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春秋左氏傳(7)

춘추좌씨전(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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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좌씨전(7)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經]十有三年春 鄭罕達帥師取宋師于嵒注+書取 覆而敗之하다
[經]夏 許男成卒注+無傳 하다
[經]公會晉侯及吳子于黃池注+陳留封丘縣南有黃亭 近濟水 夫差欲霸中國 尊天子 自去其僣號而稱子 以告令諸侯 故史承而書之 하다
[經]楚公子申帥師伐陳注+無傳 하다
[經]於越入吳하다
[經]秋 公至自會注+無傳하다
[經]晉魏曼多帥師侵衛注+無傳하다
[經]葬許元公注+無傳하다
[經]九月注+無傳 書 災하다
[經]冬十有一月 有星孛于東方注+無傳 平旦衆星皆沒 而孛乃見 故不言所在之次하다
[經]盜殺陳夏區夫注+無傳 稱盜 非大夫하다
[經]十有二月注+無傳 前年季孫雖聞仲尼之言 而不正歷 失閏至此年 故復十二月螽 實十一月하다
[傳]十三年春 宋向魋救其師注+救前年圍嵒師하다
鄭子賸使徇注+[附注] 林曰 鄭子賸卽罕達曰 得桓魋者 有賞하리라 魋也逃歸어늘
遂取宋師于嵒하고 獲成讙郜延注+二子 宋大夫하다 以六邑爲虛注+空虛之 各不有하다
[傳]夏 公會單平公晉定公吳夫差于黃池注+平公 周卿士也 不書 尊之 不與會하다
六月丙子 越子伐吳注+[附注] 林曰 句踐因夫差在會 乘虛伐吳할새 爲二隧注+隧 道也하야 疇無餘謳陽自南方注+二子 越大夫하야 先及郊하니 吳大子友王子地王孫彌庸壽於姚自泓上觀之注+觀越師 泓 水名하다
彌庸見姑蔑之旗注+姑蔑 越地 今東陽大末縣하고 曰 吾父之旗也注+彌庸父爲越所獲 故姑蔑人得其旌旗 不可以見讐而弗殺也로라
大子曰 戰而不克이면 將亡國注+[附注] 林曰 國虛 故懼亡이니 請待之하노라
彌庸不可라하고 徒五千注+屬 會也하니 王子地助之하다
乙酉하야 彌庸獲疇無餘하고 地獲謳陽하다
越子至注+[附注] 林曰 越句踐以師至吳하니 王子地守注+[附注] 林曰 守國하다
丙戌 復戰하야 大敗吳師하고 獲大子友王孫彌庸壽於姚注+地守 故不獲하고 丁亥 入吳하다
吳人告敗于王注+[附注] 林曰 吳人告敗于夫差한대其聞也注+惡諸侯聞之하야 自剄七人於幕下注+以絶口하다
[傳]秋七月辛丑할새 吳晉注+爭歃血先後하다
注+吳爲後 故爲長이라 晉人曰 於姬姓我爲伯注+爲侯伯이라
趙鞅呼司馬寅注+寅 晉大夫曰 日旰矣注+旰 晩也로되 大事未成 二臣之罪也注+大事 盟也 二臣 鞅與寅 建鼓整列注+[附注] 林曰 建立旗鼓 整齊行列 以決勝負於一戰하야 必可知也注+[附注] 林曰 勝者爲長 負者爲幼 必可知也리라 對曰 請姑視之注+[附注] 朱曰 言我且往視其事하노라
하야 曰 肉食者無墨注+墨 氣色下 [附注] 朱曰 言有爵位肉食之人 心志充悅 無氣色下者이어늘 今吳王有墨하니 注+國爲敵所勝
大子死乎
且夷德輕하야 不忍久注+[附注] 林曰 且夷狄之德 輕狂淺躁 不能堅忍耐久하니 請少待之注+少待 無與爭하노라
乃先晉人注+盟不書 諸侯恥之 故不錄하다
