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春秋左氏傳(2)

춘추좌씨전(2)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춘추좌씨전(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經]八年春王正月이라
8년 봄 주왕周王정월正月이다.
[經]夏四月이라
여름 4월이다.
[經]秋八月戊申 天王崩하다
가을 8월 무신일戊申日천왕天王하였다.
[經]冬十月壬午 公子遂會晉趙盾盟于衡雍하다注+壬午 月五日
겨울 10월 임오일壬午日공자수公子遂나라 조돈趙盾과 만나 형옹衡雍에서 결맹結盟하였다.注+임오壬午는 10월 5일이다.
乙酉 公子遂會盟于暴하다注+乙酉 月八日也 暴 鄭地 公子遂不受命而盟 宜去族 善其解國患 故稱公子以貴之
을유일乙酉日공자수公子遂낙융雒戎에서 회합會合하였다.注+을유乙酉는 10월 8일이다. 나라 땅이다. 공자수公子遂군명君命도 받지 않고 임의任意회맹會盟하였으니 그의 (公子)을 기록하지 않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그가 국가의 우환憂患해결解決한 것을 잘한 일로 여겨 ‘공자公子’라고 칭하여 그를 존귀尊貴하게 여긴 것이다.
[經]하다注+不言出 受命而出 自外行
공손오公孫敖경사京師에 가다가 경사京師로 가지 않고 중도中途에서 되돌아와서 병술일丙戌日나라로 도망갔다.注+을 말하지 않은 것은 군명君命을 받고 나갔다가 밖에서 도망하였기 때문이다.
[經]螽하다注+無傳 爲災故書
황충蝗蟲재해災害가 발생하였다.注+이 없다. 재해災害가 되었기 때문에 기록한 것이다.
[經]宋人殺其大夫司馬하니 宋司城來奔하다注+司馬死不舍節 司城奉身而退 故皆書官而不名 貴之
송인宋人이 그 대부大夫사마司馬를 죽이니, 나라 사성司城나라로 도망해 왔다.注+사마司馬는 죽으면서도 부절符節을 손에서 놓지 않았고, 사성司城직분職分을 다하고서[奉身] 물러났기 때문에 모두 관명官名을 기록하고 이름을 기록하지 않아 존귀尊貴하게 여긴 것이다.
[傳]八年春 晉侯使解揚歸匡戚之田于衛注+匡本衛邑 中屬鄭 孔達伐不能克 今晉令鄭還衛 及取戚田 皆見元年 [附注] 林曰 解揚 晉大夫하고 且復致公壻池之封하니 自申至於虎牢之竟이라注+公壻池 晉君女壻 又取衛地以封之 今幷還衛也 申 鄭地 傳言趙盾所以能相幼主而盟諸侯 [附注] 林曰 申虎牢 皆鄭邑 蓋此地 皆公壻池之封也
8년 봄에 진후晉侯해양解揚을 보내어 두 곳의 땅을 나라에 돌려주고,注+은 본래 나라 이었는데 중간에 나라로 귀속歸屬되었다. 나라 대부大夫공달孔達광읍匡邑을 쳤으나 승리하지 못하였는데, 지금 나라가 나라로 하여금 그 땅을 나라에 되돌려 주게 하였다. 광읍匡邑척전戚田을 취한 것은 모두 원년元年에 보인다.[부주]林: 해양解揚진대부晉大夫이다. 또 다시 공서公壻봉지封地를 돌려주었으니 에서 호뢰虎牢의 경계까지였다.注+공서公壻진군晉君의 사위이다. 또 나라 땅을 취하여 공서公壻에게 봉지封地로 주었던 것까지 지금 아울러 나라에 돌려준 것이다. 나라 땅이다. 의 말은 조돈趙盾이 능히 어린 임금을 보좌하여 제후의 맹주盟主가 되게 한 것을 말한 것이다. [부주]林: 호뢰虎牢는 모두 나라 땅인데, 이 땅은 모두 공서公壻봉지封地인 듯하다.
