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春秋左氏傳(4)

춘추좌씨전(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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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좌씨전(4)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經]十有八年春 白狄來注+不言朝 不能行朝禮 하다
18년 봄에 백적白狄이 우리나라에 왔다.注+’라고 말하지 않은 것은 조례朝禮를 능히 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經]夏 晉人執衛行人石買注+石買 卽是伐曹者 宜卽懲治本罪 而晉因其爲行人之使執之 故書行人以罪晉 하다
여름에 진인晉人나라 행인行人석매石買를 잡았다.注+석매石買는 바로 나라를 토벌討伐한 자이니, 즉시 본죄本罪징치懲治하는 것이 마땅한데, 진인晉人은 그가 행인行人사자使者가 된 것을 하여 그를 잡았다. 그러므로 ‘행인行人’이라고 기록하여 나라에 를 돌린 것이다.
[經]秋 齊師伐我北鄙注+不書齊侯 齊侯不入竟 하다
가을에 제군齊軍이 우리나라의 북쪽 변읍邊邑침벌侵伐하였다.注+제후齊侯를 기록하지 않은 것은 제후齊侯나라 경내境內까지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經]冬十月 公會晉侯宋公衛侯鄭伯曹伯莒子邾子滕子薛伯杞伯小邾子同圍齊注+齊數行不義 諸侯同心俱圍之 하다
겨울 10월에 양공襄公진후晉侯송공宋公위후衛侯정백鄭伯조백曹伯거자莒子주자邾子등자滕子설백薛伯기백杞伯소주자小邾子회합會合하여 나라를 포위包圍하였다.注+나라가 자주 불의不義를 행하니, 제후諸侯합심合心하여 함께 포위包圍한 것이다.
[經]曹伯負芻卒于師注+無傳 三同盟 하다
조백曹伯부추負芻군중軍中에서 하였다.注+이 없다. 장례葬禮허남許男과 같게 치르는 것이 마땅하다. 나라와 세 차례 동맹同盟하였다.
[經]楚公子午帥師伐鄭하다
나라 공자公子가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나라를 토벌하였다.
[傳]十八年春 白狄始來注+白狄 狄之別名 未嘗與魯接 故曰始 하다
18년 봄에 백적白狄이 비로소 왔다.注+백적白狄별명別名이다. 일찍이 나라와 접촉接觸한 적이 없기 때문에 ‘비로소’라고 한 것이다.
[傳]夏 晉人執衛行人石買于長子하고 執孫蒯于純留注+長子純留二縣 今皆屬上黨郡 孫蒯不書 父在位 蒯非卿 하니 爲曹故也注+前年衛伐曹
여름에 진인晉人나라의 행인行人석매石買장자長子에서 잡고, 손괴孫蒯순류純留에서 잡았으니,注+장자長子순류純留은 지금 모두 상당군上黨郡한다. 손괴孫蒯를 기록하지 않은 것은 그 아비는 에 있지만 손괴孫蒯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라 때문이었다.注+전년前年나라가 나라를 토벌討伐하였다.
[傳]秋 齊侯伐我北鄙하니 中行獻子將伐齊하다
가을에 제후齊侯가 우리나라의 북쪽 변읍邊邑침벌侵伐하니 중행헌자中行獻子(荀偃)가 나라를 토벌하려 하였다.
夢與厲公訟하야 弗勝注+厲公 獻子所弑者 하다 公以戈擊之하니 首隊於前이어늘
꿈에 ‘선군先君여공厲公송사訟事를 하여 승소勝訴하지 못하자,注+여공厲公헌자獻子시해弑害한 임금이다. 여공厲公이 창으로 치니 머리가 잘려 앞에 떨어졌다.
跪而戴之하야 奉之以走라가 見梗陽之巫皐注+梗陽 晉邑 在太原晉陽縣南 皐 巫名也 夢幷見之 하다 他日 見諸道하야 與之言하니注+巫亦夢見獻子與厲公訟 이라
무릎을 꿇고 앉아 떨어진 머리를 집어 목 위에 얹고 두 손으로 붙들고서 달아나다가 경양梗陽의 무당 를 만났다.’注+경양梗陽나라 으로 태원太原진양현晉陽縣 남쪽에 있다. 는 무당의 이름이다. 헌자獻子가 꿈에 그 무당을 만난 것이다. 후일後日에 길에서 그 무당을 만나 이야기하니 그도 똑같은 꿈을 꾸었다.注+무당도 꿈에 헌자獻子여공厲公송사訟事하는 것을 본 것이다.
巫曰 어니와 若有事於東方이면 則可以逞注+巫知獻子有死徵 故勸使決意伐齊 [附注] 林曰 主 大夫之稱 이리라 獻子許諾하다
무당이 말하기를 “금년에 대부大夫는 반드시 죽을 것이지만 동방東方의 나라와 전쟁戰爭을 한다면 뜻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注+무당은 헌자獻子가 죽을 징조가 있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결심決心나라를 토벌討伐하도록 한 것이다. [부주]林: 대부大夫칭호稱號이다. 고 하니, 헌자獻子가 허락하였다.
