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10월에 운인鄆人이 흩어져 도망하였다.注+전傳이 없다. 백성이 그 윗사람에게서 도망하는 것을 ‘궤潰’라 하니, 백성이 흩어져 도망하여 소공昭公을 배반背叛한 것이다.
傳
29년 봄에 소공昭公이 건후乾侯에서 돌아와서 운鄆에 거처居處하니 제후齊侯가 고장高張을 보내와서 소공昭公을 위문慰問하면서 소공을 ‘주군主君’으로 칭하였다.注+소공昭公을 대부大夫와 같이 여긴 것이다. [부주]林: 대부大夫를 주군主君으로 칭한다.
자가자子家子가 말하기를 “제齊나라가 임금님을 멸시蔑視[卑]하는 것이니 임금님께서는 단지 치욕恥辱만을 취하게 될 뿐입니다.注+가서 제齊나라를 섬기는 것은 단지 치욕만을 취하게 될 뿐이라는 말이다. ”라고 하니, 소공이 건후乾侯로 갔다.注+제齊나라의 천시賤視를 당하였기 때문에 다시 진晉나라로 가서 구휼救恤해주기를 바란 것이다.
傳
3월 기묘일己卯日에 경사京師가 소백영召伯盈‧윤씨고尹氏固 및 원백로原伯魯의 아들을 죽였다.注+이들은 모두 자조子朝의 당黨이다. 백로伯魯의 아들이라고 칭한 것은 끝내 학문을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윤고尹固가 〈망명亡命에서〉 돌아올 때에注+26년에 윤고尹固가 자조子朝와 함께 초楚나라로 도망가다가 중도에서 돌아왔다. 어떤 부인婦人이 그를 주周나라 국도國都의 교외郊外에서 만나 꾸짖기를注+[부주]林: 윤고尹固를 매우 이상하게 여겨 꾸짖은 것이다. “국내國內에 있을 때는 사람(子朝)을 권하여 화란禍亂을 일으키게 하고, 국외國外로 도망가서는 며칠이 되지 않아 다시 돌아오니注+[부주]林: 윤고尹固가 주周나라에 있을 때에는 자조子朝를 권하여 화란禍亂을 일으키게 하고, 출분出奔하여서는 며칠도 되지 않아 이내 돌아왔다는 말이다. , 이런 사내가 어찌 3년을 넘길 수 있겠는가?注+[부주]林: 시부是夫는 윤고尹固를 천賤하게 여긴 호칭呼稱이다. ”라고 하였다.
傳
여름 5월 경인일庚寅日에 왕자王子조차趙車가 연鄻으로 들어가서 반란叛亂을 일으키니, 음불녕陰不佞이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패배敗北시켰다.注+조차趙車는 자조子朝의 여당餘黨이다. 주왕周王이 백영伯盈 등을 죽이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연鄻은 주周나라 읍邑이다.
傳
계평자季平子가 해마다 말을 사고注+고賈는 사는 것이다.종자從者들의 옷과 신발을 준비[具]하여 건후乾侯로 보냈는데, 소공昭公이 말을 몰고 간 사람을 체포하고 그 말을 파니注+그 말을 판 것이다. , 이에 평자平子는 말을 보내지 않았다.注+[부주]林: 평자平子는 이에 단절斷絶하고서 말을 보내지 않았다.
傳
위후衛侯가 사자使者를 보내와서 그 승마乘馬(수레를 끌던 말) 계복啓服을注+계복啓服은 말의 이름이다.소공昭公에게 바쳤는데, 그 말이 해자[塹]에 빠져 죽으니注+해자에 빠져 죽은 것이다. 소공은 그 말을 위해 관棺을 마련하려 하였다.注+말을 위하여 관을 만들게 한 것이다.
그러자 자가자子家子가 말하기를 “종자從者들이 모두 지쳤으니 이 말고기를 종자들에게 먹이소서.注+[부주]林: 관棺을 만드는 데 드는 비용費用으로 종자從者들에게 음식飮食을 마련해주기를 청한 것이다. ”라고 하니, 소공昭公은 이에 휘장으로 그 말을 싸서 묻게 하였다.注+《예기禮記》 〈단궁檀弓〉에 “해진 휘장을 버리지 않는 것은 죽은 말을 싸기 위함이다.”고 하였다.
