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春秋左氏傳(7)

춘추좌씨전(7)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춘추좌씨전(7)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經]五年春王三月辛亥朔 日有食之注+無傳하다
5년 봄 주왕周王 3월 초하루 신해일辛亥日일식日食이 있었다.注+이 없다.
[經]夏 歸粟于蔡注+蔡爲楚所圍 飢乏 故魯歸之粟하다
여름에 나라에 양곡糧穀을 보내주었다.注+나라가 초군楚軍에게 포위되어 굶주렸기 때문에 나라가 양곡糧穀을 보내준 것이다.
[經]於越入吳注+於 發聲也 [附注] 林曰 向曰越人 今曰於越 復從其舊號也 越未有聞也 昭定之春秋 吳楚爭而後 越入中國 昭五年會于瑣也 而亟稱人 後三十年而入吳 不復稱人矣 晉楚之初 春秋未以敵言之 戰于邲也 則楚稱子矣 吳楚之初 春秋未以敵言之 戰于柏擧也 則吳稱子矣 至於吳越 終春秋 不以敵言之也 是故越入吳書 吳入越不書하다
월인越人나라로 쳐들어갔다.注+발어성發語聲이다. [부주]林: 전에는 ‘월인越人’이라 하고서 지금은 ‘어월於越’이라 한 것은 다시 〈나라의〉 구호舊號를 따른 것이다. 이는 나라가 널리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소공昭公정공定公의 《춘추春秋》에는 나라와 나라가 패권霸權을 다툰 뒤에 월인越人중국中國으로 들어왔다. 소공昭公 5년에 있었던 회합會合나라 상수과常壽過를 비로소 에 기재하고 누차 ‘’으로 칭하였는데, 그로부터 30년 뒤인 〈정공定公 5년에〉 나라로 쳐들어간 것을 기록함에는 다시 ‘’으로 칭하지 않았다. 나라와 나라가 패권霸權을 다툰 초기에는 《춘추春秋》에 를 대등[敵]하게 말하지 않았으나, 의 전쟁에는 를 ‘’로 칭하였고, 나라와 나라가 패권을 다툰 초기에는 《춘추春秋》에 를 대등하게 말하지 않았으나, 백거柏擧의 전쟁에는 를 ‘’로 칭하였다. 나라와 나라에 대해서는 《춘추春秋》가 끝날 때까지 대등하게 말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나라가 나라로 쳐들어간 것은 기록하고 나라가 나라로 쳐들어간 것은 기록하지 않은 것이다.
[經]六月丙申 季孫意如卒하다
6월 병신일丙申日계손의여季孫意如하였다.
[經]秋七月壬子 叔孫不敢卒注+無傳하다
가을 7월 임자일壬子日숙손불감叔孫不敢하였다.注+이 없다.
[經]冬 晉士鞅帥師圍鮮虞하다
겨울에 나라 사앙士鞅이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선우鮮虞를 포위하였다.
[傳]五年春 王人殺子朝于楚注+因楚亂也 終하다
5년 봄에 왕인王人(周나라 왕실王室관원官員)이 나라에서 자조子朝를 죽였다.注+나라가 혼란한 틈을 이용한 것이다. 끝내 민마보閔馬父(閔子馬)의 말처럼 된 것이다.
[傳]夏 歸粟于蔡하야 注+亟 急也 [附注] 林曰 以周濟蔡人之亟難 矜哀蔡人之無資糧니라
여름에 나라에 양곡糧穀을 보내어 위급危急[亟]을 구제救濟[周]하였으니, 이는 양식糧食[資]이 없는 것을 가엾게 여겨서이다.注+이다. [부주]林: 채인蔡人급난急難을 구제하고 양식糧食이 없는 채인蔡人을 가엾게 여긴 것이다.
[傳]越入吳하니 吳在楚也注+[附注] 林曰 乘吳之在楚而入其國也
월군越軍나라로 쳐들어갔으니, 이는 오군吳軍나라에 들어가 있는 기회를 이용한 것이다.注+[부주]林: 오군吳軍나라에 가 있는 기회를 이용하여 나라로 쳐들어간 것이다.
