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春秋左氏傳(1)

춘추좌씨전(1)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춘추좌씨전(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經]二年春王正月戊申 宋督弑其君與夷及其大夫孔父注+稱督以弑 罪在督也 孔父稱名者 內不能治其閨門 外取怨於民 身死而禍及其君하다
2년 봄 주왕 정월 무신일에 송독宋督(華父督)이 그 임금 여이與夷(殤公)와 대부大夫공보孔父를 죽였다.注+시해弑害하였다고 칭한 것은 죄가 에게 있기 때문이며, 공보孔父라고 이름을 칭한 것은 안으로는 그 가정을 잘 다스리지 못하고, 밖으로는 백성들에게 원망을 사서, 자신도 죽고 가 그 임금에게까지 미치게 하였기 때문이다.
[經]注+無傳 隱十一年稱侯 今稱子者 蓋時王所黜하다
등자滕子나라에 와서 조현朝見하였다.注+이 없다. 은공隱公 11년 에는 등후滕侯라고 칭하였는데, 지금 등자滕子라고 칭한 것은 아마도 당시의 주왕周王에게 폄출貶黜당했기 때문인 듯하다.
[經]三月 公會齊侯陳侯鄭伯于稷하야 以成宋亂注+成 平也 宋有弑君之亂 故爲會欲以平之 稷 宋地 [附注] 林曰 弑君之禍 接迹天下 蓋於是始하다
3월에 환공桓公제후齊侯진후陳侯정백鄭伯에서 회합하여 나라의 반란을 평정平定시키고자 하였다.注+평정平定이다. 나라에 임금을 시해弑害하는 난리가 났기 때문에 회합하여 평정시키고자 한 것이다. 나라 땅이다.[부주]林: 임금을 시해하는 화난禍難이 천하에 연달았던 것이 이때부터 비롯하였다.
[經]夏四月 取郜大鼎于宋하여 戊申 納于大廟注+宋以鼎賂公 大廟 周公廟也 始欲平宋之亂 終於受賂 故備書之 戊申 五月十日하다
여름 4월에 나라에서 고대정郜大鼎을 취해 와서 무신일에 태묘太廟에 들여놓았다.注+나라가 환공에게 을 뇌물로 준 것이다. 태묘太廟주공周公종묘宗廟이다. 당초에는 나라의 반란을 평정시키고자 하였다가 뇌물을 받는 것으로 일을 마쳤기 때문에 자세히 기록한 것이다. 무신戊申은 5월 10일이다.
[經]秋七月 杞侯來朝注+公卽位而來朝하다
가을 7월에 기후杞侯나라에 와서 조현朝見하였다.注+환공桓公즉위卽位를 축하하기 위해 와서 조현朝見한 것이다.
[經]蔡侯鄭伯會于鄧注+穎川 召陵縣西南 有鄧城하다
채후蔡侯정백鄭伯에서 회합하였다.注+영천穎川소릉현召陵縣 서남에 등성鄧城이 있다.
[經]九月 注+不稱主帥 微者也 不地曰入하다
9월에 노군魯軍기국杞國으로 쳐들어갔다.注+주장主將을 칭하지 않은 것은 품계品階가 낮은 자였기 때문이다. 땅을 점유占有하지 않는 것을 ‘’이라 한다.
[經]公及戎盟于唐하고 注+傳例曰 告于廟也 特相會 故致地也 凡公行還 不書至者 皆不告廟也 隱不書至 謙不敢自同於正君書勞策勳 [附注] 林曰 此書至會之始하다
환공桓公에서 결맹하고, 겨울에 환공이 에서 돌아왔다.注+전례傳例에 “종묘에 한 것이다. 특상회特相會였기 때문에 회합會合한 지명을 드러낸 것이다.”고 하였다. 출행出行에서 돌아온 것을 라고 기록하지 않은 것은 모두 종묘에 고하지 않은 경우이다. 그러나 은공隱公에게 ‘’라고 기록하지 않은 것은 은공이 겸양하여 감히 스스로 정식 임금처럼 종묘에 고하고서 신하들의 근로勤勞공훈功勳을 기록하는 일을 거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부주]林: 이것이 회합에서 돌아와서 음지飮至한 것을 기록한 시초始初이다.
[傳]二年春 宋督攻孔氏하야 殺孔父而取其妻하다
2년 봄에 송독宋督공씨孔氏를 공격하여 공보孔父를 죽이고 그 아내를 취하였다.
公怒하니 督懼하야 遂弑殤公하다
송상공宋殤公이 크게 노하니, 송독宋督은 자신에게 화가 미칠 것을 두려워하여 송상공을 시해弑害하였다.
君子以督爲有無君之心而後動於惡注+雖有君若無也이라
송독宋督공보孔父를 먼저 죽였는데도 시군弑君을 먼저 기록한 것에 대해 군자君子는 “이 먼저 임금을 무시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뒤에 대신大臣을 죽이는 못된 행동을 한 것이다.注+비록 임금이 있었으나 없는 것처럼 여긴 것이다.
