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春秋左氏傳(2)

춘추좌씨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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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좌씨전(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經]三年春王正月 叔孫得臣會晉人宋人陳人衛人鄭人伐沈하니 沈潰하다注+傳例曰 民逃其上曰潰 沈 國名也 汝南平與縣北有沈亭
3년 봄 주왕周王정월正月숙손득신叔孫得臣진인晉人송인宋人진인陳人위인衛人정인鄭人과 회합하여 나라를 토벌하니 침군沈軍궤산潰散하였다.注+전례傳例에 “백성이 그 윗사람을 버리고 도망가는 것을 ‘’라 한다.”고 하였다. 국명國名이다. 여남汝南평여현平與縣 북쪽에 침정沈亭이 있다.
[經]夏五月 王子虎卒하다注+不書爵者 天王赴也 翟泉之盟 雖輒假王命 周王因以同盟之例爲赴
여름 5월에 왕자王子하였다.注+을 기록하지 않은 것은 천왕天王의 이름으로 부고赴告하였기 때문이다. 적천翟泉회맹會盟에 비록 왕명王命가탁假託하여 참여하였으나 주왕周王동맹同盟에 따라 부고하였기 때문에 그의 을 기록한 것이다.
[經]하다注+晉人恥不出 以微者告 [附注] 林曰 秦於是始霸西戎
진인秦人나라를 토벌하였다.注+진인晉人출전出戰하지 않은 것을 부끄럽게 여겨 나라의 미천微賤한 자가 쳐들어 온 것으로 나라에 통고通告하였기 때문에 ‘진인秦人’이라고 기록한 것이다.[부주]林: 나라가 이에 비로소 서융西戎패자霸者가 되었다.
[經]秋 楚人圍江하다
가을에 초인楚人나라를 포위하였다.
[經]雨螽于宋하다注+自上而隋 有似於雨 宋人以其死爲得天祐 喜而來告 故書
나라에 비가 내리듯이 메뚜기가 떨어졌다.注+메뚜기가 마치 비가 내리듯이 하늘에서 떨어져 죽으니, 송인宋人은 메뚜기가 죽은 것을 하늘의 도움을 얻은 것으로 여겨, 기뻐하여 나라에 통고하였기 때문에 기록한 것이다.
[經]冬 公如晉하다
겨울에 나라에 갔다.
[經]十有二月乙巳 公及晉侯盟하다
12월 을사일乙巳日진후晉侯결맹結盟하였다.
[經]晉陽處父帥師伐楚以救江하다注+[附注] 林曰 晉大夫書帥師 於是始 自士縠專盟 書大夫 處父專將 書大夫 於是常書大夫 貶而後人之
나라 양처보陽處父가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나라를 토벌하여 나라를 구원救援하였다.注+[부주]林: 나라 대부大夫가 군대를 거느리고 출정出征한 것을 기록하기 시작한 것이 이때부터이다. 사곡士縠회맹會盟전단專斷한 뒤로는 회맹에 참가한 대부大夫의 이름을 기록하였고, 처보處父가 군대를 거느린 뒤로는 출정出征한 대부의 이름을 기록하였다. 이 뒤로는 항상 대부의 이름을 기록하였고 폄하貶下하는 경우에만 ‘’으로 기록하였다.
[傳]三年春 莊叔會諸侯之伐沈注+[附注] 林曰 莊叔 卽得臣하니 以其服於楚也
3년 봄에 장숙莊叔제후諸侯의 군대와 회합하여 나라를 토벌하였으니,注+[부주]林: 장숙莊叔은 바로 득신得臣이다.나라가 나라에 복종服從하였기 때문이다.
沈潰하다
침군沈軍궤산潰散하였다.
凡民逃其上曰潰 在上曰逃注+潰 衆散流移 若積水之潰 自壞之象也 國君輕走 群臣不知其謀 與匹夫逃竄無異 是以在衆曰潰 在上曰逃 各以類言之
범례凡例에 의하면 백성이 그 임금을 버리고 도망가는 것을 ‘’라 하고, 임금이 군대를 버리고 도망가는 것을 ‘’라 한다.注+는 무리가 흩어져 도망가는 것이 마치 제방堤防이 무너져 쌓인 물이 흩어지듯이 스스로 무너지는 형상이다. 국군國君이 경솔히 도망하여 군신群臣이 어찌할 바를 모르는 것은 필부匹夫가 도망가는 것과 다름이 없다. 그러므로 무리가 도망가는 가는 것을 ‘’라 하고, 임금이 도망가는 것을 ‘’라 하니, 이는 각각 유사類似한 점을 가지고 말한 것이다.
