子姑受功歸하라
사미모士彌牟가 말하기를 “나라의 종정자從政者(城役의 총감독總監督을 이름)가 새 사람으로 바뀌었으니注+범헌자范獻子가 새로 [政]이 되어 아직 고사故事를 익히 알지 못한다는 말이다. , 그대는 우선 공역을 받고 돌아가시오.
注+求故事 [附注] 林曰 吾視諸晉之府庫 求其故事하리라 仲幾曰 縱子忘之라도 注+山川鬼神 盟所告 [附注] 林曰 子 謂士彌牟 蓋仲幾忿甚 以此抑晉也 士伯怒注+[附注] 林曰 士彌牟怒 하야 謂韓簡子曰 薛徵於人注+典籍故事 人所知也하고 宋徵於鬼注+取證於鬼神하니 宋罪大矣
고부故府에 있는 문서文書를 살펴보겠소.注+고사故事를 찾아보겠다는 말이다. [부주]林: 내가 나라 부고府庫에 있는 문서文書를 살펴 그 고사故事를 찾아보겠다는 말이다. ”라고 하자, 중기仲幾가 말하기를 “비록 그대는 잊는다 하더라도 산천山川귀신鬼神이야 어찌 잊겠소?注+산천山川귀신鬼神은 〈맹약盟約을 맺은 뒤에 그〉 맹약盟約한 〈내용을〉 하는 대상對象[所]이다. [부주]林: 사미모士彌牟를 이른다. 중기仲幾가 매우 분노忿怒하여 이 말로써 나라를 억압抑壓한 것이다. ”라고 하니, 사백士伯하여注+[부주]林: 사미모士彌牟한 것이다. 한간자韓簡子에게 말하기를 “나라는 사람을 가지고 증명하는데注+전적典籍에 실린 고사故事는 사람이 알 수 있는 바이다. 나라는 귀신鬼神을 가지고 증명하니注+귀신鬼神에게 증명證明해주기를 구한 것이다. 나라의 가 큽니다.
且已無辭하고 而抑我以神하니 誣我也注+[附注] 林曰 宋無辭以答我 而沮我以鬼神 是以不可考證之事 誣罔我也
그리고 또 자기는 도리에 맞는 말을 하지 못하면서 우리를 귀신鬼神으로 억압抑壓하니 이는 터무니없는 말을 꾸며 우리를 무시하는 것입니다.注+[부주]林: 나라는 도리에 맞는 말로 우리에게 대답하지 못하고 귀신鬼神으로 우리에게 겁을 주었으니, 이는 고증考證할 수 없는 일로써 우리를 속인 것이다.
其此之謂矣注+開寵過分 則納受侵侮 리라
총애寵愛를 보였다가 업신여김을 받는다는 말이 아마 이런 경우를 이름일 것입니다.注+분수에 넘치는 총애를 보였다가 침범해 업신여김을 받는다는 말이다.
必以仲幾爲戮하리라하고 乃執仲幾以歸하다 三月 注+知以歸不可 故復歸之京師하다
반드시 중기仲幾징벌懲罰[戮]하겠습니다.”고 하고서 중기仲幾를 잡아 가지고 돌아갔다가 삼월三月중기仲幾경사京師로 보냈다.注+중기仲幾를 잡아 가지고 나라로 돌아간 것이 옳지 않은 일임을 알았기 때문에 다시 그를 경사京師로 보낸 것이다.
城三旬而畢하니 하다
30일 만에 축조築造완성完成되니 이에 제후諸侯수병戍兵을 돌려보냈다.
齊高張後하야 不從諸侯注+後期 不及諸侯之役하다
나라 고장高張은 〈역인役人을 거느리고〉 뒤늦게 와서 제후諸侯가 〈축성築城하는 공역功役에〉 참여하지 못하였다.注+시기時期가 지난 뒤에 와서 제후諸侯성역城役에 미치지 못한 것이다.
晉女叔寬曰 周萇弘齊高張皆將不免注+叔寬 女寬也하리라
나라 여숙관女叔寬이 말하기를 “나라 장홍萇弘나라 고장高張은 모두 장차 를 면하지 못할 것이다.注+숙관叔寬여관女寬이다.