晉侯伐齊하야 將濟河할새 獻子以朱絲繫玉二瑴注+雙玉曰瑴 [附注] 朱曰 將以禮神 故以朱絲繫玉 하야 而禱曰
진후晉侯나라를 토벌하기 위해 하수河水를 건너려 할 때 헌자獻子가 붉은 실로 두 쌍을 묶어注+을 ‘’이라 한다. [부주]朱: 에게 예물禮物로 바치고자 하였기 때문에 붉은 실로 을 묶은 것이다. 기도祈禱하기를
齊環怙恃其險하고 負其衆庶注+環 齊靈公名 負 依也 하야 棄好背盟하고 陵虐神主注+神主 民也 謂數伐魯 殘民人 ᄅ새 彪將率諸侯以討焉注+彪 晉平公名 稱臣者 明上有天子 以謙告神 曾臣 猶末臣 하니 其官實先後之注+守官之臣 偃 獻子名 [附注] 林曰 實先後而輔佐之
나라 지세地勢와 많은 병력兵力을 믿고서注+제영공齊靈公의 이름이다. 는 의지하는 것이다. 우호友好맹약盟約을 저버리고 인민人民잔해殘害[陵虐]하므로注+주인主人은 백성이다. 나라가 자주 나라를 침벌侵伐하여 인민人民잔해殘害한 것을 이른다. 배신陪臣제후諸侯를 거느리고 나라를 토벌討伐하려 하니,注+진평공晉平公의 이름이다. ‘’이라고 한 것은 위에 천자天子가 계심을 밝힌 것이니 겸손한 말로 에게 한 것이다. 증신曾臣말신末臣과 같은 말이다. 관신官臣이 실로 전후前後에서 그를 보좌輔佐하겠습니다.注+관신官臣관직官職이 있는 신하臣下이고, 헌자獻子의 이름이다. [부주]林: 실로 앞뒤에서 진군晉君보좌補佐하겠다는 말이다.
苟捷有功하야 無作神羞注+羞 恥也 [附注] 朱曰 庶幾勝齊 而有成功 不至敗事貽神之辱也 注+偃信巫言 故以死自誓 리니 唯爾有神裁之하라하고 沈玉而濟하다
만약 전쟁戰爭에서 승리勝利하여 수치羞恥를 끼치지 않게 된다면注+이다. [부주]朱: 나라에 승리勝利성공成功을 거두고, 일을 실패失敗하여 에게 수치羞恥를 끼치는 데 이르지 않기를 바란 것이다. 관신官臣은 감히 다시 하수河水를 건너오지 않을 것이니,注+순언荀偃은 무당의 말을 믿었기 때문에 죽을 것으로 스스로 맹서盟誓한 것이다. 께서 재결裁決하기 바랍니다.”라고 하고서 그 을 물에 던져 넣고서 하수河水를 건넜다.
冬十月 注+[附注] 林曰 會諸侯于魯之濟地 하야 尋湨梁之言하고 同伐齊注+湨梁 在十六年 盟曰同討不庭 하다
겨울 10월에 노제魯濟 가에 회합會合하여注+[부주]林: 나라의 제수濟水 가에서 제후諸侯회합會合한 것이다.격량湨梁에서 맹약盟約한 말을 중수重修하고 함께 나라를 토벌討伐하였다.注+격량湨梁회맹會盟양공襄公 16년에 있었는데, 맹약盟約하기를 “맹주盟主에게 불충不忠하는 나라를 함께 토벌討伐할 것이다.”고 하였다.
齊侯禦諸平陰호되 塹防門而守之하니 廣里注+平陰城 在濟北縣東北 其城南有防 防有門 於門外作塹橫行 廣一里 故經書圍 [附注] 朱曰 平陰 齊邑名 러라
제후齊侯평음平陰에서 방어防禦하되 방문防門에 해자를 파고 수비守備하니 그 해자의 너비가 1였다.注+평음성平陰城제북濟北노현盧縣 동북쪽에 있다. 그 남쪽에 제방堤防이 있고 제방堤防에 문이 있는데, 문밖에 횡렬橫列[橫行]로 해자를 팠으니, 그 너비가 1였다. 그러므로 에 ‘포위包圍했다’고 기록한 것이다. [부주]朱: 평음平陰나라 읍명邑名이다.
夙沙衛曰 注+謂防門不足爲險 이라한대 弗聽하다
숙사위夙沙衛가 말하기를 “여기서는 제후군諸侯軍전쟁戰爭할 수 없으니 험고險固한 곳으로 가서 지키는 것만 못합니다.”注+방문防門요새要塞가 되기에 부족不足하다는 것을 이른 말이다. 라고 하였으나, 제후齊侯는 그의 말을 듣지 않았다.
諸侯之士門焉注+[附注] 林曰 攻其城門 하니 齊人多死
제후諸侯의 군대가 방문防門을 공격하니注+[부주]林: 그 성문城門공격攻擊한 것이다. 제인齊人이 많이 죽었다.
范宣子告析文子注+析文子 齊大夫子家 曰 吾知子하노니 敢匿情乎注+[附注] 林曰 言我與子相知 不敢隱匿其情實
범선자范宣子나라 석문자析文子注+석문자析文子나라 대부大夫자가子家이다. 에게 말하기를 “나는 그대와 서로 알고 지내는 사이이니 감히 실정實情을 숨기겠는가?注+[부주]林: 내가 그대와 서로 아는 사이므로 감히 실정實情을 숨기지 않겠다는 말이다.
魯人莒人皆請以車千乘으로 自其鄕入이어늘 旣許之矣注+[附注] 林曰 魯莒在齊之東 言自其鄕入 蓋自東道以入齊
노인魯人거인莒人이 모두 병거兵車천승千乘을 거느리고 각기 자기들의 고장에서 나라로 쳐들어가기를 청하기에 우리가 이미 허락하였다.注+[부주]林: 나라와 나라가 나라의 동쪽에 있으니, 그 고장에서 들어간다고 한 것은 동도東道에서 나라로 쳐들어간다는 말인 듯하다.
