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春秋左氏傳(1)

춘추좌씨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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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좌씨전(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經]十年春 王正月 公敗齊師于長勺注+齊人雖成列 魯以權譎稽之 列成而不得用 長勺 魯地하다
10년 봄 주왕周王 정월에 장공莊公나라 군대를 장작長勺에서 패배敗北시켰다.注+제인齊人이 비록 전열戰列을 이루었으나, 노군魯軍이 속임수를 써서 시간을 끌었으므로 날짜를 끄니 제군齊軍전열戰列을 이루었으나 쓸 수가 없었다. 그러므로 을 치기 전에 공격해 승리한 것으로 글을 만든 것이다. 장공莊公 11년에 보인다. 장작長勺나라 땅이다.
[經]二月 公侵宋注+無傳 하다
2월에 장공莊公나라를 침공侵攻하였다.注+이 없다. 장공莊公 29년에 보인다.
[經]三月 宋人遷宿注+無傳 宋强遷之而取其地 故 [附注] 林曰 此遷國之始하다
3월에 송인宋人宿의 주민을 이주移住시켰다.注+이 없다. 나라가 억지로 그곳 주민住民이주移住시키고서 그 땅을 취한 것이다. 그러므로 문체文體형천邢遷과 다르다.[부주]林: 이것이 나라의 백성을 옮긴 시초이다.
[經]夏 六月 齊師宋師次于郎注+ [附注] 林曰 其言次 何 以桓公圖覇而未集也 是故書次郞 以見齊伯之難 以見楚伯之難 以見復伯之難/하니 公敗宋師于乘丘注+乘丘魯地하다
여름 6월에 제군齊軍송군宋軍에 주둔하니,注+침벌侵伐’이라고 말하지 않은 것은 나라가 주장主將이 되어 결맹結盟을 저버렸기 때문이니, 뜻이 장작長勺의 전쟁을 기록한 것과 같다.[부주]林: 여기에 ‘’를 말한 것은 어째서인가? 제환공齊桓公패자覇者가 되기를 도모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차랑次郎’을 기록하여 제환공齊桓公패자覇者가 되기 어려웠음을 나타내었고, ‘차궐맥次厥貉’을 기록하여 패자覇者가 되기 어려웠음을 나타내었고, ‘차우증次于鄫’을 기록하여 나라가 다시 패자覇者가 되기 어려웠음을 나타내었다. 장공莊公송사宋師승구乘丘에서 패배敗北시켰다.注+승구乘丘나라 땅이다.
[經]秋九月 荊敗蔡師于莘注+荊 楚本號 後改爲楚 楚辟陋在夷 於此始通上國 然告命之辭 猶未合典禮 故不稱將帥 莘 蔡地하고 以蔡侯獻舞歸注+獻舞 蔡季 [附注] 林曰 此書荊之始 亦荊猾夏之始 亦荊專執諸侯之始 此夷夏之大變也 荊敗蔡師于莘 是猾夏之始也 吳敗頓胡沈蔡陳許之師于雞父 則諸侯之不亡者 寡矣 是故書荊自此始 而하다
가을 9월에 채군蔡軍에서 패배敗北시키고서注+나라 본래의 국호國號였는데 뒤에 로 고쳤다. 나라는 땅이 궁벽하고 풍속이 더러운 이복夷服에 있는 나라로서 이때에 비로소 상국上國과 교통하였으나 외국外國통고通告하는 문사文辭전례典禮에 맞지 않았다. 그러므로 장수將帥를 기록하지 않은 것이다. 나라 땅이다.채후蔡侯헌무獻舞를 데리고 돌아갔다.注+헌무獻舞채계蔡季이다.[부주]林: 이것이 을 기록한 처음이다. 또 중국中國을 어지럽힌 처음이기도 하고, 형이 제멋대로 제후諸侯를 잡아간 처음이기도 하니, 이것이 이하夷夏(중국과 오랑캐)의 큰 변란이다. 에서 채군蔡軍을 패배시킨 것이 만이蠻夷중국中國을 어지럽힌 처음이고, 의 군대를 계보雞父에서 패배시킨 뒤로는 망하지 않은 제후諸侯가 몇 안 되었다. 그러므로 이때부터 을 기록하기 시작하였고, 나라의 회맹會盟으로 《춘추春秋》를 끝마쳤다.
