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春秋左氏傳(3)

춘추좌씨전(3)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춘추좌씨전(3)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經]十有六年春王正月 晉人滅赤狄甲氏及留吁注+甲氏留吁 赤狄別種 晉旣滅潞氏 今又幷盡其餘黨 士會稱人 從告하다
[經]秋 하다
[經]冬 大有年注+無傳하다
[傳]十六年春 晉士會帥師滅赤狄甲氏及留吁鐸辰注+鐸辰不書 留吁之屬하다
三月 獻狄俘注+獻于王也하다
晉侯請于王注+[附注] 朱曰 請以士會爲命卿 한대 戊申 以黻冕命士會將中軍하고 且爲大傅注+代林父將中軍 且加以大傅之官 黻冕 命卿之服 大傅 孤卿하니 於是晉國之盜 逃奔于秦하다
羊舌職曰 吾聞之하니 禹稱善人注+稱 擧也 不善人遠이라하니 此之謂也夫ᄂ저
詩曰 戰戰兢兢하야 如臨深淵하고 如履薄冰이라하니 善人在上也注+言善人居位 則無不戒懼
善人在上이면 則國無幸民注+[附注] 林曰 善人而居上位則國無僥倖之民 賞不僭 刑不濫也이라
諺曰 民之多幸 國之不幸也라하니 是無善人之謂也
[傳]夏 成周宣榭火하니 人火之也
凡火 人火曰火 天火曰災
[傳]秋 郯伯姬來歸하니 出也注+[附注] 林曰 伯姬 魯女嫁郯者
[傳]爲毛召之難注+毛召難在前年 王室復亂하니 王孫蘇奔晉하다
晉人復之注+毛召之黨 欲討蘇氏 故出奔하다
[傳]冬 晉侯使士會平王室하다 定王享之할새 原襄公相禮注+原襄公 周大夫 相 佐也 하다
殽烝注+烝 升也 升殽於俎이어늘 武子私問其故注+享當體薦而殽烝 故怪問之 武 士會謚 季 其字한대 王聞之하고 召武子曰 季氏 而不聞乎注+[附注] 林曰 季 士會字 故曰季氏 而 汝也
王享有體薦注+享則半解其體而薦之 所以示共儉하고 宴有折俎
注+體解節折 升之於俎 物皆可食 所以示慈惠也
公當享하고 卿當宴 王室之禮也注+公謂諸侯 [附注] 林曰 公當用享禮體薦 卿當用禮折俎
武子歸而講求典禮하야 以修晉國之法注+傳言典禮之하다