若入이면 君必失國하리니 子盍圖之
만약 저들이 쳐들어간다면 제군齊君은 반드시 나라를 잃을 것이니, 어찌 깊이 생각하지 않는가?”라고 하였다.
子家以告公한대 公恐하다
자가子家(析文子)가 이 말을 제영공齊靈公에게 하니 영공靈公이 두려워하였다.
晏嬰聞之하고 曰 君固無勇이어늘 而又聞是注+[附注] 林曰 言齊侯固無勇敢 又聞此言 하니 弗能久矣注+不能久敵晉 리라
안영晏嬰이 듣고 말하기를 “우리 임금은 본래 용기勇氣가 없는데 또 이런 말을 들었으니注+[부주]林: 제후齊侯는 본래 용감勇敢하지 못한데 또 이런 말을 들었다는 말이다. 오래 저항抵抗하지 못할 것이다.”注+진군晉軍을 오래 대적對敵할 수 없다는 말이다. 고 하였다.
齊侯登巫山以望晉師注+巫山 在盧縣東北 하다
제후齊侯무산巫山에 올라 진군晉軍조망眺望하였다.注+무산巫山노현盧縣 동북쪽에 있다.
晉人使司馬斥山澤之險하야 雖所不至라도 必旆而疏陳之注+斥 候也 疏建旌旗以爲陳 示衆也 하고 使乘車者左實右僞하야 以旆先注+僞以衣物爲人形也 建旆以先驅 하고 輿曳柴而從之注+以揚塵 [附注] 林曰 輿 衆也 衆曳柴從車後以揚塵 朱曰 凡此皆詐爲兵多 以恐齊也 하다
진인晉人사마司馬를 보내어 산택山澤의 험한 곳을 정탐偵探(斥)하여 군대가 이를 수 없는 곳에도 반드시 깃발을 듬성듬성 세워 진세陳勢를 펼치게 하고(敵을 속이기 위해 군대가 있는 것처럼 위장僞裝을 치게 한 것임),注+(偵探)이다. 정기旌旗를 듬성듬성 세워 을 쳐서 무리가 많은 것처럼 보이게 한 것이다. 병거兵車의 왼쪽에만 사람을 태우고 오른쪽에는 허수아비를 앉히고서 대기大旗가 앞에서 인도하고注+인형人形에 옷을 입혀 사람으로 위장僞裝한 것이다. 깃발을 세우고서 선구先驅(先導)한 것이다. 수레에 섶을 매달아 끌고 그 뒤를 따르게 하였다注+먼지가 일게 한 것이다. [부주]林: 輿는 많은 병사兵士이다. 많은 병사兵士들에게 섶을 끌고 수레 뒤를 따라 먼지가 일게 한 것이다. [부주]朱: 이것은 모두 병사兵士가 많은 것처럼 위장僞裝하여 나라를 두렵게 한 것이다. (먼지를 일게 하여 대군大軍이 달려가는 것처럼 위장僞裝한 것임).
齊侯見之하고 畏其衆也하야 注+脫 不張旗幟 하니 丙寅晦 齊師夜遁하다
제후齊侯는 이를 보고 진군晉軍이 많은 것을 두려워하여 군중軍中을 빠져나와 돌아가니,注+기치旗幟를 펼치지 않는 것이다. 그믐 병인일丙寅日 밤에 제군齊軍이 도망갔다.
師曠告晉侯注+[附注] 朱曰 樂師名曠 曰 鳥烏之聲樂하니 齊師其遁注+鳥烏得空營 故樂也 이라 邢伯告中行伯注+邢伯 晉大夫邢侯也 中行伯 獻子 注+夜遁 馬不相見 故鳴 班 別也 하니 齊師其遁이라 叔向告晉侯曰 城上有烏하니 齊師其遁注+[附注] 朱曰 當時齊以夜遁 晉未知也 故三子因所聞見而知齊師之遁 이라
사광師曠진후晉侯에게 하기를注+[부주]朱: 악사樂師로 이름이 이다. “까마귀 소리가 즐거우니 제군齊軍이 도망간 듯합니다.”注+까마귀가 빈 진영陣營을 만났기 때문에 즐겁게 운 것이다. 고 하고, 형백邢伯중행백中行伯에게注+형백邢伯나라 대부大夫형후邢侯이고, 중행백中行伯헌자獻子이다. 하기를 “말이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으니注+밤에 도망하다 보니 말[馬]이 서로 볼 수 없었다. 그러므로 운 것이다. 이다.제군齊軍이 도망간 듯합니다.”고 하였고, 숙향叔向진후晉侯에게 하기를 “ 위에 까마귀가 있는 것이 보이니 제군齊軍이 도망간 듯합니다.”注+[부주]朱: 이때 제군齊軍이 밤을 이용해 도망가니 진인晉人은 이를 몰랐다. 그러므로 세 사람이 듣고 본 바로 인해 제군齊軍이 도망간 것을 안 것이다. 라고 하였다.
十一月丁卯朔 入平陰하야 遂從齊師하다
11월 초하루 정묘일丁卯日진군晉軍평음平陰으로 들어가서 드디어 제군齊軍추격追擊하였다.
