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春秋左氏傳(7)

춘추좌씨전(7)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춘추좌씨전(7)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經]二十有九年春하야 居于鄆注+以乾侯至 不得見晉侯故하다
29년 봄에 소공昭公건후乾侯에서 돌아와서 에 거처하였다.注+건후乾侯에서 돌아왔다는 것으로써 종묘宗廟한 것은 진후晉侯를 만나보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經]齊侯使高張來唁公注+唁公至晉不見受 高張 高偃子 하다
제후齊侯고장高張을 보내와서 소공昭公위문慰問[唁]하였다.注+소공昭公나라에 갔으나 받아들임을 받지 못한 것을 위문한 것이다. 고장高張고언高偃의 아들이다.
[經]公如晉하야 次于乾侯注+復不見受 往乾侯하다
소공昭公나라로 가서 건후乾侯에 머물렀다.注+다시 받아들임을 받지 못하였기 때문에 건후乾侯로 간 것이다.
[經]夏四月庚子 叔詣卒注+無傳하다
여름 4월 경자일庚子日숙예叔詣하였다.注+이 없다.
[經]秋七月이라
가을 7월이다.
[經]冬十月 鄆潰注+無傳 民逃其上曰潰 潰散叛公하다
겨울 10월에 운인鄆人이 흩어져 도망하였다.注+이 없다. 백성이 그 윗사람에게서 도망하는 것을 ‘’라 하니, 백성이 흩어져 도망하여 소공昭公배반背叛한 것이다.
[傳]二十九年春 公至自乾侯하야 處于鄆하니 齊侯使高張來唁公호대 稱主君注+比公於大夫 [附注] 林曰 大夫稱主君하니
29년 봄에 소공昭公건후乾侯에서 돌아와서 거처居處하니 제후齊侯고장高張을 보내와서 소공昭公위문慰問하면서 소공을 ‘주군主君’으로 칭하였다.注+소공昭公대부大夫와 같이 여긴 것이다. [부주]林: 대부大夫주군主君으로 칭한다.
子家子曰 齊卑君矣 君祗辱焉注+言往事齊 適取辱이리라 公如乾侯注+爲齊所卑 故復適晉冀見恤하다
자가자子家子가 말하기를 “나라가 임금님을 멸시蔑視[卑]하는 것이니 임금님께서는 단지 치욕恥辱만을 취하게 될 뿐입니다.注+가서 나라를 섬기는 것은 단지 치욕만을 취하게 될 뿐이라는 말이다. ”라고 하니, 소공이 건후乾侯로 갔다.注+나라의 천시賤視를 당하였기 때문에 다시 나라로 가서 구휼救恤해주기를 바란 것이다.
[傳]三月己卯 京師殺召伯盈尹氏固及原伯魯之子注+皆子朝黨也 稱伯魯子 하다
3월 기묘일己卯日경사京師소백영召伯盈윤씨고尹氏固원백로原伯魯의 아들을 죽였다.注+이들은 모두 자조子朝이다. 백로伯魯의 아들이라고 칭한 것은 끝내 학문을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尹固之復也注+二十六年 尹固與子朝俱奔楚而道還 有婦人遇之周郊하야 尤之注+[附注] 林曰 尤怪尹固責之曰 處則勸人爲禍하고 行則數日而反注+[附注] 林曰 尹固處周則勸子朝爲禍亂 出奔則數日而亟反 하니 是夫也 其過三歲乎注+[附注] 林曰 是夫 賤尹固之稱
윤고尹固가 〈망명亡命에서〉 돌아올 때에注+26년에 윤고尹固자조子朝와 함께 나라로 도망가다가 중도에서 돌아왔다. 어떤 부인婦人이 그를 나라 국도國都교외郊外에서 만나 꾸짖기를注+[부주]林: 윤고尹固를 매우 이상하게 여겨 꾸짖은 것이다. 국내國內에 있을 때는 사람(子朝)을 권하여 화란禍亂을 일으키게 하고, 국외國外로 도망가서는 며칠이 되지 않아 다시 돌아오니注+[부주]林: 윤고尹固나라에 있을 때에는 자조子朝를 권하여 화란禍亂을 일으키게 하고, 출분出奔하여서는 며칠도 되지 않아 이내 돌아왔다는 말이다. , 이런 사내가 어찌 3년을 넘길 수 있겠는가?注+[부주]林: 시부是夫윤고尹固하게 여긴 호칭呼稱이다. ”라고 하였다.
[傳]夏五月庚寅 王子趙車入于鄻以叛하니 陰不佞敗之注+趙車 子朝之餘也 見王殺伯盈等 故叛 鄻 周邑 하다
여름 5월 경인일庚寅日왕자王子조차趙車으로 들어가서 반란叛亂을 일으키니, 음불녕陰不佞이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패배敗北시켰다.注+조차趙車자조子朝여당餘黨이다. 주왕周王백영伯盈 등을 죽이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나라 이다.
[傳]平子每歲賈馬注+賈 買也하고 具從者之衣屨하야 而歸之于乾侯러니 公執歸馬者하고 賣之注+賣其馬한대 乃不歸馬注+[附注] 林曰 平子乃絶 不歸馬 하다
계평자季平子가 해마다 말을 사고注+는 사는 것이다.종자從者들의 옷과 신발을 준비[具]하여 건후乾侯로 보냈는데, 소공昭公이 말을 몰고 간 사람을 체포하고 그 말을 파니注+그 말을 판 것이다. , 이에 평자平子는 말을 보내지 않았다.注+[부주]林: 평자平子는 이에 단절斷絶하고서 말을 보내지 않았다.
