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春秋左氏傳(3)

춘추좌씨전(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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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좌씨전(3)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經]十有二年春 葬陳靈公注+無傳 賊討國復 二十一月然後得葬 하다
12년 봄에 진영공陳靈公장사葬事 지냈다.注+이 없다. 역적逆賊토벌討伐하고 나라를 회복恢復하고서 21개월 뒤에 장사葬事 지낸 것이다.
[經]注+前年盟辰陵而又徼事晉故하다
초자楚子나라를 포위包圍하였다.注+전년前年신릉辰陵에서 나라와 결맹結盟하고서, 또 나라 섬기기를 하였기 때문이다.
[經]夏六月乙卯 晉荀林父帥師及 晉師敗績注+晉上軍成陳 故書戰 邲 鄭地 하다
여름 6월 을묘일乙卯日나라 순임보荀林父가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초자楚子에서 전쟁戰爭하였는데, 진군晉軍대패大敗하였다.注+나라 상군上軍진세陣勢를 이루었기 때문에 ‘’이라고 기록記錄한 것이다. 나라 땅이다.
[經]秋七月이라
가을 7월이다.
[經]冬十有二月戊寅 楚子滅蕭注+蕭 宋附庸國 十二月無戊寅 戊寅 十一月九日 하다
겨울 12월 무인일戊寅日초자楚子소국蕭國격멸擊滅하였다.注+소국蕭國나라의 부용국附庸國이다. 12월에 무인일戊寅日이 없으니, 무인일戊寅日은 11월 9일이다.
[經]晉人宋人衛人曹人同盟于淸丘注+晉衛背盟 故大夫稱人 宋華椒承 以誤其國 宋雖有守信之善 而椒猶不免譏 淸丘 衛地 在今濮陽縣東南 하다
진인晉人송인宋人위인衛人조인曹人청구淸丘에서 동맹同盟하였다.注+나라와 나라가 맹약盟約배반背反하였기 때문에 대부大夫를 ‘’으로 한 것이다. 나라 화초華椒가 거짓된 자들[群僞]의 말을 듣고 저의 나라 일을 그르쳤으니, 나라는 비록 신의信義를 지킨 선행善行이 있지만, 화초華椒는 오히려 비난非難을 면할 수 없다. 그러므로 ‘’으로 한 것이다. 청구淸丘나라 땅으로 지금의 복양현濮陽縣 동남쪽에 있었다.
[經]宋師伐陳하니 衛人救陳注+背淸丘之盟하다
송군宋軍나라를 토벌討伐하니 위인衛人나라를 구원救援하였다.注+청구淸丘맹약盟約배반背反한 것이다.
[傳]十二年春 楚子圍鄭 旬有七日하다 鄭人卜行成하니 不吉하고 卜臨于大宮注+臨 哭也 大宮 鄭祖廟 하고 注+出車於巷 示將見遷 不得安居하다
12년 봄에 초자楚子나라를 17일 동안 포위包圍하자, 정인鄭人나라와 화평和平할 것을 치니 불길不吉하고, 종묘宗廟에 가서 통곡痛哭하고서注+하는 것이다. 대궁大宮나라 조상祖上이다. 병거兵車를 몰고 거리로 나아가 싸울 것을 치니 하였다.注+수레를 몰고 거리로 나가는 것은 장차 이주移住시킴을 당할 것이므로 편안히 살 수 없다는 뜻을 보이기 위함이다.
國人大臨하고 注+陴 城上俾倪 皆哭 所以告楚窮也 하니 楚子退師하다
국중國中의 사람들이 모두 종묘宗廟로 가서 통곡痛哭하고 城의 여장女牆을 지키는 군사도 모두 통곡痛哭하니,注+ 위의 여장女牆이다. 모두 통곡痛哭한 것은 초군楚軍에게 곤궁困窮함을 알리기 위함이다. 초자楚子는 이를 가엾게 여겨 군대를 물리고서 나라가 항복降服하기를 기다렸다.
鄭人修城이어늘 進復圍之하야 三月克之注+哀其窮哭 故爲退師 而猶不服 故復圍之九十日하야 入自皇門하야 至于逵路注+塗方九軌曰逵하니
그런데 정인鄭人이 항복하지 않고 수축修築하자, 초군楚軍은 다시 진군進軍하여 나라를 포위包圍하여 3개월 동안 공격攻擊승리勝利하고서注+정인鄭人곤궁困窮하여 통곡痛哭하는 것을 가엾게 여겼기 때문에 군대를 물린 것인데, 나라가 여전히 항복降服하지 않기 때문에 다시 90일 동안 포위包圍한 것이다. 황문皇門으로 들어가 대로大路에 이르니,注+아홉 채의 수레가 나란히 갈 수 있는 길을 ‘’라 한다.
鄭伯肉袒牽羊以逆注+肉袒 示服爲臣僕注+不爲天所祐 하야 不能事君하야 使君懷怒以及敝邑하니
정백鄭伯이 윗옷을 벗어 몸을 드러내고 을 끌고 와서 초자楚子영접迎接하며注+윗옷을 벗어 몸을 드러내고 을 끌고 간 것은 항복降服하고서 신복臣僕이 되겠다는 뜻을 보인 것이다. 말하기를, “(諸侯의 자칭自稱)는 하늘의 뜻을 받들어 따르지 않고注+하늘의 도움을 받지 못했다는 말이다. 군왕君王(楚王을 이름)을 잘 섬기지 않아, 군왕君王으로 하여금 하여 우리나라에 오게 하였습니다.
孤之罪也 敢不唯命是聽
이는 실로 이니, 감히 하는 대로 따르지 않겠습니까?
其俘諸江南하야 以實海濱이라도 亦唯命注+[附注] 朱曰 設若俘虜鄭民 使之徙居大江之南 以充實海濱無人之地 此亦唯命是聽이오 其翦以賜諸侯하야 使臣妾之라도 亦唯命注+翦 削也 [附注] 林曰 其剪削鄭以賜從楚之諸侯 使鄭國之人 男爲臣女爲妾 亦唯楚君之命어니와
나라 백성들을 포로捕虜로 잡아 강남江南으로 데려가 해변海邊을 채우더라도 대로 따를 것이고,注+[부주]朱: 가령 나라 백성을 포로捕虜로 잡아 대강大江의 남쪽으로 이주移住시켜 사람이 없는 해변海邊을 채우더라도 이 또한 을 따르겠다는 말이다. 나라 땅을 깎아 제후諸侯에 나누어주고 우리 백성을 제후諸侯신첩臣妾이 되게 하더라도 대로 따르겠습니다.注+은 깎는 것이다. [부주]林: 나라 땅을 깎아 나라에 순종順從하는 제후諸侯에게 주고, 나라 사람들로 하여금 남자는 이 되고 여자는 이 되게 하더라도 초군楚君을 따르겠다는 말이다.
若惠顧前好注+楚鄭世有盟誓之好하야 徼福於厲宣桓武하야 不泯其社稷注+周厲王宣王 鄭之所自出也 鄭桓公武公始封之賢君也 願楚要福于此四君 使社稷不滅 泯 猶滅也하고 使改事君 注+楚滅九國以爲縣 願得比之 이면 君之惠也 孤之願也
그러나 만약 지난날의 우호友好를 생각하는 은혜恩惠를 베푸시고,注+나라와 나라는 대대로 맹서盟誓우호友好가 있었다.여왕厲王, 선왕宣王, 환공桓公, 무공武公하기 위해 나라의 사직社稷하지 않고,注+주여왕周厲王주선왕周宣王나라가 나온 조상祖上이고, 정환공鄭桓公정무공鄭武公은 처음 해진 나라의 현군賢君이니, 나라가 이 네 임금에게 을 구하고자 한다면 나라의 사직社稷멸망滅亡하지 않게 하기를 바란다는 말이다. 과 같다. 나라로 하여금 지난날의 잘못을 고치고서 나라의 제현諸縣과 같이 군왕君王을 섬기게 하신다면 注+나라가 아홉 나라를 격멸擊滅하고서 그 나라들을 나라의 으로 삼았으니, 나라도 그 나라들과 같이 되기를 한다는 말이다.이는 군왕君王은혜恩惠이고 소원所願입니다.
非所敢望也 敢布腹心하노니 君實圖之하라
그러나 감히 바랄 수 없으므로 감히 진심眞心토로吐露하오니, 군왕君王께서는 깊이 생각하소서.”라고 하였다.
左右曰 不可許也
초자楚子좌우左右가 “정백鄭伯요구要求허락許諾해서는 안 됩니다.
得國無赦니이다 王曰 其君能下人하니 必能信用其民矣리라
다른 나라를 공격攻擊해 얻으면 다시 용서容恕하지 않는 것입니다.”라고 하니, 초왕楚王이 말하기를, “그 임금이 능히 남에게 자신을 낮추니 반드시 그 백성들의 신임信任을 얻었을 것이다.
庸可幾乎注+[附注] 朱曰 幾與冀同 謂豈可冀幸而取其國乎아하고 退三十里而許之平注+退一舍以禮鄭하다
이런 나라를 어찌 얻기를 바라겠는가?”注+[부주]朱: (바람)와 같으니, 어찌 요행을 바라 나라를 할 수 있겠느냐는 말이다. 라고 하고서 30를 물러나 나라에 화평和平허락許諾하였다.注+일사一舍(30리)를 물러나 나라를 예우禮遇한 것이다.
潘尪入盟하고 子良出質注+潘尪 楚大夫 子良 鄭伯弟 하다
나라 반왕潘尪나라에 들어가 결맹結盟하고, 나라 자량子良나라에 인질人質로 갔다.注+반왕潘尪나라 대부大夫이고, 자량子良정백鄭伯의 아우이다.
[傳]夏六月 晉師救鄭할새 荀林父將中軍注+代郤缺하고 先縠佐之注+彘季代林父하며 士會將上軍注+河曲之役 郤缺將上軍 宣八年代趙盾爲政 將中軍 士會代將上軍 하고 郤克佐之注+郤缺之子 代臾騈하며 趙朔將下軍注+代欒盾하고 欒書佐之注+欒盾之子 代趙朔하며 趙括趙嬰齊爲中軍大夫注+括嬰齊皆趙盾異母弟 하고 鞏朔韓穿爲上軍大夫하고 荀首趙同爲下軍大夫注+荀首 林父弟 趙同 趙嬰兄하고 韓厥爲司馬注+韓萬玄孫 하다
여름 6월에 진군晉軍나라를 구원救援할 때 순임보荀林父중군대장中軍大將,注+극결郤缺의 뒤를 이어 중군中軍을 거느린 것이다.선곡先縠부장副將이 되고,注+체계彘季순임보荀林父의 뒤를 이어 중군中軍가 된 것이다. 사회士會상군대장上軍大將,注+하곡河曲전쟁戰爭극결郤缺상군장上軍將이었는데, 선공宣公 8년에 조돈趙盾의 뒤를 이어 집정執政이 되어 중군장中軍將이 되니, 사회士會가 그 뒤를 이어 상군장上軍將이 되었다. 극극郤克부장副將이 되고,注+극극郤克극결郤缺의 아들로 유병臾騈의 뒤를 이어 상군좌上軍佐가 된 것이다. 조삭趙朔하군대장下軍大將,注+조삭趙朔난순欒盾의 뒤를 이어 하군장下軍將이 된 것이다. 난서欒書부장副將이 되고,注+난서欒書난순欒盾의 아들로 조삭趙朔의 뒤를 이어 하군좌下軍佐가 된 것이다.조괄趙括조영제趙嬰齊중군대부中軍大夫,注+조괄趙括조영제趙嬰齊는 모두 조돈趙盾이모제異母弟이다. 공삭鞏朔한천韓穿상군대부上軍大夫, 순수荀首조동趙同하군대부下軍大夫,注+순수荀首순임보荀林父의 아우이고, 조동趙同조영제趙嬰齊이다. 한궐韓厥사마司馬가 되었다.注+한궐韓厥한만韓萬현손玄孫이다.
及河하야 聞鄭旣及楚平하고 桓子欲還曰 無及於鄭而勦民 焉用之注+桓子 林父 勦 勞也리오
진군晉軍황하黃河에 이르러 나라가 이미 나라와 화평和平했다는 말을 듣고 환자桓子환군還軍하고자 하며 말하기를, “나라가 나라에 항복降服하기 전에 미쳐 구원救援하지 못했으면서 군대를 수고롭게 하여 전쟁戰爭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注+환자桓子순임보荀林父이다. 는 괴롭히는 것이다.
楚歸而動이라도 不後注+動兵[附注] 朱曰 不後 猶未晩也 隨武子曰 善注+武子 士會
초군楚軍이 돌아간 뒤에 출동出動하여도 늦지 않다.”注+군대를 출동出動나라를 토벌討伐하는 것이다. [부주]朱: 불후不後는 늦지 않다는 말과 같다. 고 하니, 수무자隨武子가 말하기를, “훌륭하신 말씀입니다.注+무자武子사회士會이다.
會聞用師 注+釁 罪也이라
내가 듣건대 ‘용병用兵에는 의 틈을 보아 움직인다.注+이다.
德刑政事典禮不易이면 不可敵也라하니 不爲是征注+言征伐爲有罪 不爲有禮 이라
덕행德行형벌刑罰정령政令사무事務전장典章예의禮儀상도常道를 어기지 않은 나라는 대적對敵할 수 없다.’고 하니, 이런 나라는 정벌征伐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注+그런 나라를 정벌征伐하면 유죄有罪가 되고 유례有禮가 되지 못한다는 말이다.
楚君討鄭 怒其貳而哀其卑
초군楚君나라를 토벌討伐할 때 나라가 두 마음 품은 것에 토벌討伐하다가 정백鄭伯이 몸을 낮추는 것을 보고는 가엾게 여겼습니다.
叛而伐之하고 服而舍之하니 德刑成矣
배반背叛하자 토벌討伐하였고 항복降服하자 용서하였으니, 덕행德行형벌刑罰구비具備[成]되었습니다.
伐叛 刑也 柔服 德也 二者立矣
배반背叛한 나라를 토벌討伐하는 것은 형벌刑罰이고 복종服從하는 나라를 회유懷柔하는 것은 덕행德行이니, 두 가지가 이미 수립樹立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昔歲入陳注+討徵舒하고 今玆入鄭이로되 民不罷勞하야 君無怨讟注+讟 謗也하니 政有經矣注+經 常也
작년昨年나라에 침입侵入하고注+하징서夏徵舒토벌討伐한 것이다. 금년에 나라에 침입侵入하였으되, 백성들이 피로하지 않아 초군楚君을 원망하는 말이 없으니,注+비방誹謗이다. 정령政令상도常道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注+이다.
荊尸而擧注+荊 楚也 尸 陳也 楚武王始更爲此陳法 遂以爲名 [附注] 朱曰 하야 商農工賈不敗其業하고 而卒乘輯睦注+步曰卒 車曰乘하니 事不奸矣注+奸 犯也
형시진荊尸陣을 만들어 작전作戰거행擧行하므로注+나라이고, [陳]이다. 초무왕楚武王이 비로소 기존의 진법陣法을 고쳐 이 진법陣法을 만들고서 드디어 ‘형시荊尸’로 이름하였다. [부주]朱: 나라의 진명陣名이다. 생업生業하지 않고, 졸승卒乘화목和睦하니,注+보병步兵을 ‘’이라 하고 거병車兵을 ‘’이라 한다.각자各自업무業務를 서로 침범侵犯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注+하는 것이다.