吳人將以公見晉侯한대 子服景伯對使者曰 王合諸侯注+[附注] 林曰 天子合諸侯爲會 則伯帥侯牧以見於王注+伯 王官伯 侯牧 方伯하고 伯合諸侯 則侯帥子男以見於伯注+伯 諸侯長이라
自王以下 朝聘玉帛不同이라
故敝邑之職貢於吳 有豐於晉하고 無不及焉 以爲伯也어늘
今諸侯會하야 而君將以寡君見晉君하니 則晉成爲伯矣이라
敝邑將改職貢注+[附注] 林曰 今魯將改吳晉之職貢하리라
魯賦於吳八百乘이나 若爲子男注+[附注] 林曰 若吳以魯見晉侯 是魯爲子男之國이면注+半邾 三百乘하고 而如邾以事晉注+如邾 六百乘하리라
且執事以伯召諸侯하야 而以侯終之注+[附注] 林曰 何利之有焉이리오 吳人乃止하다
旣而悔之注+謂景伯欺之하야 將囚景伯한대 景伯曰 何也立後於魯矣注+何 景伯名 [附注] 林曰 言己巳立後 不避囚執 將以二乘與六人從하리라 遲速唯命注+[附注] 林曰 將以二乘之車 官屬六人從行하리라
遂囚以還注+[附注] 林曰 吳人遂囚景伯以歸하다
及戶牖注+戶牖 陳留外黃縣西北東昏城是하야 謂大宰注+[附注] 林曰 景伯告吳太宰嚭
魯將以十月上辛有事於上帝先王注+[附注] 林曰 有事 祭也하야 季辛而畢
이라
何世有職焉注+有職於祭事하야 自襄以來 未之改也注+魯襄公하니 若不會注+[附注] 林曰 若今年不會祭 祝宗將曰 吳實然注+言魯祝宗將告神云 景伯不會 坐爲吳所囚 吳人信鬼 故以是恐之이라하리라
且謂魯不共이라하야 而執其이라도 何損焉이리오 大宰嚭言於王曰 無損於魯하고 而祗爲名注+適爲惡名이니 不如歸之라하고
乃歸景伯하다
吳申叔儀乞糧於公孫有山氏注+申叔儀 吳大夫 公孫有山 魯大夫 舊相識
佩玉繠兮 余無所繫之注+繠然 服飾備也 己獨無以繫佩 言吳王不恤下 [附注] 林曰 佩玉繠兮 言上之人服飾備也 旨酒一盛兮 余與褐之父睨之
注+一盛 一器也 睨 視也 褐 寒賤之人 言但得視 不得飮로다
對曰 粱則無矣注+[附注] 林曰 粱 精米也 麤則有之하니 注+軍中不得出糧 故爲私隱 庚 西方主穀 癸 北方主水 傳言吳子不與士共飢渴 所以亡 [附注] 林曰 蓋有山氏素備糧食 登山待其呼 則諾而與之也하라
王欲伐宋하야 殺其丈夫하고 而囚其婦人注+以宋不會黃池 故言吳子悖惑하다
大宰嚭曰 可勝也注+[附注] 林曰 吳强宋弱 故可必勝 而弗能居也注+[附注] 林曰 吳去宋遠 故不能居라하니 乃歸注+[附注] 林曰 乃不伐宋而歸하다
吳及越平注+伍員之言 하다


13년 봄에 나라 한달罕達이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에서 송군宋軍하였다.注+’라고 기록한 것은 매복하여 송군宋軍을 패배시켰기 때문이다.
여름에 허남許男하였다.注+이 없다.
애공哀公진후晉侯오자吳子황지黃池에서 회합會合하였다.注+진류陳留봉구현封丘縣 남쪽에 황정黃亭이 있는데, 제수濟水와 가깝다. 부차夫差중국中國패자霸者가 되어 천자天子를 높이고자 하여 스스로 이라는 참람僭濫칭호稱號를 버리고 ‘’라고 칭하여 제후諸侯에게 고령告令(命令)하였다. 그러므로 사관史官이 그대로 받아쓴 것이다.
나라 공자公子이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나라를 토벌하였다.注+이 없다.
나라가 나라로 쳐들어갔다.
가을에 애공哀公황지黃池회합會合에서 돌아왔다.注+이 없다.