萇叔違天하고 高子違人注+天旣厭周德 萇弘欲遷都以延其祚 故曰違天 諸侯相帥以崇天子 而高子後期 故曰違人이라
장숙萇叔은 하늘의 뜻을 어겼고, 고자高子는 사람의 뜻을 어겼다.注+하늘이 이미 나라의 행위行爲[周德]를 싫어하고 있는데도 장홍萇弘천도遷都하여 나라의 국운國運연장延長시키려 하였기 때문에 ‘위천違天’이라 하고, 제후諸侯가 서로 이끌고 와서 천자天子을 존경해 받드는데도 고자高子는 뒤늦게 왔기 때문에 ‘위인違人’이라 한 것이다.
天之所壞 不可支也 衆之所爲 不可奸也注+爲哀三年周人殺萇弘六年高張來奔起니라
하늘이 무너뜨리는 나라는 지원支援할 수 없고, 대중大衆이 하는 일은 어길 수 없는 것이다.注+애공哀公 3년에 주인周人장홍萇弘을 죽이고, 6년에 고장高張나라로 도망쳐 오게 된 원인이다. ”고 하였다.
[傳]夏 叔孫成子逆公之喪于乾侯注+成子 叔孫婼之子 季孫曰 子家子注+[附注] 林曰 季孫意如告叔孫成子言 子家羈屢諫昭公言我之事 其所言 皆與我志合
여름에 숙손성자叔孫成子건후乾侯로 보내어 소공昭公상구喪柩를 맞이해 오게 할 때注+성자成子숙손야叔孫婼의 아들이다.계손季孫이 말하기를 “자가자子家子소공昭公에게 자주 나에 대해 말하였는데, 그 말이 나의 뜻에 맞지 않은 적이 없었소.注+[부주]林: 계손의여季孫意如숙손성자叔孫成子에게 해 말하기를 “자가기子家羈가 누차 소공昭公에게 하며 나에 대해 말한 일이 있었는데, 그가 말한 바가 모두 나의 뜻과 합치合致하였다.”고 한 것이다.
吾欲與之從政하니 子必止之注+[附注] 林曰 必留子家子 勿聽其去 하고注+衆事皆諮問子家子하라
나는 그와 함께 정사政事를 처리하고자 하니, 그대는 반드시 그를 만류하고서注+[부주]林: 반드시 자가자子家子를 만류하여 그가 다른 나라로 가는 것을 허락하지 말라는 말이다. 그의 을 들으시오.注+모든 일을 다 자가자子家子에게 자문諮問하라는 말이다. ”라고 하였다.
子家子不見叔孫하야 而哭注+幾 哭會也 不欲見叔孫 故朝夕哭不同會하다
자가자子家子숙손叔孫을 만나지 않으려고 시간을 바꾸어 하였다.注+는 모여서 함이다. 자가자子家子숙손叔孫을 만나고자 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조석朝夕을 함께 모여서 하지 않은 것이다.
叔孫請見子家子하니 子家子辭曰 羈未得見하고 而從君以出注+出時 成子未爲卿 이라
숙손叔孫자가자子家子를 만나기를 청하니, 자가자子家子는 사절하며 말하기를 “나는 당신을 만나보지 않고 임금님을 따라 도망해 나왔습니다.注+소공昭公을 따라 도망 나올 때 성자成子는 아직 이 아니었다.
君不命而薨하시니 羈不敢見注+言未受昭公之命 託辭以距叔孫하노라
임금님께서 〈당신을 만나보라는〉 을 내리지 않으시고 훙서薨逝하셨으니 나는 감히 당신을 만날 수 없습니다.注+소공昭公의 명을 받지 못하였다는 말로 핑계대어 숙손叔孫의 요청을 거절한 것이다. ”라고 하였다.
