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春秋左氏傳(5)

춘추좌씨전(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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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좌씨전(5)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經]三十年春王正月 楚子使薳罷來聘하다
30년 봄 주왕周王정월正月초자楚子위파薳罷를 보내어 와서 빙문聘問하였다.
[經]夏四月 蔡世子般弑其君固하다
여름 4월에 나라 세자世子이 그 임금 시해弑害하였다.
[經]五月甲午 宋災注+天火曰災하다
5월 갑오일甲午日나라에 화재火災발생發生하였다.注+천화天火(저절로 나는 불)를 ‘’라 한다.
[經]宋伯姬卒하다
송백희宋伯姬하였다.
[經]天王 殺其弟佞夫注+稱弟 以惡王殘骨肉하다
천왕天王이 그 아우 영부佞夫를 죽였다.注+아우라고 한 것은 골육骨肉을 해친 을 미워해서이다.
[經]王子瑕奔晉注+不言出奔 周無外하다
왕자王子나라로 달아났다.注+출분出奔’이라고 말하지 않은 것은 나라는 국외國外가 없기 때문이다.
[經]秋七月 叔弓如宋하야 葬宋共姬注+共姬 從夫諡也 叔弓 叔老之子 卿共葬事 禮過厚 하다
가을 7월에 숙궁叔弓나라에 가서 송공희宋共姬장사葬事 지냈다.注+공희共姬는 남편의 시호諡號를 따른 것이다. 숙궁叔弓숙로叔老의 아들이다. 을 보내어 장사葬事를 돌보게 하였으니 가 지나치게 하였다. 3개월 만에 장사葬事 지냈으니, 너무 빨랐다.
[經]鄭良霄出奔許注+耆酒荒淫 書名 罪之라가 自許入于鄭注+不言 獨還無兵 하니 鄭人殺良霄하다
나라 양소良霄나라로 출분出奔하였다가注+술을 즐기고 여색女色에 빠졌기 때문에 이름을 기록하여 를 드러낸 것이다.나라에서 나라로 돌아가니注+복입復入’이라고 말하지 않은 것은 군대를 거느리지 않고 홀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정인鄭人양소良霄를 죽였다.
[經]冬十月 葬蔡景公注+無傳하다
겨울 10월에 채경공蔡景公장사葬事 지냈다.注+이 없다.
[經]晉人齊人宋人衛人鄭人曹人莒人邾人滕人薛人杞人小邾人會于澶淵하니 宋災故注+會未有言其事者 此言宋災故 以惡宋人不克己自責 而出會求財
진인晉人제인齊人송인宋人위인衛人정인鄭人조인曹人거인莒人주인邾人등인滕人설인薛人기인杞人소주인小邾人전연澶淵에서 회합會合하였으니, 나라의 화재火災 때문이었다.注+모든 회합會合에 그 일(目的)을 말한 적이 없는데, 여기에 ‘나라의 화재火災 때문이다’고 말한 것은 송인宋人사욕私慾억제抑制하지도 자책自責하지도 않고서 회합會合에 나와서 재물財物요구要求한 것을 미워해서이다.
[傳]三十年春王正月 楚子使薳罷來聘하니 通嗣君也注+郟敖卽位
30년 봄 주왕周王정월正月초자楚子위파薳罷를 보내어 와서 빙문聘問하였으니, 이는 새 임금이 승계承繼하였음을 통고通告하기 위함이었다.注+겹오郟敖즉위卽位하였다.
穆叔問王子之爲政何如注+王子圍爲令尹 對曰 吾儕小人 猶懼注+[附注] 林曰 君之命令 5)而不免於戾 焉與知政이리오
목숙穆叔이 “왕자王子정사政事하는 것이 어떠하냐.”注+왕자王子영윤令尹이었다. 고 묻자, 위파薳罷가 대답하기를 “우리 같은 소인小人은 밥이나 축낼 뿐, 아무 재능이 없으니 윗분이 시키는 대로 하여도, 오히려 사명使命완수完遂하지 못하여注+[부주]林: 은 임금의 명령命令이다. 하지 못할까 두려운데, 어찌 정사政事를 알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였다.
固問焉호되 不告하다
목숙穆叔이 굳이 물었으나, 위파薳罷는 대답하지 않았다.
穆叔告大夫曰 楚令尹將有大事어늘 子蕩將與焉注+子蕩 薳罷하야 助之ᄅ새 匿其情矣注+子圍素貴 郟敖微弱 諸侯皆知其將爲亂 故穆叔問之 [附注] 林曰 薳罷不言其爲政 是助子圍藏匿其邪慝之情矣
목숙穆叔대부大夫들에게 하기를 “나라 영윤令尹이 큰일을 일으키려 하는데, 자탕子蕩이 그 일에 참여하여注+자탕子蕩위파薳罷이다. 영윤令尹을 도우려 하기 때문에 속마음을 숨기고 말하지 않는 것이다.”注+자위子圍는 본디부터 존귀尊貴하고 겹오郟敖미약微弱하니, 제후諸侯들은 자위子圍가 장차 을 일으킬 것으로 알았다. 그러므로 목숙穆叔이 물은 것이다. [부주]林: 위파薳罷영윤令尹정치政治를 말하지 않은 것이 바로 자위子圍를 도와 그의 사특邪慝한 생각을 숨긴 것이다. 고 하였다.
[傳]子産相鄭伯以如晉하다
자산子産정백鄭伯보좌輔佐나라에 갔다.
叔向問鄭國之政焉한대 對曰 吾得見與否 在此歲也注+[附注] 林曰 言禍難方興 生死未可必 得見不得見未可知 決在今年
숙향叔向자산子産에게 나라 정권政權에 대해 묻자, 자산子産이 “내가 볼 수 있는지의 여부與否금년今年 안에 있을 것입니다.注+[부주]林: 바야흐로 화난禍難이 일어나서 생사生死기필期必할 수 없으므로 볼 수 있을는지, 볼 수 없을는지를 알 수 없으나, 그 결정決定금년今年 안에 있을 것이라는 말이다.
駟良方爭하니 注+駟氏 子晳也 良氏 伯有也 [附注] 林曰 未知其所平和 이라
사씨駟氏양씨良氏가 바야흐로 정권政權을 다투고 있는데 누가 성공成功할 지 알 수 없습니다.注+사씨駟氏자석子晳이고 양씨良氏백유伯有이다. [부주]林: 그들을 평화平和시킬 방법을 모르겠다는 말이다.
若有所成이면 吾得見하리니 乃可知也注+[附注] 林曰 乃可知其政之所歸
만약 성공成功하는 사람이 있으면 내가 볼 수 있을 것이니, 그제야 〈정권政權이 누구에게 돌아갈 것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注+[부주]林: 그제야 나라의 정권政權이 돌아갈 곳을 알 수 있다는 말이다. 고 대답하였다.
叔向曰 不旣和矣乎注+[附注] 朱曰 言大夫已和之 盟於伯有氏矣 對曰 伯有侈而愎注+愎 狠也 하고 子晳好在人上하야 莫能相下也 雖其和也라도 猶相積惡也 惡至無日矣注+爲此年秋良霄出奔傳 [附注] 林曰 怨惡之至 不能久矣 리라
숙향叔向이 “그들이 이미 화해和解하지 않았습니까?”注+[부주]朱: 대부大夫들이 이미 그들을 화해和解시켜 백유씨伯有氏의 집에서 결맹結盟한 일을 말한 것이다. 라고 하자, 자산子産이 “백유伯有는 사치스러우면서 사납고注+은 사나운 것이다. , 자석子晳은 남의 윗자리에 있기를 좋아하여, 누구도 서로 양보讓步[下]하려 하지 않으니 비록 그들이 이미 화해和解하였다고는 하나 오히려 서로 원한怨恨증오憎惡를 쌓고 있으니, 오래지 않아 그 원한怨恨증오憎惡에 도달할 것입니다.”注+이해 가을에 양소良霄출분出奔의 배경이다. [부주]林: 원한怨恨증오憎惡가 지극하여, 〈그 화해和解가〉 오래갈 수 없다는 말이다. 고 대답하였다.
[傳]二月癸未 晉悼夫人食之城杞者注+輿 衆也 城杞在往年 [附注] 朱曰 食 謂以飮食犒之也할새 絳縣人或年長矣로되 無子而往하야 與於食注+[附注] 朱曰 以其無子故 自受役 하다
2월 계미일癸未日진도부인晉悼夫人나라의 축조築造하는 역부役夫들에게 음식飮食접대接待할 때注+輿는 무리이다. 나라에 을 쌓은 일은 지난해에 있었다. [부주]朱: 음식飮食으로 역부役夫들을 호궤犒饋(飮食을 주어 위로慰勞함)한 것이다. , 강현絳縣의 어떤 사람이 나이가 많은데도 자식이 없어 직접 축성築城부역賦役에 나아가 그 접대接待참여參與하였다.注+[부주]朱: 아들이 없기 때문에 자신自身부역賦役에 나온 것이다.
有與疑年注+[附注] 林曰 將有所與 見其年老 疑其年 朱曰 有人與同食者 疑此老人之年하야 使之年注+使言其年한대 曰 臣 小人也 不知紀年이어니와
음식飮食을 나누어 줄 때 관리官吏가 그 나이를 의심하여注+[부주]林: 음식飮食을 주려 할 때 그가 연로年老한 것을 보고서 그 나이를 의심한 것이다. [부주]朱: 그와 함께 음식飮食을 먹던 어떤 사람이 이 노인老人의 나이를 의심한 것이다. 나이를 말하게 하자注+노인老人에게 본인本人의 나이를 말하게 한 것이다. , 그가 말하기를 “소인小人이어서 나이를 기억하지 못합니다.