[傳]六月 季平子行東野注+東野 季氏邑하고타가 未至하고 丙申 卒于房하다
6월에 계평자季平子동야東野순행巡行하고注+동야東野계씨季氏이다. 돌아오다가 국도國都에 이르지 못하고 병신일丙申日(地名)에서 하였다.
陽虎將以璵璠斂注+璵璠 美玉 君所佩한대 仲梁懷弗與注+懷 亦季氏家臣注+昭公之出 季孫行君事 佩璵璠 祭宗廟 今定公立 復臣位 改君步 則亦當去璵璠이라
양호陽虎여번璵璠(寶玉)를 에 넣으려 하니注+여번璵璠는 아름다운 으로 임금이 차는 것이다. , 중량회仲梁懷동의同意[與]하지 않으며注+계씨季氏가신家臣이다. 말하기를 “걸음걸이를 바꾸었으니 도 바꾸어야 한다.注+소공昭公출분出奔하고 국내에 없을 때는 계손季孫이 임금의 일을 대행代行하여 여번璵璠을 차고서 종묘宗廟에 제사를 지냈지만, 지금은 정공定公즉위卽位하여 계손季孫이 신하의 자리로 돌아가서 임금의 걸음걸이를 고쳤으니, 당연히 여번璵璠도 버려야 한다는 말이다. ” 하였다.
陽虎欲逐之하야 告公山不狃한대 不狃曰 彼爲君也 子何怨焉注+不狃 季氏臣費宰子洩也 爲君不欲使僭
양호陽虎는 그를 축출逐出하려고 공산불뉴公山不狃에게 하자, 불뉴不狃가 말하기를 “저 사람이 주군主君(季平子를 이름)을 위해 그러는 것이니 그대가 원망할 게 뭐 있습니까?注+불뉴不狃계씨季氏가신家臣으로 비재費宰자설子洩이다. 주군主君을 위해 참례僭禮를 사용하고자 하지 않은 것이다. ”라고 하였다.
旣葬 桓子行東野注+桓子 意如子 季孫斯하야 及費하다
장사葬事를 지낸 뒤에 환자桓子동야東野순행巡行하여注+환자桓子의여意如의 아들 계손사季孫斯이다.비읍費邑에 이르렀다.
子洩爲費宰하야 逆勞於郊하니 桓子敬之하다
자설子洩(不狃)이 읍재邑宰교외郊外까지 나와 맞이해 위로하니, 환자桓子는 그에게 경의敬意를 표하였다.
勞仲梁懷하니 仲梁懷弗敬注+懷 時從桓子行 輕慢子洩하다
중량회仲梁懷를 위로하니 중량회仲梁懷경의敬意를 표하지 않았다.注+가 이때 환자桓子를 따라갔다. 자설子洩경시輕視하여 업신여긴 것이다.
子洩怒하야 謂陽虎호되 子行之乎注+行 逐懷也 爲下陽虎囚桓子起ᄂ저
자설子洩은 노하여 양호陽虎에게 “그대는 중량회仲梁懷축출逐出하십이오.注+축출逐出함이다. 하문下文양호陽虎환자桓子를 잡아 가둔 원인이다. ”라고 하였다.
[傳]申包胥以秦師至하다
신포서申包胥진군秦軍을 거느리고 왔다.
秦子蒲子虎帥車五百乘以救楚注+五百乘 三萬七千五百人하다
나라 자포子蒲자호子虎병거兵車 5을 거느리고서 나라를 구원救援하기 위해 왔다.注+오백승五百乘은 3만 7500명이다.
子蒲曰 注+道 猶法術也 [附注] 林曰 言我未知制吳之法術라하고 使楚人先與吳人戰하고 而自稷會之하야 大敗夫槩王于沂注+稷沂 皆楚地하다
자포子蒲가 말하기를 “우리는 오군吳軍의 전술[道]을 알지 못한다.注+법술法術(方法)과 같다. [부주]林: 나는 오군吳軍제압制壓할 방법을 알지 못한다는 말이다. ”고 하고서 초인楚人에게 먼저 오인吳人전투戰鬪하게 하고서 에서 초군楚軍회합會合하여 에서 부개왕夫槩王의 군대를 대패大敗시켰다.注+는 모두 나라 땅이다.