故先書弑其君이라
그러므로 시군弑君을 먼저 기록한 것이다.”고 하였다.
會于稷하야 以成宋亂러니 爲賂故 立華氏也注+經稱平宋亂者 蓋以魯君受賂立華氏 貪縱之甚 惡其指斥 故遠言始與齊陳鄭爲會之本意也 傳言爲賂故立華氏 明經本書平宋亂 爲公諱 諱在受賂立華氏也 猶壁假許田 爲周公祊故 所謂婉而成章 督未死而賜族 督之妄也하다
노환공魯桓公이 제후들과 에서 회합하여 임금을 시해한 역적을 제거하여 송나라의 난리를 평정시키기를 상의하였으나, 뇌물 때문에 도리어 그를 도와 화씨정권華氏政權을 세워 주었다.注+에 “송나라의 반란을 평정시키고자 하였다.”고 칭한 것은 노군魯君이 뇌물을 받고서 화씨華氏 정권을 세워 준 행위가 매우 심한 탐종貪縱(재물을 하여 역적을 놓아 줌)이므로 사관史官이 그것을 지적해 말하기 싫었기 때문에 당초에 과 회합했던 본의本意를 멀리에서 끌어다가 말한 것인 듯하다. 에 “뇌물 때문에 화씨 정권을 세웠다.”고 말하여, 에 본래 “나라의 난리를 평정시키고자 하였다.”고 기록한 것은 환공桓公을 위해 숨긴 것이니, 숨긴 바가 뇌물을 받고서 화씨 정권을 세워 준 데 있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 , 성공成公 14년 의 이른바 ‘완곡하게 말을 만들어 편장篇章을 이룬다.’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이 죽기 전에 하사下賜받았으니 불법不法을 자행한 것이다.
宋殤公立하야 十年十一戰注+殤公以隱四年立 十一戰 皆在隱公世하니 民不堪命注+[附注] 林曰 宋之民 皆不堪殤公爭戰之命이라
송상공宋殤公이 즉위하여 10년 동안 열 한 번이나 전쟁을 하니,注+상공殤公노은공魯隱公 4년에 즉위하였다. 열 한 번의 전쟁이 모두 노은공魯隱公 때 있었다. 백성들이 명령을 감내堪耐할 수 없었다.注+[부주]林: 송나라 백성들이 모두 전쟁을 강요하는 상공殤公의 명령을 감내할 수 없었다는 말이다.
孔父嘉司馬하고 督爲大宰
이때 공보가孔父嘉사마司馬였고, 태재太宰였다.
故因民之不堪命하야 先宣言曰 司馬則然注+言公之數戰 則司馬使爾 嘉 孔父字 [附注] 林曰 司馬 主兵之官이라하다
그러므로 이 백성들이 명령을 감내하지 못함을 인하여, 먼저 선언宣言하기를 “사마司馬가 그렇게 만든 것이다.”고 하였다.注+상공이 자주 전쟁을 일으킨 것은 사마司馬가 그렇게 만든 것이라는 말이다. 공보孔父이다.[부주]林: 사마司馬병권兵權을 주관하는 관직官職이다.
已殺孔父而弑殤公하고 召莊公于鄭而立之以親鄭注+莊公 公子馮也 隱三年出居于鄭 馮入宋 不書 不告也하고 以郜大鼎賂公注+郜國所造器也 故繫名於郜 濟陰成武縣東南 有北郜城하고 齊陳鄭皆有賂하다
이윽고 공보를 살해하고 이어 상공을 시해하고서, 정나라에 있는 장공莊公을 불러들여 임금으로 세워서 정나라와 가까이하기를 도모하고,注+장공莊公공자公子이다. 은공隱公 3년에 나라로 나가 살았다. 나라로 들어온 것을 기록하지 않은 것은 나라에 통고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대정郜大鼎을 노나라 환공에게 뇌물로 주었으며,注+고국郜國에서 주조鑄造기물器物이기 때문에 이름에 를 붙인 것이다. 제음濟陰성무현成武縣 동남에 북고성北郜城이 있다.에도 모두 뇌물이 있었다.
故遂相宋公注+[附注] 朱曰 華督弑君 恐諸侯之討己 故親鄭而賂四國也하다
그러므로 드디어 송장공宋莊公을 보좌하는 승상丞相으로 세운 것이다.注+[부주]朱: 화독華督이 임금을 시해하고는 제후諸侯가 자기를 토벌할 것이 두려웠기 때문에 정나라와 가까이하고 네 나라에 모두 뇌물을 준 것이다.
[傳]夏四月 取郜大鼎于宋하야 戊申 納于大廟하니 非禮也
여름 4월에 나라에서 고대정郜大鼎을 가져와서 무신일에 태묘太廟에 들여놓았으니 가 아니다.