夙沙衛連大車以塞隧而殿注+ [附注] 朱曰 奔而居後曰殿 이어늘 殖綽郭最曰 子殿國師 齊之辱也注+奄人殿師 故以爲辱 [附注] 林曰 殖綽郭最 齊之勇士 子姑先乎ᄂ저하고 乃代之殿하니 衛殺馬於隘以塞道注+恨二子 故塞其道 欲使晉得之 하다
숙사위夙沙衛가 큰 수레를 연결하여 길을 막고서 스스로 후미後尾방어防禦담당擔當하자,注+이것은 숙사위夙沙衛한 곳을 지키고자 한 것이다. [부주]朱: 패전敗戰하고 도망할 때 군대의 후미後尾에 있는 것을 ‘殿’이라 한다. 식작殖綽곽최郭最가 말하기를 “네가 국가國家 군대의 후미後尾담당擔當하는 것은 나라의 치욕恥辱이니注+엄인奄人(宦官)이 군대 후미後尾방어防禦를 담당하였기 때문에 이를 치욕恥辱으로 여긴 것이다. [부주]林: 식작殖綽곽최郭最나라의 용사勇士이다. 너는 일단 먼저 돌아가라.”고 하고서 대신 후미後尾담당擔當하니, 숙사위夙沙衛는 말을 죽여 좁은 길을 막았다.注+숙사위夙沙衛는 두 사람에게 원한怨恨을 품었기 때문에 그들의 퇴로退路를 막아 진군晉軍이 그들을 잡게 하고자 한 것이다.
晉州綽及之하야 射殖綽하야 中肩하니 兩矢夾脰注+脰 頸也 하다
나라 주작州綽추격追擊해 와서 식작殖綽에게 활을 쏘아 어깨를 맞히니 두 대의 화살이 목의 양쪽에 꽂혔다.注+(목)이다.
曰 止하면 將爲三軍獲注+[附注] 林曰 將生爲三軍俘獲 이어니와 不止 將取其衷注+不止 復欲射兩矢中央 하리라
그리고는 말하기를 “그대가 정지停止한다면 그대를 우리 삼군三軍포로捕虜로 삼겠지만,注+[부주]林: 살려서 삼군三軍포로捕虜로 삼고자 한 것이다. 정지停止하지 않는다면 장차 두 화살이 꽂혀 있는 중간을 쏘겠다.”注+정지停止하지 않으면 꽂혀 있는 두 화살의 중앙中央을 다시 쏘아 죽이고자 한 것이다. 고 하였다.
顧曰 爲私誓하라 州綽曰 有如日注+言必不殺汝 明如日 이라하고
식작殖綽주작州綽을 돌아보며 “맹세할 수 있는가?”라고 하니, 주작州綽이 “저 태양太陽을 두고 맹서盟誓하겠다.”注+반드시 너를 죽이지 않을 것을 밝은 태양太陽을 두고 맹서盟誓한다는 말이다. 고 하였다.
乃弛弓而自後縛之注+反縛之 하니 其右具丙注+州綽之右 亦舍兵而縛郭最하다
그리고서 활시위를 풀어 식작殖綽을 뒤에서 결박結縛하니,注+뒷결박을 한 것이다. 주작州綽거우車右구병具丙注+주작州綽거우車右이다. 병기兵器를 내려놓고서 곽최郭最결박結縛하였다.
皆衿甲面縛注+衿甲 不解甲 [附注] 林曰 反縛 惟露其面 하야 坐于中軍之鼓下하다
두 사람을 모두 갑옷을 입은 채로 뒷결박을 하여注+금갑衿甲은 갑옷을 벗지 않은 것이다. [부주]林: 뒷결박을 하고서 오직 그 얼굴만을 노출露出시킨 것이다. 중군中軍의 북 아래에 앉혀 두었다.
晉人欲逐歸者 魯衛請攻險注+險固城守者 하다
진인晉人은 돌아가는 제군齊軍추격追擊하고자 하였으나, 나라와 나라가 요새要塞공격攻擊하기를 청하였다.注+험고險固을 지키는 자를 공격攻擊하기를 청한 것이다.
己卯 荀偃士匄以中軍克京玆注+在平陰城東南 [附注] 林曰 京玆 齊邑 하고 乙酉 魏絳欒盈以下軍克邿注+欒黶死 其子盈佐下軍 平陰西有邿山 하고 趙武韓起以上軍圍盧 弗克注+[附注] 林曰 盧 齊邑 하다
기묘일己卯日순언荀偃사개士匄중군中軍을 거느리고 가서 경자京玆공격攻擊승리勝利하고,注+경자京玆평음성平陰城 동남쪽에 있다. [부주]林: 경자京玆나라 이다. 을유일乙酉日위강魏絳난영欒盈하군下軍을 거느리고 가서 를 공격해 승리하고,注+난염欒黶이 죽은 뒤에 그 아들 난영欒盈하군下軍가 되었다. 평음平陰의 서쪽에 시산邿山이 있다. 조무趙武한기韓起상군上軍을 거느리고 가서 포위包圍하였으나 승리勝利하지 못하였다.注+[부주]林: 나라 이다.
十二月戊戌 하야 伐雍門之注+秦周 魯大夫 趙武及之共伐萩也 雍門 齊城門 하다
12월 무술일戊戌日조무趙武진주秦周에 당도하여 옹문雍門 밖의 가래나무를 베어 내었다.注+진주秦周나라 대부大夫이다. 조무趙武진주秦周에게 가서 함께 가래나무를 벤 것이다. 옹문雍門나라 성문城門이다.