衛侯來獻其乘馬하니 曰 啓服注+啓服 馬名이라 塹而死注+墮塹死也하니 公將爲之櫝注+爲作棺也하다
위후衛侯사자使者를 보내와서 그 승마乘馬(수레를 끌던 말) 계복啓服注+계복啓服은 말의 이름이다.소공昭公에게 바쳤는데, 그 말이 해자[塹]에 빠져 죽으니注+해자에 빠져 죽은 것이다. 소공은 그 말을 위해 을 마련하려 하였다.注+말을 위하여 관을 만들게 한 것이다.
子家子曰 從者病矣 請以注+[附注] 林曰 請以作棺之費 飮食從者하소서 乃以帷裹之注+禮曰 幃不棄 爲埋馬也하다
그러자 자가자子家子가 말하기를 “종자從者들이 모두 지쳤으니 이 말고기를 종자들에게 먹이소서.注+[부주]林: 을 만드는 데 드는 비용費用으로 종자從者들에게 음식飮食을 마련해주기를 청한 것이다. ”라고 하니, 소공昭公은 이에 휘장으로 그 말을 싸서 묻게 하였다.注+예기禮記》 〈단궁檀弓〉에 “해진 휘장을 버리지 않는 것은 죽은 말을 싸기 위함이다.”고 하였다.
公賜公衍羔裘하야 使獻龍輔於齊侯注+龍輔 玉名러니 遂入羔裘注+[附注] 林曰 公衍遂以羔裘繼入爲獻한대 齊侯喜하야 與之陽穀注+陽穀 齊邑하다
소공昭公공연公衍에게 고구羔裘하사下賜하고서 그에게 나라로 가서 제후齊侯에게 용보龍輔를 바치게 하였는데注+용보龍輔의 이름이다., 공연公衍이 드디어 고구羔裘까지 바치니注+[부주]林: 공연公衍이 드디어 고구羔裘를 가지고 들어가서 바친 것이다. , 제후齊侯는 기뻐하여 그에게 양곡陽穀봉지封地로 주었다.注+양곡陽穀나라 이다.
公衍公爲之生也注+[附注] 林曰 公衍公爲 皆昭公子 其母偕出注+出之産舍하다
공연公衍공위公爲출생出生할 때注+[부주]林: 공연公衍공위公爲는 모두 소공昭公의 아들이다. 그 어머니들이 함께 산실産室로 나가 있었다.注+산사産舍로 나간 것이다.
公衍先生이어늘 公爲之母曰 相與偕出하니 請相與偕告注+留公衍母 使待己共白公하노라
공연公衍이 먼저 출생出生하자, 공위公爲의 어머니가 “함께 나왔으니 〈내가 출산出産한 뒤에〉 함께 〈가서 임금님께〉 합시다.注+공연公衍의 어머니가 〈출산出産보고報告하려는 것을〉 만류挽留하여 자기가 출산하기를 기다려 함께 에게 아뢰게 한 것이다. ”라고 하였다.
三日 公爲生커늘 其母先以告하니
3일 뒤에 공위公爲출생出生하자, 공위公爲의 어머니는 먼저 가서 소공昭公에게 하였다.
公爲爲兄注+[附注] 林曰 先告 故公爲爲兄 而公衍反爲弟하다
그러므로 공위公爲이 되었다.注+[부주]林: 먼저 하였기 때문에 공위公爲이 되고, 공연公衍이 도리어 아우가 된 것이다.
公私喜於陽穀하고 而思於魯注+[附注] 林曰 昭公私以得陽穀爲喜 且追思失魯之禍曰 務人爲此禍也注+務人 公爲也 始與公若謀逐季氏
소공昭公은 마음속으로 〈공연公衍이〉 양곡陽穀을 얻어 온 것을 기뻐하고, 나라에 있을 때의 일을 생각하며注+[부주]林: 소공昭公은 마음속으로 양곡陽穀을 얻은 것을 기뻐하면서 나라를 잃은 를 생각한 것이다. 말하기를 “이 무인務人이 만든 것이다.注+무인務人공위公爲이다. 당초에 공약公若과 함께 계씨季氏축출逐黜모의謀議하였다.
且後生而爲兄하니 其誣也久矣라하고 乃黜之하고 而以公衍爲太子하다
그리고 또 뒤에 출생하였으면서 이 되었으니 나를 속인 지가 오래이다.” 하고서 이에 공위公爲폐출廢黜하고 공연公衍태자太子로 삼았다.
[傳]秋 龍見于絳郊注+絳 晉國都하니 魏獻子問於蔡墨注+蔡墨 晉太史曰 吾聞之컨대 蟲莫知於龍이라
가을에 나라 강도絳都교외郊外출현出現하니注+나라 국도國都이다., 위헌자魏獻子채묵蔡墨에게注+채묵蔡墨나라 태사太史이다. “내가 듣건대 충류蟲類 중에는 보다 지혜로운 짐승이 없다고 한다.
以其不生得也 謂之知라하니 信乎 對曰 人實不知 非龍實知注+言龍無知 乃人不知之耳니라
용은 산 채로 잡을 수 없기 때문에 용을 지혜롭다고 하니, 참으로 그러한가?”라고 묻자, 채묵蔡墨이 대답하기를 “사람들이 실로 지혜롭지 못해서이지 용이 실로 지혜로워가 아닙니다.注+무지無知하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지 못할 뿐이라는 말이다.
古者畜龍이라
옛날에는 집에서 용을 길렀습니다.
故國有豢龍氏하고 有御龍氏注+豢御 養也니라 獻子曰 是二氏者 吾亦聞之어니와 而不知其故로라
그러므로 나라 안에 환룡씨豢龍氏가 있고 어룡씨御龍氏가 있습니다.注+는 기름이다. ”고 하니, 헌자獻子가 말하기를 “이 두 가 있다는 것은 나도 들었지만 그 까닭은 알지 못하였다.
是何謂也
이들은 어째서 를 ‘환룡豢龍어룡御龍’이라 하였는가?”라고 물었다.
