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春秋左氏傳(2)

춘추좌씨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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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經]十有一年春 楚子伐하다注+討前年逃厥貉會 [附注] 林曰 楚書君將 於是始 自是楚師必圍滅而后 貶人之
11년 봄에 초자楚子나라를 토벌하였다.注+전년에 궐맥闕貉의 회합에서 도망하였기 때문에 토벌한 것이다. [부주]林: 나라 임금이 직접 군대를 거느린 것을 기록하기 시작한 것이 이때부터 비롯하였다. 이 이후로는 초군楚軍이 반드시 남의 나라를 포위하여 멸망시킨 뒤에야 으로 폄칭貶稱하였다.
[經]夏 叔彭生會晉郤缺于承匡하다注+承匡 宋地 在陳留襄邑縣西 彭生 叔仲惠伯 郤缺 冀缺
여름에 숙팽생叔彭生나라 극결郤缺승광承匡에서 회합하였다.注+승광承匡나라 땅으로 진류陳留양읍현襄邑縣 서쪽에 있다. 팽생彭生숙중혜백叔仲惠伯이고 극결郤缺기결冀缺이다.
[經]秋 曹伯來朝하다
가을에 조백曹伯이 와서 조현朝見하였다.
[經]公子遂如宋하다
공자수公子遂나라에 갔다.
[經]狄侵齊하다
적인狄人나라를 침공하였다.
[經]冬十月甲午 叔孫得臣敗狄于鹹하다注+鹹 魯地
겨울 10월 갑오일甲午日숙손득신叔孫得臣에서 적군狄軍을 패배시켰다.注+나라 땅이다.
[傳]十一年春 楚子伐麋[麇]하니 成大心敗麋[麇]師於防渚하다注+成大心 子玉之子大孫伯也 防渚 麋[麇]地
11년 봄에 초자楚子나라를 토벌하니 성대심成大心방저防渚에서 균군麇軍패배敗北시켰다.注+성대심成大心자옥子玉의 아들 대손백大孫伯이다. 방저防渚[麇]나라 땅이다.
潘崇復伐麋[麇]注+[附注] 林曰 潘崇 楚大師하야 至于鍚穴하다注+鍚穴 麋[麇]地 [附注] 林曰 麋[麇]未服故
반숭潘崇이 다시 나라를 토벌하여注+[부주]林: 반숭潘崇나라 태사太師이다.양혈鍚穴까지 쳐들어갔다.注+양혈鍚穴나라 땅이다. [부주]林: 나라가 복종하지 않기 때문에 다시 친 것이다.
[傳]夏 叔仲惠伯會晉郤缺于承匡하니 謀諸侯之從於楚者注+九年 陳鄭及楚平 十年 宋聽楚命
여름에 숙중혜백叔仲惠伯승광承匡에서 나라 극결郤缺과 회합하였으니, 이는 나라를 따르는 제후들의 처리를 상의하기 위해서였다.注+문공文公 9년에 나라와 나라가 나라와 화평하였고, 10년에 나라가 나라에 복종하였다.
[傳]秋 曹文公來朝하니
가을에 조문공曹文公이 와서 조현朝見하였으니, 즉위卽位하고서 와서 조현朝見한 것이다.
[傳]襄仲聘于宋하고 且言司城蕩意諸而復之注+八年 意諸來奔 歸不書 史失之하고 因賀楚師之不害也하다注+往年楚次厥貉 將以伐宋
양중襄仲나라에 가서 빙문聘問하고 또 사성司城탕의제蕩意諸의 일을 거론하여 그를 복국復國시키고,注+문공文公 8년에 탕의제蕩意諸나라로 도망해 왔다. 그가 돌아간 것을 기록하지 않은 것은 사관史官이 잊은 것이다. 이어 초군楚軍를 입지 않은 것을 축하祝賀하였다.注+전년前年초군楚軍궐맥厥貉에 주둔하여 나라를 토벌하려 하였다.
[傳]鄋瞞侵齊注+鄋瞞 狄國名 防風之後 漆姓 [附注] 林曰 在夏爲防風氏 商爲汪芒氏하고 遂伐我하다
수만鄋瞞나라를 침공侵攻하고서注+수만鄋瞞국명國名이다. 방풍씨防風氏의 후손으로 칠성漆姓이다. [부주]林: 나라 때는 방풍씨防風氏라 하였고, 나라 때는 왕망씨汪芒氏라 하였다. 드디어 우리나라를 침벌侵伐하였다.
公卜使叔孫得臣追之하니하다
숙손득신叔孫得臣을 보내어 수만군鄋瞞軍추격追擊하게 하는 것이 어떤지에 대해 을 치니 하였다.
