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春秋左氏傳(4)

춘추좌씨전(4)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춘추좌씨전(4)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經]十有一年春王正月 作三軍注+增立中軍 萬二千五百人爲軍 [附注] 林曰 此志三家分公室之始 하다
11년 봄 주왕周王정월正月나라가 군대를 삼군三軍으로 편성編成하였다.注+기존旣存상하上下양군兩軍추가追加중군中軍을 세운 것이다. 1만 2천 5백 명이 1이다. [부주]林: 이것은 삼가三家(孟孫, 숙손叔孫, 계손季孫)가 공실公室분점分占하기 시작한 것을 기록한 것이다.
[經]夏四月 四卜郊호대 不從이어늘 乃不郊注+無傳 하다
여름 4월에 교제郊祭를 지내는 것이 한지 한지에 대해 네 차례 거북점을 쳤으나 하지 않으니 교제郊祭를 지내지 않았다.注+이 없다.
[經]鄭公孫舍之帥師侵宋하다
나라 공손公孫사지舍之가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나라를 침공侵攻하였다.
[經]公會晉侯宋公衛侯曹伯齊世子光莒子邾子滕子薛伯杞伯小邾子伐鄭注+世子光至 復在莒子之先 故晉悼亦進之 [附注] 林曰 此悼公三駕之二 하다
양공襄公진후晉侯송공宋公위후衛侯조백曹伯나라 세자世子거자莒子주자邾子등자滕子설백薛伯기백杞伯소주자小邾子회합會合하여 나라를 토벌討伐하였다.注+나라 세자世子도착到着한 것이 또 거자莒子보다 앞섰기 때문에 진도공晉悼公이 그를 거자莒子의 위로 올린 것이다. [부주]林: 이것이 진도공晉悼公삼가三駕(세 차례 출병出兵) 중에 두 번째이다.
[經]秋七月己未 同盟于亳城北注+亳城 鄭地 伐鄭而書同盟 鄭與盟可知 하다
가을 7월 기미일己未日박성亳城 북쪽에서 동맹同盟하였다.注+박성亳城나라 땅이다. 나라를 토벌한 것인데 동맹同盟으로 기록하였으니, 나라가 동맹同盟에 참여한 것을 알 수 있다.
[經]公至自伐鄭注+無傳
양공襄公나라 토벌에서 돌아왔다.注+이 없다.
[經]楚子鄭伯伐宋하다
초자楚子정백鄭伯나라를 토벌하였다.
[經]公會晉侯宋公衛侯曹伯齊世子光莒子邾子滕子薛伯杞伯小邾子伐鄭注+晉遂尊光 [附注] 林曰 此悼公三駕之三 하다
양공襄公진후晉侯송공宋公위후衛侯조백曹伯나라 세자世子거자莒子주자邾子등자滕子설백薛伯기백杞伯소주자小邾子회합會合하여 나라를 토벌하였다.注+나라는 드디어 나라 세자世子존대尊待하였다. [부주]林: 이것이 진도공晉悼公삼가三駕 중에 세 번째이다.
[經]會于蕭魚注+鄭服而諸侯會 蕭魚 鄭地 [附注] 林曰 伐鄭會于蕭魚 序績也 自是鄭不叛晉者 二十四年하다
소어蕭魚에서 회합會合하였다.注+나라가 복종服從하였으므로 제후諸侯회합會合한 것이다. 소어蕭魚나라 땅이다. [부주]林: 나라를 토벌討伐하고서 소어蕭魚에서 회합會合한 것은 공적功績서차序次하기 위해서였다. 이때부터 나라는 24년 동안 나라를 배반背叛하지 않았다.
[經]公至自會注+無傳 以會至者 觀兵而不果侵伐 하다
양공襄公회합會合에서 돌아왔다.注+이 없다. ‘회합에서 돌아왔다[會至]’고 한 것은 무력武力과시誇示하고 침벌侵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經]楚人執鄭行人良霄注+良霄 公孫輒子伯有也 하다
초인楚人나라 행인行人양소良霄를 잡았다.注+양소良霄공손公孫의 아들 백유伯有이다.
[經]冬 秦人伐晉하다
겨울에 진인秦人나라를 토벌하였다.
[傳]十一年春 季武子將作三軍注+魯本無中軍 唯上下二軍 皆屬於公 有事 三卿更帥以征伐 季氏欲專其民人 故假立中軍 因以改作 하야 注+征 賦稅也 三家各征其軍之家屬 하노라 穆子曰 注+政者 霸國之政令 禮 大國三軍 魯次國而爲大國之制 貢賦必重 故憂不能堪 이리라
11년 봄에 계무자季武子가 군대를 삼군三軍으로 만들고자 하여注+나라에는 본래 중군中軍이 없고 오직 상하上下양군兩軍만이 있어 모두 공실公室소속所屬되었다. 그러므로 전쟁戰爭이 있으면 세 이 번갈아 가며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정벌征伐하였다. 계씨季氏는 그 인민人民독점獨占하고자 하여, 중군中軍을 세운다고 가탁假託하여 군제軍制를 고친 것이다. 숙손목자叔孫穆子에게 하기를 “삼군三軍으로 만들어 우리 삼가三家가 각각 일군一軍씩을 소유所有하기를 청합니다.”注+부세賦稅이다. 삼가三家가 각각 그 군대의 가속家屬에게 정세征稅하는 것이다. 고 하니, 목자穆子가 말하기를 “나라의 정권政權이 장차 그대에게 돌아갈 것이니 그대는 반드시 우리 삼가三家화합和合시킬 수 없을 것이다.”注+패주霸主의 나라가 내리는 정령政令이다. 에 의하면 대국大國이라야 삼군三軍을 둘 수 있다. 나라는 차국次國으로 대국大國제도制度를 따른다면 공부貢賦가 반드시 과중過重할 것이므로 감당堪當할 수 없을까 걱정된다는 말이다. 고 하였다.
武子固請之한대 穆子曰 然則盟諸注+穆子知季氏將復變易 故盟之 乃盟諸僖閎注+하고 諸五父之衢注+五父衢 道名 在魯國東南 詛 以禍福之言相要 하다
계무자季武子가 굳이 청하자 목자穆子가 말하기를 “그렇다면 맹서盟誓할 수 있는가?”注+목자穆子계씨季氏가 장차 다시 변역變易할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에게 맹약盟約하게 한 것이다. 라고 하니, 계무자季武子희공僖公묘문廟門에서 맹서盟誓하고,注+희공僖公종묘宗廟이다. 오보五父의 거리에서 저주詛呪하였다.注+오보五父의 거리는 도로道路의 이름이다. 나라 국도國都의 동남쪽에 있다. 화복禍福의 말로 서로 약속約束하는 것이다.