傳
소공昭公이 공연公衍에게 고구羔裘를 하사下賜하고서 그에게 제齊나라로 가서 제후齊侯에게 용보龍輔를 바치게 하였는데注+용보龍輔는 옥玉의 이름이다., 공연公衍이 드디어 고구羔裘까지 바치니注+[부주]林: 공연公衍이 드디어 고구羔裘를 가지고 들어가서 바친 것이다. , 제후齊侯는 기뻐하여 그에게 양곡陽穀을 봉지封地로 주었다.注+양곡陽穀은 제齊나라 읍邑이다.
공연公衍과 공위公爲가 출생出生할 때注+[부주]林: 공연公衍과 공위公爲는 모두 소공昭公의 아들이다. 그 어머니들이 함께 산실産室로 나가 있었다.注+산사産舍로 나간 것이다.
공연公衍이 먼저 출생出生하자, 공위公爲의 어머니가 “함께 나왔으니 〈내가 출산出産한 뒤에〉 함께 〈가서 임금님께〉 고告합시다.注+공연公衍의 어머니가 〈출산出産을 보고報告하려는 것을〉 만류挽留하여 자기가 출산하기를 기다려 함께 공公에게 아뢰게 한 것이다. ”라고 하였다.
3일 뒤에 공위公爲가 출생出生하자, 공위公爲의 어머니는 먼저 가서 소공昭公에게 고告하였다.
그러므로 공위公爲가 형兄이 되었다.注+[부주]林: 먼저 고告하였기 때문에 공위公爲가 형兄이 되고, 공연公衍이 도리어 아우가 된 것이다.
소공昭公은 마음속으로 〈공연公衍이〉 양곡陽穀을 얻어 온 것을 기뻐하고, 노魯나라에 있을 때의 일을 생각하며注+[부주]林: 소공昭公은 마음속으로 양곡陽穀을 얻은 것을 기뻐하면서 노魯나라를 잃은 화禍를 생각한 것이다. 말하기를 “이 화禍는 무인務人이 만든 것이다.注+무인務人은 공위公爲이다. 당초에 공약公若과 함께 계씨季氏의 축출逐黜을 모의謀議하였다.
그리고 또 뒤에 출생하였으면서 형兄이 되었으니 나를 속인 지가 오래이다.” 하고서 이에 공위公爲를 폐출廢黜하고 공연公衍을 태자太子로 삼았다.
傳
가을에 진晉나라 강도絳都의 교외郊外에 용龍이 출현出現하니注+강絳은 진晉나라 국도國都이다., 위헌자魏獻子가 채묵蔡墨에게注+채묵蔡墨은 진晉나라 태사太史이다. “내가 듣건대 충류蟲類 중에는 용龍보다 지혜로운 짐승이 없다고 한다.
용은 산 채로 잡을 수 없기 때문에 용을 지혜롭다고 하니, 참으로 그러한가?”라고 묻자, 채묵蔡墨이 대답하기를 “사람들이 실로 지혜롭지 못해서이지 용이 실로 지혜로워가 아닙니다.注+용龍이 무지無知하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지 못할 뿐이라는 말이다.
옛날에는 집에서 용을 길렀습니다.
그러므로 나라 안에 환룡씨豢龍氏가 있고 어룡씨御龍氏가 있습니다.注+환豢과 어御는 기름이다. ”고 하니, 헌자獻子가 말하기를 “이 두 씨氏가 있다는 것은 나도 들었지만 그 까닭은 알지 못하였다.
이들은 어째서 씨氏를 ‘환룡豢龍‧어룡御龍’이라 하였는가?”라고 물었다.
채묵蔡墨이 대답하기를 “옛날에 요飂나라의 임금 숙안叔安에게注+요飂는 옛날의 나라이고, 숙안叔安은 그 나라 임금의 이름이다.동보董父라는注+예裔는 원遠이니, 현손玄孫의 후손後孫을 예裔라 한다. 후예後裔가 있었는데, 실로 용龍을 매우 좋아하여, 용이 좋아하는 먹이가 무엇인지를 연구硏求하여 그 먹이를 먹여 기르니 많은 용들이 그의 집으로 몰려왔습니다.