吳人獲薳於柏擧注+薳射 楚大夫하니 其子帥奔徒注+奔徒 楚散卒以從子西하야 敗吳師於軍祥注+楚地하다
오인吳人백거柏擧에서 위석薳射을 사로잡으니注+위석薳射나라 대부大夫이다., 그 아들이 분산奔散하는 군대를 거느리고注+분도奔徒도산逃散하는 나라 군졸軍卒이다.자서子西의 군대로 가서 군상軍祥에서 오군吳軍을 패배시켰다.注+나라 땅이다.
秋七月 子期子蒲滅唐注+從吳伐楚故하다
가을 7월에 자기子期자포子蒲나라를 격멸擊滅하였다.注+오군吳軍을 따라 나라를 쳤기 때문이다.
九月 夫槩王歸하야 自立也하야 以與王戰而敗注+自立爲吳王 號夫槩하고 奔楚하야 爲堂谿氏注+傳終言之하다
9월에 부개왕夫槩王나라로 돌아가서 스스로 임금이 되어, 오왕吳王합려闔廬전쟁戰爭하다가 패배敗北하고서注+스스로 오왕吳王이 되어 부개夫槩라 하였다.나라로 달아나 당계씨堂谿氏가 되었다.注+전문傳文최종最終결과結果를 말한 것이다.
吳師敗楚師于雍澨러니 秦師又敗吳師하다
오군吳軍옹서雍澨에서 초군楚軍을 패배시키자, 진군秦軍이 다시 오군吳軍을 패배시켰다.
吳師居麇注+麇 地名하니 子期將焚之注+[附注] 林曰 將以火攻吳師한대
오군吳君주둔駐屯하니注+지명地名이다., 자기子期을 불태우려 하였다.注+[부주]林: 불로써 오군吳軍을 공격하려 한 것이다.
子西曰 父兄親이어늘 不能收하고 又焚之 不可注+前年楚人與吳戰 多死麇中 言不可幷焚하다 子期曰 國亡矣
그러자 자서子西가 말하기를 “그곳에 부형父兄친척親戚시골尸骨이 널려 있는데, 수습하지 않고 도리어[又] 불을 놓는다면 〈그 시골尸骨까지 함께 탈 것이니〉 안 될 일이오.注+전년前年초인楚人오군吳軍전투戰鬪할 때 균중麇中에서 죽은 자가 많으니, 그 시신屍身까지 함께 태울 수 없다는 말이다. ”라고 반대하니, 자기子期가 말하기를 “나라가 망하게 되었습니다.
死者若有知也 可以歆舊祀注+言焚吳復楚 則祭祀不廢리니 豈憚焚之리오 焚之而又戰하니 吳師敗하다
죽은 이들이 만약 앎이 있다면 〈불을 놓아 오군吳軍을 물리쳐야 나라가 보존되어〉 제사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注+불로 오군吳軍을 공격하여 나라를 수복收復하면 제사祭祀가 끊기지 않는다는 말이다. 〈알 것이니〉 어찌 불태워지는 것을 꺼리겠습니까?”라고 하고서, 불을 지르고서 또 공격攻擊하니 오군吳軍이 패배하였다.
又戰于公壻之谿注+楚地名하야 吳師大敗하니 吳子乃歸하다
공서公壻계곡谿谷에서 전투하여注+나라 지명地名이다.오군吳軍대패大敗하니, 오자吳子는 이에 나라로 돌아갔다.
