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經]二年春王正月
에 齊人遷陽
注+無傳 陽 國名 蓋齊人偪徙之하다
[經]夏五月乙酉
에 于莊公
注+三年喪畢 致新死者之主於廟 廟之遠主當遷入 因是大祭 以審 謂之禘 莊公喪制未闋 時別立廟 廟成而吉祭 又不於大廟 故詳書以示譏하다
[經]秋 八月辛丑
에 公薨
注+實弑 書薨 又不地者 皆史策諱之하다
[經]九月
에 夫人姜氏孫于邾
注+哀姜外淫 故孫稱姜氏하다
[經]冬
에 齊高子來盟
注+無傳 蓋高傒也 齊侯使來平魯亂 僖公新立 因遂結盟 故 魯人貴之 故不書名 子 男子之美稱하다
[經]十有二月
에 狄入衛
注+書入 不能有其地 하다
[經]鄭棄其師
注+高克見惡 久不得還 師潰而克奔陳 故克狀其事以告魯也하다
傳
[傳]二年春
에 虢公敗犬戎于渭汭
注+犬戎 西戎別在中國者 渭水 出隴西 東河 水隈曲曰 汭하다 舟之僑曰 無德而祿
은 殃也
니 殃將至矣
리라하고 遂奔晉
注+舟之僑 虢大夫 [附注] 林曰 虢公無君人之德而享天祿 蓋敗戎斥地 必有所獲 故總言祿하다
傳
[傳]初
에 公傅奪卜齮田
호대 公不禁
注+卜齮 魯大夫也 公卽位 年八歲 知愛其傅而遂成其意 以奪齮田 齮忿其傅 幷及公 故慶父因之하다
秋八月辛丑
에 共仲使卜齮賊公于武闈
注+宮中小門 謂之闈 [附注] 林曰 賊 殺也하다
傳
[傳]成季以僖公適邾
注+僖公 閔公庶兄 成風之子라가 共仲奔莒
에 乃入
하야 立之
注+[附注] 林曰 季友乃以僖公入魯 立之爲君하고 以賂求共仲于莒
하니 莒人歸之
하다
及密
하야 使公子魚請
注+密 魯地 琅邪費縣北 有密如亭 公子魚 奚斯也 [附注] 林曰 慶父使奚斯請免其死이어늘 不許
한대 哭而往
하니 共仲曰 奚斯之聲也
라하고 乃縊
注+慶父之罪雖重 季子推親親之恩 欲同之叔牙 存孟氏之族 故略其罪 하다
傳
齊人取而殺之于夷
하고 以其尸歸
注+爲僖元年齊人殺哀姜傳 夷 魯地하니 僖公請而葬之
注+哀姜之罪已重 而僖公請其喪還者 外欲固齊以居厚 內存母子不絶之義 爲國家之大計하다
傳
[傳]成季之將生也
에 桓公使卜楚丘之父卜之
注+卜楚丘 魯掌卜大夫한대 曰男也
니이다
其名曰友
니 在公之右
注+在右 言用事하고 間于兩社
하야 爲公室輔
注+兩社 兩社之間 朝廷執政所在리니 季氏亡
이면 則魯不昌
이리이다
又筮之
한대 遇大有☲☰
注+乾下離上 大有之乾☰☰
注+乾下乾上 乾 大有六五變而爲乾이라
曰同復于父
하야 敬如君所
注+筮者之辭也 乾爲君父 離變爲乾 故曰同復於父 見敬與君同 [附注] 朱曰 乾爲父 離爲中女 大有上离而下乾 今變爲純乾 是與下卦同復于父也 乾爲君 言人之敬季友如敬君也리이다
及生
에 有文在其手曰友
라 遂以命之
注+遂以爲名하다
傳
公與石祁子
하고 與寗莊子矢
하야 使守
注+莊子 寗速也 玦 玉玦曰 以此贊國
하야 擇利而爲之
注+贊 助也 玦 示以當決斷 矢 示以禦難하라 與夫人繡衣曰 聽於二子
注+하라
渠孔御戎
하고 子伯爲右
하고 黃夷前驅
하고 孔嬰齊殿
注+傳言衛侯失民有素 雖臨事而戒 猶無所及하야 及狄人戰于熒澤
타가 衛師敗績
하니 遂滅衛
注+此熒澤 當在河北 君死國散 經不書滅者 狄不能赴 衛之君臣皆盡 無復文告 齊桓爲之告諸侯 言狄已去 言衛之存 故但以入爲文하다
傳
衛侯不去其旗
라 是以甚敗
注+[附注] 林曰 師之耳目在旗 衛懿公旣敗 而不去其旗 是以甚敗 至君臣皆盡也하다
狄人囚史華龍滑與禮孔
하고 以逐衛人
注+[附注] 林曰 華龍滑禮孔 衛大史也하니 二人曰 我大史也
라 實掌其祭
하니 不先
이면 國不可得也
注+夷狄畏鬼 故恐言當先白神리라하니 乃先之
하다
至則告守曰 不可待也
注+守 石寗二大夫 [附注] 林曰 乃使二人先歸白神 二人至衛 則告二大夫之守國者 言狄師盛强 不可坐而待滅也라하니 夜與國人出
하다
狄入衛
하야 遂從之
하야 又敗諸河
注+衛將東走渡河 狄復逐而敗之하다
傳
初
에 惠公之卽位也少
注+蓋年十五六하니 齊人使昭伯烝於宣姜
한대
不可
어늘 强之
注+昭伯 惠公庶兄 宣公子頑也 昭伯不可 [附注] 林曰 宣姜 齊女 故齊人使蒸之하야 生齊子戴公文公宋桓夫人許穆夫人
하다
及敗
에 宋桓公逆諸河
注+迎衛敗衆하야 宵濟
注+夜渡 畏狄하다
衛之遺民男女七百有三十人
이오 益之以共縢之民爲五千人
注+共及滕 衛別邑이라
立戴公
하야 以廬于曹
注+廬 舍也 曹 衛下邑 戴公 名申 立其年卒 而立文公하니 許穆夫人賦載馳
注+ 詩 衛風也 許穆夫人痛衛之亡 思歸唁之 不可 故作詩以言志하다
齊侯使公子無虧帥車三百乘
과 甲士三千人以戍曹
注+無虧 齊桓公子武孟也 故傳別見之하고
歸公乘馬
와 祭服五稱
과 牛羊豕鷄狗皆三百與門材
注+歸 遣也 四馬曰乘 衣單複具曰稱 門材 使先立門戶 [附注] 林曰 材木也하고 歸夫人魚軒
注+魚軒 夫人車 以魚皮爲飾과 重錦三十兩
注+重錦 錦之熟細者 以二丈雙行 故曰兩 三十兩 三十匹也하다
傳
[傳]鄭人惡高克하야 使帥師次于河上하고 久而弗召하니 師潰而歸어늘
高克奔陳
注+高克 鄭大夫也 好利而不顧其君 文公惡之而不能遠 故使帥師而不召하다
鄭人爲之賦淸人
注+淸人 詩鄭風也 刺文公退臣不以道 危國亡師之本하다