臧哀伯諫曰注+臧哀伯 魯大夫僖伯之子 君人者 將昭德塞違하야 以臨照百官이라도 猶懼或失之注+[附注] 朱曰 昭德 謂昭明善德 使益彰聞也 塞違 謂閉塞違邪 使逆命者止絶也
장애백臧哀伯하기를注+장애백臧哀伯은 노나라 대부大夫희백僖伯의 아들이다. “임금은 도덕道德선양宣揚하고 사악邪惡을 방지하여 백관百官을 감시하더라도 오히려 백관이 잘못할까 두렵습니다.注+[부주]朱: 소덕昭德선덕善德을 밝혀 더욱 드러나게 함이고, 새위塞違사악邪惡을 막아 명령을 거역하는 자가 없게 하는 것이다.
故昭令德以示子孫이니이다
그러므로 아름다운 덕을 밝게 드러내어 자손들에게 모범을 보이는 것입니다.
是以淸廟茅屋注+以茅飾屋 著儉也 淸廟 肅然淸靜之稱하며 大路越席注+大路 玉路 祀天車也 越席 結草 [附注] 林曰 越席 結草爲席也하며 大羹不致注+大羹 肉汁 不致五味 [附注] 朱曰 不致 不和五味也하며 粢食不鑿注+黍稷曰粢 不精鑿 昭其儉也注+此四者 皆示儉
그러므로 청묘淸廟의 지붕을 띠풀로 이며,注+띠풀로 지붕을 이는 것은 검소儉素를 드러냄이다. 청묘淸廟는 엄숙하고 깨끗하며 조용하다는 뜻이다. 대로大路의 방석을 부들로 엮어 만들며,注+대로大路옥로玉路이니, 천자가 하늘에 제사지낼 때 타는 수레이다. 월석越席은 풀로 엮은 자리이다.[부주]林: 월석은 풀을 엮어 만든 자리이다. 대갱大羹조미調味를 하지 않으며注+대갱大羹오미五味로 간을 맞추지 않은 육즙肉汁이다.[부주]朱: 불치不致오미五味로 간을 맞추지 않는 것이다. 자식粢食도정搗精하지 않는 것은注+서직黍稷라 하는데 도정搗精하지 않는다. 검소儉素를 드러내기 위함입니다.注+이 네 가지는 모두 검소를 드러내기 위함이다.
袞冕黻珽注+ 畵衣也 冠也 韋韠 以蔽膝也 珽 玉笏也 若今吏之 帶裳幅舃注+帶 革帶也 衣下曰裳 幅 若今行縢者 舃 複履 [附注] 朱曰 幅 謂幅束其脛 自足至膝也 衡紞紘綖注+衡 維持冠者 紞 冠之垂者 紘 纓從下而上者 綖 冠上覆 昭其度也注+尊卑各有制度
과,注+은 그림이 있는 옷이고, 이다. 위필韋韠이니 무릎을 가리는 것이고, 옥홀玉笏이니 오늘날 관리官吏들의 지부持簿 같은 것이다. 과,注+혁대革帶이다. 하의下衣이라 한다. 은 지금의 행등行縢 같은 것이고, 은 창을 겹으로 댄 신이다.[부주]朱: 은 베 폭으로 발에서부터 무릎까지 정강이를 감싸는 것이다. 注+이 벗겨지지 않게 머리에 꽂는 것이고, 에 귀막이 을 매단 끈이고, 은 아래에서 위로 올라간 끈이고, 면류관冕旒冠 덮개이다. 제도制度를 드러내기 위함입니다.注+존비尊卑에 각각 제도制度가 있다.
藻率鞸鞛注+藻率 以韋爲之 所以藉玉也 王五采 公侯伯三采 子男二采 鞸 佩刀削上飾 鞛 下飾 鞶厲游纓注+鞶 紳帶也 一名大帶 厲 大帶之垂者 游 旌旗之游 纓 在馬膺前 如索裙 昭其數也注+尊卑各有數
과,注+은 가죽으로 만들어 밑에 까는 받침인데, 은 5이고, 은 3색, 은 2색이다. 은 칼집의 윗부분을 장식한 것이고, 은 아랫부분을 장식한 것이다. 注+신대紳帶이니 일명一名대대大帶라고도 한다. 대대大帶의 늘어진 부분이다. 정기旌旗의 가장자리에 붙여 아래로 늘어뜨린 베 조각이다. 은 말 가슴 앞에 있는 색군索裙(말 가슴에 걸어 안장鞍裝에 매는 가죽 끈) 같은 것이다. 정수定數를 드러내기 위함입니다.注+존비尊卑에 각각 정수定數가 있다.
