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春秋左氏傳(1)

춘추좌씨전(1)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춘추좌씨전(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經]八年春正月己卯注+無傳 此夏之月 非爲過而書者 爲下五月復烝見瀆也 例在五年하다
8년 봄 정월 기묘일에 증제烝祭를 지냈다.注+이 없다. 이 달이 하력夏曆으로는 중월仲月이니, 증제烝祭를 지낼 시기를 넘긴 것이 아닌데도 에 기록한 것은 아래 5월에 다시 증제를 지내어 을 존경하지 않고 모독冒瀆하였기 때문이다. 환공桓公 5년에 보인다.
[經]天王使家父來聘注+無傳 家父 天子大夫 家 氏 父 字하다
천왕天王가보家父나라에 사신으로 보내 와서 빙문聘問하였다.注+이 없다. 가보家父천자天子대부大夫이다. 이고 이다.
[經]夏五月 丁丑注+無傳하다
여름 오월 정축일에 증제烝祭를 지냈다.注+이 없다.
[經]秋 伐邾注+無傳하다
가을에 를 토벌하였다.注+이 없다.
[經]冬十月 雨雪注+無傳 今八月也 書 時失하다
겨울 10월에 눈이 내렸다.注+이 없다. 지금의 8월이다. 기록한 것은 철을 잃었기 때문이다.
[經]祭公來하야 遂逆王后于紀注+祭公 諸侯爲天子三公者 卿不書 擧重略輕 [附注] 林曰 祭公來 不稱王使 王未有成命也 遂 專也 是故書遂 始於此하다
채공祭公나라에 와서 환공桓公을 받은 뒤에 기국紀國으로 가서 왕후王后를 맞이하였다.注+채공祭公제후諸侯로서 천자天子삼공三公이 된 자이다. 주왕周王나라로 하여금 혼사婚事주재主宰하게 하였기 때문에 채공祭公나라로 와서 환공桓公을 받은 뒤에 기국紀國으로 가서 왕후王后를 맞이한 것이다. 천자天子외국外國이 없기 때문에 왕후王后라고 칭한 것이다. 채공祭公 혼자서 온 것이 아니고 반드시 이 수행하였을 것인데, 을 기록하지 않은 것은 한 이만을 말하고 한 이는 생략한 것이다.[부주]林: ‘채공래祭公來’라고만 하고 ‘왕사王使’라 칭하지 않은 것은 주왕周王성명成命(결정해 내린 명령)이 없었기 때문이다. ‘’는 (제멋대로 함)이다. 그러므로 를 기록한 것이 이때부터 비롯하였다.
[傳]八年春 滅翼注+曲沃滅之하다
8년 봄에 격멸擊滅하였다.注+곡옥曲沃이 격멸한 것이다.
[傳]隨少師有寵하니 楚鬪伯比曰 可矣注+[附注] 林曰 伯比告楚子 言前年張隨之計 可行矣니이다
나라 소사少師가 그 임금에게 총애를 받으니, 나라 투백비鬪伯比가 말하기를 “수국隨國을 칠 수 있는 기회가 왔습니다.注+[부주]林: 백비伯比초자楚子에게 한 것이다. 전년前年나라를 교만 방자하게 한 계책計策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다는 말이다.
讎有釁하니 不可失也注+釁 瑕隙也 無德者寵 國之釁니이다
적국敵國에 틈이 생겼으니, 이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됩니다.”고 하였다.注+은 이용할 수 있는 틈이니, 이 없는 자가 총애를 받는 것은 그 나라의 흔단釁端이다.
