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春秋左氏傳(3)

춘추좌씨전(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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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좌씨전(3)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經]十有六年春王正月하고 注+無傳 記寒過節 冰封着樹 하다
16년 봄 주왕周王정월正月에 비가 내리고, 목빙木冰하였다.注+이 없다. 추위가 절기節氣를 어긴 것을 기록한 것이다. 나무에 얼음이 얼어붙은 것이다.
[經]夏四月辛未 滕子卒注+不書名 未同盟 하다
여름 4월 신미일辛未日등자滕子하였다.注+이름을 기록하지 않은 것은 동맹同盟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經]鄭公子喜帥師侵宋注+喜 穆公子子罕也 하다
나라 공자公子가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나라를 침공侵攻하였다.注+정목공鄭穆公의 아들 자한子罕이다.
[經]六月丙寅朔 日有食之注+無傳 하다
6월 초하루 병인일丙寅日일식日食이 있었다.注+이 없다.
[經]晉侯使欒黶來乞師注+將伐鄭 黶 欒書子 하다
진후晉侯난염欒黶을 보내 와서 출병出兵요청要請하였다.注+나라를 토벌討伐하기 위함이다. 난염欒黶난서欒書의 아들이다.
[經]甲午晦 晉侯及楚子鄭伯戰于鄢陵이러니 楚子鄭師敗績注+楚師未大崩 楚子傷目而退 故曰楚子敗績 鄢陵 鄭地 今屬潁川郡 하다
6월 그믐 갑오일甲午日진후晉侯초자楚子, 정백鄭伯언릉鄢陵에서 전쟁戰爭하였는데, 초자楚子정군鄭軍대패大敗하였다.注+초군楚軍대패大敗하지는 않았으나, 초자楚子가 눈에 화살을 맞고 물러갔기 때문에 ‘초자패적楚子敗績’이라고 한 것이다. 언릉鄢陵나라 땅으로 지금 영천군潁川郡에 속한다.
[經]楚殺其大夫公子側注+側 子反 背盟無禮 卒以敗師 故書名하다
나라가 그 대부大夫공자公子을 죽였다.注+자반子反이다. 맹약盟約을 저버려 무시無視하였고, 끝내 군대를 패전敗戰시켰기 때문에 이름을 기록한 것이다.
[經]秋 公會晉侯齊侯衛侯宋華元邾人于沙隨注+沙隨 宋地 梁國寧陵縣北有沙隨亭 러니 注+不及鄢陵戰故 不諱者 恥輕於執止 하다
가을에 성공成公진후晉侯, 제후齊侯, 위후衛侯, 나라 화원華元, 주인邾人사수沙隨에서 회합會合하였는데,注+사수沙隨나라 땅이다. 양국梁國영릉현寧陵縣 북쪽에 사수정沙隨亭이 있다. 진후晉侯성공成公을 만나 주지 않았다.注+노군魯軍언릉鄢陵전쟁戰爭참가參加하지 않았기 때문에 만나 주지 않은 것이다. 이를 숨기지 않고 기록한 것은 잡혀 억류抑留된 것에 비해 치욕恥辱이 가볍기 때문이다.
[經]公至自會注+無傳 하다
성공成公회합會合에서 돌아왔다.注+이 없다.
[經]公會尹子晉侯齊國佐邾人伐鄭注+尹子 王卿士 子 爵하다
성공成公윤자尹子, 진후晉侯, 나라 국좌國佐, 주인邾人회합會合하여 나라를 토벌討伐하였다.注+윤자尹子주왕周王경사卿士이다. 이다.
[經]曹伯歸自京師注+爲晉侯所赦 故書歸 諸侯歸國 或書名 或不書名 或言歸自某 或言自某歸 傳無義例 從告辭하다
조백曹伯경사京師에서 본국本國으로 돌아갔다.注+진후晉侯에게 용서를 받았기 때문에 ‘’라고 기록한 것이다. 제후諸侯본국本國으로 돌아간 것을 기록함에 있어, 어떤 데는 이름을 기록하고, 어떤 데는 이름을 기록하지 않았으며, 어떤 데는 ‘귀자모歸自某’로 기록하고, 어떤 데는 ‘자모귀自某歸’로 기록하였는데, 에 이에 대한 의례義例가 없으므로 고사告辭를 따른 것이다.
[經]九月 晉人執季孫行父하야 舍之于苕丘注+苕丘 晉地 舍之苕丘 明不以歸 하다
9월에 진인晉人계손행보季孫行父를 잡아 초구苕丘에 가두어 두었다.注+초구苕丘나라 땅이다. 그를 초구苕丘에 가두어 두었다고 한 것은 그를 나라의 국도國都로 데리고 가지 않았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 행인行人으로 하지 않은 것은 사자使者가 아니기 때문이다.
[經]冬十月乙亥 叔孫僑如出奔齊注+公未歸 命國人逐之 하다
겨울 10월 을해일乙亥日숙손교여叔孫僑如나라로 출분出奔하였다.注+성공成公귀국歸國에 앞서 국인國人에게 하여 그를 축출逐出하게 하였다.
[經]十有二月乙丑 季孫行父及晉郤犫盟于扈注+晉許魯平 故盟 하다
12월 을축일乙丑日계손행보季孫行父나라 극주郤犫에서 결맹結盟하였다.注+나라가 나라에 화평和平허락許諾하였기 때문에 결맹結盟한 것이다.
[經]公至自會注+無傳 伐而以會致 史異文하다
성공成公회합會合에서 돌아왔다.注+이 없다. 나라 토벌討伐에서 돌아온 것인데, 회합會合에서 돌아온 것으로 말한 것은 사관史官문장文章을 달리 표현表現한 것이다.
[經]乙酉 刺公子偃注+魯殺大夫皆言刺 義取於하다
을유일乙酉日공자公子을 죽였다.注+나라가 대부大夫를 죽인 것은 모두 ‘’로 기록하니, 이는 《주례周禮》의 삼자법三刺法에서 뜻을 한 것이다.
[傳]十六年春 楚子自武城使公子成하야 以汝陰之田求成于鄭注+汝水之南 近鄭地 하니
16년 봄에 초자楚子무성武城에서, 공자公子을 보내어 여음汝陰의 땅을 나라에 주고 화친和親요구要求하였다.注+여수汝水의 남쪽으로 나라에 근접近接한 땅이다.
鄭叛晉하고 子駟從楚子盟于武城注+爲晉伐鄭起 하다
나라는 나라를 배반背叛하고, 자사子駟무성武城으로 가서 초자楚子결맹結盟하였다.注+나라가 나라를 토벌討伐하기 위해 출동出動한 배경이다.
[傳]夏四月 滕文公卒하다
여름 4월에 등문공滕文公하였다.
[傳]鄭子罕伐宋注+滕 宋之與國 鄭因滕有喪而伐宋 故傳擧滕侯卒 侵伐 經傳異文 經從告 傳言實 他皆放此하니 宋將鉏樂懼敗諸汋陂注+敗鄭師也 樂懼 戴公六世孫 將鉏 樂氏族 하고 退하야 舍於夫渠하야 不儆注+宋師不儆備 이어늘 鄭人覆之하야 敗諸汋陵하고 獲將鉏樂懼하니
나라 자한子罕나라를 토벌討伐하니,注+나라는 나라의 맹방盟邦이다. 나라가 나라에 상사喪事가 난 기회期會이용利用나라를 친 것이다. 그러므로 에 ‘등후滕侯한 것’을 거론擧論한 것이다. 에는 ‘’으로 기록하였는데, 에는 ‘’로 기록하여 문사文辭가 다른 것은 부고赴告를 따랐고, 사실事實을 말하였기 때문이다. 다른 곳도 모두 이와 같다. 나라 장서將鉏악구樂懼작피汋陂에서 정군鄭軍패배敗北시키고서注+정군鄭軍패배敗北시킨 것이다. 악구樂懼송대공宋戴公육세손六世孫이다. 장서將鉏악씨樂氏종족宗族이다. 퇴각退却부거夫渠주둔駐屯하여 방비防備설치設置하지 않으니,注+송군宋軍방비防備[儆備]하지 않은 것이다. 정인鄭人복병伏兵으로 습격襲擊작릉汋陵에서 송군宋軍패배敗北시키고서 장서將鉏악구樂懼를 사로잡았다.
宋恃勝也注+汋陂夫渠汋陵 皆宋地 [附注] 林曰 鄭人乘其不備 覆而掩之 獲宋二帥
이는 송군宋軍승리勝利를 믿고 방비防備설치設置하지 않았기 때문이다.注+작피汋陂, 부거夫渠, 작릉汋陵은 모두 나라 땅이다. [부주]林: 정인鄭人송군宋軍방비防備하지 않은 틈을 타서 복병伏兵으로 습격襲擊나라의 두 장수將帥를 사로잡은 것이다.
[傳]衛侯伐鄭하야 至于鳴鴈하니 爲晉故也注+鳴鴈 在陳留雍丘縣西北 [附注] 林曰 衛爲從晉故伐鄭
위후衛侯나라를 토벌討伐하여 명안鳴鴈까지 쳐들어갔으니, 이는 나라를 위해 토벌討伐한 것이다.注+명안鳴鴈진류陳留옹구현雍丘縣 서북쪽에 있다. [부주]林: 나라가 나라에 붙었기 때문에 나라를 친 것이다.
[傳]晉侯將伐鄭하니 范文子曰 注+逞 快也 晉厲公無道 三郤驕 故欲使諸侯叛 冀其懼而思德 [附注] 朱曰 厲公將或懼而修德 故晉得以快其志이어니와 若唯鄭叛이면 晉國之憂 可立俟也니이다
진후晉侯나라를 토벌討伐하려 하니, 범문자范文子가 말하기를, “우리의 소원所願을 만족하게 이루려면 제후諸侯가 모두 우리를 배반背叛하여야 우리 나라의 가 풀릴 수 있지만,注+이다. 진려공晉厲公무도無道하고 삼극三郤교만驕慢하였다. 그러므로 제후諸侯들로 하여금 나라를 배반背叛하게 하여, 여공厲公삼극三郤이 이를 두려워해 을 생각하기를 바란 것이다. [부주]朱: 여공厲公이 장차 혹 두려워해 을 닦는다면 나라가 그 지원志願을 만족하게 이룰 수 있다는 말이다.나라만이 우리를 배반背叛한다면 우리 나라는 즉시 우환憂患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고 하였다.
欒武子曰 不可以當吾世而失諸侯 必伐鄭이라하고 乃興師하다
난무자欒武子가 말하기를, “나의 제후諸侯를 잃을 수 없으니, 반드시 나라를 토벌討伐하겠다.”고 하고서 군대를 일으켰다.
欒書將中軍하고 士燮佐之注+代荀庚 하고 郤錡將上軍注+代士燮 하고 荀偃佐之注+代郤錡 偃 荀庚子 하고 韓厥將下軍하고 郤至佐新軍하고 荀罃居守注+荀罃 下軍佐 於是郤犫代趙旃將新軍 新上下軍罷矣 하다
난서欒書중군中軍을 거느리고 사섭士燮이 그 가 되고,注+순경荀庚의 뒤를 이어 가 된 것이다. 극기郤錡상군上軍을 거느리고注+사섭士燮의 뒤를 이어 상군上軍을 거느린 것이다. 순언荀偃이 그 가 되고,注+극기郤錡의 뒤를 이어 가 된 것이다. 순경荀庚의 아들이다. 한궐韓厥하군下軍을 거느리고, 극지郤至신군新軍가 되고, 순앵荀罃거수居守(留守)가 되었다.注+순앵荀罃하군좌下軍佐이다. 이때 극주郤犫조전趙旃의 뒤를 이어 신군新軍을 거느린 것이다. 이때 신상군新上軍신하군新下軍폐지廢止되었다.
郤犫如衛타가 遂如齊하니 皆乞師焉이라
극주郤犫나라에 갔다가 드디어 나라로 갔으니, 이는 모두 원병援兵하기 위해서였다.
欒黶來乞師어늘 孟獻子曰 有勝矣注+卑讓有禮 故知其將勝楚 리라
난염欒黶나라에 와서 원병援兵하자, 맹헌자孟獻子가 말하기를, “진군晉軍에게 승리勝利가 있을 것이다.”注+몸을 낮추고 겸양謙讓하는 가 있기 때문에 나라가 장차 나라에 승리勝利할 것을 안 것이다. 고 하였다.
戊寅 晉師起하다
무인일戊寅日진군晉軍출동出動하였다.
鄭人聞有晉師하고 使告于楚러니 姚句耳與往注+句耳 鄭大夫 與往 非使也 爲先歸張本 하다
정인鄭人진군晉軍토벌討伐하러 온다는 말을 듣고 사자使者를 보내어 나라에 하게 하였는데, 그때 요구이姚句耳도 함께 갔다.注+구이句耳나라 대부大夫이다. 함께 간 것은 사신使臣으로 간 것이 아니다. 구이句耳가 먼저 돌아온 장본張本이다.
楚子救鄭 司馬將中軍注+子反 하고 令尹將左注+子重 하고 右尹子辛將右注+公子壬夫 하다
초자楚子나라를 구원救援하기 위해 출병出兵하였는데, 사마司馬중군中軍을 거느리고,注+사마司馬자반子反이다. 영윤令尹좌군左軍을 거느리고,注+영윤令尹자중子重이다. 우윤右尹자신子辛우군右軍을 거느렸다.注+자신子辛공자公子임부壬夫이다.
過申 子反入見申叔時注+叔時老在申 曰 師其何如注+[附注] 朱曰 問楚兵勝負何如 對曰 德刑詳義禮信 戰之注+器 猶用也 [附注] 朱曰 刑 法也 詳 祥也
초군楚軍신읍申邑을 지날 때 자반子反읍내邑內로 들어가서 신숙시申叔時를 보고注+이때 숙시叔時치사致仕하고서 에 있었다. “이번 출병出兵승패勝敗가 어떻겠습니까?”注+[부주]朱: 초군楚軍승부勝負가 어떻게 되겠느냐고 물은 것이다. 라고 물으니, 신숙시申叔時가 대답하기를, “전쟁戰爭에 필요한 기구器具이다.注+과 같다. [부주]朱: 이고 이다.