동보董父는 이에 용을 길들여 기르는 일로 제순帝舜을 섬기니, 제순帝舜은 그에게 ‘동董’이란 성姓과注+요擾는 순順(따름)이다. [부주]林: 용龍이 원하는 바에 따라 먹여 기른 것이다. ‘환룡豢龍’이란 씨氏를 내리고서注+환룡豢龍은 관명官名이다. 관직官職을 맡아 대대로 공功이 있으면 그 관명官名으로 씨氏를 삼는다. 종천鬷川에 봉封하였으니, 종이씨鬷夷氏가 그 후손後孫입니다.注+종수鬷水가에 사는 이족夷族은 모두 동성董姓이다.
그러므로 제순씨帝舜氏 이후로는 대대로 용龍을 길들여 기르는 관원官員이 있었습니다.
하夏나라 공갑孔甲에 이르러 공갑孔甲이 상제上帝께 순종하니注+공갑孔甲은 소강少康의 후손後孫으로 상商나라의 제9대代군왕君王이다. 그 덕德이 천명天命에 순응順應하였다는 말이다. , 상제上帝가 그에게 수레에 메울 네 마리의 용을 하사下賜하였으니 황하黃河와 한수漢水의 용 두 마리씩으로注+모두 네 마리이다. [부주]林: 천제天帝가 공갑孔甲에게 네 마리의 용龍을 하사下賜한 것이다. 각각 암수였습니다.
공갑孔甲은 이 용을 잘 먹일 수가 없어서 환룡씨豢龍氏의 후손을 찾았으나 찾지 못하였습니다.注+[부주]林: 용龍을 기를 관원官員을 얻지 못하였다는 말이다.
도당씨陶唐氏가 쇠락衰落한 뒤에 그 후손에 유루劉累란 자가 있었는데注+도당陶唐은 요堯가 다스리던 땅이다. [부주]林: 유루劉累는 요堯의 자손子孫이다. , 용을 길들여 기르는 기술을 환룡씨豢龍氏에게 배워서 공갑孔甲을 섬겨 용을 잘 먹여 기르니 하후夏后(孔甲)는 이를 가상히 여겨 ‘어룡御龍’이란 씨氏를 내리고서注+하후夏后는 공갑孔甲이다.시위豕韋의 후손後孫를 대신하게 하였습니다.注+경更은 대代이다. 유루劉累에게 팽성彭姓의 시위국豕韋國을 대신 맡게 한 것이다. 오래지 않아 유루劉累가 노현魯縣으로 옮겨가자, 시위豕韋가 다시 나라를 회복하였는데, 상商나라 때에 이르러 멸망하니 유루劉累의 후손이 다시 그 나라를 이어받아 시위씨豕韋氏가 된 것이 양공襄公 24년에 보인다.
얼마 뒤에 암룡 한 마리가 죽자, 유루劉累는 은밀히 용의 고기로 젓을 담궈 하후夏后에게 먹였는데注+잠潛은 숨김[藏]이다. 〈용이 죽은 것을〉 숨기고서 그 용의 고기로 육장肉醬을 담근 것이다. 용龍이 지혜롭지 않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 , 하후夏后는 이 젓갈을 먹어보고는 이윽고 유루劉累에게 사람을 보내어 다시 젓갈을 요구하였습니다.注+용龍의 고기로 담근 젓갈을 요구한 것이다.
그러자 유루劉累는 두려워서 노현魯縣으로 옮겨갔으니注+용龍의 젓갈이 다하여 더 이상 바칠 수 없기 때문에 〈죄를 받을까〉 두려워 스스로 물러나 노현魯縣으로 옮겨간 것이다. 노현魯縣은 지금의 노양魯陽이다. , 범씨范氏가 바로 그 후손입니다.注+진晉나라의 범씨范氏이다. ”라고 하였다.
헌자獻子가 “지금은 어째서 용이 없는가?”라고 묻자, 채묵蔡墨이 대답하기를 “물物에는 물物마다 그 물物을 맡아서 다스리는 관원官員이 있으니注+[부주]朱: 대체로 천하天下의 물物에는 물物마다 각각 맡은 관원이 있어서 그 일을 주관한다., 관원官員은 그 물을 다루는 방법을 수행修行하기를注+방方은 법술法術이다. 밤낮으로 항상 생각해야 합니다.
하루라도 그 직분職分을 다하지 않으면 죽음이 이르고注+직분職分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면 죄벌罪罰이 있다는 말이다. , 관원官員으로 직분職分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면 녹祿을 먹지 못합니다.注+녹祿을 먹지 못한다는 말이다.