傳
[傳]晋侯使大子申生伐東山皐落氏
注+赤狄別種也 皐落 其氏族한대 里克諫曰 大子奉冢祀社稷之粢盛
注+里克 晉大夫 冢 大也하고 以朝夕視君膳者也
注+膳 廚膳니이다
君行則守
하고 有守則從
하니 從曰撫軍
이오 守曰監國
이 古之制也
注+[附注] 林曰 君有朝會征伐行役之事 則代君守國 君使大臣守國 則大子從君而行 大子從君 號曰撫軍 言助君鎭撫士卒 大子守國 號曰監國 言代君監臨國家니이다
夫帥師
하야 專行謀
注+帥師者 必專謀軍事하고 誓軍旅
注+宣號令也는 君與國政之所圖也
오 非大子之事也
注+國政 正卿니이다
師在
而已
注+命 將軍所制니 禀命則不威
하고 專命則不孝
니이다
君失其官
하고 帥師不威
면 將焉用之
注+大子統師 是失其官也 專命則不孝 是爲帥必不威也릿가
且臣聞皐落氏將戰
이라하니 君其舍之
注+[附注] 朱曰 恐太子戰而被殺傷 君何不捨申生勿使往也하소서 公曰寡人有子
로되 未知其誰立焉
注+[附注] 朱曰 不知我死後 誰得立爲君者 蓋微示其將廢大子之意也이노라
傳
見大子
한대 大子曰吾其廢乎
注+[附注] 林曰 大子亦揣知獻公將廢己 故以此爲問아
對曰告之以臨民
注+謂居曲沃하고 敎之以軍旅
注+謂將下軍하니 不共是懼
언정 何故廢乎
注+[附注] 林曰 言大子當以任大責重 不共其職爲懼 何故以廢立爲懼乎아
傳
大子帥師
에 公衣之偏衣
注+偏衣 左右異色 其半似公服하고 佩之金玦
注+以金爲玦하다
狐突御戎
하고 先友爲右
注+狐突 伯行 重耳外祖父也 爲申生御 申生以大子將上軍하고 梁餘子養御罕夷
하고 先丹木爲右
注+罕夷 晉下軍卿也 梁餘子養爲罕夷御하고 羊舌大夫爲尉
注+羊舌大夫 叔向祖父也 尉 軍尉하다
先友曰 衣身之偏
注+偏 半也하고 握兵之要
注+謂珮金玦 將上軍하니
偏躬無慝
注+分身衣之半 非惡意也 [附注] 朱曰 分君身之半以衣之 非惡意也이오 兵要遠災
注+威權在己 可以遠害니이다
親以無災
하니 又何患焉
注+[附注] 朱曰 分半衣以親之 又遠災害 無所憂患也이닛가
狐突嘆曰 時
는 事之徵也
注+歎以先友爲不知君心오 衣
는 身之章也
注+章貴賤오 佩
는 衷之旗也
注+旗 表也 所以表明其中心라
故敬其事
면 則命以始
注+ [附注] 林曰 謂君若敬大子之事 則賞以春夏 當命以四時之始하고 服其身
이면 則衣之純
注+必以純色爲服하고 用其衷
이면 則佩之度
注+衷 中也 佩玉者 君子常度 [附注] 林曰 謂君若用大子之心 則當佩之玉 以得士君子之常度하나니
今命以時卒
하니 閟其事也
注+冬十二月 閟盡之時 [附注] 朱曰 今不命以始而命之於冬十二月 乃時之終也오 衣之尨服
하니 遠其躬也
注+尨 雜色 [附注] 林曰 衣大子尨雜色之衣服 离遠其躬也 非所謂服오 佩以金玦
하니 棄其衷也
라
服以遠之
하고 時以閟之
하며 尨
은 凉
이오 冬
은 殺
이오 金
은 寒
하고 玦
은 離
하니 胡可恃也
注+寒 凉 殺 離 言無溫潤 玦如環而缺不連 [附注] 朱曰 服用尨雜 則有凉薄之意 時用窮冬 則有肅殺之意 金屬秋方其性剛而寒 玦者 訣也 有离別之意이리오
梁餘子養曰 帥師者
는 受命於廟
하고 受脤於社
注+脤 宜社之肉 盛以器에 有常服矣
어늘 不獲而尨
하니 命可知也
注+ 軍之常也 尨 偏衣 [附注] 朱曰 君命如此 其意可知라
死而不孝
론 不如逃之
注+[附注] 林曰 雖死而使父有殺子之名 猶爲不孝니라
罕夷曰 尨奇無常
注+雜色奇怪 非常之服하고 金玦不復
하니 雖復何爲
리오
先丹木曰 是服也
는 狂夫阻之
注+阻 疑也 言雖狂夫 猶知有疑온 曰盡敵而反
注+曰 公辭이라하니 敵可盡乎
아
雖盡敵
이라도 猶有內讒
이리니 不如違之
注+違 去也이니이다
違命不孝
요 棄事不忠
이니 雖知其寒
이나 惡不可取
이니 子其死之
注+寒 薄也 [附注] 朱曰 雖知君心寒薄 然而去之 則是取不孝不忠之惡名하소서
昔辛伯諗周桓公
注+諗 告也 事在桓十八年云 內寵並后
하고 外寵二政
하고 嬖子配適
하고 大都耦國
은 亂之本也
라한대 周公弗從
이라 故及於難
이니이다
今亂本成矣
注+驪姬爲內寵 二五爲外寵 奚齊爲嬖子 曲沃爲大都 故曰亂本成니 立可必乎
아
孝而安民
을 子其圖之
注+奉身爲孝 不戰爲安民하소서 與其危身以速罪也
注+有功益見害 故言孰與危身以召罪리까
傳
[傳]成風聞成季之繇
하고 乃事之
注+成風 莊公之妾 僖公之母也 繇 卦兆之占辭하야 而屬僖公焉
하다
傳
[傳]僖之元年
에 齊桓公遷邢于夷儀
하고 二年
에 封衛于楚丘
하니 邢遷如歸
하고 衛國忘亡
注+忘其滅亡之困이러라
傳
[傳]衛文公
이 大布之衣
와 大帛之冠
注+大布 麤布 大帛 厚繒 蓋用諸侯諒闇之服으로 務材訓農
注+[附注] 朱曰 畜積木材 敎訓農事하고 通商惠工
注+加惠於百工 賞其利器用하고 敬敎勸學
注+[附注] 朱曰 敬重五敎 勸勉爲學하고 授方任能
注+方 百事之宜也하니 元年
에 革車三十乘
이 季年
에 乃三百乘
注+衛文公以此年冬立 齊桓公始平魯亂 故傳因言齊之所以覇 衛之所由興 革車 兵車 季年 在僖二十五年 蓋招懷迸散 故能致十倍之衆이러라
2년 봄
주왕周王 정월에
제인齊人이
양陽의
주민住民을
이주移住시키고서 그 땅을
점유占有하였다.
