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春秋左氏傳(2)

춘추좌씨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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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좌씨전(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經]二十有五年春王正月丙午 衛侯燬滅邢하다注+衛邢同姬姓 惡其親親相滅 故稱名罪之
25년 봄 주왕周王정월正月병오일丙午日위후衛侯나라를 격멸擊滅하였다.注+나라와 나라는 같은 희성국姬姓國이다. 친족親族끼리 서로 격멸擊滅한 것을 미워하였다. 그러므로 ‘’라고 이름을 칭하여 를 돌린 것이다.
[經]夏四月癸酉 衛侯燬卒하다注+無傳 五同盟
여름 4월 계유癸酉위후衛侯하였다.注+이 없다. 나라와 다섯 번 동맹同盟하였다.
[經]宋蕩伯姬來逆婦하다注+無傳 伯姬 魯女 爲宋大夫蕩氏妻也 自爲其子來逆 稱婦 姑存之辭 婦人越竟迎婦 非禮 故書
나라 탕백희蕩伯姬가 와서 며느리를 맞이하였다.注+백희伯姬나라 딸로 나라 대부大夫탕씨蕩氏의 아내가 된 자인데, 스스로 그 아들을 위해 와서 며느리를 맞이한 것이다. ‘며느리’라는 호칭은 시어머니가 생존生存했을 때 쓰는 말이다. 부인婦人국경國境을 넘어 가서 며느리를 맞이하는 것은 가 아니다. 그러므로 기록한 것이다.
[經]宋殺其大夫하다注+無傳 其事則未聞 於例爲大夫無罪 故不稱名
나라가 그 대부大夫를 죽였다.注+이 없다. 무슨 일로 죽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에 의하면 대부大夫무죄無罪하기 때문에 이름을 칭하지 않은 것이다.
[經]秋 楚人圍陳하야 納頓子于頓하다注+頓迫於陳而出奔楚 故楚圍陳以納頓子 不言遂 明一事也 子玉稱人 從告 頓子不言 興師見納故
가을에 초인楚人나라를 포위하여 돈자頓子나라로 들여보냈다.注+돈자頓子나라의 핍박逼迫으로 나라로 출분出奔하였기 때문에 나라가 나라를 포위하고서 돈자頓子나라로 들여보낸 것이다. ‘드디어[遂]’라고 말하지 않은 것은 동일同一한 일임을 밝힌 것이다. 자옥子玉을 ‘’으로 칭한 것은 통고通告한 문서의 기록을 따른 것이다. 돈자頓子가 ‘돌아갔다[歸]’고 말하지 않은 것은 군사를 일으켜 들여보냈기 때문이다.
[經]葬衛文公하다注+無傳
위문공衛文公을 장사 지냈다.注+이 없다.
겨울 12월 계해일癸亥日위자衛子거경莒慶회합會合하여 에서 결맹結盟하였다.注+나라 땅이다. 위문공衛文公을 이미 장사 지냈는데도 성공成公을 칭하지 않은 것은 성공成公이 아버지 문공文公의 뜻을 계승하기 위해 명칭名稱을 낮추어 미성군未成君를 따랐기 때문에 ‘’라고 기록하여 그를 훌륭하게 여긴 것이다. 거경莒慶를 칭하지 않은 것은 아직 (氏)을 하사下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傳]二十五年春 衛人伐邢하니 二禮從國子巡城注+[附注] 林曰 二禮 禮至兄弟也 從國子巡城 申警守備이라가 掖以赴外하야 殺之하다注+[附注] 林曰 手掖國子以赴外師
25년 봄에 위인衛人나라를 토벌하니 두 국자國子를 따라 순시巡視하다가注+[부주]林: 이례二禮예지禮至 형제이다. 국자國子를 따라 성을 순시하며 수비守備경계警戒한 것이다. 두 사람이 좌우에서 국자國子의 겨드랑이를 끼고 성밖으로 나와 살해殺害하였다.注+[부주]林: 손으로 국자國子의 팔을 잡고서 성밖의 위군진영衛軍陣營으로 나온 것이다.