臣生之歲 正月甲子朔이니 四百有四十五甲子矣 其季於今 三之一也注+所稱正月 謂夏正月也 三分六甲之一 得甲子甲戌 盡癸未 [附注] 朱曰 其季 謂第四百四十五介甲子矣 自甲子數起 至此日癸未方二十日 甲子一周有六十日 是得三分之一也
이 태어나던 해의 정월正月 초하루가 갑자일甲子日이었고, 그로부터 4백 45번의 갑자일甲子日이 지났는데, 그 마지막 갑자일甲子日은 지난 지가 지금 겨우 20(三分의 )이 되었습니다.”注+그가 말한 정월正月하력夏曆정월正月이다. 육갑六甲의 3분의 1은 갑자일甲子日로부터 계유일癸酉日까지와 갑술일甲戌日로부터 계미일癸未日까지이다. [부주]朱: 그 마지막 갑자甲子는 4백 45번째의 갑자일甲子日을 이른다. 갑자일甲子日로부터 세기 시작하여 계미일癸未日에 이르면 20일이 된다. 갑자甲子일주一周하면 60이니, 20육갑六甲의 3분의 1이다. 고 하였다.
吏走問諸朝注+皆不知 故問之한대 師曠曰 魯叔仲惠伯會郤成子于承匡之歲也注+在文十一年
관리官吏조정朝廷으로 달려가 물으니注+모두 알지 못하였기 때문에 물은 것이다. , 사광師曠이 말하기를 “이해는 나라 숙중혜백叔仲惠伯승광承匡에서 극성자郤成子(晉大夫 극결郤缺)와 회합會合했던 해이다.注+회합會合문공文公 11에 있었다.
是歲也 狄伐魯어늘 叔孫莊叔於是乎敗狄于鹹하야 獲長狄僑如及虺也豹也하고 而皆以名其子하니 七十三年矣注+叔孫僑如叔孫豹 皆取長狄名 [附注] 朱曰 自乙巳歲至今年戊午 首末七十四年矣 而曰七十三者 蓋計其全數 尙未滿七十三年也
이해에 적인狄人나라를 침벌侵伐하자, 이때 숙손장숙叔孫莊叔(叔孫得臣)이 에서 적인狄人패배敗北시키고 장적교여長狄僑如를 사로잡고서, 〈이를 기념記念하기 위해〉 그들의 이름자를 사용해 자기 아들들의 이름을 지었는데, 이미 73년이 지났다.”注+숙손교여叔孫僑如숙손표叔孫豹는 모두 장적長狄의 이름자를 한 것이다. [부주]朱: 을사년乙巳年으로부터 금년今年무오년戊午年까지가 모두 74인데, 73이라고 한 것은 그 전수全數계산計算해 보면 아직 73에 차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 하였다.
史趙曰 注+史趙 晉大史 亥字二畫在上 倂三六爲身 如算之六 [附注] 朱曰 言亥字上二畫爲首 下六畫爲身 如算之六者三也 春秋時有此字體하니 下二如身이면 是其日數也注+下亥上二畫竪置身旁 [附注] 朱曰 如 往也 言除下亥上二畫 往置身旁 便是此老人從初生年起 至今癸未日之日數也 蓋以亥之二畫爲二萬之數 以三六之算爲六千六百六旬之數也 士文伯曰 然則二萬六千六百有六旬也注+文伯 士弱之子
사조史趙가 말하기를 “해자亥字는 ‘’가 머리이고 ‘’이 몸이니注+사조史趙나라 태사太史이다. 해자亥字는 두 이 위에 있고 병렬倂列한 세 개의 이 몸이 되었으니, 마치 산수算數의 6과 같다. [부주]朱: 해자亥字는 위의 두 이 머리가 되고 아래의 여섯 이 몸이 되었으니 마치 산수算數의 ‘’과 같은 것이 셋이라는 말이다. 춘추春秋 때에는 이런 자체字體가 있었다. 위의 ‘’를 아래로 내려 몸의 〈세 개의 과 같이 배열排列하면〉 바로 그가 살아온 나이가 된다.”注+해자亥字의 위의 두 을 아래로 내려 몸 옆에 세로로 세워 놓는 것이다. [부주]朱: (보냄)이니, 해자亥字의 위의 두 을 제거해 아래로 내려서 몸 옆으로 보내어 세로로 세우면 바로 이 노인老人이 처음 출생出生한 날부터 이번의 계미일癸未日까지의 일수日數가 된다는 말이다. 대개 해자亥字의 위의 두 을 2으로, 세 육자六字를 6천 6백 60일의 로 삼은 것이다. 고 하자, 사문백士文伯이 “그렇다면 2만 6천 6백 60일이다.”注+문백文伯사약士弱의 아들이다. 고 하였다.
趙孟問其縣大夫하니 則其屬也注+屬趙武 [附注] 林曰 趙孟卽趙武 問其縣大夫爲誰 則趙孟之屬大夫也러라
조맹趙孟(趙武)이 강현絳縣대부大夫가 누구인지를 물어보니 자기에게 소속所屬대부大夫였다.注+조무趙武에게 소속所屬된 것이다. [부주]林: 조맹趙孟은 바로 조무趙武이다. 그 대부大夫가 누구냐고 물어보니, 조맹趙孟속대부屬大夫였다는 말이다.
召之하야 而謝過焉注+[附注] 林曰 以老人爲賢故 召而見之 且謝己不知人之過 하고 曰 武不才 任君之大事注+[附注] 朱曰 掌國之政 하니 以晉國之多虞 不能由吾子注+由 用也 하야 使吾子辱在泥塗久矣
조맹趙孟이 그 노인老人을 불러 사과謝過하며 말하기를注+[부주]林: 노인老人현인賢人으로 여겼기 때문에 그를 불러 보고서 자기가 사람을 알아보지 못한 것을 사과謝過한 것이다. 재능才能이 없는 내가 임금님의 대사大事를 맡다 보니注+[부주]朱: 나라의 정사政事를 맡았다는 말이다. , 나라에 우환憂患이 많음으로 인해 그대를 등용登用[由]하지 못하여注+등용登用하는 것이다. 그대를 비천卑賤신분身分으로 오래 있게 하였다.
武之罪也 敢謝不才하노라 遂仕之하야 使助爲政한대 辭以老어늘
이것은 나의 이니 감히 나의 무능無能사과謝過하노라.”고 하고서, 드디어 그에게 벼슬을 주어 자기의 정무政務를 돕게 하자, 그는 늙었다고 사양하였다.
與之田하야 使爲君復陶注+復陶 主衣服之官 하고 以爲絳縣師注+縣師 掌地域 辨其夫家人民 하고 而廢其輿尉注+以役孤老故 [附注] 林曰 以絳縣輿尉之官 役使孤老而廢其職하다
그러자 그에게 토지土地를 주어 임금의 복도復陶(衣服을 주관主管하는 관원官員)로 삼아注+복도復陶의복衣服주관主管하는 관직官職이다. 강현絳縣현사縣師겸직兼職시키고서注+현사縣師는 한 지역地域을 맡아 그 부가夫家(民家)와 인민人民(奴婢)을 다스린다. , 그 여위輿尉파면罷免하였다.注+자식 없는 노인老人부역賦役시켰기 때문이다. [부주]林: 강현絳縣여위관輿尉官이 자식 없는 노인老人사역使役하였다 하여 그를 관직官職에서 폐출廢黜한 것이다.
於是魯使者在晉하다
이때 나라의 사자使者나라에 머물러 있었으므로 이 일을 들어 알았다.
歸以語諸大夫한대 季武子曰 晉未可注+媮 薄也
돌아와서 대부大夫들에게 이 일을 말하니, 계무자季武子가 말하기를 “나라를 가벼이 보아서는 안 된다.注+이다.
有趙孟以爲大夫하고 有伯瑕以爲佐注+伯瑕 士文伯하고 有史趙師曠而咨度焉하고 有叔向女齊以師保其君하니
조맹趙孟대부大夫(卿)가 되고 백하伯瑕가 그를 보좌補佐하며注+백하伯瑕사문백士文伯이다. , 사조史趙사광師曠자문諮問하고 숙향叔向여제女齊가 그 임금의 사보師保가 되었다.
其朝多君子 其庸可媮乎
조정朝廷군자君子가 많으니 어찌 가벼이 볼 수 있겠는가?
勉事之而後可注+傳言晉所以强 不失諸侯 且明라하다
반드시 힘을 다해 나라를 섬긴 뒤에야 환란患亂할 수 있을 것이다.”注+전문傳文나라가 하여 제후諸侯를 잃지 않을 이유理由를 말하고, 또 그 내력來歷을 밝힌 것이다. 고 하였다.
[傳]夏四月己亥 鄭伯及其大夫盟注+駟良爭故하다
여름 4월 기해일己亥日정백鄭伯이 그 대부大夫들과 결맹結盟하였다.注+(子晳)와 (伯有)이 다투었기 때문이다.
君子是以知鄭難之不已也注+鄭伯微弱 不能制其臣下 君臣詛盟 故曰亂未已
군자君子는 이로 인해 나라에 화난禍難이 그치지 않을 것을 알았다.注+정백鄭伯미약微弱하여 능히 그 신하臣下제압制壓하지 못하고 군신君臣결맹結盟하였기 때문에 ‘이 그치지 않을 것이다.’고 한 것이다.
