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春秋左氏傳(2)

춘추좌씨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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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좌씨전(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經]二十有八年春 하다注+再擧晉侯者 曹衛兩來告 [附注] 林曰 晉文公始圖霸 自此至踐土 凡五書晉侯 予晉以霸也
28년 봄에 진후晉侯나라를 침공侵攻하고, 진후晉侯나라를 토벌하였다.注+진후晉侯를 두 번 들어 말한 것은 나라와 나라가 각기 와서 통고通告하였기 때문이다. [부주]林: 진문공晉文公이 비로소 패업霸業을 도모하였다. 여기서부터 천토踐土회맹會盟에 이르기까지 진후晉侯를 모두 다섯 번 기록한 것은 나라를 패자霸者로 인정한 것이다.
[經]公子買戍衛러니 不卒戍라하야 하다注+公子買 魯大夫子叢也 內殺大夫皆書刺 言用 示不枉濫也 公實畏晉 殺子叢而誣叢之廢戍之罪 恐不爲遠近所信 故顯書其罪
공자公子나라를 수비守備하였더니 수비守備책임責任을 다하지 못했다 하여 그를 죽였다.注+공자公子나라 대부大夫자총子叢이다. 나라가 대부大夫를 죽인 경우에는 모두 ‘’으로 기록하였으니, 이는 《주례周禮》의 삼자법三刺法준용遵用하여 죽인 것이고 없는 사람을 함부로 죽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이기 위함이다. 실은 희공僖公나라가 두려워 자총子叢을 죽이고서 자총子叢에게 수비守備책임責任을 다하지 못했다는 를 씌웠다. 그러나 원근遠近이 이를 믿지 않을까 두려웠기 때문에 그 를 드러내 기록한 것이다.
[經]楚人救衛하다
초인楚人나라를 구원救援하였다.
[經]三月丙午 晉侯入曹하여 하다注+畀 與也 執諸侯當以歸京師 晉欲怒楚使戰 故以與宋 所謂譎而不正
3월 병오일丙午日진후晉侯나라로 쳐들어가서 조백曹伯을 잡고, 나라의 땅을 송인宋人에게 주었다.注+는 주는 것이다. 제후諸侯를 잡으면 당연히 경사京師로 보내야 하는데, 진후晉侯나라의 부아를 질러 전쟁戰爭에 나오도록 하고자 하였다. 그러므로 조백曹伯나라에 준 것이다. 이것이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신 ‘속임수를 써서 바르지 못하였다.[譎而不正]’는 것이다.
[經]夏四月己巳 晉侯齊師宋師秦師及楚人戰于城濮하여 楚師敗績하다注+宋公齊國歸父秦小子憖旣次城濮 以師屬晉 不與戰也 子玉及陳蔡之師不書 楚人恥敗 告文略也 大崩曰敗績
여름 4월 기사일己巳日진후晉侯제사齊師송사宋師진사秦師초인楚人성복城濮에서 전투戰鬪하였는데 초사楚師대패大敗하였다.注+송공宋公국귀보國歸父소자은小子憖이 이미 성복城濮에 주둔하였으나 자기들의 군대를 진후晉侯에게 맡기고 전쟁戰爭에 참여하지 않은 것이다. 자옥子玉나라‧나라의 군대를 기록하지 않은 것은 초인楚人패전敗戰한 것을 수치羞恥로 여겨 통고通告하는 문서文書생략省略하고 기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크게 무너지는 것을 ‘패적敗績’이라 한다.
[經]楚殺其大夫得臣하다注+子玉違其君命以取敗 稱名以殺 罪之
나라가 그 대부大夫득신得臣을 죽였다.注+자옥子玉이 그 임금의 명령命令을 어겨 패전敗戰자초自招하였기 때문에 이름을 하여 죽였다고 하였으니, 를 그에게 돌린 것이다.
[經]衛侯出奔楚하다
위후衛侯나라로 출분出奔하였다.
[經]五月癸丑 公會晉侯齊侯宋公蔡侯鄭伯衛子莒子하야 盟于踐土하다注+踐土 鄭地 王子虎臨盟 不同歃 故不書 衛侯出奔 其弟叔武攝位受盟 非王命所加 從未成君之禮 故稱子而序鄭伯之下 經書癸丑 月十八日也 傳書癸亥 月二十八日 經傳必有誤
5월 계축일癸丑日진후晉侯제후齊侯송공宋公채후蔡侯정백鄭伯위자衛子거자莒子회합會合하여 천토踐土에서 결맹結盟하였다.注+천토踐土나라 땅이다. 왕자王子맹약盟約에 참여하였으나 피를 마시지 않았기 때문에 기록하지 않은 것이다. 위후衛侯출분出奔하였기 때문에 그 아우 숙무叔武섭위攝位(임시로 임금의 일을 대행함)로 와서 맹약盟約접수接收하였다. 그러나 왕명王命으로 그 에 오른 것이 아니기 때문에 미성군未成君(임금으로 즉위卽位하기 이전)의 에 따라 ‘’로 지칭指稱하고서 그 서열序列정백鄭伯의 아래에 둔 것이다. 에 기록한 계축癸丑은 5월 18일이고, 에 기록한 계해癸亥는 5월 28일이니, 이나 에 틀림없이 오류誤謬가 있다.
[經]陳侯如會하다注+無傳 陳本與楚 楚敗 懼而屬晉 來不及盟 故曰如會
진후陳侯회맹會盟에 갔다.注+이 없다. 나라는 본래 나라의 맹방盟邦이었으나, 나라가 패전敗戰하자 두려워서 나라에 복속服屬한 것이다. 회맹會盟 때에 미쳐 오지 않았기 때문에 ‘여회如會’라고 한 것이다.
[經]注+無傳 王在踐土 非京師 故曰王所 [附注] 林曰 書朝王 始此 先朝王而後盟 是以天子與斯盟也 書盟而後朝 春秋不以天子與斯盟之辭也하다
행재소行在所로 가서 조현朝見하였다.注+이 없다. 경사京師가 아닌 천토踐土에 있었기 때문에 ‘왕소王所’라고 한 것이다.
[經]六月 衛侯鄭自楚復歸于衛하다注+復其位曰復歸 晉人感叔武之賢而復衛侯 衛侯之入 由于叔武 故以爲文 例在成十八年
6월에 위후衛侯나라에서 다시 나라로 돌아왔다.注+복위復位하는 것을 ‘복귀復歸’라 한다. 진인晉人숙무叔武현량賢良함에 감동하여 위후衛侯복위復位시켰으니, 위후衛侯복위復位된 것은 숙무叔武 때문이다. 그러므로 국역國逆으로 문사文辭를 만든 것이다. 성공成公 18년에 보인다.
[經]衛元咺出奔晉하다注+元咺 衛大夫 雖爲叔武訟訴 失君臣之節 奔例在宣十年
나라 원훤元咺나라로 출분出奔하였다.注+원훤元咺나라 대부大夫이다. 비록 숙무叔武를 위해 소송訴訟하였으나, 군신君臣예절禮節을 잃었다. 그러므로 그를 훌륭하게 여긴 문사文辭를 쓰지 않은 것이다. 선공宣公 10년에 보인다.
[經]陳侯款卒하다注+無傳 凡四同盟
진후陳侯하였다.注+이 없다. 모두 네 차례 동맹同盟하였다.
[經]秋 杞伯姬來하다注+無傳 莊公女 曰來
가을에 기백희杞伯姬가 왔다.注+이 없다. 백희伯姬장공莊公의 딸이다. 귀녕歸寧을 ‘’라 한다.
[經]公子遂如齊하다注+無傳 聘也
공자수公子遂나라에 갔다.注+이 없다. 빙문聘問 간 것이다.
[經]冬 公會晉侯齊侯宋公蔡侯鄭伯陳子莒子邾子秦人于溫하다注+陳共公稱子 先君未葬 例在九年 宋襄公稱子 自在本班 陳共公稱子 降在鄭下 陳懷公稱子而在鄭上 傳無義例 蓋主會所次 非褒貶也
겨울에 진후晉侯제후齊侯송공宋公채후蔡侯정백鄭伯진자陳子거자莒子주자邾子진인秦人에서 회합會合하였다.注+진공공陳共公을 ‘’로 기록한 것은 선군先君장전葬前이기 때문이다. 희공僖公 9년에 보인다. 송양공宋襄公을 ‘’로 한 곳에는 그 서열序列을 본래의 반차班次에 두고, 진공공陳共公을 ‘’로 한 곳에는 서열序列을 낮추어 나라의 아래에 두고, 진회공陳懷公을 ‘’로 한 곳에는 그 서열序列나라의 위에 두었는데, 에 이에 대한 의례義例가 없는 것으로 보아 회맹會盟주관主管한 자가 서차序次를 정한 것이고 포폄褒貶한 것이 아닌 듯하다.
[經]天王狩于河陽하다注+晉地 今河內有河陽縣 晉實召王 爲其辭逆而意順 故經以王狩爲辭 [附注] 林曰 晉侯召王 以諸侯見 是先狩而後會也 春秋先書會後書狩者 書狩而後會 是以天子與斯會也 先書會後書狩 春秋不以天子與斯會之辭也 河陽 卽溫晉地也
천왕天王하양河陽에서 사냥하였다.注+하양河陽나라 땅이다. 지금 하내河內하양현河陽縣이 있다. 사실은 진후晉侯을 부른 것이다. 말은 거슬렸으나 뜻은 순종順從하였기 때문에 에 ‘왕수王狩’로 글을 만든 것이다. [부주]林: 진후晉侯을 불러 제후諸侯조현朝見시켰으니, 이는 먼저 사냥하고서 뒤에 회맹會盟한 것이다. 그런데 《춘추春秋》에 회맹會盟을 먼저 기록하고 사냥을 뒤에 기록한 것은 사냥을 먼저 기록하고 회맹會盟을 뒤에 기록하면 천자天子가 이 회맹會盟에 참여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춘추春秋》에 먼저 회맹會盟을 기록하고 뒤에 사냥을 기록한 것은 천자天子가 이 회맹會盟에 참여하지 않았음을 나타낸 문사文辭이다. 하양河陽은 바로 으로 나라 땅이다.
[經]壬申 公朝于王所하다注+壬申 十月十日 有日而無月 史闕文
임신일壬申日왕소王所로 가서 조현朝見하였다.注+임신壬申은 10월 10일이다. 날만 기록하고 달을 기록하지 않은 것은 사관史官이 글을 빠뜨린 것이다.
[經]晉人執衛侯하여 歸之于京師하다注+稱人以執 罪及民也 諸侯不得相治 故歸之京師
진인晉人위후衛侯를 잡아 경사京師로 보냈다.注+이 잡았다고 한 것은 위후衛侯죄악罪惡이 백성에게 미쳤기 때문이다. 성공成公 15년에 보인다. 제후諸侯끼리는 서로 치죄治罪할 수 없기 때문에 그를 경사京師로 보낸 것이다.
[經]衛元咺自晉復歸于衛하다注+元咺與衛侯訟 得勝而歸 明衛侯無道於民 國人與元咺
나라 원훤元咺나라에서 나라로 복귀復歸하였다.注+원훤元咺위후衛侯와의 소송訴訟을 이기고서 돌아온 것인데, 국역國逆를 따른 것은 위후衛侯가 백성에게 무도無道하여 국인國人원훤元咺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經]諸侯遂圍許하다注+會溫諸侯也 許比再會不至 故因會共伐之
제후諸侯가 드디어 나라를 포위包圍하였다.注+제후諸侯에서 회맹會盟했던 제후諸侯이다. 나라가 두 번째 회맹會盟에도 오지 않았기 때문에 회합會合한 김에 공동共同으로 나라를 토벌討伐한 것이다.
[經]曹伯襄歸于曹하다注+晉感侯獳之言而復曹伯 故從國逆之例
조백曹伯나라로 복귀復歸하였다.注+진후晉侯후누侯獳의 말에 감동感動하여 조백曹伯복위復位시킨 것이다. 그러므로 국역國逆를 따른 것이다.
하다注+言遂 得復而行 不歸國也
드디어 제후諸侯회합會合하여 나라를 포위包圍하였다.注+‘드디어[遂]’라고 말한 것은 복귀復歸되어 가다가 나라로 돌아가지 않고 회합會合에 참여하였기 때문이다.
[傳]二十八年春 晉侯將伐曹하야 假道于衛注+曹在衛東故한대 衛人弗許어늘하야 自南河濟注+從汲郡南渡 出衛南而東하야 侵曹伐衛하다注+[附注] 朱曰
28년 봄에 진후晉侯나라를 토벌討伐하기 위해 나라에 길을 빌려 달라고 요청하였으나注+나라가 나라의 동쪽에 있기 때문에 길을 빌리려 한 것이다.위인衛人이 허락하지 않자, 길을 돌아 나라의 남쪽에서 황하黃河를 건너注+급군汲郡 남쪽에서 도하渡河하여 나라의 남쪽으로 나와 동쪽으로 간 것이다.나라를 침공侵攻하고 아울러 나라도 토벌討伐하였다.注+[부주]朱: 내가 고찰하건대 나라를 침공侵攻한 것은 관상觀狀원한怨恨을 갚기 위함이고, 나라를 토벌討伐한 것은 흙덩이를 준 수치羞恥를 씻기 위함이었다.
正月戊申 取五鹿하다注+五鹿 衛地
정월正月무신戊申오록五鹿을 취하였다.注+오록五鹿나라 땅이다.
[傳]二月 晉郤縠卒커늘 原軫將中軍하고 胥臣佐下軍하니 上德也注+先軫以下軍佐 超將中軍 故曰上德 胥臣 司空季子 [附注] 林曰 以先軫胥臣有賢德 尊上之也
2월에 나라의 극곡郤縠이 죽자 원진原軫중군中軍을 거느리고 서신胥臣하군下軍부장副將[佐]이 되었으니 이는 이 있는 자를 높인 것이다.注+선진先軫하군下軍부장副將으로 서열序列을 건너 뛰어 중군中軍을 거느렸기 때문에 ‘상덕上德’이라고 한 것이다. 서신胥臣사공司空계자季子이다. [부주]林: 선진先軫서신胥臣에게 현덕賢德이 있다 하여 그들을 높였다는 말이다.