[傳]衛侯如陳하야 拜晉成也하다注+二年 陳侯爲衛請成于晉
위후衛侯나라에 가서 나라와 화평和平을 이루어 준 것에 대해 배사拜謝(謝禮)하였다.注+문공文公 2년에 진후陳侯나라를 위해 나라에 화평和平하기를 청하였다.
[傳]夏四月乙亥 王叔文公卒하다
여름 4월에 왕숙王叔문공文公하였다.
來赴어늘 弔如同盟하니 禮也注+王子虎與僖公同盟於翟泉 文公是同盟之子 故赴以名
부고赴告가 오자 동맹同盟제후諸侯조상弔喪하였으니 에 부합하였다.注+왕자王子희공僖公적천翟泉에서 동맹同盟하였다. 문공文公동맹同盟희공僖公의 아들이기 때문에 이름을 기록해 부고한 것이다. 왕자王子는 제후와 다르고 왕숙王叔은 또 문공文公과 동맹한 일이 없기 때문에 이 체례體例를 드러낸 것이다. 에 5월이라고만 기록하고 을 기록하지 않은 것은 부고赴告의 기록을 그대로 따른 것이다.
[傳]秦伯伐晉할새 濟河焚舟注+示必死也하야 取王官及注+王官郊 晉地로되 晉人不出注+[附注] 朱曰 去年趙衰言秦師又至 將以避之 故不出也이어늘 遂自茅津濟하야 封殽尸而還注+茅津 在河東大陽縣西 封 埋藏之하야
진백秦伯나라 토벌할 때 황하黃河를 건넌 뒤에 배를 다 불태우고서注+반드시 죽을 각오覺悟임을 보인 것이다.왕관王官을 취하고 나라의 근교近郊에까지 갔으나注+왕관王官나라 땅이다.진군晉軍출전出戰하지 않자,注+[부주]朱: 거년去年조쇠趙衰가 “진군秦軍이 다시 오면 반드시 피해야 한다.”고 말하였기 때문에 출전出戰하지 않은 것이다. 드디어 모진茅津에서 황하黃河를 건너 의 전쟁에서 죽은 진군秦軍시신屍身을 수습해 매장埋葬하고서 환군還軍하였다.注+모진茅津하동河東대양현大陽縣 서쪽에 있다. 매장埋葬하는 것이다.
遂霸西戎하니 用孟明也
이로부터 나라가 드디어 서융西戎패주霸主가 되었으니 이는 맹명孟明중용重用하였기 때문이다.
君子是以知秦穆之爲君也 擧人之周也注+周 備也 不偏以一惡棄其善하고 與人之壹也注+壹 無二心 孟明之臣也 其不解也注+[附注] 林曰 不以敗軍而生懈怠之心하고 能懼思也注+[附注] 林曰 能知懼而思改其所行爲 子桑之忠也 其知人也하야 能擧善也注+子桑 公孫枝 擧孟明者
군자君子는 이로 인해 “진목공秦穆公이 임금 노릇함에 있어 인재人才거용擧用함에는 모든 것을 두루 보고注+(普遍)이니, 편벽되이 하나의 잘못만을[一惡] 보고서 그 사람의 재능才能[善]을 버리지 않았다는 말이다.거용擧用한 인재를 신임信任[與]하기를 한결같이 하였으며,注+은 두 마음이 없는 것이다.맹명孟明이 신하노릇 함에 있어 게을리 하지 않고注+[부주]林: 패전敗戰했다 하여 게으른 마음을 내지 않은 것이다. 지난 패전敗戰을 두려워하여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였으며,注+[부주]林: 두려움을 알고서 자기의 행위行爲를 고친 것이다.자상子桑이 충성함에 있어 사람을 알아보고서 인재人才[善]를 천거薦擧하였다.注+자상子桑공손지公孫枝맹명孟明천거薦擧한 사람이다.
詩曰 于以采蘩
에 ‘어디에서 쑥을 뜯는가?
于沼于沚로다 于以用之
연못가와 물가이지, 어디에 쓰는가?
