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春秋左氏傳(7)

춘추좌씨전(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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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좌씨전(7)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經]二十有七年春 公如齊注+自鄆行하다
公至自齊하야 居于鄆하다
[經]夏四月 吳弑其君僚注+僚亟戰民罷 又伐楚喪 故光乘間而動 稱國以弑 罪在僚 하다
[經]楚殺其大夫郤宛注+無極 楚之讒人 宛所明知 而信近之 以取敗亡 故書名罪宛하다
[經]秋 晉士鞅宋樂祁犂衛北宮喜曹人邾人滕人會于扈注+[附注] 林曰 外大夫自爲會
[經]冬十月 曹伯午卒注+無傳 未同盟而赴以名 하다
[經]邾快來奔注+無傳 快邾命卿也 故書
[經]公如齊注+自鄆行하다
公至自齊하야 居于鄆注+無傳하다
[傳]二十七年春 公如齊하다
公至自齊하야 處于鄆이라하니 言在外也注+在外邑 故書地
[傳]吳子欲因楚喪而伐之注+前年 楚平王卒하야 使公子掩餘公子燭庸帥師圍潛注+二子 皆王僚母弟 潛 楚邑 在廬江六縣西南하고 使延州來季子聘于上國注+季子本封延陵 後復封州來 故曰 延州來 [附注] 林曰 上國 卽中國 吳居東鄕 故以中國爲上國하고 遂聘于晉以觀諸侯注+觀强弱하다
楚莠尹然工尹麇帥師救潛注+二尹 楚官 然麇 其名하고 左司馬沈尹戌帥都君子與王馬之屬以濟師注+都君子 在都邑之士有復除者 王馬之屬 王之養馬官屬 校人也 濟 益也 라가 與吳師遇于窮하고
令尹子常以舟師及沙汭而還注+沙水名 [附注] 林曰 子常又以舟師救潛 及沙水之曲而歸 하고 左尹郤宛工尹壽帥師至于潛
하니 吳師不能退注+楚師彊 故吳不得退去 하다
吳公子光曰 此時也 弗可失也注+欲因其師徒在外 國不堪役 以弑王라하고曰 上國有言曰 不索이면 何獲이리오하니라
吾欲求之注+光 吳王諸樊子 故曰王嗣 하노라
事若克이면 季子雖至라도 不吾廢也注+至 謂聘還 [附注] 林曰 季札雖自上國而歸 必不廢我更立他君 리라
鱄設諸曰 王可弑也어니와 母老子弱하니 注+猶言我無若是何 欲以老弱託光 光曰 我 爾身也注+言我身猶爾身 [附注] 林曰 言事汝母當如我母 撫汝子當如我子也라하다
夏四月 光伏甲於堀室而享王注+堀地爲室하다
王使甲於道及其門注+坐道邊至光門하니 門階戶席 皆王親也注+[附注] 林曰 直門者直階者主戶者主席者 皆王僚親密之人
夾之以鈹注+[附注] 林曰 鈹 劒也 又夾之以劒 言守衛嚴密 하야 羞者獻體改服於門外注+羞 進食也 獻體 解衣 [附注] 林曰 進食者必解衣易服于門外 防奸細也하고 執羞者坐行而入注+坐行 膝行이면 執鈹者夾承之注+承執羞者하야 及體以相授也注+鈹及進羞者體 以所食授王하다
光僞足疾하고 入于堀室注+恐難作王黨殺己 素避[辟]之하니 注+全魚炙하야 抽劒刺王하니 鈹交於胸注+交鱄諸胸 [附注] 林曰 執鈹者 交擊鱄設諸之胸하다
遂弑王하다
闔廬以其子爲卿注+闔廬 光也 以鱄諸子爲卿하다
季子至曰 苟先君無廢祀하고 民人無廢主하며 社稷有奉하고 國家無傾이면 乃吾君也 吾誰敢怨이리오
哀死事生하야 以待天命注+[附注] 林曰 哀王僚之死喪 事闔廬之生存하리라
非我生亂이니 立者從之注+[附注] 朱曰 苟立爲君則從而事之 先人之道也注+吳自諸樊以下 兄弟相傳而不立適 是亂由先人起也 季子自知力不能討光 故云爾라하고 復命哭墓注+復使命於僚墓하고 復位而待注+復本位待光命하다
吳公子掩餘奔徐하고 公子燭庸奔鍾吾注+鍾吾 小國하다
楚師聞吳亂而還注+言聞吳亂 明郤宛不取賂而還하다
[傳]郤宛直而和하니 國人注+以直事君 以和接類 하다
鄢將師爲右領注+右領 官名 [附注] 林曰 鄢將師 楚大夫하야 與費無極而惡之注+惡郤宛로되 令尹子常賄而信讒하다
無極譖郤宛焉하야 謂子常曰 子惡欲飮子酒注+子惡 郤宛라하고
又謂子惡호대 令尹欲飮酒於注+[附注] 朱曰 詐言子常欲飮酒於汝家라하니
子惡曰 我賤人也 不足以辱令尹하니 令尹將必來辱이면 爲惠已甚이라
吾無以酬之 若何注+酬 報獻 無極曰 令尹好甲兵하니 子出之하라
吾擇焉注+擇取以進子常하리라 取五甲五兵注+[附注] 林曰 擇取甲兵各五事曰 寘諸門하라
令尹至 必觀之하리니 而從以酬之注+曰 無極辭하라
及饗日하야 帷諸門左注+張帷陳甲兵其中하다
無極謂令尹曰 吾幾禍子로다
子惡將爲子不利하야 甲在門矣 子必無往하라
且此役也注+此春救潛之役 吳可以得志注+[附注] 林曰 楚可以得志於吳 어늘 子惡取賂焉而還하고 又誤하야 使退其師曰 乘亂不祥注+[附注] 林曰 此曰字 擧郤宛當時之辭이라하니라
吳乘我喪注+[附注] 林曰 此以下 皆無極之辭 言吳乘我有平王之喪而伐我하니 我乘其亂 不亦可乎
令尹使視郤氏하니 則有甲焉이라