德以施惠하고 刑以正邪하며 以事神注+[附注] 朱曰 事神 得福而祥降焉 하고 하며 禮以順時하고 하나니 民生厚而德正注+財足則思無邪 하고 用利而事節注+動不失利 則事得其節 하며 時順而物成注+群生得所 이라야 上下和睦하고 周旋不逆注+動順理 하야 求無不具注+下應上 하야 各知其極注+無二心 이라
으로써 은혜恩惠를 베풀고, 으로써 사악邪惡을 바로잡고, 으로써 을 섬기고,注+[부주]朱: 을 섬기면 을 얻어 상서祥瑞가 내린다는 말이다. 로써 이익利益을 세우고, 로써 시의時宜순응順應하고, 으로써 군물群物수호守護하는 것이니, 백성의 생활生活이 넉넉하면 이 바르게 되고,注+재산財産풍족豊足하면 사악邪惡한 생각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유리有利한 시기에 백성을 사용하면 백성의 일이 절도節度에 맞고,注+백성을 동원함에 유리有利기회期會를 잃지 않으면 일이 그 절도節度에 맞는다는 말이다. 시의時宜순응順應하면 만물萬物이 이루어져서,注+모든 생물生物이 각각 제 자리를 얻는다는 말이다. 상하上下화목和睦하고 행동行動[周旋]이 순당順當[不逆]하여注+거동擧動도리道理를 따르는 것이다. 하면 갖추어지지 않는 것이 없어서,注+아랫사람이 윗사람의 순응順應하는 것이다. 사람마다 모두 행동行動준칙準則[極]을 알게 된다.注+두 마음이 없는 것이다.
故詩曰 立我烝民 莫匪爾極注+烝 衆也 極 中也 詩頌 言先王立其衆民 無不得中正 이라하니라
그러므로 《시경詩經》에 ‘우리 백성을 양육養育한 것이 선왕先王준칙準則에 맞지 않음이 없었다.’注+이고, 이다. 는 《시경詩經》 〈주송周頌사문편思文篇〉이다. 선왕先王중민衆民성립成立시켜 중정中正을 얻지 않음이 없게 하였다는 말이다. 고 하였다.
是以神降之福하야 時無災害하고 民生敦厖하야
그러므로 을 내려 사시四時재해災害가 없고 백성의 생활生活이 넉넉하였다.
和同以聽注+敦 厚 厖 大也 [附注] 林曰 民之生利 敦厚厖大 和同其心 唯君上之爲聽 하야 莫不盡力以從上命하고 致死以補其闕注+闕 戰死者 하니 此戰之所由克也
그러므로 민중民衆일심一心으로 단결團結하여 명령命令을 따라,注+이고, 이다. [부주]林: 백성들이 생산生産하는 재리財利후대厚大하면 서로 화목和睦하고 합심合心하여 오직 군상君上이 시키는 대로 따른다는 말이다. 힘을 다해 상명上命을 따르고 목숨을 바쳐 전사자戰死者의 빈자리를 메우지 않는 자가 없었으니,注+전사자戰死者이다. 이것이 전쟁戰爭승리勝利원인原因이다.
今楚內棄其民注+不施惠 하고 而外絶其好注+義不建利 하며 瀆齊盟注+不詳事神 하야 而食話言注+信不守物 하고 奸時以動注+禮不順時 周四月 今二月 妨農業 하야 而疲民以逞注+刑不正邪 而苟快意 하니
그런데 지금 나라는 안으로는 그 백성을 버리고,注+은혜恩惠를 베풀지 않는 것이다. 밖으로는 타국他國과의 우호友好단절斷絶하며,注+로써 이익利益을 세우지 않는 것이다. 제맹齊盟을 가벼이 여겨注+으로써 을 섬기지 않는 것이다. 맹약盟約한 말을 저버리고,注+으로써 군물群物수호守護하지 않는 것이다. 농시農時를 어기고 군대를 동원動員하여注+로써 시의時宜를 따르지 않는 것이다. 주정周正의 4월은 지금의 2월이니, 농업農業방해妨害하는 것이다. 백성을 지치게 하면서 자신의 욕망慾望을 채우려 한다.注+으로써 사악邪惡을 바로잡으려 하지 않고, 이웃 나라를 공격攻擊해 구차히 욕망慾望을 채우려 한다는 말이다.
注+[附注] 林曰 民知君上之信 或進或退 皆陷罪戾 不知所從
그러므로 백성은 무엇이 인지를 몰라 나아가도 하고 물러나도 한다.注+[부주]林: 백성이 군상君上을 알지 못하여, 나아가거나 물러나거나 모두 에 빠질 것이므로 따라야 할 바를 모른다는 말이다.
人恤所底 其誰致死注+底 至也 [附注] 朱曰 人人各憂其身 不知性命之所至 리오
사람마다 자신이 어떤 곤경困境에 이를지 몰라 근심하고 있으니, 누가 목숨 바쳐 전쟁戰爭하려 하겠는가?注+이다. [부주]朱: 사람마다 각각 자기의 몸만을 근심하여 자기의 성명性命(生命)이 어떤 지경에 이를지 몰라 두려워한다는 말이다.
子其勉之어다
그러나 그대는 부디 힘을 다하라.
吾不復見子矣注+言其必敗不反 리라
나는 다시 그대를 보지 못할 것이다.”注+반드시 패전敗戰하여 살아 돌아오지 못한다는 말이다. 라고 하였다.
姚句耳先歸하니 子駟問焉注+[附注] 林曰 鄭子駟問以楚師之强弱한대
요구이姚句耳가 먼저 돌아오니, 자사子駟나라의 정황情況을 물었다.注+[부주]林: 나라 자사子駟초군楚軍강약强弱을 물은 것이다.
對曰 其行速하고 過險而不整하니
요구이姚句耳가 대답하기를, “초군楚軍행군行軍이 빠르고, 위험危險한 곳을 지날 때도 항렬行列정제整齊하지 않습니다.注+사려思慮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速則失志注+不思慮也 하고 不整이면 喪列注+[附注] 林曰 不整則必喪其行列 이라
빠르면 생각을 할 수 없고, 정제整齊하지 않으면 항렬行列상실喪失합니다.注+[부주]林: 정제整齊하지 않으면 반드시 그 항렬行列을 잃는다는 말이다.
志失列喪이면 將何以戰이리오
생각을 할 수 없고, 항렬行列을 잃는다면 장차 어떻게 전쟁戰爭할 수 있겠습니까?
楚懼不可用也注+[附注] 林曰 楚救鄭之師 恐不可用也
초군楚軍은 아마도 신뢰信賴[用]할 수 없을 듯합니다.”注+[부주]林: 나라를 구원救援하기 위해 출동出動초군楚軍은 쓸모가 없을 듯하다는 말이다. 라고 하였다.
五月 晉師濟河注+[附注] 林曰 將伐鄭 하야 聞楚師將至하고 范文子欲反 曰 可以紓憂注+紓 緩也 [附注] 林曰 言我詐爲畏怯 逃避楚兵 君臣修省 可以緩晉國之憂 리라
5월에 진군晉軍황하黃河를 건넜는데,注+[부주]林: 나라를 토벌討伐하기 위해서이다.초군楚軍이 가까이 왔다는 말을 듣고는 범문자范文子회군回軍하고자 하며 말하기를, “우리가 만약 초군楚軍한다면 우리의 우환憂患완화緩和할 수 있을 것입니다.注+완화緩和이다. [부주]林: 우리가 두려워 겁을 먹은 것으로 위장僞裝하여 초군楚軍한다면 군신君臣수신반성修身反省하여 나라의 우환憂患완화緩和할 수 있다는 말이다.
夫合諸侯 非吾所能也 以遺能者하고 我若群臣輯睦以事君이면 多矣 武子曰 不可하다
제후諸侯규합糾合하는 일은 우리의 능력能力으로 할 수 있는 바가 아니니, 앞으로 유능有能한 자가 나와 하도록 남겨두고, 우리는 군신群臣화목和睦하게 지내며 임금을 섬긴다면 그것으로 충분[多]합니다.”고 하니, 무자武子가 “불가不可하다.”고 하였다.
六月 晉楚遇於鄢陵하야 范文子不欲戰하니 郤至曰
6월에 진군晉軍초군楚軍언릉鄢陵에서 만났는데 범문자范文子교전交戰하려 하지 않으니, 극지郤至가 말하기를,
韓之戰 惠公注+衆散敗也 在僖十五年 하고 注+死於狄也 在僖三十三年 하고 邲之師 荀伯注+荀林父奔走 不復故道 在宣十二年 皆晉之恥也
전쟁戰爭혜공惠公진려振旅하지 못하고,注+군중軍衆이 흩어져 패전敗戰하였다. 희공僖公 15년에 있었다. 전쟁戰爭선진先軫복명復命하지 못하고,注+선진先軫적군狄軍진영陣營으로 들어가 죽었다. 희공僖公 33년에 있었다. 전쟁戰爭순백荀伯이 다시 초군楚軍추격追擊하지 못한 것이注+순임보荀林父가 도망해 옛 길로 돌아오지 못한 것이다. 선공宣公 12년에 있었다. 모두 우리 나라의 치욕恥辱이었습니다.
子亦見先君之事矣注+見先君成敗之事
장군將軍께서도 선군先君 때의 이 일을 보셨을 것입니다.注+선군先君 때의 성패成敗에 관한 일을 보았을 것이라는 말이다.
今我辟楚 又益恥也 文子曰
지금 다시 우리가 초군楚軍한다면 이는 치욕恥辱을 보태는 것입니다.”라고 하니, 범문자范文子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吾先君之亟戰也 有故注+亟 數也 로라
“우리 선군先君께서 자주 전쟁戰爭하신 데에는 이유理由가 있었다.注+는 자주이다.
秦狄齊楚皆彊하니 不盡力이면 子孫將弱注+[附注] 林曰 先君若不盡力與戰 則四國競强 晉之子孫將微弱不振 일새니라
나라, , 나라, 나라가 모두 당시의 강국强國이었으니, 힘을 다해 전쟁戰爭하지 않으면 장차 자손子孫쇠약衰弱해질 것이기 때문이었다.注+[부주]林: 선군先君께서 만약 힘을 다해 저들과 전쟁戰爭하지 않았다면 네 나라가 강성强盛[競强]해져서 나라의 자손子孫이 아마 미약微弱해져 떨치지 못했을 것이다.
今三彊服矣注+齊秦狄 敵楚而已注+[附注] 林曰 與晉爲敵 僅有楚耳
그러나 지금은 세 강국强國이 모두 이미 순복順服하였고,注+세 나라는 나라, 나라, 이다. 적국敵國은 단지 나라뿐이다.注+[부주]林: 나라와 적대敵對하는 나라는 겨우 나라가 있을 뿐이라는 말이다.
唯聖人能外內無患이오 自非聖人이면 外寧必有內憂注+驕亢則憂患生也 注+[附注] 林曰 何不姑釋楚患不治 以爲晉君之
오직 성인聖人만이 외내外內 모두에 우환憂患이 없게 할 수 있고, 성인聖人이 아니고는 외우外憂가 없으면 반드시 내환內患이 있게 마련이니,注+교만驕慢하고 방자放恣하면 우환憂患이 생긴다. 어찌 초군楚軍을 그대로 보내주어 외구外懼로 삼지 않겠는가?”注+[부주]林: 어찌 우선 나라에 대한 우환憂患은 버려 두고 추구追究하지 말아 진군晉君적국외환敵國外患으로 삼지 않겠느냐는 말이다.
甲午晦 楚晨晉軍而陳注+其未備 하니 軍吏患之注+[附注] 林曰 晉之軍吏 以楚先陳爲患 하다
그믐 갑오일甲午日 새벽에 초군楚軍진군晉軍압박壓迫을 치니,注+진군晉軍대비對備하지 않은 틈을 탄 것이다.나라의 군리軍吏가 이를 근심하였다.注+[부주]林: 진군晉軍군리軍吏초군楚軍이 먼저 을 친 것을 근심한 것이다.
范匄趨進注+匄 士燮子 曰 塞井夷竈注+[附注] 林曰 軍屯 必鑿井結竈以自給 今爲楚壓晉軍 戰地迫陿 故自塞其井 自平其竈 以爲戰地 하야 陳於軍中注+[附注] 林曰 楚壓晉軍 不可出陳 故結陣於晉之軍中 호대 注+疏行首者 當陳前決開營壘爲戰道 하소서
범개范匄가 종종걸음으로 나아가注+사섭士燮의 아들이다. 말하기를, “우물을 메우고 부뚜막을 허물어 평지로 만들고서注+[부주]林: 군대軍隊주둔駐屯하면 반드시 우물을 파고 부뚜막을 쌓아[結]식수食水취사炊事를 스스로 해결한다. 그런데 지금 초군楚軍진군晉軍압박壓迫을 쳐서 교전交戰장소場所가 좁기 때문에, 스스로 그 우물을 메우고 그 부뚜막을 허물어 평지平地로 만들어 교전交戰장소場所로 삼고자 한 것이다. 군중軍中을 치되注+[부주]林: 초군楚軍진군晉軍 가까이에 을 치고 있어, 진군晉軍이 앞으로 나가 을 칠 수 없기 때문에 진군晉軍군중軍中을 친 것이다. 항렬行列 사이의 통로通路를 넓게 벌려 놓으소서.注+소행수疏行首 앞의 영루營壘를 허물고 길을 터서 전투로戰鬪路를 만드는 것이다.
晉楚唯天所授 何患焉注+[附注] 林曰 晉楚二國 勢均力敵 唯天所授 則可決勝 何患於楚 이릿가 文子執戈逐之 曰 國之存亡 天也 童子何知焉
나라와 나라는 모두 하늘이 돕는 바이니, 근심할 게 뭐 있습니까?”注+[부주]林: 두 나라는 세력勢力대등對等하지만 하늘이 돕는다면 반드시 승리勝利할 수 있으니, 초군楚軍을 근심할 게 뭐 있느냐는 말이다. 라고 하니, 문자文子가 창을 들고 쫓아가며 말하기를, “나라의 존망存亡은 하늘에 달린 것인데, 어린놈이 무엇을 안다고 함부로 말하느냐?”고 하였다.