晉侯齊侯盟于斂盂하다注+斂盂 衛地 [附注] 林曰 齊侯以穀戍之迫 故從晉求援
진후晉侯제후齊侯염우斂盂에서 결맹結盟하였다.注+염우斂盂나라 땅이다. [부주]林: 제후齊侯수비守備하고 있는 초군楚軍핍박逼迫 때문에 진후晉侯에게 구원救援을 요청한 것이다.
衛侯請盟이어늘 晉人弗許하다
이때 위후衛侯결맹結盟에 참여하기를 요청하였으나 진인晉人이 허락하지 않았다.
衛侯欲與楚하니 國人不欲이라
그러자 위후衛侯나라에 붙으려 하니 국인國人이 이를 원치 않았다.
故出其君하야于晉하다
그러므로 그 임금을 축출逐出하여 나라의 환심歡心을 샀다.
衛侯出居于襄牛하다注+襄牛 衛地
위후衛侯국도國都를 나가 양우襄牛로 가서 거주居住하였다.注+양우襄牛나라 땅이다.
[傳]公子買戍衛注+晉伐衛 衛 楚之昏姻 魯欲與楚 故戍衛러니 楚人救衛不克이어늘 公懼於晉하야以說焉注+召子叢而殺之 以謝晉하고 謂楚人不卒戍也라하다注+詐告楚人 言子叢不終戍事而歸 故殺之 殺子叢在楚救衛下 經在上者 救衛赴 晩至
공자公子나라를 지키고 있었는데注+나라가 나라를 친 것은 나라가 나라의 혼인국婚姻國이기 때문이다. 나라는 나라와 화친和親하려 하였기 때문에 공자公子를 보내어 나라를 지키게 한 것이다.초인楚人나라를 구원救援하기 위해 진군晉軍전투戰鬪하였으나 승리勝利하지 못하자, 나라를 두려워하여 자총子叢을 죽여 나라의 환심歡心을 사고,注+자총子叢소환召還해 죽여 나라에 사과謝過한 것이다.초인楚人에게는 “그가 수비守備의 책임을 다하지 못하였기에 죽였다.”고 하였다.注+초인楚人에게 “자총子叢방수防守의 일을 마치지 않고 돌아왔기 때문에 죽였다.”는 거짓말로 통고通告한 것이다. 자총子叢을 죽인 것이 나라가 나라를 구원救援한 아래에 기록되어야 하는데, 에 위에 기록한 것은 구위救衛를 알리는 나라의 통보通報가 늦게 왔기 때문이다.
[傳]晉侯圍曹하야 門焉 多死注+攻曹城門 [附注] 林曰 晉旣致楚救衛 復舍衛而圍曹하니 曹人尸諸城上注+磔晉死人於城上이어늘
진후晉侯나라를 포위하고서 성문城門을 공격할 때 진군晉軍이 많이 죽으니,注+나라의 성문城門공격攻擊한 것이다. [부주]林: 나라는 나라가 나라를 구원救援하도록 끌어들인 뒤에 다시 나라를 버리고 나라를 포위包圍하였다.조인曹人진군晉軍시신屍身 위에 늘어놓았다.注+죽은 진군晉軍시신屍身 위에 늘어놓은 것이다.
하야 聽輿人之謀하니 注+輿 衆也 舍墓 爲將發冢
진후晉侯가 이를 근심하여 많은 사람들의 계획計劃을 들으니 “군대를 나라의 분묘墳墓주둔駐屯시키라.”는 것이었다.注+輿이다. 사묘舍墓는 무덤을 파헤치려는 것이다.
師遷焉한대 注+遷至曹人墓 兇兇 恐懼聲하야 爲其所得者하야 棺而出之注+[附注] 林曰 爲其所得晉人 棺斂其尸 而出之於外 欲加禮於晉師 以免發冢之禍어늘
진후晉侯는 이 말에 따라 군대를 옮기니, 조인曹人은 두려워하여注+군대를 옮겨 조인曹人의 무덤으로 간 것이다. 흉흉兇兇은 두려워서 떠드는 소리이다. 늘어놓았던 진군晉軍의 시신을 에 넣어 성 밖으로 내보냈다.注+[부주]林: 자기들이 잡아서 늘어놓았던 진군晉軍시신屍身염습殮襲에 넣어서 밖으로 내보낸 것은 진군晉軍을 후한 로 대우하여 무덤이 파헤쳐지는 하고자 한 것이다.
因其兇也而攻之하야 三月丙午 入曹하야 注+軒 大夫車 言其無德居位者多 故責其功狀하라하고
진군晉軍은 그들이 두려워하는 기회機會를 이용해 나라를 공격攻擊하여 3월 병오일丙午日나라의 국도國都로 쳐들어가서 희부기僖負羈를 등용하지 않은 것과 승헌자乘軒者가 3백인인 것을 꾸짖고, 또 “그들의 공장功狀을 올리라.[獻狀]”고 하였다.注+대부大夫의 수레이다. 도 없으면서 대부大夫지위地位에 있는 자가 많기 때문에 그 공장功狀(功績을 기록한 문서文書)을 요구한 것이다.
令無入僖負羈之宮而免其族하니 報施也注+報飱璧之施
그리고 진후晉侯희부기僖負羈의 집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을 내려 그 가족家族를 면하게 하였으니, 이는 은혜恩惠보답報答한 것이다.注+밥 속에 구슬을 넣어 주었던 은혜를 보답한 것이다.
魏犨顚頡怒曰 勞之不圖하고 注+二子各有從亡之勞 [附注] 朱曰 言我軍有從亡之勞 吾君尙不圖謀之 此等小惠何足報也오하고 爇僖負羈氏注+爇 燒也라가 魏犨傷於胸하다
위주魏犨전힐顚頡이 화를 내며 “우리의 공로功勞보답報答할 생각도 하지 않으면서 무엇 때문에 희부기僖負羈은혜恩惠보답報答하려 하는가?”라고 하고서注+두 사람은 각각 문공文公망명亡命했을 때 수종隨從공로功勞가 있었다. [부주]朱: 아군我軍망명亡命수종隨從공로功勞가 있는데도 우리 임금께서는 오히려 보답報答하기를 도모圖謀하지 않으면서 이런 작은 은혜는 무엇 때문에 보답하려 하느냐는 말이다.희부기僖負羈의 집을 불태우다가注+은 불태우는 것이다.위주魏犨가 가슴에 상처를 입었다.
公欲殺之 而愛其材注+材 力하야 使問하고 且視之하야이면 將殺之하다
문공文公은 그를 죽이고자 하였으나 그의 힘을 아껴,注+이다. 사람을 보내 그를 위문慰問하게 하고 그의 부상負傷을 살피게 하여 부상이 심하면 죽이려 하였다.
魏犨束胸하고 見使者曰 注+아하고 距躍三百하고 曲踊三百注+距躍 超越也 曲踊 跳踊也 百猶勵也 [附注] 林曰 距躍 超越也 百 猶勵也 蓋距地向前 超躍越物而過 凡三次勉勵而爲之 曲踊 跳踊也 亦三次勉勵而爲之이러늘 乃舍之하다 殺顚頡以徇于師하고
위주魏犨가 가슴을 동여매고 나와서 사자使者를 보고 말하기를 “임금님의 으로 그대가 보기에 내가 편안하지 않은가?”注+ 때문에 스스로 편안하게 있을 수 없다는 말이다.라고 하고서 높이뛰기를 세 차례, 멀리뛰기를 세 차례 하니,注+거약距躍은 뛰어 넘는 것이고, 곡용曲踊도용跳踊(멀리 뜀)이다. (힘을 씀)와 같다. [부주]林: 거약距躍은 뛰어 넘는 것이고 와 같으니, 땅에서 앞을 향해 뛰어 장애물障碍物통과通過하기를 힘써 세 차례 한 것인 듯하다. 곡용曲踊도용跳踊인데 이 역시 세 차례를 힘써 한 것인 듯하다. 그는 놓아두고 전힐顚頡만을 죽여 군중軍中에 조리돌렸다.
立舟之僑以爲戎右하다注+舟之僑 故虢臣 閔二年奔晉 以代魏犨 爲先歸張本
주지교舟之僑를 세워 융우戎右로 삼았다.注+주지교舟之僑는 본래 나라의 신하로 민공閔公 2년에 나라로 도망온 사람인데, 위주魏犨를 대신해 융우戎右로 삼은 것이다. 주지교舟之僑가 먼저 돌아간 장본張本이다.
宋人使門尹般如晉師告急注+門尹般 宋大夫이어늘 公曰
송인宋人문윤반門尹般을 보내어 진군晉軍위급危急함을 하자注+문윤반門尹般나라 대부大夫이다.문공文公이 말하였다.
宋人告急하니 舍之則絶注+與晉絶 [附注] 林曰 若舍之不救 則宋與晉絶이오 告楚不許注+[附注] 林曰 告楚釋宋 楚又不許
송인宋人위급危急함을 알려왔으니 그대로 버려두고 구원救援하지 않으면 우리와의 관계를 단절斷絶할 것이고,注+나라가 나라와 절교絶交한다는 말이다. [부주]林: 만약 그대로 놓아두고 구원救援하지 않는다면 나라는 나라와 절교絶交한다는 말이다.나라에 나라의 포위包圍를 풀라고 하여도 나라는 허락하려 하지 않는다.注+[부주]林: 나라에게 나라의 포위包圍를 풀라고 고하였으나 나라는 허락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我欲戰矣 齊秦未可하니 若之何注+未肯戰
우리가 나라와 전쟁戰爭하려 해도 나라와 나라가 반대反對하니 어찌하면 좋겠는가?”注+나라와 나라가 나라와 전쟁하려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先軫曰
선진先軫이 말하였다.
使宋舍我而賂齊秦注+求救於齊秦하야 藉之告楚注+假借齊秦 使爲宋請 [附注] 朱曰 假借齊秦 使告于楚 請退圍宋之師하고 我執曹君하고 而分曹衛之田以賜宋人이면 楚愛曹衛하야 必不許也리이다注+不許齊秦之請
나라에게 우리를 버리고 나라와 나라에 뇌물賂物을 주어注+나라와 나라에 구원救援을 요청하게 하라는 말이다. 그들로 하여금 나라에 고하게 하고,注+나라와 나라에 도움을 빌어 나라와 나라로 하여금 나라를 위해 나라에 철군撤軍을 요청하게 하라는 말이다. [부주]朱: 나라와 나라에 도움을 빌어 나라와 나라로 하여금 나라를 포위한 군대를 철수撤收하도록 나라에 요청하게 하라는 말이다. 우리는 조군曹君을 잡고 나라와 나라의 땅을 나누어서 송인宋人에게 주면 나라는 나라와 나라를 아깝게 여겨 반드시 나라와 나라의 요청을 들어주지 않을 것입니다.注+나라가 나라와 나라의 요청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喜賂怒頑하리니 能無戰乎잇가注+言齊秦喜得宋賂 而怒楚之頑 必自戰也 不可告請 故曰頑
나라와 나라는 뇌물賂物을 준 나라를 좋아하고 완고頑固하게 요청을 거절拒絶나라에 할 것이니 나라와 전쟁戰爭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注+나라와 나라는 나라의 뇌물賂物을 받은 것을 기뻐하고 나라의 완고頑固함에 노하여 반드시 스스로 전쟁할 것이라는 말이다. 요청을 들어주지 않기 때문에 ‘’이라고 한 것이다.
公說하야 執曹伯하고 分曹衛之田以畀宋人하다注+[附注] 朱曰 皆以激楚之怒也
문공文公은 기뻐하고서 이에 조백曹伯을 잡고, 나라와 나라의 땅을 나누어 송인宋人에게 주었다.注+[부주]朱: 이것은 모두 나라의 부아를 돋우기 위함이다.
楚子入居于申注+申 在方城內 故曰入하야 使申叔去穀注+二十六年申叔戍穀하고 使子玉去宋曰
초자楚子으로 들어가 거주居住하면서注+방성方城 안에 있기 때문에 ‘’이라고 한 것이다.신숙申叔에게는 에서 떠나게 하고注+희공僖公 26년에 신숙申叔방수防守하였다.자옥子玉에게는 나라에서 떠나게 하며 말하였다.
無從晉師하라注+[附注] 林曰 言無得從晉師與之爭戰
진군晉軍추격追擊하지 말라.注+[부주]林: 진군晉軍추격追擊전쟁戰爭하지 말라는 말이다.
晉侯在外十九年矣로되 而果得晉國注+晉侯生十七年而亡 亡十九年而反 凡三十六年 至此四十矣하니 險阻艱難注+[附注] 林曰 人情之險阻 時事之艱難 朱曰 山川之險阻 道路之艱難 備嘗之矣注+[附注] 林曰 艱險備嘗 則志慮堅 民之情僞 盡知之矣注+[附注] 林曰 情僞盡知 則見識明
진후晉侯망명亡命하여 국외國外에 19년 동안 있었으나 끝내 나라를 얻었으니,注+진후晉侯가 17세에 망명亡命하였고 망명亡命한 지 19년 만에 돌아왔으니 모두 36년이다. 이때는 그의 나이 40세였다. 세상의 험하고 어려운 일들을注+[부주]林: 인정人情시사時事험난險難함이다.[부주]朱: 산천山川도로道路험난險難함이다. 빠짐없이 경험經驗하였고,注+[부주]林: 험난險難한 일을 빠짐없이 경험經驗하면 마음이 견고堅固해진다. 백성들의 진실과 거짓을 모두 알고 있다.注+[부주]林: 진실과 거짓을 다 알면 견식見識이 밝아진다.
天假之年注+獻公之子九人 唯文公在 故曰天假之年하고 而除其害注+除惠懷呂郤하니 天之所置 其可廢乎
그런데다가 하늘이 그에게 수명壽命을 주었고注+헌공獻公의 아들 9 중에 오직 문공文公만이 살아 있기 때문에 하늘이 수명壽命을 주었다고 한 것이다. 또 그의 해악害惡제거除去하였으니,注+혜공惠公회공懷公여생呂甥극예郤芮제거除去한 것이다. 하늘이 세운 사람을 어찌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있겠는가?
