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春秋左氏傳(3)

춘추좌씨전(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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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좌씨전(3)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經]七年春王正月 鼷鼠食郊牛角하니 改卜牛하다
7년 봄 주왕周王정월正月에 생쥐가 교제郊祭희생犧牲으로 쓸 소의 뿔을 갉아먹으니, 다시 점을 쳐서 다른 소를 선정選定하였다.
鼷鼠又食其角하니 乃免牛注+無傳 하다
생쥐가 또 그 소의 뿔을 갉아먹으니, 소를 풀어주었다.注+이 없다. 소[牛]로 한 것은 아직 복일卜日(占을 쳐서 교제일郊祭日을 잡음)하기 이기 때문이다. 은 풀어주는 것이다. 소를 풀어준 것은 옳았지만 교제郊祭를 지내지 않은 것은 가 아니다.
[經]吳注+[附注] 林曰 吳始見經 吳始入伐中國 하다
나라가 담국郯國토벌討伐하였다.注+[부주]林: 나라가 비로소 에 보이기 시작하였다. 나라가 비로소 들어와 중국中國토벌討伐한 것이다.
[經]夏五月 曹伯來朝하다
여름 5월에 조백曹伯이 와서 조현朝見하였다.
[經]注+無傳 書不郊 間有事 三望 非禮 하다
교제郊祭는 지내지 않고, 오히려 세 곳에 망제望祭는 지냈다.注+이 없다. ‘불교不郊’를 기록한 것은 중간에 다른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세 곳에 망제望祭를 지낸 것은 가 아니다.
[經]秋 楚公子嬰齊帥師
가을에 나라 공자公子영제嬰齊가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나라를 토벌討伐하였다.
[經]公會晉侯齊侯宋公衛侯曹伯莒子邾子杞伯救鄭하다
성공成公진후晉侯제후齊侯송공宋公위후衛侯조백曹伯거자莒子주자邾子기백杞伯회합會合하여 나라를 구원救援하였다.
[經]八月戊辰 同盟于馬陵注+馬陵 衛地 陽平元城縣東南有地名馬陵 하다
8월 무신일戊辰日마릉馬陵에서 동맹同盟하였다.注+마릉馬陵나라 땅이다. 양평陽平원성현元城縣 동남쪽에 마릉馬陵이란 지명地名이 있다.
[經]公至自會注+無傳 하다
성공成公회합會合에서 돌아왔다.注+이 없다.
[經]吳入州來注+州來 楚邑 淮南下蔡縣是也 하다
오인吳人주래州來로 쳐들어갔다.注+주래州來나라 이다. 회남淮南하채현下蔡縣이 바로 그곳이다.
[經]冬 大雩注+無傳 書過 하다
겨울에 성대盛大하게 우제雩祭를 지냈다.注+이 없다. 시기時期가 지난 뒤에 지냈기 때문에 기록記錄한 것이다.
[經]衛孫林父出奔晉하다
나라 손임보孫林父나라로 출분出奔하였다.
[傳]七年春 吳伐郯하니 郯成注+[附注] 林曰 郯及吳平 하다
7년 봄에 나라가 담국郯國토벌討伐하니 담국郯國나라와 화친和親하였다.注+[부주]林: 담국郯國나라와 화평和平한 것이다.
季文子曰 不振旅하야 蠻夷入伐이로되 而莫之或恤注+振 整也 旅 衆也 [附注] 林曰 傳例 出曰治兵 入曰振旅 此言中國不振旅者 蓋以晉景自邲之敗 中國不能振整師旅而歸 하니 無弔者也夫注+言中國不能相愍恤 故夷狄內侵 ᄂ저
계문자季文子가 말하기를, “중국中國이 군대를 정돈整頓[振旅]하지 못하여 만이蠻夷가 들어와 토벌討伐하는데도 이를 근심하는 이가 없으니,注+정돈整頓함이고, 군중軍衆이다. [부주]林: 은공隱公 5년 전례傳例에 “출병出兵하는 것을 ‘치병治兵’이라 하고 환군還軍해 들어오는 것을 ‘진려振旅’라 한다.”고 하였다. 이곳에 중국中國진려振旅하지 않았다고 말한 것은 진경공晉景公에서 패전敗戰함으로 인해 중국中國이 군대를 정돈整頓해 돌아올 수 없었기 때문인 듯하다. 패주霸主가 없는 것[無弔]이로다.注+중국中國이 서로 가엾게 여겨 구휼救恤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적夷狄내지內地로 들어와 침공侵攻했다는 말이다.