나라 위만다魏曼多가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나라를 침공侵攻하였다.注+이 없다.
허원공許元公을 장사 지냈다.注+이 없다.
9월에 황충蝗蟲재해災害가 발생하였다.注+이 없다. 기록한 것은 재해災害가 되었기 때문이다.
겨울 11월에 혜성彗星동방東方출현出現하였다.注+이 없다. 동틀 무렵 모든 별이 다 들어간 뒤에 혜성彗星이 나타났기 때문에 혜성이 있는 위차位次를 말하지 않은 것이다.
나라 하구부夏區夫를 죽였다.注+이 없다. ‘’로 칭한 것은 대부大夫가 아니기 때문이다.
12월에 황충蝗蟲재해災害가 발생하였다.注+이 없다. 전년前年계손季孫이 비록 중니仲尼의 말을 들었으나, 을 바로잡지 않아 윤월閏月을 넣지 않은 잘못이 금년까지 이르렀다. 그러므로 다시 ‘십이월종十二月螽’이라고 한 것이다. 사실은 11월이다.
13년 봄에 나라 상퇴向魋에서 포위당한 송군宋軍구원救援하였다.注+전년前年을 포위하였던 송군宋軍을 구원한 것이다.
나라 자승子賸이 사람을 보내어 전군全軍선포宣布하기를注+[부주]林: 나라 자승子賸은 바로 한달罕達이다. 환퇴桓魋를 잡는 자는 이 있을 것이다.”고 하니, 환퇴桓魋가 도망하여 돌아갔다.
정군鄭軍은 드디어 에서 송군宋軍을 패배시키고 성환成讙고연郜延부획俘獲하고서注+두 사람은 나라 대부大夫이다. 여섯 공지空地(임자 없는 땅)로 만들었다.注+공한지空閒地로 버려두고 각각 소유하지 않은 것이다.
여름에 애공哀公단평공單平公, 진정공晉定公, 나라 부차夫差황지黃池에서 회합하였다.注+평공平公나라 경사卿士이다. 에 이를 기록하지 않은 것은 그를 높여서 함께 회합會合에 참여하지 않은 것처럼 〈말을 만든 것이다.〉
6월 병자일丙子日월자越子나라를 토벌할 때注+[부주]林: 구천句踐부차夫差회합會合에 나가 있는 기회를 이용하여 나라 국도國都가 빈 틈을 타서 나라를 토벌한 것이다. 두 길로 나누어 출병出兵하여注+(길)이다. 주무여疇無餘구양謳陽이 남쪽 길로 가서注+두 사람은 나라 대부大夫이다. 먼저 나라 교외郊外당도當到하니, 나라 태자太子왕자王子왕손王孫미용彌庸수어요壽於姚홍수泓水가에서 월군越軍정황情況관찰觀察하였다.注+월군越軍관찰觀察한 것이다. 수명水名이다.
미용彌庸고멸인姑蔑人이 든 정기旌旗를 보고서注+고멸姑蔑나라 땅인데, 지금의 동양東陽대말현大末縣이다. “우리 아버지의 군기軍旗이니注+미용彌庸의 아버지가 월군越軍에게 부획俘獲되었기 때문에 고멸인姑蔑人정기旌旗를 얻은 것이다. , 원수怨讐를 보고서 죽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고 하니,
태자太子가 말하기를 “교전交戰하였다가 승리勝利하지 못하면 장차 나라가 망할 것이니注+[부주]林: 국도國都가 비었기 때문에 나라가 망할 것을 두려워한 것이다. 잠시 기다리십시오.”라고 하자,
미용彌庸은 “기다릴 수 없다.”고 하고서 부하部下 5천 인을 집합集合시키니注+(모음)이다. 왕자王子가 그를 돕기로 하였다.
을유일乙酉日교전交戰하여 미용彌庸주무여疇無餘부획俘獲하고 왕자王子구양謳陽부획俘獲하였다.
월자越子대군大軍을 이끌고 오니注+[부주]林: 월왕越王구천句踐이 군대를 거느리고서 나라로 온 것이다. , 왕자王子진지陣地고수固守하였다.注+[부주]林: 나라를 지킨 것이다.