不往하고 召鄢將師而告之注+告子惡門有甲兵 將害己한대 將師退注+[附注] 林曰 稟命而退하야 遂令攻郤氏하고 且爇之注+爇 燒也 [附注] 林曰 且以火爇燒其家 하라하니 子惡聞之하고 遂自殺也하다
國人弗爇이어늘 令曰 不爇郤氏 與之同罪하리라
或取一編菅焉하고 或取一秉秆焉注+編菅 苫也 秉 把也 藁也 [附注] 朱曰 或取編菅 或取秉秆 將用以焚郤宛하니 國人投之注+[附注] 朱曰 國人怒而投棄其菅秆也하고 遂弗爇也한대
注+炮 燔郤宛하고 盡滅郤氏之族黨하고 殺陽令終與其弟完及佗注+令終 陽匄子 與晉陳及其子弟注+晉陳 楚大夫 皆郤氏黨하다
晉陳之族呼於國曰 鄢氏費氏注+[附注] 林曰 自以爲楚王하야 專禍楚國하고 弱寡王室注+[附注] 林曰 輕弱寡少楚之王室하야 蒙王與令尹以自利也注+蒙 欺也어늘
令尹盡信之矣 國將如何오하니 令尹病之注+爲下殺無極張本하다
[傳]秋 會于扈하니 令戍周 且謀公也
宋衛皆利納公하야 固請之注+[附注] 林曰 宋衛二國 與昭公相好 皆以納公爲利 固請于晉하다
范獻子取貨於季孫하고 謂司城子梁與北宮貞子注+子梁 宋樂祁也 貞子 衛北宮喜曰 季孫未知其罪어늘 而君伐之하니 이라
季氏之 天救之也注+復 猶安也
休公徒之怒注+休 息也 하고 而啓叔孫氏之心注+[附注] 朱曰 故使公徒休息其怒 又開啓叔孫氏之心以救季氏하니라
叔孫氏懼하야 而自同於季氏하니 注+[附注] 林曰 叔孫氏懼季氏之禍泛濫及己 赴救季氏自與和同 此乃天道 非人事也
魯君守齊로되 三年而無成이어늘 季氏甚得其民하고 淮夷與之注+淮夷 魯東夷 [附注] 林曰 季氏甚得國民之心 魯之東夷皆與爲好하며 有十年之備注+[附注] 朱曰 其所畜積 可備十年之用 하고 有齊楚之援注+公雖在齊 言齊不致力하며 有天之贊하고 有民之助하며 有堅之心注+[附注] 林曰 謂有十年之備하고 有列國之權注+[附注] 林曰 謂有齊楚之援이로되注+宣 用也 하고 注+書公行告公至 是也이라
故鞅以爲難이라하로라
二子皆圖國者也로되 而欲納魯君하니 鞅之願也
請從二子以圍魯라가 無成이면 死之注+[附注] 林曰 示不徒還 以恐二子하리라 二子懼하야 皆辭어늘
乃辭하고 而以難復注+以難納白晉君하다
[傳]孟懿子陽虎伐鄆注+陽虎 季氏家臣 하니 鄆人將戰한대 子家子曰 注+慆 疑也 言棄君不疑 注+言君據鄆衆以與魯戰 必敗亡 리라
하니 不亦難乎注+[附注] 林曰 天旣降禍 使君出奔 而自稱福以鄆求勝 難也
注+[附注] 林曰 猶有鬼神共鑑此事此擧 必有敗亡之禍 리라
嗚呼
ᄂ저 其死於此乎ᄂ저
公徒敗于且知注+且知 近鄆地也하다
[傳]楚郤宛之難으로 國言未已注+[附注] 林曰 國人之謗言 尙未止하야 莫不謗令尹注+進胙 國中祭祀也 謗 詛也하다
沈尹戌言於子常曰 夫左尹與中廏尹 莫知其罪어늘 而子殺之하야 以興謗讟하야 至于今不已注+左尹 郤宛也 中廏尹 陽令終하니 戌也惑之하노라
仁者 殺人以掩謗이라도 猶弗爲也어늘 今吾子殺人以興謗코도 而弗圖하니 不亦異乎
夫無極 楚之讒人也 民莫不知
去朝吳注+在十五年하고 出蔡侯朱注+在二十一年하며 喪大子建하고 殺連尹奢注+在二十年하며 屛王之耳目하야 使不聰明이라
不然이면 平王之溫惠共儉 有過成莊이오 無不及焉注+[附注] 朱曰 其德有過於先君成王莊王 無不及於二王者이리라
所以不獲諸侯 邇無極也注+邇 近也
今又殺三不辜하야 以興大謗注+三不辜 郤氏陽氏晉陳氏하야 幾及子矣로되 子而不圖하니 將焉用之注+[附注] 朱曰 汝尙不自爲謀 將安用此讒人哉리오
夫鄢將師矯子之命하야 以滅三族하니 國之良也 而不愆位注+在位無愆過하니라
吳新有君注+光新立也하야 疆場日駭注+[附注] 林曰 楚之疆竟 日有侵伐之懼하니 楚國若有大事 子其危哉注+[附注] 林曰 楚國若有軍旅大事 衆情不附 恐生他變 此危道也ᄂ저
知者除讒以自安也어늘 今子愛讒以自危也하니 子常曰 是瓦之罪 敢不良圖리오
九月己未 子常殺費無極與鄢將師하고 盡滅其族하야 注+[附注] 朱曰 以解說於國人하니 謗言乃止하다
[傳]冬 公如齊하니 齊侯請饗之注+設饗禮하다
子家子曰 立於其朝어늘 又何饗焉이리오
其飮酒也ᄂ저
乃飮酒注+[附注] 林曰 其用宴禮飮酒可也 乃用飮酒之禮 할새 而請安注+比公於大夫也 禮 君不敵臣 晏大夫使宰爲主 獻 獻爵也 請安 齊侯請自安 不在坐也하다
子仲之子曰重 爲齊侯夫人이라 曰 請使重見注+子仲 魯公子憖也 十二年謀逐季氏 不能而奔齊 今行飮酒禮 而欲使重見 [附注] 林曰 子仲有女子 名曰重하노라 子家子乃以君出注+辟齊夫人하다
[傳]十二月 晉籍秦致諸侯之戍于周 魯人辭以難注+經所以不書戍周 籍秦 籍하다


27년 봄에 소공昭公나라에 갔다.注+에서 간 것이다.
소공昭公나라에서 돌아와 거주居住하였다.
여름 4월에 나라가 그 임금 를 시해하였다.注+가 자주 전쟁戰爭을 일으켜 백성이 피패疲敗한데도 또 나라에 국상國喪이 난 기회를 이용해 나라를 쳤다. 그러므로 (闔廬)이 〈친위군親衛軍출정出征한〉 기회를 틈타 〈평소의 뜻을〉 행동으로 옮겨 〈시해弑害하였다.〉 국인國人시해弑害한 것으로 한 것은 에게 있음을 말한 것이다.
