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春秋左氏傳(3)

춘추좌씨전(3)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춘추좌씨전(3)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經]十有一年春王正月이라
11년 봄 주왕周王정월正月이다.
[經]夏 楚子陳侯鄭伯盟于辰陵注+楚復伐鄭 故受盟也 辰陵 陳地 潁川長平縣東南有辰亭 [附注] 林曰 序楚子於陳侯鄭伯之上 初予楚莊以霸也 하다
여름에 초자楚子진후陳侯정백鄭伯신릉辰陵에서 결맹結盟하였다.注+나라가 다시 나라를 토벌討伐하였기 때문에 나라가 맹약盟約을 받아들인 것이다. 신릉辰陵나라 땅이다. 영천潁川장평현長平縣 동남쪽에 신정辰亭이 있다. [부주]林: 초자楚子서열序列진후陳侯, 정백鄭伯의 위에 둔 것은 처음으로 초장왕楚莊王패자霸者인증認證한 것이다.
[經]公孫歸父會齊人伐莒注+無傳 하다
공손公孫귀보歸父제인齊人회합會合하여 나라를 토벌討伐하였다.注+이 없다.
[經]秋 晉侯會狄于欑函注+晉侯往會之 故以狄爲會主 欑 狄地 [附注] 林曰 楚方倡義於天下 而晉孜孜於群狄 至往會焉 晉卑甚矣 하다
가을에 진후晉侯찬함欑函에서 적인狄人회합會合하였다.注+진후晉侯가 가서 회합會合하였기 때문에 적인狄人회주會主로 삼은 것이다. 찬함欑函의 땅이다. [부주]林: 나라는 바야흐로 천하天下대의大義제창提唱하는데, 나라는 군적群狄에 부지런히 정성을 들여 찾아가 회합會合하기까지 하였으니, 나라의 비굴卑屈함이 하였다.
[經]冬十月 注+不言楚子而稱人 討賊辭也 하다
겨울 10월에 초인楚人나라 하징서夏徵舒를 죽였다.注+초자楚子로 기록하지 않고 ‘’으로 기록한 것은 역적逆賊토벌討伐한 것을 표현表現하는 말이다.
정해일丁亥日초자楚子나라로 쳐들어갔다.注+초자楚子가 앞서서는 징서徵舒를 죽이고 난 뒤에 나라를 나라의 으로 삼고자 하다가 뒤에 신숙시申叔時간언諫言을 듣고서 나라를 다시 해 주고 그 땅을 차지하지 않았기 때문에 ‘’을 ‘살징서殺徵舒’ 뒤에 기록한 것이다.
納公孫寧儀行父于陳注+二子 淫昏亂人也 君弑之後 能外託楚以求報君之讐 內結强援於國 故楚莊得平步而討陳 除弑君之賊 於時陳成公播蕩於晉 定亡君之嗣 靈公成喪 賊討國復 功足以補過 故君子善楚復之 하다
공손公孫의행보儀行父나라로 들여보냈다.注+두 사람은 음란淫亂한 사람이다. 그러나 임금이 시해弑害된 뒤에 밖으로 나라에 의탁依託하여 임금의 원수怨讐 갚기를 하였고, 안으로 강족强族결탁結託하여 국내國內에서 응원應援하게 하였다. 그러므로 초장왕楚莊王이 힘들이지 않고 나라를 토벌討伐하여 임금을 시해弑害역적逆賊(夏徵舒)을 제거除去할 수 있게 하였다. 이때 진성공陳成公나라에서 유리流離하고 있었는데, 그를 데려다가 죽은 임금의 후사後嗣하고 영공靈公장례葬禮를 치렀다. 역적逆賊토벌討伐하고 나라를 회복恢復시킨 이 허물을 덮기에 충분하기 때문에 군자君子나라가 그들을 나라로 돌려보낸 것을 훌륭하게 여긴 것이다.