侯叔夏御莊叔注+莊叔 得臣하고 緜房甥爲右하고 富父終甥注+駟乘 四人共車하야 冬十月甲午 敗狄于鹹하고 獲長狄僑如하다注+僑如 鄋瞞國之君 獲僑如不書 賤夷狄也
이에 후숙하侯叔夏장숙莊叔로,注+장숙莊叔득신得臣이다.면방생綿房甥거우車右로, 부부종생富父終生사승駟乘으로 삼아,注+사승駟乘은 네 사람이 한 수레를 함께 타는 것이다. 겨울 10월 갑오일甲午日적인狄人에서 패배敗北시키고 장적교여長狄僑如생포生捕하였다.注+교여僑如수만국鄋瞞國의 임금으로 신장身長이 거의 3이었다. 교여僑如의 생포를 에 기록하지 않은 것은 이적夷狄하게 여겨서이다.
富父終甥摏其喉以戈殺之注+摏 猶衝也 [附注] 林曰 以戈衝僑如之咽하니 注+子駒 魯郭門 骨節非常 恐後世怪之 故詳其處하고 以命宣伯하다注+得臣待事而 因名宣伯曰僑如 以旌其功
부부종생富父終甥이 창으로 그 목을 찔러 죽이니,注+(찌름)과 같다. [부주]林: 창으로 교여僑如의 목을 찌른 것이다.득신得臣은 그 머리를 자구문子駒門 밑에 묻고서注+자구子駒나라 외곽外郭이다. 교여僑如골절骨節이 보통사람들과 달라 후세後世 사람들이 괴이하게 여길까 두려웠기 때문에 묻은 곳을 상세히 기록한 것이다. 자기의 아들 선백宣伯의 이름을 교여僑如로 지었다.注+득신得臣은 큰 사건事件이 일어나기를 기다려 그 세 아들의 이름을 짓기로 하였다가 이번 일로 인해 선백宣伯의 이름을 교여僑如로 지어 자기의 을 드러내었다.
宋武公之世 鄋瞞伐宋注+在春秋前하니 司徒皇父帥師禦之할새
당초에 송무공宋武公수만鄋瞞나라를 침벌侵伐하니注+춘추春秋 이전에 있었다.사도司徒황보皇父가 군대를 거느리고서 방어防禦하였다.
班御皇父充石注+皇父 戴公子 充石 皇父名하고 公子穀甥爲右하고 司寇牛父駟乘하야 以敗狄于長丘注+長丘 宋地하고 獲長狄緣斯하다注+緣斯 僑如之先
이반耏班황보충석皇父充石로,注+황보皇父대공戴公의 아들이다. 충석充石황보皇父의 이름이다.공자公子곡생穀甥거우車右로, 사구司寇우보牛父사승駟乘으로 삼아 적인狄人장구長丘에서 패배시키고서注+장구長丘나라 땅이다.장적연사長狄緣斯를 잡았다.注+연사緣斯교여僑如선대先代이다.
注+皇父與穀生及牛父皆死 故耏班獨受賞하니 宋公於是以門賞耏班하야 使食其征注+門 關門 征 稅也하고 謂之耏門이라하다注+[附注] 林曰 以門賞耏班 故以班之姓 名其門
황보皇父와 두 사람은 전사戰死하였기 때문에注+황보皇父곡생穀甥우보牛父는 모두 전사戰死하였기 때문에 이반耏班만이 홀로 을 받은 것이다.송공宋公이반耏班에게 관문關門 하나를 으로 주어 관세關稅를 받아먹게 하고서 그 관문關門을 ‘이문耏門’이라고 하였다.注+관문關門이고, 이다.