正月 作三軍하야 注+三分國民衆 하고 注+壞其軍乘 分以足成三軍 하다
정월正月삼군三軍으로 만들어 공실公室의 군대를 삼분三分하여 삼가三家가 각각 일군一軍씩을 소유所有하고서,注+국가國家민중民衆삼분三分한 것이다.삼가三家는 각각 전부터 소유所有했던 사병私兵을 헐어서 새로 편성編成하는 군대에 편입編入시켰다.注+원래 소유所有하였던 군승軍乘(私兵)을 허문 것은 각각 몫으로 받은 것이 삼군三軍을 이루기에 충분하였기 때문이다.
注+使軍乘之人 率其邑役入季氏者 無公征 [附注] 林曰 以其役邑 率其私邑之役徒 하고 不入者倍征注+不入季氏者 則使公家倍征之 設利病 欲驅使入己 故昭五年傳曰 季氏盡征之 民辟倍征 故盡屬季氏 하다
계씨季氏는 〈자기의 몫으로 돌아온〉 병사兵士들에게 병역兵役부세賦稅[邑]를 자기에게 바치는 자는 공가公家부세賦稅면제免除하고注+군승軍乘편입編入한 사람으로 그 읍역邑役을 거느리고 계씨季氏에게 바치는 자에게는 공실公室에 바치는 부세賦稅를 없애 준 것이다. [부주]林: 이기역읍以其役邑은 그 사읍私邑역도役徒를 인솔하는 것이다. 자기에게 바치지 않는 자는 공가公家부세賦稅를 배로 내도록 규정規定하였다.注+계씨季氏에게 바치지 않는 자에게는 공가公家로 하여금 배로 정세征稅하게 한 것은 롭고 로운 제도制度를 만들어 백성들이 자기에게 바치도록 인도하고자 한 것이다. 그러므로 소공昭公 5년 에 ‘계씨진정지季氏盡征之’라고 한 것이다. 백성들은 배로 정세征稅하는 것을 하고자 하였기 때문에 모두 계씨季氏에게 귀속歸屬한 것이다.
孟氏使半爲臣하니 若子若弟注+取其子弟之半也 四分其乘之人 以三歸公 而取其一 러라
맹씨孟氏사병私兵 중에 장정壯丁(子弟) 절반을 가신家臣(奴隷를 뜻함)으로 삼도록 규정規定하였다.注+자제子弟한 것이다. 자기 몫으로 돌아온 군대를 사분四分하여 삼분三分공가公家귀속歸屬시키고 그 일분一分만을 한 것이다.
叔孫氏使盡爲臣注+盡取子弟 以其父兄歸公 하고 注+制軍分民 不如是 則三家不舍其故而改作也 此蓋三家盟詛之本言 리라
숙손씨叔孫氏병사兵士를 모두 가신家臣이 되게 규정規定하였으니,注+그 젊은 자제子弟는 자기가 다 하고 그 늙은 부형父兄공가公家귀속歸屬시킨 것이다. 이렇게 할 수 없었다면 숙손씨叔孫氏는 옛 제도制度를 버리지 않았을 것이다.注+군대의 편제編制국민國民분점分占을 이와 같이 하지 않았다면 삼가三家는 그 옛 제도制度를 버리고 개편改編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삼가三家맹서盟誓하고 저주詛呪한 말인 듯하다.
[傳]注+[附注] 朱曰 自八年以來 晉楚更迭伐鄭 鄭人患之 하니 諸大夫曰 不從晉이면 國幾亡注+幾 近也 이리라
정인鄭人나라와 나라가 번갈아 가며 침공侵攻하는 일을 근심하여,注+[부주]朱: 양공襄公 8년 이후로 나라와 나라가 번갈아 나라를 쳤으므로 정인鄭人이 근심한 것이다.대부大夫들이 말하기를 “나라에 복종服從하지 않으면 나라가 거의 하게 될 것이다.注+이다.
楚弱於晉일새 晉不吾疾也注+疾 急也 [附注] 林曰 晉不急於爭鄭
나라가 나라보다 하기 때문에 나라가 우리를 복종服從시키려고 급히 서둘지 않는 것이다.注+이다. [부주]林: 나라가 나라를 다투는 일에 서둘지 않는다는 말이다.
晉疾이면 楚將辟之注+[附注] 朱曰 若晉急來爭鄭 楚必避晉而不敢爭 어늘 何爲而使晉師致死於我注+言當作何計 하야 楚弗敢敵이리오
만약 나라가 급히 서둔다면 초군楚軍은 반드시 해 도망갈 것인데,注+[부주]朱: 만약 나라가 급히 와서 나라와 나라를 다투면 초군楚軍은 반드시 진군晉軍하고 감히 다투지 못할 것이라는 말이다. 어떻게 하여야 나라로 하여금 죽을힘을 다해 우리를 공격攻擊하게 하여注+무슨 계책計策을 써야 되겠느냐는 말이다. 나라가 감히 나라를 대적對敵하지 못하게 할 수 있을 것인가?
而後可固與也注+固與晉也 子展曰 與宋爲惡이면 諸侯必至注+[附注] 林曰 言宋常事晉 若鄭與宋交兵相惡 諸侯必以宋故來伐鄭 리니 吾從之盟하고 楚師至어든 吾又從之 則晉怒甚矣리라
그런 뒤에야 우리와 나라의 관계關係공고鞏固해질 수 있다.”注+나라와의 우호友好공고鞏固히 하는 것이다. 고 하니, 자전子展이 말하기를 “나라와 흔단釁端[惡]을 만들면 제후군諸侯軍이 반드시 구원救援하기 위해 와서 우리를 공격攻擊할 것이니,注+[부주]林: 나라는 항상 나라를 섬겼으니, 만약 나라가 나라와 교전交戰하여 서로 공격攻擊한다면 제후諸侯는 반드시 나라 때문에 와서 나라를 칠 것이라는 말이다. 우리는 그들에게 복종服從하여 결맹結盟하고, 초군楚軍이 와서 우리를 공격攻擊하거든 우리가 또 나라에 복종服從하면 나라는 매우 할 것이다.