관원이 〈대대로 이어가며〉 그 업무業務를 오랫동안[宿] 수행하면注+숙宿은 안安과 같다. 그 물物이 이르지만注+수관水官을 설치設置하여 그 직분職分을 잘 수행修行하면 용龍이 이른다는 말이다. 만약 업무를 폐기廢棄[泯棄]하면 그 물物은 잠복하여注+민泯은 멸滅이고 지坁는 지止이다. [부주]林: 만약 그 물物을 맡은 관원官員이 그 직분職分을 버리면 그 물物은 〈출현出現을 멈추고서〉 잠복해 숨는다는 말이다. 침체되고 막혀 번식繁殖[育]하지 못합니다.注+울鬱은 침체沈滯이고, 인湮은 옹색壅塞이고, 육育은 생산生産이다.
그러므로 오행五行을 맡아 다스리는 관원이 있었으니 이를 오관五官이라 합니다.
이 오관五官은 실로 나란히 씨氏와 성姓을 받아注+[부주]林: 실로 〈조정朝廷에〉 나란히 서서 씨氏를 하사下賜하고 성姓을 하사下賜하는 은총恩寵을 받았다는 말이다. 생전生前에는 봉작封爵을 받아 상공上公이 되고注+상공上公의 관작官爵을 받은 것이다. [부주]林: 그 생전에는 상공上公의 관작官爵에 봉封해졌다는 말이다. 사후死後에는 제사를 받는 존귀尊貴한 신神이 되어注+[부주]林: 그 사후死後에는 존귀尊貴한 신神(社稷과 오사五祀의 신神)의 제사祭祀에 배식配食한다는 말이다. , 사직社稷과 오사五祀의 제사에 배향配享되어 왕자王者의 존봉尊奉을 받았습니다.注+자신의 일을 잘 수행한 오관五官의 군장은 죽으면 모두 오행五行의 신의 제사에 배식配食하여 왕자王者의 존봉尊奉을 받는 대상이 된 것이다.
나무를 맡은 관장官長[木正]을 구망句芒이라 하고注+정正은 관장官長이다. 나무가 처음 싹이 나올 때 갈고리처럼 구부정하고 뾰족한 잎이 있으므로 〈그 모양을 취하여 목정木正을 구망句芒이라 한 것이다.〉 이때(봄)에 중重에게 제사祭祀한다. , 불을 맡은 관장[火正]을 축융祝融이라 하고注+축융祝融은 밝은 모양이다. 〈그 모양을 취하여 화정火正을 축융祝融이라 한 것이다.〉 이때(여름)에 이犂에게 제사한다. , 쇠를 맡은 관장[金正]을 욕수蓐收라 하고注+가을이 되면 만물萬物이 최욕摧蓐(摧折)하여 수렴收斂할 수 있으므로 〈그 뜻을 취하여 금정金正을 욕수蓐收라 한 것이다.〉 이때(가을)에 해該에게 제사한다. , 물을 맡은 관장[水正]을 현명玄冥이라 하고注+수水는 음한陰寒하고 어두컴컴하므로 〈그 뜻을 취하여 수정水正을 현명玄冥이라 한 것이다.〉 이때(겨울)에 수修와 희熙에게 제사한다. , 흙을 맡은 관장[土正]을 후토后土라 합니다.注+토土는 모든 생물生物의 주인이기 때문에 ‘후后’라고 칭한 것이다. 이때(季夏)에 구룡句龍에게 제사한다. 그 제사를 집에서 지낼 경우에는 중류中霤에 지내고 들에서 지낼 경우에는 사社에 지낸다.
용龍은 수중水中의 생물生物이니 물을 맡은 관장이 그 직분을 폐기廢棄하였기 때문에 용을 산 채로 잡을 수 없게 된 것입니다.注+기棄는 폐廢(職務를 제대로 수행修行하지 않음)이다.
그렇지 않다면 〈어찌〉 《주역周易》에 다음과 같은 말들이 있었겠습니까?注+만약 그렇지 않다면 《주역周易》에 용龍을 말했을 까닭이 없다는 말이다.