詩曰 不弔昊天하야 亂靡有定이라하니 其此之謂乎注+詩 小雅 刺在上者不能弔愍下民 故號天告亂 ᄂ저
시경詩經》에 ‘하늘이 불선不善[不弔]하여, 환란患亂진정鎭定되지 않는다.’고 하였으니, 이는 오늘의 경우를 이름인 듯하다.注+는 《시경詩經》 〈소아小雅절남산편節南山篇〉이다. 이 재상자在上者하민下民을 가엾게 여기지 않기 때문에 하민下民이 하늘을 부르짖으며 환란患亂호소呼訴한 것을 풍자諷刺한 것이다.
하니 其誰不受亂注+上謂霸主 이리오
위에 패주霸主가 있으나 하지 못하니[不弔] 그 누가 환란患亂을 당하지 않겠는가?注+패주霸主를 이른다.
吾亡無日矣로다
우리가 멸망滅亡할 날이 머지 않았다.”라고 하였다.
君子曰
이에 대해 군자君子는 다음과 같이 논평論評하였다.
知懼如是하니 斯不亡矣리라
“두려움을 아는 것이 이와 같으니, 이 사람은 하지 않을 것이다.”
[傳]鄭子良相成公以如晉注+[附注] 林曰 鄭成公新立 故子良相之以朝于晉 하야하고 且拜師注+謝前年晉救鄭之師 爲楚伐鄭張本 하다
나라 자량子良이 되어 정성공鄭成公을 모시고 나라에 가서注+[부주]林: 정성공鄭成公이 새로 즉위卽位하였기 때문에 자량子良이 되어 정성공鄭成公을 모시고 나라에 가서 조현朝見한 것이다.진후晉侯조현朝見하고, 또 나라가 출병出兵나라를 구원救援해 준 일에 배사拜謝하였다.注+전년前年나라가 출병出兵나라를 구원救援해 준 일에 배사拜謝한 것이다. 나라가 나라를 토벌討伐장본張本이 되었다.
[傳]夏 曹宣公來朝하다
여름에 조선공曹宣公이 와서 조현朝見하였다.
[傳]秋 楚子重伐鄭하야 師于氾注+氾 鄭地 在襄城縣南하니 諸侯救鄭하다
가을에 나라 자중子重나라를 토벌討伐하기 위해 가서 주둔駐屯하니,注+나라 땅으로 양성현襄城縣 남쪽에 있다.제후군諸侯軍나라를 구원救援하였다.
鄭共仲侯羽軍楚師注+二子 鄭大夫 [附注] 林曰 軍楚師 攻楚師也 하야 囚鄖公鍾儀하야 獻諸晉注+[附注] 林曰 鍾儀 楚鄖縣大夫 鄭人囚之 하다
나라 공중共仲후우侯羽초군楚軍공격攻擊注+두 사람은 나라 대부大夫이다. [부주]林: 군초사軍楚師초군楚軍공격攻擊한 것이다. 운공鄖公종의鍾儀를 사로잡아 나라에 바쳤다.注+[부주]林: 종의鍾儀나라 운현鄖縣대부大夫인데, 정인鄭人이 그를 사로잡은 것이다.
八月 同盟于馬陵하니 尋蟲牢之盟이오 且莒服故也注+蟲牢盟在五年 莒本屬齊 齊服 故莒從之
8월에 마릉馬陵에서 결맹結盟하였으니, 이는 충뢰蟲牢맹약盟約중수重修하기 위함이고, 또 나라가 나라에 복종服從하였기 때문이다.注+충뢰蟲牢결맹結盟성공成公 5년에 있었다. 나라는 본래 나라의 속국屬國이었는데, 나라가 나라에 복종服從하였기 때문에 나라도 나라에 복종服從한 것이다.
晉人以鍾儀歸하야 囚諸軍府注+軍藏府也 爲九年晉侯見鍾儀張本 하다
진인晉人종의鍾儀를 데리고 돌아가서 군부軍府수금囚禁하였다.注+군부軍府군수품軍需品저장貯藏하는 창고倉庫이다. 성공成公 9년에 진후晉侯종의鍾儀를 만난 장본張本이 되었다.
[傳]楚圍宋之役注+在宣十四年 師還하야 子重請取於申呂以爲賞田하니 王許之注+分申呂之田以自賞 [附注] 林曰 申呂 楚二邑 하다
전에 초군楚軍나라를 포위包圍注+선공宣公 14년에 있었다.전쟁戰爭에서 돌아와서, 자중子重토지土地하여 자기에게 상전賞田으로 주기를 하니, 초왕楚王허락許諾하였다.注+토지土地를 나누어 자기에게 으로 주기를 한 것이다.[부주]林: 나라의 두 이다.
申公巫臣曰 不可니이다
그러자 신공申公무신巫臣이 말하기를, “불가不可합니다.
此申呂所以邑也 하야 以御北方이어늘
국가國家이었기 때문에 병부兵賦징수徵收하여 북방北方방어防禦하였습니다.