晉能驟來어니와 楚將不能이리니 吾乃固與晉이라
나라는 자주 쳐들어올 수 있으나 나라는 자주 올 수 없으니, 이렇게 되어야 우리와 나라의 관계關係공고鞏固해질 수 있다.”고 하였다.
大夫說之注+[附注] 林曰 鄭之大夫皆說其謀 하야 使疆場之司惡於宋注+使守疆場之吏侵犯宋 하니 宋向戌侵鄭하야 大獲注+[附注] 林曰 大有所獲 하다
대부大夫들은 이 말에 기뻐하여,注+[부주]林: 나라 대부大夫가 모두 그 계모計謀를 기뻐한 것이다. 국경國境을 지키는 관리官吏에게 나라와 흔단釁端을 만들게 하니,注+국경國境을 지키는 관리官吏로 하여금 나라를 침범侵犯하게 한 것이다. 나라 상술向戌나라를 침공侵攻하여 많은 정군鄭軍포획捕獲하였다.注+[부주]林: 크게 포획捕獲한 바가 있었다는 말이다.
子展曰 師而伐宋可矣
자전子展이 말하기를 “출병出兵[師]하여 나라를 치는 것이 좋다.
若我伐宋이면 諸侯之伐我必疾이리니 吾乃聽命焉하고 且告於楚 楚師至리니 吾又與之盟하고 而重賂晉師 乃免矣注+言如此 乃免於晉楚之難 [附注] 林曰 重行賂以求服於晉師 리라
우리가 나라를 치면 제후군諸侯軍이 반드시 우리를 맹공猛攻[疾]할 것이니, 우리는 항복降服하여 제후諸侯을 듣고, 또 나라에 통고通告하면 초군楚軍이 올 것이니, 우리가 또 나라와 결맹結盟하고서 진군晉軍에게 많은 재물財物을 주면 할 수 있을 것이다.”注+이와 같이 되어야 나라가, 나라와 나라가 번갈아 침공侵攻하는 환란患亂을 면할 수 있다는 말이다. [부주]林: 재물財物을 많이 주고서 진군晉軍복종服從하기를 구한다는 말이다. 고 하였다.
鄭子展侵宋注+欲以致諸侯 하다
여름에 나라 자전子展나라를 침공侵攻하였다.注+제후군諸侯軍을 불러들이기 위해 나라를 친 것이다.
[傳]四月 諸侯伐鄭하다
4월에 제후諸侯나라를 토벌하였다.
己亥 齊太子光宋向戌先至于鄭하야 注+傳釋齊太子光所以序莒上也 向戌不書 宋公在會故 하고 其莫 하야 東侵舊許注+許之舊國 鄭新邑 하고 하다
기해일己亥日나라 태자太子나라 상술向戌은 먼저 나라에 당도當到하여 나라 동문東門 밖에 주둔駐屯[門]하고,注+나라 태자太子거자莒子의 위에 서열序列한 이유를 해석解釋한 것이다. 상술向戌을 기록하지 않은 것은 송공宋公회합會合참석參席하였기 때문이다. 그날 저녁에 나라 순앵荀罃나라 서교西郊에 도착하여 으로 진군進軍하여 옛 나라의 땅을 침공侵攻하고,注+구허舊許나라의 옛 국도國都나라 신읍新邑이다. 나라 손임보孫林父나라 북쪽 변읍邊邑침공侵攻하였다.
六月 諸侯會于北林하야 師于向注+向 地在潁川長社縣東北 이라가 注+北行而西爲右還 陽宛陵縣西有瑣侯亭 하다
6월에 제후諸侯북림北林에서 회합會合하고서 주둔駐屯하였다가注+영천潁川장사현長社縣동북東北쪽에 있다. 우회右回하여 주둔駐屯하였다.注+북쪽을 향해 가다가 서쪽을 향해 가는 것을 ‘우환右還’이라 한다. 형양熒陽완릉현宛陵縣 서쪽에 쇄후정瑣侯亭이 있다.
圍鄭하야 觀兵于西門注+觀 示也 하고 西濟于濟隧注+濟隧 水名 하니 鄭人懼하야 乃行成하다
나라를 포위包圍하여 서문西門 밖에서 무력武力과시誇示[觀兵]하고서,注+은 보여 주는 것이다. 서쪽으로 이동移動제수濟隧를 건너니注+제수濟隧수명水名이다. 정인鄭人이 두려워하여 화친和親을 요구하였다.
秋七月 同盟于亳注+[附注] 林曰 鄭服故也 亳卽經書亳城北 하다
가을 7월에 에서 동맹同盟하였다.注+[부주]林: 나라가 복종服從하였기 때문이다. 은 바로 에 기록한 ‘박성북亳城北’이다.
范宣子曰 注+愼 敬威儀 謹辭令 리라
범선자范宣子(士匄)가 말하기를 “〈재서載書를〉 신중愼重작성作成하지 않으면 반드시 제후諸侯를 잃을 것이다.注+위의威儀를 공경하고 사령辭令을 삼가는 것이다.
諸侯道敝而無成이면 能無貳乎注+數伐鄭 皆罷於道路 乃盟하다
제후諸侯가 먼 길을 오가느라 지치기만 하고 아무 성과成果도 없다면 어찌 두마음을 품지 않겠는가?”注+빈번頻繁나라 토벌討伐로 모두 도로道路에서 지쳤다는 말이다. 라고 하고서, 이에 맹약盟約하였다.
載書曰
재서載書내용內容은 다음과 같았다.
凡我同盟 注+年穀 而不分災 하며 毋壅利注+專山川之利 하며 注+藏罪人 하며 注+速去惡 하며 하며 同好惡하야 注+獎 助也하라
“우리 동맹同盟한 나라들은 곡식穀食을 쌓아 두지 말 것이며,注+곡식穀食을 쌓아 두고서 이웃 나라가 재앙災殃을 당했을 때 함께 나누지 않는 것이다. 이익利益독점獨占하지 말 것이며,注+산천山川에서 나는 이익利益독점獨占하는 것이다. 죄인罪人보호保護하지 말 것이며,注+죄인罪人을 숨겨 주는 것이다. 악인惡人체류滯留시키지 말 것이며,注+을 버리는 것이다. 재환災患구제救濟할 것이며, 화란禍亂구휼救恤할 것이며, 호오好惡를 한가지로 하여 왕실王室을 도울 것이다.注+은 돕는 것이다.