范鞅門于雍門하니 其御追喜以戈殺犬于門中注+殺犬示間暇 하고 孟莊子斬其橁이러니 以爲公琴注+莊子 孺子速也 橁 木名 [附注] 林曰 斬雍門之橁木以爲魯公之琴 하다
범앙范鞅옹문雍門공격攻擊하니 그 어자御者추희追喜성문城門 안에서 창으로 개를 찔러 죽이고,注+개를 죽인 것은 한가함을 보인 것이다. 나라 맹장자孟莊子는 그곳에 있는 참죽나무를 베었는데, 뒤에 이 나무로 양공襄公의 거문고를 만들었다.注+맹장자孟莊子유자孺子이다. 은 나무 이름이다. [부주]林: 옹문雍門 밖의 참죽나무를 베어 그것으로 노공魯公의 거문고를 만든 것이다.
己亥 焚雍門及西郭南郭注+[附注] 林曰 焚 以火攻也 城之外爲郭 하고 劉難士弱率諸侯之師焚申池之竹木注+二子 晉大夫 [附注] 林曰 申池 齊南城西門 齊城無池 惟此門有池 文十八年 弑懿公 納諸竹中 其地多竹木 하다
기해일己亥日옹문雍門서곽西郭남곽南郭을 불태우고,注+[부주]林: 화공火攻한 것이다. 밖을 이라 한다. 유난劉難사약士弱제후諸侯의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신지申池 가의 대숲[竹木]을 불태웠다.注+두 사람은 나라 대부大夫이다. [부주]林: 신지申池나라 남성南城서문西門이다. 제성齊城에는 못[池]이 없는데 오직 이 에만 못이 있다. 문공文公 18년 에 “병촉邴歜 등이 제의공齊懿公시해弑害하여 그 시체屍體신지申池의 대밭 속에 버렸다.”고 하였으니, 그곳에는 대나무가 많았던 것이다.
壬寅 焚東郭北郭하고 范鞅門于揚門注+齊西門 하다
임인일壬寅日동곽東郭북곽北郭을 불태우고 범앙范鞅양문揚門공격攻擊하였다.注+양문揚門나라 서문西門이다.
州綽門于東閭注+齊東門 이러니 하야 還于門中하니 注+枚 馬檛也 闔 門扇也 數其板 示不恐 하다
주작州綽동려東閭(東門)를 공격攻擊하는데注+동려東閭나라 동문東門이다. 왼쪽 참마驂馬가 장애물에 걸리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문안에서 빙빙 도니 주작州綽은 문짝에 박혀 있는 젖꼭지 모양의 못대가리 수를 세었다.注+는 말채찍이다. 문선門扇(문짝)이다. 그 문짝의 판자板子를 센 것은 두렵지 않다는 것을 보인 것이다.
齊侯駕하야 將走郵棠注+郵棠 齊邑 한대 大子與郭榮扣馬注+大子 光也 榮 齊大夫 曰 師速而疾하니 略也注+言欲略行其地 無久攻意
제후齊侯가 수레를 타고 우당郵棠으로 도망가려 하자,注+우당郵棠나라 이다.태자太子곽영郭榮이 말고삐를 잡고서注+태자太子태자太子이고, 곽영郭榮나라 대부大夫이다. 하기를 “적군敵軍행군行軍이 빠르고 공세攻勢맹렬猛烈하니, 이는 약탈掠奪하기 위함입니다.注+약탈掠奪하려고 그 지방地方을 돌아다니니, 오랫동안 공격攻擊하려는 의사意思가 없다는 말이다.
將退矣리니 君何懼焉이닛가
곧 물러갈 것이니 께서는 무엇을 두려워하십니까?
且社稷之主 不可以輕이니이다
그리고 사직社稷주인主人은 가벼이 움직여서는 안 됩니다.
輕則失衆이니 君必待之하소서 將犯之注+[附注] 林曰 齊侯將犯之而行 한대 大子抽劒斷鞅하니 乃止注+[附注] 林曰 在馬腹曰鞅 하다
가벼이 움직이면 대중大衆을 잃게 되니 께서는 반드시 기다리소서.”라고 하였으나, 제후齊侯는 듣지 않고 두 사람 사이를 뚫고 지나가려 하자,注+[부주]林: 제후齊侯가 두 사람을 짓밟고 지나가려 한 것이다. 태자太子가 칼을 뽑아 말 가슴걸이를 자르니 그제야 멈추었다.注+[부주]林: 말의 배에 있는 끈을 ‘’이라 한다.
甲辰 東侵及濰하고 南及沂注+濰水在東莞東北 至北海都昌縣入海 沂水出東莞蓋縣 至下邳入泗 하다
갑진일甲辰日제후군諸侯軍이 동으로 진격進擊하여 유수濰水에 이르고, 남으로 진격進擊하여 기수沂水에 이르렀다.注+유수濰水동완東莞 동북쪽에 있는데, 북해北海도창현都昌縣에 이르러 바다로 들어간다. 기수沂水동완東莞개현蓋縣에서 발원發源하여 하비下邳에 이르러 사수泗水로 들어간다.
[傳]鄭子孔欲去諸大夫注+ [附注] 林曰 子孔 卽公子嘉 하야 將叛晉而起楚師以去之하야 使告子庚하니 子庚弗許注+子庚 楚令尹公子午 하다
나라 자공子孔대부大夫들을 제거除去하고자 하여,注+권력權力독점獨占하고자 해서였다. [부주]林: 자공子孔은 바로 공자公子이다. 나라를 배반背叛하고 초군楚軍을 일으켜(이용해) 그들을 제거除去하려고 사람을 보내어 나라 영윤令尹자경子庚에게 하니 자경子庚허락許諾하지 않았다.注+자경子庚나라 영윤令尹공자公子이다.