나라가 그 대부大夫극완郤宛을 죽였다.注+비무극費無極나라의 참인讒人이라는 것을 극완郤宛이 분명히 알면서도 그를 믿고 가까이하여 패망敗亡자초自招하였다. 그러므로 이름을 기록하여 극완郤宛에게 를 돌린 것이다.
가을에 나라 사앙士鞅나라 악기리樂祁犂, 나라 북궁희北宮喜, 조인曹人, 주인邾人, 등인滕人에서 회합會合하였다.注+[부주]林: 외국外國대부大夫들이 스스로 회합會合한 것이다.
겨울 10월에 조백曹伯(悼公)가 하였다.注+이 없다. 동맹同盟하지 않았으나 이름을 기재記載부고赴告하였기 때문에 〈에 그 이름을 기록한 것이다.〉
나라 나라로 도망해 왔다注+이 없다. 나라 명경命卿(天子가 임명任命제후諸侯)이기 때문에 기록한 것이다.
소공昭公나라에 갔다.注+에서 간 것이다.
소공昭公나라에서 돌아와 거주居住하였다.注+이 없다.
27년 봄에 소공昭公나라에 갔다.
에 “소공昭公나라에서 돌아와 거주居住하였다.”고 하였으니, 〈이는 나라 도성都城이 아닌〉 외지外地에 있었음을 말한 것이다.注+외읍外邑에 있었기 때문에 지명地名을 기록한 것이다.
오자吳子나라에 국상國喪이 난 기회를 이용해 나라를 치려 하여注+전년前年초평왕楚平王하였다., 공자公子엄여掩餘공자公子촉용燭庸을 시켜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을 포위하게 하고注+두 사람은 모두 왕료王僚동모제同母弟이다. 나라 으로 여강廬江육현六縣 서남쪽에 있다., 연주래延州來계자季子를 보내어 상국上國(中國)을 빙문聘問하게 하니注+계자季子가 본래 연릉延陵해졌고, 뒤에 다시 주래州來에 봉해졌기 때문에 ‘연주래延州來’라 한 것이다. [부주]林: 상국上國은 바로 중국中國이다. 나라는 동쪽 지방에 있기 때문에 중국中國상국上國이라 한다. , 계자季子는 드디어 나라로 가서 제후諸侯형세形勢를 살폈다.注+강약强弱의 형세를 살핀 것이다.
나라는 유윤莠尹공윤工尹이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구원救援하고注+나라의 관명官名이고, 은 그들의 이름이다. , 좌사마左司馬심윤沈尹도군자都君子왕마관속王馬官屬을 거느리고 증원增援하러 가다가注+도군자都君子도읍都邑의 사람으로 부역賦役면제免除받은 자들이고, 왕마지속王馬之屬의 말을 기르는 관속官屬으로 교인校人이다. 증익增益이다. 에서 오군吳軍과 만났다.
영윤令尹자상子常수군水軍을 이끌고 사수沙水까지 왔다가 돌아가고注+의 이름이다. [부주]林: 자상子常이 또 수군水軍을 거느리고 구원救援하기 위해 사수沙水의 굽이까지 왔다가 돌아간 것이다. , 좌윤左尹극완郤宛공윤工尹가 군대를 거느리고 에 이르니, 오군吳軍은 〈퇴로退路가 끊겨〉 물러갈 수 없었다.注+초군楚軍하기 때문에 오군吳軍이 물러갈 수 없었다.
나라 공자公子이 말하기를 “지금이 기회[時]이니 놓칠 수 없다.注+왕료王僚의 군대가 밖에 나가 있고, 국인國人전역戰役을 감당할 수 없어하는 기회를 이용하여 시해弑害하려 한 것이다.”고 하고서 전설제鱄設諸에게 일러 말하기를 “상국上國에 ‘하지 않으면 어찌 얻을 수 있는가?’라는 말이 있다.
나는 왕위王位승계承繼할 사람이니 나는 왕위王位를 구하고자 한다.注+오왕吳王제번諸樊의 아들이다. 그러므로 ‘왕사王嗣’라고 한 것이다.
일이 이루어지면 계자季子가 돌아오더라도 나를 폐위廢位시키지 않을 것이다.注+빙문聘問에서 돌아옴을 이른다. [부주]林: 계찰季札이 비록 상국上國에서 돌아오더라도 반드시 나를 폐위廢位하고서 다시 다른 사람을 임금으로 세우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다. ”고 하였다.
전설제鱄設諸가 말하기를 “시해弑害할 수는 있습니다만 어머니는 늙으셨고 자식은 어리니 내가 없으면 이들이 어찌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注+내가 없으면 이들이 어찌하겠느냐는 말과 같으니, 늙은 어머니와 어린 자식을 에게 부탁하고자 한 것이다. ”라고 하니, 이 말하기를 “내 몸이 바로 네 몸이다.注+내 몸이 네 몸과 같다는 말이다. [부주]林: 네 어머니 섬기기를 당연히 내 어머니 섬기듯이 하고, 네 자식 어루만지기를 당연히 내 자식 어루만지듯이 하겠다는 말이다. ”고 하였다.
여름 4월에 지하실地下室[堀室] 안에 군대를 숨겨두고서 초청招請향연享宴을 베풀었다.注+땅을 파서 을 만든 것이다.
갑사甲士들을 보내어 길에서부터 그 집 대문에 이르기까지 수비守備[坐]하게 하니注+가는 도로변道路邊수비守備[坐]하여 의 집 대문大門에까지 이른 것이다. , 대문大門서부터 정계庭階까지와 소문小門[戶]서부터 좌석坐席에 이르기까지 모두 친병親兵들이었다.注+[부주]林: 대문을 수직守直하는 자와 정계庭階수직守直하는 자와 소문小門[戶]의 경비警備를 맡은 자와 좌석坐席경비警備를 맡은 자가 모두 왕료王僚친밀親密한 사람이라는 말이다.
칼을 들고 좌우에서 호위護衛하면서注+[부주]林: 이다. 을 들고 좌우에서 호위護衛했다는 것은 수위守衛엄밀嚴密히 하였다는 말이다. 음식을 올리는 자에게 문밖에서 알몸을 드러내 보이고서 옷을 갈아입게 하고注+는 음식을 올림이고, 헌체獻體는 옷을 벗음이다. [부주]林: 음식을 올리는 자는 반드시 문밖에서 옷을 벗고서 다른 옷으로 갈아입게 한 것이니, 간세奸細(간사한 행위)를 방비防備하기 위함이다. , 음식을 든 자가 무릎으로 기어서 들어가면注+좌행坐行슬행膝行(무릎으로 기어감)이다. 칼을 든 자가 좌우에서 그를 막고서[承]注+집수자執羞者의 몸에 칼을 댐이다. 칼을 그 몸에 대고 음식을 올리게 하였다.注+칼을 진수자進羞者의 몸에 대고서 음식을 에게 올리게 한 것이다.