[傳]十一年春 楚子伐鄭하야 及櫟이어늘 子良曰 晉楚不務德而兵爭하니 與其來者可也注+[附注] 林曰 因其來伐而與之和 其亦可也
11년 봄에 초자楚子나라를 토벌討伐하여 에 이르자, 나라 자량子良이 말하기를, “나라와 나라가 으로 제후諸侯회유懷柔하기를 힘쓰지 않고 무력武力으로 서로 다투니, 쳐들어온 자를 돕는 것이 합니다.注+[부주]林: 나라가 쳐들어온 것을 기회로 나라와 화친和親하는 것도 하다는 말이다.
晉楚無信하니 我焉得有信이리오 乃從楚하다
나라와 나라는 신의信義를 지키지 않는데, 우리가 무엇 때문에 신의信義를 지키겠습니까?”라고 하고서, 나라에 복종服從하였다.
楚盟辰陵하니 陳鄭服也注+傳言楚與晉狎主盟
여름에 나라가 신릉辰陵에서 회맹會盟하였으니, 이는 나라와 나라가 복종服從하였기 때문이다.注+전문傳文나라와 나라가 번갈아 제후諸侯회맹會盟주관主管했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傳]楚左尹子重侵宋注+子重 公子嬰齊 莊王弟 하니 王待諸郔注+郔 楚地하다
나라 좌윤左尹자중子重나라를 침공侵攻하니,注+자중子重공자公子영제嬰齊초장왕楚莊王의 아우이다.초왕楚王에서 소식消息을 기다렸다.注+나라 땅이다.
[傳]令尹蔿艾獵城沂注+艾獵 孫叔敖也 沂 楚邑 할새 使封人注+封人 其時主築城者 慮事 無慮計功 [附注] 林曰 慮事 謀慮計功 하야 注+司徒掌役 하다
영윤令尹위애렵蔿艾獵을 쌓을 때注+애렵艾獵손숙오孫叔敖이다. 나라 이다. 봉인封人으로 하여금 공사工事계획計劃을 세워注+봉인封人은 그때 축성築城주관主管한 사람이다. 여사慮事공사工事를 대략[無慮]계산計算하는 것이다. [부주]林: 여사慮事계획計劃을 세워 공정工程계산計算하는 것이다.사도司徒에게 보고報告하게 하였다.注+사도司徒가 모든 역군役軍관장管掌한다.
量功命日注+命作日數하고 注+財用 築作具 [附注] 林曰 分之使均하고 平板榦注+榦 楨也 [附注] 林曰 立榦而後 施板以築之 平之使治 하고 注+量輕重 畚 盛土器하고 注+爲作程限 하고 議遠邇注+均勞逸하고 注+趾 城足 略 行也하고 具餱糧注+餱 乾食也하고注+謀監主하니 事三旬而成注+十日爲旬하야 不愆于素注+不過素所慮之期也 傳言叔敖之能使民 하다
그리고 영윤令尹이 직접 공정工程을 헤아려 완공일完工日하고,注+을 쌓는 일수日數하는 것이다. 재료材料용구用具를 나누어주고,注+재용財用을 쌓는 기구器具이다. [부주]林: 나누어 균등均等하게 주는 것이다.협판夾板과 기둥을 쌓을 의 높이와 균평均平하게 세우고,注+은 담이나 을 쌓을 때 담의 두 끝에 세우는 나무이다.[부주]林: 을 세운 뒤에 판자板子를 대고서 흙을 부어 다지고, 높고 낮은 곳이 없이 균평均平하게 을 쌓는 것이다. 삼태기로 흙을 나르는 사람과 공이로 흙을 다지는 사람의 수를 서로 맞게 분배分排하고,注+일의 경중輕重을 헤아리는 것이다. 은 흙을 담는 그릇이다. 흙과 목재木材가 얼마나 필요必要한지 계산計算비축備蓄기한期限하고,注+정한程限을 만드는 것이다. 수토水土재목材木채취採取해 오는 거리의 원근遠近을 의논하고,注+노력勞力균등均等히 하는 것이다. 기지基址순시巡視하고,注+을 쌓을 터이고, 순행巡行하는 것이다. 역부役夫들의 식량食糧준비準備하고,注+는 말린 양식糧食이다. 재능才能을 헤아려 유사有司를 정하니,注+감주監主를 의논해 정하는 것이다. 30일 만에 일이 끝나注+10일이 이다. 처음 계획計劃한 날짜를 어기지 않았다.注+원래 계획計劃했던 시기時期를 넘기지 않은 것이다. 전문傳文손숙오孫叔敖가 백성을 잘 부렸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傳]晉郤成子求成于衆狄하니 衆狄疾赤狄之役하야 遂服于晉注+赤狄潞氏最强 故服役하다
나라 극성자郤成子중적衆狄에게 화친和親하기를 요구要求하니, 중적衆狄적적赤狄사역使役을 괴롭게[疾] 여겨 드디어 나라에 복종服從하였다.注+적적赤狄노씨潞氏적인狄人 중에 가장 하였다. 그러므로 중적衆狄복종服從시켜 사역使役한 것이다.