火龍黼黻注+火 畵火也 龍 畵龍也 白與黑 謂之黼 形若斧 黑與靑 謂之黻 兩己相戾 [附注] 林曰 此上衣下裳之飾 昭其文也注+以文章明貴賤 五色比象 昭其物也注+車服器械之有五色 皆以比象天地四方 以示器物不虛設 鍚鸞和鈴 昭其聲也注+鍚 在馬額 鸞在鑣 和 在衡 鈴在旗 動皆有鳴聲 三辰旂旗 昭其明也注+三辰 日月星也 畵於旂旗 象天之明니이다
注+곤의袞衣에 불을 그린 것이고, 은 용을 그린 것이다. 백색白色흑색黑色의 실을 사용해 자수刺繡한 것을 라 하는데 모양이 도끼와 같고, 흑색黑色청색靑色의 실을 사용해 자수刺繡한 것을 이라 하는데 모양이 두 ‘’字가 서로 등지고 있는 것 같다.[부주]林: 이것은 상의上衣하상下裳문식文飾이다. 문장文章을 소명하기 위함이며,注+문장으로 귀천을 밝힌다. 오색五色으로 각종 물상物象의사儗似하게 그리는 것은 물색物色을 드러내기 위함이며,注+ 성음聲音을 소명하기 위함이며,注+은 말 이마에 있는 방울이고, 은 재갈에 달린 방울이며, 에 있는 방울이고, 에 달린 방울인데, 움직이면 모두 소리가 난다. 삼신三辰정기旌旗광명光明을 드러내기 위함입니다.注+삼신三辰인데, 에 그려 하늘의 광명光明을 상징한다.
夫德注+[附注] 朱曰 總上文昭德之事而言之 儉而有度注+[附注] 朱曰 儉 謂昭其儉也 有度 謂昭其尊卑之制度也하고 登降有數注+登降 謂上下尊卑 [附注] 朱曰 謂昭其數也 尊者 登其數 卑者 降其數也하니 注+[附注] 朱曰 謂昭其文 昭其物 所以紀綱此德也하고 注+[附注] 朱曰 謂昭其聲 昭其明 所以發揚此德也하야 以臨照百官이면 百官於是乎戒懼하야 而不敢易紀律注+[附注] 林曰 不敢變易國家之紀綱法律이니이다
注+[부주]朱: 상문上文소명昭明한 일을 총괄總括해 말한 것이다. 검소하면서도 법도가 있고注+[부주]朱: 소기검昭其儉을 이르고, 유도有度존비尊卑의 제도를 이른다. 등강登降에 일정한 가 있으니,注+등강登降상하존비上下尊卑를 이른다.[부주]朱: 소기수昭其數를 말한 것인데, 존귀尊貴한 자는 그 를 올리고, 비천卑賤한 자는 그 수를 내리는 것이다. 로 귀천을 기록(표시)하고,注+[부주]朱: 소기문昭其文소기물昭其物을 기강으로 삼기 위한 것임을 말한 것이다. 으로 을 드러내어,注+[부주]朱: 소기성昭其聲소기명昭其明은 덕을 드러내기 위한 것임을 말한 것이다. 백관을 감시하면 백관은 이에 경계하고 두려워하여 감히 기율紀律을 위반하지 않습니다.注+[부주]林: 감히 국가國家의 기강과 법률을 변역變易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今滅德立違注+謂立華督違命之臣하고 而寘其賂器於大廟하야 以明示百官하니 百官象之 其又何誅焉이리잇가
그런데 지금 덕을 버리시고 도리를 어긴 자를 세워 주고서注+명령을 어긴 신하 화독華督을 정승으로 세운 것을 이른다. 뇌물로 받은 고대정郜大鼎을 태묘에 안치하여 백관에게 밝게 보이시니, 백관이 이를 본받는다면 어떻게 그들을 처벌할 수 있겠습니까.
國家之敗 由官邪也 官之失德 寵賂章也注+[附注] 朱曰 百官之所以失德而回邪者 蓋由人君受賂而事迹彰著也니이다
국가가 패망敗亡하는 것은 관리官吏사악邪惡에서 유래하고, 관리가 덕을 상실하는 것은 사사로운 총애와 수뢰受賂가 드러나는 데서 유래합니다.注+[부주]朱: 백관百官을 잃고 사악邪惡해지는 것은 임금이 수뢰受賂행적行迹이 드러난 데에서 유래한다는 말이다.
郜鼎在廟 章孰甚焉니잇가
그런데 고대정을 태묘太廟안치安置하신다면 수뢰를 드러냄이 이보다 심한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武王克商하고于雒邑注+九鼎 殷所受夏九鼎也 武王克商 乃營雒邑而後去之 又遷九鼎焉 時但營雒邑 未有都城 至周公 乃卒營雒邑 謂之王城 卽今河南城也 故傳曰 成王定鼎于郟鄏 義士猶或非之注+蓋伯夷之屬 而況將昭違亂之賂器於大廟하니 其若之何注+[附注] 朱曰 其何以臨照百官乎 公不聽하다
옛날 무왕武王나라를 이기고 구정九鼎낙읍雒邑으로 옮기자,注+구정九鼎나라가 나라에서 물려 받은 것이다. 무왕武王나라를 이기고서 낙읍雒邑경영經營한 뒤에 그 곳을 떠났고, 또 구정九鼎을 그 곳으로 옮겼다. 그러나 이때 낙읍雒邑을 경영하였을 뿐, 도성都城으로 삼지는 않았는데, 주공周公낙읍雒邑의 건설을 마치고서 왕성王城이라 하였으니, 바로 지금의 하남성河南城이다. 그러므로 선공宣公 3년 에 “성왕成王섬욕陝鄏안치安置하였다.”고 한 것이다. 의사義士들은 오히려 이를 비난하였는데,注+백이伯夷 등의 무리인 듯하다. 하물며 도리를 어기고 반란을 일으킨 자에게 뇌물로 받은 기물을 태묘太廟에 안치하여 백관에게 밝게 보이려 하시니, 장차 어떻게 백관百官을 다스릴 수 있겠습니까?”注+[부주]朱: 장차 어떻게 백관百官을 감시할 수 있겠느냐는 말이다.라고 하였으나, 환공은 듣지 않았다.