叔孫使告之曰 注+二子 始謀逐季氏하니 若公子宋主社稷이면 則群臣之願也注+宋 昭公弟定公
숙손叔孫이 사람을 보내어 자가자子家子에게 하기를 “사실은 공연公衍(太子)과 공위公爲군신群臣들로 하여금 임금님을 섬길 수 없게 하였으니注+두 사람은 당초에 계씨季氏축출逐出모의謀議한 자들이다. , 만약 공자公子사직社稷주관主管한다면 이는 군신群臣이 원하는 바이오.注+소공昭公의 아우 정공定公이다.
凡從君出而可以入者 將唯子是聽注+[附注] 朱曰 汝意欲歸之者 卽與之歸하리라
그리고 임금님을 따라 나온 자들 중에 귀국歸國시킬 만한 자들을 선별選別하는 일은 장차 그대의 지시指示을 따르겠소.注+[부주]朱: 그대의 생각에 돌려보내고 싶은 자들은 즉시 귀국歸國하도록 허락하겠다는 말이다.
하니 季孫願與子從政이라
〈그대가 나라로 돌아가지 않는다면〉 자가씨子家氏 중에 후사後嗣로 세울 만한 사람이 없으니, 계손季孫은 그대와 함께 나라의 정사政事를 처리하기를 원하오.
ᄅ새 使不敢以告注+不敢 叔孫成子名하니라
이것은 모두 계손季孫의 원하는 바이기 때문에 나 불감不敢을 보내어 그대에게 하게 한 것이오.注+불감不敢숙손성자叔孫成子의 이름이다. ”라고 하니,
자가자子家子가 대답하기를 “임금을 세우는 일이라면 경사卿士, 대부大夫수구자守龜者가 있으니 내가 감히 알 바가 아니고,
若從君者ᄂ댄 入可也注+貌出 謂以義從公 與季氏無實怨어니와 寇而出者 行可也注+與季氏爲寇讐者 自可去
임금님을 따른 자들을 처리하는 일이라면 겉으로만 충성을 내세워 임금님을 따라 나온 자들은 입국入國해야 하지만注+모출貌出은 의리로써 소공昭公을 따랐고, 계씨季氏와는 실로 원한怨恨이 없는 사람들을 이른다., 계손季孫을 원수로 여겨 나온 자들은 다른 나라로 가야 합니다.注+계씨季氏와 원수가 된 자들은 스스로 떠나야 한다는 말이다.
若羈也 則君知其出也注+君 昭公 而未知其入也 羈將逃也리라
로 말하면 임금님께서 내가 나온 것만을 아시고注+소공昭公이다. 내가 들어가는 것은 모르시니 나는 장차 다른 나라로 도망가겠습니다.”고 하였다.
喪及壞隤 公子宋先入하고 從公者皆自壞隤注+出奔하다
소공昭公상구喪柩괴퇴壞隤에 미쳤을 때 공자公子만이 먼저 나라로 들어가고, 소공昭公을 따르던 자들은 모두 괴퇴壞隤에서 발길을 돌려 출분出奔하였다.注+출분出奔한 것이다.
[傳]六月癸亥 公之喪至自乾侯하다
6월 계해일癸亥日소공昭公상구喪柩건후乾侯에서 돌아왔다.
戊辰 公卽位注+諸侯薨 五日而殯 殯則嗣子卽位 癸亥 昭公喪至 五日殯於宮 定公乃卽位하다
무신일戊辰日정공定公즉위卽位하였다.注+제후諸侯하면 5일 만에 (屍身을 입관入棺하여 장사葬事때까지 안치安置해 두는 것)하는데, 하면 사자嗣子즉위卽位한다. 계해일癸亥日소공昭公상구喪柩가 당도하였고, 당도한 5일 만에 궁중宮中하고서 정공定公즉위卽位한 것이다.