[傳]夏 楚子合諸侯于沈鹿注+沈鹿 楚地 [附注] 林曰 欲以求隙討隨也 黃隨不會注+黃國 今弋陽縣하니 使薳章讓黃注+責其不會하고 楚子伐隨하야 軍于漢淮之間하다
여름에 초자楚子침록沈鹿에서 제후를 회합會合하였는데,注+침록沈鹿나라 땅이다.[부주]林: 꼬투리를 만들어 수국隨國을 치려한 것이다. 황국黃國수국隨國이 회합에 참가하지 않으니,注+황국黃國은 지금의 익양현弋陽縣이다. 위장薳章을 보내어 황국黃國문책問責하게 하고,注+회합에 오지 않은 것을 문책한 것이다.초자楚子는 직접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수국隨國를 토벌하기 위해 한수漢水회수淮水 사이에 주둔하였다.
季梁請 下之注+下之 請服也하야 弗許而後戰이면 所以怒我而怠寇也니이다
계량季梁수후隨侯에게 항복하기를 청하며 말하기를注+하지下之’는 항복하기를 청한 것이다. “저들이 우리의 항복을 허락하지 않은 뒤에 전투하면 우리의 군대를 격노激怒케 하고 적군敵軍해태懈怠하게 할 수 있습니다.”고 하였다.
少師謂隨侯曰 必速戰하소서
그러자 소사少師수후隨侯에게 말하기를 “반드시 속전速戰하소서.
不然이면 將失楚師注+[附注] 林曰 欲使隨人怒楚之不恕 而楚人不直其君 亦有怠心也 朱曰 下之則楚師怠 不許則我師怒 彼怠我怒 則可戰也하리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장차 초군楚軍을 이길 수 있는 기회를 잃을 것입니다.”고 하였다.注+[부주]林: 수인隨人으로 하여금 나라가 용서하지 않는 것에 대해 노하게 하고, 초인楚人들도 그 임금을 바르지 않게 보아 태만한 마음을 가지게 하고자 한 것이다. : 항복하기를 청하면 초군楚軍이 태만해지고, 항복을 허락하지 않으면 아군我軍이 노할 것이니, 저들은 태만하고 우리는 분노憤怒하면 전쟁을 해 볼 만하다는 말이다.
隨侯禦之할새 望楚師注+遙見楚師하다 季梁曰 楚人上左注+[附注] 朱曰 季梁又言楚國之法 以左爲貴 蓋夷狄之如此 若之類是也하니 君必左注+君 楚君也 [附注] 朱曰 言楚君必在左軍 則左軍皆精兵也하리이다
수후隨侯방어防禦하려 할 때 멀리 초사楚師를 바라보자,注+멀리 초군楚軍을 바라본 것이다. 계량季良이 말하기를 “초인楚人은 왼쪽을 높이니注+[부주]朱: 계량이 또 초국楚國은 왼쪽을 귀하게 여긴다고 말한 것이다. 대체로 이적夷狄의 풍속이 이와 같으니, 좌임左衽같은 것이 이것이다. 초군楚君이 반드시 좌군左軍에 있을 것입니다.注+초군楚君이다.[부주]朱: 초군楚君이 반드시 좌군左軍에 있다면 좌군은 모두 정예병精銳兵이라는 말이다.
無與王遇하고 且攻其右하소서
그러니 초왕楚王과 마주치지 마시고, 우선 그 우군右軍을 공격하소서.
右無良焉하니 必敗 偏敗 衆乃攜矣注+[附注] 林曰 偏師敗 楚師之衆 乃有攜貳之心矣리이다
우군에는 양장良將이 없으니 반드시 패배할 것이고, 한쪽이 패배하면 초군楚軍군중群衆이 도망해 흩어질 것입니다.注+[부주]林: 한 쪽 군대가 패배하면 초군楚軍군중群衆이 두 마음을 품는다는 말이다.”라고 하였다.