병술일丙戌日에 다시 교전交戰하여 월군越軍오군吳軍대패大敗시키고서 태자太子왕손王孫미용彌庸수어요壽於姚부획俘獲하고서注+왕자王子진지陣地를 지키고 있었기 때문에 부획俘獲되지 않은 것이다. , 정해일丁亥日나라 국도國都로 쳐들어갔다.
오인吳人이 〈황지黃池회맹會盟하고 있는〉 오왕吳王패전敗戰보고報告하자注+[부주]林: 오인吳人부차夫差에게 패전敗戰보고報告한 것이다. , 오왕吳王패전敗戰이 소문날 것을 싫어하여注+제후諸侯가 그 소문을 들을 것을 싫어한 것이다. 직접 장막帳幕 아래서 일곱 사람을 죽였다.注+그들을 죽여 입을 막은 것이다.
가을 7월 신축일辛丑日맹약盟約할 때 나라와 나라가 먼저 삽혈歃血하기를 다투었다.注+삽혈歃血선후先後를 다툰 것이다.
오인吳人은 “나라 왕실王室 중에 우리의 시조始祖태백太伯장자長子이다.注+나라는 태백太伯후예後裔이다. 그러므로 장자長子라고 한 것이다. ”고 하고, 진인晉人은 “희성姬姓제후諸侯 중에 우리가 후백侯伯(盟主)이다.注+후백侯伯(諸侯의 , 곧 맹주盟主)이 된 것이다. ”고 하였다.
조앙趙鞅사마司馬에게 큰 소리로注+나라 대부大夫이다. 말하기를 “날이 저물었는데도注+이다. 대사大事를 아직 완성完成하지 못한 것은 우리 두 신하의 이니注+대사大事맹약盟約이다. 두 신하는 조앙趙鞅사마司馬이다. , 기고旗鼓를 세우고 대열隊列정비整備하고서注+[부주]林: 기고旗鼓를 세우고 항렬行列정제整齊하고서 한 번의 싸움으로 승부勝負결정決定하자는 말이다. 우리 두 신하가 〈오군吳軍과〉 죽기로 싸운다면 선후[長幼]의 순서를 알 수 있을 것이오.注+[부주]林: 승자勝者이 되고, 패자敗者가 된다는 것을 반드시 알 수 있다는 말이다. ”라고 하자, 사마司馬이 대답하기를 “우선 오왕吳王에게 가서 정황情況을 살펴보고 오기를 청합니다.注+[부주]朱: 내가 우선 가서 그 사정事情을 살펴보겠는 말이다. ”고 하였다.
사마司馬오왕吳王에게 갔다가 돌아와서 말하기를 “육식肉食하는 사람은 안색顔色이 어둡지 않은 것인데注+기색氣色이 내려간 것이다. [부주]朱: 작위爵位를 갖고 육류肉類를 먹는 사람은 심지心志가 만족하고 기뻐서 기색氣色이 내려가지 않는다는 말이다. , 지금 오왕吳王은 안색이 어두우니, 국도國都에게 함락陷落되어서 그런 것입니까?注+국도國都승리勝利하는 바가 되었다는 말이다.
아니면 태자太子가 죽어서 그런 것입니까?
그리고 또 이적夷狄성정性情[德]은 가벼워서 오래 참지 못하니注+[부주]林: 이적夷狄성정性情[德]은 가볍고 조급躁急하여 오래 인내忍耐할 수 없다는 말이다. , 잠시 기다리십시오.注+소대少待는 저들과 다투지 말라는 말이다. ”라고 하였다.
이에 진인晉人이 먼저 삽혈歃血하였다.注+결맹結盟한 것을 기록하지 않은 것은 제후諸侯가 그 결맹結盟치욕恥辱으로 여겼기 때문에 기록하지 않은 것이다.
