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春秋左氏傳(7)

춘추좌씨전(7)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춘추좌씨전(7)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經]三十有二年春王正月 公在乾侯하야 取闞注+無傳 公別乾侯 遣人誘闞而取之 不用師徒하다
32년 봄 주왕周王정월正月소공昭公건후乾侯에 있으면서 을 취하였다.注+이 없다. 소공昭公건후乾侯별거別居하면서 사람을 보내어 감인闞人유인誘引하였는데, 군대를 사용하지 않았다.
[經]夏 吳伐越하다
여름에 나라가 나라를 침벌侵伐하였다.
[經]秋七月
가을 7월이다.
[經]冬 仲孫何忌會晉韓不信齊高張宋仲幾衛世叔申注+世叔申 世叔儀孫也 國參 子産之子 不書盟 時公在外 未及告公 公已薨 [附注] 林曰 諸侯有事于京師 皆不書 僖十三年十六年戍周不書 襄二十四年城周不書 以是爲常事也 書城成周 則請而後城之 是非常也 是役也 晉魏舒南面 韓不信專執于京師 宋仲幾不受功 齊高張後 大夫之無王甚矣 其不曰京師而曰成周 以見周與列國等耳鄭國參曹人莒人薛人杞人小邾人城成周하다
겨울에 중손하기仲孫何忌나라 한불신韓不信, 나라 고장高張, 나라 중기仲幾, 나라 세숙신世叔申注+세숙신世叔申세숙의世叔儀의 손자이고, 국참國參자산子産의 아들이다. 맹약盟約한 것을 기록하지 않은 것은 이때 소공昭公외국外國에 있어 미처 소공에게 하지 못하였는데, 소공이 이미 하였다. [부주]林: 제후諸侯경사京師에 일(諸侯가 왕실王室을 도운 일)이 있은 것을 모두 기록하지 않았다. 희공僖公 13년과 16년에 군대를 보내어 나라를 수위戍衛한 일을 기록하지 않았고, 양공襄公 24년에 에 성을 쌓은 일(齊人城郟을 이름)을 기록하지 않았으니, 이는 이렇게 하는 것을 정상正常으로 여긴 것이고, 이번에 성주成周에 성을 쌓은 것을 기록한 것은 나라가 요청한 뒤에 성을 쌓았기 때문이니, 이는 정상正常이 아니다. 이번 성역城役나라 위서魏舒남면南面하여 을 내리고, 한불신韓不信경사京師에서 멋대로 사람을 체포逮捕하였고, 나라 중기仲幾접수接受하지 않았고, 나라 고장高張은 뒤늦게 왔으니, 대부大夫주왕周王을 무시함이 심하였다. 그러므로 《춘추春秋》에 ‘경사京師’라고 하지 않고 ‘성주成周’라고 하여 나라가 열국列國대등對等하게 되었음을 나타내었다. , 나라 국참國參, 조인曹人, 거인莒人, 설인薛人, 기인杞人, 소주인小邾人회합會合하여 성주成周에 성을 쌓았다.
[經]十有二月己未 公薨于乾侯注+十五日하다
12월 기미일己未日소공昭公건후乾侯에서 하였다.注+기미己未는 15일이다.
[傳]三十二年春王正月 公在乾侯라하니 言不能外內 又不能用其人也注+其人 謂子家羈也 言公不能用其人 故於今猶在乾侯
32년 봄 주왕周王정월正月소공昭公건후乾侯에 있었다고 〈에 기록〉하였으니, 이는 국외國外국내國內에서 용납되지 못하고, 또 능히 그 사람을 쓰지 못한 것을 말한 것이다.注+기인其人자가기子家羈(子家子)를 이른다. 소공昭公자가기子家羈의 말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까지 오히려 건후乾侯에 있게 되었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傳]夏 吳伐越하니 始用師於越也注+自此之前 雖疆事小爭 未嘗用大兵
여름에 나라가 나라를 쳤으니 비로소 나라에 대병大兵을 사용한 것이다.注+이전에도 국경國境의 일로 작은 전쟁戰爭은 있었으나, 대병大兵을 사용한 적은 없었다.