軍志曰 允當則歸注+無求過分 軍志 兵書 [附注] 林曰 引此 蓋謂齊秦旣爲宋請 則赦宋而歸 可謂允當無求過分라하고 又曰 知難而退注+[附注] 朱曰 引此志者 蓋謂晉之力强 難以勝之 可以退也라하며 又曰 有德不可敵注+[附注] 林曰 引此 蓋謂晉侯備嘗艱險 盡知情僞 爲有德 不可與之敵也이라하니 此三志者 晉之謂矣注+謂今與晉遇 當用此三志
군지軍志》에 ‘윤당允當(適當)하면 돌아가라.’고 하였고,注+과도過度하게 구하지 않는 것이다. 《군지軍志》는 병서兵書이다. [부주]林: 이 《군지軍志》의 말을 인용引用한 것은 나라와 나라가 이미 나라를 위해 나라에 철군撤軍을 요청하였으니, 나라를 용서하고 돌아가는 것이 합당合當하여 과도過度하게 구하지 않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는 말이다. 또 ‘어려움을 알면 물러나라.’고 하였으며,注+[부주]朱: 이 《군지軍志》을 인용한 것은 나라의 군사력軍事力하여 승리勝利하기 어려우니 물러나야 한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또 ‘이 있는 자는 대적對敵할 수 없다.’고 하였으니注+[부주]林: 이 《군지軍志》를 인용한 것은 진후晉侯험난險難한 일을 두루 경험經驗하고 인심人心의 진실과 거짓을 다 알고 있어 이 있으니 그를 대적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이 세 기록은 나라의 경우를 이른 말이다.”注+지금 진군晉軍과 만나면 이 세 《군지軍志》의 말을 따라야 한다는 말이다.
子玉使伯棼請戰注+伯棼 子越椒也 鬪伯比之孫 [附注] 朱曰 請戰者 求益兵與晉戰也曰 非敢必有功也 願以間執之口注+間執 猶塞也 讒慝 若蔿賈之言 謂子玉不能以三百乘入 [附注] 朱曰 子玉欲決於一戰 以間破執持之 使讒慝之不行也하노이다
자옥子玉백분伯棼을 보내어 초자楚子에게 출전出戰을 요청하며注+백분伯棼자월초子越椒투백비鬪伯比의 손자이다. [부주]朱: 출전出戰을 청한 것은 나라와 전쟁戰爭할 수 있도록 군대의 증원增員을 요구한 것이다. 말하기를 “감히 기필코 공을 세우겠다는 것이 아니라 이 기회를 이용해[以]참특讒慝한 입을 막고자 합니다.”注+간집間執(막음)과 같다. 참특讒慝은 “자옥子玉이 3백 을 거느리면 살아서 돌아올 수 없다.”고 한 위가蔿賈의 말을 이름이다. [부주]朱: 자옥子玉은 한 번 결전決戰진군晉軍격파擊破하고 압제壓制하여 참특讒慝한 말이 들어맞지 않게 하려 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王怒하야 少與之師하니 唯西廣東宮 與若敖之六卒實從之하다注+楚子還申 遣此兵以就前圍宋之衆 楚有左右廣 又大子有宮甲 分取以給之 若敖 楚武王之祖父 葬若者 子玉之祖也 六卒 子玉宗人之兵六百人 言不悉師以益之
초왕楚王은 노하여 그에게 소수少數의 군대만 주었으니, 서광西廣동궁東宮약오若敖육졸六卒만이 실로 그를 따랐다.注+초자楚子으로 돌아오면서 이 군대를 파견해 앞서 가서 나라를 포위包圍하고 있는 군중軍中으로 가게 한 것이다. 초군楚軍에는 좌광左廣우광右廣이 있고, 또 태자太子궁갑宮甲이 있는데 이 군대를 나누어 준 것이다. 약오若敖초무왕楚武王조부祖父(地名)에 매장埋葬한 자인데 자옥子玉조부祖父이다. 육졸六卒자옥子玉종인宗人으로 구성構成병사兵士 6백人이다. 전군全軍동원動員해서 증원增員해 주지 않았다는 말이다.
子玉使宛春告於晉師注+[附注] 林曰 宛春 楚大夫
자옥子玉완춘宛春을 보내어 진군晉軍에 고하였다.注+[부주]林: 완춘宛春나라 대부大夫이다.
請復衛侯而封曹하면
위후衛侯회복恢復시키고 나라를 해 주십시오.
臣亦釋宋之圍하리이다注+衛侯未出竟 曹伯見執在宋 已失位 故言復衛封曹
그러면 나라의 포위包圍를 풀겠습니다.”注+조백曹伯은 잡혀 나라에 있고, 위후衛侯는 아직 국경國境을 벗어나지 않았으나 이미 군위君位을 잃었다. 그러므로 ‘복위봉조復衛封曹’라고 한 것이다.
子犯曰
자범子犯이 말하였다.
子玉無禮哉ᄂ저
자옥子玉은 참으로 무례無禮합니다.
注+君取一 以釋宋圍惠晉侯 臣取二 復曹衛爲己功하니 不可失矣니이다注+言可伐
임금은 하나를 취하려 하는데 신하는 둘을 취하려 하니,注+군취일君取一나라의 포위를 풀어 진후晉侯에게 은혜를 입히는 것이고, 신취이臣取二나라와 나라의 회복을 자신의 공으로 삼는 것이다.진격進擊기회機會를 잃어서는 안 됩니다.”注+공격攻擊해야 한다는 말이다.
先軫曰
선진先軫이 말하였다.
子與之하소서注+[附注] 林曰 先軫以子犯之言爲不然 故曰子許之
(文公)께서는 저들의 을 허락하소서.注+[부주]林: 선진先軫자범子犯의 말을 옳게 여기지 않았기 때문에 ‘자허지子許之’라고 한 것이다.
定人之謂禮
남의 나라를 안정安定시키는 것을 라 합니다.
楚一言而定三國注+[附注] 林曰 子玉一言而復衛封曹釋宋 是安三國이어늘 我一言而亡之注+[附注] 林曰 晉不許楚 則晉亡曹衛 楚亦亡宋 是亡三國 我則無禮 잇가
나라는 한마디 말로 세 나라를 안정安定시키려 하는데注+[부주]林: 자옥子玉은 한 마디 말로 위후衛侯를 회복시키고, 나라를 하고, 나라의 포위를 푸는 방안方案제시提示하였으니, 이것이 바로 세 나라를 안정시키는 것이다. 우리는 한마디 말로 세 나라를 망치려 한다면注+[부주]林: 나라가 나라의 요청을 허락하지 않는다면 나라는 나라와 나라를 멸망시킬 것이고, 나라도 나라를 멸망시킬 것이니, 이것이 바로 세 나라를 망치는 것이다. 우리가 무례無禮하니 어떻게 전쟁戰爭할 수 있겠습니까?
不許楚言하면 是棄宋也
나라의 요청을 허락하지 않는다면 이는 나라를 버리는 것입니다.
救而棄之하면 謂諸侯何릿가注+言將爲諸侯所怪
나라를 구원救援하기 위해 왔다가 구원救援하지 않고 버린다면 장차 제후諸侯들에게 뭐라고 하겠습니까?注+장차 제후諸侯들의 괴이하게 여김을 받을 것이라는 말이다.
楚有三施하고 我有三怨하니 怨讎已多이릿가
나라는 세 나라에 은혜가 되고, 우리는 세 나라에 원한이 되어 원수怨讐가 너무 많아질 것이니 장차 어떻게 전쟁戰爭할 수 있겠습니까?
不如私許復曹衛以攜之注+私許二國 使告絶于楚而後復之 攜 離也하고 執宛春以怒楚하고 하소서注+須勝負決 乃定計
그러니 은밀히 나라와 나라에게 회복恢復을 허락하여 나라와 분리分離시키고注+ 두 나라가 나라에 사신使臣을 보내 관계의 단절斷絶통고通告하면 회복시켜 주겠다고 은밀히 허락하라는 말이다. 이다.완춘宛春을 잡아 나라를 하게 하시고서 결전決戰한 뒤에 도모圖謀하소서.”注+승부勝負결정決定한 뒤에 계책計策하라는 말이다.
公說하여 乃拘宛春於衛하고 且私許復曹衛하니 曹衛告絶於楚하다
문공文公은 기뻐하여 이에 완춘宛春나라에 억류抑留하고, 또 은밀히 나라와 나라의 회복恢復을 허락하니 나라와 나라는 나라에 관계의 단절斷絶통고通告하였다.
하니 晉師退한대
자옥子玉이 노하여 진군晉軍을 추격하니 진군晉軍후퇴後退하였다.
軍吏曰
군리軍吏가 말하였다.
以君辟臣 辱也 且楚師老矣어늘 何故退
“임금으로서 신하를 피하는 것은 치욕恥辱이고, 또 초군楚軍출정出征한 지 오래여서 지쳤는데[老] 무엇 때문에 후퇴後退하십니까?”
子犯曰
자범子犯이 말하였다.
師直爲壯이오 曲爲老 豈在久乎
“군대는 명분名分이 바르면[直]사기士氣왕성旺盛[壯]하고 명분名分이 바르지 못하면[曲]사기士氣쇠퇴衰退[老]하는 것이니, 어찌 출정出征구근久近에 달렸겠습니까?
微楚之惠 不及此注+重耳過楚 楚成王有之惠 退三舍辟之 所以報也注+一舍 三十里 初 楚子云 若反國 何以報我 故以退三舍爲報
지난날 나라의 은혜가 없었다면 임금님께서 오늘에 이르지 못했을 것이니,注+중이重耳나라를 지날 때 초성왕楚成王증송贈送한 은혜가 있었다.삼사三舍후퇴後退해 피하는 것은 그 은혜를 보답하는 것입니다.注+일사一舍가 30리이다. 과거에 초자楚子가 ‘공자公子가 만약 나라로 돌아가 임금이 된다면 나에게 무엇으로 보답하겠는가?’라고 물었을 때에 중이重耳삼사三舍를 피하겠다고 대답하였다. 그러므로 ‘퇴삼사退三舍’를 보답으로 여긴 것이다.
背惠食言하야 注+亢 猶當也 讎 謂楚也 我曲楚直이요 其衆素飽하니 不可謂老注+直 氣盈飽
은혜를 저버리고 약속한 말을 어기고서 나라의 원수인 나라를 보호保護한다면注+(막다)과 같고, 나라를 이름이다. 우리는 바르지 못하고 나라는 바름이 되며, 초군楚軍은 평소 사기가 충만充滿하였으니 지쳤다고 할 수 없습니다.注+명분名分이 곧아 사기士氣충만充滿하다는 말이다.
我退而楚還이면 我將何求리오 若其不還이면 君退臣犯이니 曲在彼矣
우리가 후퇴後退하고 나라도 돌아간다면 우리가 다시 무엇을 바라겠습니까만 만약 저들이 돌아가지 않는다면 임금은 물러나는데 신하는 하는 것이니 잘못이 저들에 있게 됩니다.”
退三舍하다
이에 진군晉軍삼사三舍후퇴後退하였다.
楚衆欲止하니 子玉不可하다
초군楚軍추격追擊을 멈추려 하니 자옥子玉이 허락하지 않았다.
夏四月戊辰 晉侯宋公齊國歸父崔夭秦小子憖次于城濮하다注+國歸父崔夭 齊大夫也 小子憖 秦穆公子也 城濮 衛地
여름 4월 무신일戊辰日진후晉侯송공宋公국귀보國歸父최요崔夭소자은小子憖이 군대를 거느리고서 성복城濮에 주둔하였다.注+국귀보國歸父최요崔夭나라 대부大夫이고, 소자은小子憖진목공秦穆公의 아들이다. 성복城濮나라 땅이다.
楚師背酅而舍注+酅 丘陵險阻名어늘 하다
초군楚軍이 험한 구릉丘陵을 등지고 을 치니,注+는 험한 구릉丘陵명칭名稱이다.진후晉侯는 이를 근심하였다.
聽輿人之誦注+恐衆畏險 故聽其歌誦하니라하다注+高平曰原 喩晉軍美盛 若原田之草每每然 可以謀立新功 不足念舊惠
사람들의 노래를 들으니注+초군楚軍이 험한 곳에 을 친 것에 대해 우리 군대들이 두려워하지나 않을까 걱정되었기 때문에 병사兵士들의 노래를 들은 것이다. 그 노래에 “원전原田에 풀이 무성하니 그 옛것을 버리고 새것을 도모圖謀한다.”注+고지대高地帶평야平野를 ‘’이라 한다. 진군晉軍미성美盛함이 마치 원전原田에 무성한 풀과 같아서 신공新功수립樹立도모圖謀할 수 있으니 구은舊恩은 생각할 것도 없다는 것을 비유한 것이다.고 하였다.
公疑焉注+疑衆謂己背舊謀新한대 子犯曰
이 의심하니注+문공文公병사兵士들이 자기를 옛 은혜를 배반하고 새로운 만을 도모하는 사람으로 여긴다고 의심한 것이다.자범子犯이 말하였다.
戰也하소서
전쟁戰爭하소서.
戰而捷이면 若其不捷이라도 表裏山河 必無害也리이다注+晉國外河而內山
전쟁戰爭해서 승리勝利하면 반드시 제후諸侯를 얻을 것이고 만약 승리勝利하지 못하더라도 안팎이 산하山河이니 반드시 가 없을 것입니다.”注+나라는 밖으로는 황하黃河가 흐르고 안으로는 태행산이 있다는 말이다.
公曰
이 말하였다.
若楚惠何
나라의 은혜恩惠는 어찌하느냐?”
欒貞子曰
난정자欒貞子가 말하였다.
漢陽諸姬 楚實盡之注+貞子 欒枝也 水北曰陽 姬姓之國在漢北者 楚盡滅之하니 思小惠而忘大恥 不如戰也니이다
한수漢水 이북의 여러 희성국姬姓國나라가 모두 격멸擊滅하였으니注+정자貞子난지欒枝이다. 물의 북쪽을 ‘’이라 한다. 한수漢水 북쪽에 있는 희성姬姓의 나라들을 나라가 다 격멸擊滅하였다는 말이다. 작은 은혜를 생각하고 큰 치욕恥辱을 잊는 것은 전쟁戰爭하느니만 못합니다.”