正月丙午 衛侯燬滅邢이라하니 同姓也 故名하다
에 “정월正月병오일丙午日위후衛侯나라를 하였다.”고 기록하였으니, 동성국同姓國하였기 때문에 ‘’라고 이름을 기록한 것이다.
禮至爲銘曰 余掖殺國子하니 莫余敢止라하다注+惡其不知恥詐 以滅同姓 而反銘功於器 [附注] 林曰 莫我敢止 言其勇也
예지禮至명문銘文을 짓기를 “내가 국자國子를 끼고 나와 죽이니 누구도 감히 나를 막지 못하였다.”注+예지禮至가 속임수를 써서 동성국同姓國한 것이 부끄러운 줄을 모르고 도리어 그 기물器物에 새긴 것을 미워한 것이다. [부주]林: 누구도 감히 나를 막지 못했다는 것은 자기의 용맹을 말한 것이다.고 하였다.
[傳]秦伯師于河上하야 將納王이어늘 狐偃言於晉侯曰 求諸侯ᄂ댄 莫如勤王注+勤納王也이니
진백秦伯이 군대를 황하黃河 가에 주둔시키고서 호송護送경사京師로 들여보내려고 하자, 호언狐偃진후晉侯에게 말하기를, “제후의 패자霸者가 되기를 구하려면 왕사王事진력盡力하는 것만 한 게 없습니다.注+경사京師로 들여보내는 일에 진력盡力하는 것이다.
諸侯信之 且大義也니이다
제후諸侯신임信任할 것이고 또 대의大義에도 부합합니다.
繼文之業하야 而信宣於諸侯ᄂ댄 今爲可矣니이다注+晉文侯仇爲平王侯伯 匡輔周室 [附注] 林曰 勤王之信義 宣布於諸侯
문후文侯공업功業을 계승하여 제후諸侯에게 신의信義선양宣揚하려면 지금이 기회입니다.”注+진문후晉文侯주평왕周平王후백侯伯이 되어 나라 왕실王室보좌輔佐[匡輔]하였다. [부주]林: 왕사王事진력盡力하는 신의信義제후諸侯선포宣布한다는 말이다.라고 하였다.
使卜偃卜之한대 曰 吉하니
문공文公복언卜偃에게 거북점을 치게 하니, 복언卜偃이 “합니다.
遇黃帝戰于阪泉之兆니이다注+黃帝與神農之後姜氏戰于阪泉之野 勝之 今得其兆 故以爲吉
황제黃帝판천阪泉에서 싸울 때의 징조徵兆를 만났습니다.”注+황제黃帝신농神農의 후손 강씨姜氏판천阪泉의 들판에서 전쟁해 승리하였는데, 지금 그 징조를 얻었기 때문에 하다고 말한 것이다. 라고 하였다.
公曰 吾不堪也注+文公自以爲己當此兆 故曰不堪 對曰 周禮未改하니 今之王 古之帝也니이다注+言周德雖衰 其命未改 今之周王自當帝兆 不謂晉
이 “내가 감당할 수 없다.”고 하니注+문공文公은 이 징조가 자기에게 해당한 것으로 여겼기 때문에 ‘감당할 수 없다.’고 한 것이다. 복언卜偃이 “주례周禮가 아직 바뀌지 않았으니 지금의 은 옛날의 입니다.”注+나라의 이 비록 하였지만 천명天命이 바뀌지 않았으니, 지금의 주왕周王황제黃帝의 조짐에 해당한다는 말이고 나라를 가리킨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라고 하였다.
公曰 筮之하라 筮之하야 遇大有☲☰注+乾下離上 大有之睽☲☱하다注+兌下離上 睽 大有九三變而爲睽
이 “시초 점을 치라.”고 하니 복언卜偃이 시초 점을 쳐서 대유大有☲☰注+하괘下卦이고 상괘上卦인 것이 대유大有이다.☲☱注+하괘下卦이고 상괘上卦인 것이 이다. 대유大有구삼효九三爻가 변하여 가 된 것이다.로 변한 를 만났다.