史墨曰 不及四十年하야 越其有吳乎注+存亡之數 不過三紀 歲星三周 三十六歲 故曰不及四十年 哀二十二年 越滅吳 至此三十八歲ᄂ저
사묵史墨이 말하기를 “앞으로 40년이 되기 전에 나라가 아마 나라를 점유占有하게 될 것이다.注+존망存亡삼기三紀(36년)를 지나지 않는다. 세성歲星(木星)이 천체天體를 세 바퀴 도는 데는 36년이 걸리기 때문에 ‘불급사십년不及四十年’이라고 한 것이다. 금년今年부터 애공哀公 22년에 나라가 나라를 격멸擊滅했으니 38년이었다.
越得歲而吳伐之하니 必受其凶注+此年歲在 星紀吳越之也 歲星所在 其國有福 吳先用兵 故反受其殃하리라
나라에 세성歲星이 머물러 있는데 나라가 나라를 쳤으니 나라는 반드시 세성歲星의 재앙을 받을 것이다.注+이해에 세성歲星성기星紀에 있었으니, 성기星紀나라와 나라의 분야分野이다. 세성歲星이 머물러 있는 곳에는 그 나라에 이 있다. 그러나 나라가 먼저 무력을 사용하였기 때문에 도리어 그 재앙을 받은 것이다. ”고 하였다.
[傳]秋八月 王使富辛與石張如晉하야 請城成周注+子朝之亂 其餘黨多在王城 敬王畏之 徙都成周 成周狹小 故請城之하다
가을 8월에 주왕周王부신富辛석장石張나라로 보내어 성주成周에 성을 쌓아주기를 청하였다.注+자조子朝반란叛亂에 가담한 여당餘黨왕성王城에 많이 남아 있으니, 경왕敬王은 이를 두려워하여 성주成周천도遷都하였다. 성주成周협소狹小하므로 나라에게 성을 쌓아주기를 청한 것이다.
天子曰
천자天子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天降禍于周하야 俾我竝有亂心하야 以爲伯父憂注+俾 使也 兄弟 謂子朝也 伯父 謂晉侯로라
“하늘이 나라에 를 내려 나의 형제兄弟로 하여금 모두 난심亂心을 품게 하여 백부伯父(晉侯를 이름)의 근심이 되게 하였소.注+使(하여금)이다. 형제兄弟자조子朝를 이르고, 백부伯父진후晉侯를 이른다.
我一二親昵甥舅 注+謂二十三年 二師圍郊 至于今 이오 注+謂二十八年 晉籍秦致諸侯之戍 至于今이라
나의 몇몇 근친近親생구국甥舅國(異姓諸侯)들도 편안히 지내지 못한 지가 지금 10년이 되었고注+23년에 교읍郊邑포위包圍이사二師(王師, 진사晉師)가 지금까지 계속 포위하고 있는 것을 이른다. , 제후諸侯의 군대들이 와서 수위戍衛근로勤勞하는 지도 5년이 되었소.注+28년에 나라 적진籍秦이 보낸 제후諸侯수병戍兵이 지금까지 수위戍衛하고 있는 것을 이른다.
余一人無日忘之注+念諸侯勞하야 注+閔閔 憂貌 王憂亂 常閔閔冀望安定 如農夫之憂飢 冀望來歲之將熟 [附注] 朱曰 畏懼以待天時하니 伯父若肆大惠하야 復二文之業하야 弛周室之憂注+肆 展放也 二文 謂文侯仇文公重耳也 弛 猶解也하고 徼文武之福하야 以固盟主하야 宣昭令名이면 則余一人有大願矣
나는 하루도 이들의 노고勞苦를 잊을 수 없어서注+제후諸侯노고勞苦를 생각함이다. 깊은 근심이 마치 농부農夫풍년豊年을 바라며 〈날씨가 순조롭지 못할까〉 두려워하면서 풍년을 기다리는 심정과 같으니注+민민閔閔은 근심하는 모양이다. 주왕周王반란叛亂을 근심하여 항상 안정되기를 바라는 것이 농부農夫기아饑餓를 근심하여 내년의 풍작豊作을 바라는 것과 같다는 말이다. [부주]朱: 두려워하면서 천시天時를 기다림이다. , 백부伯父가 만약 큰 은혜를 베풀어 문후文侯문공文公대업大業회복恢復하여 나라 왕실王室의 근심을 풀어주고注+전방展放(폄)이다. 이문二文진문후晉文侯진문공晉文公중이重耳를 이른다. 와 같다., 문왕文王무왕武王을 받아 맹주盟主의 지위를 공고鞏固히 하여 아름다운 명성名聲선양宣揚한다면 나의 큰 소원所願이 이루어지는 것이오.