或間玆命이면 司愼司盟 名山名川注+二司 天神 [附注] 朱曰 司盟 主盟誓之神 群神群祀注+群祀 在祀典者 先王先公注+先王 諸侯之太祖 宋祖帝乙 鄭祖厲王之比也 先公 始封君 七姓十二國之祖注+七姓 晉魯衛鄭曹滕 姬姓 邾小邾 曹姓 宋 子姓 齊姜姓 莒 己姓 杞 姒姓 薛 任姓 實十三國 言十二 誤也 注+殛 誅也 하야 俾失其民하고 注+[附注] 朱曰 隕其天命 絶其氏族 하야 踣其國家注+踣 斃也 하리라
누구라도 이 한다면 사신司愼(불경한 자를 살피는 )‧사맹司盟(盟約을 감시監視하는 )과 명산名山명천名川注+사신司愼사맹司盟천신天神이다. [부주]朱: 사맹司盟맹서盟誓주관主管하는 이다. 군신群神(各種 천신天神)‧군사群祀(天神 이 외에 사전祀典에 든 )와注+군사群祀사전祀典(祭祀할 제례의식祭禮儀式을 기록한 전적典籍)에 실린 이다. 선왕先王선공先公注+선왕先王제후諸侯태조太祖나라가 제을帝乙시조始祖로 삼고, 나라가 여왕厲王시조始祖로 삼는 것과 같은 것이다. 선공先公은 처음 제후諸侯해진 임금이다. 칠성七姓 12조상祖上注+칠성七姓희성姬姓이고, 소주小邾조성曹姓이고, 자성子姓이고, 강성姜姓이고, 기성己姓이고, 사성姒姓이고, 임성任姓이다. 실은 13이니, 12이라 한 것은 오류誤謬이다. 밝으신 [殛]을 내려,注+은 죽임[誅]이다. 그 백성을 잃게 하고 그 임금을 죽이고 그 씨족氏族멸망滅亡시켜注+[부주]朱: 그 천명天命을 잃게[隕] 하고, 그 씨족氏族멸절滅絶시키는 것이다. 국가國家하게 할 것이다.”注+는 엎어지는 것이다.
[傳]楚子囊乞旅于秦注+乞師旅於秦 하다
나라 자낭子囊나라에 원군援軍요청要請하였다.注+나라에 원군援軍한 것이다.
秦右大夫詹帥師從楚子하야 將以伐鄭하니 鄭伯逆之하다 丙子 注+鄭逆服 故更伐宋也 秦師不書 不與伐宋而還 하다
나라 우대부右大夫이 군사를 거느리고 와서 초자楚子를 따라 나라를 토벌討伐하려 하니, 정백鄭伯이 이들을 맞이하여 항복降服하고서 병자일丙子日초군楚軍과 함께 나라를 토벌하였다.注+나라가 초군楚軍영접迎接항복降服하였기 때문에 다시 나라를 친 것이다. 진군秦軍을 기록하지 않은 것은 나라를 치는 일에 참여參與하지 않고 돌아갔기 때문이다.
[傳]九月 注+此夏諸侯皆復來 故曰悉師 하니 鄭人使良霄大宰石㚟如楚하여 告將服于晉 曰 孤以社稷之故 不能懷君이라
9월에 제후諸侯가 군대를 다 동원動員하여 다시 나라를 치니,注+이번 여름에 제후諸侯가 모두 다시 왔기 때문에 ‘실사悉師’라고 한 것이다.정인鄭人양소良霄태재太宰석착石㚟나라로 보내어 나라에 항복降服하려 한다는 것을 하게 하기를 “(鄭伯의 자칭自稱)는 사직社稷(國家)의 연고로 군왕君王(楚君을 이름)을 생각할 수 없습니다.
이면 不然이면 孤之願也注+[附注] 林曰 奮其武師 震怒以攝服 而威恐之 使不敢爭鄭
군왕君王께서 만약 옥백玉帛으로 나라와 화평和平을 맺으신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만〉 그렇게 할 수 없다면 군대의 위력威力[武震]으로 나라를 두렵게[攝威] 하는 것이 의 바람입니다.”注+[부주]林: 그 무사武師(武力)를 드날리고[奮]진노震怒하여 겁을 주어 굴복屈服시키고 위엄威嚴으로 두렵게 하여 나라로 하여금 감히 나라를 다투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라고 하였다.
楚人執之하다
초인楚人양소良霄석착石㚟을 잡았다.
書曰行人 言使人也注+書行人 言非使人之罪 古者兵交 使在其間 所以通命示整 或執殺之 皆以爲譏也 旣成而後告 故書在蕭魚下 石㚟爲介 故不書
에 ‘행인行人’이라고 기록한 것은 그들이 사인使人이었음을 말한 것이다.注+에 ‘행인行人’이라고 기록한 것은 사인使人가 아님을 말한 것이다. 옛날에 전쟁戰爭할 때에 사자使者양진영兩陣營 사이를 오간 것은 서로의 하고 정제整齊되었음을 보이기 위함이었다. 그러므로 사자使者를 잡거나 죽인 것을 기록한 것은 모두 나무란 뜻이다. 동맹同盟한 뒤에 〈행인行人을 잡은 것을〉 나라에 통고通告하였기 때문에 〈잡은 것을〉 소어蕭魚 밑에 기록한 것이다. 석착石㚟개사介使(副使)였기 때문에 에 기록하지 않은 것이다.
[傳]諸侯之師觀兵于鄭東門하니 鄭人使王子伯騈行成하다
제후諸侯의 군대가 나라 동문東門에서 무력武力과시誇示하니 정인鄭人왕자王子백병伯騈을 보내어 화친和親요구要求하였다.
甲戌 晉趙武入盟鄭伯하고 冬十月丁亥 鄭子展出盟晉侯注+二盟不書 不告 하다
갑술일甲戌日나라 조무趙武나라 도성都城으로 들어가서 정백鄭伯결맹結盟하고, 겨울 10월 정해일丁亥日나라 자전子展도성都城을 나와서 진후晉侯결맹結盟하였다.注+에 이 두 결맹結盟(趙武가 정백鄭伯과 맺은 맹약盟約자전子展진후晉侯와 맺은 맹약盟約)을 기록하지 않은 것은 나라에 통고通告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十二月戊寅 會于蕭魚注+經書秋 史失之 하다
12월 무인일戊寅日소어蕭魚에서 회합會合하였다.注+에 가을로 기록한 것은 사관史官이 잘못 기록한 것이다.