注+전傳이 없다. 양陽은 국명國名이다. 제인齊人이 위협해 강제로 이주시킨 것이다.
여름 5월 을유일에
장공莊公에게
길체吉禘를 지냈다.
注+삼년상三年喪을 마치고서 새로 죽은 이의 신주神主을 종묘로 모시고, 종묘宗廟에 있던 원조遠祖의 신주神主를 조묘祧墓로 옮기고서 대제大祭를 지내어 소목昭穆을 살피는 것을 체禘라 한다. 이때 장공莊公의 상제喪制가 아직 끝나지 않았으므로 따로 묘廟를 건립建立하고 묘廟가 완성完成되자 길제吉祭를 지낸 것이다. 또 태묘太廟에서 체제禘祭를 거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세히 기록하여 비난의 뜻을 보인 것이다.
가을 8월 신축일에
민공閔公이
훙薨하였다.
注+사실은 시해弑害되었는데 ‘훙薨’이라 기록하고 또 시해弑害된 장소場所를 기록하지 않은 것은, 모두 사관이 숨기고 책策에 기록하지 않은 것이다.
9월에
부인夫人강씨姜氏가
주국邾國으로 도망갔다.
注+애강哀姜이 외성인外姓人과 간통姦通하였기 때문에 그가 도망간 것을 기록하면서 강씨姜氏라고 칭한 것이다.
공자公子경보慶父가
거莒나라로 도망갔다.
注+민공閔公을 시해弑害했기 때문이다.
겨울에
제齊나라
고자高子가 와서
결맹結盟하였다.
注+전傳이 없다. 고자高子는 고혜高傒인 듯하다. 제후齊侯가 그를 보내어 노魯나라의 환란患亂을 평정시키게 한 것이다. 희공僖公이 새로 즉위하였으므로 인해 드디어 결맹結盟한 것이다. 그러므로 ‘사使’라고 칭하지 않은 것이다. 노인魯人이 그를 귀하게 여겼기 때문에 이름을 기록하지 않은 것이다. 자子는 남자男子의 미칭美稱이다.
12월에
적인狄人이
위衛나라에
침입侵入하였다.
注+‘입入’이라고 기록한 것은 그 땅을 점유占有하지 않은 것이다. 예例가 양공襄公 13년에 보인다.
정鄭나라가 그 군대를 버렸다.
注+고극高克이 정문공鄭文公의 미움을 받아 오래도록 귀환歸還의 명命을 받지 못하여 돌아가지 못하자, 군대가 모두 흩어져 도망하고 고극高克도 진陳나라로 망명亡命하였다. 그러므로 고극高克이 그 일을 기록하여 노魯나라에 통고通告한 것이다.
傳
2년 봄에
괵공虢公이
위수渭水 굽이에서
견융犬戎을
패배敗北시키자,
注+견융犬戎은 서융西戎의 별종別種으로 중국中國에 거주하는 자들이다. 위수渭水는 농서隴西에서 발원發源하여 동으로 흘러 황하黃河로 들어간다. 물굽이의 들어간 곳을 ‘예汭’라 한다. 주지교舟之僑가 말하기를 “
덕德도 없으면서
복福을 받는 것은
재앙災殃이니,
재앙災殃이 장차 닥칠 것이다.”고 하고서 드디어
진晉나라로 도망갔다.
注+주지교舟之僑는 괵虢나라의 대부이다.[부주]林: 괵공虢公이 임금의 덕德도 없으면서 천록天祿을 누린다는 것은, 괵공虢公이 융戎을 패배시키고서 땅을 개척開拓하여 필시 소득이 있었기 때문에 이를 모두 녹祿이라고 한 듯하다.
傳
여름에 장공莊公에게 길체吉禘를 지냈으니, 시기時期가 너무 빨랐다.
傳
당초에
민공閔公의 스승이
복의卜齮의
전지田地를 빼앗는 데도
민공閔公이
금禁하지 않았다.
注+복의卜齮는 노魯나라 대부이다. 민공閔公이 즉위卽位할 때에 나이가 여덟 살이었다. 그 스승을 사랑할 줄만 알았으므로 스승의 뜻을 이루어 주기 위해 복의卜齮의 전지田地를 탈취하도록 버려 둔 것이다. 복의卜齮는 그 스승에게 분노忿怒한 나머지 민공閔公까지 미워하였기 때문에 경보慶父가 그를 이용한 것이다.
가을 8월 신축일에
공중共仲(慶父)이
복의卜齮를 시켜
무위武闈에서
민공閔公을
시해弑害하였다.