하니이다
복언卜偃이 말하기를, “합니다.
遇公用享于天子之卦注+大有九三爻辭也 三爲三公而得位 變而爲兌 兌爲說 得位而說 故能爲王所宴饗하니 戰克而王饗이면 吉孰大焉이릿가注+協吉
천자天子의 접대를 받는 를 만났으니,注+이것은 대유괘大有卦구삼효사九三爻辭이다. 삼공三公를 얻은 것인데 변하여 가 되었다. 이니 를 얻고서 기뻐하는 이다. 그러므로 연향宴饗(접대)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전쟁에 승리하고서 왕의 접대를 받는다면 이보다 큰 길사吉事가 어디 있겠습니까?注+거북점과 시초점이 모두 하다는 말이다.
且是卦也注+方更摠言二卦之義 不繫於一爻 天爲澤以當日하니 天子降心以逆公이니이다
또 이 注+의 뜻을 한 데 묶어 말한 것이고, 한 에 매어 말한 것이 아니다. 하늘(乾)이 연못(兌)이 되어 햇볕(離)을 받고 있으니 천자天子가 마음을 낮추고서[降心]영접迎接하는 입니다.
不亦可乎잇가注+乾爲天 兌爲澤 乾變爲兌 而上當離 離爲日 日之在天 垂曜在澤 天子在上 說心在下 是降心逆公之象
이 또한 좋지 않습니까?注+은 하늘이고 는 연못인데 이 변하여 가 되어 위로 해를 이고 있다. 는 해인데 하늘에 있는 해가 연못을 비추는 것이 위에 있는 천자가 아래에 있는 사람의 마음을 기뻐하는 이니, 이것이 바로 천자天子가 마음을 낮추어 영접迎接하는 이다.
亦其所也니이다注+言去睽卦 還論大有 亦有天子降心之象 乾尊離卑 降尊下卑 亦其義也
대유大有규괘睽卦로 변하였으나 끝내는 본괘本卦회복回復하는 것이 당연한 이치입니다.”注+규괘睽卦를 버리고 도로 대유괘大有卦로 논하더라도 천자天子강심降心하는 이 있다. 존귀尊貴하고 비천卑賤한데 존귀尊貴한 몸을 굽혀 비천卑賤한 사람에게 낮추는 것도 ‘천자강심天子降心’의 뜻이라는 말이다.라고 하였다.
晉侯辭秦師而下注+辭讓秦師使還 順流故曰下 [附注] 朱曰 蓋欲自專納王之功也하야
진후晉侯진군秦軍에게 사양하고서 물길을 따라 내려갔다.注+진군秦軍에게 사양하여 돌려보내고서 물을 따라 내려갔기 때문에 ‘’라고 한 것이다. [부주]朱: 을 들여보낸 공을 독차지하기 위해서이다.
三月甲辰 次于陽樊注+[附注] 林曰 晉師次于周地陽樊하야 右師圍溫注+大叔在溫故하고 左師逆王하다
3월 갑진일甲辰日양번陽樊에 주둔하여注+[부주]林: 진군晉軍나라 땅 양번陽樊에 주둔한 것이다.우군右軍을 포위하고注+태숙太叔에 있기 때문이다.좌군左軍을 맞이해 들였다.
[傳]夏四月丁巳 王入于王城하야 取大叔于溫하야 殺之于隰城하다注+[附注] 朱曰 晉人殺之也
여름 4월 정사일丁巳日왕성王城으로 들어가서 태숙太叔에서 잡아 습성隰城에서 죽였다.注+[부주]朱: 진인晉人이 죽인 것이다.
戊午 晉侯朝王하니 王享醴하고 注+旣行 而設醴酒 又加之以幣帛 以助也 宥 助也하다
무오일戊午日진후晉侯조현朝見하니 이 단술을 접대하고 하였다.注+향례享禮를 거행한 뒤에 단술을 접대하고 또 추가로 폐백幣帛을 내려 기쁨을 도운 것이다. 는 돕는 것이다.