庚辰 赦鄭囚注+[附注] 林曰 赦伐鄭所俘獲之囚 하야 皆禮而歸之하고 納斥候注+不相備也 하며 禁侵掠注+[附注] 林曰 諸侯各止侵掠 務相信厚 하다
경진일庚辰日나라 포로捕虜사면赦免하여注+[부주]林: 나라를 토벌討伐할 때 잡은 포로捕虜사면赦免한 것이다. 모두 예로 대우待遇해 돌려보내고, 척후병斥候兵철수撤收시키고注+서로 경비警備하지 않는 것이다. 침략侵掠하였다.注+[부주]林: 제후諸侯가 각각 침략侵掠금지禁止하여 서로 믿음이 두터워지기를 힘쓴 것이다.
晉侯使叔肸告于諸侯注+叔肸 叔向也 告諸侯 亦使赦鄭囚 하니 公使臧孫紇對曰 凡我同盟 小國有罪하야 大國致討 鮮不赦宥하니 寡君聞命矣注+言晉討小國 有藉手之功 則赦其罪人 德義如是 不敢不承命 [附注] 朱曰 言鄭國昔有叛晉之罪 晉國率諸侯而討之 苟有成功 可以薦藉其手 則晉無不放赦其罪人者 라하다
진후晉侯숙힐叔肸을 보내어 제후諸侯에게 이 통고通告하니,注+숙힐叔肸숙향叔向이다. 제후諸侯에게 통고通告하여 제후諸侯나라 포로捕虜사면赦免하게 한 것이다.양공襄公장손흘臧孫紇을 보내어 회답回答하기를 “우리 동맹국同盟國들은 소국小國가 있어 대국大國토벌討伐할 때 작은 소득所得이라도 있으면 용서容恕하지 않은 적이 없었으니, 과군寡君께서는 이 을 따르기로 하였습니다.”注+나라가 소국小國토죄討罪할 때 작은 (所得)이라도 있으면 그 죄인罪人용서容恕하였다. 그 덕의德義가 이와 같았으니 감히 을 받들지 않을 수 없다는 말이다. [부주]朱: 나라가 전에 나라를 배반背叛가 있어 나라가 제후諸侯를 거느리고 나라를 토죄討罪할 때 손에 쥘 만한 성공成功이 있으면 나라는 그 죄인罪人사면赦免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는 말이다. 고 하였다.
[傳]鄭人賂晉侯以師悝師觸師蠲注+悝觸蠲 皆樂師名 甲兵備注+廣車軘車 皆兵車名 淳 耦也 [附注] 林曰 廣軘車相耦 凡十五乘 凡兵車百乘注+他兵車及廣軘 共百乘 二肆注+肆 列也 縣鐘十六爲一肆 二肆 三十二枚 注+鎛磬 皆樂器 [附注] 朱曰 鎛 大鐘也 磬 大磬也 鐘磬之大者 以一虡特懸之 注+十六人 하다
정인鄭人진후晉侯에게 사리師悝사촉師觸사견師蠲과,注+, , 은 모두 악사樂師의 이름이다. 한 쌍씩 맞춘 광거廣車돈거軘車를 각각 15과 갑옷과 병기兵器를 갖춘 병거兵車注+광거廣車돈거軘車는 모두 병거兵車의 이름이다. 은 한 쌍이다. [부주]林: 광거廣車돈거軘車를 한 쌍씩 맞춘 것이 모두 15이라는 말이다. 도합 1백 注+기타其他병거兵車광거廣車, 돈거軘車가 모두 1백 이란 말이다. 가종歌鐘 두 틀과,注+는 종을 배열排列해 다는 틀이다. 16개를 다는 것이 한 틀[肆]이니, 두 틀이면 이 32개이다. 과,注+은 모두 악기樂器이다. [부주]朱:은 큰 이고, 은 큰 이다. 의 큰 것을 한 틀에 하나씩 거는 것이다. 여악女樂 16헌상獻上하였다.注+16이다.
晉侯以樂之半賜魏絳曰
진후晉侯악기樂器악인樂人의 절반을 위강魏絳에게 주며 말하기를
子敎寡人和諸戎狄以正諸華注+在四年 ᄅ새 九合諸侯注+[附注] 林曰 謂五年會戚 又會城棣救陳 七年會鄬 八年會邢丘 九年盟于戲 十年會柤 又伐鄭戍虎牢 十一年同盟于亳城北 又會蕭魚 호되 如樂之和하야 無所不諧注+諧 亦和也 하니 請與子樂之注+共此樂 하노라
“그대가 과인寡人에게 여러 융적戎狄화친和親하여 중원中原제후諸侯를 바로잡도록(服從시킴) 가르쳤기 때문에注+위강魏絳진후晉侯에게 융적戎狄화호和好하기를 한 일은〉 양공襄公 4년에 있었다. 8년 사이에 아홉 번 제후諸侯회합會合하면서注+[부주]林: 구합제후九合諸侯양공襄公 5년에 에서 회합會合한 것과, 또 회합會合을 쌓고서 나라를 구원救援한 것, 7년에 에서 회합會合한 것, 8년에 형구邢丘에서 회합會合한 것, 9년에 에서 회맹會盟한 것, 10년에 에서 회합會合한 것과, 또 나라를 치고서 호뢰虎牢을 쌓은 것, 11년에 박성북亳城北에서 동맹同盟한 것과, 또 소어蕭魚에서 회합會合한 것을 이른다. 음악音樂조화調和된 것처럼 화합和合하지 않음이 없었으니,注+이다. 그대와 함께 이 을 즐기고자 하노라.”注+이 즐거움을 함께 누리자는 말이다. 고 하니,
辭曰 夫和戎狄 國之福也 八年之中 九合諸侯하야 諸侯無慝 君之靈也 二三子之勞也 臣何力之有焉이릿가
위강魏絳이 사양하며 말하기를 “융적戎狄화친和親한 것은 나라의 이고, 8년 사이에 아홉 번 제후諸侯회합會合하였으되 제후諸侯 중에 순종順從하지 않는[無慝] 자가 없었던 것은 임금님의 위엄威嚴[靈]과 여러 대부大夫들의 공로功勞이니, 이 무슨 힘이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은 임금님께서 즐거움을 편안히 누리시되 끝마무리를 잘하기를(善終)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詩曰 殿天子之邦注+詩小雅也 謂諸侯有樂美之德 可以鎭撫天子之邦 殿 鎭也 이로다
시경詩經》에 ‘화락和樂군자君子천자天子의 나라를 진무鎭撫하리.注+는 《시경詩經》 〈소아小雅채숙편采菽篇〉의 시구詩句이다. 제후諸侯에게 화락和樂한 아름다운 이 있어 천자天子의 나라를 진무鎭撫(按撫)할 수 있다는 것을 이른 것이다. 殿이다.