이 발에 병이 났다고 거짓말을 하고서 지하실地下室로 들어가자注+변난辯難이 일어나면 의 무리가 자기를 죽일 것을 두려워하여 미리 피한 것이다. , 전설제鱄設諸가 생선의 뱃속에 칼을 숨겨 들어가서注+생선을 온전하게 구운 것이다. 칼을 꺼내어 을 찌르니, 갑사甲士의 칼이 번갈아 전설제鱄設諸의 가슴을 찔렀다.注+좌우左右호위護衛가 서로 전제鱄諸의 가슴을 찌른 것이다. [부주]林: 칼을 들고 있던 자가 번갈아 전설제鱄設諸의 가슴을 공격攻擊한 것이다.
드디어 시해弑害하였다.
합려闔廬는 그 아들을 으로 삼았다.注+합려闔廬이다. 전제鱄諸의 아들을 으로 삼은 것이다.
계자季子가 돌아와서 말하기를 “가령 선군先君제사祭祀폐지廢止함이 없고, 백성들이 주인을 버림이 없으며, 사직社稷을 받듦이 있고 국가國家가 기울어짐이 없다면 바로 나의 임금이니, 내 감히 누구를 원망하겠는가?
사자死者애도哀悼하고 생자生者를 섬기면서 천명天命을 기다리겠다.注+[부주]林: 왕료王僚의 죽음을 애도哀悼하고 생존生存합려闔廬를 섬기겠다는 말이다.
내가 반란叛亂을 일으킨 것이 아니니 임금으로 선 분을 따르는 것이注+[부주]朱: 세워서 임금으로 삼았다면 따라서 섬긴다는 말이다. 선왕先王이다.注+나라는 제번諸樊으로부터 이후로 나라를 이 아우에게 하였고 적자適子후사後嗣로 세우지 않았으니, 이번의 반란叛亂선인先人으로 인해 일어난 것이다. 계자季子는 자기의 힘이 토벌討伐할 수 없음을 알았기 때문이 이렇게 말한 것이다. ”라고 하고서 왕료王僚의 무덤으로 가서 복명復命하고 하고서注+사명使命왕료王僚의 무덤에 한 것이다. 자기의 자리로 돌아와서 왕명王命을 기다렸다.注+본래의 자리로 돌아가서 명령命令을 기다린 것이다.
나라 공자公子엄여掩餘나라로 달아나고, 공자公子촉용燭庸종오鍾吾로 달아났다.注+종오鍾吾소국小國이다.
초군楚軍나라에 반란叛亂이 일어났다는 말을 듣고 환군還軍하였다.注+나라의 반란叛亂을 들었다고 말하여, 극완郤宛뇌물賂物을 받고 돌아간 것이 아님을 밝혔다.
극완郤宛정직正直하면서도 온화溫和하니 국인國人들은 그를 좋아하였다.注+정직正直도리道理로 임금을 섬기고, 온화溫和한 모습으로 사람들을 대한 것이다.
언장사鄢將師우령右領으로注+우령右領관명官名이다. [부주]林: 언장사鄢將師나라 대부이다. 비무극費無極결탁結託[比]하여 극완郤宛을 미워하는데도注+극완郤宛을 미워한 것이다.영윤令尹자상子常재물財物을 탐하여 참언讒言을 믿었다.
무극無極자상子常에게 극완郤宛을 참소해 말하기를 “자악子惡(郤宛)이 당신에게 술 접대를 하고 싶어 합니다.注+자악子惡극완郤宛이다. ”고 하고,
자악子惡에게 “영윤令尹이 그대의 집[氏]에 와서 술 접대를 받고 싶어 하십니다.注+[부주]朱: 자상子常이 그대의 집에서 술을 마시고 싶어 한다고 거짓말한 것이다. ”고 하니,
자악子惡이 말하기를 “나는 비천卑賤한 사람이라서 영윤令尹왕림枉臨[辱]하게 할 만하지 못하니, 영윤令尹께서 장차 반드시 왕림枉臨하신다면 매우 큰 은혜恩惠입니다.
그러나 나는 올릴 물건이 없으니 어쩌면 좋겠습니까?注+보답報答해 올림이다. ”라고 하자, 무극無極이 말하기를 “영윤令尹은 갑옷과 병기兵器를 좋아하니 그대는 갑옷과 병기를 내어오시오.
내가 그 중에서 좋은 것을 고르겠소.注+골라서 자상子常에게 올리겠다는 말이다. ”라고 하고서, 다섯 벌의 갑옷과 다섯 종류의 병기를 고르고서注+[부주]林: 갑옷과 병기를 각각 다섯 벌씩을 고른 것이다. 말하기를 “이것들을 문 앞에 놓아두시오.
영윤令尹이 오시면 반드시 살펴보실 것이니, 그대는 기회를 보아 영윤令尹에게 바치십시오.注+무극無極의 말이다. ”라고 하였다.
연향일宴享日에 미쳐 극완郤宛은 문 왼쪽에 장막을 치고서 갑옷과 병기를 그 안에 진열陳列해 놓았다.注+장막을 치고서 갑옷과 병기를 그 안에 진열한 것이다.
무극無極영윤令尹에게 말하기를 “내가 거의 당신을 해칠 뻔하였습니다.
자악子惡이 당신에게 불리不利한 짓을 하려고(당신을 죽이려고) 갑옷을 대문 안에 숨겨두었으니, 당신께서는 부디 가지 마십시오.
그리고 이번 전쟁戰爭에서注+는 봄에 을 구원한 전쟁戰爭을 이른다. 우리가 나라에 승리勝利할 수 있었는데注+[부주]林: 나라가 나라에게 뜻을 얻을 수 있었다는 말이다(楚나라가 나라에 승리勝利할 수 있었다는 뜻). , 자악子惡나라의 뇌물賂物을 받고서 환군還軍하였고, 또 여러 장수將帥들을 속여 그 군대를 물리게 하며 말하기를 ‘남의 나라의 내란內亂을 틈타는 것은 상서롭지 못하다.注+[부주]林: 이 왈자曰字극완郤宛당시當時에 한 말을 거론擧論한 것이다. ’고 하였습니다.