欒書曰 楚師輕窕注+[附注] 林曰 窕 亦輕也 하니 固壘而待之 三日必退하리라
난서欒書가 말하기를, “초군楚軍경박輕薄하고 침착沈着하지 못하니,注+[부주]林: 경박輕薄함이다. 우리가 보루堡壘를 굳게 지키며 기다리면 3일 뒤에는 반드시 물러갈 것이다.
退而擊之 必獲勝焉이리라
저들이 물러갈 때 공격攻擊하면 반드시 승리勝利할 수 있을 것이다.”고 하였다.
郤至曰 楚有六間하니 不可失也注+[附注] 林曰 言楚之間隙有六 不可失此機會
극지郤至가 말하기를, “초군楚軍에는 우리가 노릴 수 있는 여섯 개의 틈이 있으니 기회機會를 잃어서는 안 됩니다.注+[부주]林: 초군楚軍에게 여섯 개의 틈이 있으니, 이 기회機會를 잃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其二卿相惡注+子重子反 [附注] 林曰 二卿相惡不和 一間也 하며 王卒注+罷老不代 [附注] 林曰 楚王之親兵 罷老不代 二間也 鄭陳而不整注+不整列 [附注] 林曰 鄭師從楚 雖成陣 而不整齊 三間也 하며 蠻軍而不陳注+蠻夷從楚者不結陳 [附注] 林曰 四間也 하며 注+晦 月終 陰之盡 故兵家以爲忌 [附注] 林曰 楚壓晉軍而陳 不避晦日 五間也 하며 在陳而囂注+囂 喧嘩也 하고 合而加囂注+陳合宜靜 而益有聲 니이다
저들은 두 불화不和하며,注+이경二卿자중子重자반子反이다. [부주]林: 두 이 서로 미워하여 화목和睦하지 못한 것이 첫 번째 틈이다.초왕楚王친병親兵은 너무 지치고 노쇠老衰하였으며,注+지치고 늙은 군대를 교체交替하지 않은 것이다. [부주]林: 초왕楚王친병親兵이 지치고 늙었는데도 교체交替하지 않은 것이 두 번째 틈이다.정군鄭軍을 쳤으나 정제整齊되지 못하였으며,注+대열隊列정돈整頓되지 않은 것이다. [부주]林: 초군楚軍을 따라 출전出戰정군鄭軍이 비록 을 쳤으나 대열隊列정제整齊되지 않은 것이 세 번째 틈이다.만인蠻人군세軍勢는 이루었으나 을 치지 않았으며,注+초군楚軍을 따라온 만이蠻夷을 치지 않은 것이다. [부주]林: 이것이 네 번째 틈이다.을 치되 그믐날을 피하지 않았으며,注+그믐은 그 달이 끝나는 날이다. 이 다하는 날이기 때문에 병가兵家가 꺼리는 것이다. [부주]林: 초군楚軍이 그믐날을 하지 않고 진군晉軍 가까이에 을 친 것이 다섯 번째 틈이다.진중陣中에서 시끄럽게 떠들고注+는 시끄럽게 떠드는 것이다. 합진合陣하고서는 더욱 시끄럽게 떠듭니다.注+합진合陣하면 조용해야 하는데 더욱 시끄러운 소리가 나는 것이다.
各顧其後하야 莫有鬪心注+人恤其所底 [附注] 林曰 各懷其後顧之心 莫有戰鬪之心 六間也 하고 舊不必良이어늘 以犯天忌하니 我必克之注+[附注] 朱曰 士卒以舊 未必精兵 又不違晦以犯天時之忌 以此觀之 晉必勝楚 리라
각군各軍병사兵士들은 뒤를 돌아보며 투지鬪志가 없고,注+사람마다 위험危險경지境地에 빠질 것을 걱정하는 것이다. [부주]林: 사람마다 각각 뒤를 돌아보는 생각을 품고 전투戰鬪할 마음이 없는 것이 여섯 번째 틈이다. 지치고 노쇠老衰한 군대는 반드시 강병强兵이 아닌데, 또[以]천기天忌까지 하였으니, 우리가 반드시 승리勝利할 것입니다.”注+[부주]朱: 사졸士卒이 너무 지치고 노쇠老衰하였으니 반드시 정병精兵이 아닌데다가, 또 그믐날을 하지 않아 꺼리는 천시天時하였으니, 이로써 보면 진군晉軍이 반드시 초군楚軍을 이길 수 있다는 말이다. 라고 하였다.
楚子登巢車하야 以望晉軍注+巢車 車上爲櫓 하니 子重使大宰伯州犂侍王後注+州犂 晉伯宗子 前年奔楚 하다
초자楚子소거巢車에 올라 진군晉軍조망眺望하니,注+소거巢車는 수레 위에 망루望樓설치設置한 수레이다.자중子重태재太宰백주리伯州犂를 보내어 초왕楚王을 뒤에서 모시게 하였다.注+백주리伯州犂나라 백종伯宗의 아들로 전년前年나라로 출분出奔한 자이다.
王曰 騁而左右 何也注+騁 走也 [附注] 林曰 言晉軍有騶走者 或左或右 何也 曰 召軍吏也注+[附注] 林曰 州犂答니이다
백주리伯州犂에게 “진군晉軍병거兵車가 혹은 로 혹은 로 달리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注+은 달리는 것이다. [부주]林: 달리는 진군晉軍 중에 혹은 로 혹은 로 달려가는 자가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이냐는 말이다.라고 묻자, 백주리伯州犂가 “군리軍吏를 불러 모으는 것입니다.”注+[부주]林: 백주리伯州犂가 대답한 말이다. 고 대답하였다.
皆聚於中軍矣注+[附注] 林曰 王又問 今皆聚會於中軍 何也 曰 合謀也니이다
이 “진군晉軍군리軍吏가 모두 중군中軍으로 모였다.”注+[부주]林: 초왕楚王이 또 ‘지금 진군晉軍이 모두 중군中軍으로 모인 것은 무엇 때문이냐?’고 물은 것이다. 고 하니, 백주리伯州犂가 “함께 모의謀議하려는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張幕矣注+虔 敬也 니이다
이 “장막帳幕을 친다.”고 하니, 백주리伯州犂가 “이는 선군先君신주神主 앞에서 경건敬虔길흉吉凶치기 위함입니다.”注+이다. 라고 하였다.
徹幕矣 曰 將發命也니이다
이 “장막帳幕을 걷는다.”고 하니, 백주리伯州犂가 “명령命令발표發表하려는 것입니다.”고 하였다.
甚囂하고 且塵上矣 曰 將塞井夷竈而注+夷 平也 니이다
이 “매우 시끄럽게 떠들고, 또 먼지가 인다.”고 하니, 백주리伯州犂가 “우물을 메우고 부뚜막을 허물어 평지平地로 만들고서 항렬行列을 펼치려는 것입니다.”注+이다. 고 하였다.
皆乘矣라가 左右執兵而下矣 曰 聽注+左 將帥 右 車右 니이다
이 “모두 병거兵車에 올랐는데, 거좌車左거우車右는 무기를 들고 병거兵車에서 내리고 있다.”고 하니, 백주리伯州犂가 “이는 서명誓命을 듣기 위함입니다.”注+장수將帥이고 거우車右이다. 고 하였다.
戰乎 曰 未可知也니이다
이 “저들이 교전交戰하려는 것인가?”라고 물으니, 백주리伯州犂가 “아직은 알 수 없습니다.”고 하였다.
乘而左右皆下矣 曰 戰禱也注+禱 請於鬼神 니이다
이 “병거兵車에 올랐다가 거좌車左거우車右가 모두 병거兵車에서 내린다.”고 하니, 백주리伯州犂가 “교전交戰에 앞서 신명神明기도祈禱하기 위함입니다.”注+귀신鬼神에게 도움을 하는 것이다. 고 하였다.
伯州犂以公卒告王注+公 晉侯 [附注] 林曰 伯州犂 晉人 知晉之情 故以晉侯之卒告共王하고 苗賁皇在晉侯之側하야
백주리伯州犂공졸公卒(晉厲公의 친병親兵)의 정황情況초왕楚王에게 하고,注+진후晉侯이다. [부주]林: 백주리伯州犂나라 사람이어서 나라의 실정實情을 잘 알기 때문에 진후晉侯친병親兵정황情況공왕共王에게 한 것이다.묘분황苗賁皇진후晉侯의 곁에서 왕졸王卒(楚王의 친병親兵)의 정황情況진후晉侯에게 하였다.注+묘분황苗賁皇나라 투초鬪椒의 아들로 선공宣公 4년에 나라로 출분出奔한 자이다.
亦以王卒告注+賁皇 楚鬪椒子 宣四年奔晉 하다 皆曰 하고 且厚하니 不可當也注+晉侯左右皆以伯州犂在楚 知晉之情 且謂楚衆多 故憚合戰 與苗賁皇意異 [附注] 林曰 厚 衆多也 니이다
진군晉軍장수將帥들은 모두 “국사國士(伯州犂를 이름)가 나라 군중軍中에 있고, 또 초군楚軍수효數爻가 많으니 대적對敵할 수 없다.”注+진후晉侯좌우左右는 모두 백주리伯州犂초군楚軍에 있으므로 나라의 정황情況을 잘 알고 있을 것으로 여겼고, 또 초군楚軍의 수효가 많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회전會戰하기를 꺼렸으니, 묘분황苗賁皇의 생각과 달랐던 것이다.[부주]林: 는 군대가 많은 것이다.고 하였다.
苗賁皇言於晉侯曰 楚之良 在其中軍王族而已注+[附注] 林曰 言楚之精兵 皆在其中軍 王族之兵 最精而已 請分良以擊其左右注+[附注] 林曰 請分晉精兵 以擊楚之左右二軍 하고 而三軍萃於王卒注+萃 集也 이면 必大敗리다
그러자 묘분황苗賁皇이 말하기를, “나라의 정병精兵중군中軍에 있는 왕족王族뿐이니,注+[부주]林: 나라의 정병精兵이 모두 그 중군中軍에 있으나, 왕족王族으로 이루어진 군대軍隊만이 가장 정병精兵일 뿐이라는 말이다. 우리의 정병精兵을 나누어 나라의 좌우군左右軍공격攻擊하고서注+[부주]林: 나라의 정병精兵을 나누어 나라의 좌우군左右軍공격攻擊하기를 한 것이다. 삼군三軍나라의 왕졸王卒집중공격集中攻擊하면注+이다. 반드시 초군楚軍대패大敗시킬 수 있습니다.”고 하였다.
公筮之하니 史曰 吉이니이다
진후晉侯태사太史에게 을 치게 하니, 태사太史가 점을 치고서 말하기를, “합니다.
其卦遇復☷☳注+震下坤上 復 無變 하니 曰南國蹙하고 射其元王하니 中厥目注+此卜者辭也 復 陽長之卦 陽氣起子 南行推陰 故曰南國蹙也 南國勢蹙 則離受其咎 離爲諸侯 又爲目 陽氣激南 飛矢之象 故曰 射其元王中厥目 이라하니
복괘復卦를 만났으니,注+하괘下卦이고 상괘上卦인 것이 복괘復卦이다. 여기의 복괘復卦동효動爻가 없어 다른 하지 않았다. 점사占辭에 ‘남방南方의 나라가 위축萎縮될 것이고, 그 에게 활을 쏘니 화살이 그 눈에 꽂힌다.’注+이것은 복자卜者의 말이다. 이 자라나는 이다. 의 기운이 자방子方에서 일어나 남방南方으로 가면서 음기陰氣를 밀어내기 때문에 남국南國위축萎縮된다고 한 것이다. 남국南國형세形勢위축萎縮되면 제후諸侯[離]가 그 재앙災殃을 받는다. 제후諸侯상징象徵하고 또 눈을 상징象徵한다. 의 기운이 남방南方으로 급진急進[激]하는 것이 화살이 날아가는 형상形象과 같기 때문에 ‘그 원왕元王을 쏘아 그 눈을 맞힌다.’고 한 것이다. 고 하였습니다.
國蹙王傷이면 不敗何待릿가 公從之注+從其言而戰 하다
나라가 위축萎縮되고 부상負傷한다면 하지 않고 무엇을 기다리겠습니까?”라고 하니, 진후晉侯묘분황苗賁皇계획計劃을 따라 전쟁戰爭하기로 하였다.注+묘분황苗賁皇의 말을 따라 전쟁戰爭한 것이다.
有淖於前注+淖 泥也 하니 乃皆左右相違於淖注+違 辟也 하다
진군晉軍전면前面에 진창이 있어,注+는 진창이다.진군晉軍은 모두 혹은 로 혹은 로 진창을 피해 갔다.注+는 피하는 것이다.
步毅御晉厲公하고 欒鍼爲右注+步毅 卽郤毅 하며 彭名御楚共王하고 潘黨爲右하며 石首御鄭成公하고 唐苟爲右하다
이때 진군晉軍에는 보의步毅진려공晉厲公가 되고, 난침欒鍼거우車右가 되었으며,注+보의步毅는 바로 극의郤毅이다. 초군楚軍에는 팽명彭名초공왕楚共王가 되고, 반당潘黨거우車右가 되었으며, 정군鄭軍에는 석수石首정성공鄭成公가 되고 당구唐苟거우車右가 되었다.
欒范以其族夾公行注+二族强 故在公左右 타가 陷於淖어늘 한대
난서欒書범문자范文子가 그 족속族屬을 거느리고 좌우左右에서 진려공晉厲公의 수레를 호위扈衛해 가다가注+종족宗族하기 때문에 진려공晉厲公좌우左右에 있은 것이다. 여공厲公의 수레가 진창에 빠지니, 난서欒書가 자기의 수레에 진후晉侯를 태우려 하였다.
鍼曰 書退하라
그러자 난침欒鍼이 “난서欒書는 물러나시오.
注+在君前 故子名其父 大任 謂元帥之職 [附注] 林曰 言書旣當大任 又安得專命復爲리오
국가國家관원官員은 각기 맡은 대임大任이 있는데, 어찌 모든 일을 전담專擔하려 하십니까?注+임금의 면전面前이기 때문에 자식이 그 아비의 이름을 부른 것이다. 대임大任원수元帥직임職任을 이른 것이다. [부주]林: 난서欒書가 이미 대임大任을 맡았으면서, 또 어찌 임금의 을 받지도 않고 멋대로 융거戎車(임금의 수레)의 가 될 수 있느냐는 말이다.