樂只君子 注+攸 所也 이로다
화락和樂군자君子여 사람들과 복록福祿을 함께 누리리.注+(바)이다.
注+便蕃 數也 言遠人相帥來服從 便蕃然在左右 이라하니 夫樂以安德注+和其心也 하고 義以處之注+處位以義 하며 禮以行之注+行敎令 하고 信以守之注+守所行 하고 注+厲風俗 하소서
태평泰平인근隣近소국小國들도 서로 이끌고 와서 복종服從하리.’注+편번便蕃(자주)이다. 원방遠方의 사람들이 서로 이끌고 와서 복종服從하려고, 자주 와서 좌우左右에 있다는 말이다. 라고 하였으니, 으로써 덕성德性안정安靜시키고注+그 마음을 (和悅)하게 하는 것이다. 로써 에 맞게 처신處身하고,注+지위地位에 있으면 그 지위地位에 맞는 도의道義로써 처신處身하는 것이다. 로써 하고,注+교령敎令을 시행하는 것이다. 으로써 을 지키고,注+할 바를 지키는 것이다. 으로써 면려勉勵하소서.注+풍속風俗면려勉勵하는 것이다.
而後可以殿邦國하야 同福祿하고 來遠人이니 注+言五德皆備 乃爲樂 非但金石 니이다
그런 후에야 국가國家진무鎭撫하여 복록福祿을 함께하고 원인遠人을 오게 할 수 있으니, 이것이 이른바 ‘’입니다.注+다섯 가지 이 갖추어지면 이 되니 금석金石만이 이 아니라는 말이다.
書曰居安思危注+逸書 라하니
서경書經》에 ‘편안할 때 위태로움을 생각하라.’注+이것은 일서逸書이다. 고 하였습니다.
思則有備하고 有備無患이니 敢以此規注+規正公 하노이다
생각을 하면 대비對備가 있고 대비對備가 있으면 환란患亂이 일어나지 않으니, 은 감히 이로써 규간規諫(바르게 함)하옵니다.”注+진도공晉悼公규정規正(경계해 바로잡음)한 것이다. 라고 하였다.
公曰 子之敎 敢不承命
진도공晉悼公이 말하기를 “그대의 가르침을 감히 한 대로 따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
抑微子 寡人無以待戎注+待遇接納 하야 不能濟河注+渡河南服鄭 [附注] 林曰 晉有戎患 則日虞四竟之 不能濟河而南服鄭 니라
그대가 아니었다면 과인寡人대우待遇(和平을 이룸)하지 못하여注+대우待遇해 그 요구要求를 받아들인 것이다. 하수河水를 건너 〈나라를 복종服從시키지〉 못했을 것이다.注+황하黃河를 건너 남쪽으로 가서 나라를 복종服從시킨 것을 이른다. [부주]林: 침입侵入하는 환란患亂이 있었다면 나라는 날마다 사경四境압용狎聳을 걱정해야 하기 때문에 하수河水를 건너 남쪽으로 가서 나라를 복종服從시킬 수 없었다는 말이다.
夫賞 國之典也 藏在盟府注+司盟之府 有賞功之制 하니 不可廢也
을 따져 을 주는 것은 국가國家전장典章으로 맹부盟府보관保管되어 있으니注+사맹司盟(盟約을 맡은 관서官署)의 관부官府이 있는 자에게 을 주는 법제法制가 있다는 말이다.폐기廢棄할 수 없다.
그대는 받도록 하라.”고 하였다.
魏絳於是乎始有金石之樂하니 禮也注+禮 大夫有功則賜樂
위강魏絳이 이로 인해 비로소 금석金石음악音樂소유所有하였으니 에 맞았다.注+이 있는 대부大夫에게 을 내리는 제도制度가 있다.
[傳]秦庶長鮑庶長武帥師伐晉以救鄭注+庶長 秦爵也 不書救鄭 已屬晉 無所救 하다
나라 서장庶長서장庶長가 군대를 거느리고 나라를 토벌하여 나라를 구원救援하였다.注+서장庶長나라의 작명爵名이다. 나라를 구원救援한 것을 에 기록하지 않은 것은 나라가 이미 나라에 복속服屬하였으니 나라가 구원救援할 바가 아니기 때문이다.
鮑先入晉地하니 士魴禦之호대 少秦師而弗設備하니
가 먼저 나라 땅으로 쳐들어가자, 사방士魴방어防禦하되 진군秦軍을 얕보아 방비防備설치設置하지 않았다.
壬午 武濟自輔氏注+從輔氏渡河 하야 與鮑交伐晉師하다
임오일壬午日보씨輔氏(地名)로부터 황하黃河를 건너注+보씨輔氏에서 황하黃河를 건넌 것이다. 와 함께 교대로 진군晉軍을 쳤다.
己丑 秦晉戰于櫟하야 晉師敗績하니 易秦故也注+不書敗績 晉恥易秦而敗 故不告也 櫟 晉地
기축일己丑日진군秦軍진군晉軍에서 교전交戰하여 진군晉軍대패大敗하였으니 진군秦軍을 얕보았기 때문이다.注+패적敗績을 기록하지 않은 것은 진군晉軍진군秦軍을 얕보았다가 패전敗戰한 것을 부끄럽게 여겨 나라에 통고通告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라 땅이다.
역주
역주1 告叔孫穆子 : 季武子가 三軍으로 編成하는 일을 襄公에게 청하지 않고 叔孫穆子에게 청한 것은 이때 襄公의 나이가 겨우 13~14세였기 때문에다. 〈楊注〉
역주2 請爲三軍 各征其軍 : 從前에는 人民이 모두 公家에 所屬되어, 公家에서 征稅하여 群臣에게 나누어 주었는데, 지금 季武子는 人民을 자기에게 所屬시켜 자기 몫으로 얻은 人民에게 자기가 征稅하고자 한 것이다. 穆子가 따르지 않을 것을 憂慮하여 먼저 그에게 告하여 國內의 人民을 나누어 三軍으로 만들어 三家가 각각 그 군대의 家屬에게 征稅하자고 한 것이다. 〈正義〉 各征其軍에 대한 前人의 解釋에는 모두 確實한 解釋이 없다. 下文에 依據하면 三家가 각각 一軍씩을 所有한 것에 불과할 뿐이다. 〈楊注〉 各征其軍의 ‘征’을 下文의 ‘各有其一’로 보면 所有의 뜻 같으나, 昭公 5년 傳의 ‘季氏盡征之’로 보면 征稅의 뜻인 것 같아서, 어떻게 解釋하는 것이 合當한지 모르겠다. 그러나 여기서는 取(所有)로 解釋하는 것이 비교적 좋을 것 같아 일단 楊氏의 說에 따라 ‘征’을 ‘所有’의 뜻으로 번역하였다.