昔成王合諸侯城成周하야 以爲東都하야 注+作成周 遷殷民 以爲京師之東都 所以崇文王之德하시니 今我欲徼福假靈于成王注+[附注] 朱曰 今我欲徼成王之福祚 假成王之威靈하야 修成周之城하야하고 遠屛이면 晉之力也注+蝥賊 喩災害
옛날에 성왕成王께서 제후諸侯회합會合하여 성주成周에 성을 쌓아 동도東都로 삼으시고서 문덕文德숭상崇尙하셨으니注+성주成周를 만들어 은민殷民을 옮겨 경사京師동도東都로 삼은 것은 문왕文王존숭尊崇하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지금 나도 성왕成王을 빌고 위령威靈을 빌려 성주成周중수重修하여注+[부주]朱: 지금 나는 성왕成王께 복을 빌고 성왕成王위령威靈(神靈의 위력威力)을 빌리고자 한다는 말이다. 수인戍人들로 하여금 〈더 이상〉 근로勤勞하지 않게 하고자 하니, 제후諸侯를 편안하게 하고 모적蝥賊을 멀리 축출逐出한다면 이는 나라의 [力]이오.注+모적蝥賊재해災害를 비유한 것이다.
其委諸伯父하노니 使伯父實重圖之하야 注+徵 召也이면 而伯父有榮施 先王注+庸 功也 先王之靈 以爲大功시리라
그러므로 이 일은 백부伯父에게 맡기노니, 가령 백부伯父가 진실한 마음으로 거듭 생각하여 나로 하여금 백성들의 원망을 사는 일이 없게 한다면注+(부름)이다. 백부伯父에게는 공덕功德을 베풀었다는 영예榮譽가 있을 것이니, 선왕先王께서 그 공덕功德보상報償하실 것이오.注+이니, 선왕先王신령神靈대공大功으로 여길 것이라는 말이다.
范獻子謂魏獻子曰 與其戍周 不如城之니라
범헌자范獻子위헌자魏獻子에게 말하기를 “수병戍兵을 보내어 나라를 수위戍衛하는 것이 성을 쌓아주는 것만 못합니다.
天子實云注+云欲罷戍而城하시니이어니와 注+[附注] 林曰 築城之後 或有他變異之事 晉勿復與知其事니라
천자天子께서도 실로 그리 말씀하셨지만注+수위戍衛작파作罷하고 을 쌓고자 한다고 말한 것이다. , 〈성을 쌓아준다면〉 가령 앞으로 〈나라에〉 일이 생기더라도 우리 나라가 다시 간여[與知]하지 않아도 괜찮을 것입니다.注+[부주]林: 을 쌓아준 뒤에는 나라에 혹 이변異變의 일이 생기더라도 나라는 다시 그 일에 간여干與하지 말라는 말이다.
從王命이면 以紓諸侯 晉國無憂 是之不務하고 而又焉從事리오
왕명王命을 따르면 제후諸侯들은 부담負擔을 덜고 우리 나라는 근심이 없어질 것이니, 이일에 힘쓰지 않고 도리어[又] 무슨 일에 힘을 쓰겠습니까?”라고 하니,
魏獻子曰 善타하고 使伯音對注+ 韓不信曰 天子有命하시니 敢不奉承하야 以奔告於諸侯리까 注+衰 差也 序 次也 於是焉在注+在周所命니이다
위헌자魏獻子는 “좋습니다.”라고 하고서 백음伯音(韓不信)을 보내어 대답하기를注+백음伯音한불신韓不信이다. 천자天子이 계셨으니, 감히 그 명을 받들고 제후諸侯에게로 달려가 통고通告하지 않겠습니까마는 〈공정工程의〉 지속遲速작업량作業量각국各國배분配分하는 등급은注+(等級)이고 (차례)이다. 나라가 하실 바입니다.注+나라가 하는 바에 달렸다는 말이다. ”라고 하였다.
