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春秋左氏傳(1)

춘추좌씨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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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좌씨전(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經]二十年 春 王二月 夫人姜氏如莒注+無傳하다
[經]夏 齊大災注+無傳 來告以大 故書 天火曰災 하다
[經]秋七月이라
[經]冬 齊人伐戎注+無傳 [附注] 林曰 齊始治戎하다
[傳]二十年春 鄭伯和王室이나 不克注+克 能也 [附注] 林曰 鄭厲公與惠王子頹爲和 欲使各復其舊하고 執燕仲父注+燕仲父 南燕伯 爲伐周故하다
鄭伯遂以王歸하니 王處于櫟하다
王及鄭伯入于鄔注+鄔 王所取鄭邑이라가 遂入成周하야 取其寶器而還하다
王子頹享五大夫할새 樂及徧舞注+皆舞六代之樂 [附注] 林曰 徧舞 黃帝堯舜夏商周六代之樂하니 鄭伯聞之하고 見虢叔注+叔 虢公字 曰 寡人聞之컨대 哀樂失時 殃咎必至라하니라
今王子頹歌舞不倦하니 樂禍也注+[附注] 林曰 時頹已立 而稱王子 不與其爲王也
夫司寇行戮注+司寇 刑官 君爲之不擧注+去盛饌 而況敢樂禍乎
奸王之位하니 禍孰大焉
臨禍忘憂하니 憂必及之하리라
盍納王乎 虢公曰 寡人之願也


20년 봄 주왕周王이월二月에 부인 강씨가 나라로 갔다.注+이 없다.
여름에 나라에 큰 불이 났다.注+이 없다. ‘’라고 기록한 것은 나라가 ‘’로 통고通告해 왔기 때문에 그렇게 기록한 것이다. 원인을 알 수 없이 저절로 나는 불을 ‘’라 한다. 선공宣公 16년에 보인다.
가을 7월이다.
겨울에 제인齊人토벌討伐하였다.注+이 없다.[부주]林: 나라가 비로소 징치懲治한 것이다.
20년 봄에 정백鄭伯주왕실周王室불화不和화해和解시키려 하였으나 성공하지 못하고,注+이다.[부주]林: 정여공鄭厲公혜왕惠王자퇴子頹 사이를 화해和解시켜 각각 그 옛날로 돌아가게 하고자 한 것이다. 연중보燕仲父만을 잡았다.注+연중보燕仲父남연백南燕伯이다. 나라를 쳤기 때문이다.
여름에 정백鄭伯이 드디어 혜왕惠王을 모시고 돌아오니 혜왕惠王에 거처하였다.
가을에 혜왕惠王정백鄭伯과 함께 로 들어갔다가注+환왕桓王이 탈취한 나라 이다. 마침내 성주成周로 가서 나라의 보기寶器를 가지고 돌아왔다.
겨울에 왕자王子가 다섯 대부大夫를 접대할 때에 연주演奏하는 음악音樂변무徧舞에 미치니,注+육대六代의 음악을 모두 연주하고 그 연주에 따라 춤을 춘 것이다.[부주]林: 변무徧舞황제黃帝육대六代음악音樂이다.정백鄭伯이 이 소식을 듣고 괵숙虢叔을 만나注+괵공虢公이다. 말하기를 “내가 듣건대 ‘슬퍼하고 즐거워하는 것이 때에 맞지 않으면 반드시 화란禍亂이 이른다.’고 하였다.
그런데 지금 왕자王子가무歌舞를 즐겨 피곤한 줄을 모르니, 이는 화란禍亂을 즐기는 것이다.注+[부주]林: 이때 가 이미 주왕周王으로 즉위하였는데 ‘왕자王子’라고 칭한 것은 그를 으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구司寇사형死刑집행執行하면注+사구司寇형관刑官이다. 임금은 그 사형 당한 자를 위해 성찬盛饌을 들지 않는 것인데,注+성찬盛饌을 물리는 것이다. 더구나 감히 화란을 즐긴다는 말인가.
천왕天王의 자리를 하였으니, 이보다 큰 화란禍亂이 어디 있는가.
화란이 닥쳐오는데도 근심을 잊고 있으니, 근심스러운 일이 반드시 그에게 닥칠 것이다.
그러니 어찌 혜왕惠王을 들여보내어 복위復位시키지 않겠는가?”라고 하니, 괵공虢公이 “이것이 바로 나의 소원이다.”라고 하였다.


역주
역주1 例在宣十六年 : 宣公 16년 傳에 “人火(사람이 낸 불)를 ‘火’라 하고, 天火(自然發火)를 ‘災’라 한다.”고 하였다.

춘추좌씨전(1) 책은 2019.05.2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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