건괘乾卦注+하괘下卦도 건乾이고 상괘上卦도 건乾인 것이 건괘乾卦이다. 초구初九[姤]에注+하괘下卦가 손巽이고 상괘上卦가 건乾인 것이 구괘姤卦이니, 건괘乾卦의 초구初九가 변한 것이다. ‘잠룡물용潛龍勿用(잠복해 있는 용이니 쓰지 말라)注+건괘乾卦초구初九의 효사爻辭이다. ’이라 하고, 그 구이九二[同人]에注+하괘下卦가 이離이고 상괘上卦가 건乾인 것이 동인괘同人卦이니, 건괘乾卦의 구이九二가 변한 것이다. ‘현룡재전見龍在田(出現한 용이 지상地上(田)에 있음)注+건괘乾卦구이九二의 효사爻辭이다. ’이라 하고,
그 구오九五[大有]에注+하괘下卦가 건乾이고 상괘上卦가 이離인 것이 대유괘大有卦이니, 건괘乾卦의 구오九五가 변한 것이다. ‘비룡재천飛龍在天(나는 용이 하늘에 있음)注+건괘乾卦구오九五의 효사爻辭이다. ’이라 하고, 그 상구上九[夬]에注+하괘下卦가 건乾이고 상괘上卦가 태兌인 것이 쾌괘夬卦이니, 건괘乾卦의 상구上九가 변한 것이다. ‘항룡유회亢龍有悔(끝까지 올라간 용이니 후회後悔가 있으리라)注+건괘乾卦상구上九의 효사爻辭이다. ’라 하고,
그 용구用九[坤]에注+하괘下卦도 곤坤이고 상괘上卦도 곤坤인 것이 곤괘坤卦이니, 건괘乾卦의 육효六爻가 모두 변한 것이다. ‘견군룡見群龍무수無首길吉(뭇 용을 보되 머리가 없으면 길하다)注+건괘乾卦용구用九의 효사爻辭이다. ’이라 하고, 곤괘坤卦상육上六[剝]에注+하괘下卦가 곤坤이고 상괘上卦가 간艮인 것이 박괘剝卦이니, 곤괘坤卦의 상육上六이 변한 것이다. ‘용전우야龍戰于野(용이 들에서 싸운다)注+곤괘坤卦상육上六의 효사爻辭이다. ’라고 하였으니,
만약 아침저녁으로 용이 출현出現하지 않았다면 누가 그 물상物象을 이렇게 자세히 묘사描寫할 수 있었겠습니까?注+물物은 위 여섯 괘卦에 칭稱한 용龍이 각각 같지 않음을 말한 것이다. 오늘날 《주역周易》을 해설하는 자들은 모두 용龍을 양기陽氣에 비유하지만 사묵史墨의 말에 따르면 이 용龍들은 모두 진룡眞龍이다. ”라고 하였다.
헌자獻子가 다시 “사직社稷과 오사五祀는 어느 제왕帝王 때의 오관五官인가?注+오관五官의 장長이 모두 누구냐고 물은 것이다.”라고 묻자, 채묵蔡墨이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소호씨少皥氏의 자손[叔]에 중重‧해該‧수修‧희熙라는 네 사람이 있었는데注+소호少皥는 금천씨金天氏이다. [부주]林: 자손子孫 네 사람이 있었다는 말이다. , 실로 쇠와 나무와 물을 잘 다루니注+그 맡은 일을 잘 다스렸다는 말이다. , 중重을 구망句芒으로注+나무를 맡은 관장官長이다. , 해該를 욕수蓐收로注+쇠를 맡은 관장官長이다. , 수修와 희熙를 현명玄冥으로 삼았습니다.注+두 사람이 서로 번갈아가며 물을 관리管理하는 관장官長이 된 것이다.
이들은 대대로 그 직분을 잘 지켜 마침내 궁상窮桑의 성공成功을 도왔으니, 이들이 오사五祀 중의 삼사三祀이고注+궁상窮桑은 소호少皥의 호號이다. 네 사람은 맡은 관직官職을 잘 수행修行하여 직무職務를 잘못되지 않게 해서 소호少皥가 공을 이루도록 도왔으므로 죽은 뒤에 모두 백성들의 제사를 받게 되었다. 궁상窮桑의 땅은 노魯나라 북쪽에 있었다. , 전욱씨顓頊氏에게 이犂라는 아들이 있었는데 축융祝融(官名)이 되고注+리犂가 불을 맡은 관장官長이 된 것이다., 공공씨共工氏에게 구룡句龍이란 아들이 있는데 후토后土(官名)가 되었으니注+공공共工은 대호大皥의 뒤와 신농神農의 앞에 있었는데, 수水로써 관직官職의 이름을 삼았다. 그 아들 구룡句龍이 수토水土를 평정平定하였기 때문에 죽은 뒤에 제사를 받았다. , 이들이 오사五祀 중의 이사二祀입니다.注+[부주]林: 두 사람은 죽은 뒤에 모두 백성들의 제사를 받았으니, 이들이 화토火土의 두 제사이다.