蔿敖爲宰하야 擇楚國之令典注+宰 令尹 蔿敖 孫叔敖하야 軍行 右轅하고 左追蓐注+在車之右者 挾轅爲戰備 在左者 追求草蓐爲宿備 傳曰 令尹南轅 又曰 改乘轅 楚陳以轅爲主 하며 注+慮無 如今軍行前有斥候蹹伏 皆持以絳及白爲幡 見騎賊擧絳幡 見步賊擧白幡 備慮有無也 茅 明也 或曰 時楚以茅爲旌識(幟) 하고 中權하고 後勁注+中軍制謀 後以精兵爲殿하고 百官象物而動하야 軍政不戒而備注+ 戒 勑令 [附注] 朱曰 物 旌旗也 言百官各象其所建之旗物而行動하니 能用典矣
위오蔿敖영윤令尹이 되어 나라에 좋은 전장典章선택選擇하여,注+영윤令尹이고, 위오蔿敖손숙오孫叔敖이다. 군대가 출동出動할 때는 우군右軍주장主將거원車轅호위護衛하고, 좌군左軍야영野營할 때 깔고 잘 풀을 구하며,注+수레 오른쪽에 있는 자는 을 끼고서 전투戰鬪준비準備를 하고, 수레 왼쪽에 있는 자는 풀을 구하여 야영野營할 준비를 한다. 에 ‘영윤令尹방향方向을 남쪽으로 틀었다.’고 하였고, 또 ‘수레의 의 방향을 고치게 했다.’고 하였으니, 나라의 에는 방향方向주요主要하게 여긴 것이다. 전군前軍를 들고 가면서 불의不意사태事態를 알리고,注+여무慮無는 오늘날 군행軍行의 앞에 척후斥候를 두어 답복蹹伏(敵軍의 움직임을 정탐偵探함)하게 하되, 모두 붉은색과 흰색으로 만든 를 가지고 가면서 기적騎敵발현發見하면 적기赤旗를 들고, 보적步敵을 발견하면 백기白旗를 들게 하고, 현재는 없으나[無] 갑자기 일어날 사태事態를 생각하였다가[慮], 비상사태非常事態가 발생하면 후군後軍에 알려 대비對備하게 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는 밝은 것이다. 혹자或者는 당시에 나라는 (띠)로 를 만들었다고 하였다. 중군中軍작전계획作戰計劃을 세우고, 후군後軍강병强兵으로 부대部隊를 만들어 후미後尾를 지키며,注+중군中軍계획計劃제정制定하고, 정병精兵으로 후군後軍을 삼는다는 말이다. 백관百官은 각자 직위職位상징象徵하는 를 세우고서 직위職位에 맞게 행동行動하여 군정軍政경계警戒하지 않아도 완비完備되니,注+와 같고, 신칙申飭하는 것이다. [부주]朱: 정기旌旗이니, 백관百官이 각각 세운 기물旗物상징象徵해 행동하는 것이다.전장典章을 잘 운용運用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其君之擧也 內姓選於親하고 外姓選於舊注+言親踈竝用 하되 擧不失德하고 賞不失勞하며 老有加惠注+賜老則不計勞하고 旅有施舍注+旅客來者 施之以惠 舍不勞役하며 注+尊卑別也하야 貴有常尊하고 賤有等威注+威儀有等差하니 禮不逆矣
초군楚君인재人才등용登用함에는 동성同姓 중에는 가까운 친족親族등용登用하고, 이성異姓 중에는 구신舊臣후예後裔등용登用하되,注+한 사람과 소원疏遠한 사람을 함께 등용登用했다는 말이다. 등용함에 있어 이 있는 사람을 잃지 않고, 을 줌에 있어 이 있는 사람을 빠뜨리지 않으며, 노인老人에게는 우대優待를 더하고,注+노인老人에게 은혜恩惠을 내림에는 공로功勞를 따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나그네에게는 은혜恩惠를 베풀며,注+여객旅客으로 온 자에게는 은혜恩惠를 베풀어, 부역赴役면제免除[舍]하고 노역勞役을 시키지 않는다는 말이다. 군자君子소인小人복물服物(衣服과 기물器物)에 각각 복장服章(身分을 나타내는 복식服飾)이 있게 하여,注+존비尊卑를 구별한 것이다.존귀尊貴한 자는 항상 그 존귀尊貴를 누리고, 비천卑賤한 자는 각각 그 등위等威(身分에 상응相應하는 위의威儀)가 있게 하였으니,注+위의威儀등차等差가 있는 것이다. 를 거스르지 않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德立刑行하고 政成事時하며 典從禮順하니 若之何敵之리오
나라는 덕행德行수립樹立되고, 형벌刑罰시행施行되고, 정령政令이 이루어지고, 사무事務의 처리가 시의時宜에 맞고, 전장典章을 따르고, 예의禮儀에 순서가 있으니, 어찌 저들을 대적對敵할 수 있겠습니까?
見可而進하고 知難而退 軍之善政也 兼弱攻昧 武之善經也注+昧 昏亂 經 法也 子姑整軍而經武乎注+姑 且也 [附注] 林曰 言經略武備ᄂ저
승리勝利가능성可能性을 보면 진군進軍하고 승리勝利하기 어려움을 알면 퇴군退軍하는 것은 전쟁戰爭[軍]에 가장 좋은 전술戰術[政]이고, 한 나라를 겸병兼竝하고 우매愚昧한 나라를 공격攻擊하는 것은 용병用兵[武]에 가장 좋은 전략戰略[經]이니,注+혼란昏亂이고 이다. 우선 군대를 정돈整頓(知難而退)하여 경영經營(兼弱攻昧)하소서.注+는 우선이다.[부주]林: 무비武備(軍備)를 경영經營해 다스린다는 말이다.
猶有弱而昧者어늘 何必楚리오
하고 우매愚昧한 나라가 있는데, 굳이 나라를 칠 필요가 뭐 있습니까?
仲虺有言曰 取亂侮亡이라하니 兼弱也注+仲虺 湯左相 薛之祖奚仲之後 汋曰 於鑠王師
중훼仲虺의 말에 ‘어지러운 나라를 취하고 하는 나라를 업신여긴다.’고 하였으니, 이는 쇠약衰弱한 나라를 겸병兼竝한다는 말이고,注+중훼仲虺탕왕湯王좌상左相으로 나라의 조상祖上해중奚仲후예後裔이다. 주송周頌작편酌篇〉에 ‘아 아름답다, 무왕武王이 군대를 쓰신 것이여.
注+汋 詩頌篇名 鑠 美也 言美武王能遵天之道 須暗昧者惡積而後取之 라하니 耆昧也注+耆 致也 致討於昧 武曰 無競惟烈注+武 詩頌篇名 烈 業也 言武王兼弱取昧 故成無疆之業이라하니 撫弱耆昧하야 以務烈所可也注+言當務從武王之功業 撫而取之
나라를 배반背叛한 나라들을 거느리고 가서 우매愚昧한 나라를 하였다.’注+은 《시경詩經》 〈주송周頌〉의 편명篇名이다. 은 아름다움이니, 무왕武王이 하늘의 준행遵行하여 암매暗昧한 자의 악행惡行이 쌓이기를 기다린 뒤에 그를 공격攻擊한 것을 찬미讚美한 말이다.고 하였으니, 이는 우매愚昧한 나라를 공격攻擊했다는 말이며,注+(行함)이니 암매暗昧한 자에게 토벌討伐을 행하는 것이다. 주송周頌무편武篇〉에 ‘끝없는 공적功績이다.’注+는 《시경詩經》 〈주송周頌〉의 편명篇名이다. 이니, 무왕武王약국弱國겸병兼倂하고 암매暗昧한 나라를 하였기 때문에 끝없는 공업功業을 이루었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고 하였으니, 한 나라를 위무慰撫하고 우매愚昧한 나라를 쳐서 공적功績 이루기를 힘쓰는 것이 옳습니다.”注+무왕武王공업功業을 따라 제후諸侯를 어루만지고 암매暗昧제후諸侯공취攻取해야 한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고 하였다.
彘子曰 不可注+彘子 先縠하다
체자彘子가 말하기를, “안 됩니다.注+체자彘子선곡先縠이다.
晉所以霸 師武臣力也注+[附注] 林曰 夫晉之所以爲霸於諸侯 以兵師之武勇與群臣之勤力也어늘 今失諸侯 不可謂力이오 有敵而不從이면 不可謂武
우리 나라가 패자霸者가 된 것은 군대가 용무勇武하고 신하臣下진력盡力하였기 때문인데,注+[부주]林: 나라가 제후諸侯패자霸者가 된 까닭은 군대가 무용武勇스럽고 신하臣下들이 부지런히 힘썼기 때문이라는 말이다. 지금 제후諸侯를 잃는다면 진력盡力했다고 할 수 없고, 앞에 이 있는데도 가서 싸우지 않는다면 용무勇武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由我失霸 不如死
우리로 인해 패자霸者지위地位를 잃는다면 차라리 죽는 것만 못합니다.
且成師以出이라가 聞敵彊而退 非夫也注+非丈夫
대군大軍을 이끌고 왔다가 하다는 말을 듣고 물러가는 것은 대장부大丈夫가 할 일이 아닙니다.注+대장부大丈夫가 아니라는 말이다.
命爲軍帥하야 而卒以非夫 唯群子能이어니와 我弗爲也注+[附注] 林曰 唯群子能受此辱 我不能爲此事 라하고 以中軍佐濟注+佐 彘子所帥也 濟 渡河 하다
임금의 을 받아 군대의 장수將帥가 되어서 대장부大丈夫답지 못한 행위行爲로 일을 끝내는 것은 여러분은 할 수 있으나 나는 할 수 없습니다.”注+[부주]林: 여러분은 이런 치욕恥辱을 받아들일 수 있겠지만 나는 이런 일을 할 수 없다는 말이다. 라고 하고서, 체자彘子중군中軍부장副將한 군대를 거느리고 황하黃河를 건너갔다.注+체자彘子통솔統率한 군대이다. 황하黃河를 건넌 것이다.
知莊子曰 此殆哉注+莊子 荀首ᄂ저
지장자知莊子가 말하기를, “이 군대가 위험危險합니다.注+장자莊子순수荀首이다.
周易有之하니 在師☷☵注+坎下坤上 師之臨☷☱注+兌下坤上 臨 師初六變而之臨曰 師出以律이니 否臧이면注+此師卦初六爻辭 律 法 否 不也이라하니
주역周易》에 이런 괘상卦象이 있으니, 사괘師卦注+하괘下卦이고 상괘上卦인 것이 사괘師卦이다. 초육初六[師之臨]에注+하괘下卦이고 상괘上卦인 것이 임괘臨卦이니, 사괘師卦초육初六하여 임괘臨卦가 된 것이다. ‘군대의 출동出動에는 군율軍律통제統制해야 하니, 통제統制가 잘 되지 않으면 하다.’注+이것은 사괘師卦초육初六효사爻辭이다. 이고, 이다. 고 하였습니다.
注+今彘子逆命不順成 故應不臧之凶
모든 일을 도리道理에 따라 행하여 성취成就하는 것을 ‘’이라 하고, 도리道理를 거슬려 실패失敗하는 것을 ‘’라 합니다.注+지금 체자彘子을 거역하고 순리順理로 이루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부장지흉不臧之凶해당該當한다고 한 것이다.
注+坎爲衆 今變爲兌 兌柔弱하고 注+坎爲川 今變爲兌 兌爲澤 是川見壅이면 注+如 從也 法行則人從法 法敗則法從人 坎爲法象 今爲衆則散 爲川則壅 是失法之用 從人之象
무리가 흩어지면 해지고注+인데, 지금 변하여 가 되었으니, 유약柔弱이다. 내가 막히면 못이 되니,注+인데, 지금 하여 가 되었다. 이니, 내가 막힘을 당한 것이다. 을 두는 것은 삼군三軍을 마치 자기 일신一身처럼 지휘指揮하기 위함입니다.注+는 따르는 것이다. 해지면 사람이 을 따르지만 이 무너지면 이 사람을 따른다. 에는 이 있는데, 지금 대중大衆이 흩어지고 내가 막혔으니, 이는 이 쓰임을 잃고 사람을 따르는 이다.
故曰律이니 否臧注+[附注]이면 且律竭也注+竭 敗也 坎變爲兌 是法敗
그러므로 ‘(統制)’이라 한 것이니, 통제統制가 잘 되지 않으면[否臧]注+[부주]林: 그러므로 으로 통제統制[律]해야 하고 으로 통제統制하지 않으면 불선不善(不臧)하다고 한 것이다. 고갈枯竭됩니다.注+(무너짐)하는 것이다. 이 변하여 가 되었으니 이는 이 무너지는 이다.
盈而以竭하고 夭且不整 所以凶也注+水遇夭塞 不得整流 則竭涸也
못에 물이 가득 찼으나 유입流入하는 물이 없으면 고갈枯竭되듯이 명령命令이 막혀 하지 않고 군대가 흩어져 정비整備되지 않기 때문에 하다고 한 것입니다.注+물이 막힘을 당해 바르게 흐를 수 없으면 못에 물이 마른다는 말이다.
不行之謂臨注+水變爲澤 乃成臨卦 澤 不行之物 이니 有帥而不從이면 臨孰甚焉
물이 정지停止해 흐르지 않는 것을 이라 하니,注+감수坎水가 변해 태택兌澤이 되어 임괘臨卦가 되었다. 은 흘러가지 않는 물건物件이다. 군대가 상관上官명령命令을 따르지 않는다면 이보다 심한 이 어디 있겠습니까?
此之謂矣注+譬彘子之違命 亦不可行
주역周易》의 말은 이런 이치理致를 이른 것입니다.注+체자彘子명령命令을 어긴 것도 물이 흐르지[行] 않는 것과 같다는 것을 비유한 것이다.
果遇 必敗注+遇敵리라
체자彘子가 과연 초군楚軍과 만난다면 반드시 패배敗北할 것입니다.注+을 만나는 것이다.
注+主此禍하니 雖免而歸라도 必有大咎注+爲明年晉人殺先縠傳 하리라
그러나 체자彘子가 이 일의 책임을 져야[尸] 하니,注+를 책임져야 한다는 말이다. 비록 죽음을 면하고 돌아온다 하더라도 반드시 큰 가 있을 것입니다.”注+명년明年진인晉人선곡先縠을 죽인 배경背景이다.라고 하였다.
韓獻子謂桓子注+獻子 韓厥 曰 彘子以이면 子罪大矣注+[附注] 朱曰 言先縠以中軍之佐 自陷於敗 則林父當得大罪也리라
한헌자韓獻子환자桓子에게 말하기를,注+헌자獻子한궐韓厥이다.체자彘子편사偏師(작은 부대部隊)를 거느리고 갔다가 위험危險에 빠진다면 장군將軍가 큽니다.注+[부주]朱: 선곡先縠중군中軍로 스스로 패전敗戰에 빠진다면 순임보荀林父도 당연히 대죄大罪를 얻게 된다는 말이다.
子爲元帥하야 師不用命 誰之罪也
장군將軍원수元帥가 되었으니, 군대가 명령命令을 따르지 않는 것이 누구의 입니까?
失屬亡師 爲罪已重이니 不如進也注+令鄭屬楚 故曰失屬 彘子以偏師陷 故曰亡師
속국屬國도 잃고 군대도 잃는다면 가 너무 크니, 진군進軍하는 것만 못합니다.注+나라를 나라에 붙게 하였기 때문에 속국屬國을 잃는다[失屬]고 하고, 체자彘子편사偏師를 거느리고 적진敵陣에 빠질 것이기 때문에 군사를 잃는다[亡師]라고 한 것이다.