會于欑函하니 衆狄服也
가을에 찬함欑函에서 회합會合하였으니, 이는 중적衆狄복종服從하였기 때문이다.
是行也 諸大夫欲召狄하니 郤成子曰
이번에 찬함欑函으로 가려 할 때 대부大夫들이 적인狄人을 부르고자 하니, 극성자郤成子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吾聞之컨대 非德이면 莫如勤注+[附注] 林曰 言非德足以服人 則莫如勤以求之 이라하니 非勤이면 何以求人이리오
“내가 듣건대 남을 복종시킬 만한 이 없으면 근로勤勞하는 것만 한 게 없다고 하였으니,注+[부주]林: 이 남을 복종服從시킬 만하지 못하면 근로勤勞하여 남이 복종服從하기를 구하는 것만 한 것이 없다는 말이다. 근로勤勞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남이 복종服從하기를 바라겠는가?
能勤이면 有繼 注+勤則功繼之 [附注] 朱曰 言不若往從衆狄毋召之也리라
근로勤勞하면 계속해 이 있을 것이니, 나는 그들에게로 갈 것이다.注+근로勤勞하면 이 계속된다는 말이다. [부주]朱: 중적衆狄을 부르지 않고 우리가 가는 것이 낫다는 말이다.
詩曰 文王旣勤止注+詩頌 文王勤以創業 라하니 文王猶勤이온 況寡德乎
시경詩經》에 ‘문왕文王께서 이미 근로勤勞하셨다.’注+는 《시경詩經》 〈주송周頌뇌편賚篇〉이다. 문왕文王근로勤勞하여 창업創業하였다는 말이다. 고 하였으니, 문왕文王도 오히려 근로勤勞하였는데 하물며 이 부족한 우리이겠는가?”
[傳]冬 楚子爲陳夏氏亂故 伐陳注+十年夏徵舒弑君할새 謂陳人無動하라
겨울에 초자楚子나라 하씨夏氏을 이유로 나라를 토벌討伐할 적에注+선공宣公 10년에 하징서夏徵舒가 그 임금을 시해弑害하였다.진인陳人들에게 이르기를, “경동驚動하지 말라.
將討於少西氏注+少西 徵舒之祖子夏之名라하고 遂入陳하야 殺夏徵舒하야 轘諸栗門注+也 栗門 陳城門하고 因縣陳注+滅陳以爲楚縣하다
소서씨少西氏를 치려는 것이다.”고 하고서注+소서少西징서徵舒조부祖父자하子夏의 이름이다. 드디어 나라로 쳐들어가 하징서夏徵舒를 죽여 율문栗門에서 거열車裂하고서,注+거열車裂하는 것이다. 율문栗門나라의 성문城門이다. 나라를 나라의 으로 삼았다.注+나라를 하고서 나라의 군현郡縣으로 삼은 것이다.