晉侯夢與楚子搏注+ 楚子伏己而盬其腦하다注+盬 啑也 [附注] 朱曰 楚子伏於晉文身上 而以口啑其腦也
진후晉侯가 꿈에 초자楚子수박手搏하는데注+수박手搏이다.초자楚子문공文公을 넘어뜨려 놓고 몸 위에 엎드려 를 파 먹었다.注+는 먹는 것이다. [부주]朱: 초자楚子진문공晉文公의 몸 위에 엎드려 입으로 그 를 먹은 것이다.
是以懼하다 子犯曰
이 꿈 때문에 문공文公이 두려워하니, 자범子犯이 말하였다.
이니이다
길몽吉夢입니다.
我得天하고 楚伏其罪하니
우리는 누워서 하늘을 하였으니 하늘의 도움을 얻을 징조徵兆이고 초자楚子지면地面해 엎드렸으니 임금님께 복죄伏罪징조徵兆입니다.
리이다注+晉侯上向 故得天 楚子下向地 故伏其罪 腦所以柔物 子犯審見事宜 故權言以答夢
그러니 우리가 장차 저들을 유순柔順하게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注+진후晉侯는 위로 하늘을 향하였기 때문에 ‘득천得天(하늘을 도움 얻음)’이라 한 것이고, 초자楚子는 땅을 향하였기 때문에 ‘복죄伏罪(죄를 받아들여 복종함)’라고 한 것이다. 는 부드러운 물질이다. 자범子犯사리事理를 자세히 살피고서 임기응변臨機應變으로 꿈을 해답解答한 것이다.
子玉使鬪勃請戰注+鬪勃 楚大夫
자옥子玉투발鬪勃나라 군중軍中으로 보내어 전투戰鬪를 요청하였다.注+투발鬪勃나라 대부大夫이다.
注+[附注] 朱曰 以戰爲戲 見子玉輕敵之甚也하노니 君馮而觀之하소서
(晉文公을 이름)의 군대와 승부勝負를 겨루기를 청하니,注+[부주]朱: 전쟁戰爭을 놀이[戲]로 여겼으니, 자옥子玉이 매우 경시輕視한 것을 볼 수 있다.께서는 에 기대어 구경하십시오.
得臣與寓目焉하리이다注+寓 寄也
득신得臣도 함께 구경하겠습니다.”注+(부침)이다.
晉侯使欒枝對曰
진후晉侯난지欒枝를 보내어 대답하였다.
과군寡君께서는 이미 그대의 을 들으셨소.
楚君之惠 未之敢忘이라 是以在此하야 爲大夫退
초군楚君의 은혜를 잊을 수 없기에 후퇴後退해 이곳에 있으면서, ‘대부大夫(子玉을 가리킴)는 물러갈 것이다.
旣不獲命矣注+不獲止命 敢煩大夫謂二三子注+煩鬪勃 令戒勑子玉子西之屬하야 하라 詰朝將見하리라注+詰朝 平旦
어찌 감히 임금을 대항하겠는가?’라고 생각하였는데, 환군還軍하겠다는 을 받지 못했으니注+전쟁戰爭을 중지하자는 을 받지 못했다는 말이다. 감히 대부大夫(鬪勃을 가리킴)를 번거롭히노니 이삼자二三者에게注+투발鬪勃을 번거롭혀 자옥子玉자서子西 등에게 계칙戒飭하게 한 것이다. 그대들의 수레를 정비整備하고 그대들의 군사君事를 공경하여 내일 아침에 만나자고 이르시오.”注+힐조詰朝평단平旦이다.
晉車七百乘 韅靷鞅靽注+五萬二千五百人 在背曰韅 在胸曰靷 在腹曰鞅 在後曰靽 言駕乘脩備 [附注] 林曰 每乘甲士三人 步卒七十二人 共五萬二千五百人 著掖皮曰韅 軸曰靷 頸皮曰鞅 縶曰靽할새
진군晉軍병거兵車 7백승百乘에 메운 말들에 등받이[韅]며 가슴거리[靷]며 뱃대[鞅]며 고삐[靽]를 모두 갖추었다.注+7백승百乘은 5만 2천 5백人이다. 등에 있는 것을 이라 하고, 가슴에 있는 것을 이라 하고, 배에 있는 것을 이라 하고, 뒤에 있는 것을 이라 한다. 거승車乘(수레)이 정비整備되었다는 말이다. [부주]林: 1갑사甲士가 3이고 보졸步卒이 72이니, 7백승百乘이면 5만 2천 5백人이다. 말의 겨드랑이에 댄 가죽을 이라 하고, 굴대[軸]에 댄 가죽을 이라 하고, 목에 댄 가죽을 이라 하고, 고삐를 이라 한다.
晉侯登有莘之虛以觀師曰 少長有禮하니 其可用也로다注+有莘 故國名 少長 猶言大小 遂伐其木하야 以益其兵하다注+伐木以益攻戰之具 輿曳柴亦是也
진후晉侯유신有莘의 언덕에 올라 군대를 사열査閱[觀師]하고는 “소장少長이 모두 가 있으니 쓸 만하다.”라고 하고서注+유신有莘은 옛날의 나라 이름이다. 소장少長대소大小란 말과 같다. 드디어 나무를 베어 병기兵器를 더 만들게 하였다.注+나무를 베어 전쟁戰爭에 필요한 기구器具를 더 만들어 보탠 것이니, 병거兵車에 매달고 달려 먼지가 일게 하는 섶[柴]도 그 중의 하나이다.
己巳 晉師陳于莘北注+[附注] 林曰 莘北 卽城濮하야 胥臣以下軍之佐當陳蔡하다
기사일己巳日진군晉軍신북莘北을 치고서注+[부주]林: 신북莘北은 바로 성복城濮이다.서신胥臣하군下軍(副將)로 진군陳軍채군蔡軍을 담당하였다.
子玉以若敖之六卒將中軍하고
자옥子玉약오若敖육졸六卒을 거느리고 중군中軍을 직접 영솔領率하고서 말하였다.
今日必無晉矣리라注+[附注] 林曰 子玉自誇其强 言今日必盡滅晉師
“오늘 반드시 나라를 없앨 것이다.”注+[부주]林: 자옥子玉은 스스로 자신의 함을 뽐내어 ‘오늘 반드시 진군晉軍을 다 격멸擊滅하겠다.’고 말한 것이다.
子西將左하고 子上將右하다注+子西 鬪宜申 子上 鬪勃
자서子西좌군左軍을 거느리고 자상子上우군右軍를 거느렸다.注+자서子西투의신鬪宜申이고, 자상子上투발鬪勃이다.
胥臣蒙馬以虎皮하야 先犯陳蔡하니 陳蔡奔하고 楚右師潰하다注+陳蔡屬楚右師
서신胥臣이 말에 호피虎皮를 씌우고서 먼저 나라‧나라의 군대를 (攻擊)하니 나라‧나라의 군대가 도망해 흩어지고 나라의 우군右軍도 따라서 무너졌다.注+나라‧나라의 군대는 나라의 우군右軍하였다.
狐毛而退之注+旆 大旗也 又建二旆而退 使若大將稍却하고 欒枝使輿曳柴而僞遁注+曳柴起塵 詐爲衆走하니 어늘 原軫郤溱以中軍公族橫擊之注+公族 公所率之軍하고 狐毛狐偃以上軍夾攻子西하니
호모狐毛는 두 부대部隊전군前軍편성編成하여 흩어져 도망가는 나라의 우군右軍격퇴擊退하게 하고,注+대기大旗이다. 또 두 를 세우고서 퇴각退却하여 마치 대장大將퇴각退却하는 것처럼 꾸민 것이다.난지欒枝병거兵車에 섶[柴]을 매달고 달려 도주逃走하는 것처럼 위장僞裝하니,注+섶을 끌고 달려 먼지를 일으켜 군대가 도주逃走하는 것처럼 위장한 것이다. 과연 나라의 우군友軍추격追擊해 오거늘 원진原軫극진郤溱중군中軍공족公族을 거느리고서 옆에서 공격攻擊하고,注+공족公族문공文公영솔領率한 군대이다.호모狐毛호언狐偃상군上軍을 거느리고서 자서子西좌우左右에서 협공挾攻하니.
楚左師潰하다
나라의 좌군左軍도 무너졌다.
楚師敗績이나 子玉收其卒而止 故不敗하다注+三軍唯中軍完 是大崩
이번 전쟁戰爭초군楚軍대패大敗하였으나 자옥子玉은 군대를 수습하여 추격追擊을 멈추었기 때문에 나라 중군中軍하지 않았다.注+삼군三軍 중에 오직 중군中軍만이 온전하였으니 이것이 바로 대패大敗이다.
晉師三日館穀注+館 舍也 食楚軍穀三日하고 及癸酉而還하다
진군晉軍이 사흘 동안 주둔駐屯하며 초군楚軍이 버리고 간 군량軍糧을 먹고注+주둔駐屯이다. 3일 동안 초군楚軍곡식穀食을 먹은 것이다.계유일癸酉日환군還軍하였다.
甲午 至于衡雍하야 作王宮于踐土注+衡雍 鄭地 今熒陽卷縣 襄王聞晉勝 自往勞之 故爲作宮하다
갑오일甲午日형옹衡雍에 이르러서 천토踐土왕궁王宮을 지었다.注+형옹衡雍나라 땅인데, 지금의 형양熒陽권현卷縣이다. 진군晉軍승전勝戰하고 돌아온다는 소식을 듣고 양왕襄王이 직접 가서 위로하였기 때문에 왕궁王宮을 지은 것이다.
鄕役之三月注+鄕 猶屬也 城濮役之前三月 鄭伯如楚하야 致其師러니 爲楚師旣敗而懼하야 使子人九行成于晉注+子人 氏 九 名하니
성복城濮전쟁戰爭이 있기 석 달 전에注+과 같다. 성복城濮전쟁戰爭이 있기 석 달 전이다.정백鄭伯나라로 가서 정군鄭軍나라에 원군援軍으로 주었는데, 이번 전쟁戰爭나라가 패배敗北하자 정백鄭伯은 겁이 나서 자인구子人九나라로 보내어 화친和親을 요구하였다.注+자인子人이고, 는 이름이다.
晉欒枝入盟鄭伯注+[附注] 林曰 晉許鄭成 故使下卿入鄭爲盟러니
나라의 난지欒枝나라로 가서 정백鄭伯결맹結盟에 관해 상의하였다.注+[부주]林: 나라가 나라에게 화친和親을 허락하였기 때문에 하경下卿나라로 보내어 결맹結盟에 관해 상의하게 한 것이다.
五月丙午 晉侯及鄭伯盟于衡雍하다
5월 병오일丙午日진후晉侯정백鄭伯형옹衡雍에서 결맹結盟하였다.
丁未 獻楚于王하니 駟介百乘 徒兵千이라注+駟介 四馬被甲 徒兵 步卒
정미일丁未日나라와의 전쟁戰爭에서 얻은 전리품戰利品에게 바쳤으니, 사개駟介백승百乘보병步兵 1이었다.注+사개駟介는 갑옷을 입힌 네 의 말이다. 도병徒兵보졸步卒이다.
하야 用平禮也하다注+傅 相也 以周平王享晉文侯仇之禮享晉侯
이때 정백鄭伯가 되어 주평왕周平王진문후晉文侯를 대접했던 진후晉侯를 대접하였다.注+이다. 주평왕周平王진문후晉文侯를 대접했던 진후晉侯를 대접한 것이다.
己酉 王享醴하고 하다注+旣饗 又命晉侯助以束帛 以將厚意
기유일己酉日진후晉侯에게 단술을 대접하고, 이어 진후晉侯에게 를 명하였다.注+단술을 대접한 뒤에 또 속백束帛을 내려 진후晉侯의 기쁨을 돕도록 명하여 후대厚待의 뜻을 보인 것이다.
王命尹氏及王子虎 內史叔興父하여 策命晉侯爲侯伯注+ 尹氏 王子虎 皆王卿士也 叔興父 大夫也 三官命之以寵晉하고 賜之大輅之服 戎輅之服注+大輅 金輅 戎輅 戎車 二輅各有服 [附注] 林曰 大輅 祭祀所乘 彤弓一 彤矢百 弓矢千注+彤 赤弓 玈 黑弓 弓一矢百 則矢千弓十矣 諸侯賜弓矢 然後專征伐 注+秬 黑黍 鬯 香酒 所以降神 卣 器名 虎賁三百人注+[附注] 林曰 周禮虎賁氏以虎士三百人先後王而趨 侯伯始受此賜하고
윤씨尹氏왕자호王子虎내사內史숙흥보叔興父에게 명하여 진후晉侯책명策命하여 후백侯伯으로 삼게 하고서,注+책서策書하여 진후晉侯후백侯伯으로 삼은 것이다. 《주례周禮》에 ‘구명작백九命作伯’이라고 하였다. 윤씨尹氏왕자호王子虎는 모두 나라의 경사卿士이고, 숙흥보叔興父대부大夫이다. 이 세 고관高官을 시켜 책명策命하게 한 것은 진후晉侯총애寵愛한다는 것을 보이기 위함이었다.대로大輅복장服裝융로戎輅의 복장과注+대로大輅금로金輅이고 융로戎輅융거戎車인데, 이 두 에는 각각 입는 복장服裝이 따로 있다. [부주]林: 대로大輅제사祭祀 때 타는 수레인데 그 복장服裝별면鷩冕이고, 융로戎輅병사兵事가 있을 때 타는 수레인데 그 복장은 위변韋弁이다.동궁彤弓 하나와 동시彤矢 백 개와 노궁시玈弓矢 천 개와注+적궁赤弓이고, 흑궁黑弓이다. 활 한 자루에 살 백대씩을 주니, 살이 천 대면 활은 열 자루이다. 제후諸侯궁시弓矢하사下賜 받은 뒤에야 정벌征伐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거창秬鬯 한 통과注+는 검은 기장이다. 향주香酒인데 이를 사용해 강신降神하는 것이다. 용기用器의 이름이다.호분虎賁 3백 명을 하사下賜하면서 말하였다.注+[부주]林: 《주례周禮》에 “호분씨虎賁氏호사虎士 3백 인을 거느리고 앞뒤에서 추종趨從한다.”고 하였다. 후백侯伯으로서는 진문공晉文公이 처음으로 호분虎賁하사下賜 받은 것이다.