오인吳人애공哀公을 데리고 가서 진후晉侯에게 알현謁見시키고자 하자, 자복경백子服景伯사자使者에게 말하기를 “천왕天王제후諸侯회합會合하면注+[부주]林: 천자天子제후諸侯를 모아놓고서 회의會議함이다.후백侯伯후목侯牧을 거느리고 가서 천왕天王알현謁見하고注+왕관백王官伯(盟主)이고, 후목侯牧방백方伯이다. , (諸侯의 , 곧 맹주盟主)이 제후諸侯회합會合하면 (侯爵)가 자작子爵남작男爵을 거느리고 가서 알현謁見합니다.注+제후諸侯(盟主)이다.
천왕天王으로부터 아래로 제후諸侯에 이르기까지 조빙朝聘할 때 진헌進獻하는 옥백玉帛이 각각 같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나라가 나라에 바치는 공물貢物나라에 바치는 공물貢物보다 많고 나라에 바치는 공물貢物에 비해 적지 않았던 것은 나라를 맹주盟主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 이곳에 제후諸侯를 불러 모아놓고서 오군吳君께서 우리 임금을 데리고 가서 진군晉君에게 알현謁見하려 하니, 이는 나라를 맹주盟主로 대우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장차 공물貢物수량數量개정改定할 것입니다.注+[부주]林: 지금 나라는 나라와 나라에 바치는 공물貢物수량數量개정改定하려 한다는 말이다.
나라는 8백 기준基準으로 삼아 나라에 공물貢物을 바쳐왔습니다만 만약 우리나라를 자작子爵이나 남작男爵의 나라로 대우하신다면注+[부주]林: 만약 오왕吳王노군魯君를 데리고 가서 진후晉侯에게 알현謁見시킨다면 이는 나라를 자작子爵남작男爵의 나라로 대우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3백 을 기준으로 공물貢物을 바쳐 나라의 속국屬國되고注+나라의 반은 3백 이다. , 6백 을 기준으로 공물貢物을 바쳐 나라를 섬길 것입니다.注+나라와 같이 한다는 것은 6백 이다.
그리고 또 집사執事께서 맹주盟主제후諸侯를 불러 회합會合하고서 일반 제후諸侯로서 일을 마친다면注+[부주]林: 끝내 노군魯君진후晉侯에게 알현시킨다면 제후諸侯제도制度를 따르는 것이라는 말이다. 무슨 이익이 있겠습니까?”라고 하니 오인吳人이 즉시 그 일을 그만두었다.
얼마 뒤에 그만둔 것을 후회하여注+경백景伯이 속였다고 여겨 후회한 것이다. 경백景伯수금囚禁하려 하자, 경백景伯이 말하기를 “나는 이미 나라에 후계자後繼者를 세웠으니注+경백景伯의 이름이다. [부주]林: 내가 이미 후계자後繼者를 세웠으니 수집囚執(囚禁)되는 것을 피하지 않겠다는 말이다. , 장차 수레 두 채와 종자從者 6인을 데리고 따라가겠습니다만 늦게 출발하느냐 빨리 출발하느냐는 명하시는 대로 따르겠습니다.注+[부주]林: 장차 두 채의 수레와 관속官屬 여섯 사람을 데리고서 따라가겠다는 말이다.” 하였다.
오인吳人은 마침내 경백景伯수금囚禁하여 데리고 돌아갔다.注+[부주]林: 오인吳人이 드디어 경백景伯수금囚禁하여 데리고 돌아갔다.
호유戶牖에 당도하여注+호유戶牖진류陳留외황현外黃縣 서북쪽에 있는 동혼성東昏城이 그것이다. 경백景伯태재太宰에게 말하기를注+[부주]林: 경백景伯태재太宰에게 고한 것이다. 나라는 장차 10월 상신일上辛日(上旬에 든 신일辛日)에 상제上帝선왕先王께 제사를 올리기 시작하여注+[부주]林: 유사有事는 제사이다. 계신일季辛日(下旬에 든 신일辛日)에 그 제사를 마칩니다.