冬十一月 晉魏舒韓不信如京師하야 合諸侯之大夫于狄泉하야 尋盟하고 且令城成周注+尋平丘盟하다
겨울 11월에 나라 위서魏舒한불신韓不信경사京師로 가서 제후諸侯대부大夫들과 적천狄泉에서 회합會合하여 옛 맹약盟約중수重修하고, 또 성주成周에 성을 쌓으라고 명령命令하였다.注+소공昭公 13년 가을에〉 평구平丘에서 맺은 맹약盟約중수重修한 것이다.
魏子南面注+居君位하니 衛彪傒曰
이때 위자魏子남면南面해 앉아서 명을 내리니注+임금의 자리에 앉은 것이다. , 나라 표혜彪傒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魏子必有大咎하리라
위자魏子는 반드시 큰 를 당할 것이다.
以令大事하니 非其任也注+彪傒衛大夫
신하의 몸으로 임금의 자리에 앉아서 제후諸侯에게 대사大事를 명하였으니, 이는 그의 직임職任이 아니다.注+표혜彪傒나라 대부大夫이다.
詩曰 敬天之怒하야 不敢戱豫하며 敬天之渝하야 不敢注+詩 大雅 戒王者 言當敬畏天之譴怒 不可遊戱逸豫 馳驅自恣 渝 變也라하야늘 況敢干位以作大事乎
시경詩經》에 ‘하늘의 노여움을 경외敬畏하여 감히 안락安樂하지 말 것이며 하늘의 재변災變[渝]를 경외하여 감히 방종放縱[馳驅]하지 말라.注+는 《시경詩經》 〈대아大雅〉篇의 시구詩句이다. 을 경계하는 자가 “하늘의 견노譴怒(譴責)을 경외敬畏해야 하고 유희일예遊戱逸豫(놀고 즐기며 안일安逸하게 지냄)하거나 치구자자馳驅自恣(말을 달리며 방종放縱함)하여서는 안 된다.”고 말한 것이다. 이다.’고 하였는데, 하물며 감히 군위君位침범侵犯하여 대역사大役事를 일으킴이겠는가?”
己丑 士彌牟營成周호되 訃丈數注+計所當城之丈數也하고 揣高卑注+度高曰揣 하며 度厚薄하고 仞溝洫注+度深曰仞 하며 物土方하고 議遠邇注+物 相也 相取土之方面遠近之宜하며 量事期注+知事幾時畢하고 計徒庸注+知用幾人功하며 慮材用注+知費幾財用하고 書糇糧注+知用幾糧食하며 以令役於諸侯注+[附注] 林曰 號令於諸侯 使供其役호되
屬役注+[附注] 林曰 屬 所當役之數 賦丈
注+ 所當城丈尺 하다
기축일己丑日사미모士彌牟(士景伯)가 성주성成周城축조계획서築造計劃書를 작성하되注+축조築造해야 할 성벽城壁장수丈數(尺數)를 계산한 것이다., 성벽의 장수丈數(길이), 고도高度注+고도高度를 계산하는 것을 ‘’라 한다. , 두께 및 수로水路의 깊이를 계산하고注+깊이를 계산하는 것을 ‘’이라 한다. , 토석土石채취採取해 올 곳을 살피고 그 거리의 원근遠近토의討議하며注+은 봄이니, 흙을 채취採取할 방면과 원근遠近(거리)이 적의適宜한지를 살피는 것이다. , 공기工期를 계산하고注+언제쯤 역사役事가 끝날지를 알아보는 것이다. 필요한 인력人力注+몇 사람의 공력功力을 써야 할지를 알아보는 것이다. , 자재資材注+얼마의 재물을 지출支出[費]해야 할지를 알아보는 것이다. , 양식糧食을 계산해 기록하고注+얼마의 양식糧食을 사용해야 할지를 알아보는 것이다. , 제후諸侯에게 출역出役을 명하되注+[부주]林: 제후諸侯에게 호령號令하여 그 일에 이바지하게 함이다. 나라의 대소에 따라 역인役人의 수와注+[부주]林: 은 응당 복역服役역부役夫를 배정함이다. 축조築造공정工程배정配定하였다.注+는 응당 쌓아야 할 성의 길이[丈尺]를 정해줌이다.