[傳]蔡景侯爲太子般娶于楚하야 通焉하니 太子弑景侯注+終子産言有子禍也 하다
채경후蔡景侯태자太子을 위해 나라 여인女人태자太子의 아내로 맞이해 와서는 자신이 그 여인女人하니, 태자太子경후景侯시해弑害하였다.注+양공襄公 28에 ‘자식의 가 있을 것이다.’고 한 자산子産의 말이 끝내 들어맞았다.
[傳]初 王儋季卒注+儋季 周靈王弟 其子括將見王할새 而歎注+括除服 見靈王 入朝而歎 하다
전에 주영왕周靈王의 아우 담계儋季가 죽자注+담계儋季주영왕周靈王의 아우이다. 그 아들 복상服喪을 마치고 입조入朝하여 영왕靈王알현謁見하려 할 때 탄식歎息을 하였다.注+담괄儋括복상服喪을 마치고서 영왕靈王을 뵙기 위해 조정朝廷에 들어가서 탄식歎息한 것이다.
單公子愆期爲靈王御士하야 過諸廷注+愆期行過王廷타가 聞其歎而言注+[附注] 林曰 聞儋括歎息而自言曰 嗚呼
그때 단국單國공자公子건기愆期영왕靈王어사御士(侍衛)였는데, 조정朝廷을 지나다가注+건기愆期조정朝廷(王廷)을 지난 것이다. 그가 탄식歎息하며注+[부주]林: 담괄儋括탄식歎息하면서 스스로 하는 말을 들은 것이다. “아!
必有此夫注+欲有此朝廷之權 [附注] 林曰 曰字以下述儋括之言 ᄂ저하고 入以告王注+[附注] 林曰 愆期入 以括之言告靈王하고 且曰 必殺之하소서
내 반드시 이 조정朝廷소유所有할 것이다.”注+조정朝廷권력權力을 쥐고자 한다는 말이다. [부주]林: 왈자曰字 이하는 담괄儋括의 말을 서술敍述한 것이다. 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서 들어가 영왕靈王보고報告하고注+[부주]林: 건기愆期가 들어가서 담괄儋括의 말을 영왕靈王보고報告한 것이다. , 또 “반드시 그를 죽이소서.
不慼而願大하고 視躁而足高하니 心在他矣
막 아비의 상을 벗었는데도 슬퍼하지 않고 큰 것을 하며, 시선視線안정安定되지 않고 발걸음은 높으니 이는 마음이 다른 곳에 있어서입니다.
不殺이면 必害리이다 王曰 何知
죽이지 않으면 반드시 위해危害를 끼칠 것입니다.”고 하니, 영왕靈王은 “어린 네가 무엇을 안다고 그런 말을 하느냐?”고 하였다.
及靈王崩하야 儋括欲立王子佞夫注+佞夫 靈王子 景王弟로되 佞夫弗知하다
영왕靈王붕어崩御함에 미쳐 담괄儋括왕자王子영부佞夫사왕嗣王으로 세우고자 하였으나注+영부佞夫영왕靈王의 아들이고 경왕景王의 아우이다. 영부佞夫는 알지 못하였다.
戊子 儋括圍蔿하고注+成愆 蔿邑大夫 하니 成愆奔平畤注+平畤 周邑 하다
무자일戊子日담괄儋括위읍蔿邑포위包圍하여 성건成愆(愆期)을 축출逐出하니注+성건成愆위읍대부蔿邑大夫이다. 성건成愆평치平畤로 도망갔다.注+평치平畤나라 이다.
五月癸巳 尹言多劉毅單蔑甘過鞏成殺佞夫注+五子 周大夫 하니 括瑕廖奔晉注+ [附注] 林曰 瑕廖 皆儋括之黨 하다
5월 계사일癸巳日윤언다尹言多유의劉毅단멸單蔑감과甘過공성鞏成영부佞夫를 죽이니注+다섯 사람은 나라 대부大夫이다. , 나라로 도망갔다.注+를 기록하지 않은 것은 그들이 하였기 때문이다. [부주]林: 는 모두 담괄儋括이다.
書曰天王殺其弟佞夫라하니 注+佞夫不知故 經書在宋災下 從赴
에 “천왕天王이 그 아우 영부佞夫를 죽였다.”고 기록하였으니, 이는 그 에게 있음을 밝힌 것이다.注+영부佞夫는 알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에 이 일을 ‘송재宋災’ 아래에 기록하였으니, 이는 통고通告해온 순서順序에 따른 것이다.
[傳]或叫于宋大廟注+叫 呼也 曰 譆譆出出注+譆譆 熱也 出出 戒伯姬 이라하고 鳥鳴于注+殷社에도 如曰譆譆注+皆火妖也하다
어떤 사람이 나라 태묘太廟에서 큰소리로注+는 부르짖음이다.희희출출譆譆出出(불이 날 것이니 속히 나가라는 뜻)注+희희譆譆는 뜨거운 것이고, 출출出出백희伯姬경계警戒한 말이다. .”이라고 부르짖었고, 박사亳社에서 우는 새의 소리도注+박사亳社은사殷社이다. 희희譆譆’라고 하는 것 같았다.注+모두 화요火妖(火災가 발생發生징조徵兆)이다.
注+姆 女師 [附注] 林曰 伯姬待姆而後下堂 故爲火所焚而死
갑오일甲午日나라에 큰 화재火災발생發生하여 송백희宋伯姬가 불에 타 죽었으니, 보모保姆를 기다렸기 때문이다.注+여사女師이다. [부주]林: 백희伯姬보모保姆가 오기를 기다린 뒤에 에서 내려갔다. 그러므로 불에 타 죽은 것이다.
君子謂
군자君子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논평論評하였다.
宋共姬 女而不婦
송공희宋共姬처녀處女도리道理만을 알고 부인婦人도리道理는 알지 못하였다.
女待人注+待人而行이어니와 婦義事也注+ 伯姬時年六十左右
처녀處女라면 보모保姆의 시중을 기다려야 하지만注+사람이 시중하기를 기다려 행동行動한다는 말이다. 부인婦人사리事理의 마땅함을 헤아려 해야 한다.”注+편의便宜를 따르는 것이다. 백희伯姬의 나이가 이때 60좌우左右였다.
[傳]六月 鄭子産如陳涖盟注+[附注] 朱曰 二十五年 鄭入陳 自是陳服於鄭 故往陳涖盟하고하야 復命하고 告大夫曰 陳 亡國也 不可與也注+不可與結好 [附注] 朱曰 言陳國將亡
6월에 나라 자산子産나라에 가서 맹약盟約참가參加하고서注+[부주]朱: 양공襄公 25나라가 나라를 쳐들어간 뒤로부터 나라는 나라에 복종服從하였다. 그러므로 나라에 가서 맹약盟約참가參加한 것이다. 돌아와 복명復命하고, 대부大夫들에게 하기를 “나라는 할 나라이니 그들과 우호友好를 맺을 필요가 없습니다.注+그들과 우호友好를 맺을 게 없다는 말이다. [부주]朱: 나라는 장차 망할 것이라는 말이다.
聚禾粟하고 繕城郭하야 恃此二者하고 而不撫其民이라
곡식穀食을 모으고 성곽城郭수선修繕하고서 이 두 가지만을 믿고 백성을 위무慰撫하지 않습니다.
其君注+[附注] 朱曰 其君之志 弱於植立하고 公子侈하며 大子卑하고 大夫傲하며 政多門注+政不由一人 이라
그 임금은 근기根基하고注+[부주]朱: 그 임금의 의지意志는 일을 수립樹立하기에 하다는 말이다. 공자公子는 사치스러우며, 태자太子권위權威가 낮고 대부大夫는 오만하며, 정령政令이 여러 곳에서 나옵니다.注+정령政令이 한 사람(임금)에게서 나오지 않는다는 말이다.
以介於大國注+介 間也하니 能無亡乎
그런 나라가 대국大國 사이에 끼어 있으니注+(낌)이다.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不過十年矣注+爲昭八年楚滅陳傳리라
10년을 넘기지 못할 것입니다.”注+소공昭公 8년에 나라가 나라를 멸망滅亡시킨 의 배경이다. 고 하였다.
[傳]秋七月 叔弓如宋하니 葬共姬也注+傷伯姬之遇災 故使卿共葬
가을 7월에 숙궁叔弓나라에 갔으니, 이는 공희共姬장사葬事회장會葬하기 위함이었다.注+백희伯姬가 불에 타 죽는 재변災變을 당한 것을 가슴 아프게 여겼기 때문에 을 보내어 장례葬禮참여參與하게 한 것이다.
[傳]鄭伯有耆酒하야 爲窟室注+窟室 地室 하야 而夜飮酒擊鐘焉하고 朝至未已注+[附注] 林曰 家臣來朝者已至 而飮酒猶未已하다
나라 백유伯有가 술을 즐겨 굴실窟室(地下室)을 만들어 놓고서注+굴실窟室지하실地下室이다. 밤이면 그곳에서 술을 마시고 음악音樂연주演奏하며 아침이 되도록 그치지 않았다.注+[부주]林: 조현朝見하기 위해 가신家臣들이 이미 왔으되, 백유伯有는 술 마시는 일을 여전히 그치지 않은 것이다.