陳侯在晉注+靈公子成公午하다
이때 진후陳侯나라에 있었다.注+진후陳侯진영공陳靈公의 아들 성공成公이다.
申叔時使於齊라가하야 復命而退注+[附注] 林曰 申叔時 楚大夫하니 王使讓之曰 夏徵舒爲不道하야 弑其君이어늘 寡人以諸侯討而戮之하니
신숙시申叔時나라에 사신使臣으로 갔다가 돌아와서 복명復命하고 물러가니,注+[부주]林: 신숙시申叔時나라 대부大夫이다.초왕楚王이 사람을 보내 꾸짖어 말하기를, “하징서夏徵舒부도不道하여 그 임금을 시해弑害하였기에 과인寡人제후諸侯를 거느리고 가서 그를 토벌討伐해 죽였다.
諸侯縣公皆慶寡人注+楚縣大夫 皆僣稱公이로되 女獨不慶寡人 何故 對曰 猶可辭乎잇가 王曰 可哉
제후諸侯현공縣公은 모두 과인寡人에게 경하慶賀하는데注+나라는 현대부縣大夫를 모두 으로 참칭僭稱하였다. 유독 그대만이 경하慶賀하지 않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라고 하자, 신숙시申叔時가 대답하기를, “말씀드려도 좋겠습니까?”라고 하니, 초왕楚王이 “좋다.”고 하였다.
曰 夏徵舒弑其君 其罪大矣 討而戮之 君之義也니이다
그러자 신숙시申叔時가 말하기를, “하징서夏徵舒가 그 임금을 시해弑害한 것은 큰 이고, 그를 토벌討伐해 죽인 것은 군왕君王께서 정의正義하신 것입니다.
抑人亦有言曰 牽牛以蹊人之田注+抑 辭也 蹊 徑也이면 而奪之牛라하니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소를 끌고 남의 농지農地 가운데로 지나다니면注+어사語辭이다. 는 지름길이다. 농지農地주인主人은 그 소를 빼앗는다.’고 합니다.
牽牛以蹊者 信有罪矣어니와 而奪之牛 罰已重矣니이다
소를 끌고 남의 농지農地로 지나다니는 자는 진실로 가 있습니다만 그렇다고 그 소를 빼앗는 것은 이 너무 무겁습니다.
諸侯之從也 曰討有罪也어늘 今縣陳하시니 貪其富也니이다
제후諸侯군왕君王을 따라 함께 나라를 친 것은 ‘ 있는 자를 토벌討伐한다.’고 하셨기 때문인데, 지금 나라를 우리나라의 으로 삼으려 하시니, 이는 나라의 풍부豊富재물財物하는 것입니다.
以討召諸侯라가 而以貪歸之 無乃不可乎잇가 王曰 善哉
있는 자를 토벌討伐한다는 명분名分으로 제후諸侯를 불러놓고, 재물財物을 탐하는 것으로 결말結末을 낸다면 불가不可하지 않습니까?”라고 하니, 초왕楚王은 “훌륭한 말이다.
吾未之聞也로다
내 아직 이런 말은 들어보지 못하였다.
反之可乎 對曰 可哉니이다
그 땅을 도로 나라에 돌려주는 것이 좋겠는가?”라고 하니, 신숙시申叔時가 대답하기를, “좋습니다.
吾儕小人所謂取諸其懷而與之也注+叔時謙言小人意淺 謂譬如取人物於其懷而還之 爲愈於不還니이다
우리 소인小人들이 이른바 ‘그 사람의 품에서 빼앗은 물건을 그 사람에게 되돌려준다.’는 것입니다.”注+숙시叔時소인小人은 생각이 얕다고 겸손謙遜하게 말하면서, 그 사람의 품에서 빼앗은 물건을 그 사람에게 되돌려주는 것이 돌려주지 않는 것보다 낫다고 비유한 것이다. 고 하였다.