〈살아서〉 후토后土의 〈관직官職을 맡아 그 직무를 잘 수행한 사람은 죽어서〉 사社(土地神)가 되고注+채묵蔡墨이 바야흐로 사직社稷에 대해 대답하였기 때문에 〈후토后土가〉 사社가 되었다고 분명히 말한 것이다. , 〈죽어서〉 직稷(穀神)이 된 사람은 〈살았을 때 농정農政을 맡아 그 직무를 잘 수행한〉 전정田正(農政을 맡은 관장官長)입니다.注+씨앗을 뿌려 가꾸는 일을 맡은 것이다.
열산씨烈山氏에게 주柱라는 아들이 있었는데, 〈직稷(農政을 맡은 관장官長)이 되어 직무職務를 잘 수행하였으므로 죽은 뒤에 그를〉 직稷(穀神)으로 삼아注+열산씨烈山氏는 신농씨神農氏 때의 제후諸侯이다. , 하夏나라 이전에는 이에게 제사하였고注+주柱에게 제사한 것이다. , 주周나라의 시조始祖기棄도 〈직稷(農政을 맡은 관장)이 되어 그 직무를 잘 수행하였으므로 죽은 뒤에 그를〉 직신稷神으로 삼아注+기棄는 주周나라 시조始祖로 백곡百穀의 씨앗을 뿌렸다. 탕왕湯王이 하夏나라를 이긴 뒤에 주柱의 신神을 폐출廢黜하고 기棄의 신神을 대신 직신稷神으로 삼았다. , 상商나라 이후로는 그에게 제사하였습니다.注+전문傳文은 채묵蔡墨의 박물博物(사물에 대한 지식이 해박該博함)을 말한 것이다. ”
傳
겨울에 진晉나라 조앙趙鞅(趙簡子)과 순인荀寅(中行文子)이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여수汝水가에 성을 쌓고서注+조앙趙鞅은 조무趙武의 손자이고, 순인荀寅은 중행순오中行荀吳의 아들이다. 여빈汝濱은 진晉나라가 취한 육혼陸渾의 땅이다. , 드디어 진晉나라 국도國都의 백성들에게 1고鼓(480근)씩의 철鐵을 징수徵收하여 형정刑鼎을 주조鑄造하고注+진晉나라에 영令을 내려 집집마다 각각 공력功力(勞動力)을 내어 함께 광석鑛石을 제련製鍊하여 총계總計가 1고鼓에 차게 한 것이다. 군역軍役으로 인해 그 일을 하였기 때문에 ‘수遂’라고 말한 것이다. [부주]林: 고鼓는 야冶(풀무)와 같다. 풀무로 부치는 것을 ‘고鼓’라 하니, 이것이 ‘고석위철鼓石爲鐵(鑛石을 용광로鎔鑛爐에 넣고 풀무로 부쳐 철鐵을 만듦이다)’이다. 범선자范宣子가 제정制定한 형서刑書를 새겨 넣었다.注+[부주]林: 선자宣子는 바로 범개范匄이다. 일찍 형서刑書를 지었는데, 지금 그 형서刑書를 가져다가 정鼎에 드러낸 것이다.
저 진晉나라는 응당[將]당숙唐叔이 전한 법도法度를 지켜 그 백성을 다스리고注+[부주]林: 당숙唐叔은 진晉나라의 시봉군始封君이다. 당숙唐叔이 주왕周王에게 받은 법도法度를 지켜 백성에게 사용하여 포백布帛에 경선經線과 위선緯線이 있는 것과 같이 해야 한다는 말이다. 경대부卿大夫가 위차位次에 따라 그 법도를 지키게 하면注+서序는 위차位次이다. 백성은 이로 인해 귀인貴人을 존대尊待하고注+[부주]林: 천賤한 백성들이 위엄을 두려워하고 덕德을 생각하기 때문에 그 존귀한 사람을 존경해 받든다는 말이다. 귀인貴人은 이로 인해 그 가업家業을 지킬 수 있다.