若取之 是無申呂也注+言申呂賴此田成邑耳 不得此田 則無以出兵賦 而二邑壞也 晉鄭必至于漢하리다 王乃止하다
그런데 만약 이곳을 하여 상전賞田으로 준다면 이는 신읍申邑여읍呂邑이 없어지는 것이니,注+가 이 땅으로 인해 이 되었으니, 이 땅을 잃으면 병부兵賦를 낼 수 없어 두 이 무너진다는 말이다. 나라와 나라가 반드시 한수漢水까지 그 세력勢力을 넓혀 올 것입니다.”고 하니, 초왕楚王은 그 허락許諾취소取消하였다.
子重是以怨巫臣하고 子反欲取夏姬 巫臣止之하고 遂取以行하니 子反亦怨之하다
자중子重은 이로 인해 무신巫臣에게 원한怨恨을 품었고, 자반子反하희夏姬하려 할 때 무신巫臣저지沮止하고는 마침내 자신이 하희夏姬해 도망갔으므로 자반子反무신巫臣에게 원한怨恨을 품었다.
及共王卽位注+楚共王以魯成公元年卽位 하야 子重子反殺巫臣之族子閻子蕩及淸尹弗忌注+皆巫臣之族 及襄老之子黑要注+以夏姬故 幷怨黑要 하고 而分其室하야 子重取子閻之室하고 使沈尹與王子罷分子蕩之室하고 子反取黑要與淸尹之室하다
초공왕楚共王즉위卽位함에 미쳐注+초공왕楚共王성공成公원년元年즉위卽位하였다. 자중子重자반子反무신巫臣족인族人자염子閻자탕子蕩청윤불기淸尹弗忌注+모두 무신巫臣종족宗族이다. 양로襄老의 아들 흑요黑要를 죽이고서注+하희夏姬의 일로 흑요黑要까지 아울러 원망怨望한 것이다. 그들의 가산家産을 나누어, 자중子重자염子閻가산家産하고, 심윤沈尹왕자王子에게는 자탕子蕩가산家産을 나누어 가지게 하고, 자반子反에게는 흑요黑要청윤淸尹가산家産하게 하였다.
巫臣自晉遺二子書注+子重子反 曰 爾以讒慝貪惏事君注+[附注] 朱曰 讒慝 謂二子譖於君以滅其族 貪惏 謂二子利其財以分其室 하야 而多殺不辜하니 余必使爾罷於奔命以死注+[附注] 朱曰 困於奔命而死 奔命 謂奔走君命以救邊境之急 하리라
무신巫臣은 이 소식消息을 듣고 나라에서 자중子重자반子反 두 사람에게 편지를 보내어注+두 사람은 자중子重자반子反이다. 말하기를, “그대들이 참특讒慝탐람貪惏으로 임금을 섬겨注+[부주]朱: 참특讒慝은 두 사람이 임금에게 참소讒訴하여 그 종족宗族을 죽이게 한 것을 이르고, 탐람貪惏은 두 사람이 재물財物하여 그 가산家産을 나누어 가진 것을 이른다. 무고無辜한 사람을 많이 죽였으니, 나는 반드시 그대들을 분명奔命에 지쳐 죽게 할 것이다.”注+[부주]朱: 분명奔命에 지쳐 죽게 한다는 말이다. 분명奔命군명君命을 받고 분주奔走히 돌아다니며 변경邊境위급危急구원救援하는 것이다. 고 하였다.
巫臣請使於吳하니 晉侯許之하다
무신巫臣나라에 사신使臣으로 가기를 청하니, 진후晉侯가 허락하였다.
吳子壽夢說之하니 乃通吳于晉注+壽夢 季札父 [附注] 林曰 喜悅巫臣之爲人 하고
오자吳子수몽壽夢무신巫臣을 좋아하니, 이에 무신巫臣나라를 나라와 통호通好시켰다.注+수몽壽夢계찰季札의 아버지이다. [부주]林: 무신巫臣의 사람됨을 좋아한 것이다.
以兩之一卒適吳하야 舍偏兩之一焉注+ 車九乘爲小偏 十五乘爲大偏 蓋留九乘車及一兩二十五人 令吳習之 하고 與其射御注+[附注] 林曰 先是 吳未嘗射御 故巫臣與其射御 하야 敎吳乘車하고 敎之戰陳하며 敎之叛楚注+前是吳常屬楚 하다
무신巫臣나라로 갈 때 두 의 1(兵車 30)을 거느리고 갔는데, 편량偏兩(1兩의 반쪽)의 1(兵車 15)을 나라에 주고注+사마법司馬法에 의하면 1백 이 1이고 25이 1이며, 병거兵車 9소편小偏이고 15대편大偏이니, 대개 9병거兵車와 1 25을 남겨 오인吳人연습練習시키게 한 것인 듯하다. 사수射手어자御者를 주어,注+[부주]林: 이전에는 나라에 사수射手어자御者가 없었기 때문에 무신巫臣이 자기의 사수射手어자御者를 준 것이다. 오인吳人에게 병거兵車를 모는 기술과 을 치고 작전作戰하는 을 가르치고, 나라를 배반背叛하도록 가르치게 하였다.注+이전에는 나라가 항상 나라의 속국屬國이었다.