注+궁중宮中의 작은 문을 ‘위闈’라 한다.[부주]林: 적賊은 살해殺害하는 것이다.
傳
성계成季(季友)가
희공僖公을 모시고
주邾나라로 갔다가
注+희공僖公은 민공閔公의 서형庶兄으로 성풍成風의 아들이다. 공중共仲이
거莒나라로 도망간 뒤에야
노魯나라로 들어와서
희공僖公을 임금으로 세우고서
注+[부주]林: 계우季友가 희공僖公을 모시고 노魯나라로 들어와서 그를 임금으로 세운 것이다.거莒나라에 뇌물을 주며
공중共仲을 넘겨주기를 요구하니,
거인莒人이 그를
노魯나라로 돌려보냈다.
밀密에 당도하여
공중共仲이
공자公子어魚를
노魯나라 조정에 보내어
사면赦免해 주기를 요청하였는데,
注+밀密은 노魯나라 땅이다. 낭야琅邪비현費縣 북쪽에 밀여정密如亭이 있다. 공자公子어魚는 해사奚斯이다.[부주]林: 경보慶父가 해사奚斯를 보내어 사형死刑을 면제해 주기를 청한 것이다. 허락하지 않자
공자公子어魚가 울면서 돌아가니 공중이 그 울음소리를 듣고서 “이는
해사奚斯의 소리이다.”하고 스스로 목매어 죽었다.
注+경보慶父의 죄가 비록 컸으나, 계자季子(季友)는 친친親親(親族을 친애親愛함)의 은혜를 미루어 숙아叔牙와 동일하게 처리하여 맹씨孟氏의 종족宗族을 보존하고자 하였다. 그러므로 그 죄罪를 생략省略하고 ‘살殺’로 기록하지 않고, 또 ‘졸卒’로 기록하지 않은 것이다.
傳
민공閔公은 애강哀姜의 동생인 숙강叔姜의 아들이기 때문에 제인齊人이 민공閔公을 세운 것이다.
공중共仲이 애강哀姜과 간통姦通하니 애강哀姜이 공중共仲을 임금으로 세우고자 하였다.
민공閔公이 시해弑害되었을 때 애강哀姜도 그 음모陰謀에 참여하여 알고 있었다.
제인齊人이
애강哀姜을 잡아
이夷에서 죽이고 그 시체를 가지고
제齊나라로 돌아가니,
注+희공僖公원년元年에 제인齊人이 애강哀姜을 살해한 전傳의 배경이다. 이夷는 노魯나라 땅이다. 희공僖公은
제齊나라에
시체屍體의
반환返還을 요청하여 장사 지냈다.
注+애강哀姜의 죄가 더할 수 없이 큰데도 희공僖公이 그 시체屍體의 반환返還을 요청한 것은 밖으로는 제齊나라와 관계를 굳게 맺어 돈독하게 지내고, 안으로는 모자母子의 관계를 단절할 수 없다는 의리를 보존하고자 한 것이니, 국가를 위한 대계大計였다.
傳
성계成季가
출생出生하려 할 때
환공桓公이
복초구卜楚丘의 아비에게 거북점을 치게 하였는데,
注+복초구卜楚丘는 복서卜筮를 맡은 노魯나라 대부이다. 그가 점을 치고서 말하기를 “사내아이입니다.
이름은 ‘
우友’로 임금님의 오른쪽에 있고
注+오른쪽에 있다는 것은 요로要路에 앉아 국사國事를 주도主導한다는 말이다. 양사兩社 사이에서
공실公室을
보좌輔佐할 것이니,
注+양사兩社는 주사周社와 박사亳社이다. 양사兩社 사이는 조정朝廷과 집정관執政官의 집무실執務室이 있는 곳이다.계씨季氏가
망亡하면
노魯나라도
창성昌盛하지 못할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또
시초점蓍草占을 치게 하니,
대유괘大有卦(☲☰)
注+건乾이 하괘下卦이고 이離가 상괘上卦인 것이 대유大有이다.가
건괘乾卦(☰☰)
注+상하괘上下卦가 모두 건乾인 것이 건괘乾卦이다. 대유괘大有卦의 육오효六五爻가 변하여 건괘乾卦가 된 것이다.로 변한
괘卦를 만났다.
복초구卜楚丘의 아비가 그
점괘占卦를 풀이하기를 “이 아이의
존귀尊貴가 아버지와 같아서 임금처럼
존경尊敬받게 될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注+이는 점쟁이의 말이다. 건乾은 군부君父인데 이離가 변하여 건乾이 되었기 때문에 아이의 존귀尊貴가 아버지와 같아서 임금처럼 존경을 받게 될 것이라고 한 것이다.[부주]朱: 건乾은 부父이고 이離는 중녀仲女인데, 위가 이离이고 아래가 건乾인 대유괘大有卦가 이제 순건괘純乾卦로 변하였으니, 이는 위의 이离가 아래의 건乾과 마찬가지로 부父로 변한 것이다. 그리고 건乾은 군君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계우季友를 임금처럼 존경하게 된다고 한 것이다.
그가
출생出生함에 미쳐 손바닥에 ‘
우友’字 꼴의
문양文樣이 있으므로 드디어 ‘
우友’로 이름을 지었다.
注+드디어 우友를 이름으로 삼았다는 말이다.
傳
겨울 12월에 적인狄人이 위衛나라를 침벌侵伐하였다.
위의공衛懿公은
학鶴을 좋아하여
학鶴 중에는
대부大夫의 지위에 올라
헌軒을 타는
학鶴까지 있었다.
注+헌軒은 대부大夫의 수레이다.
적인狄人과 전쟁하려 할 때 갑옷을 받은 국인國人(都城 안의 백성)들이 모두 “학에게 싸우게 하라.
학은 실로 대부大夫의 녹祿과 지위地位가 있지만 우리는 아무 지위地位도 없으니 어찌 싸울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의공懿公이
석기자石祁子에게
결玦을 주고
영장자甯莊子에게
시矢(화살)를 주어
도성都城을 지키게 하며
注+장자莊子는 영속甯速이다. 결玦은 옥결玉玦이다. 말하기를 “이것으로 나라를 도와 이로운 쪽을
선택選擇해 일을 처리하라.
