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春秋左氏傳(2)

춘추좌씨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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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經]三十有二年春王正月이라
[經]夏四月己丑 鄭伯捷卒하다注+無傳 文公也 三同盟
[經]衛人侵狄하다注+報前年狄圍衛
[經]秋 衛人及狄盟하다注+不地者
[經]冬十有二月己卯 晉侯重耳卒注+同盟踐土[附注] 林曰 晉襄公繼伯하다
[傳]三十二年春 楚鬪章請平于晉하고 晉陽處父報之하니 晉楚始通이라注+陽處父 晉大夫 晉楚自春秋以來 始交使命爲和同
[傳]夏 狄有亂이어늘 衛人侵狄하니 狄請平焉하다
[傳]秋 衛人及狄盟하다
[傳]冬 晉文公卒하다
庚辰 將殯于曲沃注+殯 窆棺也 曲沃有舊宮焉하야 出絳注+[附注] 林曰 絳 晉都 柩方出晉都 柩有聲如牛하다注+如牛呴聲 [附注] 林曰 禮云 在狀曰尸 在棺曰柩
卜偃使大夫拜曰 君命大事하라
將有西師過軼我하리니 擊之 必大捷焉하리라注+聲自柩出 故曰君命 大事 戎事也 卜偃聞秦密謀 故因柩聲以[附注] 朱曰 西 謂秦也 過軼我 謂越晉而伐鄭也
杞子自鄭使告于秦注+三十年 秦使大夫杞子曰 鄭人使我掌其北門之管注+管 籥也하니 若潛師以來 國可得也리이다
穆公訪諸蹇叔한대 蹇叔曰
勞師以襲遠 非所聞也니이다注+蹇叔 秦大夫
師勞力竭하고 遠主備之리니 無乃不可乎注+[附注] 林曰 遠方之主 必知而爲之備 言不可以得鄭也
所爲 鄭必知之注+[附注] 林曰 秦 鄭國必得而知之리니 勤而無所 必有悖心이리이다注+將害良善 [附注] 林曰 秦兵勤勞而無所得 必生悖戾之心 害及良善
且行千里어늘 其誰不知리잇가
公辭焉注+辭 不受其言하고 召孟明西乞白乙하야 使出師於東門之外하다注+孟明 百里孟明視 西乞 西乞術 白乙 白乙丙
蹇叔哭之曰 孟子 吾見師之出이오 而不見其入也리라注+[附注] 林曰 呼孟明而告之 言我但見子之出兵 而不見子之振旅而入也注+[附注] 林曰 穆公怒其哭師 乃使人責之曰 爾何知
리라注+合手曰拱 言其過老悖 不可用 [附注] 林曰 人生上壽百二十年 中壽百年 下壽八十年 毁之以爲汝但中壽 汝墓之木已拱 死將至矣
蹇叔之子與師러니
哭而送之曰
晉人禦師必於殽리라注+殽在弘農澠池縣西 [附注] 林曰 殽 卽今之函谷關
殽有二陵焉注+大阜曰陵하니 其南陵 夏后臯之墓也注+臯 夏桀之祖父 其北陵 文王之所辟風雨也注+此道在二殽之間南谷中 谷深委曲 兩山相嶔 故可以辟風雨 古道由此 魏武帝西討巴漢 惡其險 而更開北山高道
必死是間注+以其深險故이리니 余收爾骨焉하리라
秦師遂東하다注+爲明年晉敗秦于殽傳


32년 봄 주왕周王정월正月이다.
여름 4월 기축일己丑日정백鄭伯하였다.注+전년前年적인狄人나라를 포위包圍했던 것을 보복報復한 것이다.
위인衛人침공侵攻하였다.注+회맹會盟지명地名을 기록하지 않은 것은 위인衛人적인狄人여장廬帳으로 가서 결맹結盟하였기 때문이다.
가을에 위인衛人적인狄人결맹結盟하였다.注+천토踐土적천翟泉에서 동맹同盟하였다. [부주]林: 진양공晉襄公문공文公의 뒤를 이어 후백侯伯(霸主)이 되었다.
겨울 12월 기묘일己卯日진후晉侯중이重耳하였다.注+양처보陽處父나라 대부大夫이다. 춘추시대春秋時代로 접어 든 뒤로 나라와 나라가 비로소 사신使臣교환交換하며 화합和合한 것이다.