晉之滅潞也注+在宣十五年 獲僑如之弟焚如하고 齊襄公之二年注+魯桓之十六年 鄋瞞伐齊하니 注+榮如 焚如之弟 焚如後死而先說者 欲其兄弟伯季相次 榮如以魯桓十六年死 至宣十五年 百三歲 其兄猶在 傳言旣長且壽 有異於人 王子成父 齊大夫하야 埋其首於周首之北門注+周首 齊邑 濟北穀城縣東北有周首亭하고 衛人獲其季弟簡如注+伐齊退走 至衛見獲하니 鄋瞞由是遂亡하다注+長狄之種絶
나라가 노국潞國할 때注+[부주]林: 관문關門이반耏班에게 으로 주었기 때문에 을 그 관문關門의 이름으로 삼은 것이다.교여僑如의 아우 분여焚如를 잡았고, 제양공齊襄公 2년에注+선공宣公 15년에 보인다. 수만鄋瞞나라를 침벌侵伐하자 나라 대부大夫왕자王子성보成父분여焚如의 아우 영여榮如를 잡아注+노환공魯桓公 16년이다.주수周首북문北門 밑에 묻고,注+영여榮如분여焚如의 아우이다. 분여焚如가 뒤에 죽었는데 먼저 말한 것은 형제兄弟백계伯季에 따라 순서대로 기록하고자 해서이다. 영여榮如가 죽은 노환공魯桓公 16년에서 선공宣公 15년까지는 1백 3년의 세월이 흘렀는데 이때까지 그 이 살아 있었다. 의 말은 신장身長이 크고 장수長壽한 것이 보통사람과 달랐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왕자王子성보成父나라 대부大夫이다.위인衛人은 그 막내아우 간여簡如를 잡으니,注+주수周首나라 이다. 제북濟北곡성현穀城縣 동북쪽에 주수정周首亭이 있다.수만鄋瞞은 이로 말미암아 드디어 멸망滅亡하였다.注+나라를 치다가 퇴주退走하여 나라로 갔다가 사로잡힌 것이다.注+장적長狄종자種子가 끊긴 것이다.
[傳]郕大子朱儒自安於夫鍾注+安 處也 夫鍾 郕邑하니 國人弗徇하다注+徇 順也 爲明年郕伯來奔傳
나라 태자太子주유朱儒가 자기 혼자서 부종夫鐘에 거처하니注+거처居處하는 것이다. 부종夫鍾나라 이다.국인國人이 그를 순종順從하지 않았다.注+이다. 명년明年성백郕伯나라로 도망해 온 의 배경이다.
역주
역주1 麋[麇] : 저본에는 ‘麋’로 되어 있으나 《十三經注疏》本에 의거하여 ‘麇’으로 바로잡았다. 이후의 ‘麋’字를 ‘麇’字로 고친 것도 이와 같다.
역주2 卽位而來見也 : 임금이 즉위하면 이웃나라를 방문하는 것이 禮이다.
역주3 駟乘 : 兵車에 將軍은 왼쪽, 御는 중앙, 車右는 오른쪽에 타는 것이 常例인데 이를 驂乘이라 하고, 이 밖에 한 사람이 더 탈 경우 이를 ‘駟乘’이라 하는데, 그 職은 車右의 助手이다.
역주4 蓋長三丈 : 《國語》 〈魯語〉에 “이 사람의 身長이 3尺인 난장이의 열 배이다.”고 하였기 때문에 3丈이라고 한 것이다.
역주5 侯[喉] : 저본에는 ‘侯’로 되어 있으나 《四庫全書左傳杜林合注》本에 의거하여 ‘喉’로 바로잡았다.
역주6 埋其首於子駒之門 : 그 머리를 묻은 것은 功을 드러내기 위함이었다. 杜注의 설은 穿鑿(牽强附會)이다. 《左氏會箋》
역주7 名其三子 : 得臣은 이번 戰爭에 僑如‧虺‧豹를 잡아죽이고는 그 功을 드러내기 위해 세 아들의 이름을 僑如‧虺‧豹로 지었다. 〈襄公 30년 傳〉
역주8 : 이
역주9 皇父之二子死焉 : 之는 與의 뜻으로 쓰였다. 두 사람은 穀生과 牛父이다.
역주10 齊襄公之二年……獲其弟榮如 : 《史記》 〈魯世家〉에 이 傳文을 인용한 곳에 “齊惠公 2년이다.”고 하였고, 또 齊世家에도 “惠公 2년에 長翟이 來侵하자 王子城父가 공격해 죽였다.”고 하였고, 十二諸侯年表에도 “王子成父가 長翟을 패배시켰다.”고 기록되어 있으니, 襄公은 惠公으로 고쳐야 하니, 傳寫하는 과정에서 잘못된 것이다. 齊惠公 2년은 바로 魯宣公 2년으로 晉나라가 潞國을 擊滅하기 12년 전이다. 杜注에 “榮如가 죽은 魯桓公 16년에서 魯宣公 15년까지가 1백 3년이다.……”고 한 것은 杜氏가 이미 잘못된 板本을 보았기 때문이 이렇게 말한 것이다. 그러나 사리로 헤아려 볼 때 통하지 않는 말이다. 《左氏會箋》. 楊伯峻의 《春秋左傳注》에도 “襄公의 ‘襄’字는 《史記》에 따라 ‘惠’로 고쳐야 한다.”고 하였다.
역주11 二[一] : 저본에는 ‘二’로 되어 있으나 《十三經注疏》本에 의거하여 ‘一’로 바로잡았다.

춘추좌씨전(2) 책은 2019.05.2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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