事之不捷이라도 惡有所分注+捷 成也이니 與其專罪 六人同之 不猶愈乎注+三軍皆敗 則六卿同罪 不得獨責元帥
패전敗戰하더라도 [惡]를 분담分擔할 곳이 있으니,注+성공成功하는 것이다. 를 혼자 전담專擔하기보다 여섯 사람이 공동共同으로 분담分擔하는 것이 오히려 낫지 않겠습니까?”注+삼군三軍이 모두 패전敗戰하면 육경六卿동일同一하니, 원수元帥 혼자의 책임責任이 아니라는 말이다.라고 하였다.
師遂濟하다
이에 진군晉軍은 드디어 황하黃河를 건너갔다.
楚子北師하야 次於郔注+郔 鄭北地하다
이때 초자楚子는 군대를 거느리고 북상北上하여 주둔駐屯[次]하였다.注+나라의 북쪽 땅이다.
沈尹將中軍注+沈或作寢 寢縣也 今汝陰固始縣 하고 子重將左하고 子反將右하야 注+子反 公子側 [附注] 林曰 楚將飮馬於河而歸 以示强盛하다
심윤沈尹중군中軍을,注+으로 쓰기도 하니, 침현寢縣으로 지금의 여음汝陰고시현固始縣이다. 자중子重좌군左軍을, 자반子反우군右軍을 거느리고서 황하黃河로 가서 말에 물을 먹이고 나라로 돌아가려 하였다.注+자반子反공자公子이다. [부주]林: 초군楚軍황하黃河에서 말에 물을 먹이고 돌아가려 한 것은 강성强盛함을 보이기 위함이었다.
聞晉師旣濟하고 王欲還하니 嬖人伍參欲戰注+參 伍奢之祖父하다
진군晉軍이 이미 황하黃河를 건넜다는 말을 듣고 초왕楚王환군還軍하고자 하니, 폐인嬖人오참伍參전쟁戰爭하고자 하였다.注+오참伍參오사伍奢조부祖父이다.
令尹孫叔敖弗欲曰 昔歲入陳하고 今玆入鄭하니 不無事矣
영윤令尹손숙오孫叔敖전쟁戰爭하려 하지 않으며 말하기를, “작년昨年나라에 진입進入하고 금년에 나라에 진입進入하였으니, 전쟁戰爭이 없었다고 할 수 없다.
戰而不捷이면 參曰 若事之捷이면 孫叔爲無謀矣 不捷이면 參之肉將在晉軍이리니 可得食乎
만약 전쟁戰爭하였다가 승리勝利하지 못한다면 너(伍參)의 고기를 씹어 먹어도 시원찮을 것이다.”라고 하니, 오참伍參이 말하기를, “만약 전쟁戰爭승리勝利한다면 손숙孫叔 당신은 계모計謀가 없는 것이 되고, 만약 패전敗戰한다면 나의 육신肉身진군晉軍수중手中에 있을 것인데, 어찌 먹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였다.
令尹南轅反旆注+迴車南鄕 旆 軍前大旗 [附注] 林曰 孫叔敖不欲戰 乃回車南向 反軍前大旂之旆하니 伍參言於王曰
영윤令尹환군還軍하기 위해 수레의 을 남쪽으로 돌리고 군기軍旗방향方向을 남쪽으로 돌리니,注+수레를 돌려 남쪽으로 향한 것이다. 는 군대가 행군行軍할 때 맨 앞 수레에 꽂는 대기大旗이다. [부주]林: 손숙오孫叔敖전쟁戰爭하지 않으려고 수레를 돌려 남쪽으로 향하고, 군전軍前에 세운 대기大旗의 깃발 방향을 돌린 것이다. 오참伍參초왕楚王에게 말하기를,
晉之從政者新하야 未能行令注+[附注] 林曰 言晉之林父新將中軍執晉政 未能專行其號令하고 其佐先縠剛愎不仁하야 未肯用命注+하며
나라의 집정執政이 새로 임명任命된 자여서 군령軍令을 제대로 행사行使하지 못하고,注+[부주]林: 나라 순임보荀林父가 새로 중군장中軍將으로 나라의 집정執政이 되었기 때문에 마음대로 호령號令을 내릴 수 없다는 말이다. 부장副將선곡先縠은 까다롭고 불인不仁하여 명령命令을 따르려 하지 않으며,注+은 사나운 것이다.
其三帥者 專行不獲注+欲專其所行而不得 하야 注+聽彘子趙同趙括 則爲軍無上 令衆不知所從 이릿가
장수將帥(上軍, 중군中軍, 하군下軍장수將帥)는 전권專權을 가지고 행사行事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므로注+자기가 마음대로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는 말이다. 군중軍衆명령命令을 따르려[聽]해도 명령命令을 내리는 주장主將[上]이 없으니 군중軍衆이 누구의 명령命令을 믿고 따르겠습니까?注+체자彘子, 조동趙同, 조괄趙括의 말을 듣는다면 군중軍中상장上將이 없는 것이 되어, 군중軍衆으로 하여금 따를 바를 알지 못하게 한다는 말이다.
此行也 晉師必敗리이다
그러니 이번에 가서 진격進擊하면 진군晉軍이 반드시 패전敗戰할 것입니다.
且君而逃臣이면 若社稷何注+[附注] 林曰 且楚王以君而逃晉之諸臣 若楚國之社稷何 王病之하야 告令尹改乘轅而北之하고 次于管以待之하다
그리고 임금으로서 신하를 피해 도망한다면 사직社稷치욕恥辱을 어찌하시렵니까?”注+[부주]林: 초왕楚王이 임금으로서 나라의 제신諸臣을 피해 도망간다면 나라 사직社稷치욕恥辱을 어찌하겠느냐는 말이다. 라고 하니, 초왕楚王은 이 말을 듣고 마음이 매우 상해 영윤令尹에게 일러 거원車轅을 돌려 북쪽을 향해 진군進軍하게 하고, 초자楚子주둔駐屯하여 진군晉軍을 기다렸다.
晉師在敖鄗之間注+熒陽京縣東北有管城 敖鄗二山在熒陽縣西北하다
이때 진군晉軍오산敖山호산鄗山 사이에 주둔駐屯하고 있었다.注+형양熒陽경현京縣 동북쪽에 관성管城이 있다. 오산敖山호산鄗山형양현熒陽縣 서북쪽에 있다.
鄭皇戌使如晉師曰 鄭之從楚 社稷之故也 未有貳心이라
나라 황술皇戌나라 군중軍中으로 가서 말하기를, “우리 나라가 나라에 복종服從하는 것은 사직社稷보존保存하기 위함이고, 결코 나라에 두 마음을 품은 것이 아닙니다.
楚師驟勝而驕하고 其師老矣하야 而不設備하니 子擊之하고 鄭師爲承注+承 繼也 이면 楚師必敗리라 彘子曰 敗楚服鄭 於此在矣 必許之하라
초군楚軍은 잦은 승전勝戰으로 교만해졌고, 그 군대는 출병出兵한 지 오래여서 지쳐 있는데다가 방비防備마저 설치設置하지 않고 있으니, 진군晉軍공격攻擊하고 우리 정군鄭軍이 뒤를 잇는다면注+은 잇는 것이다. 초군楚軍은 반드시 패배敗北할 것입니다.”고 하자, 체자彘子가 말하기를, “초군楚軍패배敗北시키고 나라를 복속服屬시키는 일이 이번 기회에 달렸으니, 황술皇戌요청要請허락許諾하십시오.”라고 하였다.
欒武子曰注+武子 欒書 楚自克庸以來注+在文十六年 其君無日不討國人而訓之注+討 治也 [附注] 朱曰 楚君無一日不治國人而敎訓之于民生之不易하고 禍至之無日하니 戒懼之不可以怠注+于 曰也 [附注] 朱曰 于與吁同 嗟嘆而言也 此下皆楚君訓民之言 不易 謂斯民生理之難 無日不虞禍患之至 常驚戒畏懼而不可以怠惰 하고
그러자 난무자欒武子가 말하기를,注+무자武子난서欒書이다.나라는 용국庸國과의 전쟁戰爭승리勝利한 뒤로注+문공文公 16년에 있었다. 그 임금은 국민國民을 다스리고 교훈敎訓하며注+는 다스리는 것이다. [부주]朱: 초군楚君국인國人을 다스려 교훈敎訓하지 않은 날이 하루도 없었다는 말이다. ‘백성의 생계生計는 쉽지 않고 가 닥치는 것은 해진 날이 없으니, 경계警戒를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지 않은 날이 하루도 없었으며,注+이다. [부주]朱: 와 같으니, 탄식하며 말한 것이다. 이 이하以下는 모두 초군楚君이 백성을 교훈敎訓한 말이다. 쉽지 않다[不易]는 것은 백성의 생활生活이 어려움을 이른 말이다. 화환禍患이 이르는 것은 예측豫測할 수 없으니, 항상 경계警戒하고 두려워해야 하고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지 않은 날이 하루도 없었다는 말이다.
在軍 無日不討軍實而申儆之注+軍實 軍器 于勝之不可保注+[附注] 朱曰 此下皆楚君訓兵之言 謂楚雖克庸 不可保其常勝
군중軍中에서는 군실軍實(兵士와 군기軍器)을 다스리고 거듭 경계하며注+군실軍實군기軍器이다. ‘勝利는 보장할 수 없는 것이다.注+[부주]朱: 이 이하는 모두 초군楚君병사兵士훈계訓戒한 말로 나라가 비록 용국庸國을 이겼으나, 항상 승리勝利보장保障할 수 없다는 말이다.
紂之百克而卒無後注+[附注] 林曰 昔商紂恃其百戰百克之威 其後武王滅之 卒殄其祀하고 訓之以若敖蚡冒篳路藍縷以啓山林注+若敖蚡冒 皆楚之先君 篳路 柴車 藍縷 敝衣 言此二君勤儉以啓土하며
상주商紂백전백승百戰百勝하였으되 끝내 무후無後하였다.’注+[부주]林: 옛날에 상주商紂백전백승百戰百勝위세威勢를 믿었으나, 뒤에 무왕武王격멸擊滅하여 끝내 그 제사祭祀가 끊겼다는 말이다. 고 하면서 약오若敖분모蚡冒필로篳路를 타고 남루藍縷한 옷을 입고서 산림山林개척開拓한 일로 훈계訓戒하지 않은 날이 하루도 없었습니다.注+약오若敖분모蚡冒는 모두 나라의 선군先君이다. 필로篳路는 나무를 싣는 수레이고, 남루藍縷는 해진 옷이니, 이는 두 임금이 근검勤儉으로 국토國土개척開拓한 것을 말한 것이다.
箴之曰 民生在勤하니 勤則不匱라하니 不可謂驕注+箴 誡
그리고 잠언箴言을 지어 경계警戒하기를 ‘백성의 생계生計근면勤勉에 달렸으니 근면勤勉하면 생계生計궁핍窮乏해지지 않는다.’고 하였으니, 이로써 보면 저들이 교만驕慢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注+은 경계이다.
先大夫子犯有言曰 師直爲壯이오 曲爲老라하니
선대부先大夫자범子犯의 말에 ‘군대는 명분名分이 바르면[直]사기士氣왕성旺盛[壯]하고, 명분名分이 바르지 못하면[曲]사기士氣[老]한다.’고 하였습니다.
我則不德이어늘 而徼怨于楚하니 我曲楚直이라 不可謂老注+不德 謂以力爭諸侯 徼 要也
우리는 을 행하지 않으면서 나라와 원한怨恨을 맺기를 [徼]한다면 우리는 명분名分이 바르지 못하고 나라는 명분名分이 바른 것이 되니, 사기士氣하였다고 할 수 없습니다.注+부덕不德무력武力으로 제후諸侯와 다툼을 이른다. (求함)이다.
其君之戎分爲二廣注+之親兵하니 廣有一卒하고 卒偏之兩注+十五乘爲一廣 司馬法 百人爲卒 二十五人爲兩 車十五乘爲大偏 今廣十五乘 亦用舊偏法 復以二十五人爲 [附注] 朱曰 以今廣法論之 每車一乘 有一百人 周制車十五乘爲大偏 二十五人爲兩 楚以五十人爲兩 以舊偏法論之 一卒百人之外 又有此五十人之兩也 蓋楚一車兼周兩車人數 周一車 有七十五人 楚一車 有一百五十人 此說見唐太宗李靖問對 注疏說誤 이라
초군楚君친위병親衛兵을 나누어 좌우左右으로 만들었는데,注+초군楚君친위병親衛兵이다. 에는 (兵車 30)이 있고, 에는 두 (15乘)이 있습니다.注+15이 1이다. 사마법司馬法에 “1백 이 1이고, 25이 1이며, 병거兵車 15대편大偏이다.”고 하였으니, 지금 15을 1으로 삼은 것도 옛 편법偏法을 따른 것이다. 다시 25승부承副로 삼은 것이다. [부주]朱: 지금의 광법廣法으로 하면 병거兵車 1마다 1백 이 딸린다. 나라 제도制度병거兵車 15대편大偏으로 삼고, 25으로 삼았는데, 나라는 50으로 삼았다. 옛날의 편법偏法으로 하면 1 1백 이외에 또 이 50이 있다. 대체로 나라 제도는 병거兵車 1나라의 병거兵車 2인수人數를 겸한 것이다. 나라 제도는 병거兵車 1에 75이 딸렸는데, 나라 제도는 병거兵車 1에 150이 딸렸다. 이 당태종唐太宗이정李靖문답問答한 글에 보이니, 주소注疏은 옳지 않다.
右廣初駕하야 數及日中注+[附注] 朱曰 每日右廣雞鳴而駕馬 數其時刻 至於日中而止이면 左則受之하야 以至于昏注+[附注] 朱曰 左廣代右廣而駕馬 至於日入而止하고 內官序當其夜注+內官 近官 序 次也 [附注] 朱曰 其內官近君者爲次序以當其夜 若今宿直遞持更也하야 以待不虞하니 不可謂無備
우광右廣이 먼저 병거兵車가동駕動하여 새벽부터 정오正午까지 수위守衛하면注+[부주]朱: 날마다 우광右廣은 새벽닭이 울 때 말에 수레를 매어 수비守備하다가 시각時刻을 계산하여 정오正午에 이르면 수비守備를 멈춘다. 좌광左廣이 그 뒤를 이어 황혼黃昏까지 수위守衛하며,注+[부주]朱: 좌광左廣우광右廣교대交代해 말에 수레를 매어 수비守備하다가 일몰日沒에 이르면 수비守備를 멈춘다. 밤에는 내관內官(近臣)이 돌아가며 경비警備를 담당하여注+내관內官근신近臣이다. 는 차례이다. [부주]朱: 임금을 가까이서 모시는 내관內官들이 차례를 정해 그 밤을 담당擔當수비守備하는 것으로, 오늘날 교대交代로 돌아가며 숙직宿直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의외意外사태事態[不虞]를 대비對備하니, 방비防備가 없다고 할 수 없습니다.
子良 鄭之良也 師叔 楚之崇也注+師叔 潘尪 爲楚人所崇貴어늘 師叔入盟하고 子良在楚하니 楚鄭親矣
자량子良나라의 양신良臣이고, 사숙師叔나라의 존귀尊貴한 사람인데,注+사숙師叔반왕潘尪이다. 초인楚人들이 존귀尊貴하게 여기는 사람이란 말이다. 사숙師叔나라로 들어가 결맹結盟하고 자량子良나라로 가서 인질人質이 되었으니, 나라와 나라의 관계關係친밀親密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來勸我戰 我克則來하고 不克遂往注+[附注] 朱曰 今鄭使皇戌來勸我與楚戰 我勝楚則鄭來歸我 我不勝則鄭遂往從楚하야 以我卜也 鄭不可從注+[附注] 朱曰 蓋以我之勝負而卜其去就也 皇戌之請不可從也이라
그런데도 나라가 사자使者를 보내어 우리에게 전쟁戰爭하도록 하는 것은 우리가 이기면 우리에게 붙고 이기지 못하면 드디어 나라에 붙으려고注+[부주]朱: 지금 나라가 황술皇戌를 보내어 와서 우리에게 나라와 전쟁戰爭하기를 하는 것은, 우리가 승리勝利하면 나라는 우리에게 귀부歸附하고 우리가 승리勝利하지 못하면 나라는 드디어 나라에 복종服從하기 위해서라는 말이다. 우리의 승패勝敗를 보아 거취去就결정決定하려는 것이니, 정인鄭人의 말을 따라서는 안 됩니다.”注+[부주]朱: 우리의 승부勝負로써 자기들의 거취去就결정決定하려는 듯하니, 황술皇戌요청要請을 따라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라고 하였다.