周內史聞之曰
나라 내사內史가 이 일을 듣고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臧孫達 其有後於魯乎인저
장손달臧孫達은 아마도 후손이 노나라에서 오래도록 복록福祿을 누릴 것이다.
君違 不忘諫之以德注+內史 周大夫官也 僖伯 諫隱觀魚 其子哀伯 諫桓納鼎 積善之家 必有餘慶 故曰 其有後於魯 [附注] 朱曰 臧孫達 卽哀伯也이로다
도리를 어긴 임금의 잘못을 도덕道德으로 하기를 잊지 않았도다.”注+내사內史나라 대부大夫의 관직이다. 희백僖伯은공隱公관어觀魚를 간하였고, 그 아들 애백哀伯환공桓公납정納鼎을 간하였으니, 적선積善한 집안에는 반드시 여경餘慶이 있기 때문에 그 후손이 나라에서 오래도록 복록福錄을 누릴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부주]朱: 장손달臧孫達은 바로 애백哀伯이다.
[傳]秋七月 杞侯來朝하야 不敬하니 杞侯歸 乃謀伐之하다
가을 7월에 기후杞侯(杞武公)가 나라에 조현朝見하러 와서 공경하지 않으니, 기후가 돌아간 뒤에 나라는 나라 토벌하기를 모의謀議하였다.
[傳]蔡侯鄭伯會于鄧하니 始懼楚也注+楚國 今南郡江陵縣北 紀南城也 楚武王 始僭號稱王 欲害中國 蔡鄭姬姓 近楚 故懼而會謀
채후蔡侯정백鄭伯에서 회합하였으니, 이는 비로소 나라를 두려워했기 때문이다.注+초국楚國은 지금의 남군南郡강릉현江陵縣 북쪽의 기남성紀南城이다. 초무왕楚武王이 비로소 참람하게 이라 호칭하고서 중국中國을 해치고자 하였다. 나라와 나라는 희성姬姓으로 나라와 가까운 거리였으므로 두려워서 회합하여 대비책을 모의謀議한 것이다.
[傳]九月 入杞하니 討不敬也
9월에 나라로 쳐들어갔으니, 이는 기후杞侯불경不敬을 토벌한 것이다.
[傳]公及戎盟于唐하니 修舊好也注+惠隱之好
환공桓公에서 결맹하였으니, 이는 옛 우호를 중수重修한 것이다.注+혜공惠公은공隱公 때의 우호友好이다.
公至自唐하니 告于廟也
겨울에 환공桓公에서 돌아왔으니[至], 종묘宗廟한 것이다.
凡公行 告于宗廟하고 反行 飮至 舍爵 策勳焉 禮也注+爵 飮酒器也 旣飮置爵 則書勳勞於策 言速紀有功也
출행出行할 때엔 종묘에 출행을 고하고, 돌아와서는 종묘에 제사하여 귀환歸還하고서 음지飮至사작舍爵하고 훈로勳勞에 기록하는 것이 이다.注+은 술을 마시는 그릇이다. 술을 다 마시고는 잔을 내려놓고서 훈로勳勞에 기록하는 것은 공로가 있는 사람을 서둘러 책에 기록한다는 말이다.
特相會 往來稱地하니 讓事也注+特相會 公與一國會也 會必有主 二人獨會 則莫肯爲主 兩讓 會事不成 故但書地 自參以上이면 則往稱地하고 來稱會하니 成事也注+成會事
특상회特相會인 경우에는 나라 임금이 갔거나 외국外國 임금이 왔거나를 막론하고 모두 회합한 지명地名을 기록하니 이는 서로 사양하여 일이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뜻함이고,注+특상회特相會이 한 나라의 임금과 회합하는 것이다. 회맹會盟에는 반드시 주재자主宰者가 있어야 하는데, 단 두 사람만이 회합하면 서로 주재자主宰者가 되려 하지 않고 둘이 서로 사양하기 때문에 회맹會盟의 일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회합한 지명만을 기록한다는 말이다. 세 나라 이상의 임금이 회합한 경우에는 노나라 임금이 갔을 경우에는 지명地名을 기록하고, 외국 임금이 왔을 경우에는 회합을 기록하니, 이는 회맹會盟의 일이 이루어졌음을 뜻함이다.注+회맹會盟의 일이 이루어진 것이다.