朝者曰 公焉在注+家臣 故謂伯有爲公 其人曰 吾公在壑谷注+壑谷 窟室 이라하니 皆自朝布路而罷注+布路 分散 하다
조현朝見하기 위해 온 가신家臣들이 백유伯有시종侍從에게 “은 어디에 계시는가?”注+가신家臣들이었기 때문에 백유伯有를 ‘’이라고 한 것이다. 고 묻자, 그 시종侍從이 “우리 께서는 학곡壑谷(窟室)에 계십니다.”注+학곡壑谷굴실窟室이다. 고 대답하니, 가신家臣들은 모두 조당朝堂에서 흩어져 돌아갔다.注+포로布路는 나뉘어 흩어짐이다.
旣而朝注+伯有朝鄭君하야 則又將使子晳如楚하고 歸而飮酒하다
이윽고 백유伯有대궐大闕로 가서 정백鄭伯조현朝見하고서注+백유伯有나라 임금에게 조현朝見한 것이다. 자석子晳나라에 보내기로 하고는 집으로 돌아와서 술을 마셨다.
庚子 子晳以駟氏之甲伐而焚之注+[附注] 林曰 子晳 駟氏 故以其家族之甲伐伯有而火攻之하니 伯有奔雍梁注+雍梁 鄭地 하야 醒而後知之하고 遂奔許하다
경자일庚子日자석子晳사씨駟氏갑사甲士를 거느리고 백유伯有토벌討伐하여 그 집을 불태우니注+[부주]林: 자석子晳사씨駟氏이다. 그러므로 그 집안의 갑사甲士를 거느리고서 백유伯有토벌討伐하여 불을 놓아 공격한 것이다. , 백유伯有옹량雍梁으로 도망가서注+옹량雍梁나라 땅이다. 술이 깬 뒤에야 변란變亂이 일어난 것을 알고는 드디어 나라로 출분出奔하였다.
大夫聚謀注+[附注] 林曰 謀所以處駟良之道 할새 子皮曰 仲虺之志注+仲虺 湯左相 [附注] 林曰 子皮卽罕虎 志 書也호대 亂者取之하고 亡者侮之라하니 推亡固存 國之利也
대부大夫들이 모여 백유伯有자석子晳의 일을 상의商議할 때注+[부주]林: (子晳)와 (伯有)의 일을 처리處理방법方法상의商議한 것이다., 자피子皮가 말하기를 “중훼지지仲虺之志注+중훼仲虺은탕殷湯좌상左相이다. [부주]林: 자피子皮는 바로 한호罕虎이다. 이다. 혼란昏亂한 짓을 하는 나라는 공격攻擊하고 할 짓을 하는 나라는 패망敗亡시켰다.’고 하였으니, 할 짓을 하는 자를 밀어 넘어뜨리고, 보존保存될 일을 하는 자를 공고鞏固하게 세워주는 것이 국가國家이익利益이다.”고 하였다.
罕駟豐同生注+罕 子皮 駟 子晳 豐 公孫段也 三家本同母兄弟이오 伯有汰侈 故不免注+三家同出 而伯有孤特 又汰侈 所以亡 하다
한씨罕氏사씨駟氏풍씨豐氏동복형제同腹兄弟이고注+자피子皮이고, 자석子晳이고, 공손公孫이다. 삼가三家는 본래 동복형제同腹兄弟이다. , 백유伯有는 〈외로운데다가〉 교만驕慢하고 사치奢侈하였기 때문에 화난禍難하지 못한 것이다.注+삼가三家동복형제同腹兄弟이고, 백유伯有는 외로운데다가 또 교만하고 사치하였기 때문에 한 것이다.
人謂子産就直助强注+時謂子晳直 三家彊 [附注] 林曰 或告子産當子晳之直 助三家之彊 以共攻伯有이라하니 子産曰 豈爲我徒注+徒 黨也 言不以駟良爲黨 [附注] 林曰 言我豈於駟良偏有所黨리오
어떤 사람이 자산子産에게 “정직正直한 사람을 가까이하고 강대强大한 사람을 도우라.”注+당시 사람들은 자석子晳정직正直하고 삼가三家하다고 하였다. [부주]林: 어떤 자가 자산子産에게 “정직正直자석子晳을 가까이하고 삼가三家를 도와서 백유伯有공격攻擊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한 것이다. 고 하니, 자산子産이 말하기를 “저들이 어찌 나의 무리가 될 수 있겠는가?注+이니, 을 나의 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말이다. [부주]林: 내 어찌 두 사람 중에 어느 한쪽을 편들어 돕는[黨] 바가 있겠느냐는 말이다.
國之禍難 誰知所注+[附注] 林曰 誰能預知其所終敝 리오
국가國家화난禍難종지終止[敝]시킬 사람이 누구인지를 누가 알겠는가?注+[부주]林: 국가國家화난禍難종지終止시킬 사람이 누구인지를 누가 미리 알겠느냐는 말이다.
或主彊直이면 難乃不生注+言能彊能直 則可弭難 今三家未能 則伯有方爭 이니 姑成吾所注+欲以無所附著爲所 하리라
만약 국정國政주지住持한 자가 강직彊直하였다면 화난禍難이 생기지 않았을 것이니注+하고 정직正直하면 화난禍難소멸消滅시킬 수 있는데, 지금 삼가三家는 그렇지 못하여 백유伯有와 바야흐로 쟁투爭鬪하고 있다는 말이다. , 우선 나는 뜻한 바 〈중립中立을 지키겠다는 뜻〉를 이루겠다.”注+누구에게도 붙지 않는 것으로써 자신의 소신所信으로 삼고자 한다는 말이다. 고 하였다.
辛丑 子産斂伯有氏之死者而殯之하고 不及謀而遂行注+不與於國謀 하니 印段從之注+義子産 [附注] 林曰 從之而去하다
신축일辛丑日자산子産백유씨伯有氏가족家族 중에 죽은 자의 시신屍身을 거두어 빈장殯葬하고는 대부大夫들의 모의謀議참여參與하지 않고서 드디어 나라를 떠나니注+국사國事에 관한 모의謀議참여參與하지 않은 것이다. , 인단印段이 그를 따랐다.注+자산子産롭게 여긴 것이다. [부주]林: 자산子産을 따라간 것이다.
子皮止之注+[附注] 林曰 子皮止子産 使毋出奔 한대 衆曰 人不我順이어늘 何止焉注+[附注] 林曰 人謂子産 朱曰 言子産不順我三家 이리오
자피子皮가 〈사람을 보내어〉 떠나는 자산子産만류挽留하게 하자注+[부주]林: 자피子皮자산子産만류挽留하여 출분出奔하지 말게 한 것이다. , 대중大衆은 “저 사람은 우리를 순종順從하지 않는데 무엇 때문에 만류挽留하려 하십니까?”注+[부주]林: 어떤 사람이 자산子産에게 이른 것이다. [부주]朱: 자산子産은 우리 삼가三家순종順從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말이다. 라고 하였다.
子皮曰 夫子禮於死者 況生者乎아하고 遂自止之하다
그러자 자피子皮가 말하기를 “부자夫子(子産)는 죽은 자에게도 하는데 하물며 산 자에게야 말할 것이 있겠는가?”고 하고서, 드디어 자신自身이 직접 가서 만류挽留하였다.
壬寅 子産入하고 癸卯 子石入注+子石 印段 하야 皆受盟于子晳氏하다
임인일壬寅日자산子産이 들어오고, 계묘일癸卯日자석子石(印段)이 들어와서注+자석子石인단印段이다. 모두 자석씨子晳氏의 집에서 맹약盟約접수接受하였다.
乙巳 鄭伯及其大夫盟于大宮注+大宮 祖廟하고 盟國人于師之梁之外注+師之梁 鄭城門하다
을사일乙巳日정백鄭伯이 그 대부大夫들과 대궁大宮에서 결맹結盟하고注+대궁大宮조묘祖廟이다. 국인國人들과 사지량師之梁 밖에서 결맹結盟하였다.注+사지량師之梁나라 성문城門이다.
伯有聞鄭人之盟己也하고注+[附注] 林曰 以鄭人爲盟背己 故忿怒라가 聞子皮之甲不與攻己也하고 喜曰 子皮與我矣라하다
백유伯有정인鄭人이 이미 자기를 배척排斥하기로 결맹結盟하였다는 말을 듣고는 하였다가注+[부주]林: 나라 사람들이 자기를 배반背反하기로 결맹結盟하였기 때문에 분노忿怒한 것이다.자피子皮갑사甲士가 자기를 공격攻擊하는 데 참여參與하지 않았다는 말을 듣고는 기뻐하며 말하기를 “자피子皮는 나를 돕는구나.”라고 하고서,
癸丑晨 自墓門之瀆入注+墓門 鄭城門 [附注] 林曰 自城門之溝瀆而入하야 하야 以伐舊北門注+馬師頡 子羽孫也 [附注] 林曰 介 甲也 用襄庫之兵甲 以伐鄭伯之舊北門하니 駟帶率國人以伐之注+駟帶 子西之子 子晳之宗主하다
계축일癸丑日 새벽에 묘문墓門의 수챗구멍으로 들어가서注+묘문墓門나라 성문城門이다. [부주]林: 성문城門의 수챗구멍으로 들어간 것이다. 마사馬師의 도움으로 양고襄庫에서 군대에게 갑옷을 입히고서 구북문舊北門공격攻擊하니注+마사馬師자우子羽손자孫子이다. [부주]林: 는 갑옷이다. 양고襄庫병기兵器갑주甲冑를 이용해 정백鄭伯구북문舊北門공격攻擊한 것이다. , 사대駟帶국인國人을 거느리고 와서 백유伯有공격攻擊하였다.注+사대駟帶자서子西의 아들로 자석子晳종주宗主(宗子)이다.