對曰 昔有飂叔安注+飂 古國也 叔安 其君名 有裔子하니 曰董父注+裔 遠也 玄孫之後爲裔 實甚好龍하야 能求其耆欲以飮하니 龍多歸之하니라
채묵蔡墨이 대답하기를 “옛날에 나라의 임금 숙안叔安에게注+는 옛날의 나라이고, 숙안叔安은 그 나라 임금의 이름이다.동보董父라는注+이니, 현손玄孫후손後孫라 한다. 후예後裔가 있었는데, 실로 을 매우 좋아하여, 용이 좋아하는 먹이가 무엇인지를 연구硏求하여 그 먹이를 먹여 기르니 많은 용들이 그의 집으로 몰려왔습니다.
乃擾畜龍하야 以服事帝舜하니 帝賜之姓曰董注+擾 順也 [附注] 林曰 順龍所欲而畜養之이라하고 氏曰豢龍注+豢龍 官名 官有世功 則以官氏이라하야 封諸鬷川하니 鬷夷氏其後也注+鬷水上夷 皆董姓
동보董父는 이에 용을 길들여 기르는 일로 제순帝舜을 섬기니, 제순帝舜은 그에게 ‘’이란 注+(따름)이다. [부주]林: 이 원하는 바에 따라 먹여 기른 것이다. 환룡豢龍’이란 를 내리고서注+환룡豢龍관명官名이다. 관직官職을 맡아 대대로 이 있으면 그 관명官名으로 를 삼는다. 종천鬷川하였으니, 종이씨鬷夷氏가 그 후손後孫입니다.注+종수鬷水가에 사는 이족夷族은 모두 동성董姓이다.
故帝舜氏世有畜龍하니라
그러므로 제순씨帝舜氏 이후로는 대대로 을 길들여 기르는 관원官員이 있었습니다.
及有夏孔甲하야 擾于有帝注+孔甲 少康之後九世君也 其德能順於天하니 帝賜之乘龍하니 河漢各二注+合爲四 [附注] 林曰 天帝賜孔甲以四龍 各有雌雄하니라
나라 공갑孔甲에 이르러 공갑孔甲상제上帝께 순종하니注+공갑孔甲소강少康후손後孫으로 나라의 제9군왕君王이다. 그 천명天命순응順應하였다는 말이다. , 상제上帝가 그에게 수레에 메울 네 마리의 용을 하사下賜하였으니 황하黃河한수漢水의 용 두 마리씩으로注+모두 네 마리이다. [부주]林: 천제天帝공갑孔甲에게 네 마리의 하사下賜한 것이다. 각각 암수였습니다.
孔甲不能하야 而未獲豢龍氏注+[附注] 林曰 未得豢龍之官 하니라
공갑孔甲은 이 용을 잘 먹일 수가 없어서 환룡씨豢龍氏의 후손을 찾았으나 찾지 못하였습니다.注+[부주]林: 을 기를 관원官員을 얻지 못하였다는 말이다.
有陶唐氏旣衰 其後有劉累注+陶唐 堯所治地 [附注] 林曰 劉累 堯之子孫하야 學擾龍于豢龍氏하야 以事孔甲하야 能飮食之하니 夏后嘉之하야 賜氏曰御龍注+夏后 孔甲이라하고 以更豕韋之後注+更 代也 以劉累代彭姓之豕韋 累尋遷魯縣 豕韋復國 至商而滅 累之後世復承其國爲豕韋氏 在襄二十四年하니라
도당씨陶唐氏쇠락衰落한 뒤에 그 후손에 유루劉累란 자가 있었는데注+도당陶唐가 다스리던 땅이다. [부주]林: 유루劉累자손子孫이다. , 용을 길들여 기르는 기술을 환룡씨豢龍氏에게 배워서 공갑孔甲을 섬겨 용을 잘 먹여 기르니 하후夏后(孔甲)는 이를 가상히 여겨 ‘어룡御龍’이란 를 내리고서注+하후夏后공갑孔甲이다.시위豕韋후손後孫를 대신하게 하였습니다.注+이다. 유루劉累에게 팽성彭姓시위국豕韋國을 대신 맡게 한 것이다. 오래지 않아 유루劉累노현魯縣으로 옮겨가자, 시위豕韋가 다시 나라를 회복하였는데, 나라 때에 이르러 멸망하니 유루劉累의 후손이 다시 그 나라를 이어받아 시위씨豕韋氏가 된 것이 양공襄公 24년에 보인다.
龍一雌死커늘 潛醢以食夏后注+潛 藏也 藏以爲醢 明龍不知하니 夏后饗之하고 旣而使求之注+求致龍也한대
얼마 뒤에 암룡 한 마리가 죽자, 유루劉累는 은밀히 용의 고기로 젓을 담궈 하후夏后에게 먹였는데注+은 숨김[藏]이다. 〈용이 죽은 것을〉 숨기고서 그 용의 고기로 육장肉醬을 담근 것이다. 이 지혜롭지 않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 , 하후夏后는 이 젓갈을 먹어보고는 이윽고 유루劉累에게 사람을 보내어 다시 젓갈을 요구하였습니다.注+의 고기로 담근 젓갈을 요구한 것이다.
懼而遷于魯縣注+不能致龍 故懼 遷魯縣 自貶退也 魯縣 今魯陽也하니 范氏其後也注+晉范氏也
그러자 유루劉累는 두려워서 노현魯縣으로 옮겨갔으니注+의 젓갈이 다하여 더 이상 바칠 수 없기 때문에 〈죄를 받을까〉 두려워 스스로 물러나 노현魯縣으로 옮겨간 것이다. 노현魯縣은 지금의 노양魯陽이다. , 범씨范氏가 바로 그 후손입니다.注+나라의 범씨范氏이다. ”라고 하였다.