季孫使役如하야 將溝焉注+闞 魯群公墓所在也 季孫惡昭公 欲溝絶其兆域 不使與先君同 [附注] 林曰 公氏 猶言公之墓宅 蓋昭公將葬於闞 季孫使役徒先往昭公墓宅하니 榮駕鵝曰 生不能事하고 死又離之 以自旌也注+駕鵝 魯大夫 榮成伯也 旌 章也 [附注] 林曰 言昭公之生 季孫旣不能事 逐而出之 昭公之死 季孫溝其兆域 離而絶之 以自章逐君之惡
계손季孫역부役夫들을 감공씨闞公氏로 보내어 묘역墓域에 도랑을 파게 하려 하자注+나라 군공群公가 있는 곳이다. 계손季孫소공昭公을 미워하여 그 조역兆域(墓域)에 도랑을 파서 선군先君묘역墓域격리隔離[絶]시켜 선군先君과 같은 묘역墓域이 되지 않게 하고자 한 것이다. [부주]林: 공씨公氏묘택墓宅이란 말과 같다. 소공昭公에 장사 지내려 할 때 계손季孫역부役夫들을 소공昭公묘택墓宅에 먼저 보낸 것이다. , 영가아榮駕鵝가 말하기를 “생전生前에 잘 섬기지 못하고 사후死後에 또 〈선군先君묘역墓域과〉 격리隔離시킨다면 스스로 오명惡名을 드러내는 것입니다.注+가아駕鵝나라 대부大夫영성백榮成伯이다. 은 드러냄이다. [부주]林: 소공昭公이 살았을 때 계손季孫은 이미 잘 섬기지 않고 축출逐出하였으며, 소공昭公이 죽은 뒤에 계손季孫이 그 조역兆域에 도랑을 파서 격리隔離시킨다면 스스로 임금을 축출한 자기의 악행惡行을 드러내는 것이라는 말이다.
縱子忍之 後必或恥之注+[附注] 林曰 後世子孫必恥其惡리라 乃止하다
비록 당신께서는 잔인殘忍한 마음으로 그렇게 할 수 있다 하더라도 후세後世자손子孫 중에는 반드시 이를 수치羞恥로 여기는 자가 더러 있을 것입니다.注+[부주]林: 후세後世자손子孫은 반드시 그 악행惡行수치羞恥로 여길 것이라는 말이다. ”고 하니, 계손季孫은 즉시 그 일을 그만두었다.
季孫問於榮駕鵝曰 吾欲爲君諡하야 使子孫知之注+爲惡諡하노라 對曰 生弗能事하고 死又惡之 以自信也 將焉用之리오 乃止注+[附注] 林曰 信 明也 以自明其不臣之迹하다
계손季孫영가아榮駕鵝에게 묻기를 “나는 임금님께 시호諡號를 올려 자손子孫들로 하여금 임금님의 과오過誤를 알게 하고자 한다.注+좋지 않은 시호諡號를 올리려 한 것이다. ”라고 하자, 영가아榮駕鵝가 대답하기를 “생전生前에 잘 섬기지 못하고 사후死後에 또 좋지 않은 시호諡號를 올린다면 임금님을 미워하였다는 것을 스스로 밝히는 것이니 장차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라고 하니, 계손은 즉시 그 일을 그만두었다.注+[부주]林: 은 밝힘이니, 스스로 신하臣下의 도리를 지키지 않은 흔적痕迹을 밝히는 것이라는 말이다.
[傳]秋七月癸巳 注+[附注] 朱曰 雖不爲溝 猶葬於墓道之外하다
가을 7월 계사일癸巳日소공昭公묘도墓道(무덤 앞의 길) 남쪽에 장사 지냈다.注+[부주]朱: 비록 도랑을 파지는 않았으나, 여전히 묘도墓道 밖에 장사 지낸 것이다.
孔子之爲司寇也注+[附注] 林曰 在公十年後 溝而合諸墓注+明臣無貶君之義 [附注] 林曰 自昭公墓外爲溝 使與先君墓合 하다
공자孔子사구司寇가 되셨을 때注+[부주]林: 〈공자孔子사구司寇가 되신 것은〉 정공定公 10년 뒤에 있었다.소공昭公 밖에〉 도랑을 파서 선공先公묘역墓域통합統合시키셨다.注+신하가 임금을 폄훼貶毁하는 의리義理가 없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 [부주]林: 소공昭公 밖에 도랑을 파서 선군先君묘역墓域통합統合시킨 것이다.
昭公出이라 故季平子하다
소공昭公출분出奔하였기 때문에 계평자季平子양공煬公에게 기도祈禱하였다.