[經]冬十月 齊師滅譚注+譚國 在濟南平陵縣西南 傳曰 譚無禮 此直釋所以見滅 經無義例 他皆放此 [附注] 林曰 此滅國之始 하니 譚子奔莒注+不言出奔 國滅無所하다
겨울 10월에 제군齊軍담국譚國멸망滅亡시키니注+담국譚國제남濟南평릉현平陵縣 서남에 있다. 에 “무례無禮했기 때문이다.”고 하였으니, 이는 이 멸망당한 이유를 사실대로 해석한 것이다. 의례義例가 없으니, 다른 곳도 모두 이와 같다. 문공文公 15년에 보인다.[부주]林: 이것이 나라를 멸망滅亡시킨 시초이니, 바로 관중管仲이 틈을 타서 침공侵攻한다는 술수이다. 담자譚子나라로 도망하였다.注+출분出奔이라고 말하지 않은 것은 나라가 멸망하여 나갈 나라가 없기 때문이다.
[傳]十年春 齊師伐我注+不書侵伐 齊背蔇之盟 我有辭 [附注] 朱曰 齊桓公以魯約子糾 故伐魯하다
10년 봄에 제군齊軍이 노나라를 공격하였다.注+침벌侵伐이라고 기록하지 않은 것은, 나라가 결맹結盟을 배신하였으니 우리가 정당하여 할 말이 있었기 때문이다.[부주]朱: 제환공齊桓公나라가 자규子糾의 임금으로 들여보내기로 맹약盟約하였다는 이유로 를 친 것이다.
公將戰 曹劌請見注+曹劌 魯人한대 其鄕人曰 肉食者謀之 又何間焉注+肉食 在位者 間 猶與也
장공莊公응전應戰하려 할 때 조궤曹劌알현謁見을 청하려 하니,注+조귀曹劌노인魯人이다. 그 마을 사람이 말하기를 “고기 먹는 자들이 계획을 세웠을 것인데 무엇 때문에 상관하려 하는가?注+육식자肉食者는 벼슬에 있는 자이다. (干與)와 같다.”고 하였다.
劌曰 肉食者鄙하야 未能遠謀注+[附注] 林曰 肉食者 所見鄙陋 未能有深遠之謀라하고 乃入見하야 問何以戰이닛가
가 말하기를 “고기 먹는 자들이 비루鄙陋하여 원대한 계획을 세울 수 없기 때문이다.注+[부주]林: 육식자肉食者들의 소견이 비루鄙陋하여 심원深遠한 계책을 세울 수 없다는 말이다.”라 하고 궁중宮中으로 들어가 알현謁見하고서 장공莊公에게 무엇을 믿고 싸우려 하느냐고 물었다.
公曰 衣食所安 弗敢專也하고 必以分人注+[附注] 朱曰 言衣食二者 雖身所安 然亦不敢自專其有 必分於人以共享之하리라 對曰 小惠未徧이니 民弗從也注+分公衣食 所惠不過左右 故曰未徧리이다
장공莊公이 “몸을 편안하게 하는 의복과 음식을 감히 혼자서 누리지 않고 반드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겠다.注+[부주]朱: 의복과 음식 이 두 가지는 비록 내 몸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지만 감히 가진 것을 나 혼자서 누리지 않고 반드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어 함께 누리겠다는 말이다.”고 하니, 가 대답하기를 “그것은 작은 은혜여서 많은 사람에게 두루 미칠 수 없으니 백성들이 따르지 않을 것입니다.注+장공莊公이 의복과 음식을 나누어준다 하더라도 은혜를 입는 사람은 좌우左右근신近臣에 불과할 것이므로 두루 미칠 수 없다고 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公曰 犧牲玉帛 弗敢加也하고 必以信注+祝辭不敢以小爲大 以惡爲美하리라 對曰 小信未孚 神弗福也注+孚 大信也 [附注] 朱曰 此特小信 未能大孚於神 神心未必降之以福也리이다
장공莊公이 “제사祭祀희생犧牲옥백玉帛을 감히 정해진 이외以外에 더 올리지 않고 축사祝史고사告辭도 반드시 성실하게 사실대로 하게 하겠다.注+축사祝辭에 감히 ‘’를 ‘’라 하거나 ‘’을 ‘’라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고 하니, 가 대답하기를 “그것은 작은 믿음이라 이 믿지 않을 것이니 이 복을 내리지 않을 것입니다.注+는 큰 믿음이다.[부주]朱: 이것은 작은 믿음일 뿐이어서 에게 크게 믿음을 줄 수 없으니 반드시 이 복을 내리지 않는다는 말이다.”라고 하였다.