趙括趙同曰 率師以來 唯敵是求 克敵得屬이면 又何俟리오
조괄趙括조동趙同이 말하기를, “군대를 거느리고 온 것은 오직 을 맞아 싸우기 위해서이니, 을 쳐 승리勝利하고 속국屬國을 얻을 수 있다면 다시 무엇을 기다리겠습니까?
必從彘子注+得屬 服鄭하라 知季曰 原屛 注+知季 莊子也 原 趙同 屛 趙括 徒 黨也 [附注] 林曰 咎指彘子
반드시 체자彘子의 말을 따르십시오.”注+득속得屬나라를 복속服屬시키는 것이다. 라고 하자, 지계知季가 말하기를, “조동趙同[原]과 조괄趙括[屛]은 자초自招하는 무리이다.”注+지계知季장자莊子이고, 조동趙同이고, 조괄趙括이다. 는 무리이다. [부주]林: 체자彘子를 가리킨 것이다. 라고 하였다.
趙莊子曰 欒伯善哉注+莊子 趙朔 欒伯 武子 ᄂ저 注+實 猶充也 言欒書之身行 能充此言 則當執晉國之政也하리라
조장자趙莊子가 말하기를, “난백欒伯의 말이 훌륭하니,注+장자莊子조삭趙朔이고, 난백欒伯무자武子이다. 그의 말대로 실천實踐하면 반드시 나라의 국운國運장구長久할 것입니다.”注+(實踐)과 같다. 난서欒書신행身行(行動)이 능히 이 말을 실천實踐한다면 나라의 집정執政이 될 것이라는 말이다. 라고 하였다.
楚少宰如晉師注+少宰 官名 曰寡君少遭閔凶하야 不能文注+閔 憂也 [附注] 朱曰 言我楚君小時 遭國家之憂難 謂穆王之喪也 以此不學而言不成文이라
나라의 소재少宰진군晉軍군중軍中으로 가서 말하기를,注+소재少宰관명官名이다. “우리 임금께서는 어려서 민흉閔凶(喪事나 우환憂患 등의 불행不幸)을 만나서 외교外交수사修辭[文]에 하지 못하십니다.注+이다. [부주]朱: 우리 초군楚君이 어렸을 적에 국가國家우난憂難을 만났다는 것은 목왕穆王을 이른다. 이 때문에 배우지 못해서 말이 세련되지 못하다는 말이다.
聞二先君之出入此行也注+二先君楚成王穆王 [附注] 林曰 聞二先君之出入往來於伐鄭之行也 將鄭是訓定이니 豈敢求罪于晉
注+[附注] 林曰 將取鄭人而敎訓安定之 豈敢與晉爭戰而求得罪于晉이리오
듣건대 우리 두 선군先君께서 이 길을 출입出入하신 것은注+선군先君나라 성왕成王목왕穆王이다.[부주]林: 두 선군先君나라를 토벌討伐하기 위해 이 길을 출입出入하고 왕래往來했다는 것을 들은 것이다. 나라를 교훈敎訓안정安定시키려 해서였다고 하니, 어찌 감히 나라에 짓기를 구하겠습니까?注+[부주]林: 정인鄭人을 잡아 그들을 교훈敎訓안정安定시키려 한 것이니, 어찌 감히 나라와 전쟁戰爭하여 나라에 를 얻기를 구하겠느냐는 말이다.
二三子無淹久注+淹 留也하라
그러니 여러분들도 이곳에 오래 머물지 마십시오.”注+은 머무는 것이다.라고 하니,
隨季對曰 昔平王命我先君文侯 曰與鄭夾輔周室하야 毋廢王命하라하니
수계隨季가 대답하기를, “옛날에 주평왕周平王께서 우리 선군先君문후文侯하기를 ‘나라와 함께 나라 왕실王室보좌輔佐하여 왕명王命폐기廢棄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今鄭不率注+率 遵也일새 寡君使群臣問諸鄭이니 豈敢辱注+候人 謂伺候望敵者이리오
지금 나라가 이 을 따르지 않기 때문에注+준행遵行하는 것이다. 우리 임금께서 군신群臣을 보내어 나라에 그 연유緣由를 묻게 한 것뿐이니, 어찌 감히 후인候人이 오시는 노고勞苦[辱]를 끼치려는 것이었겠습니까?注+후인候人적정敵情을 살피는 척후斥候[伺候]이다.
敢拜君命之辱하노라
감히 내리신[辱]군명君命배수拜受하겠나이다.”라고 하였다.
彘子以爲諂이라하야 使趙括從而更之曰 行人失辭注+言誤對
그러자 체자彘子수계隨季답사答辭나라에 아첨한 것이라 하여, 다시 조괄趙括나라 사자使者에게 보내어 말하게 하기를, “행인行人이 말을 잘못하였습니다.注+잘못 대답했다는 말이다.
注+遷 徙也 [附注] 朱曰 言楚以大國之君 親至鄭國 是有迹於鄭也 今晉君使群臣遷其迹而去之曰 無辟敵하라하니 群臣無所逃命이라
우리 임금께서는 군신群臣을 보내시어 대국大國(楚)의 발자취를 나라에서 옮겨 가게 하라고 하시며注+은 옮기는 것이다.[부주]朱: 초군楚君대국大國의 임금으로 친히 나라에 왔으니, 이는 나라에 자취를 남기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진군晉君군신群臣을 보내어 초군楚君의 자취를 나라에서 옮겨 떠나가게 하라고 하였다는 말이다.을 피하지 말라.’고 하셨으니, 우리 군신群臣들은 그 할 수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楚子又使求成于晉하니 晉人許之하야 盟有日矣注+有期日
초자楚子가 또 사자使者를 보내어 나라에 화친和親하기를 요구要求하니, 진인晉人허락許諾하고서 결맹結盟할 날짜를 하였다.注+기일期日한 것이다.
楚許伯御樂伯하고 攝叔爲右하야 以致晉師注+單車挑戰 又示不欲崇和 以疑晉之群帥하다
그런데 나라 허백許伯악백樂伯병거兵車가 되고, 섭숙攝叔거우車右가 되어 진군晉軍치사致師(挑戰)하였다.注+단거單車도전挑戰한 것은 또 수호修好[崇和]하고자 하지 않는다는 뜻을 보여 나라의 여러 장수將帥현혹眩惑시키기 위함이었다.
許伯曰 吾聞致師者 御靡旌摩壘而還注+靡旌 驅疾也 摩 近也 [附注] 林曰 摩壘 摩近敵人之軍壘이라하고
허백許伯은 “내가 듣건대 치사致師하는 자는 가 깃발이 쏠리도록 급히 달려 적진敵陣 가까이까지 갔다가 돌아온다고 하더라.”注+미정靡旌은 수레를 급히 달리는 것이다. 는 가까이 가는 것이다. [부주]林: 마루摩壘적군敵軍군루軍壘에 손이 닿도록 가까이 가는 것이다.고 하고,
樂伯曰 吾聞致師者 左射以菆注+左 車左也 菆 矢之善者 하고 代御執轡 御下하야 注+兩 飾也 掉 正也 示閒暇 [附注] 林曰 乃自代其御以執轡 使御下車飾馬正鞅 以示閒暇而還이라하고
악백樂伯은 “내가 듣건대 치사致師하는 자는 거좌車左가 좋은 화살로 을 쏘고서注+거좌車左이고, 는 좋은 화살이다.를 대신해 고삐를 잡으면 병거兵車에서 내려 두 말을 가지런히 정리하고 말의 가슴걸이를 바르게 매고서 돌아온다고 하더라.”注+수식修飾하는 것이고, 는 바로잡는 것이니, 에게 여유를 보이기 위함이다.[부주]林: 을 쏘고 나서 를 대신해 말고삐를 잡고, 에게 수레에서 내려가 말을 수식修飾하고 가슴걸이를 바로잡게 하여 에게 여유를 보이고 돌아온다는 말이다.고 하고,
攝叔曰 吾聞致師者 右入壘하야 折馘注+折馘 斷耳執俘而還이라하고
섭숙攝叔은 “내가 듣건대 치사致師하는 자는 거우車右적진敵陣으로 들어가 을 죽여 그 귀를 자르고注+절괵折馘을 죽여 그 귀를 베는 것이다.생포生捕해 돌아온다고 하더라.”고 하고서,
皆行其所聞而復하다 晉人逐之할새 左右角之注+張兩角 從旁夾攻之하니
모두 자기들이 들은 대로 실행實行하고서 돌아오니, 진인晉人(鮑癸를 이름)은 이들을 추격追擊하고, 또 군대를 좌우左右 양쪽[兩角]으로 펼쳐 협공挾攻하였다.注+양각兩角으로 펼쳐 옆에서 협공挾攻하는 것이다.
樂伯左射馬하고 而右射人하니 角不能進注+[附注] 林曰 樂伯左射晉馬右射晉人 晉之左右角不能進하다
그러자 악백樂伯이 왼쪽으로 그 말을 쏘고, 오른쪽으로 그 사람을 쏘니, 진군晉軍양각兩角이 가까이 오지 못하였다.注+[부주]林: 악백樂伯이 왼쪽으로 진군晉軍의 말을 쏘고 오른쪽으로 진군晉軍을 쏘니, 진군晉軍좌우각左右角이 앞으로 나오지 못한 것이다.
矢一而已러니 麋興於前이어늘 射麋麗龜注+麗 著也 龜 背之隆高當心者 [附注] 林曰 樂伯矢盡 僅存其一 適見有麋興於其前 射麋而著其心 하다
악백樂伯에게는 한 대의 화살만이 남았을 뿐인데, 갑자기 사슴 한 마리가 앞에 튀어나오자 그 사슴을 쏘니 화살이 사슴의 등에 꽂혔다.注+는 꽂히는 것이다. 는 등이 높이 솟은 곳으로 심장心腸이 있는 부위部位이다. [부주]林: 악백樂伯은 화살이 다 떨어지고 겨우 한 대만이 남았는데, 마침 앞에 사슴이 튀어나오는 것을 보고서 활을 쏘니, 그 화살이 사슴의 심장에 꽂힌 것이다.
晉鮑癸當其後어늘 使攝叔奉麋獻焉曰 以歲之非時 獻禽之未至리니 敢膳諸從者注+[附注] 林曰 晉鮑癸當樂伯之後追之 樂伯旣射得麋 乃使攝叔奉麋獻諸鮑癸 言以歲之不時 獻禽之人或者未至 敢以此供從者之膳 此蓋射麋以恐晉師 而以善能求免하노라 鮑癸止之曰 其左善射하고 其右有辭하니 君子也
이때 나라 포계鮑癸가 그 뒤를 바싹 추격追擊하고 있었는데, 악백樂伯섭숙攝叔을 시켜 이 사슴을 포계鮑癸에게 주며 말하기를, “철이 아직 사냥할 때가 되지 않아 바치는 금수禽獸가 이르지 않았을 것이니, 이 사슴을 종자從者들의 반찬거리로 올립니다.”注+[부주]林: 나라 포계鮑癸악백樂伯의 뒤에 붙어 추격追擊하니, 악백樂伯이 사슴을 쏘아 잡은 뒤에 섭숙攝叔을 시켜 이 사슴을 포계鮑癸에게 주게 하며 ‘철이 아직 사냥할 때가 되지 않아 금수禽獸를 바치는 사람이 이르지 않았을 듯하므로 감히 이 사슴을 종자從者들의 반찬거리로 제공提供한다.’고 한 것이니, 이는 사슴을 쏘아 잡아 진군晉軍에게 겁을 주어, 자신의 유능한 활 솜씨로 포로捕虜가 되는 것을 하고자 한 것이다.고 하니, 포계鮑癸가 그 부하部下들에게 추격追擊을 멈추게 하며 말하기를, “저들의 거좌車左는 활을 잘 쏘고, 거우車右는 말을 잘하니 모두 군자君子이다.”고 하였다.
注+止不復逐하다
이로 인해 세 사람은 모두 포로捕虜가 되는 것을 하였다.注+중지中止하고 다시 추격追擊하지 않은 것이다.
晉魏錡求公族未得注+錡 魏犫子 欲爲公族大夫而怒하야 欲敗晉師하야
나라 위기魏錡공족대부公族大夫가 되기를 구하였으나 되지 않자注+위기魏錡위주魏犫의 아들이다. 공족대부公族大夫가 되고자 한 것이다.하여 진군晉軍패배敗北시키고자 하였다.
請致師어늘 弗許하고 請使어늘 許之注+[附注] 林曰 請使 請報楚人求成之使하니
초군楚軍도전挑戰하겠다고 하거늘 허락許諾하지 않고, 사자使者로 가겠다고 청하거늘 허락하였다.注+[부주]林: 사자使者로 가기를 한 것은 화친和親을 청하기 위해 왔던 나라 사자使者답사答使로 가기를 한 것이다.
遂往하야 請戰而還
드디어 초군楚軍으로 가서 교전交戰하기를 하고 돌아오는데, 나라 반당潘黨이 그를 추격追擊하였다.
楚潘黨逐之하다 及熒澤하야 見六麋하고 射一麋以顧獻曰 子有軍事하니 獸人無乃不給於鮮
형택熒澤에 이르러 위기魏錡는 여섯 마리의 사슴을 보고서 그 중 한 마리를 쏘아 잡아 가지고, 수레를 돌려 쫓아오는 반당潘黨에게 그 사슴을 주며 말하기를, “그대가 전쟁戰爭 중에 있으니 수인獸人신선新鮮한 짐승 고기를 공급供給하지 못하지 않았겠소.
敢獻於從者注+熒澤在熒陽縣東 新殺爲鮮 하노라 叔黨命去之注+叔黨 潘黨 潘尪之子 [附注] 林曰 命去魏錡勿復逐하다
그러므로 감히 이 사슴을 종자從者들의 반찬거리로 드리오.”注+형택熒澤형양현熒陽縣 동쪽에 있다. 새로 잡은 짐승을 ‘’이라 한다. 여섯 마리를 발견하고서 한 마리만 잡은 것은 활을 쏘는 솜씨가 초군楚軍(楚의 악백樂伯)만 못하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라고 하니, 숙당叔黨부하部下들에게 하여 추격追擊을 멈추게 하였다.注+숙당叔黨반당潘黨으로 반왕潘尪의 아들이다. [부주]林: 위기魏錡를 보내 주고 다시 추격追擊하지 말도록 한 것이다.
趙旃求卿未得注+旃 趙穿子 하고 且怒於失楚之致師者하야 請挑戰이어늘 弗許하고 請召盟이어늘 許之하니 與魏錡皆命而往注+[附注] 林曰 趙旃魏錡 皆受命而往楚 하다
조전趙旃이 되기를 구하였으나 되지 않았고,注+조전趙旃조천趙穿의 아들이다. 도전挑戰해 온 초인楚人을 놓친 것에 노하여, 초군楚軍도전挑戰하겠다고 청하거늘 허락하지 않고, 초군楚軍사자使者로 가서 초인楚人을 불러 결맹結盟하러 오게 하겠다고 청하거늘 허락하니, 조전趙旃위기魏錡와 함께 모두 을 받고 초군楚軍으로 갔다.注+[부주]林: 조전趙旃위기魏錡가 모두 을 받고 초군楚軍진영陣營으로 간 것이다.