나라가 우리나라에 국상國喪이 난 틈을 이용해 쳐들어왔으니注+[부주]林: 이 이하는 모두 무극無極의 말인데, 나라가 우리 평왕平王이 난 틈을 이용해 우리나라를 공벌攻伐한 것을 말한 것이다. 우리도 그들의 내란內亂이 일어난 틈을 이용하는 것이 옳지 않습니까?”라고 하였다.
영윤令尹이 사람을 보내어 극씨郤氏의 집을 살펴보게 하니 과연 갑옷이 있었다.
영윤令尹은 가지 않고 언장사鄢將師를 불러 이 사실을 하자注+자악子惡에 갑옷과 병기를 진열해둔 것은 장차 나를 살해殺害하고자 함이라고 한 것이다. , 언장사鄢將師는 물러나와注+[부주]林: 명을 받고 물러나온 것이다. 드디어 극씨郤氏공격攻擊하라고 을 내리고 또 극씨郤氏의 집을 불태우라고 하니注+은 불태우는 것이다. [부주]林: 또 불을 질러 그 집을 태우게 한 것이다. , 자악子惡은 이 소식을 듣고 드디어 자살自殺하였다.
국인國人이 불을 지르려 하지 않으니, 언장사鄢將師을 내리기를 “극씨郤氏의 집에 불을 지르지 않으면 극씨郤氏와 같은 처벌處罰할 것이다.”고 하였다.
〈이때〉 어떤 이는 거적 한 장을 가져오기도 하고 어떤 이는 볏짚 한 묶음을 가져오기도 했는데注+편관編菅은 거적이고, 은 한 줌이고, 은 볏짚이다. [부주]朱: 혹자或者는 거적을 가져오고, 혹자或者는 한 줌의 볏짚을 가져온 것은 이것을 사용해 극완郤宛의 집에 불을 지르려 한 것이다. , 국인國人은 그것을 던져버리고注+[부주]朱: 국인國人이 노하여 그 거적과 볏짚을 던져버린 것이다. 끝내 불을 지르지 않았다.
〈그러자 언장사鄢將師는〉 (里尹)에게 명하여 불을 지르게 하고서注+극완郤宛의 집을 불태운 것이다. 극씨郤氏족당族黨을 모두 죽이고, 양령종陽令終과 그 아우 注+영종令終양개陽匄의 아들이다. 진진晉陳 및 그 자제子弟를 죽였다.注+진진晉陳나라 대부大夫로 모두 극씨郤氏이다.
그러자 진진晉陳족당族黨국도國都 안에서 고함쳐 말하기를 “언씨鄢氏비씨費氏가 임금으로 자처自處하여注+[부주]林: 초왕楚王으로 자처自處한 것이다. 권세權勢를 멋대로 부려 나라에 를 끼치고, 왕실王室하고 외롭게 하여注+[부주]林: 나라 왕실王室을 약하고 외롭게 하였다는 말이다. 영윤令尹을 속여 자신을 이롭게 하는데도注+은 속임이다.
영윤令尹은 이들의 말을 다 믿으니, 나라가 장차 어찌되겠는가?”라고 하니, 영윤令尹은 이를 매우 근심하였다.注+하문下文무극無極을 죽인 장본張本이다.
가을에 에서 회합會合하였으니, 나라에 군대를 보내어 수위戍衛할 것을 하고, 또 노소공魯昭公복위復位시키는 일을 상의하기 위함이었다.
나라와 나라가 모두 소공昭公복위復位를 이롭게 여겨 복위復位시킬 것을 강하게 요청要請하였다.注+[부주]林: 두 나라는 소공昭公과 서로 사이가 좋았으므로 모두 소공昭公복위復位시키는 것이 자기들에게 유리有利하다고 여겨서 나라에 강하게 요청要請한 것이다.
범헌자范獻子(晉나라 대부大夫사앙士鞅)는 계손季孫에게 뇌물을 받고서 〈계손季孫을 위해〉 사성자량司城子梁북궁정자北宮貞子에게注+자량子梁나라 악기樂祁이고, 정자貞子나라 북궁희北宮喜이다. 말하기를 “계손季孫은 자기가 무슨 를 지었는지도 모르는데 노군魯君공벌攻伐하니, 계손季孫수금囚禁되기를 하고 망명亡命하기를 하였으나, 이때 허락을 받지 못하였지요.
노군魯君은 도리어 승리勝利하지 못하고 스스로 출분出奔하였지요.
어찌 준비準備도 없으면서 임금을 축출逐出할 수 있겠습니까?
계씨季氏가 다시 안정을 찾은 것은 하늘이 그를 구조救助한 것이지요.注+과 같다.
그러므로 〈하늘이〉 공도公徒(昭公의 군대)의 분노憤怒지식止息시키고注+(止息)이다. 숙손씨叔孫氏의 마음을 계도啓導한 것이지요.注+[부주]朱: 그러므로 공도公徒로 하여금 그 분노憤怒지식止息하게 하고, 또 숙손씨叔孫氏의 마음을 인도하여 계씨季氏를 구원하게 하였다는 말이다.
그렇지 않다면 어찌 남을 치던 군대가 갑옷을 벗고서 전통箭筒[氷]을 들고 놀았겠습니까?
숙손씨叔孫氏가 자기에게 미칠 것을 두려워하여 스스로 계씨季氏에게 동조同調하였으니, 이는 하늘이 인도[道]한 것이지요.注+[부주]林: 숙손씨叔孫氏계씨季氏범람泛濫하여 자기에게 미칠 것을 두려워하여 달려가 계씨季氏를 구원하며 스스로 계씨季氏에게 동조同調하였으니, 이는 바로 하늘의 뜻이고 인사人事가 아니라는 말이다.
노군魯君나라에 구원救援을 청하였으나 3년이 되도록 성공成功하지 못하였는데, 계씨季氏는 백성들의 마음을 매우 얻었고 회이淮夷도 그를 도우며注+회이淮夷나라 동쪽에 있는 오랑캐이다. [부주]林: 계씨季氏는 매우 국민國民의 마음을 얻었고, 나라 동쪽에 있는 오랑캐들도 모두 계씨季氏와 사이좋게 지낸다는 말이다. , 10년의 준비準備가 있고注+[부주]朱: 계씨季氏축적畜積이 10년의 용도用度대비對備할 만하다는 말이다. 제초齊楚원조援助가 있으며注+소공昭公이 비록 나라에 가서 있었지만 나라가 힘을 써주지 않았다는 말이다., 하늘의 도움이 있고 백성의 도움이 있으며, 굳게 지킬 마음이 있고注+[부주]林: 10년을 쓸 수 있는 준비가 있음을 이른다. 열국列國(諸侯)의 권세權勢가 있으되注+[부주]林: 응원應援이 있음을 이른다. , 감히 위세威勢를 드러내지 않고서注+이다. 임금을 국내國內에 계실 때와 같이 섬겼지요.注+소공昭公이 떠난 것을 에 기록하고, 소공昭公이 돌아온 것을 종묘宗廟한 것이 이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소공昭公복위復位시키는 일이〉 어려울 것으로 생각합니다.