[傳]初 晉穆侯之夫人姜氏 以條之役生大子하니 命之曰仇注+條 晉地 太子 文侯也 意取於戰相仇怨라하고 其弟以千畝之戰生하니 命之曰成師注+桓叔也 西河界休縣南 有地名千畝 意取能成其衆라하다
당초에 진목후晉穆侯부인夫人강씨姜氏의 전쟁 때에 태자太子를 낳으니 그 이름을 ‘’라 하고,注+나라 땅이다. 태자太子문후文侯이다. 전쟁으로 서로 원수[仇怨]가 된 데에서 뜻을 취한 것이다. 그의 동생이 천묘千苗의 전쟁 때 태어나니 그 이름을 ‘성사成師’라 하였다.注+환숙桓叔이다. 서하西河계휴현남界休縣南지명地名천묘千畝라는 곳이 있다. 대군大軍을 이룬 데에서 뜻을 취한 것이다.
師服曰 異哉
사복師服이 말하기를 “괴이怪異하다.
君之名子也注+師服 晉大夫
임금님께서 아들들의 이름을 지음이여!注+사복師服나라 대부이다.
夫名以制義注+名之 必可言也 [附注] 林曰 義者 宜也 名字以制其宜也 朱曰 夫命子之名 必因其字而取其義하며 義以出禮注+禮從義出하며 禮以體政注+政以禮成하며 政以正民注+[附注] 朱曰 己率以正 孰敢不正 故政所以正民이라
이름으로써 그 사람의 분의分義(身分에 알맞는 도리道理)를 제정制定하고,注+명의名義가 정당하면 반드시 말이 사리에 맞을 수 있다.[부주]林: 이니, 이름 로서 그 사람의 분의分義를 제정한다는 말이다.[부주]朱: 아들의 이름을 지을 때는 반드시 글자에서 (뜻)를 취한다는 말이다. 로써 산출産出하고,注+에서 나온다. 로써 정치政治근간根幹을 삼고,注+정치는 에 의해 이루어진다. 정치로써 백성을 바로잡는 것이다.注+[부주]朱: 임금이 올바름으로 솔선率先한다면 누가 감히 바르지 않은 짓을 하겠는가. 그러므로 정치가 백성을 바로잡는 것이 된다.
是以政成而民聽하나니 易則生亂注+反易禮義 則亂生也이라
그러므로 정치가 이루어지고 백성이 복종하는 것이니, 이 원칙을 어기면 발생發生한다.注+예의禮義를 어기면 이 생긴다는 말이다.
嘉耦曰妃 怨耦曰仇 古之命也注+自古有此言 [附注] 朱曰 耦 匹也어늘 今君命大子曰仇라하고 弟曰成師라하니 始兆亂矣
좋은 짝을 ‘’라 하고 원수 같은 짝을 ‘’라 하는 것이 고대古代의 명칭이었는데,注+예로부터 이런 말이 있었다.[부주]朱: 이다. 지금 임금께서 태자의 이름을 ‘’라 하고, 아우의 이름을 ‘성사成師’라 하였으니, 이는 의 조짐을 예시預示한 것이다.
兄其替乎注+穆侯愛少子桓叔 俱取於戰以爲名 所附意異 故師服知桓叔之黨 必盛於晉 以傾宗國 故因名以諷諫인저
이 아마도 쇠미衰微해질 것이다.”라고 하였다.注+목후穆侯는 작은 아들 환숙桓叔을 사랑하여, 두 아들의 이름을 모두 전쟁戰爭에서 취하여 지었지만 붙인 뜻이 달랐기 때문에 사복師服환숙桓叔이 반드시 나라에서 강성强盛하여 종국宗國나라를 전복시킬 줄을 안 것이다. 그러므로 이름을 인하여 완곡婉曲한 말로 넌지시 한 것이다.
惠之二十四年 晉始亂이라
혜공惠公 24년에 나라가 비로소 어지러웠다.
故封桓叔于曲沃注+惠 魯惠公也 晉文侯卒 子昭侯元年 危不自安 封成師爲曲沃伯하니 靖侯之孫欒賓傅之注+靖侯 桓叔之高祖父 言得貴寵公孫爲하다
그러므로 환숙桓叔곡옥曲沃에 봉하니注+혜공惠公노혜공魯惠公이다. 진문후晉文侯하고 아들 소후昭侯가 즉위한 원년에 소후昭侯가 위험을 느껴 마음이 불안하여 성사成師를 봉해 곡옥백曲沃伯으로 삼았다. 정후靖侯의 손자 난빈欒賓이 그를 보좌輔佐하였다.注+정후靖侯환숙桓叔고조부高祖父이다. 존귀尊貴하고 총애寵愛 받는 공손公孫을 보좌로 삼았다는 말이다.
師服曰 吾聞國家之立也 本大而末小 是以能固라하니라
사복師服이 말하기를 “내가 듣건대 ‘국가의 존립存立수목樹木과 같아서 근간根幹이 크고 지엽枝葉이 작아야 안고安固할 수 있다.’고 하였다.