寘其子庸焉注+[附注] 林曰 巫臣又留其子狐庸於吳 하야 使爲行人於吳하다
그리고 자기의 아들 호용狐庸나라에 남겨注+[부주]林: 무신巫臣은 또 자기의 아들 호용狐庸나라에 머물게 한 것이다. 나라의 행인行人이 되게 하였다.
吳始伐楚伐巢伐徐注+巢徐 楚屬國 하니 子重奔命注+救徐巢 하다 馬陵之會 吳入州來하니 子重自鄭奔命注+因伐鄭而行 하다
나라가 비로소 나라를 치고 소국巢國을 치고 서국徐國을 치니注+소국巢國서국徐國나라의 속국屬國이다. 자중子重분명奔命하였고,注+서국徐國소국巢國구원救援하기 위해 달려간 것을 이른다. 마릉馬陵에서 회맹會盟할 때 오군吳軍주래州來로 쳐들어가니 자중子重나라에서 분명奔命하였다.注+나라를 토벌討伐하다가 주래州來구원救援하기 위해 달려간 것이다.
子重子反於是乎一歲七奔命하다
자중子重자반子反이 이때 1년에 일곱 차례 분명奔命하였다.
蠻夷屬於楚者 吳盡取之하니 是以始大하야 通吳於上國注+上國 諸夏 하다
나라에 했던 만이蠻夷나라가 모두 하니, 나라가 비로소 강대强大해져서 상국上國(中原 제국諸國)과 교통交通하였다.注+상국上國제하諸夏이다.
[傳]衛定公惡孫林父하니 孫林父出奔晉注+林父 孫良夫之子 하다
위정공衛定公손임보孫林父를 미워하니, 겨울에 손임보孫林父나라로 출분出奔하였다.注+임보林父손량부孫良夫의 아들이다.
衛侯如晉하니 晉反戚焉注+戚 林父邑 林父出奔 戚隨屬晉 하다
위후衛侯나라에 가니 나라가 나라에 돌려주었다.注+임보林父식읍食邑이다. 임보林父나라로 출분出奔하였기 때문에 도 따라서 나라에 귀속歸屬한 것이다.
역주
역주1 稱牛……非禮也 : 해마다 定期的으로 지내는 祭祀는 吉凶을 占치지 않고, 단지 犧牲으로 쓸 소와 祭祀 지낼 날짜의 吉凶만을 점친다. 점을 쳐서 祭日을 定하면 그때부터 그 소를 ‘牲’으로 稱한다. 〈僖公 31년 傳〉
역주2 鄭[伐] : 저본에는 ‘鄭’으로 되어 있으나 《十三經注疏》本에 의거하여 ‘伐’로 바로잡았다.
역주3 不郊 猶三望 : 위의 免牛 밑에 있어야 하는데, 竹簡이 뒤섞여 이곳에 있게 된 것이다. 李震相 《春秋集傳》
역주4 鄭[伐] : 저본에는 ‘鄭’으로 되어 있으나 《十三經注疏》本에 의거하여 ‘伐’로 바로잡았다.
역주5 中國 : 당시 中華(文明圈)에 있던 諸侯를 이른다.
역주6 有上不弔 : ‘無弔’의 弔와 ‘不弔昊天’의 弔와 ‘有上不弔’의 弔는 모두 善의 뜻이다. 《詩集傳》의 朱註에는 弔를 愍(가엾게 여김)으로 풀었고, 《毛詩正義》에는 弔를 善으로 풀었다. 譯者는 《毛詩正義》의 註釋을 취해 飜譯하였다. 無弔는 無善君이고, 善君은 바로 霸主를 가리킨다.
역주7 是以爲賦 : 申과 呂의 土地가 모두 國家의 所有이므로 申과 呂가 邑을 이루어, 兵賦가 이곳에서 나온다는 말이다. 〈楊注〉 이 說을 取해 飜譯하였다.
역주8 司馬法……二十五人爲兩 : 자세한 내용은 宣公 12年傳의 杜注와 朱注를 參考할 것.
역주9 孤[狐] : 저본에는 ‘孤’로 되어 있으나 《十三經注疏》本에 의거하여 ‘狐’로 바로잡았다.

춘추좌씨전(3) 책은 2019.05.2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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