두 분은 모두 국정國政도모圖謀하는 분인데, 노군魯君복위復位시키고자 하니 이는 나의 바람입니다.
두 분을 따라 나라를 포위하였다가 성공하지 못하면 죽기를 청합니다.注+[부주]林: 거저 돌아오지 않겠다는 뜻을 보여 두 사람에게 겁을 준 것이다. ”고 하니, 두 사람은 겁이 나서 모두 사절謝絶하였다.
그러자 범선자范宣子소국小國들에게 〈이 일을 할 수 없다고〉 사절謝絶하고, 〈돌아가서〉 진후晉侯에게 〈노군魯君복위復位시키는 일이〉 어렵게 되었다고 복명復命하였다.注+복위復位시키기 어렵다는 것으로 진군晉君에게 복명復命한 것이다.
맹의자孟懿子양호陽虎을 치니注+양호陽虎계씨季氏가신家臣이다. 을 쳐서 소공昭公탈취奪取하고자 한 것이다. , 운인鄆人이 맞아 싸우려 하자 자가자子家子(懿伯)가 말하기를 “천명天命이 임금님을 버린 것을 의심할 게 없는지가 오래되었으니注+이니, 하늘이 임금을 버린 것을 의심할 게 없다는 말이다. , 임금님을 패망敗亡하게 하는 자는 반드시 이 무리(魯軍과 전쟁戰爭하려 하는 무리)일 것입니다.注+소공昭公의 무리를 거느리고서 노군魯軍전쟁戰爭하면 반드시 패망敗亡한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하늘이 이미 를 내렸는데 스스로 을 구하려 하니 어렵지 않겠습니까?注+[부주]林: 하늘이 이미 를 내려서 임금이 국외로 도망가게 되었는데도, 계씨季氏를 몰아내고 정권을 탈취하는 을 구할 수 있는 기회라고 자칭하면서 의 무리를 거느리고 전쟁하여 승리하기를 구하려 하니, 어렵지 않겠느냐는 말이다.
만약[猶]귀신鬼神이 있다면 이들이 반드시 실패失敗할 것입니다.注+[부주]林: 귀신鬼神이 있어서 이 일과 이 행동을 함께 살펴보고 있는 것과 같아서 반드시 실패失敗하는 가 있을 것이라는 말이다.
아!
희망希望이 없으니 아마도 이곳에서 죽게 될 것입니다.”고 하였다.
소공昭公자가자子家子나라에 사자使者로 보냈다.
공도公徒차지且知에서 패배敗北하였다.注+차지且知에서 가까운 지역地域이다.
나라는 극완郤宛화난禍難을 당한 일로 국인國人들의 비방誹謗하는 말이 그치지 않아注+[부주]林: 국인國人의 비방하는 말이 아직까지 그치지 않고 있다는 말이다., 조육胙肉진헌進獻하는 자들이 영윤令尹을 비방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注+진조進胙국중國中제사祭祀이다. 은 헐뜯음[詛]이다.
심윤沈尹자상子常에게 말하기를 “저 좌윤左尹중구윤中廏尹에 대해 사람들은 그들이 무슨 를 지었는지 모르는데, 당신은 그들을 죽여서 사람들의 비방을 불러일으키어 지금까지 비방이 그치지 않고 있으니注+좌윤左尹극완郤宛이고, 중구윤中廏尹양령종陽令終이다. , 나는 의혹疑惑스럽습니다.
인자仁者는 사람을 죽여서 비방을 막을 수 있어도 오히려 하지 않는데, 지금 당신은 사람을 죽여 비방을 불러일으키고도 바로잡을 방도를 생각하지 않으니 괴이怪異하지 않습니까?
무극無極나라에서 가장 참소讒訴 잘하는 인간人間이라는 것을 모르는 백성이 없습니다.
조오朝吳제거除去하고注+소공昭公 15년에 있었다. 채후蔡侯출분出奔하게 하였으며注+소공昭公 21년에 있었다. , 대자大子지위地位를 잃게 하고 연윤連尹를 죽였으며注+소공昭公 20년에 있었다. , 임금의 이목耳目을 가리어 밝게 듣고 볼 수 없게 하였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평왕平王온화溫和하고 자혜慈惠하며 공손恭遜하고 근검勤儉성왕成王장왕莊王보다 지나쳤을 것이고 못하지 않았을 것입니다.注+[부주]朱: 그 선군先君성왕成王장왕莊王보다 지나침이 있고, 두 선왕先王에 미치지 못함이 없다는 말이다.
제후諸侯들의 추대推戴를 받지 못한 것은 무극無極을 가까이하였기 때문입니다.注+(가까이함)이다.
지금 또 무고無辜한 세 사람을 죽여 큰 비방을 불러일으키어注+불고不辜극씨郤氏양씨陽氏진진씨晉陳氏이다. 그 비방이 거의 당신에게 미쳤는데도 당신께서는 바로잡기를 생각하지 않으시니, 이런 참인讒人을 장차 어디에 쓰려는 것입니까?注+[부주]朱: 당신이 오히려 자신을 위해 〈비방을 없앨 방도를〉 꾀하지 않으니, 장차 이 참인讒人을 어디에 쓰려는 것이냐고 〈물은 것이다.〉
언장사鄢將師는 당신의 명령命令가탁假託하여 세 가문家門종족宗族멸망滅亡시켰는데, 이 세 가문은 나라의 선량善良한 가문으로 그들이 직위職位에 있는 동안 허물이 없었습니다.注+직위職位에 있는 동안 허물이 없었다는 말이다.
나라에 새 임금이 들어서서注+(闔廬)이 새로 오왕吳王이 된 것을 이른다. 변경邊境의 사정이 날로 두려워지고 있으니注+[부주]林: 나라 국경國境에 날마다 침벌侵伐을 받을 두려움이 있다는 말이다. , 나라에 만약 전쟁을 하는 일이 생긴다면 당신이 위험해질 것입니다.注+[부주]林: 나라에 만약 군대를 일으키는 큰 일이 생기면 민중民衆의 마음이 귀부歸附하지 않아, 다른 변고變故가 생길까 두려우니 이것이 위태로운 길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참인讒人을 제거하여 자신의 안녕安寧을 도모하는데, 지금 당신은 참인讒人을 사랑하여 자신을 위태롭게 하니 당신의 미혹迷惑이 심하다 하겠습니다.”라고 하자, 자상子常이 말하기를 “이는 나의 이니 감히 좋은 방도를 생각하지 않겠는가?”라고 하였다.