乃復封陳하고 鄕取一人焉以歸하야 謂之夏州注+州 鄕屬 示討夏氏所獲也라하다
이에 초왕楚王은 다시 진후陳侯를 그곳에 해 주고, 에서 한 사람씩 데리고 가서 한 곳을 정해 살게 하고는 그곳을 ‘하주夏州’라고 이름하였다.注+[屬]이니, 하씨夏氏토벌討伐하여 획득獲得한 것임을 보이기 위함이다.
故書曰 楚子入陳하야 納公孫寧儀行父于陳이라하니 書有禮也注+沒其縣陳本意 全以討亂存國爲文 善其復禮
그러므로 에 ‘초자입진楚子入陳납공손녕의행보우진納公孫寧儀行父于陳’이라고 기록記錄하였으니, 이는 초자楚子처사處事에 맞았음을 기록한 것이다.注+나라를 으로 삼고자 한 초왕楚王본의本意는 묻어 두고 오로지 난적亂賊토벌討伐하고 나라를 보존保存시킨 것으로 글을 만든 것은 초왕楚王처사處事에 맞은 것을 훌륭하게 여겨서이다.
[傳]厲之役 鄭伯逃歸注+蓋在六年 하니 自是楚未得志焉하다
전쟁戰爭정백鄭伯이 도망해 돌아가니,注+선공宣公 6년에 있었던 ‘초인벌정楚人伐鄭취성이환取成而還’을 이른 듯하다. 이때부터 나라는 뜻을 얻지 못하였다.
나라는 이미 신릉辰陵에서 나라의 맹약盟約접수接受했으면서 또 나라 섬기기를 하였다.注+명년明年나라가 나라를 포위包圍의 배경이다. 선공宣公 10년에 ‘정급초평鄭及楚平’한 일이 에 실리지 않았고, 신릉辰陵에서 결맹結盟한 뒤에 ‘정요사진鄭徼事晉’한 것도 에 분명한 사적事跡이 없으므로 에 특별히 말하여 배경背景을 밝힌 것이다. 전쟁戰爭 이후로 나라는 남쪽의 나라와 북쪽의 나라에 양속兩屬하였기 때문에 나라가 뜻을 얻지 못하였다. 선공宣公 9년에 초자楚子나라를 토벌討伐할 때 나라가 나라와 흑양黑壤에서 결맹結盟한 것을 이유로 토벌討伐하지 않고, 멀리 몇 년 전에 있었던 전쟁戰爭을 말한 것은 초자楚子원한怨恨전쟁戰爭에 있었기 때문이니, 이는 모두 상하上下사건事件포통包通(모두 포함시켜 뜻이 통하게 함)해 을 낸 뜻이다.
역주
역주1 亟[函] : 저본에는 ‘亟’으로 되어 있으나 《十三經注疏》本에 의거하여 ‘函’으로 바로잡았다.
역주2 楚人殺陳夏徵舒 : 春秋筆法에 君이 臣을 죽였다고 기록하는 例는 없다. 徵舒가 비록 外國의 臣下이지만 역시 그 例를 따른 것이다. 《左氏會箋》
역주3 楚子先殺徵舒……故書入在殺徵舒之後 : 事理로 보면 먼저 陳나라에 쳐들어간 뒤에 夏徵舒를 죽일 수 있었을 것인데, 經에 ‘殺夏徵舒’를 ‘入陳’ 뒤에 기록한 것에 대해 杜注는 이상과 같이 말하였다. 〈楊注〉
역주4 子[于] : 저본에는 ‘子’로 되어 있는데 《十三經注疏》本에 의거하여 ‘于’로 바로잡았다.
역주5 慮事 : 顧炎武의 《左傳杜解補正》에 “慮는 계획을 세우는 것이다.”고 하였으니, 이는 工事의 計劃을 세워 工程과 工事에 필요한 物資를 計算하는 것이다. 〈楊注〉
역주6 以授司徒 : 司徒는 周代에 六卿 중의 하나로 國家의 土地와 人民의 敎育을 管掌했다. 封人은 司徒의 屬官이기 때문에 計劃이 樹立되면 上官인 司徒에게 報告하는 것이다.