獻子曰 今何故無之 對曰 夫物 物有其官注+[附注] 朱曰 大凡天下之物 每物各有其官以主掌之 하니 官修其方注+方 法術 朝夕思之니라
헌자獻子가 “지금은 어째서 용이 없는가?”라고 묻자, 채묵蔡墨이 대답하기를 “에는 마다 그 을 맡아서 다스리는 관원官員이 있으니注+[부주]朱: 대체로 천하天下에는 마다 각각 맡은 관원이 있어서 그 일을 주관한다., 관원官員은 그 물을 다루는 방법을 수행修行하기를注+법술法術이다. 밤낮으로 항상 생각해야 합니다.
一日失職이면 則死及之注+失職有罪하고 失官不食注+不食祿이니라
하루라도 그 직분職分을 다하지 않으면 죽음이 이르고注+직분職分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면 죄벌罪罰이 있다는 말이다. , 관원官員으로 직분職分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면 祿을 먹지 못합니다.注+祿을 먹지 못한다는 말이다.
注+宿 猶安也이면 注+設水官修則龍至 어니와 注+泯 滅也 坁 止也 [附注] 林曰 若泯滅棄絶其官守 則其物乃坁止伏匿하야 鬱湮不育注+鬱 滯也 湮 塞也 育 生也이라
관원이 〈대대로 이어가며〉 그 업무業務를 오랫동안[宿] 수행하면注+宿과 같다. 이 이르지만注+수관水官설치設置하여 그 직분職分을 잘 수행修行하면 이 이른다는 말이다. 만약 업무를 폐기廢棄[泯棄]하면 그 은 잠복하여注+이고 이다. [부주]林: 만약 그 을 맡은 관원官員이 그 직분職分을 버리면 그 은 〈출현出現을 멈추고서〉 잠복해 숨는다는 말이다. 침체되고 막혀 번식繁殖[育]하지 못합니다.注+침체沈滯이고, 옹색壅塞이고, 생산生産이다.
故有五行之官하니 是謂五官이라
그러므로 오행五行을 맡아 다스리는 관원이 있었으니 이를 오관五官이라 합니다.
實列受氏姓注+[附注] 林曰 實竝列而受賜氏賜姓之寵하야 封爲上公注+爵上公 [附注] 林曰 當其生則封以上公之爵하고 祀爲貴神注+[附注] 林曰 及其死則享以貴神之祀하야 社稷五祀 是尊是奉注+五官之君長能修其業者 死皆配食於五行之神 爲王者所尊奉하나니라
오관五官은 실로 나란히 을 받아注+[부주]林: 실로 〈조정朝廷에〉 나란히 서서 하사下賜하고 하사下賜하는 은총恩寵을 받았다는 말이다. 생전生前에는 봉작封爵을 받아 상공上公이 되고注+상공上公관작官爵을 받은 것이다. [부주]林: 그 생전에는 상공上公관작官爵해졌다는 말이다. 사후死後에는 제사를 받는 존귀尊貴이 되어注+[부주]林: 그 사후死後에는 존귀尊貴(社稷과 오사五祀)의 제사祭祀배식配食한다는 말이다. , 사직社稷오사五祀의 제사에 배향配享되어 왕자王者존봉尊奉을 받았습니다.注+자신의 일을 잘 수행한 오관五官의 군장은 죽으면 모두 오행五行의 신의 제사에 배식配食하여 왕자王者존봉尊奉을 받는 대상이 된 것이다.
木正曰句芒注+正 官長也 取木生句曲而有芒角也 其祀重焉이오 火正曰祝融注+祝融 明貌 其祀犂焉 이오 金正曰蓐收注+ 其祀該焉 水正曰玄冥注+水陰而幽冥 其祀修及熙焉 이오 土正曰后土注+土爲群物主 故稱后也 其祀句龍焉 在家則祀中霤 在野則爲社
나무를 맡은 관장官長[木正]을 구망句芒이라 하고注+관장官長이다. 나무가 처음 싹이 나올 때 갈고리처럼 구부정하고 뾰족한 잎이 있으므로 〈그 모양을 취하여 목정木正구망句芒이라 한 것이다.〉 이때(봄)에 에게 제사祭祀한다. , 불을 맡은 관장[火正]을 축융祝融이라 하고注+축융祝融은 밝은 모양이다. 〈그 모양을 취하여 화정火正축융祝融이라 한 것이다.〉 이때(여름)에 에게 제사한다. , 쇠를 맡은 관장[金正]을 욕수蓐收라 하고注+가을이 되면 만물萬物최욕摧蓐(摧折)하여 수렴收斂할 수 있으므로 〈그 뜻을 취하여 금정金正욕수蓐收라 한 것이다.〉 이때(가을)에 에게 제사한다. , 물을 맡은 관장[水正]을 현명玄冥이라 하고注+음한陰寒하고 어두컴컴하므로 〈그 뜻을 취하여 수정水正현명玄冥이라 한 것이다.〉 이때(겨울)에 에게 제사한다. , 흙을 맡은 관장[土正]을 후토后土라 합니다.注+는 모든 생물生物의 주인이기 때문에 ‘’라고 칭한 것이다. 이때(季夏)에 구룡句龍에게 제사한다. 그 제사를 집에서 지낼 경우에는 중류中霤에 지내고 들에서 지낼 경우에는 에 지낸다.
水物也 水官棄矣 故龍不生得注+棄 廢也이니라
수중水中생물生物이니 물을 맡은 관장이 그 직분을 폐기廢棄하였기 때문에 용을 산 채로 잡을 수 없게 된 것입니다.注+(職務를 제대로 수행修行하지 않음)이다.