9월 기미일己未日자상子常비무극費無極언장사鄢將師를 죽이고서 그 종족宗族까지 다 죽여 국인國人에게 해명解明[說]하니注+[부주]朱: 이렇게 함으로써 국인國人에게 해명[說]한 것이다. 비방이 그쳤다.
겨울에 소공昭公나라에 가니, 제후齊侯향례饗禮를 베풀어 접대하겠다고 소공昭公초청招請하였다.注+향례饗禮를 베풀려 한 것이다.
그러자 자가자子家子가 〈초청장招請狀을 가지고 온 사자使者에게〉 말하기를 “〈우리 임금님께서〉 항상 나라 조정朝廷에 서서 계시니, 또 무엇 때문에 향례饗禮를 베풀 것이 있겠습니까?
술을 마시는 예를 사용하는 것이(宴禮를 베푸는 것이) 좋겠습니다.”고 하였다.
술을 마실 때注+[부주]林: 만일 연례宴禮를 사용한다면 술을 마시는 것이 가능하다. 이에 술을 마시는 예를 사용한 것이다. 제경공齊景公은〉 재부宰夫를 시켜 소공昭公에게 술을 따라 올리게 하고서 자기는 자리에서 물러가 편히 쉬기를 청하였다.注+소공昭公대부大夫와 같이 대우한 것이다. 에 의하면 임금은 신하를 상대하지 않고, 안대부晏大夫재부宰夫로 하여금 주인主人이 되어 〈에게 술을 올리게 한다.〉 은 술잔을 올리는 것이다. 청안請安제후齊侯가 스스로 편히 쉬기를 청하고서 자리에서 떠난 것이다.
자중子仲의 딸 제경공齊景公부인夫人이 되었는데, 경공景公이 말하기를 “으로 하여금 나와서 을 뵙게 하겠다.注+자중子仲나라 공자公子이다. 소공昭公 12년에 계씨季氏축출逐出하려고 모의謀議하였으나, 성공成功하지 못하고 나라로 출분出奔하였다. 지금 음주례飮酒禮를 거행하면서 으로 하여금 소공昭公알현謁見하고서 서로 어울려 술을 마시며 친압親狎하게 한 것이다. [부주]林: 자중子仲에게 딸이 있었으니 이름이 ‘’이다. ”고 하니, 자가자子家子는 이에 소공昭公을 모시고 나왔다.注+나라 부인夫人을 피한 것이다.
12월에 나라 적진籍秦이 〈나라를〉 수위戍衛제후諸侯의 군대를 나라로 보냈으나, 노인魯人국난國難을 이유로 사절謝絶하고 보내지 않았다.注+〈이것이〉 수주戍周를 기록하지 않은 이유이다. 적진籍秦적담籍談의 아들이다.


역주
역주1 令尹子常以舟師及沙汭而還 左尹郤宛工尹壽帥師至于潛 : 楚軍과 吳軍이 沙水에서 對峙하고 있기 때문에 令尹이 左尹과 工尹을 곧장 潛으로 보내고 자기는 돌아간 것이다. 《左氏會箋》
역주2 鱄設諸 : 昭公 20년에 伍員이 薦擧한 勇士이다.
역주3 我 王嗣也 : 吳王壽夢이 諸樊‧餘祭‧夷昩‧季札 등 네 아들을 낳았다. 季札이 賢能하니, 諸樊‧餘祭가 나라를 아들에게 전하지 않고 아우에게 전한 것은 모두 나라가 季子에게 돌아가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季子가 끝내 나라를 받지 않았으니, 그렇다면 諸樊의 아들 光이 王位를 承繼하는 것이 마땅한데, 夷昩의 아들인 僚가 王이 되었다. 그러므로 光이 스스로 ‘내가 王嗣’라고 한 것이다.
역주4 是無若我何 : 杜注가 上下의 文意에 매우 符合하지만 이런 句法은 經傳에 실로 드물게 보인다. 〈楊注〉
역주5 : 守備함이다. 桓公 12년 傳에 ‘楚軍坐其北門而覆諸山下大敗之’의 杜注에 ‘坐는 守이다.’고 하였다.
역주6 鱄設諸寘劒於魚中以進 : 생선을 온전하게 구웠기 때문에 그 속에 劍을 넣을 수 있었던 것이다.
역주7 : 열
역주8 : 《論語》 〈爲政〉의 ‘小人比而不周’의 ‘比’이니, 서로 勾結(結託)함이다. 〈楊注〉
역주9 子氏 : ‘子家’란 말과 같다. 《呂覽》 〈愼行〉에는 ‘子之家’로 되어 있다. 《左氏會箋》
역주10 群帥 : 莠尹然‧工尹麇‧沈尹戌‧工尹壽를 이른다. 《左氏會箋》
역주11 杆[秆] : 저본에는 ‘杆’으로 되어 있으나, 《十三經注疏》本에 의거하여 ‘秆’으로 바로잡았다.
역주12 令尹炮之 : 劉樾은 “尹은 바로 里尹이다. 國人이 이미 불을 지르려 하지 않기 때문에 閭胥(마을의 胥吏)와 里宰(里長) 등에게 命하여 불을 질러 태우게 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 說을 취해 번역하였다. 〈楊注〉
역주13 自以爲王 : 이때 楚昭王의 나이 겨우 7, 8세였으므로 諸人이 王으로 自處한 것이다. 〈楊注〉
역주14 : 出亡한 임금을 諸侯들이 保護해 本國으로 들여보내어 復位시킴이다.
역주15 請囚請亡 於是乎不獲 : 昭公 25년 9월에 昭公이 季氏의 집으로 쳐들어갔을 때 季平子가 費邑에 囚禁되기를 請하였으나 昭公이 허락하지 않고, 五乘으로 亡命하기를 청하였으나 허락하지 않은 일을 이른다.
역주16 君又弗克 而自出也 : 三家가 聯合해 昭公의 군대를 公擊하니, 昭公은 敗戰하고서 齊나라로 도망간 일을 이른다. 昭公 25년 傳을 참고할 것.