우리 집안은 대대로 그 제사에 일을 맡아注+제사祭事에 맡은 직책職責이 있는 것이다. 襄公 이후로 변경變更하지 않았으니注+나라 양공襄公이다. , 만약 내가 그 제사에 참여參與[會]하지 않으면注+[부주]林: ‘만약 금년에 제사祭祀에 참여하지 않으면’이라는 말이다. 축종祝宗이 아마도 〈에게〉 ‘나라가 실로 그렇게 한 것이다.注+나라 축종祝宗이 아마도 에게 “경백景伯이 제사에 참여하지 않은 것은 나라에게 수금囚禁되었기 때문이다.”라고 할 것이라는 말이다. 오인吳人귀신鬼神을 믿기 때문에 이 말로써 겁을 준 것이다. ’라고 할 것입니다.
그리고 또 나라는 우리 나라가 공경하지 않는다고 하여 나라의 비천卑賤한 일곱 사람을 체포逮捕하였지만 나라에 무슨 손해가 되겠습니까?”라고 하니, 태재太宰오왕吳王에게 말하기를 “나라에 손해될 것이 없고 오명惡名만을 얻을 뿐이니注+단지 오명惡名이 될 뿐이라는 말이다. , 돌려보내는 것이 좋겠습니다.”라고 하였다.
나라는 이에 경백景伯을 돌려보냈다.
나라 신숙의申叔儀공손公孫유산씨有山氏에게 가서 양곡糧穀구걸求乞하며注+신숙의申叔儀나라 대부大夫이고, 공손公孫유산有山나라 대부大夫인데, 전부터 서로 알고 지낸 사이이다. 말하기를 “패옥佩玉을 늘어뜨렸으나 나는 찰 패옥이 없고注+예연繠然복식服飾을 갖춘 것이다. 나만이 홀로 패옥佩玉을 차지 못하였다는 것은 오왕吳王이 아랫사람을 구휼救恤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부주]林: 패옥佩玉이 늘어졌다는 것은 윗사람의 복식이 갖추어졌다는 말이다. , 맛난 술이 그릇에 가득하나 나와 비천한 자들은 구경만 할뿐이오.注+일성一盛은 한 그릇이다. 는 보는 것이다. 빈천貧賤한 사람이니, 단지 보기만 할 뿐 마실 수 없다는 말이다. ”라고 하자,
유산씨有山氏가 대답하기를 “쌀은 없지만注+[부주]林: 정미精米이다. 거친 곡식은 있으니, 내가 수산首山에 올라가서 ‘경계庚癸야’라고 부르면 대답하시오.注+군중軍中에서는 양곡糧穀을 내어놓을 수 없기 때문에 사사로이 숨긴 것이다. 서방西方곡식穀食주관主管하는 이고, 북방北方에 물을 주관主管하는 이다. 전문傳文오자吳子군사軍士들과 기갈飢渴을 함께하지 않았기 때문에 한 것을 말한 것이다. [부주]林: 대개 유산씨有山氏는 평소에 양식糧食을 준비한 듯하다. 그러므로 산에 올라가서 부르기를 기다려 대답하고서 주겠다고 한 것이다. ”라고 하였다.
오왕吳王나라를 토벌하여 그 남편(宋君을 이름)을 죽이고 그 아내를 수금囚禁하고자 하였다.注+송공宋公황지黃池회합會合에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오자吳子도리道理를 거스르고 미혹迷惑하였음을 말한 것이다.
태재太宰가 말하기를 “승리勝利할 수는 있으나注+[부주]林: 나라는 하고, 나라는 하기 때문에 반드시 승리勝利할 수 있다고 한 것이다. 나라에 오래 있을 수는 없습니다.注+[부주]林: 나라는 나라와 거리가 멀기 때문에 거주居住할 수 없다고 한 것이다. ”고 하니, 오왕吳王은 곧 돌아왔다.注+[부주]林: 이에 나라를 토벌하지 않고 돌아갔다.
겨울에 나라가 나라와 화평和平하였다.注+끝내 〈3년 뒤부터 나라가 쇠약衰弱해질 것이라고 한〉 오원伍員의 말과 같이 되었다.


역주
역주1 : 촉
역주2 : 오
역주3 爭先 : 먼저 歃血하는 쪽이 盟主가 되기 때문에 吳와 晉이 서로 먼저 歃血하기를 다툰 것이다.