請隧어늘 弗許注+ 王之葬禮也 諸侯皆縣柩而下 曰 王章也注+章顯王者與諸侯異
문공文公수장隧葬을 청하자, 은 허락하지 않으며注+땅에 굴을 파서 통로通路을 만드는 것을 ‘’라 하는데 이는 장례葬禮이다. 제후諸侯는 모두 영구靈柩를 밧줄에 매달아 하관下棺한다. 말하기를, “이는 전장典章(制度)이다.注+왕자王者전장典章제후諸侯와 다르다는 것을 드러낸 것이다.
而有二王 亦叔父之所惡也注+[附注] 林曰 言周德雖衰 天下未有代周之德者 而晉欲擬天子之禮 是有二王 天下而有二王 不惟諸侯惡之 雖晉侯亦自惡之 與之陽樊溫原欑茅之田하니 晉於是 始啓南陽하다注+在晉山南河北 故曰南陽
나라의 을 대신할 자가 나타나지도 않았는데 두 이 있는 것은 숙부叔父도 싫어할 것이다.”注+[부주]林: 나라의 덕이 비록 쇠하였으나, 천하에 아직 나라의 덕을 대신할 자가 나오지 않았는데, 진후晉侯천자天子를 사용하고자 한다면 이는 두 이 있는 것이 된다. 천하에 두 왕이 있는 것은 제후諸侯들이 싫어할 뿐만이 아니라 진후晉侯 스스로도 싫어할 것이라는 말이다.고 하고서, 양번陽樊찬모欑茅 등의 땅을 주니, 나라가 이때부터 비로소 남양南陽으로 영토를 개척開拓(擴張)하였다.注+나라의 산남수북山南水北에 있기 때문에 ‘남양南陽’이라 한 것이다.
陽樊不服이어늘 圍之한대 倉葛呼 曰注+倉葛 陽樊人 德以柔中國하고 刑以威四夷 宜吾不敢服也
양번인陽樊人이 복종하지 않자 진군晉軍이 포위하니, 창갈倉葛이 고함쳐 말하기를注+창갈倉葛양번인陽樊人이다.으로 중국中國회유懷柔하고 형벌刑罰사이四夷위협威脅하는 것인데, 우리를 무력으로 위협하니 우리가 복종하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此誰非王之親姻이완대 其俘之也注+[附注] 林曰 凡居此地者 誰非王室之親戚姻婭 若何執拘以爲俘囚
이곳의 주민住民 중에 친척親戚이 아닌 자가 누가 있기에 우리를 포로로 잡으려고 하는가?”注+[부주]林: 이 곳에 사는 자 중에 왕실王室친척親戚인척姻戚이 아닌 자가 누가 있느냐. 그런데 어째서 우리를 잡아 포로로 삼으려 하느냐는 말이다.고 하였다.
乃出其民하다注+取其土而已 [附注] 林曰 晉聞蒼葛之言 知不可强取 乃出陽樊之民 取其土而已
이에 진후晉侯는 그 곳의 백성을 축출逐出하였다.注+그 땅만을 취했을 뿐이다. [부주]林: 진후晉侯창갈倉葛의 말을 듣고는 억지로 취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서 양번陽樊주민住民들을 이주移住시키고 그 땅만을 취했을 뿐이다.
[傳]秋 秦晉伐鄀하다注+鄀本在商密 秦楚界上小國 其後遷於南郡鄀縣
가을에 나라와 나라가 나라를 토벌하였다.注+나라는 본래 상밀商密에 있는 나라와 나라의 경계 사이의 소국小國이었는데, 뒤에 남군南群약현鄀縣으로 옮겼다.
楚鬪克屈禦寇以申息之師戍商密하다注+鬪克 申公子儀 屈禦寇 息公子邊 商密 鄀別邑 今南鄕丹水縣 戍 守也 二子屯兵於析 以爲商密援
나라의 투극鬪克굴어구屈禦寇나라‧나라의 군대를 거느리고서 상밀商密을 지키고 있었다.注+투극鬪克신공申公자의子儀이고, 굴어구屈禦寇식공息公자변子邊이다. 상밀商密나라의 별읍別邑으로 지금의 남향南鄕단수현丹水縣이다. 이다. 두 사람이 에 군대를 주둔하고서 상밀商密후원後援한 것이다.