[傳]夏 秦人伐晉하야 取武城하야 以報令狐之役하다注+令狐役在七年
여름에 진인秦人나라를 토벌해 무성武城을 취하여 영호令狐의 전쟁을 보복하였다.注+영호令狐의 전쟁은 문공文公 7년에 있었다.
[傳]秋 襄王崩하다注+爲公孫敖如周弔傳
가을에 양왕襄王하였다.注+공손오公孫敖조상弔喪하기 위해 나라에 간 의 배경이다.
[傳]晉人以扈之盟來討하다注+前年盟扈 公後至
진인晉人회맹會盟이 늦게 갔다는 이유로 와서 나라를 징벌懲罰하였다.注+전년前年에 있었던 회맹會盟이 늦게 갔었다.
[傳]冬 襄仲會晉趙孟盟于衡雍하니 報扈之盟也注+[附注] 林曰 以扈盟後至 故盟衡雍以報之
겨울에 양중襄仲나라 조맹趙孟과 만나 형옹衡雍에서 결맹結盟하였으니, 이는 회맹會盟에 늦게 간 잘못을 보상報償한 것이다.注+[부주]林: 회맹會盟에 늦게 갔기 때문에 형옹衡雍에서 결맹結盟하여 그 잘못을 보상報償한 것이다.
遂會伊雒之戎하다注+伊雒之戎 將伐魯 公子遂不及復君 故專命與之盟
드디어 이락伊雒회합會合하였다.注+이수伊水낙수雒水유역流域에 사는 융족戎族나라를 침벌侵伐하려 하니, 공자수公子遂는 임금께 복명復命할 겨를이 없었다. 그러므로 군명君命을 받지 않고 임의任意[專命]로 저들과 회맹會盟한 것이다.
書曰 公子遂라하니 珍之也注+珍 貴也 大夫出竟 有可以安社稷利國家者 專之可
에 ‘공자수公子遂’라고 기록하였으니, 이는 그를 존귀하게 여긴 것이다.注+이다. 대부大夫가 나라 밖으로 나갔을 때 사직社稷을 편안하게 하고 국가國家를 이롭게 할 일이 있으면 군명君命을 받지 않고 임의任意로 처리하는 것이 옳다.
[傳]穆伯如周弔喪이라가 不至하고 以幣奔莒하야 從己氏焉하다注+己氏 莒女
목백穆伯조상弔喪하기 위해 나라에 가다가 경사京師로 가지 않고 가지고 간 예물禮物을 가지고 나라로 도망하여 기씨己氏를 찾아갔다.注+기씨己氏거녀莒女이다.
[傳]宋襄夫人 襄王之姊也
송양공宋襄公부인夫人주양왕周襄王의 누이이다.
昭公不禮焉注+昭公嫡祖母이어늘 夫人因戴氏之族注+華樂皇皆戴族하야 以殺襄公之孫孔叔公孫鍾離及大司馬公子卬하니 皆昭公之黨也
송공宋公예우禮遇하지 않자,注+부인夫人소공昭公적조모嫡祖母이다.부인夫人대씨戴氏종족宗族을 이용해[因]注+화씨華氏악씨樂氏황씨皇氏가 모두 대씨戴氏종족宗族이다.양공襄公의 손자 공숙孔叔공손公孫종리鍾離대사마大司馬공자公子을 죽였으니, 이들은 모두 소공昭公이었다.
司馬握節以死 故書以官하다注+節 國之符信也 握之以死 示不廢命
사마司馬부절符節을 손에 쥐고 죽었기 때문에 관직官職을 기록한 것이다.注+국가國家부신符信이다. 부신符信을 쥐고 죽은 것은 군명君命을 버리지 않는다는 뜻을 보인 것이다.
司城蕩意諸來奔 效節於府人而出注+效 猶致也 意諸 公子蕩之孫일새 公以其官逆之하고 皆復之하다
사성司城탕의제蕩意諸나라로 도망해 올 때 부절符節부인府人에게 반납返納하고 나왔기 때문에注+(바침)와 같다. 의제意諸공자公子의 손자이다.노문공魯文公은 그를 본래의 관직官職으로 맞이하였고, 그 관속官屬들도 모두 본래의 관직으로 대우待遇하였다.