郤獻子曰 二憾往矣注+獻子 郤克 [附注] 朱曰 言二子皆有恨於晉者 今使之往 必怒楚師也 弗備 必敗하리라 彘子曰 鄭人勸戰 弗敢從也하고 楚人求成 弗能好也하니 師無成命이라 多備何爲리오
극헌자郤獻子가 말하기를, “원한怨恨을 품은 두 사람이 갔으니,注+헌자獻子극극郤克이다. [부주]朱: 두 사람은 모두 나라에 원한怨恨이 있는 자인데, 지금 그들을 초군楚軍진영陣營으로 가게 하였으니, 반드시 초군楚軍하게 할 것이라는 말이다. 우리가 방비防備하지 않으면 반드시 실패失敗하게 될 것이다.”라고 하자, 체자彘子가 말하기를, “정인鄭人이 우리에게 교전交戰하기를 할 때 감히 따르지 않고, 초인楚人화친和親하기를 요구할 때 우호友好를 맺지 않은 것은 군중軍中전략戰略[成命]이 없기 때문이니, 방비防備를 많이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라고 하였다.
士季曰 備之善이라
사계士季가 말하기를, “방비防備하는 것이 좋다.
若二子怒楚하야 喪師無日矣注+乘 猶登也리니 不如備之
만약 저 두 사람이 초인楚人하게 하여 초인楚人이 우리의 대비가 없는 틈을 타 기습奇襲한다면 우리는 오래 버티지 못하고 군대를 잃게 될 것이니注+(즉시 공격함)과 같다. 방비防備하는 것이 좋다.
楚之無惡이면 除備而盟이라도 何損於好注+[附注] 林曰 若楚人無有惡意 則除去兵備而相從爲盟 何損於二國之好리오
초인楚人이 과연 악의惡意가 없다면 방비防備해제解除하고 결맹結盟하더라도 수호修好에 무슨 가 있겠는가?注+[부주]林: 만약 초인楚人에게 악의惡意가 없다면 병비兵備제거除去하고 서로 어울려 결맹結盟하더라도 두 나라의 우호友好에 무슨 가 되겠느냐는 말이다.
若以惡來 有備 不敗리라
만약 초인楚人악의惡意를 품고서 온다 하더라도 방비防備가 있으면 실패失敗하지 않을 것이다.
且雖諸侯相見에도 軍衛不徹 警也注+徹 去也 [附注] 林曰 且雖諸侯以和好之禮相見 君行師從 故軍衛不徹去 警戒之至也 彘子不可注+不肯設備하다
비록 제후諸侯상견相見할 때에도 군대의 호위護衛철거撤去하지 않는 것은 만일의 사태事態경계警戒하기 위함이다.”注+제거除去하는 것이다. [부주]林: 또 비록 제후諸侯화목和睦우호友好상견相見하더라도 임금의 행차行次에는 군대가 따르는 것이다. 그러므로 군대의 호위護衛철거撤去하지 않는 것은 경계警戒를 지극히 하기 위함이라고 한 것이다.고 하였으나, 체자彘子는 반대하고注+방비防備설치設置하려 하지 않은 것이다. 방비防備설치設置하려 하지 않았다.
士季使鞏朔韓穿帥七覆于敖前注+帥 將也 覆 爲伏兵七處 [附注]將上軍 獨使鞏朔韓穿將兵 設伏兵七處於敖山之前이라
그러자 사계士季공삭鞏朔한천韓穿에게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오산敖山 앞 일곱 곳에 복병伏兵을 설치하게 하였다.注+는 거느리는 것이다. 은 일곱 곳에 복병伏兵을 둔 것이다. [부주]林: 상군上軍장수將帥사계士季가 유독 공삭鞏朔한천韓穿에게만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오산敖山 앞 일곱 곳에 군대를 매복埋伏하게 한 것이다.
故上軍不敗하다 趙嬰齊使其徒先具舟于河 故敗而先濟하다
그러므로 상군上軍패배敗北하지 않았고, 조영제趙嬰齊도 그 부하部下를 보내어 먼저 황하黃河가로 가서 배를 준비準備하게 하였기 때문에 패전敗戰하고도 황하黃河를 먼저 건넜다.
潘黨旣逐魏錡注+言魏錡見逐而退 趙旃夜至於楚軍注+二人雖俱受命而行 不相隨 趙旃在後至하야 席於軍門之外하고 使其徒入之注+布席坐 示無所畏也 [附注] 林曰 하다
반당潘黨위기魏錡추격追擊해 물리친 뒤에注+위기魏錡추격追擊을 받고 후퇴後退했다는 말이다.조전趙旃이 밤에 초군楚軍진영陣營으로 가서注+두 사람이 함께 을 받고 떠났으나, 함께 가지 않고 조전趙旃이 뒤처져 간 것이다. 자신은 군문軍門 밖에 자리를 펴고 앉고, 부하部下들만 초군楚軍군문軍門 안으로 쳐들어가게 하였다.注+자리를 펴고 앉은 것은 두려워하지 않음을 보인 것이다. [부주]林: 그 부하들로 하여금 초군楚軍군문軍門으로 쳐들어가게 한 것이다.
楚子爲乘廣三十乘하고 分爲左右注+[附注] 林曰 乘廣 兵車名 하야 右廣雞鳴而駕하야 日中而說注+說 舍也이면 左則受之하야 日入而說이라
초자楚子승광乘廣 30으로 만들고, 이를 좌우광左右廣으로 나누어,注+[부주]林: 승광乘廣병거兵車의 이름이다. 우광右廣은 새벽닭이 울면 병거兵車에 말을 매어 경비警備하기 시작하여 정오正午가 되면 병거兵車에서 말을 벗기고,注+은 벗기는 것이다. 좌광左廣이 그 뒤를 이어 경비警備하기 시작하여 일몰日沒이 되면 수레에서 말을 벗기게 하였다.
許偃御右廣하고 養由基爲右하고 彭名御左廣하고 屈蕩爲右注+楚王更迭載之 故各有御右하다
허언許偃우광右廣가 되고 양유기養由基거우車右가 되었으며, 팽명彭名좌광左廣가 되고, 굴탕屈蕩거우車右가 되었다.注+초왕楚王좌우광左右廣을 번갈아 타기 때문에 각각 거우車右가 있은 것이다.
乙卯 王乘左廣하고 以逐趙旃하니 趙旃棄車而走林注+[附注] 林曰 走入于林中이어늘
을묘일乙卯日초왕楚王좌광左廣을 타고 조전趙旃을 추격하니, 조전趙旃은 수레를 버리고 숲속으로 달아났다.注+[부주]林: 달아나 숲속으로 들어간 것이다.
屈蕩搏之하야 得其甲裳注+下曰裳하다
그러자 굴탕屈蕩도 수레에서 내려 그와 격투 끝에 그의 갑상甲裳획득獲得하였다.注+하의下衣를 ‘’이라 한다.
晉人懼二子之怒楚師也하야 使軘車逆之注+軘車 兵車名하니
진인晉人은 두 사람이 초군楚軍하게 할 것을 우려憂慮하여 돈거軘車를 보내어 그들을 맞아 오게 하였다.注+돈거軘車병거兵車의 이름이다.
潘黨望其塵하고 使騁而告曰 晉師至矣 楚人亦懼王之入晉軍也하야 遂出陳하다
반당潘黨이 멀리서 먼지가 이는 것을 보고 사람을 급히 보내어 초군楚軍에 “진군晉軍이 이른다.”고 하니, 초인楚人초왕楚王진군晉軍 속으로 빠져들 것을 우려憂慮하여 드디어 나와서 을 쳤다.
孫叔曰 進之하라
손숙孫叔이 말하기를, “진격進擊하라.
寧我薄人이언정 無人薄我注+[附注] 林曰 寧使我師先進迫人 無使他人進來迫我하라
차라리 우리가 적군敵軍 가까이 갈지언정 적군敵軍이 우리에게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하라.注+[부주]林: 차라리 우리 군대가 먼저 진격進擊하여 적군敵軍 가까이 갈지언정 적군敵軍으로 하여금 진격進擊하여 우리 가까이 오게 하지 말라는 말이다.
詩云 元戎十乘으로 以先啓行이라하니 先人也注+元戎 戎車在前也 詩小雅 言王者軍行 必有戎車十乘 在前開道 先人爲備 軍志曰 先人有奪人之心이라하니 薄之也注+奪敵戰心라하고 遂疾進師하니 車馳卒奔하야 乘晉軍하니
시경詩經》에 ‘큰 수레 10으로 앞에서 길을 연다.’고 하였으니, 이는 에 앞서 먼저 공격攻擊하였다는 말이고,注+원융元戎은 앞에 가는 융거戎車이다. 는 《시경詩經》 〈소아小雅유월편六月篇〉이다. 왕자王者행군行軍에는 반드시 융거戎車 10이 앞에서 길을 열어 에 앞서 방비防備한다는 말이다. 군지軍志》에 ‘에 앞서 먼저 공격攻擊하면 투지鬪志를 빼앗는다.’고 하였으니, 이는 적군敵軍 가까이 가라는 말이다.”注+투지鬪志를 빼앗는다는 말이다. 라고 하고서, 드디어 급히 진군進軍하니, 병거兵車는 달려가고 사졸士卒은 뛰어가서 방비防備가 없는 틈을 타 진군晉軍공격攻擊하였다.
桓子不知所爲하야 鼓於軍中曰 先濟者有賞하리라하니 中軍下軍爭舟하야 舟中之指可掬也注+兩手曰掬
그러자 나라 환자桓子는 어찌할 바를 몰라 군중軍中에서 북을 치며 말하기를, “먼저 황하黃河를 건너가는 자에게는 이 있을 것이다.”고 하니, 중군中軍하군下軍이 먼저 배에 오르려고 다투어 배 안에 잘린 손가락이 두 손으로 움킬 정도였다.注+두 손으로 움키는 것을 ‘’이라 한다.
晉師右移로되 上軍未動注+言餘軍皆移去 唯上軍在 言猶有陳 [附注] 林曰 晉中軍下軍 皆右移濟河 唯上軍有備 故不敗走 이라
진군晉軍황하黃河를 향해 오른쪽으로 이동移動하였으되, 상군上軍은 움직이지 않았다.注+다른 군대는 모두 옮겨 가고, 오직 상군上軍만 남아 있었다는 말이다. 에 ‘’이라고 기록한 것은 진군晉軍패전敗戰하였으나 오히려 진세陣勢를 갖추었기 때문이다. [부주]林: 진군晉軍중군中軍하군下軍은 모두 오른쪽으로 이동移動하여 황하黃河를 건너갔으나, 오직 상군上軍만은 방비防備가 있었기 때문에 패주敗走하지 않은 것이다.
工尹齊將右拒卒하여 以逐下軍注+工尹齊 楚大夫 右拒 陳名하니
나라 공윤工尹우거右拒(오른쪽 방진方陣)의 군졸軍卒을 거느리고서 나라 하군下軍추격追擊하였다.注+공윤工尹나라 대부大夫이고, 우거右拒(陣)의 이름이다.
楚子使唐狡與蔡鳩居告唐惠侯注+二子 楚大夫 唐 屬楚之小國 義陽安昌縣東南有上 曰不穀不德而貪이라가 以遇大敵하니 不穀之罪也
전쟁戰爭하기에 앞서 초자楚子당교唐狡채구거蔡鳩居를 보내어 당혜후唐惠侯에게 하기를,注+두 사람은 나라 대부大夫이다. 당국唐國나라에 소국小國이다. 의양義陽안창현安昌縣 동남쪽에 상당향上唐鄕이 있다. “내가 도 없으면서 탐욕貪慾을 부렸다가 강대强大을 만났으니, 나의 입니다.
然楚不克이면 君之羞也 敢藉君靈하야 以濟楚師注+藉 猶假借也 하노라
그러나 나라가 승리勝利하지 못한다면 (唐侯를 가리킴)의 수치羞恥도 될 것이니, 감히 위령威靈(名聲과 권위權威)을 빌려 우리 초군楚軍승리勝利하기를 바랍니다.”注+가차假借와 같다. 고 하였다.
使潘黨率游闕四十乘注+하고 從唐侯以爲左拒하여 以從上軍하다 駒伯曰 待諸乎注+駒伯 郤克 上軍佐也 隨季曰 楚師方壯하니 若萃於我 吾師必盡注+萃 集也하리니
이때 초자楚子반당潘黨을 보내어 대기待期하고 있는 병거兵車 40을 거느리고 가서注+유거游車는 빠진 곳을 보충補充하는 병거兵車이다. 당후唐侯를 따라가 좌거左拒(왼쪽 방진方陣)를 만들어 나라 상군上軍추격追擊하게 하니, 나라 구백駒伯이 “저들을 방어防禦하리까?”注+구백駒伯극극郤克으로 상군上軍이다. 라고 묻자, 수계隨季가 말하기를, “초군楚軍사기士氣가 바야흐로 왕성旺盛하니, 병력兵力집중集中해 우리를 공격攻擊한다면 우리 군대는 반드시 전멸全滅할 것이다.注+집중集中하는 것이다.
不如收而去之
그러니 철수撤收해 돌아가는 것만 못하다.
分謗生民 不亦可乎注+同奔爲分謗 不戰爲生民 殿其卒而退하야
비난非難분담分擔하고 군대를 살리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注+함께 도망하는 것이 비방誹謗분담分擔하는 것이고, 교전交戰하지 않는 것이 백성을 살리는 것이다. 라고 하고서 상군上軍군졸軍卒후군後軍을 삼고서 후퇴後退하였다.
不敗注+以其所將卒 爲軍後殿하다
그러므로 패배敗北하지 않았다.注+자기가 거느린 군졸軍卒로 군대의 후미後尾를 담당하는 후군後軍으로 삼은 것이다.
王見右廣하고 將從之乘한대 屈蕩尸之曰 君以此始하니 亦必以終注+尸 止也 中易乘則恐軍人惑 [附注] 林曰 言莊王以左廣始出 亦必以左廣終歸이니이다
초왕楚王우광右廣군거君車를 보고서 그 수레로 옮겨 타려 하자, 좌광左廣거우車右굴탕屈蕩저지沮止하며 말하기를, “군왕君王께서 이 수레를 타고 전투戰鬪를 시작하셨으니, 이 수레를 타고 전투戰鬪종결終結하소서.”注+저지沮止하는 것이다. 중간에 수레를 바꾸어 타면 군인軍人들이 의혹疑惑할 것을 우려憂慮한 것이다. [부주]林: 초장왕楚莊王이 처음에 좌광左廣을 타고 나갔으니, 뒤에도 반드시 좌광左廣을 타고 돌아와야 한다는 말이다.라고 하였다.
自是楚之乘廣先左注+以乘左得勝故하다
이때부터 나라 승광乘廣좌광左廣상위上位[先]로 삼았다.注+좌광左廣을 타고 출전出戰하여 승리勝利하였기 때문이다.
注+廣 兵車 [附注] 林曰 晉人或以廣車爲隊 車重故不能進이어늘 楚人惎之脫扃注+惎 敎也 扃 車上兵闌하니
진인晉人병거兵車[廣]가 웅덩이에 빠져[隊]전진前進하지 못하자,注+병거兵車이다.[부주]林: 진인晉人광거廣車대열隊列을 만들었기 때문에 수레가 무거워서 나가지 못한 것인 듯하다.초인楚人병거兵車 앞에 댄 횡목橫木[扃]을 떼어내라고 가르쳐 주었다.注+는 가르치는 것이다. 병거兵車 위에 있는 병기兵器를 꽂는 틀이다.