書以授帥注+帥 諸侯之大夫하고 而效諸劉子注+效 致也하다
계획서計劃書를 제후의 대부大夫들에게 나누어주고서注+제후諸侯대부大夫이다. , 이어 유자劉子에게 올렸다.注+(바침)이다.
韓簡子하야 以爲成命注+臨履其事 以命諸侯 經所以不書魏舒 [附注] 林曰 韓簡子 卽韓不信 하다
한간자韓簡子가 이 일을 감독監督[臨]하면서 이 계획서計劃書성명成命(成案)으로 삼아注+한간자韓簡子가 그 일을 감독監督[臨]해 순시巡視[履]하면서 제후諸侯에게 을 내렸기 때문에 위서魏舒를 기록하지 않은 것이다. [부주]林: 한간자韓簡子는 바로 한불신韓不信이다. 〈그대로 따라 집행執行하였다.〉
[傳]十二月 公疾하다
12월에 소공昭公을 앓았다.
徧賜大夫注+從公者하니 大夫不受하다
대부大夫들에게 두루 물건을 하사下賜하니注+소공昭公시종侍從하던 자들이다. 대부大夫들은 받지 않았다.
賜子家子雙琥注+琥 玉器一環一璧輕服注+細好之服한대 受之하니 大夫皆受其賜하다
자가자子家子에게 한 쌍과注+옥기玉器이다. 옥환玉環 하나와 옥벽玉璧 하나와 경복輕服 한 벌을 하사하자注+세포細布로 지은 좋은 옷이다. 이를 받으니, 대부大夫들도 모두 소공昭公의 하사품을 받았다.
己未 公薨커늘 子家子反賜於曰 吾不敢逆君命也 大夫皆反其賜하다
기미일己未日소공昭公하자 자가자子家子는 그 하사품을 부인府人에게 반환返還하며 말하기를 “〈내가 이것을 받은 것은〉 감히 군명君命을 거역할 수 없어서였다.”고 하니, 대부大夫들도 모두 그 하사품을 반환返還하였다.
書曰 公薨于乾侯라하니注+不薨路寢爲失所
에 “건후乾侯에서 하였다.”고 기록한 것은 이 죽을 곳에서 죽지 못한 것을 말한 것이다.注+노침路寢에서 하지 못하였으니 죽을 곳을 잃은 것이 된다.
趙簡子問於史墨曰 季氏出其君이로되 而民服焉하고 諸侯與之하며 君死於外로되 而莫之或罪也 對曰
조간자趙簡子사묵史墨에게 “계씨季氏는 그 임금을 국외國外로 도망가게 하였는데도 백성들이 그에게 복종하고 제후諸侯들이 그를 도우며, 임금이 외국外國에서 죽었는데도 계씨季氏에게 죄를 묻는 이가 없는 것은 어째서인가?”라고 물으니, 사묵史墨이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物生有兩有三有五有陪貳
사물事物생성生成에는 둘이 있기도 하고, 셋이 있기도 하며, 다섯이 있기도 하고, 보좌輔佐[陪貳]가 있기도 합니다.