九月 立煬宮注+平子逐君 懼而請禱於煬公 昭公死於外 自以爲獲福 故立其宮하다
9월에 양공煬公를 세웠다.注+계평자季平子가 임금을 축출逐出하고는 두려워서 양공煬公에게 기도祈禱하여 을 빌었다. 소공昭公외국外國에서 죽자, 계평자季平子는 스스로 을 받았다고 여겼다. 그러므로 양공煬公를 세운 것이다.
[傳]周鞏簡公棄其子弟하고 而好用遠人注+簡公 周卿士 遠人 異族也 爲明年鞏氏賊簡公張本하다
나라 공간공鞏簡公이 그 자제子弟를 버리고 소원疏遠한 사람을 쓰기를 좋아하였다.注+간공簡公나라 경사卿士이다. 원인遠人이성인異姓人[異族]이다. 명년明年공씨鞏氏간공簡公살해殺害[賊]한 장본張本이다.
역주
역주1 : 建巳月(4월)에 지내야 할 雩祭를 9월에 지냈으니, 때가 지난 뒤에 지낸 것을 기록한 것이라는 말이다. 桓公 5년 傳과 그 注를 參考할 것.
역주2 易位以令 : 去年傳에 魏子가 南面하여 諸侯의 大夫에게 명령한 것을 이른다.
역주3 柏椁 : 《禮記》 〈喪大記〉에 의하면 임금은 松椁을 사용하고 대부는 柏椁을 사용하고 士는 雜木椁을 사용한다.
역주4 板築 : 板은 담이나 성을 쌓을 때 양쪽에 세우는 널빤지이고, 築은 흙을 다지는 工具이다.
역주5 若從踐土 若從宋 亦唯命 : 若은 或이다. 혹은 踐土의 盟約을 따라 옛 職位를 회복하여 周天子에게 直屬할 것인지, 혹은 宋나라에 복종하여 그들의 僕役(종)이 될 것인지는 晉나라가 명하는 대로 따르겠다는 말이다. 〈楊注〉
역주6 將承王官 何故以役諸侯 : 將은 當이다. 만약 踐土의 盟約처럼 옛 職位를 회복한다면 奚仲과 仲虺처럼 天子를 받드는 王官이 되는 것이 마땅한데, 무엇 때문에 天子를 버리고 宋나라에 복종하여 諸侯의 使役을 받겠느냐는 말이다.
역주7 晉之從政者新 : 上文에 ‘魏獻子가 城役을 韓簡子에게 맡겼다.’고 하였으니, 韓不信(韓簡子)이 築城의 일을 主持한 것이다. 이것은 韓不信이 새로 卿이 된 것을 가리킨 것이다. 〈楊注〉
역주8 視諸故府 : 故府는 檔案(文書)을 보관한 곳이니, 돌아가서 檔案을 照査하여 決定하겠다는 말이다. 〈楊注〉
역주9 山川鬼神其忘諸乎 : 踐土의 會盟에서 薛이 宋에 服屬한다고 約定한 盟約을 山川의 神에게 告하였으므로 神이 그 내용을 알고 있으니, 만약 그 맹약을 어긴다면 神이 晉나라에 禍를 내릴 것이라는 뜻이다.
역주10 啓寵納侮 : 《古文尙書》 〈說命中〉에 보인다. 남을 寵愛하면 그는 반드시 총애를 믿고 主人에게 버릇없이 구니, 이것이 총애하였다가 도리어 업신여김을 받는 것이다.
역주11 歸諸京師 : 이때 晉侯가 會合에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仲幾를 먼저 晉나라로 보냈다가 뒤에 晉侯의 命에 따라 그를 京師로 보낸 것이다. 兪樾의 《群經評議》
역주12 乃歸諸侯之戍 : 昭公 27년에 晉나라 籍秦이 보냈던 諸侯의 戍兵을 돌려보낸 것이다.