囚闉輿罷러니 闉輿罷請先하야 遂逃歸注+輿罷 楚大夫 請先至吳而逃歸 言吳唯得楚一大夫 復失之 所以不克하다
나라 대부大夫인여파闉輿罷를 포로로 잡았더니, 인여파闉輿罷가 먼저 나라로 가기를 청하여 〈나라로 가다가〉 드디어 도망해 나라로 돌아갔다.注+여파輿罷나라 대부大夫이다. 먼저 나라로 가기를 청하여 가다가 도망해 돌아온 것이다. 나라가 오직 나라의 한 대부大夫만을 잡았을 뿐인데, 다시 그를 놓쳤기 때문에 승리勝利하지 못하였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葉公諸梁之弟后臧從其母於吳러니 注+諸梁 司馬沈尹戌之子 葉公子高也 吳入楚 獲后臧之母 楚定 臧棄母而歸한대 葉公終不正視注+不義之하다
섭공葉公제량諸梁의 아우 후장后臧이 그 어머니와 함께 나라로 잡혀가 있었는데, 기다리지 않고 도망쳐 돌아오니注+제량諸梁사마司馬심윤沈尹의 아들 섭공葉公자고子高이다. 오군吳軍나라에 침입侵入하였을 때 후장后臧의 어머니를 잡아갔는데, 나라가 안정安定되자 후장后臧은 어머니를 버리고 혼자 도망쳐 돌아왔다. , 섭공葉公종신終身토록 그 아우를 바른 눈으로 보지 않았다.注+의롭지 못한 인간으로 여겨서이다.
[傳]乙亥 陽虎囚季桓子及公父文伯注+文伯 季桓子從父昆弟也 陽虎欲爲亂 恐二子不從 故囚之하고 而逐仲梁懷注+[附注] 林曰 以其不順己故하다
을해일乙亥日양호陽虎계환자季桓子공보목백公父文伯을 잡아 가두고注+문백文伯계환자季桓子종부형제從父兄弟(從兄弟)이다. 양호陽虎을 일으키려 하였으나, 이 두 사람이 따르지 않을 것이 두려웠다. 그러므로 잡아 가둔 것이다., 중량회仲梁懷축출逐出하였다.注+[부주]林: 중량회仲梁懷가 자기에게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冬十月丁亥 殺公何藐注+藐 季氏族하다
겨울 10월 정해일丁亥日공하묘公何藐를 죽였다.注+계씨季氏종족宗族이다.
己丑 盟桓子于稷門之內注+魯南城門하고 庚寅注+[附注] 林曰 詛 謂違盟者當受罰하다
기축일己丑日환자桓子직문稷門 안에서 맹약盟約하고注+노성魯城남문南門이다. , 경인일庚寅日에 많은[大] 사람과 저주詛呪하였다.注+[부주]林: 맹약盟約을 어기는 자는 응당 을 받을 것임을 이른다.
逐公父歜及秦遄하니 皆奔齊注+歜 卽文伯也 秦遄 平子姑壻也 傳言季氏之亂하다
공부촉公父歜진천秦遄을 축출하니, 이들은 모두 나라로 도망갔다.注+는 바로 문백文伯이고, 진천秦遄평자平子고서姑壻(姑母夫)이다. 전문傳文계씨季氏화란禍亂을 말한 것이다.
[傳]楚子入于郢注+吳師已歸하다
초자楚子영도郢都로 들어갔다.注+오군吳軍이 이미 돌아갔기 때문이다.
初鬪辛聞吳人之爭宮也하고
당초에 투신鬪辛오인吳人들이 궁실宮室을 다툰다는 말을 듣고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吾聞之컨대 不讓則不和하고 不和 不可以遠征注+[附注] 林曰 不能久遠征役이라하여늘
“내 듣건대 ‘겸양하지 않으면 화목和睦하지 못하고 화목하지 못하면 원정遠征할 수 없다.注+[부주]林: 오래도록 전쟁戰爭할 수 없다는 말이다. ’고 하였다.
吳爭於楚하니 必有亂이오 有亂이면 則必歸리니 焉能定楚注+[附注] 林曰 安能定楚之地리오
그런데 오인吳人나라에 와서 서로 다투니 반드시 화란禍亂이 생길 것이요, 화란이 생기면 반드시 돌아갈 것이니, 어찌 나라를 평정平定할 수 있겠는가?注+[부주]林: 어찌 나라 땅을 평정할 수 있겠느냐는 말이다.