且侵官 冒也注+載公爲侵官 失官 慢也注+去將而御 失官也 離局 姦也注+遠其部曲 爲離局
또 다른 관원官員직권職權침범侵犯하는 것은 이고,注+난서欒書여공厲公을 자기 수레에 태운다면 다른 관원官員직임職任침범侵犯함이 된다. 자기의 직무職務를 버리는 것은 이고,注+장수將帥직무職務를 버리고 어자御者의 일을 하는 것은 자기의 직무職務를 버리는 것이다. 자기의 부대部隊를 벗어나는 것은 입니다.注+자기의 부대部隊[部曲]에서 멀리 떨어지면 위치位置를 벗어나는 것이 된다.
有三罪焉이니 不可犯也라하고 乃掀公以出於淖注+掀 擧也 하다
만약 옮겨 태운다면 이 세 가지 가 있게 되니, 침범侵犯해서는 안 됩니다.”라고 하고서, 여공厲公의 수레를 들어 진창에서 빠져 나오게 하였다.注+은 드는 것이다.
癸巳 潘尫之黨與養由基蹲甲而射之하야 徹七札焉注+黨 潘尫之子 蹲 聚也 一發達七札 言其能陷堅 하고 以示王 曰 君有二臣如此하니 何憂於戰注+二子以射夸王이릿가 王怒曰 注+賤其不尙知謀 이로다
계사일癸巳日반왕潘尫의 아들 반당潘黨양유기養由基와 함께 갑옷을 포개어 놓고 활을 쏘아 일곱 겹[札]을 뚫고는注+반당潘黨반왕潘尫의 아들이다. 은 모음[聚]이다. 한 번 쏘아 일곱 겹을 뚫었다는 것은 견고堅固한 것을 뚫을 수 있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그 갑옷을 초왕楚王에게 보이며 말하기를, “군왕君王께는 이러한 두 신하臣下가 있으니, 전쟁戰爭을 근심할 게 뭐 있습니까?”注+두 사람이 활 솜씨를 에게 과시誇示한 것이다. 라고 하니, 초왕楚王하여 말하기를, “크게 나라를 되게 하는 짓이다.注+그들이 지모知謀숭상崇尙하지 않는 것을 하게 여긴 것이다.
詰朝爾射 死藝注+言女以射自多 必當以藝死也 詰朝 猶明朝 是戰日 하리라
내일 아침에 너희들이 활을 쏜다면 그 활 솜씨 때문에 죽을 것이다.”注+너희가 활 솜씨를 스스로 뽐낸다면 반드시 그 솜씨 때문에 죽을 것이라는 말이다. 힐조詰朝명조明朝와 같은 말이니, 바로 교전일交戰日을 이른 것이다. 고 하였다.
呂錡夢射月中之하고 退入於泥注+呂錡 魏錡 하다 占之하니 曰 姬姓 日也注+周世姬姓尊 異姓 月也注+異姓卑 必楚王也
전쟁戰爭에 앞서 나라 여기呂錡가 달을 쏘아 맞히고 물러나 진창으로 들어간 꿈을 꾸고는注+여기呂錡위기魏錡이다. 그 꿈의 길흉吉凶치니, 복인卜人이 말하기를, “희성姬姓은 해(日)이고,注+주대周代희성姬姓존귀尊貴하였다. 이성異姓은 달(月)이니,注+이성異姓비천卑賤하였다. 그 달은 초왕楚王이 틀림없습니다.
射而中之하고 退入於泥하니 亦必死矣注+錡自入泥 亦死象 리라
그러나 활을 쏘아 맞히고 물러나다가 진창에 빠졌으니, 당신도 반드시 죽을 것입니다.”注+여기呂錡가 스스로 진창으로 들어갔으니, 역시 죽음을 상징象徵한 것이다. 고 하였다.
及戰 射共王中目하니
교전交戰할 때에 미쳐 여기呂錡초왕楚王을 쏘아 눈을 맞혔다.
王召養由基하야 與之兩矢하야 使射呂錡하니 中項伏弢注+弢 弓衣 [附注] 林曰 中呂錡之項 伏於弓衣而死 하다
초왕楚王양유기養由基를 불러 화살 두 대를 주어 여기呂錡를 쏘게 하니, 여기呂錡는 목에 화살을 맞고 활집에 엎어져 죽었다.注+궁의弓衣(활집)이다. [부주]林: 여기呂錡의 목을 맞히니, 활집에 엎어져 죽은 것이다.
以一矢復命注+言一發而中 하다
양유기養由基는 남은 한 대의 화살은 가지고 와서 초왕楚王에게 복명復命하였다.注+한 번 쏘아 맞혔다는 말이다.
郤至三遇楚子之卒이러니 見楚子 必下하야 注+疾如風 한대
극지郤至초자楚子친병親兵을 세 차례 만났는데, 초자楚子를 볼 때마다 반드시 병거兵車에서 내려 투구를 벗고 질풍疾風처럼 빨리 지나갔다.注+바람처럼 빨리 지나간 것이다.
楚子使工尹襄問之以弓注+問 遺也 [附注] 林曰 工尹 楚官 名襄 曰 方事之殷也注+殷 盛也 有韎韋之跗注하니 君子也注+韎 赤色 跗注 戎服若袴而屬於跗 與袴連
초자楚子공윤工尹사자使者로 보내어 극지郤至에게 활을 선물膳物로 주며注+은 주는 것이다. [부주]林: 공윤工尹나라의 관명官名이고 인명人名이다. 말하게 하기를, “전투戰鬪[事]가 격렬激烈[殷]한 때에注+이다. 붉은 숙피熟皮[韎韋]로 지은 융복戎服[跗注]을 입은 이가 있었으니, 이는 군자君子였다.注+적색赤色이고, 부주跗注융복戎服으로 바지처럼 만들어 발등에 붙게 하고, 바지와 연결連結한다.
하니 無乃傷乎注+恐其傷 [附注] 林曰 此皆問勞郤至之辭
나를 보자마자 빨리 피하였으니, 혹시 부상負傷하지나 않았는가?”注+그가 부상負傷했을까 염려念慮[恐]한 것이다. [부주]林: 이것은 모두 극지郤至위로慰勞한 말이다.라고 하였다.
郤至見客하고 免冑承命 曰 君之外臣至注+[附注] 林曰 郤至對楚使 故自稱外臣至 從寡君之戎事하야 以君之靈으로 注+間 猶近也 일새 不敢拜命注+介者不拜 하고
극지郤至공윤工尹[客]을 접견接見할 때 투구를 벗고 초왕楚王접수接受하며 말하기를, “군왕君王외신外臣注+[부주]林: 극지郤至나라 사자使者상대相對하기 때문에 ‘외신지外臣至’라고 자칭自稱한 것이다. 우리 임금님의 융사戎事(戰爭)에 따라와서, 군왕君王위령威靈(名聲과 위세威勢)을 힘입어 갑주甲冑를 입는 대열隊列참여參與하였으므로注+과 같다. 감히 군왕君王을 절하고 받을 수 없습니다.注+갑옷을 입은 자는 절하지 않는 것이다.
敢告不寧君命之辱注+以君辱賜命 故不敢自安 하노이다
감히 하건대 군왕君王을 받자오니 실로 불안不安해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注+초군楚君을 내렸기 때문에 감히 스스로 편안하게 여길 수 없다는 말이다.
注+言君辱命來問 以有軍事不得答 故肅使者 肅 手至地 若今撎 라하고 三肅使者而退하다
전쟁戰爭이기 때문에 감히 사자使者에게 숙배肅拜할 뿐입니다.”注+초군楚君을 내려 사자使者를 보내 와서 위문慰問하였으나, 극지郤至군사軍事가 있어 답배答拜를 할 수 없으므로 사자使者에게 숙배肅拜한 것이다. 숙배肅拜는 손이 땅에 이르는 것으로 지금의 과 같다.라고 하고서 사자使者에게 세 번 숙배肅拜하고서 물러갔다.
晉韓厥從鄭伯注+從 逐也 其御杜溷羅曰 速從之하소서
진장晉將한궐韓厥정백鄭伯추격追擊할 때注+은 뒤쫓는 것이다. 그의 두혼라杜溷羅가 말하기를, “빨리 추격追擊하십시오.
其御屢顧하고 不在馬하니 可及也注+[附注] 林曰 心不在御馬니이다 韓厥曰 不可以이라하고 乃止注+二年鞍戰 韓厥已辱齊侯 하다
정백鄭伯가 뒤를 자주 돌아보고 그 마음이 말을 모는 데 있지 않으니, 따라잡을 수 있습니다.”注+[부주]林: 마음이 말을 모는 데 있지 않다는 말이다. 라고 하자, 한궐韓厥은 “재차再次국군國君에게 치욕恥辱을 끼칠 수 없다.”고 하고서 추격追擊을 멈추었다.注+성공成公 2년에 있었던 전쟁戰爭 때, 한궐韓厥제후齊侯에게 치욕恥辱을 끼친 일이 있었다.
郤至從鄭伯하니 其右茀翰胡曰 諜輅之
극지郤至정백鄭伯추격追擊하니, 그의 거우車右불한호茀翰胡가 말하기를, “정탐병偵探兵[諜]을 보내어 정백鄭伯의 앞을 막게 하십시오.
余從之乘하야 而俘以下注+欲遣輕兵單進 以距鄭伯車前 而自後登其車以執之 [附注] 林曰 欲遣諜 以輕兵迎輅鄭伯 以距其車前 我自後登鄭伯之車 而俘執鄭伯以下車 하리이다
그러면 나는 뒤에서 정백鄭伯의 수레로 올라가 정백鄭伯을 사로잡아 가지고 내려오겠습니다.”注+경병輕兵을 보내어 단독單獨으로 가서 정백鄭伯의 수레 앞을 막게 하고, 자신은 뒤에서 정백鄭伯의 수레로 올라가 정백鄭伯을 잡고자 한다는 말이다. [부주]林: 정찰병偵察兵[諜]을 보내어 가벼운 무장武裝으로 가서 정백鄭伯을 맞이해 그 수레 앞을 막게 하면, 나는 뒤에서 정백鄭伯의 수레로 올라가 정백鄭伯을 사로잡아 가지고 수레에서 내려오고자 한다는 말이다.라고 하였다.
郤至曰 傷國君有刑이라하고 亦止하다
그러자 극지郤至는 “국군國君에게 상해傷害를 입히면 형벌刑罰을 받게 된다.”고 하고서, 역시 추격追擊을 멈추었다.
石首曰 衛懿公唯不去其旗 是以敗於熒이라하고 乃內旌於弢中注+熒戰在閔二年 하다
석수石首정백鄭伯에게 말하기를, “위의공衛懿公이 그 군기軍旗를 버리지 않았기 때문에 에서 참패慘敗한 것입니다.”라고 하고서 군기軍旗를 말아 활집에 넣었다.注+전쟁戰爭민공閔公 2년에 있었다.
唐苟謂石首曰 子하라
당구唐苟석수石首에게 이르기를, “그대는 임금님 곁에 계십시오.
어늘 我不如子하니 子以君免하라
패전敗戰한 군대는 임금님 보호保護전념專念해야 하는데, 이 일은 내가 그대만 못하니, 그대는 임금을 모시고 [免]하십시오.
我請止하노라하고 乃死注+敗者壹大 謂軍大崩也 言石首亦君之親臣而執御 與車右不同 故首當御君以退 己當死戰 하다
나는 남아서 을 막겠소.”라고 하고서, 진군晉軍을 막다가 전사戰死하였다.注+패자일대敗者壹大군대軍隊대패大敗[大崩]한 것을 이른다. 석수石首정군鄭君친신親臣이지만 수레를 모는 어자御者가 되었기 때문에 그 처지處地거우車右와 다르다. 그러므로 석수石首는 임금을 모시고 퇴각退却해야 하고, 나는 죽음을 무릅쓰고 싸워야 한다고 말한 것이다.
注+薄 迫也 하니 叔山冉謂養由基曰 雖君有命이나 爲國故하야 子必射注+王有死藝命 하라 乃射하야
초군楚軍한 곳으로 밀리자,注+이다.숙산염叔山冉양유기養由基에게 말하기를, “비록 활을 쏘지 말라는 왕명王命이 계셨으나 국가國家를 위하여 그대는 반드시 활을 쏘시오.”注+활 솜씨 때문에 죽을 것이라는 왕명王命이 있었던 것을 이른다. 라고 하였다.
再發盡殪하고 叔山冉搏人以投하야 中車折軾하니 晉師乃止注+言二子皆有過人之能 하다
이에 양유기養由基진군晉軍해 활을 쏘았는데 두 대를 쏘아 진군晉軍 둘을 죽이고, 숙산염叔山冉진군晉軍생포生捕해 던졌는데 진군晉軍병거兵車에 맞아 그 병거兵車이 부러지니, 진군晉軍진격進擊을 멈추었다.注+두 사람 모두 남보다 뛰어난 재능才能이 있었음을 말한 것이다.
囚楚公子茷注+爲郤至見譖張本 하다
진군晉軍나라 공자公子포로捕虜로 잡았다.注+극지郤至참소讒訴를 당하게 된 장본張本이다.
欒鍼見子重之旌하고 請曰注+[附注] 林曰 請於晉厲公 楚人謂夫旌 子重之麾也라하니 彼其子重也注+[附注] 林曰 言楚人謂夫所見之旌旗 令尹子重之麾節也 彼其子重之所在也 니이다
난침欒鍼자중子重정기旌旗를 보고서, 진후晉侯에게 하기를,注+[부주]林: 진려공晉厲公에게 한 것이다.초인楚人(晉軍의 포로捕虜가 된 초인楚人)이 저 정기旌旗자중子重지휘기指揮旗라 하니, 저 정기旌旗 아래에 있는 사람이 아마도 자중子重일 것입니다.注+[부주]林: 초인楚人이 ‘저 보이는 정기旌旗영윤令尹자중子重지휘기指揮旗이다.’고 하니, 저기가 아마도 자중子重이 있는 곳일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日臣之使於楚也 子重問晉國之勇이어늘 臣對曰 好以衆整注+[附注] 林曰 言晉國好以整齊軍旅爲勇 이라하고 曰 又何如注+又問其餘 오하야늘 臣對曰 好以暇注+ [附注] 林曰 雖急遽之中 好以閑暇爲勇 라하니이다
전일前日나라에 사신使臣으로 갔을 적에 자중子重진군晉軍무용武勇에 대해 묻기에, 이 ‘군용軍容정숙整肅한 것을 좋아한다.’注+[부주]林: 나라는 군대를 정제整齊하는 것을 무용武勇으로 삼기 좋아한다는 말이다. 고 대답하자, 자중子重이 ‘그 밖에 또 어떤 것이 있는가?’注+또 그 밖의 것을 물은 것이다. 라고 묻기에, 이 ‘일에 임하여 서둘지 않고 침착沈着한 것을 좋아한다.’注+한가閒暇이다.[부주]林: 아무리 급박急迫한 중이라도 한가閒暇한 것을 무용武勇으로 삼기 좋아한다는 말이다.고 대답하였습니다.