不然이면 周易有之注+言若不爾 周易無緣有龍하니
그렇지 않다면 〈어찌〉 《주역周易》에 다음과 같은 말들이 있었겠습니까?注+만약 그렇지 않다면 《주역周易》에 을 말했을 까닭이 없다는 말이다.
在乾☰☰注+乾下乾上乾之姤☰☴注+巽下乾上姤 乾初九變曰 潛龍勿用注+乾初九爻辭이라하고 其同人☰☲注+離下乾上同人 乾九二變曰 見龍在田注+乾九二爻辭이라하고
건괘乾卦注+하괘下卦이고 상괘上卦인 것이 건괘乾卦이다. 초구初九[姤]에注+하괘下卦이고 상괘上卦인 것이 구괘姤卦이니, 건괘乾卦초구初九가 변한 것이다. 잠룡물용潛龍勿用(잠복해 있는 용이니 쓰지 말라)注+건괘乾卦초구初九효사爻辭이다. ’이라 하고, 그 구이九二[同人]에注+하괘下卦이고 상괘上卦인 것이 동인괘同人卦이니, 건괘乾卦구이九二가 변한 것이다. 현룡재전見龍在田(出現한 용이 지상地上(田)에 있음)注+건괘乾卦구이九二효사爻辭이다. ’이라 하고,
其大有☲☰注+乾下離上大有 乾九五變曰 飛龍在天注+乾九五爻辭이라하고 其夬☱☰注+乾下兌上夬 乾上九變曰 亢龍有悔注+乾上九爻辭라하고
구오九五[大有]에注+하괘下卦이고 상괘上卦인 것이 대유괘大有卦이니, 건괘乾卦구오九五가 변한 것이다. 비룡재천飛龍在天(나는 용이 하늘에 있음)注+건괘乾卦구오九五효사爻辭이다. ’이라 하고, 그 상구上九[夬]에注+하괘下卦이고 상괘上卦인 것이 쾌괘夬卦이니, 건괘乾卦상구上九가 변한 것이다. 항룡유회亢龍有悔(끝까지 올라간 용이니 후회後悔가 있으리라)注+건괘乾卦상구上九효사爻辭이다. ’라 하고,
其坤☷☷注+坤下坤上坤 乾六爻皆變曰 見群龍無首 吉注+乾用九爻辭이라하고 坤之剝☶☷注+坤下艮上剝 坤上六變曰 龍戰于野注+坤上六爻辭라하니라
용구用九[坤]에注+하괘下卦이고 상괘上卦인 것이 곤괘坤卦이니, 건괘乾卦육효六爻가 모두 변한 것이다. 견군룡見群龍무수無首(뭇 용을 보되 머리가 없으면 길하다)注+건괘乾卦용구用九효사爻辭이다. ’이라 하고, 곤괘坤卦상육上六[剝]에注+하괘下卦이고 상괘上卦인 것이 박괘剝卦이니, 곤괘坤卦상육上六이 변한 것이다. 용전우야龍戰于野(용이 들에서 싸운다)注+곤괘坤卦상육上六효사爻辭이다. ’라고 하였으니,
若不朝夕이면 誰能物之注+物 謂上六卦所稱龍各不同也 今說易者 皆以龍喩陽氣 如史墨之言 則爲皆是眞龍리오
만약 아침저녁으로 용이 출현出現하지 않았다면 누가 그 물상物象을 이렇게 자세히 묘사描寫할 수 있었겠습니까?注+은 위 여섯 이 각각 같지 않음을 말한 것이다. 오늘날 《주역周易》을 해설하는 자들은 모두 양기陽氣에 비유하지만 사묵史墨의 말에 따르면 이 들은 모두 진룡眞龍이다. ”라고 하였다.
獻子曰 社稷五祀 注+問五官之長皆是誰 對曰
헌자獻子가 다시 “사직社稷오사五祀는 어느 제왕帝王 때의 오관五官인가?注+오관五官이 모두 누구냐고 물은 것이다.”라고 묻자, 채묵蔡墨이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少皥氏有四叔注+少皥 金天氏 [附注] 林曰 子孫有四人하니 曰重 曰該 曰修 曰熙 實能金木及水注+能治其官하니 使重爲句芒注+木正하고 該爲蓐收注+金正하고 修及熙爲玄冥注+二子相代爲水正하니
소호씨少皥氏의 자손[叔]에 라는 네 사람이 있었는데注+소호少皥금천씨金天氏이다. [부주]林: 자손子孫 네 사람이 있었다는 말이다. , 실로 쇠와 나무와 물을 잘 다루니注+그 맡은 일을 잘 다스렸다는 말이다. , 구망句芒으로注+나무를 맡은 관장官長이다. , 욕수蓐收注+쇠를 맡은 관장官長이다. , 현명玄冥으로 삼았습니다.注+두 사람이 서로 번갈아가며 물을 관리管理하는 관장官長이 된 것이다.
世不失職하야 하니 此其三祀也注+窮桑 少皥之號也 四子能治其官 使不失職 濟成少皥之功 死皆爲民所祀 窮桑地在魯北 顓頊氏有子하니 曰犂 爲祝融注+犂爲火正하고 共工氏有子하니 曰句龍이라 爲后土注+共工在大皥後神農前 以水名官者 其子句龍能平水土 故死而見祀하니 此其二祀也注+[附注] 林曰 二子死 皆爲民所祀 此
이들은 대대로 그 직분을 잘 지켜 마침내 궁상窮桑성공成功을 도왔으니, 이들이 오사五祀 중의 삼사三祀이고注+궁상窮桑소호少皥이다. 네 사람은 맡은 관직官職을 잘 수행修行하여 직무職務를 잘못되지 않게 해서 소호少皥가 공을 이루도록 도왔으므로 죽은 뒤에 모두 백성들의 제사를 받게 되었다. 궁상窮桑의 땅은 나라 북쪽에 있었다. , 전욱씨顓頊氏에게 라는 아들이 있었는데 축융祝融(官名)이 되고注+가 불을 맡은 관장官長이 된 것이다., 공공씨共工氏에게 구룡句龍이란 아들이 있는데 후토后土(官名)가 되었으니注+공공共工대호大皥의 뒤와 신농神農의 앞에 있었는데, 로써 관직官職의 이름을 삼았다. 그 아들 구룡句龍수토水土평정平定하였기 때문에 죽은 뒤에 제사를 받았다. , 이들이 오사五祀 중의 이사二祀입니다.注+[부주]林: 두 사람은 죽은 뒤에 모두 백성들의 제사를 받았으니, 이들이 화토火土의 두 제사이다.