故天有三辰注+謂有三하고 地有五行注+謂有五하며 體有左右注+謂有兩하야 注+謂陪貳하며 王有公하고 諸侯有卿하니 皆有貳也
그러므로 하늘에는 삼신三辰(日‧)이 있고注+셋이 있음을 이른다. 땅에는 오행五行(水‧)이 있으며注+다섯이 있음을 이른다. , 몸에는 좌우左右가 있고注+둘이 있음을 이른다. 〈사람에게는〉 각각 비우妃耦(配偶)가 있으며注+배이陪貳(輔佐)가 있음을 이른다. , 에게는 이 있고 제후諸侯에는 이 있으니, 모두 보좌輔佐[貳]가 있는 것입니다.
天生季氏하야 以貳魯侯 爲日久矣 民之服焉 不亦宜乎
하늘이 계씨季氏를 내어 노후魯侯를 보좌하게 한 지가 오래이니 백성들이 그에게 복종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습니까?
魯君世從其失注+[附注] 林曰 魯君世世從其愆失하고 季氏世修其勤
하니 民忘君矣
노군魯君은 대대로 안일安逸[失]에 방종하고注+[부주]林: 노군魯君은 대대로 그 잘못을 따랐다는 말이다. , 계씨季氏는 대대로 그 근면勤勉준행遵行[修]하였으니, 백성들은 임금을 잊었습니다.
雖死於外 其誰矜之리오
임금이 비록 외국外國에서 죽었으나 누가 그 임금을 가엾게 여기겠습니까?
社稷無常奉注+奉之無常人 言唯德也하고 君臣無常位 自古以然注+史墨跡古今以實言이라
사직社稷(國家)에 봉사자奉祀者(君王)가 영구永久고정固定된 적이 없었고注+사직社稷(國家)의 봉사자奉祀者(君王)는 영원永遠고정固定된 사람이 없었다는 것은 오직 이 있는 사람만이 그 사직社稷주인主人이 된다는 말이다. , 군신君臣 사이에 그 지위地位영구永久히 고정된 적이 없었던 것은 예로부터 그러하였습니다.注+사묵史墨고금古今의 자취를 더듬어 사실을 말한 것이다.
故詩曰 高岸爲谷하고 深谷爲陵注+詩小雅 言高下有變易이라하니 注+三后 虞夏商 [附注] 林曰 今或降而爲衆庶 此言貴賤有時而變易也 大夫稱主
그러므로 《시경詩經》에 ‘높은 언덕이 골짜기가 되고 깊은 골짜기가 언덕이 된다.注+는 《시경詩經》 〈소아小雅시월지교十月之交〉篇의 시구詩句이다. 고하高下변역變易이 있음을 말한 것이다. ’고 하였으니, 삼후三后(虞‧)의 자손[姓]이 지금 서민庶民이 된 것은 께서도 아시는 바입니다.注+삼후三后이다. [부주]林: 지금은 혹 신분身分이 떨어져서 중서衆庶가 된 것이니, 이것은 귀천貴賤은 때로 변역變易이 있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대부大夫라고 칭한다.
在易卦 雷乘乾曰大壯☳☰注+乾下震上大壯 震在乾上 故曰雷乘乾이니 天之道也注+乾爲天子 震爲諸侯 而在乾上 君臣易位 猶臣大强壯 若天上有雷
주역周易》의 뇌괘雷卦건괘乾卦 위에 있는 것을 대장大壯이라 하니注+하괘下卦이고 상괘上卦인 것이 대장大壯이다. 진괘震卦건괘乾卦 위에 있기 때문에 뇌승건雷乘乾이라 한 것이다. , 이것이 하늘의 상도常道입니다.注+천자天子가 되고 제후諸侯가 되는데, 진괘震卦건괘乾卦 위에 있으니 군신君臣지위地位가 바뀐 것이다. 신하가 크게 강장强壯하여 천상天上에 우뢰[雷]가 있는 것과 같다.
昔成季友 桓之季也 文姜之愛子也
옛날에 성계成季환공桓公계자季子이고 문강文姜애자愛子입니다.