秦人過析타가 隈入而係輿人하야 以圍商密하고 昏而傅焉注+析 楚邑 一名白羽 今南鄕析縣 隈隱蔽之處 係縛輿人 詐爲克析得其囚俘者 昏而傅城 不欲令商密知囚非析人 [附注] 林曰 入而繫輿人 入隱處係縛其輿衆之人하야
진인秦人초병楚兵을 피해 대로大路를 버리고 으로 길을 잡아 통과通過하다가 후미진 물굽이로 들어가서 많은 사람을 결박結縛해 가지고 끌고 가서 상밀商密을 포위하고, 날이 어두워지자 성하城下로 가까이 다가갔다.注+나라 으로 일명一名백우白羽인데, 지금의 남향南鄕석현析縣이다. 은폐隱蔽된 곳이다. 많은 사람을 결박結縛한 것은 에서 승전勝戰하고서 포로로 잡은 것처럼 위장하기 위함이고, 어두워진 뒤에 성 밑으로 다가간 것은 상밀인商密人이 그 결박된 자들이 석인析人이 아님을 알아보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부주]林: 들어가서 많은 사람을 결박한 것은 후미진 곳으로 들어가서 많은 아군我軍을 결박한 것이다.
坎血加書하고 僞與子儀子邊盟者注+하니 商密人懼曰 秦取析矣
밤이 되자 구덩이를 파고 희생犧牲을 잡아 피를 마시고서 맹서盟書를 희생 위에 올려놓고서 자의子儀자변子邊결맹結盟하는 것처럼 위장僞裝하니,注+땅을 파서 구덩이를 만들어 맹약盟約에 쓰고 남은 피를 그 구덩이에 묻고서 맹서盟書를 그 위에 올려놓는 것이다.상밀인商密人이 두려워하며 말하기를, “진군秦軍이 이미 을 취하였다.
戍人反矣라하고 乃降秦師하다注+[附注] 林曰 見縛囚 故疑取析 見盟徵 故疑二子已輿衆反叛
수인戍人이 우리를 배반背叛하였다.”고 하고서 진군秦軍투항投降하였다.注+[부주]林: 결박된 포로를 보았기 때문에 을 취한 것으로 의심한 것이고, 결맹하는 증거를 보았기 때문에 자의子儀자변子邊 두 사람이 이미 무리와 함께 배반한 것으로 의심한 것이다.
秦師囚申公子儀息公子邊以歸하다注+商密旣降 析戍亦敗 故得囚二子
진군秦軍신공申公자의子儀식공息公자변子邊포로捕虜로 잡아 데리고 돌아갔다.注+상밀商密이 항복한 뒤에 에 있던 나라의 수병戍兵패전敗戰하였기 때문에 진군秦軍이 두 사람을 포로로 잡은 것이다.
楚令尹子玉追秦師 弗及하다注+不復言晉者 秦爲兵主
나라의 영윤令尹자옥子玉진군秦軍을 추격하였으나 미치지 못하였다.注+다시 나라를 말하지 않은 것은 이번 전쟁에 나라가 군대를 지휘指揮했기 때문이다.
遂圍陳하야 納頓子于頓하다注+爲頓圍陳
드디어 나라를 포위하여 돈자頓子나라로 들여보냈다.注+나라를 위해 나라를 포위한 것이다.
[傳]冬 晉侯圍原할새 命三日之糧이러니 原不降이어늘 命去之하다
겨울에 진후晉侯을 포위할 때에 사흘 치의 식량만 가지고 가도록 명하였더니 사흘이 되어도 원인原人이 항복하지 않자 진후晉侯철군撤軍을 명하였다.
諜出注+諜間也曰 原將降矣라하니 軍吏曰 請待之하소서
이때 잠입潛入했던 첩자諜者가 나와서注+간첩間諜이다.원인原人이 항복하려 합니다.”고 하니, 군리軍吏가 “저들의 항복을 기다리소서.”라고 하였다.
