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 환공桓公이 위후衛侯와 회합會合하기 위해 도구桃丘로 갔으나 만나지 못하였다.注+전傳이 없다. 위후衛侯가 노환공魯桓公과 회합會合하기로 시기까지 정해 놓고서 중간에 환공을 배신背信하고 다시 제齊‧정鄭을 편들었다. 그러므로 환공 혼자서 도구桃丘에 갔으나 위후衛侯가 오지 않아서 만나지 못한 것이다. 도구桃丘는 위衛나라 땅이다. 제북濟北동아현東阿縣 동남에 도성桃城이 있다.
겨울 12월 병오일에 제후齊侯‧위후衛侯‧정백鄭伯이 군대를 거느리고 와서 노魯나라와 낭郎에서 전쟁하였다.注+침벌侵伐을 고쳐 내전來戰이라고 기록한 것은 주반周班을 사용한 노魯나라를 훌륭하게 여기고 정당한 나라를 친 삼국三國을 미워했기 때문이다.
가을에 진인秦人이 예백芮伯만萬을 예국芮國으로 들여보냈다.注+노환공魯桓公 4년에 진秦나라가 위魏를 포위하고 잡은 자이다.
傳
당초에 우숙虞叔이 좋은 옥玉을 갖고 있었는데,注+우숙虞叔은 우공虞公의 아우이다.[부주]林: 우虞는 희성姬姓의 나라로 공작公爵이다. 주周태왕太王의 아들 중옹仲雍의 후손을 주周무왕武王이 우虞에 봉封하였다.우공虞公이 그 옥玉을 달라고 요구하였으나注+전旃은 ‘지之’이다. 주지 않았다가 오래지 않아 후회하며 말하기를 “주周나라 속담에 ‘필부匹夫에게 죄가 있는 것이 아니라 옥벽玉璧을 가진 것이 죄이다.注+남이 그 벽璧을 탐하여 벽을 꼬투리로 죄를 만든다는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내게 이 옥玉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이 옥玉 때문에 해害를 사게 될 것이다.注+고賈는 사는 것이다.”라 하고서, 그 옥을 우공虞公에게 바쳤다.
우공이 또 보검寶劍을 요구하자, 우숙虞叔은 “이 사람은 욕심이 끝이 없어 만족을 모르는 사람이다.
만족할 줄 모르면 화禍가 장차 나에게 미칠 것이다.注+장차 나를 죽일 것이라는 말이다.”라 하고서, 드디어 우공虞公을 쳤다.
그러므로 우공이 공지共池로 도망간 것이다.注+공지共池는 지명地名인데, 어디인지 알 수 없어 소재지所在地를 기록하지 않았다.
傳
겨울에 제齊‧위衛‧정鄭이 군대를 거느리고 와서 노魯나라와 낭郎에서 전쟁하였는데, 우리 노나라의 행위行爲는 정당하여 할 말이 있었다.注+[부주]林: 낭郞은 노魯나라 땅이다.
당초에 북융北戎이 제齊나라를 괴롭히니注+환공桓公 6년에 보인다.제후諸侯가 군대를 보내어 제齊나라를 구원救援할 적에 정鄭공자公子홀忽이 공功이 있었다.
제인齊人이 제후諸侯의 군대에 식물食物을 보내면서 노魯나라에게 차례를 정하게 하니, 노魯나라가 주왕周王이 내린 작위爵位의 서열에 따라 차례를 정하여 정鄭나라의 차례를 맨 뒤로 정하였다.注+[부주]林: 노魯나라가 주周나라의 5등의 작위爵位로 차례를 정하여 정鄭나라의 차례를 맨 뒤로 정한 것이다.
이로 인해 정인鄭人이 노하여 제齊나라에 군대를 요청하니, 제인齊人이 위衛나라 군대를 거느리고 와서 정鄭나라를 도왔다.
그러므로 침벌侵伐이라고 칭稱하지 않았다.注+‘침벌侵伐’이라 칭하지 않고 ‘전戰’이라고 글을 만들어 노魯나라가 옳고 제후가 그르다는 것을 밝혔다. 그러므로 우리가 정당하여 할 말이 있다고 말한 것이다. 예禮로써 서로의 원한을 풀고 양군兩軍이 교전交戰하지 않고 물러갔으므로 크게 패전敗戰하는 일은 없었다.
제齊나라와 위衛나라를 먼저 기록한 것은 주왕周王이 내린 작위爵位의 서열을 따른 것이다.注+정鄭나라가 권한權限을 가지고 군대를 통솔하였는데도 순서를 제齊‧위衛의 아래에 둔 것은 주왕周王이 내린 작위爵位의 서열로 차례를 정하였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춘추》에 노魯나라는 오히려 주례周禮를 지킨다고 드러낸 이유이다.
역주
역주1來戰于郎 :
《正義》에 “《周禮》 〈大司馬〉에 ‘九伐의 法으로 邦國의 잘못을 바로잡는다. 賢者를 해치고 백성을 해치는 나라는 伐하고, 地形의 險固함을 믿고 복종하지 않는 나라는 侵한다.’고 하였으니, 그렇다면 侵伐은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討罪하는 名稱이다. 魯나라가 周나라 官爵의 序列에 따라 齊人이 준 犒饋物을 나눠주는 序次를 정한 것은 魯나라가 禮를 지킨 것인데, 세 나라가 禮가 있는 나라를 쳤으니, 이는 정당하여 할 말이 있는 나라를 討罪한 것이다. 그러므로 經에 魯나라가 周나라 官爵의 序列로 序次를 정한 것을 훌륭하게 여겨, 세 나라가 칠 수 있는 대상으로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므로 ‘侵伐’이라 기록하지 않고, 그 例를 고치어 ‘來戰’이라 기록하여, 마치 세 나라가 제 발로 와서 전쟁하려 하였고, 魯나라는 그 전쟁에 끼어 들지 않은 것처럼 말을 만든 것이다.”고 하였다.
역주2以 :
대본에는 ‘反’으로 되어 있으나 《十三經注疏》本에 의거하여 ‘以’로 바로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