역주17 豈無備而能出君乎 : 昭公을 季氏가 逐出한 것이라면 季氏는 반드시 事前에 準備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準備가 없었으니, 季氏가 임금을 축출한 것이 아니라 임금이 스스로 出亡(도망)한 것이라는 말이다. 〈楊注〉
역주18 : 囚禁되기를 청하고 亡命하기를 청하였으나, 季氏는 여전히 地位와 權勢를 잃지 않았기 때문에 ‘復’이라 한 것이다. 〈楊注〉
역주19 豈其伐人而說甲執氷以游 : 公徒가 갑옷을 벗고 箭筒 뚜껑을 손에 쥐고서 땅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던 일을 이른다. 昭公 25년 傳을 참고할 것.
역주20 禍之濫 : 濫은 바로 泛濫의 濫이니, 이는 假借해 쓴 말로 禍之延及(화가 번져 미침)과 같은 말이다. 〈楊注〉
역주21 天之道也 : ‘天道之也’의 倒置語로 보는 것이 옳을 것 같다. 《左氏會箋》에 “上文의 ‘天救之也’의 例를 따르면 ‘天道之也’라고 하는 것이 마땅한데,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倒語’와 ‘順語’를 對로 맞춘 例이니, 昭公 4년 傳의 ‘遠惡(악이 멀리 전파됨)’과 德遠(덕이 멀리 전파됨)’을 對로 쓴 것과 같다.”고 하였다.
역주22 : 〈楊注〉에 ‘請求’로 註釋하고서, 《漢書》 〈外戚傳〉의 ‘數守大將軍光爲丁外公求侯’를 顔師古注에 ‘守求請之’라 한 것과, 《後漢書》 〈竇融傳〉의 ‘融於是日往守萌’을 李賢注에 ‘守猶求也’라고 한 것을 典據로 제시하였다.
역주23 弗敢宣也 : 宣은 揚과 같으니, 감히 그 威力을 드러내지 않은 것이다. 《左氏會箋》
역주24 事君如在國 : 당시에는 임금이 出奔하면 다른 사람을 임금으로 세우는 것이 常例였으되 魯나라는 감히 그렇게 하지 않았고, 昭公이 비록 國外에 나가 있었으되 如意(季平子)는 오히려 昭公을 임금의 禮로 섬겨, 해마다 말을 購買하고 從者들의 의복과 신발을 준비해 昭公에게 보내주었기 때문에 范宣子가 이렇게 말한 것이다. 《左氏會箋》
역주25 小國 : 이번 會合에 參加한 曹‧邾‧滕을 이른다.
역주26 伐鄆 欲奪公 : 季氏는 諸侯가 昭公을 復位시키기를 꾀한다는 것을 듣고서 겁이 나서 昭公을 맞이해 들이고자 하였으나, 昭公의 從者들을 꺼렸다. 그러므로 鄆을 쳐서 昭公만을 奪取해 오고자 한 것이다. 《左氏會箋》
역주27 天命不慆久矣 : 天命이 季氏에게 있는 것을 의심할 게 없는지가 이미 오래 되었다는 말이다. 〈楊注〉
역주28 使君亡者 必此衆也 : 亡은 外地에서 죽고 끝내 復歸하지 못한다는 말이고, 衆은 昭公의 從者들을 이른다. 이 말은 오로지 여러 從者들의 妄動을 꾸짖은 것일 뿐이다. 杜注는 옳지 않다. 《左氏會箋》
역주29 天旣禍之 而自福也 : 天旣禍之는 昭公이 魯나라를 나온 것을 이른다. 自福은 從者들이 반드시 季氏를 擊滅하고서 그 權勢를 빼앗고자 하는 것을 이르니, 이것이 天命을 拒逆하고서 스스로 福을 구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左氏會箋》
역주30 猶有鬼神 此必敗 : 이것은 반드시 勝戰하지 못한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猶는 疑辭이다. 鬼神이 없다면 모르겠지만 만약 鬼神이 있다면 하늘이 이미 禍를 내렸으니, 僥倖을 바라고 함부로 행동하는 것이 어찌 敗亡을 면할 수 있겠느냐는 말이다. 《左氏會箋》
역주31 嗚呼 爲無望也夫 : 이번에 戰爭하였다가 勝利하지 못하면 昭公의 앞길이 더욱 막혀서 다시는 魯나라로 復歸할 希望이 없기 때문에 ‘烏呼’라고 탄식하여 昭公을 가엾게 여긴 것이다. 《左氏會箋》
역주32 公使子家子如晉 : 昭公은 戰爭하고자 하였으나, 子家子가 반대하기 때문에 그를 晉나라에 使臣으로 보낸 것이다.
역주33 進胙者 : 私家의 祭祀에 쓴 고기를 임금에게 進獻하는 사람이다. 天子나 諸侯가 廟祭를 지내고서 그 祭肉을 卿‧大夫들에게 나누어주는 것을 ‘致胙’ 또는 ‘致燔’이라 하고, 臣下가 家廟에 제사하고서 그 제육을 임금에게 進獻하는 것을 ‘進胙’라 한다. 그러나 杜氏는 ‘進胙國中祭祀’라고 하였으니, 國家의 廟祭에 쓴 고기를 받는 臣下의 뜻으로 이해한 것이다.
역주34 甚矣 其惑也 : 上文의 ‘戌也惑之’의 惑은 疑惑이고, 이곳의 惑은 迷惑(昏亂)이다. 《左氏會箋》
역주35 以說于國 : 令尹은 앞서 저지른 모든 惡行을 두 사람에 돌려 그들을 죽이고서, 그 宗族까지 다 죽임으로써 자신의 罪가 아니라는 것을 國人에게 解明하였다는 말이다.
역주36 朝夕 : 古語에는 ‘항상’과 같은 뜻으로 쓰였다. 昭公이 비록 鄆에 있었으나 齊나라를 主人으로 삼았고, 이해에 이미 齊나라에 두 차례 갔기 때문이 이렇게 말한 것이다. 《左氏會箋》
역주37 使宰獻 : 古禮에 의하면 諸侯가 서로 술을 마실 때에 身分이 서로 같으면 직접 술을 따라 客에게 올리지만, 임금이 신하를 접대하는 경우에는 宰夫를 시켜 술을 따라 客에게 올리게 한다. 지금 재부를 시켜 술을 올리게 하였으니, 이는 齊侯가 魯昭公을 齊나라의 신하로 대우한 것이다. 《左氏會箋》
역주38 從宴媟 : 明確히 알 수는 없으나, ‘相從宴飮而媟狎之’를 줄여서 이렇게 쓴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역주39 誒[談] : 저본에는 ‘誒’로 되어 있으나, 《十三經注疏》本에 의거하여 ‘談’으로 바로잡았다.

춘추좌씨전(7) 책은 2019.05.2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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