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春秋左氏傳(1)

춘추좌씨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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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좌씨전(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經]二年春주왕王二月에 葬진장공陳莊公注+無傳 魯往會之 故書 例在昭六年하다
[經]夏에 公子경보慶父帥師伐어여구於餘丘注+無傳 어여구於餘丘 國名也 莊公時年十五 則하다
[經]秋七月에 제齊王姬卒注+無傳 魯爲之主 比之內女하다
[經]冬十有二月에 夫人강씨姜氏會제후齊侯于작禚注+夫人行不以禮 故還皆不書 不告廟也 작禚 제후齊地하다
[經]乙酉에 송공宋公풍馮卒注+無傳 再與桓同盟하다
傳
[傳]二年冬에 夫人강씨姜氏會제후齊侯于작禚하니 書는 姦也注+文강씨姜前與公俱如제후齊 後懼而出奔 至此始與제후齊好會 會非夫人之事 顯然書之 傳曰 書姦 姦在夫人 文강씨姜比年出會 其意皆同일새니라


2년 봄 주왕周王 2월에 진장공陳莊公을 장사 지냈다.注+전傳이 없다. 노魯나라 사람이 가서 회장會葬하였기 때문에 기록한 것이다. 그 예例가 소공昭公 6년에 보인다.
여름에 공자公子경보慶父가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어여구於餘丘를 토벌하였다.注+전傳이 없다. 어여구於餘丘는 국명國名이다. 이때 장공莊公의 나이가 15세였으니, 그렇다면 경보慶父는 장공莊公의 서형庶兄이다.
가을 7월에 제齊나라로 시집간 왕희王姬가 졸卒하였다.注+전傳이 없다. 노魯나라가 그 혼사婚事를 주관主管하였기 때문에 노魯나라의 딸과 같이 여겨 기록한 것이다.
겨울 12월에 부인夫人강씨姜氏가 제후齊侯와 작禚에서 회합하였다.注+부인夫人이 나갈 때 예禮를 따르지 않았기 때문에 돌아온 것도 모두 기록하지 않았으니, 이는 출입出入에 모두 종묘宗廟에 고하지 않은 것이다. 작禚은 제齊나라 땅이다.
을유일에 송공宋公풍馮이 졸卒하였다.注+전傳이 없다. 환공桓公과 두 차례 동맹同盟하였다.
傳
2년 겨울에 부인夫人강씨姜氏가 제후齊侯와 작禚에서 회합하였으니, 이를 기록한 것은 회합을 가장해 간통姦通하였기 때문이다.注+문강文姜이 전에 환공桓公과 함께 제齊나라에 갔을 적에 환공이 피살被殺되었기 때문에 뒤에 노魯나라에 있기가 두려워 제齊나라로 도망하였다. 이때에 와서 비로소 제齊나라와 우호友好의 회합會合을 하였으나, 회합은 부인夫人의 일이 아니기 때문에 분명히 기록한 것이다. 전傳에 ‘서간書姦’(기록한 것은 간음하였기 때문이다)이라고 한 것은 간통을 요구한 쪽이 부인夫人이었다는 뜻이다. 문강文姜이 매년 나가서 회합한 것도 그 뜻이 모두 이와 같았다.


역주
역주1 慶父莊公庶兄 : 《公羊傳》에 “公子慶父는 莊公의 母弟이다.”라고 하였으나, 杜氏는 “이때 莊公의 나이가 15세였으니, 慶父가 莊公의 아우라면 나이가 더 어렸을 것인데, 어떻게 군대를 統率할 수 있었겠는가? 情況으로 미루어 보면 아우가 아니라 兄이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춘추좌씨전(1) 책은 2025.07.02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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