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春秋左氏傳(1)

춘추좌씨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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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좌씨전(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經]十年春王正月庚申 曹伯終生卒注+未同盟而赴以名하다
10년 봄 주왕 정월 경신일에 조백曹伯종생終生하였다.注+동맹同盟하지 않았으나 이름을 기록해 부고하였기 때문에 에 이름을 기록한 것이다.
[經]夏五月 葬曹桓公注+無傳하다
여름 5월에 조환공曹桓公을 장사지냈다.注+이 없다.
[經]秋 公會衛侯于桃丘 弗遇注+無傳 衛侯與公爲會期 中背公 更與齊鄭 故公獨往而不相遇也 桃丘 衛地 濟北東阿縣東南 有桃城하다
가을에 환공桓公위후衛侯회합會合하기 위해 도구桃丘로 갔으나 만나지 못하였다.注+이 없다. 위후衛侯노환공魯桓公회합會合하기로 시기까지 정해 놓고서 중간에 환공을 배신背信하고 다시 을 편들었다. 그러므로 환공 혼자서 도구桃丘에 갔으나 위후衛侯가 오지 않아서 만나지 못한 것이다. 도구桃丘나라 땅이다. 제북濟北동아현東阿縣 동남에 도성桃城이 있다.
[經]冬十有二月丙午 齊侯衛侯鄭伯 注+改侵伐而書來戰 善魯之用周班 惡三國討有辭하다
겨울 12월 병오일에 제후齊侯위후衛侯정백鄭伯이 군대를 거느리고 와서 나라와 에서 전쟁하였다.注+침벌侵伐을 고쳐 내전來戰이라고 기록한 것은 주반周班을 사용한 나라를 훌륭하게 여기고 정당한 나라를 친 삼국三國을 미워했기 때문이다.
[傳]十年春 曹桓公卒注+終施父之言하다
10년 봄에 조환공曹桓公하였다.注+마침내 시보施父의 말처럼 되었다.
[傳]虢仲譖其大夫詹父於王注+虢仲 王卿士 詹父 屬大夫하다 詹父有辭일새
괵중虢仲이 그 대부大夫첨보詹父주왕周王에게 참소하였다.注+괵중虢仲주왕周王경사卿士이고 첨보詹父는 그이 속대부屬大夫이다. 첨보가 정당하였으므로
以王師伐虢注+[附注] 林曰 詹父有自直之辭 愬於王 王右詹父 故以師助詹父伐虢하다
주왕周王의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괵나라를 쳤다.注+[부주]林: 첨보詹父가 자신이 정직正直하다는 말로 주왕周王에게 하소연하니, 주왕周王첨보詹父의 편을 들어주었다. 그러므로 군대를 일으켜 첨보를 도와 나라를 친 것이다.
虢公 出奔虞注+虞國 在河東大陽縣하다
여름에 괵공虢公나라로 도망갔다.注+우국虞國하동河東대양현大陽縣에 있다.
[傳]秋 秦人納芮伯萬於芮注+四年圍魏所執者하다
가을에 진인秦人예백芮伯예국芮國으로 들여보냈다.注+노환공魯桓公 4년에 나라가 를 포위하고 잡은 자이다.
[傳]初 虞叔有玉注+虞叔 虞公之弟 [附注] 林曰 虞 姬姓國 公爵 周大王之子仲雍之後 周武王封之于虞이러니 虞公求旃注+旃 之也한대 弗獻이라가 旣而悔之曰 周諺有之하니 曰 匹夫無罪 懷璧其罪注+人利其璧 以璧爲罪라하니 吾焉用此리오
당초에 우숙虞叔이 좋은 을 갖고 있었는데,注+우숙虞叔우공虞公의 아우이다.[부주]林: 희성姬姓의 나라로 공작公爵이다. 태왕太王의 아들 중옹仲雍의 후손을 무왕武王하였다. 우공虞公이 그 을 달라고 요구하였으나注+은 ‘’이다. 주지 않았다가 오래지 않아 후회하며 말하기를 “나라 속담에 ‘필부匹夫에게 죄가 있는 것이 아니라 옥벽玉璧을 가진 것이 죄이다.注+남이 그 을 탐하여 벽을 꼬투리로 죄를 만든다는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내게 이 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其以賈害也注+賈 買也라하고 乃獻之하다
때문에 를 사게 될 것이다.注+는 사는 것이다.”라 하고서, 그 옥을 우공虞公에게 바쳤다.