16년 봄 주왕周王정월正月진인晉人적적赤狄갑씨甲氏유우留吁격멸擊滅하였다.注+갑씨甲氏유우留吁적적赤狄별종別種이다. 진인晉人이 이미 노씨潞氏격멸擊滅하고서, 이제 또 그 여당餘黨까지 아울러 다 격멸擊滅한 것이다. 사회士會를 ‘’으로 한 것은 부고赴告에 따른 것이다.
여름에 성주成周선사宣榭에 불이 났다.注+전례傳例에 “사람이 불을 지른 것이다.”고 하였다. 성주成周낙양洛陽이다. 선사宣榭강무옥講武屋으로 따로 낙양洛陽에 있던 것이다. 《이아爾雅》에 “방실房室이 없는 것을 ‘’라 한다.”고 하였으니, 이 없는 것을 이른다.
가을에 담백희郯伯姬나라로 돌아왔다.
겨울에 크게 풍년豊年이 들었다.注+이 없다.
16년 봄에 나라 사회士會가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적적赤狄갑씨甲氏유우留吁탁신鐸辰격멸擊滅하였다.注+탁신鐸辰에 기록하지 않은 것은 유우留吁부족部族이기 때문이다.
3월에 에서 잡은 포로捕虜나라에 바쳤다.注+주왕周王에게 바친 것이다.
진후晉侯주왕周王에게 사회士會관직官職을 올려줄 것을 요청要請하자,注+[부주]朱: 사회士會명경命卿(天子가 임명任命제후諸侯)으로 삼아 주기를 요청要請한 것이다.주왕周王무신일戊申日불면黻冕을 내리어 사회士會에게 중군中軍을 거느리도록 하고 태부太傅까지 겸임兼任하게 하니,注+순임보荀林父의 뒤를 이어 중군中軍을 거느리게 하고, 또 태부太傅관직官職까지 준 것이다. 불면黻冕명경命卿복장服裝이다. 태부太傅고경孤卿이다. 이때 나라의 도적盜賊이 모두 나라로 도망갔다.
양설직羊舌職이 말하기를, “내가 듣건대 우왕禹王선인善人등용登用하자注+거용擧用하는 것이다. 불선인不善人들이 멀리 피해 갔다고 하니, 바로 이런 경우를 이른 것이다.
시경詩經》에 ‘두려워하고 경계하여 깊은 물가에 임한 듯이, 얇은 얼음을 밟은 듯이 한다.’고 하였으니, 이는 선인善人이 윗자리에 있기 때문이다.注+선인善人이 높은 자리에 있으면 경계警戒하고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는 말이다.
선인善人이 윗자리에 있으면 나라 안에 요행僥倖을 바라는 백성이 없어진다.注+[부주]林: 선인善人이 높은 자리에 있으면 나라 안에 요행僥倖을 바라는 백성이 없는 것은 상벌賞罰참람僭濫(지나침)하지 않기 때문이다.
속담俗談에 ‘백성에게 요행僥倖이 많은 것은 국가國家불행不幸이다.’고 하였으니, 이는 선인善人이 없음을 이른 것이다.”고 하였다.
여름에 성주成周선사宣榭에 불이 났으니, 이는 사람이 불을 지른 것이다.
모든 화재火災에 사람이 방화放火한 것을 ‘’라 하고, 자연적自然的으로 발생發生한 불을 ‘’라 한다.
가을에 담백희郯伯姬가 돌아왔으니, 이는 축출逐出되어 돌아온 것이다.注+[부주]林: 백희伯姬노군魯君의 딸로 담국郯國으로 시집갔던 여자이다.
모씨毛氏소씨召氏화난禍難으로 인해注+모씨毛氏소씨召氏화난禍難전년前年에 있었다.왕실王室이 다시 어지러우니, 왕손王孫나라로 달아났다.
진인晉人이 그를 데려다가 원래原來직위職位회복恢復시켰다.注+모씨毛氏소씨召氏소씨蘇氏토벌討伐하려 하였기 때문에 출분出奔한 것이다.
겨울에 진후晉侯사회士會를 보내어 왕실王室분란紛亂화평和平시키니, 정왕定王향례享禮로 그를 접대接待하는데 원양공原襄公상례相禮(儀式을 거행擧行할 때 그 절차節次를 맡아 진행進行하는 사람)가 되었다.注+원양공原襄公나라의 대부大夫이다. 은 돕는 것이다.
이때 효증殽烝(骨節을 절단切斷해 도마에 올린 것)이 있는 것을 보고注+은 올리는 것이니, 뼈가 붙은 고기[殽]를 도마에 올리는 것이다. 무자武子가 사사로이 원양공原襄公에게 그 까닭을 물으니,注+향례享禮에는 체천體薦하는 것이 당연한데, 효증殽烝하였기 때문에 괴이怪異해서 물은 것이다. 사회士會이고 는 그의 이다. 정왕定王이 이 말을 듣고 무자武子를 불러 말하기를, “계씨季氏야 그대는 듣지 못했는가?注+[부주]林: 사회士會이다. 그러므로 계씨季氏라고 한 것이다. 는 너이다.
향례享禮를 베풀 때는 체천體薦注+향례享禮에는 희생犧牲의 몸을 반으로 쪼개어 올리는 것이니, 이는 검소儉素함을 보이기 위함이다.(犧牲의 반체半體를 도마에 올림)하고, 연례宴禮를 베풀 때는 절조折俎注+해체解體해 썬 것을 도마에 올려 고기[物]를 모두 먹을 수 있게 한 것이니, 이는 자혜慈惠를 보이기 위함이다. (바로 효증殽烝으로 고기를 삶아 뼈가 붙은 채 절단切斷해 도마에 올림)한다는 말을.
제후諸侯에게는 향례享禮를 베풀고, 제후諸侯에게는 연례宴禮를 베푸는 것이 왕실王室이다.”注+제후諸侯를 이른다. [부주]林: 에게는 체천體薦하는 향례享禮를 베풀어야 하고, 에게는 절조折俎하는 연례宴禮를 베풀어야 한다.고 하였다.
무자武子가 돌아온 뒤에 예전禮典강구講求하여 나라의 법도法度수명修明(整理해 밝게 만듦)하였다.注+전문傳文전례典禮폐지廢止된 지 오래임을 말한 것이다.


역주
역주1 成周 洛陽……謂屋歇前 : 成周는 周나라의 下都이다. 이 榭를 따로 洛陽에 세우고서 武事를 講習하려면 그곳으로 갔다. 歇前은 壁이 없는 것이다. 〈疏〉
역주2 郯伯姬來歸 : 郯國의 임금에게 시집갔던 魯君의 딸이 버림을 받고 魯나라로 돌아온 것이다.
역주3 王享有體薦 宴有折俎 : 享과 宴은 때로 같은 뜻으로 쓰이기도 하지만 여기서는 달리 쓰였다. 여기의 享은 形式만 갖출 뿐 먹지는 않는 것이고, 宴은 고기를 익혀 썰어서 賓主가 함께 먹는 것이다. 〈楊注〉를 參照할 것.
역주4 燕[宴] : 저본에는 ‘燕’으로 되어 있으나 《四庫全書左傳杜林合注》를 참고하여 ‘宴’으로 바로잡았다.
역주5 慶[廢] : 저본에는 ‘慶’으로 되어 있으나 《十三經注疏》本에 의거하여 ‘廢’로 바로잡았다.

춘추좌씨전(3) 책은 2019.05.2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22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