公曰 信 國之寶也 民之所庇也注+[附注] 林曰 民無信不立 故以信庇其身 得原失信이면 何以庇之리오
이 말하기를, “은 나라의 보배로 백성들이 비호庇護(保護)받는 것인데,注+[부주]林: 백성이 이 없으면 스스로 존립存立할 수 없다. 그러므로 으로써 자기 몸을 보호하는 것이다.을 얻는다 하더라도 을 잃는다면 무엇으로 백성을 비호하겠는가?
所亡滋多注+[附注] 林曰 得原所得少 失信所失多라하고 退一舍而原降하다
잃는 것이 더욱 많을 것이다.”注+[부주]林: 원국原國을 얻는 것은 얻는 것이 적고, 을 잃는 것은 잃는 것이 많다는 말이다.라고 하고서 일사一舍를 물러나니 원인原人이 항복하였다.
遷原伯貫于冀注+伯貫 周守原大夫也 [附注] 林曰 遷之于晉地하고 趙衰爲原大夫하고 狐溱爲溫大夫하다注+狐溱 狐毛之子
진후晉侯원백原伯로 옮기고서注+원백原伯을 지키던 나라 대부大夫이다.[부주]林: 나라 땅으로 옮긴 것이다.조쇠趙衰원대부原大夫로, 호진狐溱온대부溫大夫로 삼았다.注+호진狐溱호모狐毛의 아들이다.
[傳]衛人平莒于我하다
위인衛人나라를 우리와 화평和平하도록 주선하였다.
十二月 盟于洮하니 脩衛文公之好 且及莒平也注+莒以元年酈之役怨魯 衛文公將平之 未及而卒 成公追成父志 降名以行事 故曰脩文公之好
12월에 에서 결맹結盟하였으니, 이는 위문공衛文公이 주선하려던 우호友好중수重修하고, 또 나라와 화평하기 위함이었다.注+나라는 희공僖公원년元年에 있었던 의 전쟁으로 인해 나라를 원수로 여겼다. 위문공衛文公이 두 나라를 화해和解시키려고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으니, 그 아들 성공成公이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 명칭名稱을 낮추고서 회맹會盟의 일을 주선하였다. 그러므로 에 “수문공지호脩文公之好”라고 한 것이다.
晉侯 問原守於寺人勃鞮注+勃鞮 披也한대 對曰 昔趙衰以壺飱從徑 餒而弗食이니이다注+言其廉且仁 不忘君也 徑 猶行也 [附注] 林曰 飱 餔也 水澆飯也 言趙衰昔者以壺承飯 從文公於行役 雖飢而不敢食
진후晉侯시인寺人발제勃鞮에게 원수原守(原의 태수太守) 선발選拔에 대해 물으니,注+발제勃鞮이다. 대답하기를, “전에 조쇠趙衰호손壺飱을 가지고 주군主君종행從行할 때 아무리 배가 고파도 먹지 않았습니다.”注+그는 청렴하고 어질어 임금을 잊지 않았다는 말이다. 이다. [부주]林: (저녁밥)인데 물에 말은 밥이다. 조쇠趙衰가 전에 병에 밥을 담아 가지고서 떠도는 문공文公을 따라 다닐 때 아무리 배가 고파도 감히 먹지 않았다는 말이다.고 하였다.
故使處原하다注+從披言也 衰雖有大功 猶簡小善以進之 示不遺勞
그래서 그를 대부大夫로 삼아 거처居處하게 하였다.注+의 말을 따른 것이다. 조쇠趙衰대공大功이 있었지만 오히려 작은 선행善行으로 발탁拔擢한 것은 작은 공로功勞도 잊지 않는다는 것을 보인 것이다.