少進하야 이어늘 하니
그렇게 하여 빠져나와 몇 걸음을 나아가자 이번에는 말이 제자리에서 빙빙 돌기만 하고 나아가지 못하니, 초인楚人이 또 깃대와 을 뽑아 던지라고 가르쳐 주었다.
乃出注+還 便旋不進 旆 大旗也 拔旆投衡上 使不帆風 差輕 하야 注+[附注] 林曰 晉師旣出險 乃顧楚人曰 我師不熟奔北 不如楚爲大國數奔之習熟也 蓋慢辭
진인晉人초인楚人이 가르쳐 준 대로 하여 나와서는注+은 말이 제자리에서 빙빙 돌기만 하고 나오지 못하는 것이다. 대기大旗이다. 대기大旗를 뽑아 (수레의 끌채 앞에 가로 댄 나무) 위로 던져 바람을 받지 않게 하여 조금 가벼워지게 한 것이다. 초인楚人을 돌아보며 말하기를, “우리는 대국大國(楚)처럼 자주 패주敗走경험經驗이 없기 때문에 이런 경우를 당하면 빠져나오는 것이 초인楚人만 못하다.”注+[부주]林: 진군晉軍험지險地에서 빠져나온 뒤에 초인楚人을 돌아보며 ‘우리 군대는 패주敗走에 익숙지 않아, 대국大國나라처럼 자주 패주敗走하는 데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고 하였으니, 이는 초인楚人조롱嘲弄한 말이다. 고 하였다.
趙旃以其良馬二濟其兄與叔父하고 以他馬反注+[附注] 林曰 自以他馬駕車而歸 이라가 遇敵不能去하여 棄車而走林하다
조전趙旃은 좋은 말 두 필이 끄는 수레에 그 숙부叔父를 태워 보내고, 자신은 다른 말이 끄는 수레를 타고 돌아가다가注+[부주]林: 자신自身은 다른 말을 수레에 매어 타고 간 것이다.을 만나 앞으로 나아갈 수 없자, 병거兵車를 버리고 숲속으로 달아났다.
逢大夫與其二子乘注+逢 氏 [附注] 林曰 逢大夫 晉人이러니 謂其二子無顧注+不欲見趙旃하라 顧曰 趙傁在後注+傁 老稱也라하니 怒之하야 使下하고 指木曰 尸女於是注+[附注] 林曰 言止汝尸於此木하리라하고 授趙旃綏하야 以免注+[附注] :林曰 綏 轡也하다
이때 봉대부逢大夫가 그 두 아들과 함께 병거兵車를 타고 앞에 도망가고 있었는데,注+이다.[부주]林: 봉대부逢大夫나라 사람이다. 봉대부逢大夫가 그 두 아들에게 뒤를 돌아보지 말라고 하였으나,注+조전趙旃을 보고자 하지 않은 것이다. 두 아들이 뒤를 돌아보며 “조노인趙老人이 뒤에 온다.”注+노인老人을 일컫는 말이다. 고 하니, 봉대부逢大夫하여 두 아들을 수레에서 내리게 하고는 한 나무를 가리키며 “너희 시체를 이곳에서 수습收拾할 것이다.”注+[부주]林: 너의 시체屍體가 이 나무 밑에 있을 것이라는 말이다. 고 하고서, 조전趙旃에게 (수레에 오를 때 잡는 끈)를 주어 수레에 오르게 하였으므로 조전趙旃를 면하였다.注+[부주]林: 는 고삐이다.
明日 以表尸之注+表所指 取其尸하니 皆重獲在木下注+兄弟累尸而死 [附注] 林曰 兄弟累尸而死 故重獲於木下 하다
이튿날 봉대부逢大夫표시標示해 둔 나무 밑으로 가서注+손가락으로 가리켜 표지標識해 두었던 나무 밑에서 그 시신屍身을 찾은 것이다. 포개져 죽어 있는 두 아들의 시체屍體를 찾았다.注+형제兄弟시신屍身이 포개진 채로 죽어 있었다는 말이다. [부주]林: 형제兄弟시신屍身이 포개진 채로 죽어 있었기 때문에 ‘중획어목하重獲於木下’라고 한 것이다.
楚熊負羈囚知罃하니 知莊子以其族反之注+負羈 楚大夫 知罃 知莊子之子 族 家兵 反 還戰 [附注] 林曰 囚 生獲之也하다 廚武子御注+武子 魏錡 하고 下軍之士多從之注+知莊子下軍大夫故하다
나라 웅부기熊負羈나라 지앵知罃을 사로잡자, 지장자知莊子가 그 가병家兵[族]을 거느리고 초군楚軍반격反擊하였는데,注+웅부기熊負羈나라 대부大夫이고, 지앵知罃지장자知莊子의 아들이다. 가병家兵이고, 은 돌아와 전투戰鬪한 것이다. [부주]林: 생포生捕한 것이다. 주무자廚武子가 수레를 몰고注+무자武子위기魏錡이다. 많은 하군下軍이 따랐다.注+지장자知莊子하군대부下軍大夫이기 때문이다.
每射 抽矢하야 納諸廚子之房注+抽 擢也 菆 好箭 房 箭舍 [附注] 林曰 蓋知莊子擇好箭而納諸廚子之箭舍하니 廚子怒曰 非子之求 而蒲之愛注+蒲 楊柳 可以爲箭 [附注] 林曰 本爲求子而來 反愛楊柳之箭何也로다
지장자知莊子가 활을 쏠 때마다 화살을 뽑아 좋은 화살은 주무자廚武子의 화살통[房]에 넣으니,注+는 뽑는 것이고, 는 좋은 화살이고, 은 화살집이다. [부주]林: 지장자知莊子가 좋은 화살을 골라 주자廚子의 화살집에 넣은 것이다. 주무자廚武子하여 말하기를, “아들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 화살[蒲]을 아끼려는 것이군요.注+는 버들로, 화살을 만들 수 있다. [부주]林: 본래 아들을 찾기 위해 온 것인데, 도리어 버들 화살을 아끼는 것은 무엇 때문이냐는 말이다.
董澤之蒲 可勝旣乎注+董澤 澤名 河東聞喜縣東北有董池陂 旣 盡也 知季曰 不以人子 吾子其可得乎注+[附注] 林曰 言不得他人之子 我子其可得乎 言必取他人子以博易之也
동택董澤포류蒲柳를 이루 다 쓸 수 있습니까?”注+동택董澤은 늪 이름이다. 하동河東문희현聞喜縣 동북쪽에 동지피董池陂가 있다. 이다. 라고 하니, 지계知季가 말하기를, “남의 자식을 잡지 않는다면 내 자식을 어찌 찾을 수 있겠는가?注+[부주]林: 타인他人의 자식을 잡지 않는다면 내 자식을 어찌 찾을 수 있겠느냐는 말이니, 반드시 타인他人의 자식을 잡아 내 자식과 서로 바꾸겠다[博易]는 말이다.
吾不可以苟射故也注+[附注] 林曰 言我必擇其人 而以好箭射之 不可苟然而射故也
나는 함부로 활을 쏠 수 없기 때문이다.”注+[부주]林: 나는 반드시 내 자식과 교환交換할 만한 가치價値가 있는 자를 골라 좋은 화살로 쏘고, 아무나 구차히 쏘려 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말이다. 고 하였다.
射連尹襄老獲之하야 遂載其尸하고 射公子穀臣囚之하야 以二者還注+穀臣 楚王子 하다
그리고는 연윤連尹양로襄老를 쏘아 죽여 그 시체屍體를 수레에 싣고, 공자公子곡신穀臣을 쏘아 사로잡아, 이 두 사람을 수레에 싣고 돌아왔다.注+곡신穀臣나라 왕자王子이다.
及昏 楚師軍於邲하니
황혼黃昏에 이르러 초군楚軍주둔駐屯하였다.
晉之餘師不能軍注+不能成營屯 하고 注+言其兵衆 將不能用하다
나라 패잔병敗殘兵[餘師]은 군용軍容을 이루지 못하고,注+진영陣營을 이루지 못한 것이다. 밤에 황하黃河를 건너는데 밤새도록 시끄러운 소리가 났다.注+진군晉軍병졸兵卒이 많으나 장수將帥가 잘 통솔統率하지 못한 것을 말한 것이다.
丙辰 楚重至於邲注+重 輜重也 하니 遂次于衡雍하다
병진일丙辰日초군楚軍치중輜重에 이르니,注+치중輜重(軍需物資를 실은 수레)이다.초군楚軍은 드디어 형옹衡雍주둔駐屯하였다.
潘黨曰
君盍築武軍注+築軍營以章武功 而收晉尸以爲京觀
注+積尸封土其上 謂之京觀이닛고
반당潘黨이 말하기를, “군왕君王께서는 어찌 무군武軍축조築造注+군영軍營축조築造무공武功을 드러내는 것이다. 진군晉軍시체屍體수습收拾하여 경관京觀을 만들지 않으십니까?注+시체屍體를 쌓고 그 위에 흙으로 봉분封墳을 만든 것을 ‘경관京觀’이라 한다.
臣聞克敵이면 必示子孫하야 以無忘武功이라하니이다 楚子曰 非爾所知也
이 듣건대 에게 승전勝戰하면 반드시 자손子孫에게 보여 무공武功을 잊지 않게 한다고 합니다.”고 하니, 초자楚子가 말하기를, “이는 네가 알 수 있는 바가 아니다.
夫文 止戈爲武注+文 字 [附注] 朱曰 合止戈二字 以成武字 蓋取息兵之義也
글자의 구조構造로 말하면 가 합한 것이 ‘’이다.注+은 글자이다. [부주]朱: 두 글자를 합쳐서 무자武字를 만든 것은 병란兵亂종식終息시키는 뜻을 한 것인 듯하다.
武王克商하고 作頌曰 載戢干戈하고 載櫜弓矢注+戢 藏也 櫜 韜也 詩美武王能誅滅暴亂而息兵하며 我求懿德하여 注+肆 遂也 夏 大也 言武王旣息兵 又能求美德 故遂大而信王保天下 라하고
무왕武王나라를 이기고 을 짓기를, ‘간과干戈를 거두어 간직하고 궁시弓矢를 통속에 넣고서,注+은 간직하는 것이고, 은 자루에 넣어 간직하는 것이다. 무왕武王포란暴亂한 나라를 주멸誅滅하고 병란兵亂종식終息한 것을 찬미讚美한 것이다. 내 아름다운 이 있는 사람을 구하여 이 중하中夏인정仁政을 베푸니 진실로 왕업王業을 이루어 천하天下보유保有하였다.’注+(드디어)이고, 이다. 무왕武王병란兵亂종식終息한 뒤에 또 능히 미덕美德을 구하였기 때문에 드디어 커져서 진실로 왕자王者가 되어 천하天下보유保有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라고 하였고,
又作武하니 其卒章曰 耆定爾功注+武 頌篇名 耆 致也 言武王誅紂 致定其功 이라하고
또 〈〉를 지어 그 졸장卒章에 ‘그 을 세우는 데 이르렀다.’注+는 〈주송周頌〉의 편명篇名이다. 이다. 무왕武王주벌誅罰하고서 그 을 세우는 데[定] 이르렀다는 말이다. 고 하였고,
其三曰 鋪時繹思하야 我徂惟求定注+其三 三篇 鋪 布也 繹 陳也 時 是也 思 辭也 頌美武王能布政陳敎 使天下歸往求安定이라하고
그 3에 ‘근로勤勞하신 문왕文王포진布陳(시행해 보임)하고서, 내 가서 정벌征伐하여 백성을 안정安定시켰다.’注+기삼其三은 제 3이다. (펴는 것)이고, (베푸는 것)이고, 이고, 어사語辭이다. 무왕武王인정仁政을 펴고 교화敎化를 베풀어 천하天下귀의歸依안정安定을 찾게 한 것을 찬미讚美한 것이다. 고 하였으며,
其六曰 綏萬邦하니 屢豊年注+其六 六篇 綏 安也 屢 數也 言武王旣安天下 數致豊年 此三六之數 與今詩頌篇次不同 蓋楚樂歌之第 이라하니
그 6에 ‘만방萬邦을 편안하게 하니 풍년豊年이 자주 들었다.’注+기육其六은 제 6이다. 이고, 는 자주이다. 무왕武王이 이미 천하天下안정安定시키니, 자주 풍년豊年이 들었다는 말이다. 여기의 는 지금의 《시경詩經편차篇次와 같지 않다. 고 하였으니,
夫武 禁暴戢兵保大定功安民和衆豊財者也注+此武七德
저 ‘’라는 것은 포악暴惡금지禁止하고, 전쟁戰爭정지停止하고[戢兵], 천하天下보유保有[保大]하고, 을 세우고[定功], 백성을 안정安定시키고, 제후諸侯를 화목하게 하고[和衆], 재물財物풍족豊足하게 하는 것이다.注+이것이 의 일곱 가지 이다.
故使子孫無忘其章注+ 使子孫不忘 이어니와
그러므로 자손子孫으로 하여금 그 빛난 [章]을 잊지 않게 하는 것이다.注+편장篇章에 드러내어 자손子孫으로 하여금 잊지 않게 한 것이다.
今我使二國暴骨하니 暴矣 觀兵以威諸侯하니 兵不戢矣
그런데 지금 나는 두 나라 병사兵士들의 해골骸骨산야山野에 나뒹굴게 하였으니, 이는 포악暴惡이고, 무력武力과시誇示[觀兵]하여 제후諸侯위협威脅하였으니, 이는 전쟁戰爭정지停止하지 않은 것이다.
暴而不戢하니 安能保大 猶有晉在하니 焉得定功이며 所違民欲猶多하니 民何安焉注+[附注] 朱曰 用兵而民失業 則違其欲者多矣이며 無德而强爭諸侯하니 何以和衆이며 利人之幾注+幾 危也하고 而安人之亂하야 하니 何以豊財注+兵動則年荒리오
포악暴惡을 범하고 전쟁戰爭정지停止하지 않았으니 어찌 천하天下보유保有할 수 있으며, 나라가 여전히 남아 있으니 어찌 을 세울 수 있으며, 백성의 바람을 어긴 것이 많으니 백성이 어찌 안정安定할 수 있으며,注+[부주]朱: 전쟁戰爭을 하여 백성의 생업生業을 잃게 하였으니, 백성의 바람을 어긴 것이 많다는 말이다. 도 없으면서 억지로 제후諸侯들과 패자霸者가 되기를 다투었으니 어찌 제후諸侯들과 화목和睦할 수 있으며, 남의 위기危機를 나의 이익으로 여기고,注+는 위태로움이다. 남의 우란憂亂을 나의 안정安定으로 여기고, 이를 나의 영예榮譽로 삼았으니 어찌 재물財物풍족豊足하게 할 수 있겠는가?注+군대가 출동出動하면 농사農事흉년凶年이 든다는 말이다.
武有七德이어늘 我無하니 何以示子孫이리오
에는 일곱 가지 이 있는데, 나에게는 그 중 한 가지도 없으니, 무엇을 자손에게 보여주겠는가?
其爲先君宮하야 告成事而已注+祀先君 告戰勝 [附注] 林曰 其築楚先君之宮於邲 告服鄭勝晉之成事於先君而已 蓋古者出軍 必載遷廟之主以行 今作先君宮告成事 謂祭告所載主於宮中而已 非吾功也
선군先君사당祠堂을 세워 승전勝戰할 뿐이고,注+선군先君제사祭祀하여 승전勝戰한다는 말이다. [부주]林: 나라 선군先君(祠堂)을 세우고서 나라를 복속服屬시키고 나라를 이긴 일을 선군先君할 뿐이라는 말이다. 대개 옛날에는 출병出兵할 때 반드시 천묘遷廟신주神主를 싣고 간 듯하다. 지금 선군先君사당祠堂을 세우고서 성사成事한다는 것은 싣고 간 신주神主사당祠堂에 모셔 놓고 하는 제사祭祀를 올릴 뿐이라는 말이다. 이번의 승리勝利[武]는 나의 무공武功이 아니다.