역주7 分財用 : 財는 材와 通用이고, 用은 用具이다. 築城할 때는 반드시 工程을 몇 段階로 나누어 必要한 資材와 工具를 계산해 나누어주어 일의 進行을 便利하게 한다. 〈楊注〉
역주8 稱畚築 : 기둥과 판자의 높낮이를 均等하게 하여 성의 높이와 가지런하게 하는 것이다. 〈正義〉 築은 흙을 다지는 것이다. 稱畚築은 흙을 나르는 사람과 흙을 다지는 사람의 수를 서로 맞게 排置하여, 흙이 부족해서 다지는 일을 停止하거나, 다지는 일손이 모자라 흙을 운반하는 일을 停止하는 일이 없도록 人力을 알맞게 分配하는 것이다.
역주9 程土物 : 土는 築城에 필요한 흙이고 物은 材木인데, 필요한 흙과 材木이 얼마인지를 計算해서 期限을 정해 備蓄해서, 工事를 停止하고서 材料가 오기를 기다리는 일이 없게 하는 것이다. 〈楊注〉
역주10 略基趾 : 築城할 基址를 먼저 巡視하며 地形과 地質 등을 살피는 것이다.
역주11 有司 : 築城은 工事가 커서 각 方面에 監督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를 ‘有司’라 한다. 〈楊注〉
역주12 衆狄 : 衆狄은 각 部落에 흩어져 사는 狄人이다.
역주13 其從之也 : 〈楊注〉와 《左氏會箋》에 모두 從은 가는 것이라고 하였다.
역주14 車裂 : 사람의 肢體를 두 수레의 중간에 매어 놓고 수레를 끌어 찢어 죽이는 것이다.
역주15 乃[及] : 저본에는 ‘乃’로 되어 있으나 《十三經注疏》本에 의거하여 ‘及’으로 바로잡았다.
역주16 爲明年楚圍鄭傳……此皆傳上下相包通之義也 : 杜注의 理解를 돕기 위해 〈正義〉를 소개한다. “宣公 10년에 ‘鄭及楚平’한 일이 없다는 것은 經에 없다는 말이고, ‘鄭徼事晉’한 것도 분명한 事跡이 없다는 것도 經에 없다는 말이다. 傳에 만약 이런 말을 하지 않았다면 楚나라가 무슨 이유로 明年에 갑자기 鄭나라를 포위했는지 그 까닭을 알 수 없게 된다. 그러므로 특별히 이 傳을 내어 後年에 ‘鄭나라를 包圍했다.’고 한 經의 뜻을 밝힌 것이다. 厲의 戰爭 이후로 鄭나라는 남쪽의 楚나라와 북쪽의 晉나라에 兩屬하여 楚나라를 섬기는 데 專心하지 않았기 때문에 楚나라가 뜻을 얻지 못하여, 明年에 鄭나라를 包圍한 것이다. 宣公 7년에 晉나라가 黑壤에서 會盟할 때 鄭伯도 參與하였고, 厲의 戰爭이 黑壤의 會盟 이전에 있었는데, 宣公 9년 傳에 ‘楚子가 厲의 戰爭을 이유로 鄭나라를 쳤다.’고 하였다. 傳에 黑壤의 會盟을 이유로 鄭나라를 쳤다고 하지 않고 멀리 몇 년 전에 있었던 厲의 戰爭을 말한 것은 楚子의 마음속 怨恨이 厲의 戰爭 때 鄭伯이 도망간 것에 있고, 黑壤에서 晉나라와 會盟한 것에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위에서는 厲를 지적하고 아래에서는 辰陵을 지적하고 중간에 黑壤을 포함시켰으니, 이는 모두 上下를 包通해 傳을 낸 뜻이다.”

춘추좌씨전(3) 책은 2019.05.2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18 By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