楚子聞之하고 使揚(楊)豚尹宜告子庚注+[附注] 朱曰 揚(楊)豚邑尹 名宜也 曰 國人謂不穀主社稷而不出師하니 死不從禮注+不能承先君之業 死將不得從先君之禮
초자楚子가 이 말을 듣고 양돈윤楊豚尹를 보내어 자경子庚에게 하기를注+[부주]朱: 양돈楊豚읍윤邑尹(邑長)으로 이름이 이다. 국인國人들은 내[不穀]가 사직社稷(國家)을 주지主持하면서 출사出師하지 않으니 사후死後선군先君과 같은 예우禮遇를 받지 못할 것이라고 한다.注+선군先君대업大業계승繼承하지 않으니 죽어서도 장차 선군先君과 같은 예우禮遇를 받을 수 없다는 말이다.
不穀卽位 於今五年이로되 師徒不出하니 人其以不穀爲自逸而忘先君之業矣注+謂己未嘗統師自出 리니 大夫圖之하라 其若之何
내가 즉위卽位한 지 이제 5년이 되었으나 군대를 출동出動한 적이 없었으니, 사람들은 내가 스스로 안일安逸만을 탐하고 선군先君대업大業은 잊었다고 할 것이니注+자기가 군대를 거느리고서 직접 출정出征한 적이 없었던 것을 이른 말이다. 대부大夫는 어찌해야 하겠는지를 깊이 생각하라.”고 하니,
子庚歎曰 君王其謂午懷安乎ᄂ저
자경子庚탄식歎息하며 말하기를 “군왕君王께서는 내[午]가 안일安逸만을 생각한다고 여기시는 모양이다.
吾以利社稷也 見使者하고 稽首而對曰 諸侯方睦於晉이나 臣請嘗之注+嘗 試其難易也 하리니 若可어든 君而繼之하시고 不可 注+[附注] 林曰 若鄭可攻 君以師繼其後 若不可攻 臣請兵而歸 하소서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은 사직社稷을 이롭게 하려는 것인데.”라고 하고서, 사자使者(楊豚尹 )를 접견接見하고서 머리를 조아리며 대답하기를 “제후諸侯가 바야흐로 나라와 화목和睦하지만 이 한번 시험試驗해 보겠으니,注+나라 토벌討伐하는 일이 어려운지 쉬운지를 시험하는 것이다. 만약 유리有利할 성싶거든 군왕君王께서 곧 의 뒤를 이어 출병出兵하시고, 불리不利할 성싶거든 군대를 거두어 퇴각退却하소서.注+[부주]林: 만약 나라를 공격攻擊할 만하면 께서는 군대를 거느리고서 의 뒤를 이어 오시고, 만약 공격攻擊할 만하지 못하면 은 군대를 거두어 돌아오겠다는 말이다.
可以無害 이리이다
이렇게 하면 군대의 피해被害도 없고 군왕君王께도 치욕恥辱이 없을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子庚帥師治兵於汾注+襄城縣東北有汾丘城 하다
자경子庚은 군대를 거느리고 분수汾水 가로 가서 군대를 검열檢閱하였다.注+양성현襄城縣 동북쪽에 분구성汾丘城이 있다.
於是子蟜伯有子張從鄭伯伐齊注+子張 公孫黑肱 하고 子孔子展子西守注+[附注] 林曰 公子嘉公孫舍之公孫夏留守鄭國 하다
이때에 나라 자교子蟜백유伯有자장子張정백鄭伯을 따라 나라 토벌討伐에 나가고,注+자장子張공손公孫흑굉黑肱이다. 자공子孔자전子展자서子西국내國內에 남아 나라를 지켰다.注+[부주]林: 공자公子, 공손公孫사지舍之, 공손公孫는 남아서 나라를 지킨 것이다.
二子知子孔之謀注+二子 子展子西 하고 注+完城郭 內保守 하니 子孔不敢會楚師注+[附注] 林曰 子孔見二子爲備 故不敢出會楚師 하다
두 사람은 자공子孔음모陰謀를 알고서注+두 사람은 자전子展자서子西이다. 수비守備강화强化하고서 성보城堡로 들어가 굳게 지키니,注+성곽城郭을 완전하게 손질하고, 들어가서 보호保護해 지킨 것이다. 자공子孔이 감히 초군楚軍과 만나지 못하였다.注+[부주]林: 자공子孔은 두 사람이 대비對備하고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감히 나가서 초군楚軍과 만나지 못한 것이다.
楚師伐鄭하야 次於魚陵注+魚陵 魚齒山也 在南陽犫縣北 鄭地 하다
초군楚軍나라를 토벌討伐하기 위해 어릉魚陵주둔駐屯하였다.注+어릉魚陵어치산魚齒山으로 남양南陽주현犫縣 북쪽에 있는데, 나라 땅이다.