注+[附注] 林曰 震 姙娠也 始姙娠而卜之하니 卜人謁之曰 生有嘉聞注+嘉名聞於世이오 其名曰友 爲公室輔라하더니
처음 임신姙娠했을 적에 〈복초구卜楚丘에게〉 거북점을 치게 하니注+[부주]林: 임신姙娠이다. 처음 임신하였을 때 거북점을 친 것이다., 복인卜人하기를 ‘출생出生한 뒤에 아름다운 명성名聲이 있을 것이고注+아름다운 명성名聲이 세상에 소문나는 것이다. 그 이름은 ‘’로 불릴 것이며 공실公室보좌輔佐가 될 것입니다.’고 하였습니다.
及生如卜人之言하야 有文在其手曰友어늘 遂以名之하니라
출생한 뒤에 과연 복인卜人의 말처럼 손바닥에 ‘’字 꼴의 문양文樣이 있으므로 드디어 이름을 ‘’라고 하였습니다.
旣而有大功於魯注+立僖公하야 受費以爲上卿이러니 至於文子武子注+文子行父 武子宿하야 世增其業하고 不廢舊績하니라
얼마 뒤에 나라에 큰 을 세워注+대공大功희공僖公을 세운 일을 이른다. 비읍費邑봉지封地로 받고 상경上卿이 되었는데, 문자文子무자武子에 이르러注+문자文子행보行父무자武子宿이다. 대대로 가업家業을 늘리고 선조先祖공적功績폐기廢棄하지 않았습니다.
魯文公薨 而東門遂하니 魯君於是乎失國注+失國權하야 政在季氏 於此君也 四公矣注+[附注] 林曰 宣成襄昭
노문공魯文公하자 동문수東門遂적자適子를 죽이고 서자庶子를 세우니, 노군魯君은 이때부터 국가國家정권政權상실喪失하여注+국가國家통치권統治權상실喪失한 것이다. , 정권政權계씨季氏에게 돌아간 것이 이 임금(昭公)에 이르기까지 네 임금이었습니다.注+[부주]林: 사공四公선공宣公, 성공成公, 양공襄公, 소공昭公이다.
民不知君하니 何以得國이리오
백성이 그 임금들을 알아주지 않았으니, 그 임금들이 어찌 국가國家권력權力을 얻을 수 있었겠습니까?
是以爲君愼器與名하야 不可以假人注+器 車服 名 爵號이니라
그러므로 임금이 된 자는 을 신중히 지켜 다른 사람에게 빌려주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注+거복車服이고 작호爵號이다.
역주
역주1 尾[居] : 저본에는 ‘尾’로 되어 있으나, 《十三經注疏》本에 의거하여 ‘居’로 바로잡았다.
역주2 星紀 : 12星次의 하나로 28宿 중의 斗宿와 牛宿가 이에 屬한다. 襄公 28년 傳文 및 杜注 참고할 것.
역주3 : 分野이다. 古代에 中國全域을 하늘의 12星次에 나누어 配屬한 天文學用語인데, 이를테면 秦나라의 分野는 鶉首, 周나라는 鶉火, 燕나라는 析木, 吳나라와 越나라는 星紀 따위이다.
역주4 兄弟 : 子朝의 黨을 이른다.