注+찬贊은 돕는 것이다. 결玦을 준 것은 결단決斷해야 된다는 뜻을 보인 것이고, 화살을 준 것은 환난患難을 막으라는 뜻을 보인 것이다.”하고,
부인夫人에게 수 놓은 옷을 주면서 “저 두 사람의
명命을 따르라.”고 하였다.
注+그 문장文章(무늬)의 순서를 취한 것이다. 그런 뒤에
거공渠孔을
융거戎車의
어御로 삼고,
자백子伯을
거우車右로,
황이黃夷를
전구前驅(先鋒)로,
공영제孔嬰齊를
후군後軍으로 삼아
注+전문傳文은 위후衛侯가 민심民心을 잃은 지 오래이므로 비록 출전出戰에 임하여 경계하였으나 미칠 수 없었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적인狄人과
형택熒澤에서 전쟁하다가
위사衛師가
대패大敗하니
적인狄人이 드디어
위衛나라를
멸망滅亡시켰다.
注+이 형택熒澤은 하북河北에 있다. 임금이 죽고 국인國人이 흩어졌는데도 경經에 멸망滅亡되었다고 기록하지 않은 것은, 적狄이 노魯나라에 통고하지 않았고, 위衛나라는 신하들이 모두 죽어서 다시 사실을 기록해 통고通告한 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제환공齊桓公이 제후諸侯에게 적狄이 이미 떠났고 위衛나라가 보존되었다고 통고通告하였기 때문에 다만 ‘입入’으로 글을 만들었을 뿐이다.
傳
위후衛侯가 그
기旗를 버리지 않았기 때문에 심하게
패敗한 것이다.
注+[부주]林: 군사들의 이목耳目은 임금의 기旗에 집중集中한다. 위의공衛懿公이 패배한 뒤에도 기旗를 버리지 않았기 때문에 심하게 패하여 군신君臣이 모두 죽는데 이른 것이다.
적인狄人이
화룡활華龍滑‧
예공禮孔을 잡아 가두고서
위인衛人을 추격하자,
注+[부주]林: 화룡활華龍滑‧예공禮孔은 위衛나라 태사太史이다. 두 사람이 말하기를 “우리는
위衛나라
태사太史로 실로
위衛나라의
제사祭祀를 맡고 있으니, 우리가 먼저 돌아가서
신神에게
고告하지 않으면 그대들이
위衛나라를 얻을 수 없을 것이다.”고 하니,
注+이적夷狄은 귀신鬼神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먼저 가서 신神에게 고告해야 한다는 말로 겁을 준 것이다.적인狄人은 이 두 사람을 먼저 돌려보냈다.
두 사람은
위衛나라로 돌아가서
수신守臣인
석기자石祁子와
영장자寗莊子에게 “
적狄의 군대가 매우 강하여
.”고
고告하니,
注+수守는 석기자石祁子와 영장자甯莊子 두 대부를 이른다.[부주]林: 적인狄人이 두 사람에게 먼저 돌아가서 신神에게 고하게 하니, 두 사람은 위衛로 돌아가서 나라를 지키고 있는 두 대부大夫에게 “적사狄師가 강성强盛하니 앉아서 멸망을 기다릴 수 없다.”고 고告한 것이다. 두
수신守臣이 밤에
국인國人과 함께 몰래
도성都城을 빠져나갔다.
적인狄人이
위衛나라
수도首都로
진입進入하여 드디어 도망가는
위衛나라 사람을 추격하여 또
황하黃河가에서 패배시켰다.
注+위인衛人이 동쪽으로 달아나 황하黃河를 건너려 하는데, 적인狄人이 다시 추격追擊하여 그들을 패배敗北시킨 것이다.
傳
당초
위혜공衛惠公이 즉위하였을 때 나이가 어리니,
注+나이가 15~6세였던 듯하다. 제인齊人이
소백昭伯을 시켜
선강宣姜과
간통姦通하게 하였다.
소백昭伯이 반대하자,
강제强制로
간통姦通시켜
注+소백昭伯은 혜공惠公의 서형庶兄으로 선공宣公의 아들 완頑이다. 소백昭伯이 불가不可하다고 반대한 것이다.[부주]林: 선강宣姜이 제齊나라의 딸이기 때문에 제인齊人이 간통姦通하도록 한 것이다.제자齊子‧
대공戴公‧
문공文公‧
송환부인宋桓夫人‧
허목부인許穆夫人을 낳았다.
문공文公은 위衛나라에 환란患亂이 많음으로 인해 먼저 제齊나라에 가 있었다.
위衛나라가
적狄에게
패망敗亡함에 미쳐
송환공宋桓公이 도망해 오는
위인衛人을
황하黃河 가에서 맞이하여
注+위衛나라의 패배한 군사들을 맞이한 것이다. 밤에
황하黃河를 건넜다.
注+밤에 건넌 것은 적인狄人에게 발각될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이때
위衛나라의
유민遺民은 남녀
도합都合 7백 30명이었고,
공共과
등滕의 백성까지 보태어 모두 5천 명이었다.
注+공共과 등滕은 위衛나라의 별읍別邑이다.
대공戴公을 임금으로 세우고서
조읍曹邑에
거주居住하니,
注+여廬는 머무름이다. 조曹는 위衛나라의 하읍下邑(小邑)이다. 대공戴公은 이름이 신申으로 즉위卽位한 그 해에 졸卒하고, 문공文公이 즉위卽位하였다. 허목부인許穆夫人이 ‘
재치시載馳詩’를 지었다.
注+재치載馳는 《시경詩經》 〈위풍衛風〉의 시詩이다. 허목부인許穆夫人은 위국衛國의 패망敗亡이 가슴 아파 조읍曹邑으로 가서 위후衛侯를 위로하고자 하였으나, 허許나라 대부의 저지沮止로 갈 수 없었기 때문에 이 시詩를 지어 자기의 뜻을 말한 것이다.
제후齊侯가
공자公子무휴無虧에게
병거兵車 3백
승乘과
갑사甲士 3천 인을 거느리고 가서
조읍曹邑을 지키게 하였다.
注+무휴無虧는 제환공齊桓公의 아들 무맹武孟이다. 병거兵車 1 승乘에 배정配定한 갑사甲士의 수가 정상의 제도制度와 다르기 때문에 전傳에 특별히 드러낸 것이다.