皆召子産注+駟氏伯有俱召한대 子産曰 하니 吾從天所與注+兄弟恩等 故無所偏助 [附注] 林曰 子晳伯有 皆子産兄弟하리라
사씨駟氏백유伯有가 모두 자산子産을 부르니注+사씨駟氏백유伯有가 함께 자산子産을 부른 것이다. , 자산子産이 말하기를 “형제兄弟 사이에 이 지경에 미쳤으니, 나는 하늘이 돕는 사람을 따르겠다.”注+형제兄弟로서의 은혜恩惠가 같기 때문에 어느 한쪽을 도울 수 없다는 말이다. [부주]林: 자석子晳백유伯有가 모두 자산子産형제兄弟이다. 고 하였다.
伯有死於注+羊肆 市列어늘 子産하고 枕之股而哭之하고 斂而殯諸伯有之臣在市側者注+[附注] 林曰 殯諸伯有之家臣在市側者之家 라가 旣而葬諸斗城注+斗城 鄭地名 하다
백유伯有매매賣買하는 시장市場에서 죽으니注+양사羊肆시열市列(市場의 가게)이다. , 자산子産은 그 시신屍身수의襚衣를 입히고서 그 다리를 베고 하고는 대렴大斂하여 시장市場 곁에 사는 백유씨伯有氏신하臣下의 집에 하였다가注+[부주]林: 시장市場 곁에 사는 백유伯有가신家臣의 집에 한 것이다. 얼마 뒤에 두성斗城장사葬事 지냈다.注+두성斗城나라 지명地名이다.
子駟氏欲攻子産한대 子皮怒之曰 禮 國之幹也注+[附注] 林曰 國之有禮 如木之有幹 所以立也 朱曰 言國之有禮 如版築之有幹焉 殺有禮 禍莫大焉이라 乃止注+斂葬伯有爲有禮하다
자사子駟자산子産공격攻擊하려 하니, 자피子皮가 노하여 말하기를 “는 나라의 근간根幹이니注+[부주]林: 나라에 가 있는 것이 마치 나무에 줄기가 있기 때문에 설 수 있는 것과 같다는 말이다. [부주]朱: 나라에 가 있는 것이 이나 담을 쌓기 위해 양쪽에 판자板子를 대고 그 가운데 흙을 채워 넣고서 공이로 다질 때, 판자가 벌어지지 않도록 세우는 기둥이 있는 것과 같다. , 가 있는 이를 죽인다면 이보다 큰 화가 없을 것이다.”고 하자, 곧 그만두었다.注+백유伯有염장斂葬한 것이 가 있음이 된다는 말이다.
於是游吉如晉還타가 聞難不入注+懼禍幷及 하고 復命于介注+[附注] 林曰 介 副使也하고 八月甲子 奔晉하니 駟帶追之注+[附注] 林曰 追而止之하야 及酸棗하다
이때 유길游吉나라에 갔다 돌아오다가 변란變亂이 일어났다는 말을 듣고는 국도國都로 들어가지 않고注+화가 미칠까 두려워 들어가지 않은 것이다.개사介使에게 복명復命하게 하고는注+[부주]林: 부사副使이다. 8월 갑자일甲子日나라로 도망가니, 사대駟帶가 그를 뒤쫓아注+[부주]林: 뒤쫓아 가서 그를 만류挽留하려 한 것이다. 산조酸棗에 미쳐 유길游吉을 따라잡았다.
與子上盟하고 用兩珪質于河注+子上 駟帶也 沈珪於河爲信也 酸棗 陳留縣 하다
유길游吉자상子上(駟帶)과 결맹結盟하고서 두 개의 황하黃河에 던져 하신河神에게 서약誓約하였다.注+자상子上사대駟帶이다. 황하黃河에 던져 넣어 믿음을 지키기로 언약言約한 것이다. 산조酸棗진류현陳留縣이다.
使公孫肸入盟大夫하고 己巳 復歸注+游吉歸也 하다
유길游吉공손公孫을 보내어 국도國都로 들어가서 대부大夫들과 결맹結盟하게 하고서 기사일己巳日에 국도로 돌아갔다.注+유길游吉이 돌아간 것이다.
書曰鄭人殺良霄라하고 不稱大夫 言自外入也注+旣出 位絶 非復鄭大夫
에 ‘정인鄭人양소良霄를 죽였다.’고 기록하고 ‘대부大夫’로 하지 않은 것은 그가 국외國外에서 들어와서 〈관위官位가 없었음을〉 말한 것이다.注+백유伯有는 이미 출분出奔하여 관위官位가 끊겼으니, 다시 나라의 대부大夫가 아니기 때문이다.
於子蟜之卒也注+子蟜 公孫蠆 卒在十九年 將葬할새 公孫揮與裨竈晨會事焉注+會葬事하다
자교子蟜(公孫 )가 죽어注+자교子蟜공손公孫이다. 그의 죽음은 양공襄公 19년에 있었다. 장사葬事 지내려 할 때 공손公孫비조裨竈가 새벽에 모여 일을 상의商議하였다.注+장사葬事에 관한 일을 상의하기 위해 모인 것이다.
過伯有氏 其門上生莠하고 子羽曰 其莠猶在乎注+子羽 公孫揮 以莠喩伯有 伯有侈 知其不能久存
백유씨伯有氏의 집 앞을 지날 때 그 위에 여전히 가라지[莠]가 살아 있는 것을 보고서, 자우子羽(公孫 )가 말하기를 “저 가라지는 아직까지 살아 있구나.”注+자우子羽공손公孫이다. 가라지를 백유伯有에 비유한 것이다. 백유伯有가 사치스럽기 때문에 오래 살지 못할 것을 안 것이다. 라고 하였다.
於是歲在降婁하니 中而旦注+降婁 奎婁也 周七月 今五月 降婁中而天明 이라
이때 세성歲星항루降婁에 있었는데, 항루降婁중천中天에 떠서 날이 새려 하였다.注+항루降婁규수奎宿누수婁宿이다. 주력周曆 7은 지금의 5월이니 강루성降婁星중천中天에 뜨면 날이 샌다.
裨竈指之 曰 猶可以終歲注+指降婁也 歲星十二年而一終 어니와 歲不及此次也已注+不及降婁 [附注] 林曰 歲星不再及此降婁之次 伯有必先亡已리라
비조裨竈항루降婁를 가리키며 말하기를 “백유伯有가 오히려 이 세성歲星주기周期(12年)는 마칠 수 있겠지만注+항루降婁를 가리킨 것이다. 세성歲星은 12년에 일주一周를 마친다. 세성歲星이 다시 이 위차位次에 올 때까지는 미치지 못할 것이다.”注+세성歲星이 다시 항루降婁에 미칠 때까지 살지 못한다는 말이다. [부주]林: 세성歲星이 다시 이 항루降婁위차位次에 미치기 전에 백유伯有는 반드시 먼저 죽을 것이라는 말이다. 고 하였다.
及其亡也 歲在娵訾之口注+娵訾 營室東壁 二十八年 歲星淫在玄枵 今三十年在娵訾 是歲星停在玄枵二年 하고 其明年 乃及降婁하다
백유伯有할 때에 미쳐 세성歲星추자娵訾의 입(壁宿)에 있었고注+추자娵訾영실營室(室宿)과 동벽東壁(壁宿)이다. 양공襄公 28년에 세성歲星이 지나치게 오래 현효玄枵에 머물러 있었으므로 지금 양공襄公 30년에야 추자娵訾에 와 있으니, 이는 세성歲星현효玄枵에 2년을 머무른 것이다. 명년明年항루降婁에 미쳤다.
僕展從伯有하야 與之皆死注+僕展 鄭大夫 伯有黨하고 羽頡出奔晉하야 爲任大夫注+羽頡 馬師頡 任 晉縣 今屬廣平郡 하다
복전僕展백유伯有를 따라 그와 함께 죽었고注+복전僕展나라 대부大夫백유伯有이다., 우힐羽頡나라로 출분出奔하여 임읍任邑대부大夫가 되었다.注+우힐羽頡마사馬師이다. 나라의 이다. 지금은 광평군廣平郡하였다.
雞澤之會注+在三年 鄭樂成奔楚라가 遂適晉하니 羽頡因之하야 與之比而事趙文子하야 言伐鄭之說焉注+[附注] 林曰 羽頡乃進伐鄭之說於趙文子한대 不可注+宋盟約弭兵故 라하다
계택雞澤회맹會盟注+양공襄公 3년에 있었다. 나라 악성樂成나라로 도망갔다가 마침내 나라로 가니, 우힐羽頡악성樂成에게 의지해 그와 결탁結託[比]하여 조문자趙文子를 섬기면서 나라를 토벌討伐하도록 의견意見[說]을 말하자注+[부주]林: 우힐羽頡조문자趙文子에게 나라를 토벌討伐하라는 말을 올린 것이다. , 문자文子나라에서의 결맹結盟을 이유로 반대反對하였다.注+나라에서 전쟁戰爭종식終熄하기를 맹약盟約하였기 때문이다.
子皮以公孫鉏爲馬師注+鉏 子罕之子 代羽頡 하다
자피子皮공손公孫마사馬師로 삼았다.注+자한子罕의 아들로 우힐羽頡의 뒤를 이어 마사馬師가 된 것이다.
[傳]注+蔿掩 二十五年爲大司馬 하니 申無宇曰 王子必不免注+無宇 芋尹하리라
나라 공자公子대사마大司馬위엄蔿掩을 죽이고서 그 가산家産(室)을 하니注+위엄蔿掩양공襄公 25년에 대사마大司馬가 되었다., 신무우申無宇가 말하기를 “왕자王子는 반드시 화난禍難하지 못할 것이다.注+무우無宇우윤芋尹이다.