今兩國治戎 行人不使 不可謂整注+[附注] 林曰 兵交使在其間 今不使行人使于楚이오 臨事而食言이면 不可謂暇注+食好整之言 請攝飮焉注+ 持也 持飮往飮子重하노이다 公許之하니
그런데, 지금 두 나라가 교전交戰하면서 사자使者[行人]를 보내지 않으면 정숙整肅을 좋아한다 할 수 없고,注+[부주]林: 전쟁戰爭에는 두 진영陣營 사이에 사자使者왕래往來가 있는 것인데, 지금 사자使者초군楚軍에 보내지 않았다는 말이다. 전쟁戰爭하여 에 한 말을 실천實踐하지 않으면 침착沈着을 좋아한다 할 수 없으니,注+정제整齊를 좋아한다고 한 말을 실천實踐하지 않는 것이다. 대신 사람을 보내어 자중子重에게 술을 내리소서.”注+은 가지는 것[持]이니, 술[飮]을 가지고 가서 자중子重에게 먹이는 것이다. 라고 하니, 진려공晉厲公이 이를 허락許諾하였다.
使行人하야 造于子重注+承 奉也 [附注] 林曰 榼 飮器 曰 寡君乏使하야 使鍼御持矛注+御 侍也 [附注] 林曰 車主擊刺 持矛其職也 是以不得犒從者하야 使某攝飮하노라
그러자 난침欒鍼사자使者로 하여금 술통[榼]에 술을 담아[承] 가지고 자중子重에게 가서注+은 받들어 올리는 것이다. [부주]林: 은 술을 마시는 그릇이다. “우리 임금께는 부릴 만한 사람이 부족하여 나 난침欒鍼에게 창을 들고 시위侍衛하게注+시위侍衛하는 것이다. [부주]林: 거우車右을 찔러 죽이는 일을 맡으니, 창을 잡는 것은 거우車右직분職分이다. 하셨으므로 직접 가서 장군將軍종자從者들을 호궤犒饋할 수 없어, 대신 아무개를 보내어 술을 올립니다.”라고 말하게 하니,
子重曰 夫子嘗與吾言於楚하니 必是故也
자중子重이 말하기를, “부자夫子(相對에 대한 경칭敬稱으로 난침欒鍼을 이름)가 일찍이 나와 나라에서 말한 적이 있었으니, 술을 보낸 것은 틀림없이 그 말 때문일 것이다.
注+知其以往言好暇故致飮 [附注] 林曰 不亦識於禮乎 受而飮之하고 免使者而復鼓注+免 脫也 하다
참으로 기억력記憶力이 좋지 않은가?”注+자중子重난침欒鍼한가閑暇함을 좋아한다고 말했기 때문에 술을 보낸 것임을 안 것이다. [부주]林: 그 또한 를 아는 사람이 아닌가?라고 하고서, 그 술을 받아 마신 다음 사자使者를 돌려보내고서 다시 북을 울려 전쟁戰爭지휘指揮하였다.注+은 벗어나는 것이다.
旦而戰하야 見星未已注+[附注] 林曰 至夜星出戰猶未已 하다
이 날 새벽부터 시작한 전쟁戰爭이 별이 보일 때까지 끝나지 않았다.注+[부주]林: 밤이 되어 별이 떴는데도 전쟁戰爭이 끝나지 않은 것이다.
子反命軍吏察夷傷注+夷 亦傷也하야 補卒乘注+補死亡 하며 繕甲兵注+繕 治也 하며 注+展 陳也 하고 雞鳴而食하야 唯命是聽注+復欲戰 하라하다
자반子反군리軍吏하여 부상자負傷者를 살펴注+도 상처[傷]이다. 보병步兵거병車兵보충補充하고,注+사망자死亡者의 자리를 보충補充하는 것이다. 갑옷과 무기를 수선하고,注+수리修理하는 것이다. 전마戰馬[車馬]를 살피고,注+진열陳列하는 것이다. 닭이 울 때 밥을 먹고서 명령命令을 기다리게[聽] 하였다.注+다시 전쟁戰爭하려 한 것이다.
晉人患之하니 苗賁皇徇曰 蒐乘補卒注+蒐 閱也 [附注] 林曰 蒐閱車乘 補益士卒 하며 秣馬利兵注+秣 穀馬也 하며 脩陳固列注+固 堅也 하고 蓐食申禱注+申 重也 하라
진인晉人이 이를 걱정하니, 묘분황苗賁皇군중軍中명령命令선포宣布[徇]하기를, “병거兵車검열檢閱하고 병졸兵卒보충補充하며,注+검열檢閱하는 것이다. [부주]林: 병거兵車검열檢閱하고 사졸士卒보충補充하는 것이다. 말을 배불리 먹이고 병기兵器를 날카롭게 갈며,注+은 말에게 여물을 먹이는 것이다. 군진軍陣정돈整頓[修]하고 항렬行列공고鞏固히 하고,注+견고堅固하게 하는 것이다. 새벽에 밥을 먹고 나서 거듭 기도祈禱하라.注+은 거듭함이다.
明日復戰하리라하고 乃逸楚囚注+逸 縱也 [附注] 朱曰 故縱楚兵之俘獲者 欲使歸而言之 하다
내일 다시 전쟁戰爭할 것이다.”고 하고서, 나라 포로捕虜를 놓아주었다.注+은 놓아준 것이다. [부주]朱: 포로捕虜로 잡은 초병楚兵을 고의로 놓아준 것은 돌아가서 진군晉軍정황情況을 말하게 하고자 해서이다.
王聞之하고 召子反謀注+[附注] 林曰 欲與之謀戰備러니 穀陽豎獻飮於子反하야 子反醉而不能見注+穀陽 子反內豎 하니 王曰 天敗楚也夫ᄂ저
초왕楚王은 이 말을 전해 듣고 자반子反을 불러 대책對策상의商議하려 하였는데,注+[부주]林: 자반子反전쟁戰爭대비對備상의商議하고자 한 것이다. 자반子反곡양수穀陽豎가 올린 술을 마시고서 하여 초왕楚王을 뵈러 오지 않으니,注+곡양穀陽자반子反의 집안에서 부리는 가신家臣이다. 초왕楚王은 “하늘이 나라를 패망敗亡시키는구나.
余不可以待라하고 乃宵遁하다
나는 앉아서 패망敗亡을 기다릴 수 없다.”고 하고서 밤에 군대를 이끌고 도주逃走하였다.
晉入楚軍하야 三日穀注+食楚粟三日也 하다
진군晉軍나라의 군영軍營으로 들어가서 3일 동안 머물며 초군楚軍이 버리고 간 군량軍糧을 먹었다.注+초군楚軍곡식穀食을 3일 동안 먹은 것이다.
范文子立於戎馬之前曰 君幼하고 諸臣不佞注+佞 才也 注+戒勿驕 이어늘 何以及此
범문자范文子융마戎馬(晉侯의 수레를 끄는 말) 앞에 서서 말하기를, “께서는 유약幼弱하시고 신하臣下들은 무능無能한데,注+자만自慢하지 말라고 경계警戒한 것이다. 注+이다. 어떻게 이런 승리勝利를 얻었는지요?
하소서
께서는 경계警戒하소서.
周書曰 惟命不于常이라하니 有德之謂注+周書 康誥 言勝無常命 惟德是與 니이다
주서周書〉에 ‘천명天命은 항상 한 곳에 머물지 않는다.’고 하였으니, 이는 천명天命이 있는 사람에게 돌아간다는 것을 이른 말입니다.”注+주서周書는 〈강고康誥〉이다. 승리勝利에는 항상 천명天命이 있는 것이 아니고, 하늘은 오직 이 있는 사람을 돕는다는 말이다. 고 하였다.
楚師還하야 及瑕注+瑕 楚地 하니 王使謂子反曰 先大夫之覆師徒者 君不在注+謂子玉敗城濮時 王不在軍 子無以爲過하라
초군楚軍환군還軍하여 에 이르니,注+나라 땅이다.초왕楚王자반子反에게 사람을 보내어 이르기를, “선대부先大夫(子反의 선친先親자옥子玉을 이름)가 패전敗戰해 군대를 잃은 것은 임금이 그 전장戰場에 있지 않았기 때문이니,注+자옥子玉성복城濮에서 패전敗戰할 때에 초성왕楚成王군중軍中에 있지 않았던 것을 이른 것이다. 그대는 이번 패전敗戰을 자신의 허물로 여기지 말라.
不穀之罪也注+[附注] 林曰 言今共王自在軍中 子反無以爲己之過 니라 子反再拜稽首曰 君賜臣死 死且不朽注+王引過 亦所以責子反로이다
나의 죄이다.”注+[부주]林: 이번에는 초공왕楚共王군중軍中에 있었으니, 자반子反패전敗戰을 자기의 잘못으로 삼지 말라는 말이다. 고 하니, 자반子反이 두 번 절하고 머리를 조아리며 말하기를, “군왕君王께서 에게 죽음을 내리신다면 죽어도 이 은덕恩德을 잊지 못할 것입니다.注+초왕楚王패전敗戰을 자기의 잘못으로 돌린 것도 자반子反책망責望하기 위함이다.
臣之卒實奔하니 臣之罪也니이다
병졸兵卒이 실로 도망쳤으니, 이번 패전敗戰입니다.”고 하였다.
子重使謂子反曰 初隕師徒者 而亦聞之矣리니 盍圖之注+聞子玉自殺 終二卿相惡 [附注] 林曰 而 汝也言往日子玉喪師徒 而成王賜之死 汝聞其事也 對曰 雖微先大夫有之注+[附注] 林曰 言雖無先大夫子玉自殺之事 라도 大夫命側하니注+言以義命己 不敢不受 릿가
자중子重자반子反에게 사람을 보내어 말하기를, “과거에 패전敗戰해 군대를 잃은 자가 어떻게 했는지를 그대도[而] 들었을 것인데, 어찌 자살自殺하기를 생각지 않는가?”注+자옥子玉자살自殺한 것을 들었을 것이라는 말이다. 두 이 서로 미워한다고 한 극지郤至의 말을 종결終結한 것이다. [부주]林: 이다. 과거 자옥子玉패전敗戰해 군대를 잃었을 때 성왕成王이 죽음을 내린 것을 너도 그 일을 들었을 것이라는 말이다.라고 하니, 자반子反이 대답하기를, “비록 선대부先大夫께서 자살自殺한 일이 없었다 하더라도注+[부주]林: ‘비록 선대부先大夫자옥子玉자살自殺한 일이 없었다 하더라도……’라는 말이다. 대부大夫께서 나 에게 하시니, 내가 감히 불의不義를 범하겠습니까?注+로운 말로 나에게 하시니, 감히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는 말이다.
側亡君師하니 敢忘其死리오
내가 임금님의 군대를 잃었으니 감히 죽음으로 사죄謝罪하기를 잊었겠습니까?”라고 하였다.
王使止之 不及而卒하다
초왕楚王이 사람을 보내어 죽지 못하도록 말리게 하였으나, 사자使者도착到着하기 전에 자살自殺하였다.
齊國佐高無咎至于師注+無咎 高固子 [附注] 林曰 齊二子至于晉師 하고 衛侯出于衛注+[附注] 林曰 衛獻公亦以是日出師於衛하고 公出于壞隤注+壞隤 魯邑 齊衛皆後 非獨魯 明晉以僑如故不見公 하다
교전交戰이 있은 다음날, 나라 국좌國佐고무구高無咎가 군대를 거느리고 나라의 군중軍中에 이르고,注+무구無咎고고高固의 아들이다. [부주]林: 나라의 두 사람이 나라의 군영軍營에 이른 것이다.위후衛侯나라에서 출발出發하고,注+[부주]林: 위헌공衛獻公도 이 날 나라에서 출병出兵한 것이다. 성공成公괴퇴壞隤에서 출발出發하였다.注+괴퇴壞隤나라 이다. 제인齊人위후衛侯도 모두 늦게 왔으니 성공成公만이 늦은 것이 아니다. 진후晉侯교여僑如참소讒訴를 믿고 성공成公을 만나 주지 않은 것을 밝힌 것이다.
宣伯通於穆姜注+穆姜 成公母 하고 欲去季孟而取其室注+季文子 孟獻子 하다
선백宣伯목강穆姜사통私通하고서,注+목강穆姜성공成公의 어머니이다. 계문자季文子맹헌자孟獻子제거除去하고 그 가산家産하고자 하였다.注+계맹季孟계문자季文子맹헌자孟獻子이다.
將行注+[附注] 林曰 將去會晉師 穆姜送公할새 而使逐二子하니 公以注+會晉伐鄭 曰 請反而聽命이라하니 姜怒하다
출발出發하려 할 때注+[부주]林: 가서 진군晉軍회합會合하려 한 것이다. 목강穆姜성공成公전송餞送하며 두 사람을 축출逐出하라고 하니, 성공成公진난晉難하면서注+진군晉軍회합會合나라를 토벌討伐하는 일이다. “돌아와서 을 듣겠습니다.”고 하니, 목강穆姜하였다.
公子偃公子鉏趨過注+二子 公庶弟 러니 指之曰 女不可 是皆君也注+言欲廢公 更立君 [附注] 林曰 言汝不以爲可 是二子皆可爲君
그때 공자公子공자公子가 빠른 걸음으로 지나가니,注+두 사람은 성공成公서제庶弟이다. 목강穆姜이 그들을 가리키며 “네가 내 말을 듣지 않는다면 저 아이들이 모두 임금이 될 수 있다.”注+성공成公폐위廢位시키고 다시 다른 사람을 임금으로 세우고자 한다는 말이다. [부주]林: 네가 내 말에 동의同意하지 않으면 이 두 사람이 모두 임금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고 하였다.