曰王謂叔父注+[附注] 朱曰 此策命辭也하노니 敬服王命하여 以綏四國하고 注+逖 遠也 有惡於王者 糾而遠之하라한대
숙부叔父에게 이르노니注+[부주]朱: 이것은 임명장任命狀에 기록된 말이다. 삼가 왕명王命에 복종하여 사방의 제후諸侯안무安撫하고 에게 잘못하는 자들을 다스리라.”注+이니, 에게 잘못하는 자들을 규찰糾察해 멀리 추방追放하라는 말이다.
晉侯三辭하고 從命注+[附注] 林曰 三辭策命 然後從天子之命하여 曰 重耳敢再拜稽首하여 奉揚天子之丕顯休命注+稽首 首至地 丕 大也 休 美也하노이다 受策以出하여
진후晉侯는 세 번 사양한 뒤에 왕명王命을 받아들이며注+[부주]林: 책명策命을 세 번 사양한 뒤에 천자天子을 받아들인 것이다.중이重耳는 감히 재배再拜하고 머리를 조아리며 천자天子의 크고 밝으신 아름다운 을 받들어 선양宣揚하겠습니다.”注+계수稽首는 머리가 땅에 닿는 것이다. 이고, 이다.라고 하고서 책명策命을 받아 가지고 나왔다.
出入三覲하다注+出入 猶去來也 從來至去 凡三見王 [附注] 朱曰
진후晉侯는 와서 돌아갈 때까지 모두 세 차례 천자天子알현謁見하였다.注+출입出入거래去來와 같으니, 올 때부터 갈 때까지 모두 세 차례 알현謁見했다는 말이다. [부주]朱: 을 받기 전에 세 번 사양하고, 명을 받은 뒤에 세 차례 알현謁見하였으니, 가 이와 같아야 한다.
[傳]衛侯聞楚師敗하고하야 出奔楚라가 遂適陳注+自襄牛出하야 使元咺奉叔武以受盟하다注+奉 使攝君事
위후衛侯초군楚軍패전敗戰했다는 말을 듣고 겁이 나서 나라로 출분出奔하였다가 드디어 나라로 가서注+양우襄牛에서 출분出奔한 것이다.원훤元咺을 보내어 숙무叔武를 받들고 왕정王庭으로 가서 맹약盟約접수接受하게 하였다.注+숙무叔武에게 임금의 일을 대행代行하게 한 것이다.
癸亥 하다注+踐土宮之庭 書踐土 別於京師
계해일癸亥日왕자호王子虎제후諸侯들과 왕정王庭에서 맹약盟約하였다.注+왕정王庭천토踐土에 있는 왕궁王宮의 뜰이다. 에 ‘천토踐土’라고 기록한 것은 경사京師와 구별하기 위함이다.
要言曰注+[附注] 林曰 載書要約之言皆獎王室하야 無相害也하라
맹약盟約하기를注+[부주]林: 요언要言재서載書에 기록한 맹약盟約의 말이다. “모두 왕실王室을 도와 서로 해치지 말라.
有渝此盟이면 明神殛之하야其師하야 無克祚國注+獎 助也 渝 變也 殛 誅也 俾 使也 隊 隕也 克 能也 [附注] 林曰 使隕隊其師衆 無能世祚其國家하고 無有老幼하리라注+[附注] 林曰 曾孫之子曰玄孫 自玄孫而下 無問老幼 俱受變盟之禍
맹약盟約을 어기면 명신明神을 내려 그 군대를 실추失墜시켜 국가國家향유享有하지 못하게 하고,注+이고, (違背)이고, (罰)이고, 使이고, (墜落)이고, 이다. [부주]林: 그 군대를 추락墜落시켜 세전世傳해 가며 그 국가國家향유享有할 수 없게 한다는 말이다. 너의 현손玄孫에 이르기까지 노소老少할 것 없이 모두 재앙災殃을 받을 것이다.”注+[부주]林: 증손曾孫의 아들이 현손玄孫이다. 현손玄孫 이하로 노소老少를 막론하고 모두 맹약盟約을 어긴 를 받는다는 말이다.라고 하였다.
君子謂是盟也信注+合義信이라하고 謂晉於是役也 能以德攻이라하다注+以文德敎民而後用之
군자君子는 이 맹약을 두고 ‘신의信義에 맞았다.’고 하고,注+에 맞았다는 말이다. 또 ‘나라가 이번 전쟁에 으로써 진공進攻하였다.’注+문덕文德으로 백성을 가르친 뒤에 사용한 것을 말한다.고 하였다.
楚子玉自爲瓊弁玉纓하야 未之服也注+러니 先戰注+[附注] 朱曰 未戰城濮之先 夢河神謂己曰 畀余하라注+[附注] 朱曰 子玉夢河神告云 以瓊弁玉纓與我也
당초當初나라 자옥子玉이 스스로 경변瓊弁옥영玉纓을 만들어 아직 사용하지 않았는데,注+는 사슴가죽으로 만든 모자이고, 별명別名이다. 을 엮어 모자와 갓끈을 장식한 것이다. 《시경詩經》에 ‘회변여성會弁如星’이라 하였다.전쟁戰爭에 앞서注+[부주]朱: 성복城濮전쟁戰爭이 있기 전이다. 꿈에 하신河神자옥子玉에게 “그것을 나에게 달라.注+[부주]朱: 자옥子玉의 꿈에 하신河神이 나타나 ‘경변옥영瓊弁玉纓을 나에게 달라.’고 하였다는 말이다.
余賜女孟諸之麋注+孟諸 宋藪澤 水草之交曰[附注] 朱曰 蓋神意 謂我能賜汝地利 助汝戰勝하리라 弗致也하다
나는 너에게 맹저孟諸를 주겠다.”注+맹저孟諸나라의 수택藪澤(濕地)이다. 물과 풀의 어름을 라고 한다. [부주]朱: 하신河神의 뜻은 내가 너에게 지리地利(地勢가 험준險峻하여 방어防禦하기 좋은 곳)를 주어 네가 승전勝戰하도록 돕겠다는 것이다.고 하였으나,注+대심大心자옥子玉의 아들이고, 자서子西자옥子玉종족宗族이다. 자옥子玉의 성질이 까다롭고 고집이 세기 때문에 영황榮黃을 통해 간하게 한 것이다. 영황榮黃영계榮季이다. [부주]林: 영황榮黃을 통해 자옥子玉에게 하여 경변옥영瓊弁玉纓을 가지고 가서 하신河神에게 기도祈禱하게 한 것이다.자옥子玉은 주지 않았다.
大心與子西使榮黃諫注+大心 子玉之子 子西 子玉之族 子玉剛愎 故因榮黃 榮黃 榮季也 [附注] 林曰 因榮黃以諫子玉 使以弁纓禱于河神한대 弗聽이어늘
대심大心자서子西영황榮黃을 시켜 하게 하였으나 듣지 않았다.
榮季曰 死而利國이라도 猶或爲之 況瓊玉乎
영계榮季가 말하기를 “죽어서 나라에 이익이 된다면 오히려 죽을 수도 있는데, 하물며 경옥瓊玉이겠습니까?
而可以濟師 將何愛焉注+ 弗聽하다
이것은 분토糞土이니, 군대가 승전勝戰할 수 있다면 무엇을 아끼겠습니까?注+욕구欲求를 통해 백성의 소원所願을 들어주는 것이 전쟁戰爭승리勝利할 수 있는 원인이라는 말이다.”라 하였으나 자옥子玉은 듣지 않았다.
出告二子曰 非神敗令尹이라 令尹其不勤民하니 實自敗也로다注+盡心盡力 無所愛惜爲勤
영황榮黃이 물러 나와 두 사람에게 이르기를 “영윤令尹실패失敗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영윤令尹이 백성을 위해 힘을 다하지 않으니 실로 실패失敗자초自招하는 것이다.”注+마음과 힘을 다하여 아낌이 없는 것을 ‘’이라 한다.고 하였다.
旣敗 王使謂之曰 大夫若入이면 其若申息之老何注+申息二邑子弟 皆從子玉而死 言何以見其父老 子西孫伯曰 得臣將死어늘 二臣止之曰 君其將以爲戮이라하니이다注+孫伯 卽大心 子玉子也 二子以此答王使 言欲令子玉往就君戮 [附注] 林曰 二人答王使 言子玉已欲自殺 我二臣者實自止之 言欲令子玉往就君戮
자옥子玉패전敗戰한 뒤에 초왕楚王이 사람을 보내어 자옥子玉에게 이르기를 “대부大夫가 만약 살아서 나라로 들어온다면 무슨 면목面目으로 부로父老들을 대하겠는가?”注+ 두 고을의 자제子弟들이 자옥子玉을 따라 갔다가 다 죽었으니 어떻게 그들의 부로父老를 볼 수 있겠느냐는 말이다.라고 하니, 자서子西손백孫伯이 말하기를 “득신得臣자살自殺하려 하였으나 우리 두 신하가 ‘임금님께서 장차 패전敗戰처벌處罰할 것이다.’는 말로 그 자살을 저지하였습니다.”고 하였다.注+손백孫伯은 바로 자옥子玉의 아들 대심大心이다. 두 사람이 이 말로 초왕楚王사자使者에게 대답한 것은 자옥子玉으로 하여금 나라로 들어가서 임금의 처벌處罰을 받게 하고자 했다는 말이다.[부주]林: 두 사람이 초왕楚王사자使者에게 ‘자옥子玉자살自殺하고자 하였으나 우리 두 신하가 실로 저지沮止하였다.’는 말로 대답한 것은 자옥子玉으로 하여금 나라로 들어와서 임금의 처벌處罰을 받게 하고자 했다는 말이다.
及連穀而死注+至連穀 王無赦命 故自殺也 文十年傳曰 城濮之役 王使止子玉曰 無死 不及 子西亦自殺 縊而縣絶 故得不死 王時別遣追前使 連穀 楚地 殺得臣 經在踐土盟上 傳在下者 說晉事畢而次及楚 屬文之宜어늘
자옥子玉연곡連穀에 이르러 자살自殺하였다.注+연곡連穀까지 왔으나 초왕楚王사면령赦免令이 없기 때문에 자살自殺한 것이다. 문공文公 10에 “성복城濮전쟁戰爭초왕楚王사자使者를 보내어 자옥子玉자살自殺을 막으며 ‘죽지 말라’고 하였으나, 미치지 못하였다. 자서子西도 죽으려고 목을 매었으나 줄이 끊어졌기 때문에 죽지 않았다.”고 하였다. 이때 초왕楚王자서子西에게도 따로 사자使者를 보내어 앞서 자옥子玉에게 보낸 사자使者를 뒤쫓아가게 한 것이다. 연곡連穀나라 땅이다. 득신得臣을 죽인 것이 에는 천토踐土결맹結盟 앞에 기록되어 있는데, 에는 뒤에 기록한 것은 나라의 일을 다 말한 뒤에 나라의 일을 언급言及하는 것이 문장文章을 쓰는 순서에 맞기 때문이다.
晉侯聞之而後注+喜見於顔色하야 曰 莫余毒也已注+[附注] 林曰 言子玉旣死 莫有爲我之毒害也已
진후晉侯는 이 소식을 들은 뒤에 기쁜 기색氣色을 얼굴에 드러내며注+기쁨을 안색顔色에 드러낸 것이다. “앞으로는 나의 해독害毒이 될 자가 없을 것이다.注+[부주]林: 자옥子玉이 이미 죽었으니 나의 해독害毒이 될 자가 없다는 말이다.
蔿呂臣實爲令尹注+[附注] 林曰 蔿呂臣 卽叔伯 代子玉爲令尹하리니 奉己而已 不在民矣注+言其自守無大志
위려신蔿呂臣이 실로 영윤令尹이 될 것이니,注+[부주]林: 위려신蔿呂臣은 바로 숙백叔伯이다. 자옥子玉을 대신해 영윤令尹이 될 것이라는 말이다. 그는 자신自身만을 받들 뿐, 백성에게는 마음을 두지 않을 것이다.”注+그는 자신만을 지킬 뿐, 큰 뜻이 없다는 말이다.고 하였다.
[傳]或訴元咺於衛侯曰 立叔武矣라하다
혹자或者위후衛侯에게 원훤元咺을 참소하기를 “원훤元咺숙무叔武를 임금으로 세웠다.”고 하였다.
其子角從公이러니 公使殺之注+角 元咺子로되
이때 원훤元咺의 아들 수종隨從하였는데注+원훤元咺의 아들이다.이 사람을 시켜 그를 죽였다.
咺不廢命하고 奉夷叔以入守하다注+夷 諡 [附注] 林曰 夷叔 卽叔武
그러나 위후衛侯폐기廢棄하지 않고 이숙夷叔을 모시고 나라로 들어가서 나라를 지켰다.注+시호諡號이다. [부주]林: 이숙夷叔은 바로 숙무叔武이다.
六月 晉人復衛侯하다注+以叔武受盟於踐土 故聽衛侯歸
유월六月진인晉人위후衛侯복위復位시켰다.注+숙무叔武천토踐土로 가서 맹약盟約접수接受하였기 때문에 위후衛侯복귀復歸를 허락한 것이다.
寗武子與衛人盟于宛濮注+武子 寗兪也 陳留長垣縣西南有宛亭 近濮水 [附注] 朱曰 時從衛侯在外 至是與國人爲盟焉 曰 天禍衛國하야 君臣不協하야 以及此憂也注+衛侯欲與楚 國人不欲 故不和也러니
영무자寗武子위인衛人완복宛濮에서 맹약盟約하여注+무자武子영유寗兪이다. 진류陳留장원현長垣縣 서남쪽에 완정宛亭이 있는데 복수濮水와 가깝다. [부주]朱: 무자武子위후衛侯를 따라 국외國外에 있었는데, 이때에 이르러 돌아와서 국인國人맹약盟約한 것이다. 말하기를 “하늘이 나라에 를 내려 군신君臣화합和合하지 못하여 이러한 우환憂患에 미친 것이다.注+위후衛侯나라에 붙고자 하고, 국인國人나라에 붙기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화합和合하지 못하였다.