귀천貴賤이 모두에게 허물이 없는 것이 이른바 ‘법도法度’이니, 문공文公이 이로 인해 관직官職의 위차位次를 관장管掌하는 관직官職을 설치設置하고注+[부주]林: 관작官爵의 등급과 봉작封爵을 주관主管하는 관직官職을 만든 것이다. 피려법被廬法을 제정制定하여注+희공僖公 27년에 문공文公이 피려被廬에서 군사훈련軍事訓鍊[蒐]을 실시하고서 당숙唐叔의 법法을 수명修明하였다. 맹주盟主가 되었는데, 이제 이 법도法度를 버리고서 형정刑鼎을 주조鑄造하였으니, 백성들은 형정刑政만을 살필[在] 것이니注+[부주]林: 백성들이 쟁송爭訟하는 일에 대한 형刑이 모두 정鼎에 새긴 형서刑書에 있다는 것을 안다는 말이다. 어찌 귀인貴人을 존경할 것이며注+예禮를 버리고 형서刑書만을 믿기 때문에 귀인貴人을 존경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귀인貴人이 어찌 가업家業을 지킬 수 있겠는가?注+백성들이 윗사람을 존경해 받들지 않으면 윗사람은 가업家業을 상실喪失한다는 말이다.
귀천貴賤의 차별이 없으면 무엇으로 나라를 다스리겠는가?
그리고 또 선자宣子의 형서刑書는 이夷에서 군사훈련軍事訓鍊할 때 제정한 것으로 진晉나라를 어지럽힌 제도制度이니注+범선자范宣子가 만든 형서刑書는 바로 이夷에게 군사훈련軍事訓鍊할 때 만든 법이다. 이夷에서 군사훈련軍事訓鍊한 것은 문공文公 6년에 있었다. 한 차례의 훈련에서 중군수中軍帥를 세 번 바꾸어, 가계賈季‧기정箕鄭 등으로 하여금 드디어 반란叛亂을 일으키게 하였기 때문에 ‘난제亂制’라 한 것이다. 어찌 그것을 법法으로 삼을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채사묵蔡史墨이 말하기를 “범씨范氏와 중행씨中行氏는 아마도 망亡할 것이다.注+채사묵蔡史墨은 바로 채묵蔡墨이다.
중행인中行寅은 하경下卿으로서 상사上司의 명을 범하고서注+[부주]林: 윗사람의 권령權令을 범한 것이다. 마음대로 형기刑器를 만들어 이를 국법國法으로 삼았으니, 바로 간사奸邪를 법法으로 삼은 것인데注+[부주]林: 이것이 간사奸邪를 법法으로 삼은 것이다. 〈그러므로 간사奸邪가 법이 될 만한 것이다.〉 , 또 범씨范氏의 법을 다시 시행施行하여 범씨范氏를 망하게 하였다.注+범선자范宣子의 형서刑書는 중간에 이미 폐기廢棄되었는데 지금 다시 일으켰으니, 이는 범씨范氏의 화禍[咎]를 조성助成한 것이다. [부주]林: 지금 그 법을 다시 일으켰으니, 이것이 바로 범씨范氏의 〈죄악罪惡을〉 증가增加시켜 범씨范氏와 교역交易하여 신속迅速히 망亡하게 한 것이다.
그 화禍가 조씨趙氏에게도 미칠 것이니注+[부주]林: 화가 반드시 조씨趙氏에 미칠 것이라는 말이다. 조맹趙孟이 그 일에 참여하였기 때문이다.注+[부주]林: 조맹趙孟은 바로 조앙趙鞅이다. 그 또한 형정刑鼎을 주조鑄造하는 일에 참여하였다.
그러나 마지못해 참여한 것이니 만약 덕德을 닦는다면 화禍를 면할 수 있을 것이다.注+형정刑鼎을 주조鑄造하는 것이 본래 조앙趙鞅의 뜻이 아니었으나 마지못해 따른 것이니, 만약 덕을 닦는다면 화禍를 면할 수 있다는 말이다. 정공定公 13년에 순인荀寅과 사길석士吉射(范昭子)이 조가朝歌로 들어가서 반란叛亂을 일으킨 배경이다. ”고 하였다.