亦書以官하니 注+卿違從大夫 公賢其效節 故以本官逆之 請宋而復之 司城官屬悉來奔 故言皆復
이 또한 에 관직을 기록하였으니, 두 사람 모두를 존귀尊貴하게 여긴 것이다.注+이 도망해 오면 한 등급 낮추어 대부大夫대우待遇하는 것이 관례慣例이다. 그러나 노문공魯文公은 그가 부절符節반납返納하고 나온 것을 훌륭하게 여겼기 때문에 그를 본래의 관직官職으로 영접하고서, 나라에 요청해 그의 관직官職회복回復시킨 것이다. 사성司城관속官屬이 모두 도망해 왔기 때문에 ‘개복지皆復之’라고 한 것이다.
[傳]夷之蒐 晉侯將登箕鄭父先都注+登之於上軍也 夷蒐在六年하고 而使士縠梁益耳將中軍注+士縠本司空 [附注] 林曰 使二子爲中軍將佐한대 先克曰 狐趙之勳 不可廢也라하니 從之하다注+狐偃趙衰有從亡之勳 [附注] 林曰 六年 以狐射姑趙盾爲中軍將佐
훈련訓鍊진후晉侯기정보箕鄭父선도先都품계品階를 올려 주고注+상군上軍으로 올리려 한 것이다. 의 훈련은 문공文公 6년에 있었다.사곡士縠양익이梁益耳에게 중군中軍을 거느리게 하려 하자,注+사곡士縠은 본래 사공司空이었다. [부주]林: 두 사람을 중군中軍로 삼으려 한 것이다.선극先克이 말하기를 “호언狐偃조쇠趙衰폐기廢棄해서는 안 됩니다.”고 하니, 진후晉侯는 그의 말을 따랐다.注+호언狐偃조쇠趙衰진문공晉文公망명亡命했을 때 수종隨從공로功勞가 있다. [부주]林: 문공文公 6년에 호역고狐射姑중군장中軍將으로, 조돈趙盾중군좌中軍佐로 삼았다.
先克奪蒯得田於菫陰이라注+七年 晉禦秦師於菫陰 以軍事奪其田也 先克 中軍佐 故箕鄭父先都士縠梁益耳蒯得作亂하다注+爲明年殺先克張本
선극先克근음菫陰에 있는 괴득蒯得의 땅을 빼앗았기 때문에注+문공文公 7년에 근음菫陰에서 진군秦軍방어防禦할 때 군사軍事로 인해 그의 땅을 빼앗은 것이다. 이때 선극先克중군좌中軍佐였다.기정보箕鄭父선도先都사곡士縠양익이梁益耳괴득蒯得반란叛亂을 일으켰다.注+명년明年선극先克을 죽인 장본張本이다.
역주
역주1 雒戎 : 雒水流域에 거주하는 戎族이다.
역주2 公孫敖如京師……奔莒 : 如는 가려 한 것이고 復은 돌아오려 한 것이다. 가다가 다 가기 전에 되돌아왔고, 돌아오다가 다 돌아오기 전에 莒나라로 달아났으니, 계속 國外에 있은 것이다 그러므로 ‘出’이라고 말하지 않은 것이다. 徐壽錫 《潁水全集》
역주3 皆復之 : 杜注에는 司城과 그 官屬들을 모두 宋나라에 요청하여 원래의 官位로 회복시킨 것으로 해석하였으나, 譯者는 楊伯峻의 설을 취해 번역하였다. 楊伯峻은 “皆復之는 魯文公이 意諸를 隨從한 官屬을 모두 원래의 官職으로 待遇한 것이다. 文公 11년 傳에 楊仲이 宋나라에 가서 聘問하고서 또 司城蕩意諸를 擧論하여 回復시킨 것과는 별개의 일인데, 杜注는 한 가지 일로 混同하여 여기의 ‘皆復’을 ‘請宋而復之’로 해석하였으니, 文義로 볼 때 正確하지 않은 것 같다.”고 하였다.

춘추좌씨전(2) 책은 2019.05.2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18 By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