역주
역주1 : 亡命한 임금을 本國이 맞이해 다시 임금으로 세우는 것을 ‘入’이라 하고, 망명에서 돌아와 復位하는 것을 ‘復歸’라 하고, 諸侯가 武力을 사용하지 않고 言語로 설득하여 들여보내는 것을 ‘歸’라 하고, 망명한 本人이 직접 군대를 거느리고 本國으로 쳐들어가는 것을 ‘復入’이라 한다. 〈成公 18년 傳〉
역주2 衛文公旣葬……未賜族 : 君의 生存時에는 嗣子를 ‘世子’라 칭하고, 군이 죽으면 아들 아무[子某]라 칭하고, 장사 지낸 뒤에는 ‘子’라 칭하고 해를 넘긴[踰年] 뒤에는 ‘公’이라 칭한다. 〈《春秋公羊傳》 莊公 32년〉. 先君이 죽고 嗣君이 뒤를 이으면 旣葬未葬에 관계없이 당년에는 ‘子’라 칭하고, 踰年하면 ‘爵’을 칭하는 것이 《春秋》의 例이다. 그런데 杜氏는 장사를 지내면 脫喪하는 것으로 誤認하여 ‘爵’을 칭하지 않고 ‘子’라고 칭한 이유를 衛文公이 莒나라와 魯나라의 和解를 주선하려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자, 成公이 아버지의 뜻을 이어 두 나라를 화해시키려고 이번 會盟을 주선하면서 스스로 喪中에 있는 것처럼 명칭을 낮춘 것으로 설명하였다. 宣公 11년에 陳成公이 辰陵의 會盟에 참여하였을 때 陳靈公의 葬前이었으나 踰年하였기 때문에 經에 ‘陳侯’라 기록하였고, 成公 3년 經에 “公이 晉侯‧宋公‧衛侯‧曹伯과 聯合하여 鄭나라를 토벌하였다.”고 기록하였는데, 이때 宋文公과 衛穆公이 모두 葬前이었으나 踰年하였기 때문에 宋共公과 衛定公의 爵을 기록한 것이다. 未成君은 아직 踰年하지 않아 정식으로 임금의 자리에 오르지 않은 때이다. 賜族은 隱公 8년 傳에 자세히 보인다.
역주3 古[吉] : 저본에는 ‘古’로 되어 있으나 《十三經注疏》本에 의거하여 ‘吉’로 바로잡았다.
역주4 卜筮 : 전쟁에 승리한다는 것은 거북점[卜]의 점괘이고, 왕이 접대한다는 것은 蓍草占[筮]의 점괘이다.
역주5 大有去睽而復 : 去를 버린다는 뜻으로 본 杜注의 해석은 옳지 않은 듯하다. 大有去睽는 大有之睽와 같은 말로 變의 뜻으로 보는 것이 옳다. 大有는 富有의 뜻으로 바로 天子를 의미하는 말이니, 天子가 지금은 나와 있지만 끝내는 돌아가게 된다는 말이다.
역주6 命之宥 : 莊公 28년 역주를 참고하기 바란다.
역주7 享禮 : 使臣이 朝聘한 나라의 임금에게 禮物을 進獻하는 儀式이다.
역주8 勸[歡] : 저본에는 ‘勸’으로 되어 있으나 《十三經注疏》本에 의거하여 ‘歡’으로 바로잡았다.
역주9 闕地通路曰隧 : 천자의 장례에는 棺이 크고 무겁기 때문에 멀리에서 壙까지 비스듬히 굴을 파서 통로를 만든 뒤에 그 통로를 이용해 관을 壙으로 밀어 넣는다.
역주10 未有代德 : 周나라를 대신할 王朝가 出現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역주11 掘地爲坎……加盟書其上 : 盟約의 儀式은 먼저 구덩이를 파고서 그 옆에서 희생을 잡아 왼쪽 귀를 잘라 소반에 담고, 피를 뽑아 그릇에 담는다. 그리고 盟書(載書)를 읽어 神에게 告한 뒤에 맹약에 참가한 사람들이 일일이 피를 조금씩 마시는데 이를 歃血이라 한다. 삽혈이 끝나면 盟書의 正本은 희생 위에 올려놓고서 그 희생과 함께 땅에 묻고, 맹약에 참가한 자들에게는 각각 副本 한 통씩을 주어 가지고 돌아가 간직하게 한다.

춘추좌씨전(2) 책은 2019.05.2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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