善人 國之主也
선인善人국가國家근본根本[主]이다.
王子相楚國하니 將善是封殖이어늘 而虐之하니 是禍國也注+[附注] 林曰 子圍爲令尹 故云相楚國
왕자王子나라의 승상丞相이니 선인善人배양培養함이 마땅한데[將], 도리어 선인善人학대虐待하였으니, 이는 국가國家를 끼치는 일이다.注+[부주]林: 공자公子영윤令尹이었기 때문에 ‘상초국相楚國’이라고 한 것이다.
且司馬 令尹之偏注+偏 佐也 이오 而王之四體也注+어늘 絶民之主하고 去身之偏하며 艾王之體하야 以禍其國注+[附注] 林曰 蔿掩之善 可爲王之肱 今殺之 是斬艾王之體也 하니 無不祥大焉이라
그리고 또 사마司馬영윤令尹보좌輔佐이고注+보좌輔佐이다. 임금의 수족手足[四體]인데注+모두 고굉股肱(手足 같은 신하臣下)이라는 말이다. , 백성의 근본을 잘라내고 자신의 보좌輔佐제거除去하며, 군왕君王수족手足을 베어 내어 나라에 를 끼쳤으니注+[부주]林: 위엄蔿掩고굉股肱이 될 만한데, 지금 그를 죽였으니, 이것이 바로 사체四體를 베어 낸 것이다. , 이보다 큰 불상不祥은 없다.
何以得免注+爲昭十三年楚弑靈王傳 이리오
어찌 화난禍難을 면할 수 있겠는가?”注+소공昭公 13년에 나라 공자公子영왕靈王시해弑害의 배경이다. 라고 하였다.
[傳]爲宋災故 諸侯之大夫會하야 以謀歸宋財하다
나라가 화재火災를 당한 일로 제후諸侯대부大夫들이 모여 나라에 재물財物을 보내줄 것을 상의商議하였다.
冬十月 叔孫豹會晉趙武齊公孫蠆宋向戌衛北宮佗注+佗 北宮括之子 鄭罕虎注+虎 子皮及小邾之大夫하야 會于澶淵이나 旣而無歸於宋하다
겨울 10월에 숙손표叔孫豹나라 조무趙武나라 공손公孫나라 상술向戌나라 북궁타北宮佗注+북궁타北宮佗북궁괄北宮括의 아들이다. 나라 한호罕虎注+한호罕虎자피子皮이다. 소주小邾나라 대부大夫회합會合하여 전연澶淵에서 회의會議하였으나, 회합會合이 끝난 뒤에 나라에 재물財物을 보내주지 않았다.
故不書其人하니라
그러므로 회합會合참여參與들의 이름을 기록하지 않은 것이다.
君子曰
이 일에 대해 군자君子는 다음과 같이 논평論評하였다.
信其不可不愼乎注+[附注] 林曰 盟會之信 不可不謹也 ᄂ저
약신約信(서로 지키기로 약정約定한 것)은 삼가 지키지 않아서는 안 된다.注+[부주]林: 맹약盟約회합會合에서 합의合意약정約定은 삼가 지키지 않아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澶淵之會 卿不書 不信也
전연澶淵회합會合참여參與들의 이름을 기록하지 않은 것은 약신約信를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夫諸侯之上卿注+[附注] 林曰 或以夫字屬上句 亦通 會而不信하야 寵名皆棄하니 不信之不可也如是注+寵 謂族也 [附注] 林曰 族與名 皆棄不書 로다
제후諸侯상경上卿으로注+[부주]林: 부자夫字상구上句에 붙여 읽는 이가 더러 있는데, 이 또한 한다. 회합會合하고서도 약신約信을 지키지 않아 존귀尊貴족명族名을 모두 버렸으니, 약신約信을 지키지 않아서는 안 되는 것이 이와 같다.注+을 이른다. [부주]林: 을 모두 버리고 기록하지 않은 것을 말한다.
詩曰 文王陟降하야 在帝左右라하니 信之謂也注+詩大雅 言文王所以能上接天 下接人 動順帝者 唯以信 [附注] 林曰 惟其信 是以合天德也 又曰 淑愼爾止하야 無載爾僞라하니 不信之謂也注+逸詩也 言當善愼擧止 無載行詐僞
시경詩經》에 ‘문왕文王이 오르내리시며 상제上帝좌우左右에 계셨다.’고 하였으니, 이는 약신約信을 지킨 것을 말한 것이고注+는 《시경詩經》 〈대아大雅문왕편文王篇〉의 시구詩句이다. 문왕文王이 위로 하늘을 대하고 아래로 사람을 대함에 있어 언제나[動]상제上帝법칙法則을 따른 것은 오직 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말이다. [부주]林: 오직 문왕文王이 있었기 때문에 천덕天德부합符合했다는 말이다. , 또 ‘너는 행동거지行動擧止신중愼重히 하고 너는 거짓을 [載]하지 말라.’고 하였으니, 이는 약신約信을 지키지 않은 것을 말한 것이다.注+일시逸詩이다. 거지擧止를 잘 삼가고 사위詐僞함이 없어야 한다는 말이다.
書曰某人某人會于澶淵 宋災故라하니 尤之也注+傳云 旣而無歸 所以釋諸侯大夫之不書也 又云宋災故之 所以釋向戌之幷貶也 戌爲正卿 深致火災 燒殺其夫人 未聞克己之意 而以求財合諸侯 故 不書魯大夫 諱之也注+向戌旣以災求財 諸大夫而不歸 客主皆貶 君子以尊尊之義也 君親有隱 故略不書魯大夫以示例
에 ‘모인某人모인某人전연澶淵에서 회합會合한 것은 나라의 화재火災 때문이었다.’고 한 것은 그들을 꾸짖은 것이고注+에 ‘기이무귀旣而無歸’라고 한 것은 제후諸侯대부大夫들을 에 기록하지 않은 이유를 해석解釋한 것이고, 또 ‘송재고宋災故우지尤之’라고 한 것은 상술向戌까지 아울러 폄하貶下한 이유를 해석한 것이다. 상술向戌정경正卿이 되어 깊은 궁중宮中화재火災를 일으켜 부인夫人을 태워죽이고서도 사욕私慾억제抑制하려는 마음은 볼 수 없고 재물財物요구要求하기 위해 제후諸侯를 불러 회합會合하였다. 그러므로 재물財物을 보내주지 않은 자들과 동일同一하게 글을 만든 것이다. 나라 대부大夫를 기록하지 않은 것은 숨긴 것이다.”注+상술向戌은 이미 화재火災를 이유로 재물財物요구要求하였고, 제대부諸大夫허락許諾하고도 재물財物을 보내주지 않았기 때문에 주객主客을 모두 폄하貶下한 것이다. 군자君子존자尊者존경尊敬하는 것을 의리義理로 여기기 때문에 임금과 어버이의 잘못을 숨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노대부魯大夫생략省略하고 기록하지 않아 그 를 보인 것이다.
[傳]鄭子皮授子産政注+伯有死 子皮知政 以子産賢 故讓之 한대 辭曰 國小而偪注+偪近大國 하고 族大寵多하니 不可爲也注+爲 猶治也 [附注] 林曰 公族盛大而恃寵者多 子皮曰 虎帥以聽이면 誰敢犯子注+[附注] 林曰 虎 子皮名 리오
나라 자피子皮자산子産에게 정권政權을 넘겨주자注+백유伯有가 죽은 뒤에 자피子皮국정國政을 맡았는데, 자산子産현능賢能하게 여겼다. 그러므로 그에게 정권政權양여讓與한 것이다. , 자산子産이 사양하며 말하기를 “나라는 작고 대국大國근접近接해 있으며注+대국大國근접近接한 것이다. , 공족公族강대强大하고 총애寵愛 받는 자가 많으니 나로서는 나라를 다스릴 수 없습니다.”注+와 같다. [부주]林: 공족公族강성强盛하여 총애寵愛를 믿는 자가 많다는 말이다. 고 하니, 자피子皮가 말하기를 “내가 공족公族들을 거느리고서 그대의 을 따른다면 누가 감히 그대를 침범侵犯하겠습니까?注+[부주]林: 자피子皮의 이름이다.
子善相之하라
그대는 국정國政을 잘 보좌輔佐하십시오.
注+言在治政 하니 小能事大 國乃寛注+爲大所恤故也 하리라
국가國家안위安危는 나라의 대소大小에 달린 것이 아니니注+정치政治에 달렸다는 말이다. , 소국小國대국大國을 잘 섬기면 나라가 편안해질 것입니다.”注+대국大國구휼救恤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고 하였다.
子産爲政 有事伯石하야 賂與之邑注+伯石 公孫段 有事 欲使之 [附注] 林曰 鄭國有事 欲使伯石 朱曰 以邑賂之 示不虛使한대 子大叔曰 國皆其國也 奚獨賂焉注+言鄭大夫共憂鄭國事 何爲獨賂之이리오
자산子産정사政事를 처리할 때 백석伯石에게 시킬 일이 있어서 그에게 성읍城邑을 주자注+백석伯石공손公孫이다. 유사有事는 그를 부리고자 한 것이다. [부주]林: 나라에 일이 있어서 백석伯石에게 그 일을 시키고자 한 것이다. [부주]朱: 그에게 을 준 것은 거저 부리지 않는다는 것을 보인 것이다. , 자태숙子太叔이 말하기를 “국가國家는 모든 사람의 국가國家인데, 무엇 때문에 유독 그에게만 성읍城邑을 주십니까?”注+나라 대부大夫들은 함께 나라의 일을 근심하는데, 무엇 때문에 유독 그에게만 을 주느냐는 말이다. 라고 하였다.