注+衷 中也 [附注] 林曰 今上天悔禍 而誘掖衛人之中心하야 使皆
그러나 이제 하늘이 우리들이 중정中正한 마음을 갖도록 유도誘導하여注+이다. [부주]林: 이제 하늘이 를 거두어 들이고 나라 사람들이 중정中正한 마음을 갖도록 인도했다는 말이다. 모두 마음을 겸허謙虛하게 가지고 서로 따르도록 하셨다.
不有居者 誰守社稷이며 不有行者 리오注+牛曰牧 馬曰圉
거자居者가 없었으면 누가 사직社稷(國家)을 지켰겠으며 행자行者가 없었으면 누가 임금의 우마牛馬를 보호하였겠는가?注+소를 ‘’이라 하고 말을 ‘’라 한다.
不協之故注+[附注] 林曰 恐居者行者不和協相安之故 用昭乞盟于爾大神하야 注+[附注] 朱曰 欲乞爾神 誘掖衛人中心之天理하니 自今日以往으로 旣盟之後 行者無保其力注+[附注] 林曰 凡從君出行者 無保恃其宣效勞力하고 居者無懼其罪하라注+[附注] 朱曰 群臣居於國內者 無以不出從君而恐得罪
그런데도 거자居者행자行者가 서로 화목和睦하지 못하기 때문에注+[부주]林: 거자居者행자行者화합和合하여 서로 편안하게 지내지 못할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라는 말이다. 밝게 그대들의 대신大神 앞에서 맹약盟約하여 하늘의 마음이 우리를 향하도록 유도해 주기를 비는 바이니,注+[부주]朱: 그대들의 에게 나라 사람들이 천리天理에 부합하는 중정中正한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인도해 주기를 빌고자 한다는 말이다. 오늘 결맹結盟한 이후로는 임금을 따라 국외國外로 갔던 자들은 공로功勞를 믿지 말고,注+[부주]林: 임금을 따라 국외國外에 갔던 자들은 충성忠誠선서宣誓하고 목숨을 바친(效命) 공로功勞를 믿지 말라는 말이다.국내國內에 남아 있던 자들은 를 받을까 두려워하지 말라.注+[부주]朱: 국내國內에 남아 있었던 군신群臣들은 임금을 따라 국외國外로 나가지 않았다 하여 를 얻을까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이다.
有渝此盟하야 以相及也注+以惡相及 明神先君 하리라注+[附注] 林曰 糾正其罪 而誅殛其人
맹약盟約을 어기고서 서로에게 가 미치게 하는 자가 있다면注+해악害惡이 서로에게 미치게 한다는 말이다.명신明神선군先君이 그 규정糾正하고 그 사람을 주살誅殺할 것이다.”注+[부주]林: 그 규정糾正하여 그 사람을 주살誅殺한다는 말이다.고 하였다.
國人聞此盟也하고 而後不貳하다注+傳言叔武之賢 寗兪之忠 衛侯所以書復歸
국인國人들은 이 맹약盟約을 들은 뒤에야 비로소 두 마음을 품지 않았다.注+의 말은 숙무叔武의 어짊과 영무寗武충성忠誠위후衛侯를 ‘복귀復歸’로 기록하게 한 이유라는 뜻이다.
衛侯先期入注+不信叔武할새
위후衛侯기일期日에 앞서 나라로 들어갔다.注+숙무叔武불신不信하였기 때문이다.
寗子先이러니 長牂守門이라가 以爲使也라하여 與之乘而入하다注+長牂 衛大夫 寗子患公之欲速 故先入 欲安喩國人 [附注] 林曰 長牂時爲衛守門 以寗子爲成公使 衛與寗子共載而入國
영자寗子위후衛侯에 앞서 먼저 들어가니, 장장長牂성문城門을 지키고 있다가 영자寗子위군衛君사자使者라고 하여 그와 함께 수레를 타고 성안으로 들어갔다.注+장장長牂나라 대부大夫이다. 영자寗子이 빨리 들어가고자 하는 것이 걱정되었기 때문에 자신이 먼저 들어가서 국인國人안도安堵하도록 타이르고자 한 것이다. [부주]林: 장장長牂이 이때 나라의 성문城門을 지키고 있다가 영자寗子성공成公나라로 보낸 사자使者로 여겨 영자寗子와 함께 수레를 타고서 국도國都로 들어간 것이다.
公子犬華仲前驅러니
장장長牂이 성안으로 들어가 성문을 지키는 사람이 없자 공자公子천견歂犬화중華仲위후衛侯전구前驅가 되어 성안으로 들어왔다.注+위후衛侯는 드디어 달려 들어와서 영자寗子가 미처 대비하지 못한 틈을 노려 습격襲擊한 것이다. 두 사람은 나라 대부大夫이다.
이때 숙무叔武는 머리를 감으려다가 임금이 온다는 말을 듣고는 기뻐서 풀은 머리를 움켜쥐고서 달려나오니 전구前驅가 쏘아 죽였다.
公知其無罪也하고 而哭之하다注+公以叔武尸枕其股
숙무叔武무죄無罪함을 알고서 숙무叔武의 다리에 엎드려 통곡痛哭하였다.注+숙무叔武시신尸身을 자신의 다리 위에 누인 것이다.
注+手射叔武故이어늘 公使殺之하다
천견歂犬이 달려나가니注+손수 숙무叔武사살射殺하였기 때문이다.이 사람을 시켜 그를 죽이게 하였다.
元咺出奔晉하다注+元咺以衛侯驅入 殺叔武 故至晉愬之
원훤元咺나라로 출분出奔하였다.注+위후衛侯전구前驅가 들어와서 숙무叔武를 죽였기 때문에 원훤元咺나라로 가서 하소연한 것이다.
[傳]城濮之戰 注+牛馬因風而走 皆失之 [附注] 林曰 牛馬牝牡相誘曰風하야 注+大旆 旗名 繫旐曰旆 通帛曰旃 [附注] 朱曰 亡 失也 左旃 蓋大旆有左右旃也하니
성복城濮의 전쟁 때 나라의 중군中軍이 늪 지대地帶에서 큰바람을 만나注+우마牛馬가 바람으로 인해 달아나서 우마牛馬를 모두 잃은 것이다. [부주]林: 우마牛馬의 암수가 서로 유인하는 것을 ‘’이라 한다.대패大旆좌전左旃을 잃었다.注+대패大旆기명旗名이다. 깃 가에 술을 붙인 것을 ‘’라 하고, 아무 무늬가 없는 통폭 천으로 만든 것을 ‘’이라 한다. [부주]朱: 이다. 좌전左旃이라 하였으니 대패大旆에는 좌우전左右旃이 있는 모양이다.
祁瞞奸命注+掌此二事而不脩 爲奸軍令 [附注] 朱曰 祁瞞 掌牛馬旗旆者 而皆失之 是奸犯軍命也이라하야 殺之하야 以徇于諸侯하고 使茅茷代之하다
기만祁瞞군령軍令했다 하여注+기만祁瞞은 이 두 일을 맡은 사람으로 그 직무職務수행修行하지 못하였으니, 군령軍令을 범한 것이다. [부주]朱: 기만祁瞞우마牛馬기패旗旆를 맡은 자로 이것들을 모두 잃었으니, 군령軍令를 범한 것이다.사마司馬가 그를 죽여 제후諸侯군중軍中에 조리돌리고서 모패茅茷에게 그 직무職務를 대신하게 하였다.
師還하야 壬午 濟河하다
진군晉軍환군還軍하여 임오일壬午日하수河水를 건넜다.
舟之僑先歸하니 士會攝右하다注+權代舟之僑也 士會 隨武子 士蔿之孫
주지교舟之僑가 먼저 돌아가니 사회士會거우車右대행代行하였다.注+임시로 주지교舟之僑직무職務대행代行한 것이다. 사회士會수무자隨武子사위士蔿의 손자이다.
[傳]秋七月丙申 하야 愷以入于晉注+愷 樂也하야 注+授數也 獻楚俘於廟하고 徵會討貳注+徵召諸侯 將冬會于溫 [附注] 林曰 討貳 討諸侯之有二心者하고 殺舟之僑以徇于國注+[附注] 林曰 以棄軍先歸之罪 討而殺之하니 民於是大服하다
가을 7월 병신일丙申日진려振旅하여 개선악凱旋樂을 울리며 나라 국도國都로 들어와서,注+음악音樂이다.종묘宗廟하고 음지飮至하고서 크게 상을 내리고注+의 뜻이다. 포로捕虜로 잡은 초군楚軍의 수를 종묘宗廟한 것이다.제후諸侯들을 불러 두 마음 품은 나라를 토벌討伐하게 하고注+제후諸侯징소徵召한 것은 장차 겨울에 에서 회합會合하기 위함이다.[부주]林: 토이討貳는 두 마음 품은 제후諸侯를 토벌한 것이다.주지교舟之僑를 죽여 전국全國에 조리돌리니注+[부주]林: 군대를 버리고 먼저 돌아간 를 지었기 때문에 그 징벌懲罰해 죽인 것이다. 백성들이 크게 복종하였다.
君子謂
군자君子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론評論하였다.
文公其能刑矣로다
문공文公형벌刑罰을 잘 시행施行하였다.
三罪而民服이로다注+三罪 顚頡祁瞞舟之僑
죄인罪人을 죽이니 백성들이 복종하였다.注+죄인罪人전힐顚頡기만祁瞞주지교舟之僑이다.
詩云惠此中國하야 以綏四方이라하니 不失賞刑之謂也注+詩 大雅 言賞刑不失 則中國受惠 四方安靖
에 ‘이 중국中國제후諸侯에게 은혜를 베풀어 사방四方제후諸侯안무安撫하라.’고 하였으니, 이는 공정公正을 잃지 말 것을 말한 것이다.”注+는 《시경詩經》 〈대아大雅민로편民勞篇〉이다. 공정公正을 잃지 않으면 중국中國제후諸侯가 은혜를 입고 사방의 제후諸侯안정安靖된다는 말이다.
[傳]冬 會于溫하니 討不服也注+
겨울에 에서 회합하였으니, 이는 복종服從하지 않는 나라를 징벌懲罰하기 위함이었다.注+나라와 나라를 토벌討伐하기 위함이었다.
注+爭殺叔武事할새
寗武子爲輔注+[附注] 林曰 輔 相也하고 鍼莊子爲坐하고 士榮爲大士
하다注+大士 治獄官也 周禮 命夫命婦不躬坐獄訟 元咺又不宜與其君對坐 故使鍼莊子爲主 又使衛之忠臣及其獄官質正元咺 傳曰 王叔之宰與伯輿之大夫坐獄於王庭 各不身親 蓋今長吏有罪 先驗吏卒之義
위후衛侯원훤元咺송사訟事를 할 때注+숙무叔武를 죽인 일을 가지고 서로 쟁송爭訟한 것이다.영무자寗武子가 되고注+[부주]林: 이다.침장자鍼莊子가 되고 사영士榮대사大士가 되었다.注+대사大士옥사獄事심리審理하는 관원官員이다. 《주례周禮》에 “명부命夫명부命婦옥송獄訟에 직접 나와 앉지 않는다.”고 하였으니, 원훤元咺이 그 임금과 대좌對坐할 수 없기 때문에 위후衛侯침장자鍼莊子(被告代理人)로 삼고, 또 나라의 충신忠臣나라의 옥관獄官들로 하여금 원훤元咺에게 질정質正하게 한 것이다. 양공襄公 10년 에 “왕숙王叔재신宰臣백여伯輿대부大夫쌍방雙方대리인代理人으로 왕정王庭에서 쟁송爭訟하였다.”고 하였고, 왕숙王叔백여伯輿는 직접 왕정王庭에 나오지 않았으니, 이는 오늘날 장리長吏(長官)에게 가 있으면 먼저 이졸吏卒을 조사하는 뜻과 같다.
衛侯不勝注+三子辭屈하니 殺士榮하고 刖鍼莊子하고 謂寗兪忠而免之하다
위후衛侯승소勝訴하지 못하니,注+세 사람의 말이 꿀렸기 때문에 패소敗訴한 것이다.진후晉侯사영士榮을 죽이고 침장자鍼莊子에게 월형刖刑을 가하였으나, 영유寗兪는 충성스럽다고 하여 형벌刑罰해 주었다.
執衛侯하야 歸之于京師하야 寘諸深室注+深室 別爲囚室하니 寗子職納槖饘焉하다注+寗兪以君在幽隘 故親以衣食爲己職 槖 衣之囊 饘 糜也 言其忠至 所慮者深
그리고 위후衛侯를 잡아 경사京師로 보내 심실深室유치留置하니注+심실深室은 특별히 만든 수실囚室(監房)이다.영자寗子는 따라가서 위후衛侯에게 의복과 음식을 바치는 일을 직무職務로 삼았다.注+영유寗兪는 임금이 어둡고 좁은 곳에 갇혀 있기 때문에 친히 의식衣食을 올리는 일을 자신의 직무職務로 삼은 것이다. 은 옷을 넣는 자루이고, 이다. 이는 영유寗兪의 충성이 지극하고 생각이 깊었음을 말한 것이다.
元咺歸于衛하야 立公子瑕하다注+瑕 衛公子適也
원훤元咺나라로 돌아가 공자公子를 임금으로 세웠다.注+나라 공자公子이다.
[傳]是會也 晉侯召王하야 以諸侯見하고 且使王狩注+晉侯大合諸侯 而欲尊事天子以爲名義 喩王出狩 因得群臣之禮 皆譎而不正之事하다
이번 회합會合진후晉侯을 불러 제후諸侯를 거느리고 조현朝見하고, 또 에게 사냥하게 하였다.注+진후晉侯제후諸侯를 크게 회합會合하여 천자天子존경尊敬해 섬기는 것을 명분名分의리義理로 삼고자 하였으나, 나라가 강대强大함을 스스로 혐의쩍게 여겨 감히 나라로 가서 조현朝見하지 않고, 이 나와서 사냥하도록 설득하여 모든 제후諸侯들이 신하의 를 다하게 하였으니, 이것이 모두 ‘휼이부정譎而不正’한 일들이다.
仲尼曰 以臣召君 不可以訓이라
이에 대해 중니仲尼는 “신하로서 임금을 부른 것은 교훈敎訓이 될 수 없다.”고 하였다.