역주3 政將及子 子必不能 : 〈楊注〉 및 其他의 註釋書 등을 參考하면 襄公 5년에 魯나라의 執政季文子가 죽은 뒤에 季武子는 아직 어려서 그 執政을 世襲하지 못하고, 叔孫穆子가 임시로 執政이 되어 政權을 담당하였다. 그러므로 叔孫은 오래지 않아 政權이 季武子에게로 넘어갈 것이라고 한 것이다. 必不能은 季武子 한 사람이 政權과 軍權을 獨占하면 반드시 이익을 獨占하고 均等하게 三分하지 않을 것이므로 반드시 三家를 和合시킬 수 없다는 말이다.
역주4 僖公[宮]之宮[門] : 저본에는 ‘僖公之宮’으로 되어 있으나 《十三經注疏》本에 의거하여 ‘僖宮之門’으로 바로잡았다.
역주5 : 詛는 神에게 祭祀하여 盟誓를 지키지 않는 자에게 禍를 내리게 하는 것이다. 〈楊注〉
역주6 三分公室 而各有其一 : 三分公室을 魯나라 公室의 貨財와 收稅를 三分한 것으로 解釋한 前人의 說은 誤謬이다. 만약 襄公의 貨財를 三分하였다면 어찌 公公然한 叛亂이 아니겠는가? 襄公의 貨財를 三分한 것이라면 襄公이 어떻게 생활할 수 있었겠는가. 모두 事理에 맞지 않는다. 魯나라의 군대가 본래는 公室의 所有였는데 지금 三軍으로 編成하여 三軍을 季孫‧叔孫‧孟孫 등 三族이 所有하는 것으로 制度를 고쳐 各族이 一軍의 指揮權과 編制權을 가진 것이다. 그러므로 ‘各有其一’이라고 한 것이다. 〈楊注〉
역주7 三子各毁其乘 : 사람을 가지고 말하면 ‘軍’이라 하고 兵車를 가지고 말하면 ‘乘’이라 하니 名稱이 다를 뿐이다. 종전에는 三家가 그 采邑의 백성을 자기들의 私兵으로 삼았으나, 이제 公室의 軍隊를 셋으로 나누어 각자의 몫으로 얻은 군대가 바로 자기들의 所有가 되었으니 다시 私兵을 둘 필요가 없어졌다. 그러므로 三家가 각각 전에 所有했던 軍乘의 部伍를 허문 것이다. 이때 襄公의 나이가 14세였으므로 三家가 私欲을 成就할 수 있었으니, 魯나라의 일이 다시 어찌할 수 없게 되었다. 《左氏會箋》 지금 三軍을 編成함에 있어 부족한 額數를 私家의 兵乘을 허물어 補充한 것이다. 〈楊注〉 楊氏의 說을 取해 번역하였다.
역주8 季氏使其乘之人 以其役邑入者無征 : 〈正義〉에 의하면 其乘之人은 바로 國內의 백성을 三分하여 각자의 몫으로 받은 一分의 사람이다. 役은 官家에 力役을 提供하는 자로 오늘의 丁과 같고, 邑은 賦稅로 오늘의 租調(租稅)와 같다. 力役과 賦稅를 季氏에게 바치는 자는 公家의 賦稅를 免除하고, 바치지 않는 자는 公家로 하여금 稅를 배로 徵收하게 한 것이다.
역주9 不然不舍 : 이것은 左氏가 사실을 서술한 말이고, 三家가 저주한 말이 아닌 것 같으므로 杜注를 따르지 않았다. 많은 註釋書에 모두 盟詛의 말이라고 한 杜氏의 말을 옳지 않게 여겼다.
역주10 鄭人患晉楚之故 : 鄭나라는 서북으로는 周나라와 隣接하고, 남으로는 蔡나라와 隣接하고, 서남으로는 楚나라와 隣接하였으므로 中原의 霸權을 다투는 자는 반드시 鄭나라를 先占해야 했다. 그러므로 鄭나라의 國境이 자주 戰場이 되어, 襄公 이래로 거의 해마다 戰爭이 있었기 때문에 大夫들이 근심한 것이다. 鄭人은 鄭나라 大夫이다. 〈楊注〉
역주11 門于東門 : 齊나라는 鄭나라의 東北쪽에 있고 宋나라는 鄭나라의 동쪽에 있기 때문에 두 나라 군대가 鄭나라 東門 밖에 駐屯해 지킨 것이다. 〈楊注〉
역주12 晉荀罃至于西郊 : 晉軍은 鄭나라 서쪽에서 왔기 때문에 먼저 鄭나라 西郊에 이른 것이다. 〈楊注〉
역주13 衛孫林父侵其北鄙 : 衛나라는 鄭나라 북쪽에 있기 때문에 進軍하여 鄭나라 북쪽 邊邑을 侵攻한 것이다. 〈楊注〉
역주14 右還 次于瑣 : 諸侯軍이 向에서 또 西北쪽으로 行軍하여 鄭나라 國都 가까이 간 것이다. 〈楊注〉
역주15 滎[熒] : 저본에는 ‘滎’으로 되어 있으나 《十三經注疏》本에 의거하여 ‘熒’으로 바로잡았다.
역주16 不愼 必失諸侯 : 愼은 載書를 愼重히 作成하는 것이다. 襄公 9년에 있었던 戲의 盟約 때 載書를 愼重히 만들지 않았다가 鄭나라에게 侮辱을 당한 일이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역주17 毋蘊年 : 年은 穀이다. 穀食을 쌓아 두고서 이웃 나라의 災難을 救濟하지 않는 것이다. 〈楊注〉
역주18 藏[積] : 저본에는 ‘藏’으로 되어 있으나 《十三經注疏》本에 의거하여 ‘積’으로 바로잡았다.