王之奔隨也 將涉於成臼注+江夏 竟陵縣西有臼水 出聊屈山 西南入漢러니 藍尹亹涉其帑注+亹 楚大夫 [附注] 林曰 先在臼水 涉其妻子하고 不與王舟하다
초왕楚王나라로 도망갈 때 성구成臼를 건너려 하였는데注+강하江夏경릉현竟陵縣 서쪽에 구수臼水가 있는데, 요굴산聊屈山에서 발원發源하여 서남쪽으로 흘러 한수漢水로 들어간다., 이때 남윤藍尹가 자기의 처자妻子를 건너게 하려고注+나라 대부大夫이다. [부주]林: 먼저 구수臼水로 가서 그 처자妻子를 건너게 한 것이다. 에게 배[舟]를 주지 않았다.
及寧하야 王欲殺之注+寧 安定也한대 子西曰 子常唯思舊怨以敗
나라가 안정된 뒤에 미쳐 를 죽이려 하자注+안정安定이다. , 자서子西가 말하기를 “자상子常은 오직 옛 원한怨恨만을 생각하였기 때문에 실패한 것입니다.
君何效焉이리오 王曰 善타하고 使復其所注+[附注] 林曰 使藍尹亹 復其所職하야 吾以志前惡注+惡 過也 [附注] 林曰 我用此以識前日之過이라하다
임금님께서는 어찌 그를 본받으려 하십니까?”라고 하니, 은 “좋은 말이다.”고 하고서 를 원래의 직위職位로 회복시키고서注+[부주]林: 남윤藍尹를 전의 관직官職으로 복직復職시킨 것이다. “나는 이로써 지난날의 잘못을 기억하겠노라.注+(허물)이다. [부주]林: 나는 이로써 전일의 과오를 기억하겠다는 말이다.”고 하였다.
王賞鬪辛王孫由于王孫圉鍾建鬪巢申包胥王孫賈宋木鬪懷注+九子皆從王有大功者한대 子西曰 請舍懷也注+ [附注] 林曰 請棄懷勿賞하소서 王曰 大德滅小怨 道也注+ 是大德
투신鬪辛, 왕손유우王孫由于, 왕손어王孫圉, 종건鍾建, 투소鬪巢, 신포서申包胥, 왕손가王孫賈, 송목宋木, 투회鬪懷에게 을 주려 하자注+아홉 사람은 모두 수종隨從한 큰 이 있는 자들이다. , 자서子西가 “투회鬪懷제외除外시키소서.注+당초에 초왕楚王시해弑害하려고 모의謀議하였기 때문이다. [부주]林: 는 〈수상자受賞者명단名單에서〉 빼버리고 을 주지 말라는 말이다. ”라고 하니, 이 말하기를 “큰 은덕恩德만을 생각하고 작은 원한怨恨은 덮어두는 것이 바른 도의道義이다.注+마침내 그 을 따라 대난大難에서 벗어나게 하였으니, 이것이 대덕大德이다. ”고 하였다.
申包胥曰 吾爲君也 非爲身也
신포서申包胥가 말하기를 “내가 〈나라로 가서 원병援兵을 청한 것은〉 임금님을 위해서이지 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君旣定矣 又何求리오
임금님께서 이미 안정安定을 찾으셨으니 다시 무엇을 바라겠습니까?
하니 其又爲諸注+子旗 蔓成然也 以有德於平王 求欲無厭 平王殺之 在昭十四年아하고 遂逃賞하다
더구나[且] 나는 자기子旗를 나무랐으니, 어찌 또 그런 짓을 할 수 있겠습니까?注+자기子旗만성연蔓成然이다. 평왕平王을 〈도와 임금이 되게 한〉 공덕功德이 있다 하여 욕구欲求가 끝이 없어서 평왕平王이 그를 죽였다. 이 일은 소공昭公 14년 에 보인다. ”라고 하고서 드디어 을 피해 도망하였다.