右師城上棘하고 遂涉潁하야 次于旃然注+將涉潁 故於水邊權築小城 以爲進退之備 旃然水出熒陽成臯縣 東入汴 하다 蔿子馮公子格率銳師侵費滑胥靡獻于雍梁注+胥靡獻于雍梁 皆鄭邑 河南陽翟縣東北有雍氏城 하고 右回梅山注+在熒陽密縣東北 [附注] 林曰 楚師右回鄭之梅山 하야 侵鄭東北하고 至于蟲牢而反하다
우군右軍상극上棘을 쌓고서 드디어 영수潁水를 건너 전연旃然주둔駐屯하고,注+장차 영수潁水를 건너려 하였기 때문에 물가에 임시로 작은 을 쌓아 진군進軍하거나 퇴군退軍할 때 사용할 근거지根據地준비準備한 것이다. 전연수旃然水형양熒陽성고현成臯縣에서 발원發源하여 동쪽으로 흘러 변수汴水로 들어간다. 위자빙蔿子馮공자公子정예병精銳兵을 이끌고 비활費滑서미胥靡헌우獻于옹량雍梁침공侵攻하고서注+서미胥靡, 헌우獻于, 옹량雍梁은 모두 나라 이다. 하남河南양적현陽翟縣 동북쪽에 옹씨성雍氏城이 있다. 매산梅山우회右回하여注+매산梅山형양熒陽밀현密縣 동북쪽에 있다. [부주]林: 초군楚軍나라의 매산梅山우회右回한 것이다. 나라 동북부東北部침공侵攻하고 충뢰蟲牢까지 갔다가 돌아왔다.
子庚門于純門하야 信于城下而還注+信 再宿也 하야 涉於魚齒之下注+魚齒山之下有滍水 故言涉 할새 甚雨及之注+[附注] 朱曰 適有大雨 遂及楚兵 하야 楚師多凍하고 하다
자경子庚순문純門공격攻擊하여 아래에서 이틀 밤을 지내고 환군還軍하여注+은 이틀 밤을 묵는 것이다. 어치산魚齒山 아래서 치수滍水를 건너는데注+어치산魚齒山 아래에 치수滍水가 있기 때문에 ‘건넌다’고 말한 것이다. 마침 큰비가 내려注+[부주]朱: 마침 큰비가 초군楚軍에게 내린 것이다. 초군楚軍동사자凍死者가 많이 생겼고 역도役徒는 거의 다 죽었다.
晉人聞有楚師하고 師曠曰 不害
진인晉人초군楚軍나라를 토벌討伐한다는 소식을 듣고 사광師曠이 말하기를 “우리에게 해로울 게 없습니다.
吾驟歌北風하고 又歌南風컨대 南風不競注+歌者 吹律以詠 南風音微 故曰不競也 師曠唯歌南北風者 聽晉楚之强弱 하야 注+[附注] 朱曰 多有死喪之聲 이리다
내가 여러 차례 북풍北風(北方의 악곡樂曲)을 노래해 보고 또 남풍南風(南方의 악곡樂曲)을 노래해 보건대 남풍南風(南曲)은 소리가 하지 못하고注+노래하는 자는 (管樂器)을 불어 팔풍八風(八方의 음곡音曲)을 읊는데, 남풍南風미약微弱하기 때문에 하지 못하다고 한 것이다. 사광師曠이 오직 남풍南風북풍北風만을 노래한 것은 나라와 나라의 강약强弱을 듣기 위함이었다. 애절한 소리[死聲]가 많으니, 나라는 반드시 성공成功하지 못할 것입니다.”注+[부주]朱: 사상死喪의 소리(애절한 소리)가 많은 것이다. 고 하였다.
董叔曰 天道多在西北注+歲在豕韋 月又建亥 故曰多在西北 [附注] 林曰 晉大夫董叔 이어늘 南師不時하니 注+不時 謂觸歲月 이리다
동숙董叔이 말하기를 “금년에 천도天道(木星이 운행運行하는 길)가 서북西北에 있는 때가 많은데,注+세성歲星(木星)이 시위豕韋(亥:서북西北)의 자리에 있고, 그 달도 건해월建亥月(12월)이기 때문에 서북西北에 있는 때가 많다고 한 것이다. [부주]林: 나라 대부大夫동숙董叔이다. 남사南師(楚君)의 출동出動천시天時에 맞지 않으니 반드시 성공成功하지 못할 것입니다.”注+불시不時저촉抵觸되었다는 말이다. 고 하였다.
叔向曰 在其君之德也注+言天時地利不如人和 니이다
숙향叔向이 말하기를 “전쟁戰爭승패勝敗는 그 나라 임금의 이 어떠냐에 달린 것이지注+천시天時지리地利인화人和만 못하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천도天道에 달린 것이 아닙니다.”고 하였다.
역주
역주1 禮當與許男同 : 葬禮를 許男과 같게 치르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은 僖公 4년의 ‘許男卒’에 대해 그 傳에 “侯의 禮로 葬事 지냈으니 禮에 맞았다. 諸侯가 朝見이나 會盟 중에 죽으면 한 等級을 올려 葬事 지내고, 王事(王命으로 出戰함)에 죽었으면 두 等級을 올려 葬事 지낸다.”고 하였다. 侯伯(霸主)의 討伐도 王事이니, 王事에 죽은 자는 두 等級을 올려 葬事 지내야 하므로 曹伯을 侯를 건너뛰어 公의 禮로 葬事 지내어, 許男을 伯을 건너뛰어 侯의 禮로 葬事 지낸 것과 같이 해야 한다는 말이다. 《左氏會箋》
역주2 今玆主必死 : 《左傳》에 記載된 ‘主’의 用例를 살펴보면, 成公 이전에는 家臣이 그 大夫를 ‘君’으로 稱하였고 襄公 이후로는 ‘主’로 칭하였는데, 家臣뿐만이 아니라 其他의 사람도 大夫를 ‘主’로 칭하였다.
역주3 曾臣 : 曾臣은 陪臣과 같다. 曾과 陪에는 모두 重의 뜻이 있다. 天子가 神에게 ‘臣’이라 稱하니, 諸侯는 天子의 臣下이기 때문에 神에게 ‘曾臣’이라 稱한 것이라고 한 〈楊注〉를 취하여 ‘陪臣’으로 번역하였다.