역주4 吳人……晉人 : 모두 雙方의 協商代表이지만 그 나라의 君主가 아니고, 또 卿이 아니다. 그러므로 ‘人’으로 칭한 것이다. 參考文獻 〈楊注〉
역주5 太伯 : 古公亶父의 長子로 季歷의 長兄이고 文王의 伯父이다.
역주6 二臣死之 : 趙鞅과 司馬寅이 서로 죽기로 싸운다는 말이 아니고, 두 사람이 吳軍과 죽기로 싸워서 勝負를 決定하면 歃血의 順序가 가려진다는 말이다.
역주7 長幼 : 先後라는 말과 같으니, 먼저 歃血하고 뒤에 歃血함을 이른다. 〈楊注〉
역주8 國勝 : 敵이 國都를 침공하여 戰勝하였다는 뜻이니, 곧 國都가 陷落되었다는 말이다.
역주9 將半邾以屬於吳 : 上文에 ‘侯가 子爵과 男爵을 거느리고 가서 伯을 謁見한다.’고 하였으니, 지금 만약 吳君이 魯君을 거느리고 가서 晉侯를 謁見하다면 이는 魯나라가 子爵이나 男爵이 되는 것이다. 만약 魯나라가 子爵이나 男爵이 된다면 3백 乘의 軍賦를 기준으로 삼아 吳나라에 貢物을 바치겠다는 말이다. 哀公 7년 傳에 ‘邾나라는 軍賦가 6백 乘이다.’고 하였으니, ‘半邾’는 3백 乘이다. 〈楊注〉
역주10 終之以魯見晉 從諸侯之制 : 끝내 吳王이 魯君을 데리고 가서 晉侯를 알현한다면 이는 盟主의 制度가 아닌 일반 諸侯의 制度를 따르는 것이 된다는 말이다.
역주11 魯將以十月上辛……季辛而畢 : 周正의 10월은 上帝와 先公께 제사 지내는 시기가 아니고, 또 제사는 새벽이면 끝나니, 上辛日에 시작한 제사가 季辛日에 끝나는 일은 없다. 吳人이 鬼神을 믿기 때문에 子服景伯이 거짓말로 吳人에게 겁을 준 것이다. 〈正義〉
역주12 賤者七人 : 何(子服景伯)와 그 從者 6人이 모두 卿이 아니기 때문에 ‘賤者七人’이라고 한 것이다.
역주13 佩玉繠兮……余與褐之父睨之 : 吳王은 復飾을 갖추어 佩玉을 주렁주렁 찼지만 나는 찰 佩玉이 없고, 단지에 술이 가득하지만 나와 卑賤한 사람들은 구경만 할 뿐 마시지 못한다는 말로 吳王이 아랫사람을 돌보지 않아 飢渴이 심하다는 것을 隱喩한 말이다.
역주14 若登首山……則諾 : 〈正義〉에는 “쌀밥을 요구한다면 없지만 거친 밥은 있으니, 내가 산에 올라가서 ‘庚癸야’라고 부르거든 그대는 대답하라고 한 것이다. 軍中에서는 남에게 糧食을 내어줄 수 없기 때문에 隱語로써 사사로이 期約한 것이다. 庚은 西方에 있고 곡식은 가을에 익는다. 그러므로 庚이 곡식을 주관하고, 癸는 北方의 水의 자리에 있으니 물을 주관한다. 밥과 마실 것을 주고자 한 것이다.”고 하여, 有山氏가 산에 오르는 것으로 말하였고, 《左氏會箋》에는 “그대가 山으로 올라가서 ‘庚癸야’라고 부르면 내가 대답할 것이라고 하였으니, 남모르게 首山에서 그에게 음식을 주려 한 것이다.”고 하여, 林注와 같이 申叔儀가 산에 올라가는 것으로 말하였다. 누구의 말이 옳은지 알 수 없으나, 일단 〈正義〉의 설에 의거하여 번역하였다.
역주15 從[終] : 저본에는 ‘從’으로 되어 있으나, 《十三經注疏》本에 의거하여 ‘終’으로 바로잡았다.

춘추좌씨전(7) 책은 2019.05.2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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