故天子建國注+立諸侯也하고 諸侯立家注+卿大夫稱家하며 卿置側室注+側室 衆子也 得立此一官하고 大夫有貳宗注+適子 爲小宗 次者爲貳宗 以相輔貳하고 士有隷子弟注+士卑 自以其子弟爲僕隷하고 庶人工商 各有分親하야 皆有等衰注+庶人無復存卑 以親疎爲分別也 衰 殺也 [附注] 林曰 自天子至於庶人 各有等第降殺 此皆本大而末小 所以辨上下定民志也 是以民服事其上而下無覬覦注+下不冀望上位어늘
그러므로 천자天子는 나라를 세우고,注+제후諸侯를 세우는 것이다. 제후諸侯를 세우고注+경대부卿大夫라 칭한다. 측실側室(官名)을 두고注+측실側室중자衆子인데 중자 중에서 한 명을 이 관직에 임명한다. 대부는 이종貳宗(官名)을 두고,注+대부大夫적자適子로서 소종小宗일 경우 차자次子이종貳宗으로 삼아 자신을 보이輔貳(補佐)하게 한다. 자제子弟복례僕隷로 삼고,注+는 낮으니, 스스로 그 자제를 복례僕隷로 삼을 뿐이다. 서인庶人은 각각 친척이 있어 모두 친소親疏등차等差가 있다.注+서인庶人존비尊卑가 없으니 친소親疎로 분별한다는 말이다. 이다.[부주]林: 천자天子에서 서인庶人까지 각각 등급에 따라 강쇄降殺(등급에 따라 내려오면서 점점 줄어듦)함이 있으니, 이것이 바로 근본은 크고 끝은 작은 것이다. 그러므로 상하를 분별하고 민지民志를 안정시킬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백성은 그 윗사람에게 복종하여 섬기고 아랫사람은 윗자리를 넘보는 일이 없다.注+아랫사람이 윗자리를 바라지 않는다는 말이다.
今晉
그런데 지금
甸侯也而建國하니 本旣弱矣
나라는 전후甸侯로서 또 하나의 나라를 세웠으니, 근본이 이미 쇠약해졌다.
其能久乎注+諸侯而在
어찌 오래갈 수 있겠는가.注+전복甸服에 있는 제후諸侯이다.
惠之三十年 晉潘父弑昭侯而納桓叔이라가 不克注+潘父 晉大夫也 昭侯 文侯子하니 晉人立孝侯注+昭侯 子也하다
혜공 30년에 반보潘父소후昭侯를 죽이고 환숙桓叔을 맞아들여 임금으로 세우려다가 성공하지 못하니,注+반보潘父나라 대부이다. 소후昭侯문후文侯의 아들이다. 진인晉人효후孝侯를 임금으로 세웠다.注+소후昭侯의 아들이다.
惠之四十五年 曲沃莊伯伐翼하야 弑孝侯注+莊伯 桓叔子 翼 晉國所都하니 翼人立其弟鄂侯하다
혜공 45년에 곡옥曲沃장백莊伯을 공격하여 효후를 죽이니,注+장백莊伯환숙桓叔의 아들이다. 은 진나라의 도읍都邑이다. 익인翼人이 그 아우 악후鄂侯를 임금으로 세웠다.
鄂侯生哀侯注+卾侯 以隱五年奔隨 其年秋 王立哀侯于翼하다
악후가 애후哀侯를 낳았다.注+악후鄂侯노은공魯隱公 5년에 수국隨國으로 도망하니, 그 해 가을에 주왕周王이 애후를 의 임금으로 세웠다.
哀侯侵陘庭之田注+陘庭 翼南鄙邑하니 陘庭南鄙 啓曲沃伐翼注+[附注] 林曰 啓曲沃伐翼 蓋開而導之也하다
애후가 형정陘庭의 토지를 침범하니注+형정陘庭의 남쪽 변방邊方이다. 형정 남쪽 변방 사람들이 곡옥의 군대를 인도하여 익을 쳤다.注+[부주]林: 곡옥曲沃을 인도해 익을 쳤다는 것은 성문城門을 열어 인도한 것인 듯하다.
역주
역주1 滕子來朝 : 이에 대해 朝鮮李惟樟의 《春秋輯註》에는 “滕國이 본래는 侯爵이었으나, 뒤에 楚나라에 服屬하였기 때문에 ‘子’로 낮추어 칭한 것이다.”고 하였고, 李震相의 《春秋集傳》에는 “隱公 11년에는 ‘侯’로 칭하였으나, 지금 ‘子’로 칭한 것은 滕이 貢賦가 많은 것을 꺼려 스스로 그 爵秩을 낮추었기 때문이다.”고 하였다.
역주2 入杞 : 이에 대해 《春秋輯註》에는 “將帥의 品階가 낮고 군사의 수가 적으면 外國인 경우에는 ‘人’이라 칭하고, 內國인 경우에는 ‘入某’ 또는 ‘伐某’라고 기록한다.”고 하였다.