古者明王 伐不敬하야 取其鯨鯢而封之하야 以爲大戮하니
옛날의 명왕明王불경不敬한 나라를 정벌征伐해 그 수괴首魁[鯨鯢]를 죽여 무덤을 높이 쌓아 대중大衆에게 보여 큰 치욕恥辱[大戮]을 받게 하였다.
於是乎有京觀하야 以懲淫慝注+鯨鯢 大魚名 以喩不義之人 呑食小國이라
그러므로 경관京觀을 만들어 음특淫慝한 자를 징계懲戒한 것이다.注+경예鯨鯢대어大魚의 이름인데, 소국小國을 집어삼키는 불의不義한 사람을 비유한 말이다.
今罪無所注+晉罪無所犯也하고 而民皆盡忠以死君命하니 又可以爲京乎 祀于河하고 作先君宮하야 告成事而還注+傳言楚莊有禮 所以遂興 하다
그러나 지금 나라는 한 것이 없고,注+나라는 한 것이 없다는 말이다. 백성들은 모두 충성忠誠을 다해 군명君命에 죽었으니, 또 무엇 때문에 경관京觀을 만들겠는가?”라고 하고는 황하黃河에게 제사祭祀를 지내고, 선군先君사당祠堂을 세워 승전勝戰하고 돌아갔다.注+전문傳文초장왕楚莊王가 있었기 때문에 마침내 흥성興盛하였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是役也 鄭石制實入楚師하야 將以分鄭而立公子魚臣注+[附注] 林曰 石制 鄭大夫이라
이번 전쟁戰爭은 실로 나라 석제石制초군楚軍을 끌어들여 나라를 분할分割해 반은 나라에 주고, 나머지 반에 공자公子어신魚臣를 임금으로 세우고자 한 데서 발생發生한 것이다.注+[부주]林: 석제石制나라 대부大夫이다.
辛未 鄭殺僕叔及子服注+僕叔 魚臣也 子服 石制也하다
그러므로 신미일辛未日나라가 복숙僕叔자복子服을 죽인 것이다.注+복숙僕叔어신魚臣이고, 자복子服석제石制이다.
君子曰
군자君子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논평論評하였다.
史佚所謂毋怙亂者 謂是類也注+言恃人之亂以要利
사일史佚이 이른바 ‘남의 화란禍亂을 나의 이익利益으로 믿지 말라.’는 말이 바로 이런 를 이른 것이다.注+남의 환란患亂호기好機로 믿고서 나의 이익利益을 구하는 것을 말한다.
詩曰 注+詩小雅 離 憂也 瘼 病也 爰 於也 言禍亂憂病 於何所歸乎 歎之 라하니 歸於怙亂者也夫注+恃亂則禍歸之ᄂ저
시경詩經》에 ‘난리亂離로 백성이 고통을 당하니 그 가 누구에게 돌아갈고.’注+는 《시경詩經》 〈소아小雅사월편四月篇〉이다. 이고, 이고, 이다. ‘화란禍亂으로 근심되고 고통苦痛되니 어디로 돌아갈고’ 라는 말이니, 탄식歎息한 것이다. 라고 하였으니, 이는 남의 화란禍亂을 나의 이익으로 믿고 전쟁戰爭을 일으킨 자에게 가 돌아간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注+남의 화란禍亂을 나의 이익으로 믿으면 가 돌아온다는 말이다.
[傳]鄭伯許男如楚注+爲十四年晉伐鄭傳 하다
정백鄭伯허남許男나라에 갔다.注+선공宣公 14년에 나라가 나라를 친 배경背景이다.
[傳]秋 晉師歸하야 桓子請死어늘 晉侯欲許之한대
가을에 진군晉軍환국還國하여 환자桓子가 죽기를 하니, 진후晉侯허락許諾하려 하였다.
士貞子諫曰 不可注+貞子 士渥濁하니이다
그러자 사정자士貞子하기를, “안 됩니다.注+정자貞子사악탁士渥濁이다.
城濮之役 晉師三日穀注+在僖二十八年 [附注] 朱曰 晉兵三日食楚人之穀이로되 文公猶有憂色이어늘 左右曰 有喜而憂하니 如有憂而喜乎注+言憂喜失時잇가 公曰 得臣猶在하니 憂未歇也注+歇 盡也
성복城濮전쟁戰爭진군晉軍승전勝戰하고서 3일 동안 초군楚軍군량軍糧을 먹었는데도注+희공僖公 28년에 있었다. [부주]朱: 진군晉軍이 3일 동안 초인楚人양곡糧穀을 먹은 것이다.문공文公께서는 오히려 근심하는 기색이 있자 좌우左右가 ‘기쁜 일이 있는데 근심하시니 만약 근심할 일이 있으면 기뻐하시겠습니까?’注+근심하고 기뻐하는 것이 때를 잃었다는 말이다. 라고 하니, 문공文公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라에 득신得臣이 아직 살아 있으니 근심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注+은 끝나는 것이다.
困獸猶鬪 況國相乎
짐승도 궁지窮地에 몰리면 덤비는데, 하물며 일국一國재상宰相이겠는가?’라고 하셨습니다.
及楚殺子玉注+子玉 得臣하야 公喜而後可知也注+喜見於顔色 曰莫余毒也已라하니 注+[附注] 朱曰 言城濮之戰 晉已勝楚 而子玉之死 是晉又勝楚也니이다
나라가 자옥子玉(得臣)을 죽임에 미쳐注+자옥子玉득신得臣이다. 문공文公께서 기뻐하는 빛을 얼굴에 드러내시며 ‘이제는 다시 나를 칠 자가 없다.’注+기쁨이 안색顔色에 드러난 것이다. 고 하셨으니, 이는 우리 나라가 두 번 승리勝利하고 나라가 두 번 패배敗北한 것입니다.注+[부주]朱: 성복城濮전쟁戰爭나라가 이미 나라에 승리勝利하였는데, 또 자옥子玉이 죽었으니, 이는 나라가 또 나라에 승리勝利한 것이라는 말이다.
楚是以再世不競注+成王至穆王하니이다
나라는 이로 인해 두 동안 국세國勢강성强盛하지 못하였습니다.注+나라 성왕成王 때부터 목왕穆王 때까지이다.
今天或者大警晉也注+警 戒也어늘 而又殺林父以重楚勝이면 其無乃久不競乎잇가
지금 하늘이 우리 나라를 크게 경계警戒하는 것 같은데,注+경계警戒이다. 순임보荀林父를 죽이시어 나라에게 거듭 승리勝利하게 한다면 우리 나라가 어찌 오랫동안 강성强盛하지 못하게 되지 않겠습니까?
林父之事君也 進思盡忠하고 退思補過하니 社稷之衛也어늘 若之何殺之릿가
순임보荀林父가 임금을 섬김에 있어 나아가서는 충성忠誠을 다하기를 생각하고, 물러나서는 자신의 허물을 보완補完하기를 생각하였으니, 이는 사직社稷보위保衛할 신하인데 어찌 죽여서야 되겠습니까?
夫其敗也 이릿가하니 晉侯使復其位注+言晉景所以不失霸하다
그의 패전敗戰일식日食, 월식月食과 같으니 어찌 일월日月본연本然광명光明손상損傷이 되겠습니까?”라고 하니, 진후晉侯는 그를 원래의 직위職位회복恢復시켰다.注+진경공晉景公패업霸業상실喪失하지 않은 원인原因을 말한 것이다.
[傳]冬 楚子伐蕭하니 宋華椒以蔡人救蕭하다
겨울에 초자楚子소국蕭國토벌討伐하니, 나라 화초華椒채인蔡人을 거느리고 와서 소국蕭國구원救援하였다.
蕭人囚熊相宜僚及公子丙하니 王曰 勿殺하라
소인蕭人나라 웅상의熊相宜공자公子을 사로잡으니, 초왕楚王소인蕭人에게 “그들을 죽이지 말라.
吾退하리라 蕭人殺之한대
내가 물러가겠다.”고 하였으나, 소인蕭人은 그들을 죽였다.
王怒하야 遂圍蕭하니 蕭潰하다
그러자 초왕楚王하여 드디어 소국蕭國포위包圍하니 소군蕭軍이 무너졌다.
申公巫臣曰 師人多寒이라하니 王巡三軍하야 拊而勉之注+拊撫慰勉之 하니 三軍之士 皆如挾纊注+纊 綿也 言說以忘寒하다
나라 신공申公무신巫臣이 말하기를, “군대 중에 추위에 떠는 자가 많습니다.”고 하니, 초왕楚王삼군三軍순시巡視하며 군대를 위무慰撫하고 권면勸勉하니注+어루만지고 위로慰勞권면勸勉한 것이다. 삼군三軍의 군사들은 모두 솜옷을 입은 것처럼 따뜻해 하였다.注+은 솜이다. 군사들이 기뻐하여 추위를 잊었다는 말이다.
遂傅於蕭하다
드디어 소국蕭國도성都城으로 육박肉薄하였다.
還無社與司馬卯言하야 號申叔展注+還無社 蕭大夫 司馬卯申叔展 皆楚大夫也 無社素識叔展 故因卯呼之하니 叔展曰 有麥麴乎 曰 無
소국蕭國환무사還無社나라 사마司馬에게 말하여 신숙전申叔展을 고함쳐 부르게 하니,注+환무사還無社소국蕭國대부大夫이고, 사마司馬신숙전申叔展은 모두 나라 대부大夫이다. 환무사還無社는 평소 신숙전申叔展과 알고 지내는 사이였기 때문에 사마司馬해 그를 부른 것이다. 신숙전申叔展이 “맥국麥麴이 있는가?”라고 묻자, 환무사還無社가 “없다.”注+맥국麥麴국궁鞠窮습기濕氣를 막는 약재藥材이다. 신숙전申叔展환무사還無社를 흙탕물 속으로 도망시키려고 이런 말을 하였으나, 환무사還無社는 그 말뜻을 이해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없다’고 한 것이다. 군중軍中에서는 감히 정직正直하게 말할 수 없기 때문에 은어隱語[謬語]를 사용使用한 것이다. 고 하였다.
注+麥麴鞠窮 所以禦濕 欲使無社逃泥水中 無社不解 故曰無 軍中不敢正言 故謬語
신숙전申叔展이 다시 “산국궁山鞠窮이 있는가.”라고 묻자, 환무사還無社가 “없다.”고 하였다.
奈何注+叔展言無禦濕藥 將病 曰 目於眢井而拯之注+無社意解 欲入井 故使叔展視虛廢井而求拯己 出溺爲拯 하라
신숙전申叔展이 다시 “하어복질河魚腹疾을 어찌할 생각인가?”注+신숙전申叔展환무사還無社에게 습기濕氣를 막는 약재藥材가 없으면 장차 이 날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라고 하니, 환무사還無社가 “폐정廢井을 보거든 나를 구출救出하라.”注+환무사還無社가 그 뜻을 깨닫고 우물 속으로 들어가려 하였기 때문에 신숙전申叔展에게 폐정廢井을 보거든 나를 건져 달라고 요구要求한 것이다. 물에 빠진 사람을 건져 내는 것을 ‘’이라 한다. 고 하였다.
若爲茅絰하라
그러자 신숙전申叔展이 “그대가 들어 있는 폐정廢井 위에 띠로 을 만들어 걸어 두어라.
哭井則己注+叔展又敎結茅以表井 須哭乃應以爲信리라
폐정廢井 위에서 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것이 바로 나일 것이다.”注+신숙전申叔展이 또 환무사還無社에게 띠를 꼬아 폐정廢井표시表示를 해 두라고 가르치고서, 우물 위에서 을 하면 우물 안에서 응답應答하기로 약속한 것이다. 고 하였다.
明日蕭潰하다
다음날 소군蕭軍붕궤崩潰되었다.
申叔視其井하니 則茅絰存焉이어늘 號而出之注+號 哭也 傳言蕭人無守心하다
신숙전申叔展이 그 폐정廢井을 보니 띠로 만든 이 있으므로 호곡號哭하면서 환무사還無社구출救出하였다.注+하는 것이다. 전문傳文소인蕭人이 나라를 지킬 마음이 없었던 것을 말한 것이다.
[傳]晉原縠宋華椒衛孔達曹人同盟于淸丘注+原縠 先縠曰 恤病討貳라하다
나라 원곡原縠나라 화초華椒, 나라 공달孔達조인曹人청구淸丘에서 동맹同盟하며注+원곡原縠선곡先縠이다. 말하기를, “화난禍難이 있는 나라를 구원救援하고 두 마음 품은 나라를 토벌討伐한다.”고 하였다.
於是卿不書 不實其言也注+宋伐陳 衛救之 不討貳也 楚伐宋 晉不救 不恤病也
기록記錄하지 않은 것은 그 말을 실천實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注+송인宋人나라를 토벌討伐하자 나라가 나라를 구원救援하였으니, 두 마음 품은 나라를 토벌討伐하지 않은 것이고, 나라가 나라를 치는데도 나라가 구원救援하지 않았으니, 화난禍難이 있는 나라를 구원救援하지 않은 것이다.
宋爲盟故 伐陳注+陳貳於楚故하니 衛人救之하다
나라가 동맹同盟실천實踐하기 위해 나라를 토벌討伐하니,注+나라가 나라에 두 마음을 품었기 때문에 송인宋人나라를 친 것이다.위인衛人동맹同盟을 어기고서 나라를 구원救援하였다.
孔達曰 先君有約言焉하니
공달孔達이 말하기를, “우리 선군先君께서 나라와 약정約定한 말이 있었으니 나라를 구원救援할 것이다.
若大國討 我則死之注+衛成公與陳共公有舊好 故孔達欲背盟救陳而以死謝晉 爲十四年衛殺孔達傳하리라
만약 이로 인해 대국大國(晉)이 와서 토벌討伐한다면 나는 이를 위해 죽을 것이다.”注+위성공衛成公진공공陳共公과 오랜 우호友好가 있었기 때문에 공달孔達청구淸丘결맹結盟을 저버리고 나라를 구원救援하고서 죽음으로써 나라에 사죄謝罪하고자 한 것이다. 선공宣公 14년에 나라가 공달孔達을 죽인 배경背景이다. 고 하였다.
역주
역주1 楚子圍鄭 : 楚子가 鄭나라를 包圍한 지 17일 만에 鄭城으로 侵入하였다가 이내 군대를 물렸기 때문에 ‘入’이라 기록하지 않고 ‘圍’라고 直書하여 楚子를 罪責한 것이고, 楚子가 夏徵舒를 討殺했기 때문에 그 罪를 輕減하여 ‘圍’로 기록한 것이 아니다. 朴致遠 《雪溪隨錄》
역주2 楚子戰于邲 : 兩軍이 모두 陣勢를 갖춘 뒤에 交戰하는 것을 ‘戰’으로 기록하고, 陣勢를 갖추기 전에 攻擊해 勝利하는 것을 ‘敗某師’로 기록하는 것이 《春秋》의 書法이다. 〈莊公 11년 傳〉
역주3 群僞之言 : 淸丘의 盟約에서 晉나라와 衛나라 등이 實踐할 意志도 없으면서 ‘恤病討貳’하자는 거짓말로 宋나라를 誘惑한 것을 이른다.