역주
역주1至自乾侯 :
지난해에 昭公이 晉나라로 가서 乾侯에 머물렀다. 비록 晉나라의 境內로 들어갔으나, 晉侯를 만나보지 못하였기 때문에 經에 ‘至自乾侯’로 기록한 것이다. 乾侯에서 돌아온 것으로 宗廟에 告한 것은 晉侯를 만나보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正義〉
역주2終不說(열)學 :
原伯魯의 아들의 이름을 기록하지 않은 것에 대해 杜氏는 ‘끝내 학문을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고 하였다. 原伯魯가 好學하지 않은 것은 昭公 18년 傳에 보이지만, 아비의 不好學이 그 아들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 杜注는 믿을 만하지 못하다. 〈楊注〉
역주12誰氏之五官也 :
上古時代에는 帝王을 ‘氏’라 하였다. 下文의 少皥氏‧烈山氏 같은 類이니, 바로 어느 帝王 때의 五官이냐고 물은 것이다. 〈楊注〉
역주13遂濟窮桑 :
〈正義〉에 “少皥가 窮桑에 살면서 帝位에 올랐기 때문에 천하가 그를 窮桑帝라 한다.”고 하였으니, 이 네 사람의 자손이 대대로 그 職分을 修行하여 少皥가 帝王이 되도록 도왔다는 말이다.
역주14火土之二祀 :
顓頊氏의 아들 犂가 生前에 불을 맡는 祝融이 되어 그 직무를 잘 수행하고, 共工氏의 아들 句龍이 生前에 토지를 맡는 后土가 되어 그 직무를 잘 수행하였기 때문에 죽은 뒤에 火神과 土神에 지내는 두 제사를 받는 神이 되었다는 뜻이다.
역주15孫[行] :
저본에는 ‘孫’으로 되어 있으나, 《十三經注疏》本에 의거하여 ‘行’으로 바로잡았다.
역주16遂賦晉國一鼓鐵 :
遂는 한 가지 일을 끝내고서 다음 일로 옮겨갈 때 쓰는 말이다. 여기서는 築城을 끝내고서 鑄鼎의 일로 옮겨갔기 때문에 ‘遂’字를 쓴 것이다. 〈楊注〉에 “鼓는 衡器 또는 量器의 이름이다. 《孔子家語》 〈正論〉篇에도 이 글이 실려 있는데, 그 注에 ‘30斤이 鈞이고 4鈞이 石이고 4石이 鼓이다.’고 하였으니, 1鼓는 480斤이다.”고 하였다. 이 說을 취해 번역하였다.
역주17治[冶] :
저본에는 ‘治’로 되어 있으나, 《十三經注昭》本에 의거하여 ‘冶’로 바로잡았다.
역주18范宣子所爲刑書 :
范宣子가 執政이 되어 제정한 刑律을 이른다. 그 내용이 文公 6년 傳에 자세히 보인다.
역주19用之於民 如經緯之於布帛 :
포백이 날실과 씨실이 어울려 무늬를 이루듯이 이 법도를 백성들에게 사용하여 백성들로 하여금 秩序가 있게 해야 한다는 뜻이다.
역주20文公蒐被廬 修唐叔之法 :
僖公 27년 傳에는 唐叔의 法에 대한 言及이 없고 단지 ‘대대적으로 군사훈련을 거행하여 少長과 貴賤의 禮를 밝히고[大蒐以示之禮], 執秩을 新設하여 官爵의 等級을 바로잡았다.[作執秩以正其官]’는 말만이 보인다. 杜氏는 이것을 唐叔의 法이라 한 것이다.
역주22又加范氏焉 易之亡也 :
〈楊注〉에 “杜注에 의하면 易은 改變이다. 范氏의 法이 이미 廢棄되었는데, 지금 中行寅이 다시 施行하니, 이것이 바로 改易이다.”고 하였으니, 이 說은 이미 廢棄된 范氏의 法을 다시 시행하여 范氏를 亡하게 하였다는 뜻이다.
역주23是交易范氏 速之使亡 :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交易范氏가 范氏의 법을 貿易했다는 말인지 范氏와 往來했다는 말인지 모르겠고, 速之使亡도 禍를 불러 망하게 하였다는 말인지 迅速하게 망하게 하였다는 말인지 모르겠다. 모르는 것은 제쳐놓는 것이 마땅하지만 空欄으로 비워둘 수 없어서 그저 글자에 따라 새겨놓았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