又求其寶劍이어늘 叔曰 是無厭也
우공이 또 보검寶劍을 요구하자, 우숙虞叔은 “이 사람은 욕심이 끝이 없어 만족을 모르는 사람이다.
無厭이면 將及我注+將殺我라하고 遂伐虞公하다
만족할 줄 모르면 가 장차 나에게 미칠 것이다.注+장차 나를 죽일 것이라는 말이다.”라 하고서, 드디어 우공虞公을 쳤다.
故虞公出奔共池注+共池 地名 闕하다
그러므로 우공이 공지共池로 도망간 것이다.注+공지共池지명地名인데, 어디인지 알 수 없어 소재지所在地를 기록하지 않았다.
[傳]冬 齊衛鄭來戰于郞하니 我有辭也注+[附注] 林曰 郞 魯地
겨울에 이 군대를 거느리고 와서 나라와 에서 전쟁하였는데, 우리 노나라의 행위行爲는 정당하여 할 말이 있었다.注+[부주]林: 나라 땅이다.
北戎病齊注+在六年하니 諸侯救之 鄭公子忽有功焉하다
당초에 북융北戎나라를 괴롭히니注+환공桓公 6년에 보인다.제후諸侯가 군대를 보내어 나라를 구원救援할 적에 공자公子이 있었다.
齊人餼諸侯하며 使魯次之한대 魯以周班後鄭注+[附注] 林曰 魯以周五等之爵 班鄭在後하니
제인齊人제후諸侯의 군대에 식물食物을 보내면서 나라에게 차례를 정하게 하니, 나라가 주왕周王이 내린 작위爵位의 서열에 따라 차례를 정하여 나라의 차례를 맨 뒤로 정하였다.注+[부주]林: 나라가 나라의 5등의 작위爵位로 차례를 정하여 나라의 차례를 맨 뒤로 정한 것이다.
鄭人怒하야 請師於齊하니 齊人以衛師助之
이로 인해 정인鄭人이 노하여 나라에 군대를 요청하니, 제인齊人나라 군대를 거느리고 와서 나라를 도왔다.
故不稱侵伐注+不稱侵伐而以戰爲文 明魯直 諸侯曲 故言我有辭 以禮自釋 交綏而退 無敗績하다
그러므로 침벌侵伐이라고 하지 않았다.注+침벌侵伐’이라 칭하지 않고 ‘’이라고 글을 만들어 나라가 옳고 제후가 그르다는 것을 밝혔다. 그러므로 우리가 정당하여 할 말이 있다고 말한 것이다. 로써 서로의 원한을 풀고 양군兩軍교전交戰하지 않고 물러갔으므로 크게 패전敗戰하는 일은 없었다.
先書齊衛 王爵也注+鄭主兵而序齊衛下者 以王爵次之也 春秋所見魯猶秉周禮
나라와 나라를 먼저 기록한 것은 주왕周王이 내린 작위爵位의 서열을 따른 것이다.注+나라가 권한權限을 가지고 군대를 통솔하였는데도 순서를 의 아래에 둔 것은 주왕周王이 내린 작위爵位의 서열로 차례를 정하였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춘추》에 나라는 오히려 주례周禮를 지킨다고 드러낸 이유이다.
역주
역주1 來戰于郎 : 《正義》에 “《周禮》 〈大司馬〉에 ‘九伐의 法으로 邦國의 잘못을 바로잡는다. 賢者를 해치고 백성을 해치는 나라는 伐하고, 地形의 險固함을 믿고 복종하지 않는 나라는 侵한다.’고 하였으니, 그렇다면 侵伐은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討罪하는 名稱이다. 魯나라가 周나라 官爵의 序列에 따라 齊人이 준 犒饋物을 나눠주는 序次를 정한 것은 魯나라가 禮를 지킨 것인데, 세 나라가 禮가 있는 나라를 쳤으니, 이는 정당하여 할 말이 있는 나라를 討罪한 것이다. 그러므로 經에 魯나라가 周나라 官爵의 序列로 序次를 정한 것을 훌륭하게 여겨, 세 나라가 칠 수 있는 대상으로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므로 ‘侵伐’이라 기록하지 않고, 그 例를 고치어 ‘來戰’이라 기록하여, 마치 세 나라가 제 발로 와서 전쟁하려 하였고, 魯나라는 그 전쟁에 끼어 들지 않은 것처럼 말을 만든 것이다.”고 하였다.
역주2 : 대본에는 ‘反’으로 되어 있으나 《十三經注疏》本에 의거하여 ‘以’로 바로잡았다.

춘추좌씨전(1) 책은 2019.05.2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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