后土爲社注+方答社稷 故明言爲社
〈살아서〉 후토后土의 〈관직官職을 맡아 그 직무를 잘 수행한 사람은 죽어서〉 (土地神)가 되고注+채묵蔡墨이 바야흐로 사직社稷에 대해 대답하였기 때문에 〈후토后土가〉 가 되었다고 분명히 말한 것이다. , 〈죽어서〉 (穀神)이 된 사람은 〈살았을 때 농정農政을 맡아 그 직무를 잘 수행한〉 전정田正(農政을 맡은 관장官長)입니다.注+씨앗을 뿌려 가꾸는 일을 맡은 것이다.
田正也注+掌播殖也 有烈山氏之子曰柱 爲稷注+烈山氏 神農世諸侯하니 自夏以上祀之注+祀柱하고 周棄亦爲稷注+棄 周之始祖 能播百穀 湯旣勝夏 廢柱而以棄代之하니 自商以來祀之注+傳言蔡墨之博物하니라
열산씨烈山氏에게 라는 아들이 있었는데, 〈(農政을 맡은 관장官長)이 되어 직무職務를 잘 수행하였으므로 죽은 뒤에 그를〉 (穀神)으로 삼아注+열산씨烈山氏신농씨神農氏 때의 제후諸侯이다. , 나라 이전에는 이에게 제사하였고注+에게 제사한 것이다. , 나라의 시조始祖도 〈(農政을 맡은 관장)이 되어 그 직무를 잘 수행하였으므로 죽은 뒤에 그를〉 직신稷神으로 삼아注+나라 시조始祖백곡百穀의 씨앗을 뿌렸다. 탕왕湯王나라를 이긴 뒤에 폐출廢黜하고 을 대신 직신稷神으로 삼았다. , 나라 이후로는 그에게 제사하였습니다.注+전문傳文채묵蔡墨박물博物(사물에 대한 지식이 해박該博함)을 말한 것이다.
[傳]冬 晉趙鞅荀寅帥師城汝濱注+趙鞅 趙武孫也 荀寅 中荀吳之子 汝濱 晉所取陸渾地하고 하야 以鑄刑鼎注+令晉國各出功力 共鼓石爲鐵 計令一鼓而足 因軍役而爲之 故言遂 [附注] 林曰 鼓 猶也 以橐扇鞴 謂之鼓 此鼓石爲鐵也하야注+[附注] 林曰 宣子 卽范匄 曾作刑書 今取而著之於鼎하다
겨울에 나라 조앙趙鞅(趙簡子)과 순인荀寅(中行文子)이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여수汝水가에 성을 쌓고서注+조앙趙鞅조무趙武의 손자이고, 순인荀寅중행순오中行荀吳의 아들이다. 여빈汝濱나라가 취한 육혼陸渾의 땅이다. , 드디어 나라 국도國都의 백성들에게 1(480근)씩의 징수徵收하여 형정刑鼎주조鑄造하고注+나라에 을 내려 집집마다 각각 공력功力(勞動力)을 내어 함께 광석鑛石제련製鍊하여 총계總計가 1에 차게 한 것이다. 군역軍役으로 인해 그 일을 하였기 때문에 ‘’라고 말한 것이다. [부주]林: (풀무)와 같다. 풀무로 부치는 것을 ‘’라 하니, 이것이 ‘고석위철鼓石爲鐵(鑛石을 용광로鎔鑛爐에 넣고 풀무로 부쳐 을 만듦이다)’이다. 범선자范宣子제정制定형서刑書를 새겨 넣었다.注+[부주]林: 선자宣子는 바로 범개范匄이다. 일찍 형서刑書를 지었는데, 지금 그 형서刑書를 가져다가 에 드러낸 것이다.
仲尼曰 晉其亡乎ᄂ저
중니仲尼가 이에 대해 말하기를 “나라는 아마도 망할 것이다.
失其度矣注+[附注] 朱曰 失其爲國之法度 로다
그 법도를 상실喪失하였다.注+[부주]朱: 나라를 다스리는 법도法度를 잃었다는 말이다.
夫晉國將守唐叔之所受法度하야 以經緯其民注+[附注] 林曰 唐叔 晉始封君 言將守唐叔所受於周之法度 하고 卿大夫以序守之注+序 位次也라야 民是以能尊其貴注+[附注] 林曰 賤而爲民者 畏威懷德 是以能尊奉其所尊하고 貴是以能守其業이라
나라는 응당[將]당숙唐叔이 전한 법도法度를 지켜 그 백성을 다스리고注+[부주]林: 당숙唐叔나라의 시봉군始封君이다. 당숙唐叔주왕周王에게 받은 법도法度를 지켜 백성에게 사용하여 포백布帛경선經線위선緯線이 있는 것과 같이 해야 한다는 말이다. 경대부卿大夫위차位次에 따라 그 법도를 지키게 하면注+위차位次이다. 백성은 이로 인해 귀인貴人존대尊待하고注+[부주]林: 한 백성들이 위엄을 두려워하고 을 생각하기 때문에 그 존귀한 사람을 존경해 받든다는 말이다. 귀인貴人은 이로 인해 그 가업家業을 지킬 수 있다.
