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春秋左氏傳(1)

춘추좌씨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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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좌씨전(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經]四年春王二月 夫人姜氏享齊侯于祝丘注+無傳 享 食(사)也 兩君相見之禮 非夫人所用 直書以見其失 祝丘 魯地하다
[經]三月 紀伯姬卒注+無傳 隱二年裂繻所逆者 內女唯諸侯夫人 卒葬皆書 恩成於敵體하다
[經]夏 齊侯陳侯鄭伯遇于垂注+無傳 [附注] 林曰 自參以上 非邦交之舊矣하다
[經]紀侯大去其國注+以國與季 季奉社稷 故不言滅 不見追逐 故不言奔 大去者 不反之辭하다
[經]六月乙丑 齊侯葬紀伯姬하다注+無傳 紀季入酅 爲齊附庸 而紀侯大去其國 齊侯加禮初附 以崇厚義 故攝伯姬之喪 而以紀國夫人禮葬之
[經]秋七月이라
[經]冬 公及齊人狩於禚注+無傳 公越竟與齊微者俱狩 失禮可知하다
[傳]四年春王三月 楚武王荊尸하야 授師孑焉以伐隨注+尸 陳也 荊 亦楚也 更爲楚陳兵之法 揚雄方言 孑者 戟也 然則楚始於此參用戟爲陳 [附注] 林曰 以戟授其師衆焉하다
將齊 入告夫人鄧曼曰 余心蕩注+將授兵於廟 故齊 蕩 動散也 [附注] 朱曰 齊者 其心湛然純一 武王將齊而心忽動散 故驚而入告夫人鄧曼也이라한대 鄧曼歎曰 王祿盡矣
盈而蕩 天之道也 先君其知之矣
故臨武事하야 將發大命 而蕩王心焉注+楚爲小國 辟陋在夷 至此武王始起其衆 僭號稱王 陳兵授師 志意盈滿 臨齊而散 故鄧曼以天地鬼神爲徵應之符 [附注] 朱曰 人生則心氣盛 故將死而蕩 天道盈虛與時消息 人亦如之하니
若師徒無虧하고 王薨於行이면 國之福也注+王薨於行 不死於敵
王遂行하야 卒於樠木之下注+樠木 木名하다
令尹鬪祈莫敖屈重除道梁溠하고 營軍臨隨하니 隨人懼하야 行成注+時秘王喪 故爲奇兵更開直道 溠水 在義陽厥縣西 東南入鄖水 梁 橋也 隨人不意其至 故懼而行成하다
莫敖以王命入盟隨侯하고 且請爲會於漢汭而還注+汭 內也 謂漢西하야
濟漢而後發喪하다
[傳]紀侯不能下齊하야 以與紀季注+不能降屈事齊 盡以國與季 明季不叛하다
紀侯大去其國하니 違齊難也注+違 辟也