역주4 且巷出車 : 거리에 陣을 치고서 아무리 困難하여도 降服하지 않고 반드시 戰爭하고자 하는 뜻을 보이기 위함이다. 〈楊注〉 이 說을 取해 飜譯하였다.
역주5 守陴者皆哭 : 죽음으로 抗戰하겠다는 것을 보이기 위함이고, 楚軍에게 困窮함을 알리기 위함이 아니다. 《左氏會箋》
역주6 牽羊 : 羊을 끌고 간 것은 楚王을 위해 이 羊을 잡아 料理해 바치겠다는 뜻을 보인 것이다.
역주7 孤不天 : 杜注를 取하지 않고 楊注를 취해 飜譯하였다. 〈楊注〉에 “不天을 하늘의 도움을 받지 못한 것으로 해석하면 下句의 ‘不能事君’과 連接이 되지 않는다. ‘不天’은 하늘을 받들어 따르지 않는다는 뜻이다. 杜注는 明確하지 않다.”고 하였다. 孤는 諸侯의 自稱이다. 列國에 凶事가 있으면 그 임금이 ‘孤’라고 稱하는 것이 禮이다. 〈莊公 11년 傳〉
역주8 夷於九縣 : 《左氏會箋》의 說을 取해 飜譯하였다. 《左氏會箋》에 “夷는 等(같음)이니, 夷於九縣은 楚나라의 縣邑들처럼 恭順히 服從해 섬긴다는 말이다.”고 하였다.
역주9 代[伐] : 저본에는 ‘代’로 되어 있으나 《十三經注疏》本에 의거하여 ‘伐’로 바로잡았다.
역주10 觀釁而動 : 杜注를 따르지 않고, 楊氏의 說을 取해 ‘틈’으로 飜譯하였다. 〈楊注〉에 “釁은 바로 桓公 8년의 ‘讐有釁不可失’의 釁이다. 杜氏가 그곳 注에 ‘釁은 瑕隙(틈)이다.’고 한 것이 옳은데, 이곳 注에 ‘釁은 罪이다.’고 하여, 두 가지 뜻으로 분리한 것은 옳지 않다.”고 하였다.
역주11 尸 楚陳名也 : 莊公四年傳注를 參考할 것.
역주12 前茅慮無 : 杜氏는 앞에 가는 斥候가 現在는 없으나[無] 갑자기 發生할 事態를 밝게[茅] 생각[慮]하여, 비상사태가 발생하면 後軍에 알려 對備하게 한다는 뜻으로 해석하였으나, 이 설을 따르지 않고, 〈楊注〉와 《左氏會箋》의 說을 參考해 飜譯하였다. 前茅는 斥候兵이 소꼬리 대신 띠로 장식한 旗를 들고 간다는 말이다.
역주13 物 猶類也 : 〈疏〉에 “類는 旌旗에 物類를 그린 것이다. 百官은 尊卑가 같지 않기 때문에 세우는 旗物이 각각 따로 있으니, 그 세운 기물을 象徵해 行動하는 것이다.”고 하였다.
역주14 君子小人 物有服章 : 君子와 小人은 身分의 尊卑로 말한 것이니, 身分에 따라 각각 一定한 衣服의 色彩가 있는 것이다. 〈楊注〉
역주15 於鑠王師 遵養時晦 : 杜注를 따르지 않고 毛氏의 說을 取해 飜譯하였다. 《毛詩正義》에 “鑠은 美이고 遵은 率이고, 養은 取이고 晦는 昧이니, 아, 아름답다 武王이 군대를 쓰신 것이여, 殷을 背叛한 나라들을 거느리고[遵] 이 暗昧한 임금(殷紂)을 취[養]한 것을 讚美한 것이다.”고 하였다.
역주16 事[師] : 저본에는 ‘事’로 되어 있으나 《十三經注疏》本에 의거하여 ‘師’로 바로잡았다.
역주17 執事順成爲臧 逆爲否 : 모든 行事에 道理를 따라 行하여 成功하면 善[臧]이 되고, 그 道理를 거슬러 失敗하면 否가 된다는 말이다. 〈楊注〉
역주18 衆散爲弱 : 이것은 卦象을 풀이한 말이다. 師卦가 변하여 臨卦가 된 것은 坎이 변하여 兌가 되었기 때문이다. 坎에는 大衆의 象이 있는데, 坎卦가 變하였으니 大衆이 흩어지는 象이 있고, 兌는 少女이기 때문에 柔弱하다. 坎이 變하여 兌가 되었으니 大衆이 흩어져 弱해지는 象이다. 〈楊注〉
역주19 川壅爲澤 : 命令이 流通하지 않는 것을 譬喩한 것이다. 《左氏會箋》
역주20 有律以如己 : 杜注에는 法이 사람을 따르는 것으로 解釋하였고, 楊注에는 法制號令이 있는 것은 三軍을 한 사람처럼 指揮하는 것이니, 자기가 자기를 指揮하듯이 하는 것으로 解釋하였으며, 《左氏會箋》에는 律(統制權)은 元帥가 쥐고서 部下를 號令하는 것인데, 지금 비록 律이 있다고는 하나, 諸將이 元帥의 명령을 拒逆하고 각각 자기 뜻대로 하는 것이다. 大衆이 흩어져 弱해졌다는 것은 元帥가 弱해진 것이고, 내가 막혀 못이 되었다는 것은 命令이 行해지지 않는 것이라고 하였다. 譯者는 〈楊注〉를 取해 飜譯하였다.
역주21 林曰……則非臧善 : 이 林注는 《四庫全書左傳杜林合注》本에 보이지 않는다.
역주22 彘子尸之 : 之는 위의 敗字를 指示한 것이니, 敗戰을 책임져야 한다는 말이다. 《左氏會箋》
역주23 偏師 : 彘子가 겨우 中軍佐에 屬한 군대만을 거느리고 黃河를 건너갔기 때문에 ‘偏師’라고 한 것이다. 〈楊注〉
역주24 將飮馬於河而歸 : 楚나라는 이미 鄭나라를 服屬시켰기 때문에 黃河로 가서 말에 물을 먹인다는 핑계로 還軍하려 한 것이다. 〈楊注〉
역주25 參之肉其足食乎 : 만약 敗戰할 경우, 伍參의 고기를 씹어 먹어도 시원찮다는 말이다.
역주26 恨[很] : 저본에는 ‘恨’으로 되어 있으나 《十三經注疏》本에 의거하여 ‘很’으로 바로잡았다.
역주27 聽而無上 衆誰適從 : 杜氏는 ‘聽’을 彘子 등 세 사람의 말을 듣는다는 뜻으로 풀었으나, 이를 따르지 않고 《左氏會箋》의 說을 取해 飜譯하였다. 《左氏會箋》에 “軍衆이 命令을 따르려 해도 元帥는 이미 命令을 내리지 못하고, 上, 中, 下軍의 세 장수는 專權을 가지고 行事하지 못하고, 彘子가 멋대로 命令을 내릴 뿐 위에서 一定한 命令을 내리는 上將이 없기 때문에 軍衆이 누구의 命令를 믿고 따라야 할지 모른다는 말이다.”고 하였다.
역주28 楚[君] : 저본에는 ‘楚’로 되어 있으나 《十三經注疏》本에 의거하여 ‘君’으로 바로잡았다.
역주29 承副 : 承副는 前軍의 뒤를 받치는 豫備部隊인 듯하다.
역주30 咎之徒 : 知莊子가 彘子에 대해 論하기를, ‘비록 죽음을 면하고 돌아오더라도 반드시 大咎가 있을 것이다.’고 하였기 때문에 ‘咎之徒’라고 한 것이다. 《左氏會箋》
역주31 實其言 必長晉國 : 杜注를 따르지 않고 〈楊注〉의 說을 취해 飜譯하였다. 〈楊注〉에 “欒書의 말대로 實行한다면 晉나라를 長久하게 할 수 있다는 말이다.”고 하였다.
역주32 聞二先君之出入此行也……豈敢求罪于晉 : 楚나라 先君이 이곳에 왔던 것은 鄭나라를 安定시키기 위함이고 晉나라와 戰爭하기 위함이 아니었으니, 지금 내가 온 것도 역시 그런 뜻이라는 말이다. 〈楊注〉
역주33 候人 : 候人은 斥候인데, 여기서는 少宰를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
역주34 寡君使群臣遷大國之迹於鄭曰 無辟敵 : 楚軍을 鄭나라에서 몰아내라고 命하였다는 말을 婉曲하게 表現한 말이다.
역주35 兩馬掉鞅而還 : 兩을 杜氏는 飾으로 풀었으나, 이를 따르지 않고 楊氏의 說을 取해 飜譯하였다. 〈楊注〉에 “兩은 나란히 排列하는 것이다. 한 채의 수레를 네 匹의 말이 끄는데, 가운데 있는 두 匹의 말을 服馬라 하고, 양쪽 가에 있는 두 匹의 말을 驂馬라 한다. 《詩經》에 ‘두 匹의 服馬는 머리가 가지런하고 두 필의 驂馬는 左右의 손처럼 가지런하다.’고 하였으니, 이는 모두 말이 整齊된 것을 말한 것이다. 이때 車右는 敵陣으로 들어가고 수레는 敵陣 밖에서 기다리기 때문에 御者가 수레에서 내려 그 말들을 나란히 排列하여 두 驂馬와 두 服馬가 整齊되지 않음이 없게 한 것이니, 이 또한 여유를 보이기 위한 뜻이다.”고 하였다.
역주36 旣免 : 旣는 皆이니, 세 사람 모두 捕虜가 되는 것을 免하였다는 말이다.
역주37 見六得一 言其不如楚 : 한 마리만을 잡았다고 기록한 것은 사실을 기록한 것이고, 貶下한 뜻을 담은 것이 아니다. 《左氏會箋》
역주38 楚人乘我 : 乘을 杜氏는 登으로 解釋하였으나, 이를 따르지 않고 乘隙(틈을 타다)의 뜻으로 飜譯하였다.
역주39 林曰……於敖山之前 : 이 林注는 《四庫全書左傳杜林合注》本에 보이지 않는다.
역주40 爲[季] : 저본에는 ‘爲’로 되어 있으나 傳文에 의거하여 ‘季’로 바로잡았다.
역주41 使其徒黨入楚軍門 : 魏錡가 낮에 가서 挑戰하였기 때문에 趙旃은 밤을 이용해 가서 楚軍의 화를 돋운 것이다. 부하들은 楚軍의 軍門으로 쳐들어가게 하고, 자신은 軍門 밖에 자리를 펴고 편안히 앉은 것은 숲속으로 달아난 것과 동일한 醜態이다. 杜注에 ‘두려워하지 않음을 보인 것이다.’라고 한 것은 옳지 않다. 이미 이것이 夜戰이었으니, 비록 보이고자 하나 보일 수 있겠는가? 《左氏會箋》
역주42 經所以書戰 : 戰爭에 兩軍이 모두 陣을 쳤을 경우에만 ‘戰’으로 記錄한다. 〈莊公 11년 傳〉
역주43 黨[唐] : 저본에는 ‘黨’으로 되어 있으나 《十三經注疏》本에 의거하여 ‘唐’으로 바로잡았다.
역주44 游車補闕者 : 游는 巡行의 뜻이니, 游車는 戰場을 巡行하며 兵車가 不足한 곳을 살펴, 不足한 곳이 있으면 즉시 投入해 補充하는 兵車이다.
역주45 晉人或以廣隊不能進 : 《左氏會箋》과 〈楊注〉를 參考해 飜譯하였다. 隊는 墜이니 旆를 세우고 가던 晉나라 前軍의 兵車가 웅덩이에 빠진[墜] 것이다. 《左氏會箋》
역주46 焉[馬] : 저본에는 ‘焉’으로 되어 있으나 《十三經注疏》本에 의거하여 ‘馬’로 바로잡았다.
역주47 又惎之拔旆投衡 : 杜氏와 林氏는 旆를 뽑아 衡 위로 던지는 것으로 해석하였으나, 譯者는 이 說을 따르지 않고, 〈楊注〉를 參考하여 旆를 뽑아 버리고 衡도 뽑아 던진 것으로 飜譯하였다.
역주48 顧曰 吾不如大國之數奔也 : 晉人이 웅덩이에서 빠져나온 뒤에 도리어 楚人을 嘲弄하며, ‘우리가 웅덩이에서 빠져나오는 지혜가 楚人만 못한 것은 楚人처럼 자주 敗走한 經驗이 없기 때문이다.’고 한 것이다.
역주49 本[木] : 저본에는 ‘本’으로 되어 있으나 《十三經注疏》本에 의거하여 ‘木’으로 바로잡았다.
역주50 宵濟 亦終夜有聲 : 晉軍의 秩序가 무너져 混亂한 것을 描寫한 말이다.
역주51 君盍築武軍 而收晉尸以爲京觀 : 勝戰者가 武功을 誇示하기 위해 敵의 屍體를 한 곳에 모아 4방 6尺, 높이 6尺의 封墳을 만들고서 그 위에 높이 6尺의 表木을 세우는 것을 武軍封이라 한다. 武軍과 京觀은 한 가지 일로, 晉軍의 屍體를 모아 封墳을 만드는 것을 ‘武軍’이라 하고, 表木을 세우는 것을 ‘京觀’이라고 한 듯하다. 〈楊注〉
역주52 肆于時夏 允王保之 : 杜注를 따르지 않고, 朱子의 說을 取해 飜譯하였다. 《詩傳集註》에 의하면 肆는 陳(베풂)이고, 夏는 中國이니, 干戈와 弓矢를 收藏한 뒤에 더욱 아름다운 德이 있는 사람을 구하여 中國에 仁政을 베푸니, 진실로 王者가 되어 天下를 保有하였다는 뜻이다.
역주53 著之篇章 : ‘章’을 篇章의 뜻으로 해석한 것은 옳지 않다. 功績이 드러난 것을 ‘章’이라 하니 章은 드러난 功績을 말한 것이고, 篇章을 말한 것이 아니다. 〈楊注〉‧《左氏會箋》
역주54 以爲己榮 : 以는 防備가 없는 틈을 타 晉軍을 攻擊해 勝利한 것을 指示한 代名詞이다.
역주55 二[一] : 저본에는 ‘二’로 되어 있으나 《十三經注疏》本에 의거하여 ‘一’로 바로잡았다.
역주56 亂離瘼矣 爰其適歸 : 亂離는 二字成語이다. ‘天下에 亂離가 나서 백성들이 모두 苦痛스러워 하고 있으니, 그 禍가 누구에게로 돌아갈 것인가?’ 라고 말하여, 반드시 남의 禍亂을 나의 利益으로 믿은 자에게 禍가 돌아간다는 것을 드러낸 것이다. 《左氏會箋》 譯者는 杜注를 따르지 않고 《左氏會箋》의 說을 取해 飜譯하였다.
역주57 是晉再克而楚再敗也 : 城濮의 戰爭에 晉나라가 一次勝利하고 楚나라가 一次敗戰하였는데, 楚나라가 敗戰의 責任을 물어 子玉을 죽였으니, 이는 晉나라가 再次勝利하고 楚나라가 再次敗北한 것과 같다는 말이다.
역주58 如日月之食焉 何損於明 : 해와 달이 비록 잠시 동안 먹힘(蝕)이 있어도 本然의 光明에 損傷이 없듯이 荀林父가 비록 敗戰하였으나 그의 本然의 善에는 損傷이 없다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左傳句解》
역주59 叔展曰……有山鞠窮乎 曰無 : 麥麴은 엿기름이고, 鞠窮은 川芎이다. 兩軍이 對敵하고 있는 때였으므로 정직하게 말할 수가 없어 隱語를 사용한 것이다.
역주60 河魚腹疾 : 濕氣로 인해 病을 얻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춘추좌씨전(3) 책은 2019.05.2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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