王將嫁季羋하니 季羋辭曰 所以爲女子 遠丈夫也注+[附注] 林曰 遠丈夫以重男女之別也어늘 鍾建負我矣라하니 以妻鍾建하야 以爲樂尹注+司樂大夫하다
계미季羋를 시집보내려 하자, 계미季羋가 거절하며 말하기를 “여자女子장부丈夫(남자)를 멀리해야 하는데注+[부주]林: 장부丈夫(남자)를 멀리하여 남녀男女의 분별을 존중尊重한다는 말이다. , 종건鍾建이 나를 업은 일이 있습니다.”고 하니, 계미季羋종건鍾建의 아내로 주고서 그를 악윤樂尹으로 삼았다.注+음악音樂을 맡은 대부大夫이다.
王之在隨也 注+脾洩 楚邑也 失王 恐國人潰散 故僞爲王車服 立國脾洩 以保安道路人이라가 聞王所在하고 而後從王하다
초소왕楚昭王나라에 있을 때, 자서子西는 〈이 계시는 것처럼 위장僞裝하여〉 의 수레와 복장服裝을 만들고 비설脾洩에 나라를 세워 도로道路에 떠도는 군민軍民을 보호하다가注+비설脾洩나라 이다. 을 잃었으니 국인國人궤산潰散할까 두려웠다. 그러므로 〈이 계신 것처럼〉 위장僞裝하여 거복車服을 만들고 비설脾洩에 나라를 세워서 도로道路에 떠도는 사람들을 보호해 안정시킨 것이다. 소왕昭王이 있는 곳을 안 뒤에는 소왕昭王을 찾아갔다.
王使由于城麇注+於麇築城러니 復命이어늘 子西問高厚焉하니 弗知注+[附注] 林曰 城畢反命於君 子西問築城高厚幾許 由于不知其數하다
소왕昭王유우由于를 보내어 에 성을 쌓게 하였는데注+을 쌓은 것이다., 〈유우由于축성築城을 끝내고 돌아와서〉 복명復命하자, 자서子西가 성의 높이와 두께를 물으니 알지 못하였다.注+[부주]林: 축성築城을 마치고 초군楚君에게 복명復命할 때 자서子西가 ‘쌓은 의 높이와 두께가 몇 이냐.’고 묻자, 유우由于는 그 척수尺數를 알지 못한 것이다.
子西曰 不能이면 如辭注+言自知不能 當辭勿行니라
자서子西가 말하기를 “능력이 없으면 당연히[如] 사양했어야 합니다.注+능력이 없음을 스스로 알았으면 당연히 사양하고 가지 말았어야 했다는 말이다.
城不知高厚하니 小大何知注+[附注] 林曰 築城尙不知其高厚小大之數 當復與知何事 [附注] 朱曰 築城而不知其高厚丈尺 豈復知城之小大乎리오 對曰 固辭不能注+[附注] 林曰 言我固嘗辭不能矣이로되 子使余也注+[附注] 林曰 子 謂子西 必欲使余往也니라
의 높이와 두께도 모르니 크고 작음을 어찌 알겠습니까?注+[부주]林: 을 쌓으면서 고후高厚소대小大척수尺數도 몰랐으니 다시 무슨 일을 알 수 있겠느냐는 말이다. [부주]朱: 을 쌓으면서 고후高厚척수尺數를 몰랐으니 어찌 다시 대소大小를 알겠느냐는 말이다. ”라고 하니, 유우由于가 대답하기를 “능력이 없다고 굳이 사양하는데도注+[부주]林: 나는 능력이 없다고 고사固辭하였다는 말이다. 당신이 나를 보냈습니다.注+[부주]林: 자서子西를 이른다. 당신이 반드시 나를 보내고자 하였다는 말이다.
人各有能有不能이라
사람에게는 각각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이 있습니다.
王遇盜於雲中 余受其戈하니 其所猶在注+[附注] 朱曰 遭傷之處見存라하고 袒而視之背曰 此余所能也어니와 脾洩之事 余亦弗能也注+傳言昭王所以復國 有賢臣也
께서 운중雲中에서 도적盜賊을 만났을 때 내가 도적의 창을 받았는데 그때 입은 상처가 아직까지 남아 있습니다.注+[부주]朱: 상처를 입은 자리가 지금까지 남아 있다는 말이다. ”고 하고서 웃통을 벗어 그 등을 보여주며 말하기를 “이런 일은 내가 능히 할 수 있는 바이지만 비설脾洩의 일은 내가 능히 할 수 있는 바가 아닙니다.注+전문傳文소왕昭王이 나라를 되찾은 것은 현신賢臣이 있었기 때문임을 말한 것이다. ”고 하였다.