역주19 毋保姦 : 이웃 나라에서 罪를 짓고 도망온 자를 保護하는 것이다. 〈楊注〉
역주20 毋留慝 : 慝은 邪惡이니, 邪惡한 자를 속히 除去하는 것이다.
역주21 救災患 恤禍亂 : 災患은 自然災害이고, 禍亂은 政權鬪爭으로 인한 變亂이다. 〈楊注〉
역주22 獎王室 : 모두가 한마음으로 王室을 輔佐하는 것이다. 《左氏會箋》
역주23 明神殛之 : 아래의 失民, 隊命, 亡氏 등이 모두 懲罰의 일이므로 譯者는 ‘殛’을 罰로 번역하였다.
역주24 隊命亡氏 : 隊命은 그 임금을 죽인다는 것과 같은 말이고, 亡氏는 滅族과 같은 말이라고 한 〈楊注〉의 說을 취해 번역하였다.
역주25 伐宋 : 楚나라와 秦나라 군대가 이르자 鄭伯이 迎接하고서 함께 宋나라를 친 것이다. 《左氏會箋》
역주26 諸侯悉師以復伐鄭 : 悉師는 國內의 兵士를 모두 動員하는 것이다.
역주27 君若能以玉帛綏晉 : 玉帛綏晉은 未完句이다. 이 句 밑에 ‘가장 바라는 바이다.’는 말이 있어야 하는데, 鄭君은 楚王의 노여움을 살까 두려워 말하지 않은 것이다. 綏는 安이니, 晉나라와 和好하는 것을 이른다고 한 〈楊注〉를 취해 補充飜譯하였다. 그 뜻은 使者가 玉帛을 들고 晉나라로 가서 對話로 문제를 解決하여 晉나라와 楚나라가 友好을 맺는다면 두 나라가 다시는 鄭나라를 차지하려고 서로 다투지 않을 것이니, 이렇게 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는 것이다.
역주28 武震以攝威之 : 震은 威이고, 남을 두렵게 하는 것을 ‘攝’이라 하니, 攝威는 同義詞를 連用한 것이라고 한 〈楊注〉의 설을 취해 번역하였다.
역주29 苟有以藉手 : 작은 所得을 모두 ‘藉手’라고 한다. 돌아가 임금께 報告할 만한 작은 所得이다. 〈楊注〉 이 설을 취해 번역하였다.
역주30 廣車軘車淳十五乘 : 廣車는 攻擊하는 수레이고 軘車는 守備하는 수레이다. 〈楊注〉
역주31 歌鐘 : 鐘을 쳐서 노래의 節奏를 맞추기 때문에 歌鐘이라고 한 것이다. 《左氏會箋》
역주32 及其鎛磬 : 鎛은 작은 鐘이고 磬은 編磬이다. 《左氏會箋》
역주33 女樂二八 : 女樂은 歌舞하는 美女이다. 옛날의 樂舞는 8人을 1列로 삼고서 이를‘佾’이라 하였다. 16人이면 2佾이다. 〈楊注〉
역주34 八年之中 : 八年之中은 晉나라가 戎과 和好한 襄公 4년부터 지금까지 8년이다. 〈正義〉
역주35 抑臣願君安其樂而思其終也 : 抑은 反語詞(아니면, 도리어 등), 轉折詞(그러나, 그리고 등), 音節助詞(뜻이 없이 句首에 쓰임) 등으로 쓰인다. 여기서는 말의 方向을 바꾸는 轉折詞로 쓰였다. 이때 晉悼公이 다시 霸業을 修行할 수 있는 局面이 이미 決定되었으므로 魏絳은 晉侯가 驕怠해질 것을 憂慮하여 이 말을 한 것이다. 〈楊注〉
역주36 樂只君子 : 只는 助辭이다. 樂只는 和樂이니, 그 사람에게 德이 있기 때문에 그 모습이 和樂한 것이다.
역주37 福祿攸同 : 福祿攸同의 同을 《毛詩正義》와 《詩傳集註》에 모두 ‘聚’로 訓詁하여 ‘福祿이 모이는 바’로 해석하였으나, 下文에 ‘同福祿(福祿을 함께한다)’으로 풀이한 것으로 보아 여기서는 同을 聚로 해석하는 것은 옳지 않을 것 같으므로 ‘함께 누리다’로 번역하였다.
역주38 便蕃左右 亦是帥從 : 《毛詩正義》에는 福祿이 萬福으로 되어 있고, 便蕃이 平平으로 되어 있으며, 《韓詩》에는 便便으로 되어 있으니, 모두 得治(治績이 이루어져 泰平함)의 뜻이다. 左右는 下文 및 鄭玄의 箋에 依據하면 모두 附近의 小國을 이른 것이다. 〈楊注〉 이 說을 취해 便蕃을 ‘泰平’으로 번역하였다. 《毛詩正義》에는 平平을 辨治로 註釋하였다. 辨治는 事理를 辨別하여 國事를 잘 處理하는 것이다.
역주39 義以處之……仁以厲之 : 杜注에는 義以處之 이하 仁以厲之까지의 네 ‘之’字를 處位敎令所行風俗 등의 指示代詞로 풀었으나, 上下에 處位 등의 말이 보이지 않는데, 處位 등의 代詞로 이해하는 것은 옳지 않은 듯하다. 《論語》 〈衛靈公〉의 “君子義以爲質禮以行之孫以出之信以成之”의 세 ‘之’字가 모두 義를 指示한 代詞로 쓰였듯이 여기에도 위에 樂以安德이라는 句가 있으니 네 ‘之’字는 모두 德을 指示한 代詞로 보는 것이 옳을 것 같으므로 이 네 ‘之’字를 모두 德으로 번역하였다. 〈楊注〉에도 杜注의 뜻이 쓸 만하지만 ‘之’字는 모두 德의 代詞라고 하였다.
역주40 所謂樂也 : 所謂는 引用을 나타내는 말로 위의 ‘樂只君子’의 樂을 이른 것이니, 이러한 德이 갖추어져야 樂之君子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역주41 狎聳 : 狎聳은 襄公 4년 傳의 ‘邊鄙不聳民狎其野’에서 聳과 狎을 따온 말로 戎이 쳐들어왔다는 邊境에 警報[聳]가 있어 백성이 田野를 가까이[狎]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말이다.
역주42 子其受之 : 子其受之의 其는 命令副詞이다.

춘추좌씨전(4) 책은 2019.05.2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18 By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