4년 봄 주왕周王 2월에 부인夫人강씨姜氏축구祝丘에서 연회宴會를 열어 제후齊侯를 접대하였다.注+이 없다. 은 먹임이다. 두 나라 임금이 서로 회견會見하는 부인夫人이 행할 바가 아니므로 사실대로 기록하여 그 잘못을 드러낸 것이다. 축구祝丘나라 땅이다.
3월에 기국紀國으로 출가出嫁백희伯姬하였다.注+이 없다. 노은공魯隱公 2년에 열수裂繻가 와서 맞이해 간 나라의 딸이다. 나라의 딸 중에도 오직 제후諸侯부인夫人이 된 사람에 한해 을 모두 기록하니, 이는 은례恩禮가 신분이 대등한 사이에 성립成立되기 때문이다.
여름에 제후齊侯진후陳侯정백鄭伯에서 회합하였다.注+이 없다.[부주]林: 세 나라 이상이 회합하는 것은 국교國交의 옛 법도가 아니다.
기후紀侯가 영원히 그 나라를 떠났다.注+나라를 에게 물려주어 사직社稷을 받들었기 때문에 ‘멸망滅亡’이라 말하지 않았고, 축출당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도망감)이라 말하지 않았다. ‘대거大去’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말이다.
6월 을축일에 제후齊侯기백희紀伯姬를 장사 지냈다.注+이 없다. 기계紀季휴읍酅邑을 가지고 나라로 들어가서 부용국附庸國이 되었고 기후紀侯는 영원히 그 나라를 떠났으므로, 제후齊侯는 처음 귀부歸附한 나라에 대해 정해진 보다 등급을 높여 후덕厚德융숭隆崇히 대우하려 하였다. 그러므로 백희伯姬을 대신 치러 기국紀國부인夫人로 장사지낸 것이다.
가을 7월이다.
겨울에 장공莊公제인齊人에서 사냥하였다.注+이 없다. 장공莊公이 국경을 넘어가 나라의 미천微賤한 자와 함께 사냥하였으니, 실례失禮를 알 만하다.
4년 봄 주왕周王 3월에 초무왕楚武王이 ‘형시荊尸’라는 진법陣法을 만들어 군대에게 창을 나누어주어 그 창을 들고 가서 수국隨國토벌討伐하게 하려 하였다.注+이고, 이니, 초국楚國이 기존의 진법陳法을 고쳐 새로운 진병법陳兵法(군대를 배열排列하는 법)을 만든 것이다. 양웅揚雄의 《방언方言》에 ‘’은 ‘’이라고 하였으니, 그렇다면 나라가 이때에 비로소 창을 든 군대[戟手]를 섞어서 진병법陳兵法을 만든 것이다.[부주]林: 창을 그 군대들에게 나누어 준 것이다.
무왕武王재계齋戒하려다 말고 내전內殿으로 들어가 부인 등만鄧曼에게 말하기를 “내 마음이 흔들리오.”라고 하니,注+장차 종묘에서 군사들에게 무기武器를 나누어 주려 하였기 때문에 재계한 것이다. 은 움직여 흩어지는 것이다.[부주]朱: 재계齋戒할 때는 그 마음이 맑고 순일純一해야 하는데, 무왕武王재계齋戒하려 할 때 마음이 갑자기 흔들려 산란하였기 때문에 놀라서 내전內殿으로 들어가 부인 등만鄧曼에게 한 것이다.등만鄧曼이 탄식하며 말하기를 “복록福祿이 다해서 그런 것입니다.
가득 차면 흔들리는 것이 자연의 도리이니, 선군先君께서 그것을 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출정出征하여 중대한 명령을 내리려 할 때에 의 마음을 흔들리게 한 것입니다.注+나라는 땅이 궁벽하고 풍속이 더러운 에 있는 작은 나라로, 이때에 이르러 무왕武王이 비로소 그 무리를 일으켜 이라 참칭僭稱하고서 군대를 진열陳列해 놓고 무기를 나누어 주려 하였으니, 뜻이 이미 충족充足되었기 때문에 재계齋戒에 임하여 마음이 산란散亂해진 것이다. 그러므로 등만鄧曼천지天地귀신鬼神으로써 응험應驗의 징조로 삼은 것이다.[부주]朱: 사람이 생존시生存時에는 심기心氣왕성旺盛하지만 죽을 때가 되면 마음이 흔들린다. 천도天道영허盈虛시운時運과 함께 소장消長하는 것이니, 인사人事도 이와 같다.
만약 군대는 손실이 없고 께서만 행군行軍 중에 하신다면 이는 나라의 입니다.注+행군行軍 중에 하고 에게 죽지 않았다는 말이다.”라고 하였다.
무왕武王은 마침내 군대를 거느리고 출정하였다가 만목樠木의 밑에서 하였다.注+만목樠木은 나무 이름이다.
영윤令尹투기鬪祈막오莫敖굴중屈重이 길을 닦고 차수溠水에 다리를 놓고서 군대를 거느리고 전진前進하여 수국隨國 가까이 진지陣地구축構築하니, 수인隨人이 두려워 화평和平을 요구하였다.注+이때 무왕武王의 사망을 비밀에 붙이고서 기병奇兵편성編成하고서 다시 직진直進할 길을 연 것이다. 차수溠水의양義陽궐현厥縣 서쪽에 있는데 동남으로 흘러 운수鄖水로 들어간다. 은 다리이다. 수인隨人은 뜻밖에 그들이 왔기 때문에 겁이 나서 화평和平을 요구한 것이다.
그러자 막오莫敖굴중屈重초왕楚王으로(이때 초왕楚王은 이미 죽었으니 왕명王命가탁假托한 것이다) 수국隨國으로 들어가서 수후隨侯와 결맹하고, 또 수후隨侯한예漢汭에서 회합하기를 요청하여 회합한 뒤에 환군還軍하였다.注+이니 한수漢水 서쪽을 이름이다.
한수漢水를 건넌 뒤에 무왕武王의 사망을 발표하였다.
기후紀侯는 몸을 굽혀 나라를 섬길 수 없기 때문에 나라를 기계紀季에게 준 것이다.注+마음을 낮추고 몸을 굽혀 나라를 섬길 수 없으므로 나라의 모든 것을 에게 준 것이다. 의 “불능하제不能下齊이여기계以與紀季”는 가 배반하지 않은 것을 밝힌 것이다.
여름에 기후紀侯가 그 나라를 영원히 떠났으니 이는 제난齊難을 피해 간 것이다.注+는 피함이다.


역주
역주1 夷服 : 王畿에서 3천리 밖에 위치한 夷狄이 사는 地域이다.

춘추좌씨전(1) 책은 2019.05.2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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