그리고 다시
대공戴公에게 말 4
필匹과
제복祭服 다섯 벌과 소‧양‧돼지‧닭‧개 각각 3백 마리와
문재門材를 보내 주고,
注+귀歸는 보내는 것이다. 네 필匹의 말을 승乘이라 하고, 홑옷과 겹옷이 갖추어진 것을 한 벌이라 한다. 문재門材를 보내어 먼저 문호門戶를 세우게 한 것이다.[부주]林: 재목材木이다.부인夫人에게는
어헌魚軒注+어헌魚軒은 부인夫人이 타는 수레로 어피魚皮로 장식한 것이다.과
중금重錦 30
양兩을
注+중금重錦은 생사生絲가 아닌 숙사熟絲로 세밀하게 짠 비단이다. 20 척尺이 겹으로 포개졌기 때문에 양兩이라 한다. 30양兩은 30필匹이다. 보내 주었다.
傳
정인鄭人이 고극高克을 미워하여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황하黃河가에 주둔하게 하고는 오래도록 부르지 않으니, 군대가 흩어져 돌아갔다.
그러므로
고극高克도
진陳나라로 도망갔다.
注+고극高克은 정鄭나라 대부이다. 이익만을 좋아하고 그 임금을 돌보지 않으니, 정문공鄭文公이 그를 미워하였으나 멀리할 수가 없었다. 그러므로 군대를 거느리게 하고는 부르지 않은 것이다.
정인鄭人이 그를 위하여 ‘
청인淸人’
시詩를 지었다.
注+청인淸人은 《시경詩經》 〈정풍鄭風〉의 시詩이다. 문공文公이 신하를 정당한 도리로 물리치지 않아 나라를 위태롭게 하고 군대를 잃는 장본張本이 되었기 때문에 이 시詩를 지어 풍자諷刺한 것이다.
傳
진후晉侯가
태자太子신생申生을 보내어
동산東山의
고락씨皐落氏를
토벌討伐하게 하자,
注+적적赤狄의 별종別種이다. 고락皐落은 그 씨족氏族이다. 이극里克이
간諫하기를 “태자는
종묘宗廟와
사직社稷의 제사를 받들고
注+이극里克은 진晉나라 대부이다. 총冢은 대大이다. 조석朝夕으로 임금의 음식을 살피는 자입니다.
注+선膳은 주선廚膳(飮食)이다.
임금이
외출外出하면 태자는 남아서 나라를
수호守護하고 달리
수호守護할 사람이 있으면 임금을 따라가는데, 따라가는 것을 ‘
무군撫軍’이라 하고 수호하는 것을 ‘
감국監國’이라 하는 것이 옛날의 제도입니다.
注+[부주]林: 임금이 조회朝會나 정벌征伐로 출행出行하는 일이 있으면 태자太子는 임금을 대신해 나라를 지키고, 임금이 대신大臣에게 나라를 지키게 하면 태자太子는 임금을 수행隨行한다. 태자太子가 임금을 수행할 경우 ‘무군撫軍’이라 호칭號稱하니, 임금을 도와 사졸士卒을 진무鎭撫(安撫)한다는 말이고, 태자太子가 나라를 지킬 경우 ‘감국監國’이라 호칭하니, 임금을 대신해서 국가國家를 감림監臨(감독)한다는 말이다.
군대를 거느리고
전장戰場에 임하여
계책計策을
전단專斷하고
注+군대를 거느린 자는 반드시 군사軍事를 전단專斷해야 한다. 군대에게 호령을 내리는 것은
注+호령號令을 선포宣布하는 것이다. 임금과
국정國政이
도모圖謀할 일이지
태자太子의 일이 아닙니다.
注+국정國政은 정경正卿이다.
군대는
제명制命에 달렸을 뿐인데,
注+명령命令은 장군이 제정制定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모든 일을 임금께 여쭈어 행하면
위엄威嚴이 없고, 그렇다고 마음대로 명령을 내리면
불효不孝가 됩니다.
그러므로 임금의 적자適子는 군대를 거느릴 수 없는 것입니다.
임금께서는
관원官員을
임명任命하는 법도를 잃고,
태자太子는 군대를 거느려도
위엄威嚴이 없다면 장차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注+태자太子가 군대를 통솔統率하면 관원官員을 임명하는 법도法度를 잃는 것이고, 태자太子가 군대를 거느리고서 마음대로 명령을 내리면 불효不孝가 되니, 태자太子가 장수가 되더라도 반드시 위엄威嚴이 없을 것이라는 말이다.
또 신은 듣건대
고락씨皐落氏가 전쟁하려 한다 하니, 임금님께서는
태자太子를 보내지 마소서.”라고 하니,
注+[부주]주왈朱曰태자太子가 출전出戰하면 죽거나 부상負傷할 염려가 있는데, 임금은 어찌하여 태자太子신생申生에게 내린 명령을 회수回收하여 출전出戰하지 말도록 하지 않느냐는 말이다. 진헌공晉獻公이 말하기를 “
과인寡人에게는 자식이 많은데 누구를
후사後嗣로 세워야 할지를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고 하였다.
注+[부주]朱: 내가 죽은 뒤에 누구를 임금으로 세워야 할지를 모르기 때문이라는 말이니, 이는 헌공獻公이 태자太子를 폐廢하려는 뜻을 약간 드러낸 것이다.
이 말을 들은 이극里克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물러 나왔다.
傳
이극里克이
태자太子를
알현謁見하자,
태자太子가 “내가
폐출廢黜되겠던가?”라고 물었다.
注+[부주]林: 태자太子도 헌공獻公이 자기를 폐출廢黜하려 한다는 것을 헤아려 알았기 때문에 이렇게 물은 것이다.
이극里克이 대답하기를 “임금께서
태자太子께 백성 다스리는 일로
고告하셨고,
注+곡옥曲沃에 거주居住하게 한 것을 이른다. 또
태자太子께 군대의 일로
명命하셨으니,
注+하군下軍을 거느리게 한 일을 이른다. 태자太子께서는
직무職務를 완수하지 못할까만을 염려해야지 무엇 때문에
폐출廢黜될 것을 염려하십니까.