公侯之事로다하니 秦穆有焉이라注+詩 國風 言沼池之蘩至薄 猶采以共公侯 以喩秦穆不遺小善 夙夜匪解하야 以事一人이라하니 孟明有焉이라注+詩 大雅 美仲山甫也 一人 天子也 詒厥孫謀하야 라하니 子桑有焉이라注+詒 遺也 燕 安也 翼 成也 詩 大雅 美武王能遺其子孫善謀 以安成子孫 言子桑有擧善之謀
공후公侯제사祭祀이지.’라고 하였는데, 진목공秦穆公에게 이런 점이 있고,注+는 《시경詩經》 〈국풍國風소남召南채번편采蘩篇〉이다. 연못가와 물가의 쑥은 지극히 보잘것 없는 물건인데도 그것을 뜯어다가 공후公侯의 제사에 썼듯이 진목공秦穆公이 작은 장점長點[小善]도 버리지 않은 것을 비유한 것이다.에 ‘밤낮으로 게을리 하지 않고서 한 사람만을 섬긴다.’고 하였는데 맹맹孟盟에게 이런 점이 있고,注+는 《시경詩經》 〈대아大雅증민편蒸民篇〉인데 중산보仲山甫찬미讚美이다. 일인一人천자天子이다.에 ‘후손을 위해 좋은 계모計謀를 남겨 자손을 편안하도록 도왔다.’고 하였는데, 자상子桑에게 이런 점이 있다.”注+이고 이고 이다. 는 《시경詩經》 〈대아大雅문왕유성편文王有聲篇〉인데, 무왕武王이 그 자손을 위해 훌륭한 계모計謀를 끼쳐 자손에게 안녕安寧이 이루어지게 한 것을 찬미한 이다. 자상子桑에게 인재를 천거한 계모計謀가 있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는 것을 알았다고 하였다.
[傳]秋 雨螽於宋하니 隊而死也注+螽飛至宋 隊地而死若雨
가을에 나라에 메뚜기가 비가 내리듯이 떨어졌으니, 이는 땅에 떨어져 죽은 것이다.注+메뚜기가 날아 나라에 와서 비가 내리듯이 땅에 떨어져 죽은 것이다.
[傳]楚師圍江하니 晉先僕伐楚以救江하다注+晉救江 在雨螽下 故使圍江之經 隨在雨螽下 [附注] 林曰 先僕 晉大夫
초군楚軍나라를 포위하니 나라 선복先僕나라를 토벌하여 나라를 구원하였다. 注+나라가 나라를 구원한 일이 우종雨螽 뒤에 있었기 때문에 위강圍江에 따라 우종雨螽 밑으로 내려야 한다. [부주]林: 선복先僕나라 대부大夫이다.
[傳]冬 晉以江故告於周하다注+欲假天子之威以伐楚
겨울에 나라가 나라의 일을 나라에 보고하였다.注+천자天子위엄威嚴을 빌어 나라를 토벌하고자 한 것이다.
王叔桓公晉陽處父伐楚以救江注+桓公 周卿士王叔文公之子 桓公不書 示威名 不親伐하야 門于方城注+[附注] 林曰 攻楚方城之門이라가 遇息公子朱而還하다注+子朱 楚大夫 伐江之帥也
왕숙王叔환공桓公나라 양처보陽處父나라를 토벌해 나라를 구원하려고注+환공桓公나라 경사卿士왕숙王叔문공文公의 아들이다. 환공桓公을 기록하지 않은 것은 위명威名(名聲)만을 드러내 보이고 토벌에는 직접 가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방성方城공격攻擊하다가注+[부주]林: 나라 방성方城의 문을 공격한 것이다.회군回軍하는 식공息公자주子朱를 보고는 환군還軍하였다.注+자주子朱나라 대부大夫나라를 토벌한 부대部隊장수將帥이다. 나라가 군대를 일으켰다는 말을 듣고 나라의 포위를 풀었기 때문에 진군晉軍환군還軍한 것이다.
[傳]晉人懼其無禮於公也하야 請改盟注+改二年處父之盟하니 公如晉하야 及晉侯盟하다
진인晉人이 전에 문공文公에게 무례無禮했던 것을 두렵게 여겨, 전에 맺은 맹약의 개정改訂을 청하니注+문공文公 2년에 처보處父와 맺었던 맹약盟約개정改訂하는 것이다.나라에 가서 진후晉侯결맹結盟하였다.