역주5 不遑啓處 : 당시의 日常語이다. 啓는 바로 지금의 坐이고 處는 居이니, 편안히 居處할 겨를이 없다는 말이다. 〈楊注〉
역주6 於今十年 : 王室이 叛亂이 일어난 때로부터 지금까지 11년이 되었는데, ‘十年’이라 한 것은 成數를 든 것이다. 杜氏의 說은 거짓에 가깝다. 《左氏會箋》
역주7 勤戍五年 : 昭公 27년 12월에 晉나라 籍秦이 諸侯의 戍兵을 周나라로 보냈으나, 戍兵에 周나라에 당도한 것은 28년이었기 때문에 ‘五年’이라 한 것이다. 《左氏會箋》
역주8 閔閔焉如農夫之望歲 懼以待時 : 閔閔은 憂愁하는 모양이고, 歲는 풍성한 收穫을 이르고, 時는 收穫할 때를 이른다. 〈楊注〉
역주9 崇文德 : 東都는 오로지 朝會를 위해 建設한 것이다. 崇文德은 武功의 反對語이니, 굳이 ‘崇文王之德’으로 해석할 필요가 없다. 《論語》 〈季氏〉에 ‘遠人不服則修文德以來之’라 하였다. 《左氏會箋》
역주10 戍人無勤 諸侯用寧 : 諸侯의 戍兵들이 衛戍의 일을 거두고서 本國으로 돌아가면 諸侯가 이로 인해 편안해질 수 있다는 말이다. 〈楊注〉
역주11 蝥賊 : 곡식 싹의 뿌리와 마디를 갉아먹는 害蟲이다. 사람을 비유한 것이고 災害를 비유한 것이 아니니, 바로 子朝의 黨으로 王城에 있는 자들을 비유한 것이다. 《左氏會箋》
역주12 俾我一人無徵怨于百姓 : 周나라가 單獨의 힘만으로 成周의 城을 修築하면 백성들이 그 勞役을 감당할 수 없어서 반드시 王을 원망할 것이므로 ‘나로 하여금 백성의 원망을 부르게 하지 말라.’고 한 것이다. 《左氏會箋》
역주13 : 여기서는 動詞로 쓰였으니 功을 報答하는 것이다. 先王이 장차 너의 공을 보답하여 복을 내려 保佑할 것이라는 말이다. 〈楊注〉
역주14 雖有後事 晉勿與知可也 : 성을 쌓아주면 앞으로 周나라가 外侵을 당하는 일이 있어도 晉나라가 救援하지 않아도 별 탈이 없을 것이라는 뜻이다.
역주15 音伯[伯音] : 저본에는 ‘音伯’으로 되어 있으나, 傳文에 의거하여 ‘伯音’으로 바로잡았다.
역주16 遲速衰序 : 遲速은 作業의 進度를 이르고, 衰序는 作業量을 各國에 分配하는 等級을 이른다. 〈楊注〉
역주17 干位 : 南面한 것을 이른다. 임금만이 남쪽을 향해 서거나 앉을 수 있는데, 魏舒는 신하의 몸으로 임금처럼 南面하였기 때문에 位를 犯[干]하였다고 한 것이다.
역주18 馳驅 : 《毛詩》에 “自恣(放縱)이다.”고 하였다.
역주19 屬役賦丈 : 屬役의 屬은 囑의 假借字로 分付의 뜻이고, 賦丈의 賦는 賦與의 뜻이니, 곧 나라의 대소에 따라 差出할 役夫의 數를 分付하고, 築造할 工役의 분량을 정해줌이다.
역주20 付[賦] : 저본에는 ‘付’로 되어 있으나, 《四庫全書左傳杜林合注》本에 의거해 ‘賦’로 바로잡았다.
역주21 臨之 : 이 工程을 監督함이다. 〈楊注〉
역주22 「虎」 : 저본에는 ‘虎’字가 있으나, 《十三經注疏》本에 의거하여 생략하였다.
역주23 府人 : 昭公의 財貨를 맡아 管理한 자인 듯하다. 〈楊注〉
역주24 失其所 : 도망해 나와 外地에서 죽은 것을 이른다. 〈楊注〉
역주25 各有妃耦 : 사람마다 모두 夫婦가 서로 配偶가 됨을 이른다. 〈楊注〉
역주26 魯君……世修其勤 : 失은 佚로 읽어야 한다. 佚은 勤과 정반대이니, 魯君은 대대로 그 安逸에 放縱하여 백성을 잃었고, 季氏는 대대로 그 勤勉을 修行하여 백성을 얻었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左氏會箋》
역주27 三后之姓……主所知也 : 三后는 虞‧夏‧商이다. 姓은 바로 昭公 4년 傳의 ‘問其姓’의 姓(아들)이다. 여기서는 子孫을 이른다. 卿大夫의 僚屬이 경대부를 ‘主’라고 指稱한다. 〈楊注〉
역주28 始震而卜 : 이 일은 閔公 2년 傳에 자세히 보인다.
역주29 殺適立庶 : 東門襄仲이 太子惡을 죽이고서 文公의 庶子宣公을 임금으로 세운 일을 이른다.

춘추좌씨전(7) 책은 2019.05.2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18 By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