貴賤不愆 所謂度也 文公是以作執秩之官注+[附注] 林曰 作執秩主爵之官하고 爲被廬之法注+僖二十七年 하야 以爲盟主어늘 今棄是度也하고 而爲刑鼎하니 注+[附注] 林曰 民知爭端皆在鼎矣 何以尊貴注+棄禮徵書 故不尊貴 貴何業之守注+民不奉上 則上失業리오
귀천貴賤이 모두에게 허물이 없는 것이 이른바 ‘법도法度’이니, 문공文公이 이로 인해 관직官職위차位次관장管掌하는 관직官職설치設置하고注+[부주]林: 관작官爵의 등급과 봉작封爵주관主管하는 관직官職을 만든 것이다. 피려법被廬法제정制定하여注+희공僖公 27년에 문공文公피려被廬에서 군사훈련軍事訓鍊[蒐]을 실시하고서 당숙唐叔수명修明하였다. 맹주盟主가 되었는데, 이제 이 법도法度를 버리고서 형정刑鼎주조鑄造하였으니, 백성들은 형정刑政만을 살필[在] 것이니注+[부주]林: 백성들이 쟁송爭訟하는 일에 대한 이 모두 에 새긴 형서刑書에 있다는 것을 안다는 말이다. 어찌 귀인貴人을 존경할 것이며注+를 버리고 형서刑書만을 믿기 때문에 귀인貴人을 존경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귀인貴人이 어찌 가업家業을 지킬 수 있겠는가?注+백성들이 윗사람을 존경해 받들지 않으면 윗사람은 가업家業상실喪失한다는 말이다.
貴賤無序 何以爲國이리오
귀천貴賤의 차별이 없으면 무엇으로 나라를 다스리겠는가?
且夫宣子之刑 夷之蒐也 晉國之亂制也注+范宣子所用刑 乃夷蒐之法也 夷蒐在文六年 一蒐而三易中軍帥 賈季箕鄭之徒遂作亂 故曰亂制 若之何以爲法이리오
그리고 또 선자宣子형서刑書에서 군사훈련軍事訓鍊할 때 제정한 것으로 나라를 어지럽힌 제도制度이니注+범선자范宣子가 만든 형서刑書는 바로 에게 군사훈련軍事訓鍊할 때 만든 법이다. 에서 군사훈련軍事訓鍊한 것은 문공文公 6년에 있었다. 한 차례의 훈련에서 중군수中軍帥를 세 번 바꾸어, 가계賈季기정箕鄭 등으로 하여금 드디어 반란叛亂을 일으키게 하였기 때문에 ‘난제亂制’라 한 것이다. 어찌 그것을 으로 삼을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蔡史墨曰 范氏中行氏其亡乎注+蔡史墨 卽蔡墨ᄂ저
채사묵蔡史墨이 말하기를 “범씨范氏중행씨中行氏는 아마도 할 것이다.注+채사묵蔡史墨은 바로 채묵蔡墨이다.
中行寅爲下卿而干上令注+[附注] 林曰 干犯上人之權令하고 擅作刑器하야 以爲國法하니 是法姦也注+[附注] 林曰 是以奸邪爲可法也 어늘 注+范宣子刑書 中旣廢矣 今復興之 是成其咎 [附注] 林曰 今復興之 是加范氏 로다
중행인中行寅하경下卿으로서 상사上司의 명을 범하고서注+[부주]林: 윗사람의 권령權令을 범한 것이다. 마음대로 형기刑器를 만들어 이를 국법國法으로 삼았으니, 바로 간사奸邪으로 삼은 것인데注+[부주]林: 이것이 간사奸邪으로 삼은 것이다. 〈그러므로 간사奸邪가 법이 될 만한 것이다.〉 , 또 범씨范氏의 법을 다시 시행施行하여 범씨范氏를 망하게 하였다.注+범선자范宣子형서刑書는 중간에 이미 폐기廢棄되었는데 지금 다시 일으켰으니, 이는 범씨范氏[咎]를 조성助成한 것이다. [부주]林: 지금 그 법을 다시 일으켰으니, 이것이 바로 범씨范氏의 〈죄악罪惡을〉 증가增加시켜 범씨范氏교역交易하여 신속迅速하게 한 것이다.
其及趙氏注+[附注] 林曰 禍必及於趙氏 리니 趙孟與焉注+[附注] 林曰 趙孟卽趙鞅 亦與於鑄鼎之役 일새니라
조씨趙氏에게도 미칠 것이니注+[부주]林: 화가 반드시 조씨趙氏에 미칠 것이라는 말이다. 조맹趙孟이 그 일에 참여하였기 때문이다.注+[부주]林: 조맹趙孟은 바로 조앙趙鞅이다. 그 또한 형정刑鼎주조鑄造하는 일에 참여하였다.
然不得已 若德이면 可以免注+鑄刑鼎 本非趙鞅意 不得已而從之 若能修德 可以免禍 爲定十三年荀寅士吉射入朝歌以叛하리라
그러나 마지못해 참여한 것이니 만약 을 닦는다면 를 면할 수 있을 것이다.注+형정刑鼎주조鑄造하는 것이 본래 조앙趙鞅의 뜻이 아니었으나 마지못해 따른 것이니, 만약 덕을 닦는다면 를 면할 수 있다는 말이다. 정공定公 13년에 순인荀寅사길석士吉射(范昭子)이 조가朝歌로 들어가서 반란叛亂을 일으킨 배경이다. ”고 하였다.