子産曰 無欲實難注+言人不能無欲 이라
자산子産이 말하기를 “사람으로서 욕망慾望이 없기란 실로 어렵습니다.注+사람은 욕망慾望이 없을 수 없다는 말이다.
皆得其欲하야 以從其事하야 而要其成注+[附注] 林曰 要責其成功 하니 非我有成이오 其在人乎注+言成猶在我 非在他
사람들은 모두 그 욕망을 얻으려고 각자 맡은 일에 진력盡力하여 성공成功하기를 바라니注+[부주]林: 책임責任지고서 그 일을 성공成功하기를 하는 것이다. , 성공하도록 돕는 것이 나에게 있지 않고 어찌 다른 사람에게 있겠습니까?注+성공成功하게 하는 것은 오히려 나에게 있고, 다른 사람에게 있지 않다는 말이다.
何愛於邑이리오
그러니 무엇 때문에 을 아끼겠습니까?
邑將焉往注+言猶在國 이리오
이 장차 어디로 가겠습니까?”注+여전히 나라 땅으로 남아 있을 것이라는 말이다. 라고 하였다.
子大叔曰 若四國何注+恐爲四隣所笑 子産曰 非相違也 而相從也注+言賂以邑 欲爲和順 四國何尤焉注+[附注] 林曰 尤 怪也 이리오
자태숙子太叔이 말하기를 “사방四方 이웃 나라들이 이 일을 어찌 보겠습니까?”注+사방四方 이웃 나라들의 비웃음을 살까 두렵다는 말이다. 라고 하니, 자산子産이 말하기를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은 군신群臣들이 서로 위배違背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서로 순종順從하게 하려는 것이니注+을 준 것은 군신群臣으로 하여금 화목和睦하고 순종順從하게 하고자 해서라는 말이다. 사방四方의 이웃 나라들이 어찌 괴이하게 여기겠습니까?注+[부주]林: 괴이怪異하게 여김이다.
鄭書有之注+鄭國史書 하니 曰 安定國家 必大焉先注+先和大族 而後國家安 이라하니 姑先安大하야 以待其所歸注+要其成也 하리라
정서鄭書注+정서鄭書나라의 사서史書이다. 국가國家안정安定시키려면 반드시 먼저 대족大族화목和睦하라.’注+먼저 대족大族화목和睦한 뒤에야 국가國家안정安定된다는 말이다. 는 말이 있으니, 우선 대족大族안정安定시키고서 그 결과結果[歸]를 기다리겠습니다.”注+그 일의 성공成功요구要求하는 것이다. 고 하였다.
旣伯石懼而歸邑이어늘 卒與之注+卒 終也하다
오래지 않아 백석伯石이 두려워하여 그 반납返納[歸]하였으나 자산子産은 끝내 그에게 주었다.注+(마침내)이다.
伯有旣死 使大史命伯石爲卿한대注+[附注] 林曰 策命伯石爲卿 辭하다
백유伯有가 죽은 뒤에 정백鄭伯태사太史를 보내어 백석伯石에 임명하자, 백석伯石은 사양하였다.注+[부주]林: 백석伯石책명策命(任命)하여 으로 삼으니 백석伯石이 사양한 것이다.
大史退하야 則請命焉注+請大史更命己 이어늘
태사太史가 물러나올 때 백석伯石태사太史에게 다시 자기를 임명任命해 주기를 하였다.注+태사太史에게 다시 자기를 임명任命해 주기를 한 것이다.
復命之한대 又辭하다
그러므로 다시 임명任命하니 또 사양하였다.
如是三 乃受策入拜하다
이렇게 하기를 세 차례 한 뒤에 책명策命(任命狀)을 접수接受하고 조정朝廷에 들어와 숙배肅拜하였다.
注+惡其虛飾 로되 使次己位注+畏其作亂 故寵之 하다
자산子産은 이로 인해 그 사람됨을 미워하였으나注+그의 허식虛飾을 미워한 것이다. 〈그가 을 일으킬 것을 두려워하여 은총恩寵을 내려〉 그를 자기의 다음 자리에 앉혔다.注+그가 을 일으킬까 두려웠기 때문에 그에게 은총恩寵을 내린 것이다.
子産使
都鄙有章注+國都及邊鄙車服尊卑 各有分部 하고 上下有服
注+公卿大夫 服不相踰하고 注+封 疆也 洫 溝也 [附注] 林曰 田邑有封疆溝洫之法 하고 廬井有伍注+廬 舍也 九夫爲井 使五家相保 하며 大人之忠儉者注+謂卿大夫 從而與之注+[附注] 林曰 隨其有功而賜與之하고 泰侈者 注+因其有罪而斃踣之 하다
자산子産도성都城변비邊鄙에 각각의 장정章程(法制)이 있게 하고注+국도國都변비邊鄙거복車服존비尊卑에 따라 각각 구분이 있는 것이다., 상하上下의복衣服등급等級이 있게 하고注+대부大夫복식服飾제도制度를 서로 넘지 못하게 한 것이다. , 전지田地경계境界수로水路를 만들게 하고注+경계境界이고 수로水路이다. [부주]林: 전읍田邑(시골)에는 두둑을 쌓아 경계境界표시標示하고, 전지田地 사이에 수로水路를 내는 이 있다. , 여정廬井오가五家를 한 로 묶어 서로 보호하게 하였으며注+(農家)이다. 구부九夫(九百畝)가 1이다. 다섯 농가農家를 한 로 묶어 서로 보호保護하게 한 것이다. , 대인大人으로 충후忠厚하고 검소儉素한 자는注+대인大人경대부卿大夫를 이른다. 공로功勞에 따라 을 주고注+[부주]林: 그 공로功勞에 따라 을 주는 것이다. , 교만驕慢하고 사치奢侈한 자는 에 따라 처벌處罰하여 관직官職에서 물러나게 하였다.注+에 따라 면직免職시키는 것이다.
豐卷將祭 請田焉한대 弗許注+田 獵也 曰 唯君用鮮注+鮮 野獸이오 衆給而已注+衆臣祭以芻豢爲足 라하니 子張怒注+子張 豐卷하야 退而徵役注+召兵 欲攻子産하다
풍권豐卷제사祭祀를 지내기 위해 사냥하기를 청하자, 자산子産허락許諾하지 않으며注+수렵狩獵이다. 말하기를 “오직 임금만이 제사에 사냥해 잡은 짐승의 고기를 쓰고注+야생野生의 짐승이다. , 중신衆臣제사祭祀에는 의 고기를 쓰는 것만으로 충분하다.”注+중신衆臣제사祭祀에는 추환芻豢(牛‧)을 쓰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말이다. 고 하니, 자장子張(豐卷)이 하여注+자장子張풍권豐卷이다. 조정朝廷에서 물러 나와 군대를 불러 모아 자산子産을 치려 하였다.注+군대를 소집召集하여 자산子産을 치려 한 것이다.
子産奔晉注+[附注] 林曰 不與較而出奔 한대 子皮止之하고 而逐豐卷하니 豐卷奔晉하다
자산子産나라로 도망가려 하자注+[부주]林: 그와 다투고 싶지 않아 출분出奔하려 한 것이다. , 자피子皮자산子産만류挽留하고 풍권豐卷축출逐出하니 풍권豐卷나라로 도망갔다.
子産請其田里注+請於公不沒入 하야 三年而復之하고 反其田里及其入焉注+田里所收入 하니라
자산子産정백鄭伯에게 풍권豐卷전택田宅몰수沒收하지 말기를 하고서注+정간공鄭簡公에게 풍권豐卷전택田宅몰수沒收하지 말기를 한 것이다. , 3년 뒤에 풍권豐卷귀국歸國시켜 그 전택田宅과 그동안 그 전택田宅에서 거두어들인 것을 풍권豐卷에게 돌려주었다.注+전택田宅에서 수입收入한 것이다.
從政一年 輿人誦之注+[附注] 林曰 衆人歌謠以誦之 注+褚 畜也 奢侈者畏法 故畜藏 하고 取我田疇而伍之하니
자산子産국정國政처리處理한 1년 만에 사람들이 노래하기를注+[부주]林: 사람들이 가요歌謠로써 심정을 읊조린 것이다. “우리의 의관衣冠몰수沒收[取]하여 간직하고注+저축貯蓄함이니, 사치한 자가 을 두려워하여 의관衣冠을 간직해 둔다는 말이다. 우리의 전지田地몰수沒收하여 오가五家씩을 묶어 한 로 만들었네.
孰殺子産이면 吾其與之注+竝畔爲疇 [附注] 林曰 兼幷者失 故取田疇而伍結之 하리라
누가 자산子産을 죽여준다면 내 그를 도우리라.”注+밭두둑까지 아우른 것이 이다. [부주]林:겸병兼倂(남의 토지土地침탈侵奪하여 점유占有함)한 자가 그 토지土地를 잃었기 때문에 전지田地하여 ‘’로 묶었다고 한 것이다. 고 하였다.
及三年하여 又誦之曰 我有子弟 子産誨之하고 我有田疇 子産注+殖 生也 로다
3년이 되자 또 노래하기를 “우리의 자제子弟자산子産이 가르치고, 우리의 전지田地자산子産증산增産되게 하였네.注+생산生産이다.