注+[부주]林: 태자太子는 책임責任이 중대重大하니 그 직무職務를 완수完遂하지 못할까만을 두려워할 것이지 무엇 때문에 폐립廢立의 일을 두려워하느냐는 말이다.
그리고 태자太子께서는 아들이시니, 불효不孝만을 걱정하고 후사가 되지 못할 것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몸을 닦고 남을 책망하지 않는다면 화난禍難을 면할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태자가 군대를 거느리고
출정出征하려 할 때에
헌공獻公이
태자太子에게
편의偏衣를 입히고
注+편의偏衣는 좌우左右의 색깔이 다른 옷으로 그 반쪽의 색깔이 헌공獻公의 복색服色과 같은 것이다. 금결金玦을 채워 주었다.
注+금결金玦은 쇠로 만든 결玦이다.
호돌狐突이
융거戎車를 몰고
선우先友가
거우車右가 되고,
注+호돌狐突은 자字가 백행伯行으로 중이重耳의 외조부外祖父인데, 신생申生의 어御가 된 것은 신생申生이 태자太子로서 상군上軍을 거느렸기 때문이다. 양여자양梁餘子養이
한이罕夷의 수레를 몰고
선단목先丹木이
거우車右가 되고,
注+한이罕夷는 진晉나라의 하군下軍을 거느린 경卿이다. 양여자양梁餘子養이 한이罕夷의 어御가 된 것이다. 양설대부羊舌大夫가
위尉가 되었다.
注+양설대부羊舌大夫는 숙향叔向의 조부祖父이다. 위尉는 군위軍尉이다.
선우先友가 말하기를 “절반이 자신의
복색服色과 같은 옷을 입히고,
注+편偏은 반半이다. 병권兵權을 쥐어주셨습니다.
注+금결金玦을 차고 상군上軍을 거느린 것을 이른다.
성패成敗가 이번 출전出戰에 달렸으니 태자太子께서는 노력하십시오.
절반이
공복公服의 색깔과 같은 옷을 입힌 것은
악의惡意가 없다는 것이고,
注+자기 옷의 절반을 나누어 태자太子에게 입힌 것은 악의惡意가 아니다.[부주]朱: 임금의 옷의 절반을 나누어 태자太子에게 입힌 것은 악의惡意가 아니다. 병권兵權을 쥐어준 것은
화禍를 멀리하게 한 것입니다.
注+위세威勢와 권한權限이 나에게 있으면 해害를 멀리할 수 있다.
임금님께서
태자太子를 이처럼
친애親愛하여
화禍를 멀리하게 하셨으니, 또 무엇을 걱정하십니까.
注+[부주]朱: 임금이 자기 옷의 절반을 나누어 입혀 친애親愛하고, 또 재해災害를 멀리하게 하였으니, 근심할 것이 없다는 말이다.”라고 하였다.
그러자
호돌狐突이
탄식歎息하기를 “
시령時令은 일의
징조徵兆이고,
注+선우先友가 임금의 마음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탄식한 것이다. 옷은
신분身分의
문장文章이고,
注+귀천貴賤을 드러내는 것이다. 패식佩飾은 마음의
기치旗幟이다.
注+기旗는 표表이니, 그 중심中心을 표명表明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임금이 그 일을 중요하게 여기면
시始(四時의
전반前半인
춘하春夏)에 명령을 내리고,
注+상賞은 봄과 여름에 주어 권면勸勉한다.[부주]林: 임금이 만약 태자의 일을 중요하게 여겼다면 봄과 여름에 상을 주어 권면하는 뜻에 따라 사시四時의 초기初期(春夏)에 명했어야 했다는 말이다. 그 몸에 옷을 입히면
순색純色의 옷을 입히고,
注+반드시 순색純色으로 옷을 만든다는 말이다. 그 사람의
충심衷心을 신용하면
법도法度에 맞는
패식佩飾을 채우는 것이다.
注+충衷은 중中이다. 옥玉을 차는 것은 사군자士君子의 상도常度이다.[부주]林: 임금이 만약 태자太子의 충심衷心을 신용信用하였다면 사군자士君子의 상도常度에 맞도록 옥결玉玦을 채웠을 것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지금
헌공獻公은 한 해가 끝나가는 때에 명령을 내렸으니 그 일을 막히게 한 것이고,
注+겨울 12월은 한 해가 비진閟盡(끝남)하는 때이다.[부주]朱: 지금 한 해가 시작하는 때에 명하지 않고 겨울 12월에 명하였으니, 이것이 바로 한 해가 끝나가는 때라는 말이다. 잡색雜色 옷을 입혔으니
태자太子를 멀리한 것이고,
注+방尨은 잡색雜色이다.[부주]林: 태자太子에게 잡색雜色 옷을 입혀 멀리하는 뜻을 보였으니, 옷이라 할 수 없다.금결金玦을 채웠으니
태자太子의
충심衷心을 버린 것이다.
잡색雜色 옷을 입혀 멀리하는 뜻을 보이고, 한 해가 끝나가는 때에
명命을 내려 일을 막히게 하였으며, 잡색은
냉정冷情을, 겨울은
숙살肅殺을,
금金은
한랭寒冷을,
결玦은
결별訣別를 뜻하니, 어찌 믿을 수가 있겠는가.
注+냉정冷情‧한랭寒冷‧숙살肅殺‧이별離別은 온화溫和하고 부드러움이 없다는 말이다. 결玦은 고리 같으면서도 중간이 끊겨 이어지지 않는다.[부주]朱: 잡색을 사용해 지은 옷에는 박절迫切의 뜻이 있고, 한겨울에 내린 명命에는 숙살肅殺의 뜻이 있다. 금金은 서방西方에 속屬한 물건으로 그 성질이 강하고 차다. 결玦은 결訣이니 이별離別의 뜻이 있다.
아무리 노력하고자한들 적인狄人을 전멸全滅할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양여자양梁餘子養이 말하기를 “군대를 거느린 자는
종묘宗廟에서 명령을 받고
사社에서
제육祭肉을 받을 때에
注+신脤은 의사宜社에 올리는 고기를 신기脤器에 담은 것이다. 법도法度에 맞는
복장服裝이 있는 것인데, 법도에 맞는 복장을 받지 못하고
잡색雜色 옷을 받았으니 임금의 명을 알 만하다.