故書曰 天王狩于河陽이라하니 言非其地也注+使若天子自狩以失地 故書河陽 實以屬晉 非王狩也 且明德也注+
그러므로 에 “천왕天王하양河陽에서 사냥하였다.”고 기록하였으니, 이는 이 사냥할 땅이 아님을 말한 것이고,注+마치 천자天子가 스스로 사냥을 나왔고, 사냥한 장소만이 합당한 장소가 아닌 것처럼 글을 만들었다. 그러므로 ‘하양河陽’이라고 기록한 것이다. 하양河陽은 실로 나라에 한 땅이니 이 사냥할 곳이 아니다.진문공晉文公을 밝힌 것이다.注+을 부른 진후晉侯의 잘못은 숨기고 나라의 공덕功德을 밝히고자 한 것이다. 하양지수河陽之狩조돈지시趙盾之弑설야지죄泄冶之罪에는 모두 범례凡例를 따르지 않고 변경變更하여 대의大義을 일으킨 것이다. 의심스러운 의리義理이기 때문에 특별히 중니仲尼하여 밝힌 것이다.
壬申 公朝于王所하다注+執衛侯 經在朝王下 傳在上者 告執晩
임신일壬申日이 계신 곳으로 가서 조현朝見하였다.注+위후衛侯를 잡은 것이 에는 조현朝見한 앞에 기록되어 있는데, 에는 조현朝見한 뒤에 있는 것은 위후衛侯를 잡은 것을 나라에 늦게 통고通告하였기 때문이다.
丁丑 諸侯圍許하다注+十月十五日 有日無月
정축일丁丑日제후諸侯를 포위하였다.注+10월 15일이다. 만 기록하고 은 기록하지 않았다.
晉侯有疾하니 曹伯之豎侯獳 貨筮史注+豎 掌通內外者 史 晉史 [附注] 朱曰 豎 小臣也 侯獳 其姓名也 貨筮史 謂納賂於晉掌卜筮之官也하야 使曰 하라注+以滅曹爲解故
진후晉侯가 병이 들자 조백曹伯(小臣) 후누侯獳서사筮士에게 뇌물을 주어,注+내외內外교통交通을 맡은 자이다. 나라의 이다. [부주]朱: 소신小臣이다. 후누侯獳는 그의 성명姓名이다. 화서사貨筮史복서卜筮를 맡은 나라의 관원官員에게 뇌물을 준 것이다. 병이 생긴 원인을 나라를 멸망시켰기 때문으로 풀이하게 하였다.注+나라를 멸망滅亡시킨 일로 병의 생긴 원인을 풀이하라는 말이다.
齊桓公爲會而封異姓注+封邢衛이어늘 今君爲會而滅同姓하니
이에 서사筮史진후晉侯에게 “제환공齊桓公회맹會盟하여 이성異姓제후諸侯하였는데,注+나라와 나라를 해 준 것이다. 지금 께서는 회맹會盟하여 동성同姓제후諸侯하셨습니다.
曹叔振鐸 文之昭也注+叔振鐸 曹始封君 文王之子 先君唐叔 武之穆也
조숙曹叔진탁振鐸문왕文王의 아들이고注+조숙曹叔진탁振鐸나라에 처음 해진 임금으로 문왕文王의 아들이다.선군先君당숙唐叔무왕武王의 아들입니다.
且合諸侯而滅兄弟 非禮也 與衛偕命注+私許復曹衛하고 而不與偕復 非信也 同罪異罰 注+衛已復故
그리고 또 제후諸侯회합會合하여 형제兄弟의 나라를 격멸擊滅하는 것은 가 아니고, 나라와 나라를 함께 회복回復시키겠다고 해 놓고서注+은밀히 나라와 나라를 회복시켜 주겠다고 허락한 것이다. 함께 회복回復시키지 않은 것은 이 아니며, 같은 을 달리하는 것은 이 아닙니다.注+나라는 이미 회복시켰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禮以行義하고 信以守禮하며 刑以正邪 舍此三者 君將若之何 公說하야 復曹伯하고
로써 를 행하고 으로써 를 지키며 으로써 사악邪惡을 바로잡는 것이니, 이 세 가지를 버리고서 께서는 장차 무엇으로 나라를 다스리겠습니까?”라고 하니, 은 기뻐하여 조백曹伯복위復位시켰다.
조백曹伯은 드디어 나라로 가서 제후諸侯회맹會盟하였다.
[傳]晉侯作三行以禦狄할새 荀林父將中行하고 屠擊將右行하고 先蔑將左行하다注+晉置上中下三軍 今復增置三行 三行無佐 疑大夫帥
진후晉侯삼항三行을 만들어 을 막을 때 순임보荀林父중항中行을 거느리고 도격屠擊우항右行을 거느리고 선멸先蔑좌항左行을 거느렸다.注+나라는 이미 삼군三軍설치設置하였는데, 지금 다시 삼항三行증설增設하여 천자天子육군六軍의 명칭을 피하였다. 삼항三行(副將)가 없는 것은 아마도 대부大夫가 거느렸기 때문인 듯하다.
역주
역주1 晉侯侵曹 晉侯伐衛 : 晉文公이 亡命해 떠돌아다닐 때 曹나라가 가장 무례하게 대하였고, 衛나라와 鄭나라가 다음으로 무례하였기 때문에 先儒는 ‘文公이 曹나라를 침공하고 衛나라를 토벌한 것은 원한을 갚기 위함이었다.’고 하였으나, 나의 생각은 그렇지 않다. 문공의 뜻은 오로지 霸業을 도모하는 데 있었다. 王室을 높이고 夷狄을 물리치는 것이 霸者의 先務이기 때문에 문공은 夷狄인 楚나라가 莫强하여 中國의 憂患이 되고 있는 것을 보고는 楚나라를 굴복시키지 않고는 패업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楚나라는 멀리 있고 曹나라 衛나라는 楚나라의 맹방이었다. 마침 이때 宋人이 와서 구원을 요청하니 이때야말로 楚나라를 굴복시킬 수 있는 기회였다. 그러므로 군사적으로 중요한 곳에 있는 曹나라와 衛나라를 쳐서 宋나라를 구원한 것이다. 李震相 《春秋集傳》
역주2 : 척
역주3 周禮三刺之法 : 三刺는 有罪者에 대한 生殺與否를 群臣에게 묻는 것이 一刺이고, 群吏에게 묻는 것이 二刺이고, 萬民에게 묻는 것이 三刺인데, 臣‧吏‧民이 모두 죽여야 한다고 한 뒤에 죽이는 것이다. 《周禮》 〈秋官司刺〉
역주4 執曹伯 畀宋人 : 杜注에는 曹伯을 잡아 宋人에게 준 것으로 해석하였으나, 傳에 “曹伯을 잡고 曹나라와 衛나라의 땅을 나누어 宋人에게 주었다.”고 하였으니, 執曹伯과 畀宋人은 別件의 일이다. 畀宋人은 땅을 宋人에게 준 것이다. 楊伯峻 《春秋左傳注》
역주5 公朝于王所 : ‘王所’는 王의 行在所로 바로 踐土의 新宮이다. 晉侯가 諸侯를 거느리고서 朝見한 것인데 ‘公朝’라고만 기록한 것은 晉侯의 要君(임금을 협박함)을 좋지 않게[不與] 여겼기 때문이다. 李震相 《春秋集傳》
역주6 「此」 : 저본에는 ‘先’字 앞에 ‘此’字가 있으나 《四庫全書左傳杜林合注》本에 의거하여 衍字로 처리하였다.
역주7 國逆 : 國家가 맞아들이는 것이다.
역주8 故無賢文 : 宣公 10년 經의 ‘齊崔氏出奔衛’에 대해 傳에 “崔氏라고 기록한 것은 그의 罪가 아니기 때문이다.”고 하였고, 文公 8년 經의 ‘宋司城來奔’에 대해 傳에 “魯나라로 도망올 때 符節을 府人에게 返納하고 나왔기 때문에 官職을 기록하여 그를 훌륭하게 여겼다.”고 하였으니, 훌륭하게 여길 경우에는 官職이나 氏를 기록하는 것인데 元咺은 이름을 기록하였기 때문에 훌륭하게 여긴 文辭를 쓰지 않았다고 한 것이다.
역주9 歸寧 : 시집간 딸이 父母를 뵈려고 친정으로 오는 것이다. 《潁水全集》에 “魯나라가 쳐들어갔기 때문에 와서 謝過하고서 和平하기를 요구한 것이다.”고 하였다.
역주10 例在成十五年 : 成公 15년 傳에 “백성에게 無道한 임금을 諸侯가 討伐하여 잡을 경우에 ‘某人이 某侯를 잡았다.’고 기록한다.”고 하였다.
역주11 從國逆例者 : ‘復歸’라고 기록한 것을 이름이다. 本年經 6월의 ‘衛侯鄭復歸于衛’ 注와 成公 18년 傳을 참고할 것.
역주12 曹伯襄復歸于曹 遂會諸侯圍許 : 曹伯은 無禮하고 無義하여, 진실로 나라를 잃은 죄가 있는데도 뇌물을 써서 구차히 죽음을 면하고 그 나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러나 晉나라를 매우 두려워하여 나라로 바로 돌아오지 않고 급히 許나라를 포위한 전쟁터로 달려갔으니, 이러고도 오히려 임금이라 할 수 있겠는가? 徐壽錫 《潁水全集》
역주13 遂[復] : 저본에는 ‘遂’로 되어 있으나 《十三經注疏》本에 의거하여 ‘復’으로 바로잡았다.
역주14 愚按侵曹者……以雪與塊之恥也 : 觀狀과 與塊는 僖公 23년 傳에 보인다. 觀狀은 文公이 亡命하여 여러 나라를 떠돌 때 曹伯이 목욕하는 文公의 알몸을 훔쳐본 일이고, 與塊는 衛나라 五鹿에서 野人이 먹을 것을 求乞한 文公에게 흙덩이를 준 일이다.
역주15 : 悅의 假借字로 歡心을 사는 것이다.
역주16 子叢 : 公子買의 字이다.
역주17 晉侯患之 : 군대의 士氣가 떨어질 것을 근심한 것이다.
역주18 曰稱舍於墓 : 楊伯峻의 《春秋左傳注》에 “各本에는 謀 밑에 曰이 있으나, 金澤文庫本과 敦煌殘卷에는 曰이 없다. 《通典》 兵 15와 《太平御覽》 兵部 45에 인용한 것도 이와 부합하니 지금 이에 따라 曰字를 刪削하였다. 稱은 말하는 것이다. ‘舍於墓’가 바로 輿人의 計劃이다.”고 하였다. 譯者는 楊伯峻의 說을 취하여 曰을 衍文으로 처리하였다.
역주19 曹人兇懼 : 曹人들은 자기들 祖上의 墳墓를 파헤칠까 두려워한 것이다.
역주20 數之以其不用僖負羈……且曰獻狀 : 數는 罪를 일일이 들어 꾸짖는 것이다. 獻狀에 대해서는 여러 說이 있다. 功狀을 올리게 한 것이라는 설도 있고, 獻을 獻體(옷을 벗어 알몸을 드러내는 것)의 獻으로 보아 알몸을 드러내 갈비뼈를 보여준 것이라는 설도 있고, 獻狀을 觀狀으로 보아 전에 알몸을 훔쳐본 罪를 처벌한 것이라는 설도 있다. 그러나 譯者는 杜注에 따라 번역하였다.
역주21 報於何有 : ‘何有於報’의 倒置語로 何有心於報僖負羈之恩(무엇 때문에 僖負羈의 은혜를 갚는 데는 마음을 두느냐?)는 말이다.
역주22 以君之靈 不有寧也 : 靈은 福이다. 不有寧은 《左氏會箋》의 설을 취해 번역하였다. 《左氏會箋》에 “不有寧은 反語로 안녕하다는 말이다. 不寧이라고 직선적으로 말하지 않고 不有寧이라고 말한 것은 비록 부상하였지만 오히려 안녕하다는 말이다.”고 하였다.
역주23 言不以病故自安寧 : 杜注의 뜻은 병이 있다 하여 나와서 使者를 맞이하지 않고 감히 방안에 편안히 있을 수 없다는 말이다.
역주24 讒慝 : 蔑視해서 헐뜯는 말이다.
역주25 君取一 臣取二 : 임금인 晉侯는 宋나라의 포위를 푸는 하나의 功만을 취하려 하는데, 楚나라의 신하인 子玉은 曹나라와 衛나라를 恢復시키는 두 功을 취하려 한다는 말이다.
역주26 何以戰 : 여기의 ‘何以戰’은 禮의 有無를 가지고 말한 것이다. 戰爭에는 반드시 名分이 있어야 하는데 無禮하면 名分이 없기 때문에 戰爭할 수 없다는 말이다. 《左氏會箋》
역주27 何以戰 : 여기의 ‘何以戰’은 利害를 가지고 말한 것이다. 원한을 맺은 나라가 너무 많으면 勝利를 保障할 수 없기 때문에 전쟁할 수 없다는 말이다. 《左氏會箋》
역주28 旣戰而後圖之 : 전쟁하여 勝負를 가린 뒤에 曹나라와 衛나라의 恢復與否을 결정하라는 말이다.
역주29 子玉怒 從晉師 : 子玉이 怒하여 宋나라의 포위를 풀고 晉軍과 싸우기 위해 달려온 것이다.
역주30 贈送 : 이별할 때 財物을 주어 보내는 것이다.
역주31 以亢其讎 : 亢은 抗과 같다. 남을 위해 防禦해 주는 것을 ‘亢’이라 하니 保護의 뜻이다. 其는 楚나라를 지칭한 것이고, 楚나라의 怨讐는 宋나라이다. 《左氏會箋》
역주32 晉侯患之 : 楚軍이 有利한 地勢를 先占하였기 때문에 攻擊하기 어려움을 근심한 것이다.