子産而死 誰其嗣之注+嗣 續也 傳言鄭所以興 [附注] 林曰 誰能嗣續其善政哉
자산子産이 죽으면 누가 그 뒤를 이으리.”注+는 이음이다. 전문傳文나라가 흥성興盛하게 된 원인原因을 말한 것이다. [부주]林: 누가 자산子産선정善政을 이을 수 있겠냐는 말이다. 라고 하였다.
역주
역주1 三月而葬 速 : 共은 夫人의 諡號가 아니기 때문에 남편의 諡號를 따른 것이라고 한 것이다. 昭公 3년 傳에 의하면 諸侯의 喪에는 士를 보내어 弔喪하고 卿을 보내어 葬事에 참여하게 하며, 夫人의 喪에는 士를 보내어 弔喪하고 大夫를 보내어 送葬하게 하는 것이 禮인데, 伯姬의 喪에 卿을 보내어 會葬하게 하였기 때문에 ‘지나치게 厚하다’고 한 것이고, 諸侯와 君夫人은 죽은 지 5개월 만에 葬事 지내는 것이 禮인데, 3개월 만에 葬事 지냈기 때문에 ‘빨랐다’고 한 것이다. 〈正義〉
역주2 復入 : 成公 18년 傳例에 의하면, 亡命한 자가 군대를 거느리고 本國으로 쳐들어가는 것이다.
역주3 食而聽事 : 食은 食粟而已(밥이나 먹을 뿐 아무 才能이 없다는 말)와 같은 말이고, 祿을 먹는 것이 아니라고 한 《左氏會箋》의 說을 取해 번역하였다.
역주4 不給命 : 給은 足이니, 使命을 完成하기에도 不足하다는 말이다. 〈楊注〉
역주5 未知所成 : 成을 林注에 和解로 解釋하였으나, 譯者는 成敗의 成으로 解釋한 《左氏會箋》의 說을 取해 ‘成功’으로 번역하였다.
역주6 輿人 : 바로 杞나라에 城을 쌓는 役卒이다. 〈楊注〉
역주7 亥有二首六身 : 亥字에는 二六六六의 數字가 있다는 말이다. 《說文》에는 亥가 로 되어 있고, 李斯가 쓴 碑文에는 亥字의 몸에 이 모두 丁字 모양으로 되어 있다. 古人들은 ‘六’을 ‘ᄂ’로 표기하기도 하고 ‘ᅮ’로 표기하기도 하였으니, 이는 가로획인 ‘ᅳ’을 ‘五’로 삼고 세로획인 ‘ᅵ’을 ‘一’로 삼아 五에 一을 더하면 六이 되기 때문이다. 와 비슷하고 レ은 와 비슷하니 亥에는 六의 모양이 세 개 있는 것이다. 위의 二를 아래로 내려 세 개의 六 왼쪽에 세로로 세우면 ‘’ 모양이 되니, 算가지를 펼치듯이 排列하여 計算하면 2만 6천 6백 60이 된다. 參考文獻 〈正義〉‧《左氏會箋》‧〈楊注〉 등.
역주8 : 音이 偸로 薄의 뜻인데, 여기서는 輕視의 뜻으로 쓰였다. 〈楊注〉
역주9 曆[歷] : 저본에는 ‘曆’으로 되어 있으나 《十三經注疏》本에 의거하여 ‘歷’으로 바로잡았다.
역주10 童子 : 愆期를 이른다.
역주11 成愆 : 愆期인 듯하다. 《左氏會箋》
역주12 括廖不書 賤也 : 括은 王孫이고, 또 王子瑕 위에 記錄하였으니, 결코 賤人이 아니다. 括은 亂을 일으키려 한 자로 放逐해야 할 罪가 있었기 때문에 瑕만을 기록하고 括은 省略한 것이다. 《左氏會箋》
역주13 罪在王也 : 景王이 다섯 大夫을 시켜 佞夫를 죽이게 하였기 때문에 罪가 王에게 있다고 한 것이다. 《左氏會箋》
역주14 亳社 : 殷나라의 社이다. 殷나라가 亳에 都邑하였기 때문에 그 社를 亳社라고 한 것이다. 宋나라는 殷나라의 後裔이기 때문에 宋나라는 社를 亳社라 한 것이다.
역주15 甲午……待姆也 : 伯姬의 居所에 불이 났을 때 左右가 불을 避해 나가기를 請하였으나, 伯姬는 “夫人의 道理는 保姆가 없이는 밤에 堂을 내려가지 않는 것이다.”고 하면서 나가지 않고 保姆가 오기를 기다렸으므로 드디어 불에 타 죽은 것이다. 《春秋公羊傳》‧《春秋穀梁傳》
역주16 從宜也 : 義는 宜이니, 從宜는 불을 피하는 것이 옳았다는 말이다. 〈正義〉
역주17 弱植 : 根基가 堅固하지 못하다는 말과 같다고 한 〈楊注〉의 說을 취해 번역하였다.
역주18 取[就] : 저본에는 ‘取’로 되어 있으나 《四庫全書左傳杜林合注》本에 의거하여 ‘就’로 바로잡았다.
역주19 : 弊의 假借字로 《周禮》 〈大司馬〉의 火弊의 弊를 鄭注에 ‘止’로 訓詁하였으니, 곧 終止의 뜻인 듯하다.
역주20 因馬師頡 介于襄庫 : 襄庫는 鄭襄公이 지은 武器庫이다. 頡에게 도움을 빌어 襄庫의 甲冑를 取해 자기 군대에게 입힌 것이다. 《左氏會箋》‧〈楊注〉
역주21 兄弟而及此 : 良霄(伯有)와 駟帶는 모두 鄭穆公의 曾孫으로 형제뻘이고, 子産과 子晳‧伯石은 모두 鄭穆公의 孫子로 역시 형제뻘이다. 〈楊注〉
역주22 羊肆 : 羊을 거래하는 市場이다. 〈楊注〉
역주23 : 屍身에 옷을 입히는 小斂을 이른다. 屍身을 棺에 넣는 것을 大斂이라 하고, 屍身을 넣은 棺을 葬事 때까지 安置해 두는 것을 殯이라 한다.
역주24 降婁 : 12星次의 하나이다. 歲星(木星)은 1년에 한 星次씩 移動하여, 12년에 天體를 一周한다. 12星次는 降婁, 大梁, 沈實, 鶉首, 鶉火, 鶉尾, 壽星, 大火, 析木, 星紀, 玄枵, 娵訾이다.
역주25 宋之盟 : 宋之盟은 襄公 27년에 宋나라 向戌이 諸侯間에 戰爭을 終熄시킨다는 名分으로 晉나라 趙文子, 楚나라 屈建 등을 說得하여 宋나라에서 會合하여 結盟한 일을 이른다.
역주26 楚公子圍……取其室 : 蔿掩은 經綸의 才能이 있어 백성의 信望이 있었던 것을 25년 傳에서 볼 수 있다. 公子圍가 장차 謀叛할 意圖가 있었기 때문에 먼저 그를 除去하여 王의 羽翼을 잘라낸 것이다. 《左氏會箋》
역주27 俱股肱也 : 俱股肱也: 杜氏는 四體를 令尹과 司馬를 이른 말로 보았기 때문에 ‘俱股肱’으로 註釋한 것이다. 그러나 《左氏會箋》에 依하면, 偏이 오로지 司馬만을 가리켜 말한 것이니, 四體도 司馬만을 가리켜 말한 것이 되어야 한다. 令尹까지 겸하여 말한 것으로 보는 것은 옳지 않다.
역주28 肱[股] : 저본에는 ‘肱’으로 되어 있으나 《四庫全書左傳杜林合注》本에 의거하여 ‘股’로 바로잡았다.
역주29 左[尤] : 저본에는 ‘左’로 되어 있으나 전문과 《十三經注疏》本에 의거하여 ‘尤’로 바로잡았다.
역주30 與不歸財者同文 : 向戌이 財物을 要求하지 않았으면 名氏를 드러내 기록하였을 것인데, 財物을 要求하였기 때문에 諸國의 大夫들과 동일하게 ‘人’으로 기록하였다는 말이다.
역주31 詐[許] : 저본에는 ‘詐’로 되어 있으나 《十三經注疏》本에 의거하여 ‘許’로 바로잡았다.
역주32 國無小 : 國家의 安危는 나라의 大小에 달린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역주33 子産是以惡其爲人也 : 사실은 卿의 地位를 얻고자 하면서 거짓으로 세 차례 사양하였기 때문에 미워한 것이다.
역주34 都鄙有章 上下有服 : 朱子의 說을 取해 번역하였다. 《論語集註》 〈公冶長第15章 小註〉
역주35 田有封洫 : 井과 井 사이에 너비 4尺 깊이 4尺의 水路를 ‘溝’라 하고, 成(百井)과 成 사이에 넓이 8尺 깊이 8尺의 水路를 ‘洫’이라 한다.
역주36 因而斃之 : 斃는 踣(넘어뜨림)이니, 處罰하여 官職에서 물러나게 하는 것이다. 〈楊注〉
역주37 取我衣冠而褚之 : 子産이 사치한 자들의 衣冠을 沒收하여 간직해 둔 것이다. 《左氏會箋》
역주38 志[之] : 저본에는 ‘志’로 되어 있으나 《四庫全書左傳杜林合注》本에 의거하여 ‘之’로 바로잡았다.
역주39 : 殖은 增殖의 뜻으로 곧 增産을 이른다.

춘추좌씨전(5) 책은 2019.05.2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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