注+위변복韋弁服이 군대의 상복常服이다. 방尨은 편의偏衣이다.[부주]朱: 임금의 명命이 이와 같으니 그 뜻을 알 만하다는 말이다.
죽어서
불효不孝가 되느니 차라리 도망가는 것이 낫다.
注+[부주]林 : 비록 죽어서 아비에게 자식을 죽였다는 오명惡名을 끼치는 것도 오히려 불효不孝가 된다는 말이다.”고 하였다.
한이罕夷가 말하기를 “잡색의
기괴奇怪한 옷은
상도常度에 맞지 않고,
注+잡색雜色은 기괴奇怪하니 정상正常의 옷이 아니라는 말이다.금결金玦은 돌아오지 말라는 뜻이니, 비록 돌아온다 하더라도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임금은 이미 딴 마음을 가졌다.
注+태자를 해칠 마음이 있다는 말이다.”라고 하였다.
선단목先丹木이 말하기를 “
注+조阻는 의심함이니, 미친 사람도 오히려 의심한다는 말이다. ‘적을 다 죽이고 돌아오라.’고 하니,
注+왈曰은 헌공獻公의 말이다. 적을 다 죽일 수 있겠는가.
비록 적을 다 죽인다 하더라도
내부內部의
참언讒言이 있을 것이니, 도망가는 것만 못하다.
注+위違는 나라를 버리고 떠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호돌狐突이 태자를 모시고 도망가려 하자,
注+행行도 떠나는 것이다.양설대부羊舌大夫가 말하기를 “옳지 않습니다.
부명父命을 어기는 것은
불효不孝이고
직무職務를 버리는 것은
불충不忠이니, 임금의 마음이
냉담冷淡하다는 것을 알았다 하더라도
불효不孝불충不忠의
악惡을 취해서는 안 되니
태자太子께서는 이번 전쟁에서 죽으십시오.
注+한寒은 박정薄情함이다.[부주]朱: 비록 임금의 마음이 차갑고 박정함을 알았다 하더라도 나라를 떠나는 것은 불효不孝‧불충不忠의 오명惡名을 취하는 것이라는 말이다.”라고 하였다.
태자太子가 전쟁戰爭하려 하자 호돌狐突이 간諫하기를 “안 됩니다.
옛날
신백辛伯이
주환공周桓公에게 고하기를
注+심諗은 고告함이다. 이 일은 환공桓公 18년 전傳에 보인다. ‘
내총內寵의
권위權威가
왕후王后와 대등하고
외총外寵의
권세權勢가
정경正卿과 같고,
폐자嬖子의 위치가
적자嫡子와 비슷하고
대도大都의
성城이
국도國都의
성城과 같은 것은
화란禍亂의 근본이다.’고 하였으나,
주공周公이 이 말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에
화란禍亂에 미쳤습니다.
지금
진晉나라에는
환란患亂의
근본根本이
형성形成되었으니
注+여희驪姬가 내총內寵이고, 이오二五가 외총外寵이고, 해제奚齊가 폐자嬖子이고, 곡옥曲沃이 대도大都이다. 그러므로 화란禍亂의 근본이 형성形成되었다고 한 것이다.태자太子께서 임금이 되는 것을 어찌 기필할 수 있겠습니까.
注+전쟁戰爭에 나가 공功을 세우면 더욱 해害을 당할 것이므로 “몸을 위태롭게 하여 죄罪를 부르는 것이 ‘효이안민孝而安民’하는 것과 비교해 어느 편이 나으냐.”고 한 것이다.
傳
성풍成風이
성계成季가
출생出生할 때 점친
점괘占卦의 풀이를 듣고는
성계成季와
교분交分을 맺고서
注+성풍成風은 장공莊公의 첩妾으로 희공僖公의 어머니이다. 요繇(주)는 점괘占卦에 나타난 징조徵兆를 풀이한 말이다.희공僖公을 그에게 부탁하였다.
그러므로 성계成季가 희공僖公을 임금으로 세운 것이다.
傳
희공僖公원년元年에
제환공齊桓公이
형국邢國을
이의夷儀로 옮기고,
희공僖公 2년에
위국衛國을
초구楚丘에 봉하였는데,
형인邢人들은 자기들의 본국으로 돌아가듯이 기뻐하였고,
위인衛人들은 자기들의 나라가 멸망된 것을 잊었다.
注+나라가 멸망滅亡된 고통苦痛을 잊었다는 말이다.
傳
위문공衛文公이 거친 베옷에 거친 명주로 지은 모자를 쓰고서
注+대포大布는 거친 베이고, 대백大帛은 두꺼운 명주이니, 제후諸侯가 상중喪中에 입는 옷을 착용着用한 것인 듯하다. 힘써
목재木材를
축적蓄積하고
농사農事를 가르치며,
注+[부주]朱: 목재木材를 축적蓄積하고 농사農事를 가르친 것이다. 물자를
유통流通시키고
공인工人을
우대優待하며,
注+공인工人에게 더욱 혜택惠澤을 입혀 기용器用을 편리하게 만들도록 상賞(勸獎)한 것이다. 교육敎育을 중시하고
학문學問을 권장하며,
注+[부주]朱: 오교五敎(五倫)를 중시하고 백성들에게 학문學問을 하도록 권장한 것이다. 관리官吏의
도리道理를 가르쳐 능력 있는 자를
임용任用하니,
注+방方은 모든 일에 알맞은 도리이다. 희공僖公 원년에 30
승乘이던
병거兵車가
계년季年에는 3백
승乘이 되었다.
注+위문공衛文公이 이해 겨울에 즉위하였고, 제환공齊桓公이 이해에 비로소 노魯나라의 난리를 평정하였으므로 전傳에 제환공齊桓公이 패자覇者가 된 까닭과 위衛나라가 부흥復興한 까닭을 말한 것이다. 혁거革車는 병거兵車이다. 계년季年은 노희공魯僖公 25년이다. 위문공衛文公이 이산離散한 백성들을 불러 모아 회유懷柔하였기 때문에 백성을 10 배로 늘릴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