역주33 原田每每 舍其舊而新是謀 : 楊伯峻은 “原田은 休耕田이다. 去年에 耕作했던 田地는 금년에 다시 休耕하고, 去年에 休耕했던 田地를 금년에 다시 耕作하기 때문에 ‘舍其舊而新是謀’라고 한 것이다.”라고 하였고, 《左氏會箋》에는 周正의 4월은 夏正의 2월로 농사일을 시작할 때이고 原田에 풀이 날 때이니, 때를 놓치지 말고 묵은 풀뿌리를 뽑아내고 새로 穀食을 播種하듯이 時期를 놓치지 말고 楚나라를 쳐서 새로운 공을 도모하고 옛 은혜는 생각할 것이 없다는 뜻으로 해석하였다. 吉林文化出版社刊 《春秋譯注》에는 “土地가 아무리 肥沃해도 多年間耕作하면 地力이 消盡되므로 耕作하던 옛 토지를 버리고 新田의 開拓을 도모한다. 이는 古代의 休耕方法이다. 이 말은 晉나라가 비록 肥沃한 땅을 所有하였지만 地力이 消盡할 때가 있을 것이니, 時期를 놓치지 말고 새로운 疆土를 開拓하라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역주34 必得諸侯 : 諸侯의 推戴를 받아 霸主가 된다는 말이다.
역주35 手搏 : 서로 손으로 치는 것으로 지금의 拳鬪와 같은 것이다.
역주36 吾且柔之矣 : 楚子가 剛한 이(齒)를 사용해 나의 頭骨을 씹는데, 나는 부드러운[柔]腦로써 받쳐 주었으니, 이것이 剛한 것을 부드럽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柔之’라고 한 것이다. 楊伯峻 《春秋左傳注》
역주37 : 항
역주38 請與君之士戲 : 戲는 놀이의 뜻이 아니고, 힘을 겨루는 것이다.
역주39 : 수레 앞에 가로 댄 나무이다.
역주40 寡君聞命矣 : 聞命은 戰鬪를 청한 子玉의 뜻을 알았다는 말이다.
역주41 其敢當君乎 : 其는 豈이다. 子玉은 楚나라의 신하이고, 文公은 晉나라의 임금이다. 신하는 감히 임금을 대항할 수 없는 것이므로 임금이 後退하면 신하도 물러나야 한다. 그러므로 ‘大夫는 물러갈 것이다.’고 한 것이다. 楊伯峻 《春秋左傳注》
역주42 戒爾車乘 敬爾君事 : 戒는 整備함이다. 君事는 임금에게 받은 職務이고, 敬은 愼重히 처리하는 것이다.
역주43 設二旆 : 두 부대의 前軍을 編成한 것이다. 行軍에는 旆를 맨 앞에서 들고 가기 때문에 前軍을 旆라 한다. 莊公 28년 傳과 哀公 2년 傳에도 旆가 前軍의 뜻으로 쓰였다.
역주44 楚師馳之 : 子玉이 欒枝를 追擊한 것이다.
역주45 地[戰] : 저본에는 ‘地’로 되어 있으나 《十三經注疏》本에 의거하여 ‘戰’으로 바로잡았다.
역주46 : 俘는 戰利品이다.
역주47 鄭伯傅王 : 傅는 君王을 輔佐하고 敎導하는 官職인데, 여기서는 前導해 王의 行禮를 돕는 사람의 뜻으로 쓰였다.
역주48 命晉侯宥 : 宥의 解釋에는 많은 異說이 있다. 譯者의 《春秋左氏傳》 莊公 18년 역주를 참고하기 바란다.
역주49 以策書……九命作伯 : 策書는 辭令狀이다. 策命은 辭令狀을 주어 任命하는 것이다. 侯伯은 諸侯의 長이다. 九命作伯은 九命諸侯로 侯伯을 삼는다는 말이다. 周나라의 官階에는 一命부터 九命까지 있었는데, 一命이 가장 낮고, 九命이 가장 높다. 《周禮》 〈大宗伯〉에 “一命受職, 再命受服, 三命受位, 四命受器, 五命受則, 六命賜官, 七命賜國, 八命作牧, 九命作伯”이라고 하였다.
역주50 其服鷩冕……其服韋弁 : 鷩冕은 鷩衣와 冕旒冠으로 天子와 諸侯의 命服이다. 鷩은 꿩의 그림을 그린 것이다. 鷩服의 上衣에는 鷩‧火‧宗彛(호랑이)를 그리고 下裳에는 藻‧粉米‧黼 ‧黻을 수놓는다. 韋弁은 熟皮로 만들어 붉은 칠을 한 모자로 天子와 諸侯가 전쟁 때 착용하는 服裝이다.
역주51 : 려
역주52 秬鬯一卣 : 秬鬯은 검은 기장에 香草를 섞어 빚은 鬱鬯酒인데 제사 지낼 때 이 술을 땅에 부어 神을 降臨케 한다.
역주53 糾狄王慝 : 杜注에는 逖을 遠으로 해석하였으나, 譯者는 楊伯峻의 《春秋左傳注》를 취하여 ‘治’의 뜻으로 번역하였다.
역주54 未受命三辭……禮當如此也 : 세 차례의 謁見은 戰利品을 바칠 때가 첫 번째 알현이고, 단술을 접대 받을 때가 두 번째 알현이고, 策命을 받고 떠날 때가 세 번째 알현인데, 朱氏는 세 차례의 알현이 모두 策命을 받은 뒤에 있었던 것으로 해석하였으니 옳지 않다.
역주55 王子虎盟諸侯于王庭 : 盟于王庭이 經에 그 근거가 없으나 아래 글의 朝于王所로 보면 王이 踐土에 직접 거둥하여 諸侯를 위로한 일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徐壽錫 《潁水全書》
역주56 : 추
역주57 及而玄孫 : 而는 汝의 뜻으로 쓰였다.
역주58 弁以鹿子皮爲之……詩云會弁如星 : 瓊弁玉纓을 杜注에는 모자와 갓끈이라고 하였으나, 기타의 註釋書에는 대체로 말머리에 씌우는 모자와 말 가슴에 거는 가슴걸이로 해석하였다. 會弁如星은 《詩經》 〈衛風淇奧〉의 詩로 皮弁의 솔기 사이를 장식한 옥이 별처럼 빛난다는 말이다. 會는 皮弁의 솔기 사이이다.
역주59 獎[麋] : 저본에는 ‘獎’으로 되어 있으나 《十三經注疏》本에 의거하여 ‘麋’로 바로잡았다.
역주60 是糞土也 : 糞土는 썩은 흙인데, 하찮은 물건을 이르는 말로 쓰인다.
역주61 因神之欲……濟師之理 : 疏에 “子玉이 이것을 아끼지 않고 神의 요구를 들어주었다면 國人들은 ‘神이 갖고 싶어 한 물건을 얻었으니 반드시 우리를 도와 줄 것이라.’고 여겨, 三軍은 命令을 잘 따르고 戰士는 先鋒을 다툴 것이기 때문에 ‘因神之欲以附百姓之願是濟師之理’라고 한 것이다.”고 하였다.
역주62 喜可知也 : 知는 見(드러냄)이다.
역주63 天誘其衷 : 楊伯峻의 《春秋左傳注》에 “天誘其衷은 當時의 慣用語로 《左傳》에 모두 다섯 번 보이는데, 모두 하늘의 마음이 우리에게 있다는 뜻이다.”고 하였다.
역주64 降心以相從 : 모두 자기의 主見을 버리고 서로 좋은 점을 따른다는 말이다.
역주65 誰扞牧圉 : 扞은 保護하는 것이다.
역주66 以誘天衷 : 楊伯峻의 《春秋左傳注》에는 “天衷은 天心의 뜻이니, 天心이 우리에게 向하도록 빈다는 말이다.”고 하였다.
역주67 是糾是殛 : 糾는 바로 윗 글의 ‘糾逖王慝’의 糾로 治의 뜻이니, 糾正은 罪를 懲治하는 것이다.
역주68 : 천
역주69 長牂守門……前驅射而殺之 : 長牂은 寗子가 使者인 줄로만 알고 衛侯의 先發隊인 줄 모르고서 그와 함께 수레를 타고 성안으로 들어간 것이다. 이때 城門에 지키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衛侯가 곧장 들어와서 叔武를 죽인 것이다.
역주70 衛侯遂驅 掩寗子未備 : 杜注의 말은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寗子가 衛侯를 위해 먼저 들어간 것인데, 襲擊은 무엇이고 未備는 또 무엇인지 모르겠다. 掩은 襲擊의 뜻이다.
역주71 奄[掩] : 저본에는 ‘奄’으로 되어 있으나 《十三經注疏》本에 의거하여 ‘掩’으로 바로잡았다.
역주72 枕之股 : 杜注에는 죽은 叔武의 머리를 자신의 다리를 베게 한 것으로 해석하였으나, 譯者는 公이 叔武의 다리를 벤 것으로 번역하였다.
역주73 歂犬走出 : 歂犬은 叔武를 죽인 것을 公이 좋아할 줄 알았는데, 통곡하는 것을 보고는 겁이 나서 도망가기 위해 달려나간 것이다.
역주74 晉中軍風于澤 : 晉軍이 늪 地帶를 지나다가 큰바람을 만난 것이다. 傳文에 ‘牛馬’란 말이 없는데, 牛馬를 잃었다고 한 杜注와 ‘風’을 牛馬의 바람으로 해석한 林註가 모두 옳지 않다.
역주75 亡大旆之左旃 : 大旆의 左旃은 前軍의 左旃이다. 上文의 ‘狐毛設二旆’ 注 참고할 것.
역주76 司馬 : 法을 맡은 軍職이다.
역주77 振旅 : 군대가 나가는 것을 ‘治兵’이라 하고, 들어오는 것을 ‘振旅’라 하는데, 여기서는 勝戰하고 돌아오는 뜻으로 쓰였다.
역주78 獻俘授馘 飮至大賞 : 俘는 生捕한 敵軍이고, 馘은 죽인 敵軍의 귀를 벤 것이다. 獻과 授는 모두 告의 뜻이다. 飮至大賞은 隱公 5년 傳의 注를 참고할 것.
역주79 許衛[衛許] : 저본에는 ‘許衛’라고 되어 있으나 《十三經注疏》本에 의거하여 ‘衛許’로 바로잡았다.
역주80 衛侯與元咺訟 : 叔武를 죽인 일로 元咺이 侯伯인 晉侯에게 衛侯를 告訴하였기 때문에 衛侯가 應訴한 것이다.
역주81 寗武子爲輔……士榮爲大士 : 天子의 爵名을 받은 남자나 여자는 직접 法庭에 서지 않는 것이 당시의 제도이다. 衛侯는 신하인 元咺과 對坐할 수 없기 때문에 鍼莊子를 자신의 代理人[坐]으로, 寗武子를 鍼莊子의 補助人[輔]으로, 士榮을 晉나라의 獄官과 是非를 論爭하는 大士로 삼아 訴訟에 應對한 것이다.
역주82 : 죽
역주83 自嫌强大 不敢朝周 : 疏에 의하면 晉侯의 本心은 諸侯를 대대적으로 모아 함께 天子를 섬기는 것을 신하의 名分과 道義로 삼고자 한 것이고, 실로 天子의 자리를 엿보려는 마음은 없었다. 그러나 이때 周나라 王室이 이미 衰頹하여 天子가 微弱하였으니, 갑자기 아홉 나라의 군대 수십만을 거느리고 京師로 가서 天子을 謁見한다면 簒奪하려는 意圖가 있는 것으로 誤認될 우려가 있기 때문에 周나라로 가지 않고 王이 오도록 불렀다는 뜻이다.
역주84 書[盡] : 저본에는 ‘書’로 되어 있으나 《十三經注疏》本에 의거하여 ‘盡’으로 바로잡았다.
역주85 隱其召君之闕……故特稱仲尼以明之 : 疏에 “晉侯가 王을 부른 것은 그 뜻이 天子를 尊崇하는 데 있었기 때문에 舊史의 글을 고쳐 임금을 부른 잘못은 숨기고 晉侯의 功德을 밝힌 것이다. 功德은 天子를 尊敬해 섬긴 일이다. 丘明이 傳을 지은 것은 仲尼의 뜻을 그려내기 위함이다. 《春秋》에 舊史의 글을 改易한 것은 모두 仲尼가 고친 것인데, 河陽之狩, 趙盾之弑, 泄冶之罪, 이 세 일에만 특별히 ‘仲尼曰’이라고 칭한 것은 舊史의 기록은 모두 사실대로 기록하여 ‘晉侯가 王을 불러 사냥하게 하였다.’고 하였으나, 仲尼는 이를 고쳐 王이 스스로 사냥한 것으로 만들었으니, 이는 사실이 아니다. 凡例에 의하면 弑君을 기록함에 있어 君의 이름을 칭한 것은 國君이 無道했기 때문이다. 晉靈公은 無道하였는데도 신하의 이름을 칭해 弑害하였다고 기록하여 마치 靈公에게 아무 잘못이 없는 것처럼 만들었고(宣公 2年), 大夫가 아무 罪 없이 殺害되었으면 大夫의 이름을 칭하지 않는 것이 例이다. 泄冶는 忠諫하다가 殺害되었는데도 이름을 기록해 마치 죽을 罪를 진 것처럼 만들었다(宣公 9年). 이 세 일에 대한 기록은 모두 仲尼가 凡典을 어기고 舊例를 변경하여 大義를 일으킨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의심스러운 義理여서 사람들이 믿지 않을 우려가 있기 때문에 聖人의 말씀으로 증명한 것이다. 그러므로 杜注에 ‘특별히 仲尼라고 칭하여 舊史의 글을 仲尼가 고친 것임을 밝힌 것이다.’고 한 것이다.”고 하였다.
역주86 以曹爲解 : 曹나라를 滅亡시킨 일로 曹나라 先君의 神이 災殃을 내려 병이 생긴 것으로 풀이하라는 말이다.
역주87 非刑也 : 公正한 刑罰이 아니라는 말이다.
역주88 遂會諸侯于許 : 復位된 曹伯은 曹나라로 가지 않고 즉시 許나라로 가서 晉侯가 주도한 會盟에 참여한 것이다.
역주89 以辟天子六軍之名 : 天子만이 六軍을 둘 수 있고, 諸侯는 大國인 경우라야 三軍을 둘 수 있다. 晉나라는 이미 三軍을 가졌는데 다시 三軍을 增設하면 天子만이 둘 수 있는 六軍의 名稱을 僭用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增設한 군대의 명칭을 ‘三軍’이라 하지 않고 ‘三行’이라고 한 것이다.

춘추좌씨전(2) 책은 2019.05.2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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