公待於壞隤하야 申宮儆備注+申勑宮備 하고 設守而後行하다 是以後注+後晉楚戰期 하다
성공成公괴퇴壞隤에서 기다리면서 공궁公宮경비警備를 당부하고,注+공궁公宮경비警備를 당부한 것이다. 수비守備설치設置한 뒤에 출발出發하였기 때문에 뒤늦게 도착到着한 것이다.注+나라와 나라의 교전시기交戰時期에 맞추어 가지 않고 뒤늦게 간 것이다.
使孟獻子守于公宮하다
성공成公은 떠날 때 맹헌자孟獻子에게 공궁公宮을 지키게 하였다.
會于沙隨하니 謀伐鄭也注+鄭猶未服
가을에 사수沙隨에서 회합會合하였으니, 이는 나라 토벌討伐에 관한 일을 상의商議하기 위함이었다.注+나라가 아직까지 나라에 복종服從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宣伯使告郤犫曰 魯侯待于壞隤 以待勝者注+觀晉楚之勝負
선백宣伯나라 극주郤犫에게 사람을 보내어 말하기를, “노후魯侯괴퇴壞隤에서 기다린 것은 나라와 나라의 승부勝負를 기다린 것이다.”注+나라와 나라의 승부勝負관망觀望한 것이다. 라고 하였다.
郤犫將新軍하고 且爲公族大夫하야 以主東諸侯注+主齊魯之屬 하다 取貨于宣伯하야 而訴公于晉侯注+訴 譖也 ᄅ새 晉侯不見公하다
이때 극주郤犫신군新軍을 거느렸고, 또 공족대부公族大夫가 되어 동방東方제후諸侯의 일을 주관主管하였는데,注+, 등의 나라를 주관主管한 것이다. 선백宣伯뇌물賂物을 받고 성공成公진후晉侯에게 참소讒訴하였기 때문에注+참소讒訴이다. 진후晉侯성공成公을 만나지 않은 것이다.
[傳]曹人請于晉曰 自我先君宣公卽世注+在十 國人曰 若之何
조인曹人나라에 요청要請하기를, “우리 선군先君선공宣公께서 세상世上을 뜨신 뒤로注+조선공曹宣公의 죽음은 성공成公 13년에 있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 일을 어찌할꼬.
注+弭 息也 旣葬 國人皆將從子臧 所謂憂未息 라하야늘 而又討我寡君注+前年晉侯執曹伯 하야 以亡曹國社稷之鎭公子注+謂子臧逃奔宋 하니 是大泯曹也注+泯 滅也
우환憂患이 아직 종식終息[弭]되지 않았다.’注+이다. 조선공曹宣公장사葬事 지낸 뒤에 국인國人이 모두 자장子臧을 따라가려고 한 것이 이른바 ‘우환憂患이 아직 종식終息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라고 하는데, 귀국貴國이 또 우리 임금을 토벌討伐하여,注+전년前年진후晉侯조백曹伯을 잡았다. 우리 나라 사직社稷중요重要[鎭]한 공자公子자장子臧을 도망가게 하였으니,注+자장子臧나라로 도분逃奔한 것을 이른다. 이는 우리 나라를 크게 멸망滅亡시킨 것입니다.注+이다.
先君無乃有罪乎注+言今君無罪而見討 得無以先君故 잇가
혹시 우리 선군先君가 있어서입니까?注+지금 임금이 도 없이 토벌討伐을 당한 것이 어찌 선군先君 때문이 아니냐는 말이다.
注+諸侯雖有簒弑之罪 侯伯已與之會 則不復討 前年會于戚 曹伯在列 盟畢乃執之 故曹人以爲無罪 닛가
만약 가 있었다면 (晉侯를 가리킴)께서 무엇 때문에 회맹會盟대열隊列에 참여시켰습니까?注+비록 찬시簒弑가 있는 제후諸侯라도 후백侯伯이 이미 회맹會盟에 참여시켰으면 다시 토죄討罪하지 않는 것이다. 전년前年회맹會盟조백曹伯이 그 대열에 참여參與하였는데, 회맹會盟을 마치고서 조백曹伯을 잡았기 때문에 조인曹人조백曹伯무죄無罪하다고 여긴 것이다.
君唯不遺注+遺 失也 하야 以伯諸侯어늘 豈獨遺諸敝邑이닛가
께서는 덕형德刑을 잃지 않으시어注+이다. 제후諸侯후백侯伯(盟主)이 되셨는데, 어째서 유독 우리 나라에만 덕형德刑을 잃으십니까?
敢私布之注+爲曹伯歸不以名告傳 하노이다
그러므로 감히 사사로이 이렇게 진술陳述합니다.”注+조백曹伯귀환歸還을 이름을 기록해 부고赴告하지 않은 배경背景이다. 라고 하였다.
[傳]七月 公會尹武公及諸侯伐鄭하다
7월에 성공成公윤무공尹武公제후諸侯들과 회합會合하여 나라를 토벌討伐하였다.
將行 姜又命公如初注+復欲使公逐季孟 하니 公又申守而行하다
출발出發하려 할 때 목강穆姜이 또 성공成公에게 전과 같이 하니,注+다시 성공成公계문자季文子맹헌자孟獻子축출逐出하도록 하고자 한 것이다. 성공成公은 또 공궁公宮수비守備를 당부하고서 떠났다.
諸侯之師次于鄭西로되 我師次于督揚하야 不敢過鄭注+督揚 鄭東地 [附注] 林曰 畏鄭强 故不敢過鄭伯 하다
제후諸侯의 군대는 나라 서쪽에 주둔駐屯하였는데도 노군魯軍독양督揚주둔駐屯해 있으면서 감히 나라 국도國都통과通過하지 못하였다.注+독양督揚나라 동쪽에 있는 땅이다. [부주]林: 나라의 강군强軍이 두려웠기 때문에 감히 나라를 통과通過하지 못한 것이다.
子叔聲伯使叔孫豹請逆于晉師注+豹 叔孫僑如弟也 僑如於是遂作亂 豹因奔齊 하고 爲食於鄭郊하다 注+聲伯戒叔孫以必須所逆晉師至 乃食 하니
자숙성백子叔聲伯숙손표叔孫豹진군晉軍으로 보내어 진군晉軍이 와서 노군魯軍을 맞아주기를 요청要請하게 하고는注+숙손표叔孫豹숙손교여叔孫僑如의 아우이다. 교여僑如가 이때 드디어 을 일으켰으므로 사자使者로 간 기회期會를 이용해 나라로 달아났다. 나라 교외郊外에서 진군晉軍에게 먹일 밥을 지었는데, 4일 만에 진군晉軍노군魯軍을 맞이하기 위해 왔다.注+성백聲伯숙손표叔孫豹에게 반드시 우리를 맞이할 진군晉軍이 와야 밥을 먹겠다는 말로 명령命令[戒]한 것이다.
聲伯四日不食以待之로되 注+使者 豹之介 [附注] 林曰 晉逆旣至 聲伯又先食豹之介 하고 而後食注+言其忠也 하다
성백聲伯은 4일 동안 밥을 먹지 않고 진군晉軍을 기다렸으되, 먼저 사자使者에게 밥을 먹이고 나서야注+사자使者숙손표叔孫豹부사副使이다. [부주]林: 노군魯軍을 맞이할 진군晉軍이 이미 왔는데도 성백聲伯은 또 먼저 숙손표叔孫豹부사副使에게 밥을 먹인 것이다. 비로소 밥을 먹었다.注+그의 충성忠誠을 말한 것이다.
[傳]諸侯遷于制田注+熒陽宛陵縣東有制澤 [附注] 林曰 諸侯伐鄭之師 遷屯于此하다
제후諸侯의 군대가 제전制田으로 옮겨 주둔駐屯하였다.注+형양熒陽완릉현宛陵縣 동쪽에 제택制澤이 있다. [부주]林: 나라를 토벌討伐하러 간 제후군諸侯軍이 이곳으로 옮겨 주둔駐屯한 것이다.
知武子佐下軍注+武子 荀罃하야 以諸侯之師侵陳하야 至于鳴鹿注+陳國武平縣西南有鹿邑 하고 遂侵蔡하다
지무자知武子하군下軍부장副將[佐]으로注+지무자知武子순앵荀罃이다. 제후諸侯의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나라를 침공侵攻하여 명록鳴鹿까지 쳐들어갔다가注+나라 무평현武平縣 서남쪽에 녹읍鹿邑이 있다. 드디어 나라를 침공侵攻하였다.
未反注+侵陳蔡不書 公不與 諸侯遷于潁上하다
지무자知武子가 돌아오기 전에注+나라와 나라를 침공侵攻한 것을 기록하지 않은 것은 성공成公이 그 침공侵攻참여參與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후군諸侯軍영수潁水 가로 옮겨 주둔駐屯하였다.
戊午 鄭子罕宵軍之注+[附注] 林曰 鄭子罕以夜攻諸侯之軍하니 宋齊衛皆注+將主與軍相失 宋衛不書 後也 하다
무오일戊午日 밤에 나라 자한子罕제후군諸侯軍습격襲擊하니,注+[부주]林: 나라 자한子罕이 밤에 제후諸侯의 군대를 공격攻擊한 것이다. 나라, 나라, 나라가 모두 패전敗戰해 군대를 잃었다.注+주장主將군대軍隊가 서로 잃은 것이다. 나라와 나라를 기록하지 않은 것은 뒤늦게 갔기 때문이다.
[傳]曹人復請于晉하니 호대하면 吾歸而君注+以曹人重子臧故 [附注] 林曰 而 汝也 하리라
조인曹人이 다시 나라에 요청要請하니, 진후晉侯자장子臧에게 이르기를, “그대 나라로 돌아가면 나는 그대 임금을 돌려보내겠다.”注+조인曹人자장子臧중요重要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부주]林: 이다.고 하였다.
子臧反하니 曹伯歸注+子臧自宋還 하다
자장子臧이 돌아가니, 조백曹伯억류抑留에서 풀려 돌아갔다.注+자장子臧나라에서 나라로 돌아간 것이다.
子臧盡致其邑與卿而不出注+不出仕 하다
자장子臧은 자기의 채읍采邑관직官職을 모두 조백曹伯에게 돌려주고 출사出仕하지 않았다.注+출사出仕하지 않은 것이다.
[傳]宣伯使告郤犫曰 魯之有季孟 猶晉之有欒范也하야 政令於是乎成이라
선백宣伯극주郤犫에게 사람을 보내어 말하기를, “나라에 계씨季氏맹씨孟氏가 있는 것이 나라에 난씨欒氏범씨范氏가 있는 것과 같아, 정령政令이 이들에 의해 이루어지는데,
今其謀曰 晉政多門하니 不可從也注+政不由君 寧事齊楚하야 有亡而已언정 蔑從晉矣注+蔑 無也 라하니
지금 저들이 계획計劃하기를, ‘나라는 정령政令이 여러 곳에서 나와 따를 수가 없으니,注+정령政令이 임금으로부터 나오지 않는다는 말이다. 차라리 나라와 나라를 섬기다가 할지언정 나라를 따를 수 없다.’注+이다. 고 합니다.
若欲得志於魯 請止行父而殺之注+行父 季文子也 하라
귀국貴國나라에서 뜻을 이루려면 행보行父억류抑留해 죽이십시오.注+행보行父계문자季文子이다.
蔑也注+蔑 孟獻子 時留守公宮 하고 而事晉하야 蔑有貳矣리라
그러면 나는 이곳에서 을 죽이고서,注+맹헌자孟獻子이다. 이때 남아서 공궁公宮을 지켰다. 두 마음을 품지 않고 나라를 섬기겠습니다.
魯不貳 小國必睦이어니와 不然이면 歸必叛矣注+[附注] 朱曰 魯旣一心事晉 則其他小國 皆和睦而同事晉리라
우리 나라가 두 마음을 품지 않으면 작은 나라들도 나라와 화목和睦해질 것이지만,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면 행보行父나라로 돌아와서 반드시 나라를 배반背叛할 것입니다.”注+[부주]朱: 나라가 일심一心으로 나라를 섬긴다면 그 밖의 소국小國들도 모두 화목和睦하여 함께 나라를 섬길 것이라는 말이다. 고 하였다.
九月 晉人執季文子于苕丘하니 公還이라가 注+鄆 魯西邑 東郡廩丘縣東有鄆城 [附注] 林曰 待晉命 하야 使子叔聲伯請季孫于晉하니
9월에 진인晉人초구苕丘에서 계문자季文子를 잡으니, 성공成公환국還國하다가 에서 기다리며注+나라 서쪽에 있는 이다. 동군東郡늠구현廩丘縣 동쪽에 운성鄆城이 있다. [부주]林: 나라의 을 기다린 것이다.자숙성백子叔聲伯나라에 보내어 계손季孫을 돌려보내 주기를 요청要請하였다.
郤犫曰 苟去仲孫蔑而止季孫行父 注+親魯甚於晉公室 하리라
극주郤犫성백聲伯에게 말하기를, “만약 중손멸仲孫蔑제거除去하고 계손행보季孫行父억류抑留하도록 허락한다면 나는 그대에게 나라의 정권政權을 주고, 그대를 공실公室보다 더 친밀親密히 대하겠다.”注+나라를 나라 공실公室보다 더 친애親愛하겠다는 말이다. 고 하니.
對曰 注+聞其淫慝情 리라
성백聲伯이 대답하기를, “교여僑如정황情況을 그대도 들었을 것입니다.注+교여僑如음탕淫蕩하고 간악奸惡[淫慝]한 정황情況을 들었을 것이라는 말이다.
若去蔑與行父 是大棄魯國이오 而罪寡君也
만약 행보行父제거除去한다면 이는 나라를 버리고 우리 임금을 징벌懲罰하는 것입니다.
若猶不棄하고 而惠徼周公之福하야 使寡君得事晉君이면 則夫二人者 魯國社稷之臣也 若朝亡之 魯必夕亡하리라
만약 나라를 버리지 않고 주공周公하기 위해 우리 임금으로 하여금 계속 진군晉君을 섬기게 한다면 저 두 사람은 나라 사직社稷안위安危책임責任신하臣下이니, 아침에 저들을 제거除去하면 나라는 반드시 저녁에 할 것입니다.