少師曰 不當王이면 非敵也니이다 弗從注+不從季梁謀하고 戰于速杞라가 隨師敗績하니 隨侯逸注+速杞 隨地 逸 逃也하다
그러나 소사가 말하기를 “초왕楚王과 정면으로 상대하지 않으면 우리가 저들의 적수敵手가 아님을 드러내는 것입니다.”라고 하니, 수후隨侯계량季梁의 말을 따르지 않고,注+계량의 계책을 따르지 않은 것이다. 속기速杞에서 전투하다가 수군隨軍대패大敗하고 수후는 도망하였다.注+속기速杞나라 땅이다. 은 도망가는 것이다.
鬪丹獲其戎車與其戎右少師注+鬪丹 楚大夫 戎車 君所乘兵車也 戎右 車右也 寵之 故以爲右하다
투단鬪丹수후隨侯융거戎車노획鹵獲하고 융우戎右소사少師생포生捕하였다.注+투단鬪丹나라 대부이다. 융거戎車는 임금이 타는 병거兵車이다. 융우戎右거우車右이다. 소사少師를 총애하였기 때문에 그를 로 삼은 것이다.
隨及楚平注+[附注] 朱曰 旣敗而服楚請和也하다
가을에 나라가 나라와 화평和平하였다.注+[부주]朱: 패전한 뒤에 나라에 항복하고 화평和平을 청한 것이다.
楚子將不許한대 鬪伯比曰 天去其疾矣注+去疾 謂少師見獲而死 隨未可克也니이다
초자楚子가 허락하지 않으려 하자, 투백비鬪伯比가 말하기를 “하늘이 나라의 해악害惡을 제거하였으니,注+거질去疾(害惡을 제거함)은 소사少師가 잡혀 죽은 것을 이름이다. 수나라를 이길 수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乃盟而還하다
그러자 초자楚子는 수나라와 결맹하고서 환국還國하였다.
[傳]冬 王命虢仲立晉哀侯之弟緡于晉注+虢仲 王卿士 虢公林父하다
겨울에 주왕周王괵중虢仲에게 명하여 나라로 가서 애후哀侯의 아우 을 진나라 임금으로 세우게 하였다.注+괵중虢仲주왕周王경사卿士괵공虢公임보林父이다.
[傳]祭公來하야 遂逆王后于紀하니 禮也注+天子娶於諸侯 使同姓諸侯爲之主 祭公來 受命於魯 故曰禮
채공祭公나라로 와서 환공桓公의 명을 받고 드디어 나라로 가서 왕후王后를 맞이하였으니, 에 맞았다.注+천자天子제후諸侯 나라로 장가들 경우, 동성同姓제후諸侯로 하여금 혼사婚事주재主宰하게 한다. 채공祭公나라로 와서 환공桓公을 받았기 때문에 ‘’라고 한 것이다.
역주
역주1 : 대본에는 ‘中’으로 되어 있으나 《十三經注疏》本에 의거하여 ‘仲’으로 바로잡았다.
역주2 王使魯主昏……受命而迎也 : 《正義》에 의하면 옛날 婚姻에는 남녀 쌍방의 지위가 서로 對等한 사람끼리 禮를 행하였으므로 天子가 諸侯에게 딸을 出嫁시킬 경우 同姓諸侯를 婚主로 삼아 王女를 그 나라로 보내어 상대 나라와 婚禮를 거행하게 하고, 諸侯國에서 王后를 맞이할 경우에도 역시 동성 제후를 婚主로 삼아 혼례를 거행하게 하였다.
역주3 天子無外 故因稱王后 : 《公羊傳》에 “여자가 本國에 있으면 ‘女’라고 칭하는 것인데, 여기에서 ‘王后’라 칭한 것은, 王者는 온 천하가 모두 자기의 나라이고 外國이 없기 때문이다.”고 하였다.
역주4 드디어 : 林氏는 ‘遂’를 專으로 해석하였으나, 譯者는 이를 따르지 않고, ‘드디어’로 번역하였다.
역주5 左衽 : 옷의 오른쪽 섶을 왼쪽 섶 위로 여며 입는 蠻夷의 服飾이다.

춘추좌씨전(1) 책은 2019.05.2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18 By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