晉侯饗公할새 賦菁菁者莪注+菁菁者莪 詩小雅 取其旣見君子 樂且有儀하니 莊叔以公降拜注+謝其以公比君子也
진후晉侯가 연회를 열어 문공文公을 대접할 때 〈정정자아菁菁者莪〉를 읊으니,注+정정자아菁菁者莪〉는 《시경詩經》 〈소아小雅〉의 편명篇名인데, 이 편의 ‘이미 군자君子를 만나보니 내 마음 즐겁고, 군자君子예의禮儀가 있다.’는 를 취한 것이다.장숙莊叔문공文公에게 뜰 아래로 내려가서 배사拜謝하게하며注+진후晉侯문공文公군자君子에 비교한데 대해 사례謝禮하라는 말이다. 말하였다.
하니 敢不愼儀릿가
소국小國대국大國의 명을 받았으니 감히 예의禮儀를 삼가지 않을 수 있습니까?
君貺之以大禮하니 何樂如之잇가
진군晉君께서 대례大禮로 접대해 주시니 이런 즐거움이 다시 어디 있습니까?
抑小國之樂 大國之惠也니이다
소국小國의 즐거움은 대국大國의 은혜입니다.”
晉侯降하야注+降階 辭讓公하고하야 成拜하다注+俱還上 成拜禮
진후晉侯가 뜰에 내려가 사양하고서注+뜰을 내려가서 문공文公에게 사양한 것이다. 함께 올라와서 배례拜禮를 이루었다.注+함께 당상堂上으로 올라와서 배례拜禮를 이룬 것이다.
公賦嘉樂하다注+嘉樂 詩大雅 取其顯顯令德 宜民宜人 受祿于天
이 〈가락嘉樂〉을 읊었다.注+가락嘉樂〉은 《시경詩經》 〈대아大雅〉의 편명篇名인데, 이 편의 ‘드러난 아름다운 덕이 백성과 관리에게 모두 합당하니 하늘에게 복록을 받는다.’는 를 취한 것이다.
역주
역주1 秦人伐晉 : 秦伯의 이번 擧事는 작년 겨울에 네 나라가 연합해 秦나라를 토벌한 전쟁을 보복하기 위함이었다. 秦伯은 죽기로 맹세하고 가서 두 邑을 취하였으나 晉人이 出戰하지 않으므로 交戰하지는 못하였다. 秦伯은 마음은 비록 통쾌하지 않았으나 분한 마음은 조금 풀렸다. 그러므로 뉘우치는 마음이 생겨 良士인 蹇叔을 그리워하고 勇士인 세 장수를 싫어하여 杞子의 巧言을 징계한 것이 〈秦書〉 (《書經》의 篇名)가 지어지게 된 배경이다. 徐壽錫 《潁水全集》
역주2 歸[師] : 저본에는 ‘歸’로 되어 있으나 《十三經注疏》本에 의거하여 ‘師’로 바로잡았다.
역주3 傳因王子虎異於諸侯……從赴也 : 杜注의 말은 隱公 7년 傳에 “諸侯가 同盟하면 이름을 칭한다. 그러므로 죽으면 이름을 기록해 부고한다.”고 한 것은 동맹 當事者인 두 나라 임금에 한해 말한 것이고, 그 아버지와 동맹하였다 하여 그 아들에게까지 이름을 기록해 부고한다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동맹하여 이름을 칭하였으면 두 임금만이 그 이름을 아는 것이 아니라 온 국민이 다 알고 있기 때문에 그 아들에게 이름을 기록해 부고하는 것은 사리로 보아 당연하다. 그러나 범례에 분명히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傳에 文公이 王子虎와 동맹한 일이 없는데도 이름을 기록해 부고한 것을 禮라고 기록하여 體例를 드러낸 것이다. 〈疏〉
역주4 : 杜注에는 郊를 地名으로 해석하였으나 譯者는 이 설을 취하지 않고 近郊로 번역하였다.
역주5 以燕翼子 : 杜注에는 翼을 成으로 해석하였으나, 譯者는 輔(도움)의 뜻으로 飜譯하였다.
역주6 聞晉師起而江兵解 故晉亦還 : 子朱가 晉나라가 楚나라를 치기 위해 군대를 일으켰다는 소식을 듣고서 江나라의 포위를 풀고 回軍하니, 晉軍도 秦軍이 回軍하는 것을 보고서 還軍한 것이다.
역주7 小國受命於大國 : 小國은 魯나라이고 大國은 晉나라이다. 命은 晉侯가 文公을 君子에 비해 읊은 시를 말한다.

춘추좌씨전(2) 책은 2019.05.2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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