역주13 亟言于我 未嘗不中吾志也 : ‘亟言于我’는 子家子가 昭公에게 “意如之事君不敢不改(25년)”라고 한 말과 “君以一乘入于魯師季孫必與君歸(31년)”라고 한 말을 이른다. 季孫의 뜻이 실로 그러하였기 때문에 ‘未嘗不中吾志也’라고 한 것이다. 〈正義〉
역주14 聽命焉 : 임금을 따라 나온 자들에 대한 處理는 子家子의 指示를 받아 決定하라는 말이다.
역주15 易幾 : 幾는 期이니, 哭하는 시간을 바꾼 것이다. 朝哭과 夕哭은 정해진 時期에 群臣이 모여 함께 擧行하는 것인데, 子家子는 叔孫을 만나지 않으려고 정해진 시기보다 먼저 가서 哭하거나 늦게 가서 곡한 것이다. 參考文獻 《左氏會箋》
역주16 公衍公爲實使群臣不得事君 : 昭公 29년 傳에 의거하면 季氏의 逐出을 謀議한 자는 公爲였고, 公衍(太子)은 간여하지 않았으나, 季氏는 昭公의 太子를 임금으로 세우고 싶지 않았다. 그러므로 公衍을 誣陷한 것이다. 〈楊注〉
역주17 子家氏未有後 : 子家羈는 歸父의 아들이다. 歸父가 宣公 18년에 季文子에 의해 逐出되었으므로 子家子가 돌아가지 않으면 그 宗族 중에 大夫職를 承繼하여 奉祀할 사람이 없다는 말이다.
역주18 此皆季孫之願也 : 此는 公子宋을 임금으로 세우는 것과, 昭公을 따라 나온 사람 중에 누구를 歸國시키느냐 하는 것은 子家羈에게 決定하도록 하는 것과, 子家羈와 함께 國政을 처리하여 子家氏로 하여금 魯나라에 後嗣가 있게 하는 것을 이른다. 〈楊注〉
역주19 若立君 則有卿士大夫與守龜在 羈弗敢知 : 太子公衍을 임금으로 세우지 않고 다른 사람을 임금으로 세우려 한다면 卿士 및 大夫와 商議하고, 또 거북점을 쳐서 결정할 일이니, 내가 감히 알 바가 아니라는 말이다. 守龜는 天子나 諸侯가 점칠 때 사용하는 龜甲인데, 龜人이 맡아 지킨다. 그러므로 ‘守龜’라 한다.
역주20 貌而出者 : 겉으로만 忠誠을 내세워 따라 나왔을 뿐이고, 진정으로 충성하는 마음이 없는 자들을 이른다.
역주21 : 魯나라로 들어가지 않고 되돌아간 것이다. 杜注에 ‘出奔’이라 하였으니, 從者 중에 한 사람도 魯나라로 들어간 자가 없는 것이다. 〈楊注〉
역주22 闞公氏 : 闞은 魯나라 群公의 墓가 있는 곳의 地名이다. 그곳에 群公의 墓가 있기 때문에 ‘闞公氏’라 한 것이다. 闞에서 句를 떼는 사람이 더러 있는데, 이는 옳지 않다. 〈楊注〉
역주23 葬昭公於墓道南 : 魯나라 先公들의 墓는 북쪽에 있는데, 季孫이 昭公을 墓道 남쪽에 장사 지냈으니, 비록 도랑을 파지 않았다 하더라도 실은 先公들의 墓와 멀리 떨어진 것이다. 〈楊注〉
역주24 定[隱] : 저본에는 ‘隱’으로 되어 있으나, 《四庫全書左傳杜林合注》本에 의거하여 ‘定’으로 바로잡았다.
역주25 禱于煬公 : 《史記》 〈魯世家〉에 의거하면 伯禽이 卒하자 그 아들 考公酉가 位를 承繼하였고, 4년 만에 考公이 卒하자 그 아우 熙가 承繼하였으니 이가 煬公이다. 煬公은 아우로서 兄의 位를 承繼한 자이다. 季氏는 公衍을 廢黜하고 昭公의 아우를 세워, 煬公이 兄의 位를 承繼한 故事를 본받고자 하였다. 그러므로 煬公에게 祈禱한 것이다.

춘추좌씨전(7) 책은 2019.05.2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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