역주
역주1 至自乾侯 : 지난해에 昭公이 晉나라로 가서 乾侯에 머물렀다. 비록 晉나라의 境內로 들어갔으나, 晉侯를 만나보지 못하였기 때문에 經에 ‘至自乾侯’로 기록한 것이다. 乾侯에서 돌아온 것으로 宗廟에 告한 것은 晉侯를 만나보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正義〉
역주2 終不說(열)學 : 原伯魯의 아들의 이름을 기록하지 않은 것에 대해 杜氏는 ‘끝내 학문을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고 하였다. 原伯魯가 好學하지 않은 것은 昭公 18년 傳에 보이지만, 아비의 不好學이 그 아들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 杜注는 믿을 만하지 못하다. 〈楊注〉
역주3 食(사)之 : 〈正義〉에는 “馬肉을 從者들에게 먹이기를 청한 것이다.”고 하였다.
역주4 蔽[敝] : 저본에는 ‘蔽’로 되어 있으나, 《十三經注疏》本에 의거하여 ‘敝’로 바로잡았다.
역주5 : 사
역주6 : 사
역주7 官宿其業 : 宿은 久이니, 관원이 대대로 이어가며 그 업무를 오랫동안 修行하는 것이다. 下文의 世不失職이 바로 官宿其業의 뜻이다. 《左氏會箋》
역주8 其物乃至 : 物은 龍을 이른다. 대대로 이어가며 오랫동안 그 일을 잘 관리하면 그 官員이 관리하는 物인 龍이 이른다는 말이다.
역주9 若泯棄之 物乃坻伏 : 泯棄는 滅棄와 같은 말로 그 職分을 제대로 修行하지 않고 廢棄함이고, 坻伏은 隱伏이다. 《左氏會箋》에 “그 업무를 滅棄하고 수행하지 않으면 맡아 관리하는 物이 隱伏하고 出現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고 하였다.
역주10 秋物摧蓐而可收也 : 摧蓐는 摧折과 같다. 가을이 되면 草木의 原形이 摧折(毁傷)되기 때문에 거두어다가 器物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金正의 名稱을 蓐收라고 하였다는 말이다.
역주11 : 현
역주12 誰氏之五官也 : 上古時代에는 帝王을 ‘氏’라 하였다. 下文의 少皥氏‧烈山氏 같은 類이니, 바로 어느 帝王 때의 五官이냐고 물은 것이다. 〈楊注〉
역주13 遂濟窮桑 : 〈正義〉에 “少皥가 窮桑에 살면서 帝位에 올랐기 때문에 천하가 그를 窮桑帝라 한다.”고 하였으니, 이 네 사람의 자손이 대대로 그 職分을 修行하여 少皥가 帝王이 되도록 도왔다는 말이다.
역주14 火土之二祀 : 顓頊氏의 아들 犂가 生前에 불을 맡는 祝融이 되어 그 직무를 잘 수행하고, 共工氏의 아들 句龍이 生前에 토지를 맡는 后土가 되어 그 직무를 잘 수행하였기 때문에 죽은 뒤에 火神과 土神에 지내는 두 제사를 받는 神이 되었다는 뜻이다.
역주15 孫[行] : 저본에는 ‘孫’으로 되어 있으나, 《十三經注疏》本에 의거하여 ‘行’으로 바로잡았다.
역주16 遂賦晉國一鼓鐵 : 遂는 한 가지 일을 끝내고서 다음 일로 옮겨갈 때 쓰는 말이다. 여기서는 築城을 끝내고서 鑄鼎의 일로 옮겨갔기 때문에 ‘遂’字를 쓴 것이다. 〈楊注〉에 “鼓는 衡器 또는 量器의 이름이다. 《孔子家語》 〈正論〉篇에도 이 글이 실려 있는데, 그 注에 ‘30斤이 鈞이고 4鈞이 石이고 4石이 鼓이다.’고 하였으니, 1鼓는 480斤이다.”고 하였다. 이 說을 취해 번역하였다.
역주17 治[冶] : 저본에는 ‘治’로 되어 있으나, 《十三經注昭》本에 의거하여 ‘冶’로 바로잡았다.
역주18 范宣子所爲刑書 : 范宣子가 執政이 되어 제정한 刑律을 이른다. 그 내용이 文公 6년 傳에 자세히 보인다.
역주19 用之於民 如經緯之於布帛 : 포백이 날실과 씨실이 어울려 무늬를 이루듯이 이 법도를 백성들에게 사용하여 백성들로 하여금 秩序가 있게 해야 한다는 뜻이다.
역주20 文公蒐被廬 修唐叔之法 : 僖公 27년 傳에는 唐叔의 法에 대한 言及이 없고 단지 ‘대대적으로 군사훈련을 거행하여 少長과 貴賤의 禮를 밝히고[大蒐以示之禮], 執秩을 新設하여 官爵의 等級을 바로잡았다.[作執秩以正其官]’는 말만이 보인다. 杜氏는 이것을 唐叔의 法이라 한 것이다.
역주21 民在鼎 : 在는 察이니 백성들이 鼎을 살펴 刑을 안다는 말이다. 〈楊注〉
역주22 又加范氏焉 易之亡也 : 〈楊注〉에 “杜注에 의하면 易은 改變이다. 范氏의 法이 이미 廢棄되었는데, 지금 中行寅이 다시 施行하니, 이것이 바로 改易이다.”고 하였으니, 이 說은 이미 廢棄된 范氏의 法을 다시 시행하여 范氏를 亡하게 하였다는 뜻이다.
역주23 是交易范氏 速之使亡 :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交易范氏가 范氏의 법을 貿易했다는 말인지 范氏와 往來했다는 말인지 모르겠고, 速之使亡도 禍를 불러 망하게 하였다는 말인지 迅速하게 망하게 하였다는 말인지 모르겠다. 모르는 것은 제쳐놓는 것이 마땅하지만 空欄으로 비워둘 수 없어서 그저 글자에 따라 새겨놓았을 뿐이다.

춘추좌씨전(7) 책은 2019.05.2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18 By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