역주4 其官臣偃 : 官臣은 天子의 命을 받아 스스로 官吏를 세워 家邑을 다스리는 자이다. 〈楊注〉
역주5 官臣偃無敢復濟 : 荀偃은 무당의 말을 믿어 자신이 반드시 죽을 것을 알았기 때문에 ‘감히 다시 河水를 건너오지 않겠다.’고 한 것이다. 〈楊注〉
역주6 會于魯濟 : 魯나라에 있는 濟水를 ‘魯濟’라 하고, 齊나라에 있는 濟水를 ‘齊濟’라 한다. 《左氏會箋》
역주7 廬[盧] : 저본에는 ‘廬’로 되어 있으나 《十三經注疏》本에 의거하여 ‘盧’로 바로잡았다.
역주8 不能戰 莫如守險 : 夙沙衛의 생각은 泰山의 險한 곳을 固守해야 하고 防門에 해자를 파서 據點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고 여긴 것이다. 〈楊注〉
역주9 乃脫歸 : 脫歸는 脫出하여 도망해 돌아간 것이다. 齊侯가 이미 脫出해 도망갔기 때문에 丙寅日 밤에 齊軍이 도망간 것이라고 한 《左氏會箋》의 說을 取해 번역하였다.
역주10 有班馬之聲 : 杜注의 解釋은 어두운 밤이라서 말들이 서로 헤어진 것[別]을 볼 수 없기 때문에 서로 찾기 위해 운 것이라는 뜻 같다. 그러나 이 說을 취하지 않고 “班馬는 還馬이다.”고 한 〈楊注〉의 說을 取해 번역하였다.
역주11 此衛所欲守險 : 이것은 敗戰하고 도망갈 때 부득이하여 큰 수레를 連結해 좁은 길을 막아 잠시 동안 敵의 追擊을 막으려는 計策이었을 뿐이니, 어찌 앞에서 이른바 ‘險한 곳을 지킨다.’는 것이겠는가. 《左氏會箋》
역주12 及秦周 : 及秦周는 晉나라 上軍이 盧에서 떠나 進軍하여 秦周에 當到한 것이다. 《呂覽》 〈愼大篇〉에 “제나라 달자가 그 패잔병을 거느리고서 진주에 주둔하였다.[諸達子率其餘卒 以軍右秦周]”고 하였으니, 秦周는 齊나라의 地名이다. 杜氏는 魯나라에 秦子 및 秦菫父가 있는 것에 의거해 秦周를 人名으로 해석하였으나, 下文에 ‘東侵及濰南及沂’의 例로 보면 옳지 않다고 한 《左氏會箋》의 설을 취해 地名으로 번역하였다.
역주13 荻[萩] : 저본에는 ‘荻’으로 되어 있으나 《十三經注疏》本에 의거하여 ‘萩’로 바로잡았다.
역주14 左驂迫 : 迫은 兵車가 密集하자 道路가 좁아져서 왼쪽 驂馬가 걸리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것이다. 〈楊注〉
역주15 以枚數闔 : 以枚數闔은 문짝에 박힌 젖꼭지 모양의 못대가리 수를 센 것이다. 杜氏는 여기의 枚는 말채찍으로 해석하고, 21년 傳에 보이는 枚數에는 枚를 門板으로 해석하여, 동일한 枚에 해석을 달리하였다. 譯者는 杜注를 따르지 않고 기타 註釋家들의 설을 취해 鐘乳의 뜻으로 번역하였다. 〈楊注〉에 “〈考工記鳧氏〉에 ‘鐘帶謂之篆篆間謂之枚’의 ‘枚’를 鄭衆이 ‘鐘乳’라고 하였고, 焦循의 〈左傳補疏〉에 ‘문짝 위에 쇠못을 배열해 박은 것이 마치 鐘乳 같기 때문에 枚라고 한 것이다. 以枚數闔은 數闔之枚이다.’고 하였다. 후세에 城門이나 宮門에는 대부분 銅으로 鐘乳를 만들어 박는다.”고 하였다.
역주16 欲專權 : 鄭나라는 襄公 11년 이후로 금년까지 8년 동안 晉나라에 忠實히 服從하였다.
역주17 收師而退 : 收師而退를 林氏는 子庚이 하는 것으로 註釋하였으나, 譯者는 이를 따르지 않고 楚王이 하는 것으로 飜譯하였다.
역주18 牧[收] : 저본에는 ‘牧’으로 되어 있으나, 《四庫全書左傳杜林合注》本에 의거하여 ‘收’로 바로잡았다.
역주19 君亦無辱 : 임금이 직접 攻伐하지 않았기 때문에 恥辱이 미칠 일이 없다는 말이다.
역주20 完守入保 : 完守는 守備를 더 强化하는 것이고, 入保는 城堡로 들어가 固守하는 것이라고 한 〈楊注〉의 說을 取해 번역하였다.
역주21 役徒幾盡 : 役徒는 軍中의 雜役夫이다.
역주22 八風 : 八風은 隱公 5년 傳의 杜注와 附注를 參考할 것.
역주23 多死聲 楚必無功 : 옛사람은 迷信하여 樂律로써 出兵의 吉凶을 점쳤다. 〈楊注〉
역주24 天道多在西北……必無功 : 歲星이 亥(西北)에 있고 달도 亥月인데 南方의 楚나라가 西北方에 있는 鄭나라를 侵犯한 것은 바로 天時를 犯한 것이라는 말이다.

춘추좌씨전(4) 책은 2019.05.2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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