32년 봄에 나라의 투장鬪章나라에 와서 화평和平을 청하였고, 나라의 양처보陽處父답방答訪하였으니, 나라와 나라가 비로소 통호通好한 것이다.注+양처보陽處父나라 대부大夫이다. 춘추시대春秋時代로 접어 든 뒤로 나라와 나라가 비로소 사신使臣교환交換하며 화합和合한 것이다.
여름에 에 난리가 나자 이 기회를 이용해 위인衛人침공侵攻하니 적인狄人화평和平하기를 청하였다.
가을에 위인衛人적인狄人결맹結盟하였다.
겨울에 진문공晉文公하였다.
경진일庚辰日곡옥曲沃하기 위해注+을 묻는 것이다. 곡옥曲沃에는 구궁舊宮이 있다.을 나가는데,注+[부주]林: 나라의 국도國都이다. 영구靈柩가 바야흐로 나라의 국도國都를 나간 것이다.영구靈柩에서 소 울음 같은 소리가 났다.注+소 울음소리 같은 소리가 난 것이다. [부주]林: 《예기禮記》 〈곡례曲禮〉에 “시신屍身침상寢牀 위에 있는 것을 ‘’라 하고 에 넣은 것을 ‘’라 한다.”고 하였다.
복언卜偃대부大夫들에게 절하게 하며 말하기를 “께서 대사大事를 명하셨다.
장차 서쪽 나라의 군대가 우리나라를 지나갈 것이니 저들을 공격攻擊하면 반드시 크게 승리勝利할 것이다.’注+안에서 소리가 났기 때문에 ‘군명君命’이라고 한 것이다. 대사大事융사戎事(軍事)이다. 복언卜偃나라의 은밀한 계획을 들었기 때문에 에서 소리가 난 것으로 인해 사람들의 마음을 진작振作[正]시킨 것이다. [부주]朱: 西나라를 이름이다. 과질아過軼我진군秦軍나라를 치기 위해 나라를 지나간다는 말이다.고 하였다.
기자杞子나라에서 사람을 보내어 나라에 하기를注+희공僖公 30년에 진목공秦穆公대부大夫기자杞子파견派遣나라를 지키게 했었다.정인鄭人이 우리에게 북문北門의 열쇠를 맡겼으니,注+은 열쇠이다.은밀隱密히 군사를 이끌고 온다면 나라를 얻을 수 있다.”고 하였다.
목공穆公건숙蹇叔을 찾아가서 이 일에 관해 물으니, 건숙蹇叔이 말하였다.
“군대를 수고롭혀 원방遠方의 나라를 습격襲擊한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하였습니다.注+건숙蹇叔나라 대부大夫이다.
군대는 노고勞苦에 지쳐 힘이 고갈枯渴될 것이고, 먼 나라(鄭) 임금은 이를 대비對備할 것이니 불가不可하지 않겠습니까?注+[부주]林: 원방遠方의 임금이 반드시 우리의 계획을 알고서 대비할 것이므로 나라를 얻을 수 없다는 말이다.
우리 군대의 계획을 나라도 반드시 알고 있을 것이니,注+[부주]林: 나라의 병사들이 이미 하려는 일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으니 나라도 반드시 나라의 계획을 알고 있을 것이라는 말이다. 군대들이 고생만 하고 얻는 것이 없으면 반드시 원망하는 마음[悖心]을 가질 것입니다.注+장차 선량善良한 사람을 해칠 것이라는 말이다. [부주]林: 나라 병사兵士가 고생만 하고 얻는 것이 없으면 반드시 패려悖戾한 마음이 생겨 선량善良한 사람을 해칠 것이라는 말이다.
그리고 또 천리千里 길을 가는데 그 누가 모르겠습니까?”
은 그의 말을 듣지 않고注+는 그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맹명孟明서걸西乞백을白乙을 불러 군대를 거느리고 동문東門 밖에서 출발하게 하였다.注+맹명孟明백리맹명시百里孟明視이고, 서걸西乞서걸술西乞術이고, 백을白乙백을병白乙丙이다.
건숙蹇叔이 울면서 “맹자孟子야, 나는 군대가 나가는 것은 보지만 들어오는 것은 보지 못할 것이다.”라고 하니,注+[부주]林: 건숙蹇叔맹명孟明을 불러 “나는 그대가 군대를 거느리고 나가는 것만을 볼 뿐, 그대가 군대를 거느리고 들어오는 것은 보지 못할 것이다.”고 말한 것이다.이 사람을 보내어 건숙蹇叔에게 이르기를注+[부주]林: 목공穆公건숙蹇叔이 출동하는 군대를 향해 곡한 것에 노하여 사람을 보내 그를 꾸짖은 것이다. “네가 무엇을 아느냐?