역주3 公至自唐 : 至는 飮至이다. 隱公 5년의 飮至에 대한 역주] 를 참고할 것. 《正義》에 “《釋例》에 《春秋》에 기재된 結盟이 1백 5回이고, 魯나라 임금의 出行이 모두 1백 76回인데, 그중 82 곳은 至라고 기록하고, 94 곳은 至라고 기록하지 않았으니, 至라고 기록하지 않은 것은 모두 종묘에 고하지 않은 것이다. 隱公이 종묘에 고하지 않은 것은 謙讓해서이지만 기타 임금들이 고하지 않은 것은 禮에 태만해서이다.”라고 하였다. 이에 대해 조선의 朴致遠은 “桓公에 대해 ‘至自唐’이라고 기록한 것은 환공이 임금의 자리를 簒奪해 임금이 되었으면서도 해마다 會盟하여 外國과 友好를 맺고 심지어 戎과 會見하기까지 하였기 때문에 미워서 특별히 ‘至’라고 기록한 것이다.”고 하였다. 《雪溪隨錄》
역주4 이는…같으니 : 이곳의 文體가 桓公 원년 傳의 “爲周公祊故”와 같다는 말이다.
역주5 : 대본에는 ‘無’로 되어 있으나 《十三經注疏》本에 의거하여 ‘爲’로 바로잡았다.
역주6 : 王公의 禮服인 袞龍袍이다. 虞舜 때의 곤룡포는 上衣에 日‧月 ‧星辰‧山‧龍‧華蟲(꿩)을 그리고, 下裳에 宗彛(호랑이와 원숭이가 그려진 술그릇)‧藻(마름)‧火‧粉米(白米)‧黼‧黻을 수놓은 12章이었는데, 周나라 때의 곤룡포는 日‧月‧星辰은 빼고, 上衣에 山‧龍‧華蟲‧火‧宗彛를 그리고, 下裳에 藻‧粉米‧黼‧黻을 수놓았으니, 모두 9章이다. 이 곤룡포는 王과 上公이 모두 함께 착용하나, 단 王의 곤룡포에는 어깨 부위에 그린 용의 그림이 한 마리는 올라가고 한 마리는 내려오는 그림인데 반해 상공의 곤룡포에는 올라가는 龍은 없고 내려오는 龍만이 있을 뿐이다.
역주7 : 冕旒冠이다. 면류관에는 실에 구슬을 꿰어 앞뒤로 발처럼 늘어뜨린 끈이 있는데, 天子는 앞뒤 각각 12줄이고, 上公은 9줄, 侯伯은 7줄, 子男은 5줄이다.
역주8 黻(불) : 가죽으로 만든 무릎 가리개인데, 색깔로 貴賤을 구별하였다. 王公은 朱色이고, 大夫는 白色이었다.
역주9 持簿 : 옛날에 조정의 관리들이 간단한 기록을 위해 들고 다니던 판쪽이다. 笏도 귀천에 따라 그 材質이 달라서 天子는 美玉笏을 사용하고, 諸侯는 象牙笏을, 大夫는 상어의 수염으로 장식한 竹笏을, 士는 象牙로 장식한 竹笏을 사용하였다.
역주10 文物以紀之 : 文은 昭其文의 文으로 山‧龍‧華蟲 등의 무늬이고, 物은 昭其物의 物로 5색의 色彩를 이르는데, 무늬의 多寡와 色彩로 신분의 귀천을 드러낸다는 말이다.
역주11 聲明以發之 : 聲은 昭其聲의 聲으로 錫‧鸞‧和‧鈴 등의 소리이고, 明은 昭其明의 明으로 日‧月‧星辰의 旗를 이르는데, 소리와 光明으로 德을 드러낸다는 말이다.
역주12 車服과 器械에……위함이다. : 《正義》에는 “考工記에 ‘繪畵에는 5色을 섞어 사용하는데, 東은 靑이고, 南은 赤, 西는 白, 北은 黑, 天은 玄, 地는 黃이다.’고 하였으니, 이것이 천지 사방의 색깔을 儗似하게 형상한 것이다. 昭其物은 器物이 헛되이 만들어진 것이 아님을 밝힌 것이다.”고 하였고, 楊伯峻의 《春秋左傳注》에는 “比象은 5색으로 山‧龍‧華蟲 등의 물상을 그린 것을 이르니, 이것은 車服을 가리켜 말한 것이다. 그런데 杜注에 ‘天地四方을 比象했다’고 한 것은 잘못이며, 昭其物의 物도 바로 物色의 物이다.”고 하였다. 譯者는 楊氏의 설을 취하였다.
역주13 九鼎 : 夏禹氏가 九州의 金屬을 거두어 들여 九州를 상징해 鑄造한 아홉 개의 鼎으로 夏‧商‧周가 國家의 상징으로 여겨 傳國의 寶器로 삼았다. 鼎 하나를 움직이는데 8만 人이 끌어야 할 정도로 크고 무거웠다고 한다.
역주14 : 대본에는 ‘傳’으로 되어 있으나 《十三經注疏》本에 의거하여 ‘傅’로 바로잡았다.
역주15 甸服 : 周代의 五服 중의 하나로서 王畿로부터 5백리 이내에 있는 諸侯國이다.

춘추좌씨전(1) 책은 2019.05.2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18 By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