以魯之密邇仇讐注+仇讐 謂齊楚 亡而爲讐 治之何及注+言魯屬齊楚 則還爲晉讐 이리오
나라는 나라의 원수怨讐나라, 나라와 거리距離가 매우 가까우므로注+구수仇讐나라와 나라를 이른다. 귀국貴國이 기어이 멸망滅亡시키려 한다면 반드시 나라와 나라에 붙어 귀국貴國원수怨讐가 될 것이니, 귀국貴國이 아무리 수습收拾하려 한들 어찌 미칠 수 있겠습니까?”注+나라가 나라와 나라에 붙는다면 나라가 도리어 나라의 구수仇讐가 된다는 말이다. 라고 하였다.
郤犫曰 吾爲子請邑注+[附注] 林曰 郤犫喜聲伯之言 故欲爲聲伯請益祿邑 하리라 對曰嬰齊 魯之常隷也注+隷 賤官 [附注] 林曰 嬰齊 聲伯名 敢介大國하야 以求厚焉注+介 因也
극주郤犫가 말하기를, “내가 그대를 위해 봉읍封邑하겠다.”注+[부주]林: 극주郤犫성백聲伯의 말을 좋게 여겼기 때문에 성백聲伯을 위해 녹읍祿邑을 더 하고자 한 것이다. 라고 하니, 성백聲伯이 대답하기를, “나 영제嬰齊나라의 하급下級관리官吏[常隷]니注+관리官吏이다. [부주]林: 영제嬰齊성백聲伯의 이름이다. 감히 대국大國에 의지해 祿하겠습니까?注+는 의지[因]하는 것이다.
承寡君之命以請注+承 奉也 하니 若得所請이면 吾子之賜多矣 又何求리오
우리 임금의 을 받들고 계손季孫석방釋放요청要請하기 위해 왔으니,注+은 받드는 것이다. 요청要請을 받아준다면 그대의 다대多大은혜恩惠를 입는 것이니, 또 무엇을 더 [求]하겠습니까?”라고 하였다.
范文子謂欒武子曰 季孫於魯 相二君矣注+二君 宣成 로되 妾不衣帛하고 馬不食粟하니 可不謂忠乎ᄂ저
범문자范文子난무자欒武子에게 말하기를, “계손행보季孫行父나라에서 두 임금을 보좌輔佐구신舊臣인데도注+두 임금은 나라 선공宣公성공成公이다. 에게 비단옷을 입히지 않고, 말에게 곡식을 먹이지 않았으니, 충신忠臣이라 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信讒慝而棄忠良이면 若諸侯何注+[附注] 朱曰 信僑如讒慝之言 棄季孫忠良之輔 如此何以服諸侯也
그런데 참특讒慝한 말을 믿고 충량忠良한 사람을 버린다면 어떻게 제후諸侯복종服從시킬 수 있겠습니까?注+[부주]朱: 교여僑如참특讒慝한 말을 믿고서 계손季孫처럼 충량忠良보필輔弼을 버리는 이와 같은 짓을 한다면 제후諸侯를 어떻게 복종服從시킬 수 있겠느냐는 말이다.
子叔嬰齊 奉君命無私注+不受郤犫請邑 하고 謀國家不貳注+謂四日不食 以堅事晉 하야 圖其身不忘其君注+辭邑不食 皆先君而後身 하니
자숙영제子叔嬰齊군명君命봉행奉行함에 사심私心이 없고,注+하겠다는 극주郤犫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국가國家를 위한 계획計劃에 두 마음이 없어,注+4일 동안 밥을 먹지 않으면서 성실誠實나라를 섬긴 것을 이른다. 자신의 안위安危를 생각해 그 임금을 잊지 않았습니다.注+봉읍封邑사절謝絶하고 받지 않은 것은 모두 임금을 우선으로 여기고, 자기는 뒷전으로 여긴 것이다.
若虛其請이면 是棄善人也 子其圖之하라 乃許魯平하고 赦季孫하다
그런데 그 요청要請거절拒絶한다면 이는 선인善人을 버리는 것이니, 그대는 깊이 생각하십시오.”라고 하니, 난무자欒武子나라와의 화평和平허락許諾하고 계손행보季孫行父사면赦免하였다.
冬十月 出叔孫僑如而盟之하니
겨울 10월에 숙손교여叔孫僑如축출逐出하고서 맹약盟約하였다.
僑如奔齊注+諸大夫共盟 以僑如爲戒 [附注] 林曰 時成公未歸 使國人逐出叔孫僑如 하다
교여僑如나라로 달아났다.注+여러 대부大夫가 함께 맹약盟約하여 교여僑如경계警戒로 삼은 것이다. [부주]林: 성공成公귀국歸國하기 국인國人으로 하여금 숙손교여叔孫僑如축출逐出하게 하였다.
十二月 季孫及郤犫盟于扈注+[附注] 林曰 晉赦季孫行父 故受盟以歸 하고 歸刺公子偃注+偃與鉏俱爲姜所指 而獨殺偃 偃與謀 하고
12월에 계손행보季孫行父극주郤犫에서 결맹結盟하고注+[부주]林: 나라가 계손행보季孫行父사면赦免하였기 때문에 맹약盟約접수接受하고서 돌아온 것이다. 돌아와서 공자公子을 죽였다.注+공자公子공자公子가 함께 목강穆姜지적指摘을 받았는데, 공자公子만을 죽인 것은 교여僑如모의謀議참여參與하였기 때문이다.
召叔孫豹于齊而立之注+七月 聲伯使豹請逆於晉 聞魯人將討僑如 豹乃辟其難 先奔齊 生二子 而魯乃召之 故襄二年豹始見經 傳於此因言其終 하다
뒤에 나라로 도망간 숙손표叔孫豹를 불러들여 숙손씨叔孫氏후계자後繼者로 세웠다.注+이에 앞서 7월에 성백聲伯나라로 보내어 진군晉軍이 와서 노군魯軍을 맞이하기를 요청要請하게 하였는데, 노인魯人교여僑如토벌討伐하려 한다는 말을 듣고 그 화난禍難교여僑如보다 먼저 나라로 달아났다. 나라에서 아내를 얻어 아들 둘을 낳았는데, 나라가 그를 불러들였다. 그러므로 양공襄公 2년에 가 비로소 에 보이는데, 은 이 일을 인해 여기에 의 후일의 일을 말하였다.
[傳]齊聲孟子通僑如注+聲孟子 齊靈公母 宋女 하고 使立於高國之間注+位比二卿 하니 僑如曰 不可以再罪注+[附注] 林曰 僑如自以在魯淫于穆姜得罪 不可在齊再以淫于聲孟子得罪라하고 奔衛하야 亦間於卿注+傳亦終言僑如之佞 [附注] 林曰 亦間厠於衛卿之位 하다
나라 성맹자聲孟子교여僑如간통姦通하고서,注+성맹자聲孟子제영공齊靈公의 어머니로 나라 여자女子이다. 그의 지위地位고씨高氏국씨國氏의 중간 위치位置에 세우게 하자,注+지위地位가 두 비등比等한 것이다. 교여僑如는 “재차再次를 지을 수 없다.”注+[부주]林: 교여僑如는 스스로 나라에 있을 때 목강穆姜간음姦淫하여 를 얻었으니, 나라에서 재차再次성맹자聲孟子간음姦淫하여 를 얻을 수 없다고 여긴 것이다. 고 하고서 나라로 달아났는데, 나라에서도 지위地位에 끼었다.注+전문傳文에도 마침내 교여僑如영악佞惡함을 말한 것이다. [부주]林: 또 나라 지위地位에 낀 것이다.
[傳]晉侯使郤至獻楚捷于周注+[附注] 林曰 獻鄢陵勝楚之捷于周 하다
진후晉侯극지郤至를 보내어 나라와의 전쟁戰爭에서 얻은 전리품戰利品[捷]을 주왕周王에게 바쳤다.注+[부주]林: 언릉鄢陵에서 나라에 승리勝利하고서 얻은 전리품戰利品주왕周王에게 올린 것이다.
與單襄公語 驟稱其伐注+伐 功也 하니 單子語諸大夫曰 溫季其亡乎注+溫季 郤至 [附注] 林曰 食邑於溫 季 其字 ᄂ저
극지郤至선양공單襄公과 이야기할 때 자주 자신의 을 자랑하니,注+이다. 단자單子가 여러 대부大夫에게 말하기를, “온계溫季는 아마도 패망敗亡할 것이다.注+온계溫季극지郤至이다. [부주]林: 은 그의 식읍食邑이고, 는 그의 이다.
位於七人之下注+佐新軍 位在八 하야 而求掩其上注+稱己之伐 掩上功 하니 怨之所聚 亂之本也
지위地位가 7의 아래면서도注+신군新軍이니, 그 지위地位가 여덟 번째이다. 그 윗사람의 엄폐掩蔽하기를 하니,注+자기의 을 자랑하여 윗사람의 엄폐掩蔽했다는 말이다. 이는 원망怨望을 쌓는 일이고 화란禍亂의 뿌리이다.
多怨而階亂하니 何以在位注+怨爲亂階 리오
그는 많은 원망怨望을 쌓아 화란禍亂의 길로 가고 있으니, 어찌 관위官位에 있을 수 있겠는가?注+원망怨望으로 가는 경로經路가 된다는 말이다.
夏書曰 怨豈在明
하서夏書〉에 ‘원망怨望이 어찌 드러난 곳에 있겠는가?
注+逸書也 不見 細微也 라하니 將愼其細也어늘
드러나지 않은 곳을 생각하라.’注+하서夏書〉는 일서逸書이다. 불견不見세미細微한 일이다. 고 하였으니, 이는 그 세미細微한 일을 삼가야 한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今而明之하니 其可乎注+言郤至顯稱己功 所以明怨咎
그런데 지금 극지郤至원망怨望 받을 말을 드러내 놓고 하였으니, 어찌 할 수 있겠는가?”注+극지郤至가 자기의 을 드러내 놓고 자랑한 것이 원망怨望을 드러내 놓은 것이다. 라고 하였다.
역주
역주1 水[木] : 저본에는 ‘水’로 되어 있으나 《十三經注疏》本에 의거하여 ‘木’으로 바로잡았다.
역주2 木冰 : 地表의 溫度가 매우 낮아 나뭇가지에 떨어진 빗물이 結氷한 것이다. 나뭇가지에 얼음이 붙어 있으면 荷重이 무거워 가지가 부러지니, 이는 災異를 기록한 것이다. 《左氏春秋譯註》
역주3 不見公 : 魯나라 임금이 잡혀 간 일은 모두 숨기고 기록하지 않았는데, 이번에 晉侯가 成公을 만나 주지 않은 것을 숨기지 않고 기록한 것은, 成公이 國內에 일이 있어 戰期에 미처 가지 못한 것이고, 晉侯가 비록 成公을 만나 주지 않았으나, 이는 成公의 罪가 아니며, 또 이것이 잡혀 간 것에 비해 恥辱이 가볍기 때문에 사실대로 기록한 것이다. 〈疏〉
역주4 不稱行人 非使人 : 大夫가 使臣으로 갔다가 잡힐 경우, 罪 없이 잡혔으면 行人으로 기록하여 無罪를 드러낸다. 이번에 行父가 成公을 따라 鄭나라를 討伐하다가 軍中에서 잡혔으니, 비록 無罪했지만 行人으로 稱하지 않은 것은 使臣으로 간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疏〉
역주5 周禮三刺之法 : 三刺法은 周나라 때 重罪人를 審理할 때 一次로 群臣의 意見을 묻고, 二次로 群吏의 의견을 묻고, 三次로 백성의 의견을 물은 뒤에 判決하여 刑을 確定하던 法이다. 《周禮》 〈司刺〉
역주6 若逞吾願……晉可以逞 : 이곳의 두 ‘逞’字는 뜻이 같지 않다. 위의 逞은 滿足의 뜻이고, 아래의 逞은 緩和의 뜻이다. 이 몇 句의 뜻은, 우리 임금의 바람이 만족하게 이루어지려면 諸侯가 모두 晉나라를 背叛하여야 晉나라의 患亂이 緩和될 수 있다는 말이다. 〈楊注〉 諸侯가 모두 背叛한다면 晉侯가 恐懼修省할 것이므로 혹 禍를 免할 수 있지만, 鄭나라만이 背叛할 뿐이라면 晉侯는 반드시 매우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므로 禍가 즉시 이른다고 한 것이다. 《左氏會箋》
역주7 : 器具의 뜻이다. 모든 일에 器具가 없어서는 안 되듯이 戰爭에도 이 여섯 가지가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器具라는 말이다.
역주8 : 祥의 假借字로 鬼神을 섬기는 態度가 恭順하고 善良한 것이다.
역주9 義以建利 : 處事를 義에 맞게 하여 功利를 樹立하는 것이다.
역주10 信以守物 : 誠信을 實踐해 群物을 保守하는 것이다.
역주11 民不知信 進退罪也 : 윗사람이 信義가 없으면 백성은 그 윗사람을 의심하여, 前進할 때 前進하고 後退할 때 後退해도 모두 罪를 얻을까 두려워하여 어떤 命令을 따라야 할지를 모르게 된다는 말이다.
역주12 在[不] : 저본에는 ‘在’로 되어 있으나 《四庫全書左傳杜林合注》本에 의거하여 ‘不’로 바로잡았다.
역주13 我僞逃楚 : 僞는 ‘爲’로 보아야 한다. 옛날에는 僞와 爲가 通用이었으니, 成公 9년傳의 ‘爲將改立君’과 定公 12년 傳의 ‘子爲不知’를 〈釋文〉에 모두 ‘爲는 본래 僞로 되어 있었다.’고 한 것이 바로 그 證據이다. 《群經評議》
역주14 不振旅 : 戰爭에 勝利하고 돌아오는 것을 ‘振旅’라 하니, 不振旅는 敗戰한 것을 迂廻的으로 表現한 말이다. 韓의 戰爭에서 晉軍이 敗戰하여 晉惠公이 사로잡혀 秦나라로 끌려갔다.