네가 중수中壽만 살고 죽었더라도 네 무덤 위에 심은 나무가 이미 한 아름은 되었을 것이다.”注+두 손을 벌려 껴안을 둘레를 ‘’이라 한다. 건숙蹇叔이 지나치게 늙어 정신이 혼란昏亂하니 그의 말이 쓸 만하지 못하다는 말이다. [부주]林: 인생人生상수上壽는 1백 20세, 중수中壽는 100세이고 하수下壽는 80세이다. 목공穆公은 그를 헐뜯어 “네가 중수中壽만 살고 죽었더라도 네 무덤 위의 나무가 이미 한 아름으로 자랐을 것이다.”고 한 것이니, 곧 죽음이 이를 것이라는 말이다.라고 하였다.
이때 건숙蹇叔의 아들도 그 군대 속에 끼어 있었다.
건숙蹇叔은 울면서 아들을 보내며 말하였다.
진인晉人은 반드시 우리 군대를 효산殽山에서 막을 것이다.注+효산殽山홍농弘農민지현澠池縣 서쪽에 있다. [부주]林: 효산殽山는 지금의 함곡관函谷關이다.
효산殽山에는 두 언덕이 있는데注+큰 언덕을 ‘’이라 한다. 남쪽 언덕은 하후夏后의 무덤이 있는 곳이고,注+하걸夏桀조부祖父이다. 북쪽 언덕은 문왕文王풍우風雨를 피했던 곳이다.注+이곳의 길이 두 언덕 사이의 남곡南谷 가운데로 나 있는데, 골짜기가 깊고 꼬불꼬불하며 두 이 서로를 향해 기울어져 있기 때문에 풍우風雨를 피할 수 있다. 옛날에는 이 길을 경유經由하였는데, 위무제魏武帝(曹操)가 서쪽으로 파한巴漢(蜀漢)을 토벌討伐할 때 이 길이 험한 것을 꺼려 다시 북산北山고도高道를 내었다.
네가 반드시 이 두 언덕 사이에서 죽을 것이니注+그곳이 매우 험하기 때문이다. 내가 그곳으로 가서 너의 뼈를 거두리라.”
진군秦軍은 드디어 동쪽을 향해 출발出發하였다.注+격멸擊滅하였는데도 ‘’이라고 기록한 것은 그 땅을 소유所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역주
역주1 就狄廬帳盟 : 廬帳은 幕舍이다. 狄人은 물과 풀을 찾아다니며 遊牧하기 때문에 일정한 住居가 없이 머무는 곳에 幕舍를 치고 임시로 거주할 뿐이다.
역주2 狄[翟] : 저본에는 ‘狄’으로 되어 있으나 《十三經注疏》本에 의거하여 ‘翟’으로 바로잡았다.
역주3 正衆心 : 正을 《左氏會箋》에서는 鼓勵로 풀었다. 鼓勵는 激發 또는 振作의 뜻이다.
역주4 伐[戌] : 저본에는 ‘伐’로 되어 있으나 《十三經注疏》本에 의거하여 ‘戌’로 바로잡았다.
역주5 知[之] : 저본에는 ‘知’로 되어 있으나 《十三經注疏》本에 의거하여 ‘之’로 바로잡았다.
역주6 師知所爲之事 : 林氏는 師知所爲의 ‘知’를 ‘之’의 誤字로 보지 않았기 때문에 이상과 같이 해석한 것이다.
역주7 公使謂之 : 蹇叔이 出征하는 장수에게 不吉한 말을 하였다 하여 사람을 보내어 꾸짖은 것이다.
역주8 中壽爾墓之木拱矣 : 中壽에 관해서는 說이 분분하다. 孔疏에는 “上壽는 1백 20세, 中壽는 1백세, 下壽는 80세이다.”고 하였고, 《莊子》 〈盜跖篇〉에는 “上壽는 1백 세, 中壽는 80세, 下壽는 60세이다.”고 하였고, 《論衡》 〈正說篇〉에는 “上壽는 90세, 中壽는 80세, 下壽는 70세이다.”고 하였다. 여기에 말한 中壽는 80세 이하 60세 이상으로 보는 것이 옳을 것 같다. 楊伯峻의 《春秋左傳注》 이 말은 蹇叔은 老妄한 늙은이이므로 그 말을 신용할 수 없다는 뜻이다.

춘추좌씨전(2) 책은 2022.01.20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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