[傳]晉士鞅圍鮮虞하야 報觀虎之敗也注+三年 鮮虞獲晉觀虎
나라 사앙士鞅선우鮮虞를 포위하였으니, 이는 관호觀虎패배敗北를 보복하기 위함이었다.注+노정공魯定公 3년에 선우鮮虞나라 관호觀虎를 포로로 잡았다.
역주
역주1 越常壽過始見於經 : 昭公 5년 經에 常壽過를 ‘越人’으로 칭한 것을 이른다.
역주2 閔馬父之言 : 昭公 22년 傳에 “子朝는 반드시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고 한 閔馬父의 말을 이른다.
역주3 以周亟 矜無資 : 糧穀을 보내주어 危急한 처지에 있는 蔡人을 救濟한 것은 糧食이 없는 蔡人을 딱하게 여겨서라는 말이지, 林氏의 말처럼 危急한 처지에 있는 蔡人을 救濟하고 糧食이 없는 蔡人을 가엾게 여겼다는 말이 아니다.
역주4 改步改土[玉] : 저본에는 改玉의 ‘玉’자가 ‘土’로 되어 있으나, 《十三經注疏》本에 의거하여 바로잡았다. 改步改玉은 步幅을 바꾸었으니 佩玉도 바꾸어야 한다는 말로 임금의 일을 代行하는 자리에서 물러나 신하의 지위로 돌아왔으니 임금의 佩玉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禮記》 〈玉藻〉에 “임금이 尸와 함께 걸을 때에 임금은 接武(尸가 디딘 발자국의 반을 밟고 감)하고, 大夫는 繼武(尸가 디딘 발자국의 끝을 밟고 감)하고, 士는 中武(尸가 디딘 발자국에서 발 하나의 간격을 두고 따라감)한다.”고 하였으니, 각각 步幅에 廣狹이 다르다. 보폭의 廣狹을 바꾸었으면 당연히 佩玉의 등급도 바꾸어야 한다는 말이다.
역주5 我未知吳道 : 秦軍은 吳軍과 交戰한 경험이 없기 때문에 吳軍의 戰法을 모른다는 말이다. 《左氏會箋》
역주6 : 석
역주7 暴骨 : 收拾하지 않아 草野에 버려진 채 여기저기 어지럽게 널려 있는 屍身을 이른다.
역주8 不待而歸 : 그 어머니가 釋放될 때를 기다리지 않고 먼저 도망쳐 돌아온 것이다.
역주9 : 盟約을 어기는 자에게 罰을 내리라고 神에게 祈求함이다.
역주10 以初謀弑王也 : 작년에 楚昭王이 鄖으로 도망갔을 때 鄖公辛의 아우 懷가 그 兄에게 昭王을 죽이자고 한 일을 이른다.
역주11 終從其兄 免王大難 : 懷가 마침내 그 兄과 함께 昭王을 모시고 隨나라로 도망가서 昭王을 禍難에서 벗어나게 하였다는 말인데, 傳文에는 ‘鬪辛이 그 아우 巢와 함께 昭王을 모시고 隨나라로 도망갔다.’고 하였고, 懷도 함께 모시고 갔다고 말하지 않았다.
역주12 吾尤子旗 : 申包胥가 子旗를 나무란 일은 傳文에 보이지 않는다.
역주13 子西爲王輿服以保路 國于脾洩 : 杜注에 따라 以保路와 國于脾洩를 倒置시켜 번역하였다. 王의 所在를 알 수 없으니, 人心이 動搖할 것을 憂慮한 子西는 임금이 있는 것처럼 僞裝하여 王의 車服을 만들고 脾洩에 政府를 세워서 道路人(떠도는 사람들)을 보호해 안정시켰다는 뜻이다.

춘추좌씨전(7) 책은 2019.05.2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18 By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