역주15 箕之役 先軫不反命 : 狄人이 晉나라를 侵伐하여 箕까지 쳐들어오자 晉襄公이 狄軍을 敗北시켰는데, 이때 先軫은 지난 4월에 殽의 戰爭 때 잡은 秦나라의 두 將軍을 晉襄公이 秦나라로 돌려보낸 데 화가 나서, 襄公 앞에서 침을 뱉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온 不忠을 범하였는데도 임금이 懲罰하지 않으니, 감히 스스로 징벌하지 않을 수 없다 하여, 투구를 벗고 스스로 狄軍의 陣中으로 뛰어 들어가 죽었다. 不反命은 戰死를 迂廻的으로 表現한 말이다.
역주16 不復從 : 從은 就와 같으니, 敵軍을 향해 進擊하는 것이다. 邲의 戰爭 때 晉나라의 上軍은 敗戰하지 않았으니, 그 군대를 整頓하면 오히려 一戰을 벌일 수 있었는데도 荀林父는 한 번 敗戰하자 즉시 逃亡하고 다시 楚軍을 향해 進擊하지 않았기 때문에 ‘不復從’이라 한 것이다. 《左氏會箋》
역주17 外寧必有內憂 盍釋楚以爲外懼乎 : 士燮이 晉厲公이 교만해 스스로 잘난 체함(驕侈)과 群臣이 不和하는 것을 보고서, 만약 楚나라와 戰爭해 勝利한다면 內憂가 더욱 심해질 것이므로 楚軍을 그대로 들여보내어 國內의 憂患을 緩和시키고자 한 것이고, 戰爭에 敗할 것을 두려워한 것이 아니다. 〈楊注〉
역주18 敵國外患 : 敵國外患은 《孟子》 〈告子下〉에 있는 말로 “안으로 法度를 지키는 世家나 輔弼하는 賢士가 없고, 밖으로 敵對하는 나라나 外來의 憂患이 없으면 이런 나라는 항상 亡하였다.”고 하였다. 그 小註에 新安陳氏는 이 말을 다음과 같이 풀이하였다. “밖으로 敵對國이나 外來의 憂患이 있으면 警戒하고 두려워하여 감히 放縱하지 않기 때문에 國家가 保存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驕慢하고 放恣하여 나라가 亡한다.”
역주19 : 杜注를 따르지 않고 壓迫으로 飜譯하였다.
역주20 笮[乘] : 저본에는 ‘笮’으로 되어 있으나 《十三經注疏》本에 의거하여 ‘乘’으로 바로잡았다.
역주21 而疏行首 : 王引之의 《經義述聞》에 “下文에 ‘將塞井夷竈而爲行也’라고 하였으니, 이곳의 ‘塞井夷竈’는 바로 行首를 疏通시키기 위함이고, ‘決開營壘’하는 것이 아니다. ‘首’는 ‘道’로 읽어야 하고, ‘疏’는 ‘通’이니, 陣列과 隊伍 사이의 길을 트는 것이다.”고 하였다. 이 說을 取해 飜譯하였다.
역주22 以舊 : 以舊는 두 해석이 있다. 杜注에는 ‘罷老不代’라 하였으니, 이는 ‘以舊’를 ‘太舊’로 본 것이고, 《左氏會箋》에는 “以는 用이고 舊는 舊家이다. 그러므로 下文에 ‘舊必不良’이라고 하였다.”고 하였다. 後說이 비교적 좋다. 〈楊注〉
역주23 陳不違晦 : 兵事는 殺傷을 目的으로 삼으니, 殺傷은 陰道이다. 作戰에는 滿月이 된 때를 所重하게 여기기 때문에 陰精인 달이 다한 그믐날에 陣을 치거나 作戰하는 것을 꺼린다.
역주24 子[于] : 저본에는 ‘子’로 되어 있으나 《十三經注疏》本에 의거하여 ‘于’로 바로잡았다.
역주25 虔卜於先君也 : 古代에는 出兵할 때 반드시 遷廟의 神主를 싣고 갔기 때문에 先君의 神主 앞에서 敬虔히 占을 친 것이다.
역주26 爲行 : 爲行은 行列을 만든 것이다.
역주27 : 誓는 軍中에 宣布하는 命令이다.
역주28 國士 : 國士는 伯州犂를 가리킨 것이다. 그는 재주가 있고, 또 晉나라의 情況을 자세히 알고 있기 때문에 ‘國士’라고 한 것이다. 〈楊注〉
역주29 矣[之] : 저본에는 ‘矣’로 되어 있으나 《十三經注疏》本에 의거하여 ‘之’로 바로잡았다.
역주30 欒書將載晉侯 : 欒書가 厲公의 수레가 진창에 빠진 것을 보았기 때문에 晉侯를 자기 수레에 싣고 가려 한 것이다.
역주31 國有大任 焉得專之 : 元帥에게는 元帥의 大任이 있고, 戎右(車右)에게는 戎右의 大任이 있다. 國家가 任命한 官員에게는 各自의 職任이 있으니, 公의 수레가 빠지면 건지는 것은 戎右의 職任이기 때문에 ‘焉得專之’라고 한 것이다.
역주32 御戎[戎御] : 저본에는 ‘御戎’으로 되어 있으나 《四庫全書左傳杜林合注》本에 의거하여 ‘戎御’로 순서를 바로잡았다.
역주33 大辱國 : ‘大辱國’은 口頭로 남을 꾸짖는 當時의 俗語라고 한 于鬯의 말이 매우 近理하다. 두 사람이 갑옷을 뚫은 것을 ‘大辱國’이라 한다면 말이 되지 않는다. 이 말은 단지 두 사람이 자랑한 것을 꾸짖은 것뿐이다. 〈楊注〉 將帥가 智謀는 없으면서 활 솜씨만을 뽐내는 것이 크게 나라를 辱되게 함이라는 말이다. 《左氏會箋》
역주34 免冑而趨風 : 尊敬을 表示한 것이다. 君父의 앞에서는 빠른 걸음으로 지나가는 것이 禮이다.
역주35 : 識은 時間副詞로 쓰였다.
역주36 間蒙甲冑 : 間은 與이다. 莊公 9년과 昭公 26년 注에 모두 ‘間은 與이다.’고 하였으니, 이 傳의 間도 與로 訓解하는 것이 옳다. 甲冑의 일에 參與하였다는 말이다. 《左氏會箋》
역주37 爲事之故 敢肅使者 : 肅拜는 서서 몸을 약간 굽혀 두 손을 합쳐 가슴에 대고서 약간 아래로 내리는 것이다. 〈楊注〉 모든 절[拜]에는 허리를 굽히는 것이 禮이지만, 郤至가 투구는 벗었으나 갑옷은 그대로 입고 있기 때문에 허리 굽혀 절을 하지 않고 肅拜의 禮만을 行한 것이다.
역주38 再辱國君 : 杜注에는 ‘再辱國君’을 鞍의 戰爭 때 齊侯에게 恥辱을 끼친 것으로 解釋하였으나, 〈楊注〉에는 이번 戰爭에 楚王의 눈에 傷害를 입혀 이미 恥辱을 끼쳤기 때문에 재차 鄭伯에게 恥辱을 끼칠 수 없다는 뜻으로 해석하였다.
역주39 君在[在君] : 저본에는 ‘君在’로 되어 있으나 《十三經注疏》本에 의거하여 ‘在君’으로 순서를 바로잡았다.
역주40 敗者壹大 : 敗者壹大의 壹은 專一이고 大는 鄭君을 가리킨 것이니, 戰爭에 敗北한 군대는 一心으로 그 임금을 保護해야 한다는 뜻이다. 〈楊注〉 譯者도 이 說을 取해 飜譯하였다.
역주41 楚師薄於險 : 薄은 바싹 다가감이니, 楚軍이 退却할수록 晉軍은 더욱 前進하므로 楚軍은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險한 곳까지 바싹 다가간 것이다.
역주42 閒暇 : 閒暇는 서둘지 않고 沈着하게 對應하는 것이다.
역주43 : 攝은 代이다. 欒鍼은 晉厲公의 車右여서 厲公 곁을 떠날 수 없으므로 대신 다른 사람을 보내어 子重에게 술을 올리게 하기를 請한 것이다. 〈楊注〉 譯者는 이 說을 取해 飜譯하였다.
역주44 執榼承飮 : 榼은 술통이고, 承은 담는 것이다. 《左氏會箋》 이 說을 取해 飜譯하였다.
역주45 左[右] : 저본에는 ‘左’로 되어 있으나 《四庫全書左傳杜林合注》本에 의거하여 ‘右’로 바로잡았다.
역주46 不亦識乎 : 識은 記憶이니, 欒鍼의 記憶力이 좋다고 稱讚한 말이다.
역주47 展車馬 : 《穀梁傳》 哀公元年에 “날마다 교우(郊牛)의 뿔을 살펴[展] 상처가 있는지를 안다.[郊牛日展觓角而知傷]”라고 하였으니, 뿔[觓角]을 陳列하는 것으로 말할 수 없다. 《周禮》 〈大宗伯肆師〉에 “큰 제사에 희생을 살핀다.[大祭祀展犧牲]”고 하였는데, 鄭注에 “展은 省閱하는 것이다.”고 하였으니, 여기의 展도 省閱로 訓解하는 것이 合當하다. 〈廣雅〉에 ‘展審也視也’라고 하였다. 《左氏會箋》 譯者도 이 說을 取해 飜譯하였다.
역주48 君幼……君其戒之 : 德도 없으면서 福을 받는 것은 災殃이니, 禍亂의 張本이라는 말이다. 《左氏會箋》
역주49 朱曰 : 이 두 글자는 衍文이다.
역주50 初[隕] : 저본에는 ‘初’로 되어 있으나 《四庫全書左傳杜林合注》本에 의거하여 ‘隕’으로 바로잡았다.
역주51 豈不[亦] : 저본에는 ‘豈不’로 되어 있으나 《四庫全書左傳杜林合注》本에 의거하여 ‘亦’으로 바로잡았다.
역주52 敢不義 : 敢不義는 내 어찌 감히 살기를 탐하여 不義에 빠지겠느냐는 말이다. 〈楊注〉 이 說을 取해 飜譯하였다.
역주53 戰之日 : 戰之日은 戰之明日로 보는 것이 옳을 것 같다. 그 理由는 戰之日에 왔다면 戰期에 맞춰 온 것이고 늦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楊注〉에 “金澤文庫本에는 ‘戰之明日’로 되어 있다.”고 하였다.
역주54 晉難 : 晉侯가 魯나라에게 出兵해 晉軍과 聯合하여 鄭나라를 討伐하자고 請한 일을 이른다. 〈楊注〉
역주55 二[三] : 저본에는 ‘二’로 되어 있으나 《十三經注疏》本에 의거하여 ‘三’으로 바로잡았다.
역주56 憂猶未弭 : 憂는 임금이 죽어 民心이 安定되지 않은 것을 이른다. 《左氏會箋》
역주57 若有罪 則君列諸會矣 : 列諸會의 諸는 先君을 가리킨 代詞이다. 曹宣公이 卽位한 3년에 晉侯와 斷道에서 同盟하고서 가장 大國을 잘 섬겨, 諸侯의 會盟이 있을 때마다 반드시 參與하였다가 마침내 秦나라와의 戰爭에서 죽었다. 그러므로 “先君께 罪가 없으니, 曹나라의 社稷을 크게 滅해서는 안 된다.”고 한 것이다. 杜氏가 戚의 會合으로 說明한 것은 考證을 잘못한 것이다. 《左氏會箋》
역주58 德刑 : 服從하는 나라에는 賞을 주고, 背叛하는 나라에는 罰을 주는 것이다.
역주59 師逆以至 : 晉軍이 魯軍을 맞이하려고 鄭나라 郊外로 온 것이다. 이 두 句는 記事文이지, 聲伯이 叔孫豹에게 命한 말이 아니다. 《左氏會箋》 이 說을 取해 飜譯하였다.
역주60 食使者 : 〈楊注〉에는 “使者는 晉나라의 使者이다. 杜注에 叔孫豹의 副使라고 한 것은 잘못이다. 《左氏會箋》에 使者를 豹라고 한 것도 正確하지 않다.”고 하였다. 《左氏會箋》에는 “使者는 바로 叔孫豹인데, 豹라고 말하지 않고 使者라고 말한 것은 聲伯이 豹의 勞苦를 慰勞한 것임을 나타내기 위함이다. 杜氏는 叔孫豹가 晉軍에 가서 魯나라가 叔孫僑如를 討伐하려 한다는 말을 듣고 드디어 齊나라로 달아나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에 이 使者를 豹의 副使라고 한 것이다.”고 하였다.
역주61 失軍 : 失軍은 敗戰해 군대가 흩어진 것이다.
역주62 晉侯謂子臧 : 이때 子臧이 宋나라에 있었으니, 晉侯가 使者를 보내어 말한 것이다.
역주63 薨[斃] : 저본에는 ‘薨’으로 되어 있으나 《十三經注疏》本에 의거하여 ‘斃’로 바로잡았다.
역주64 待于鄆 : 季文子를 기다린 것이다. 《左氏會箋》
역주65 吾與子國 親於公室 : 郤犫가 魯나라를 威脅하여 國政을 聲伯에게 맡기게[與國] 하고, 또 聲伯을 魯나라 公室보다 더 親愛하겠다는 말이다. 公室을 晉나라 公室로 解釋한 杜注는 옳지 않다. 〈楊注〉 聲伯의 外妹(아비 다른 누이)가 郤犫의 아내이기 때문에 郤犫가 私心을 吐露한 것이다. 《左氏會箋》
역주66 僑如之情 子必聞之矣 : 僑如가 穆姜과 姦通하고서 季氏와 孟氏의 家産을 奪取하려 한 情況을 들었을 것이라는 말이다.
역주67 近此 : 近此는 正確히 알 수는 없으나 前此의 뜻인 것 같으므로 이상과 같이 飜譯하였다.
역주68 怨豈在明 不見是圖 : 이 두 句는 본래 逸書인데, 僞書를 만든 자가 僞古文五子之歌에 엮어 넣었다. 〈楊注〉 남의 원망을 받는 것이 어찌 명백한 곳에 있겠는가? 남이 보지 못하는 곳을 생각해야 된다는 말이다. 《左氏會箋》

춘추좌씨전(3) 책은 2019.05.2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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