公曰 小大之獄 雖不能察이나 必以情注+必盡己情 察審也 [附注] 朱曰 小獄 爭訟之類 大獄殺傷之類하리라 對曰 忠之屬也注+上思利民忠也 可以一戰이니 戰則請從하노이다
장공莊公이 “크고 작은 옥사獄事를 일일이 다 살필 수는 없으나 注+반드시 나의 마음을 다한다는 말이다. (살핌)이다.[부주]朱: 작은 옥사獄事쟁송爭訟이고, 큰 옥사獄事살상殺傷의 유이다.”고 하니, 가 대답하기를 “이는 한 일이라注+윗사람이 백성을 이롭게 하기를 생각하는 것을 ‘’이라 한다. 한번 전쟁을 해볼 만하니 출전出戰하신다면 종군從軍하도록 허락하소서.”라고 하였다.
公與之乘注+共乘兵車하고 戰于長勺할새 公將鼓之한대 劌曰 未可니이다 齊人三鼓하니 劌曰 可矣니이다
장공莊公와 한 수레를 타고注+함께 병거兵車를 탄 것이다.장작長勺에서 제군齊軍과 전투하려할 때 장공莊公진격進擊의 북을 치려 하자 가 ‘아직은 때가 아닙니다’고 하고, 제인齊人이 북을 세 차례 치자, 가 ‘이제 때가 되었습니다.’고 하였다.
齊師敗績이어늘 公將馳之한대 劌曰 未可니이다 下視其轍注+視車跡也하고 登軾而望之曰 可矣니이다
제군齊軍대패大敗하자 장공莊公이 추격하려 하니, 가 ‘아직 안됩니다.’고 하고서, 수레에서 내려 제군齊軍의 수레바퀴 자국을 살펴보고,注+수레가 지나간 바퀴 자국을 살핀 것이다. 다시 수레 앞의 에 올라 제군齊軍이 후퇴하는 모양을 조망眺望하고는 ‘추격해도 되겠습니다.’고 하였다.
遂逐齊師하다
장공은 드디어 제군齊軍을 추격하였다.
旣克 公問其故한대 對曰 夫戰 勇氣也
승전勝戰한 뒤에 장공莊公이 그 까닭을 물으니, 대답하기를 “전쟁의 승패勝敗용기勇氣에 달린 것입니다.
一鼓作氣하고 再而衰하며 三而竭하나니
북이 한 번 울리면 용기가 진작振作되고, 두 번 울리면 용기가 쇠하고, 세 번 울리면 용기가 고갈枯渴합니다.
彼竭我盈이라 故克之注+[附注] 朱曰 齊師三鼓 勇氣已竭 我師初鼓 勇氣方盈니이다
저들은 용기가 이미 고갈되었고 우리는 용기가 바야흐로 충만充滿하였기 때문에 승리한 것입니다.注+[부주]朱: 제군齊軍은 이미 북을 세 번 울려 용기勇氣가 이미 고갈枯渴하였고, 아군我軍은 처음으로 북을 울려 용기가 바야흐로 충만하다는 말이다.
夫大國難測也 懼有伏焉注+恐詐奔하야 吾視其轍亂하고 望其旗靡
대국大國은 그 행위를 예측하기 어려워 군대를 매복埋伏시켰을 우려憂慮가 있기 때문에注+우리를 유인하기 위해 거짓으로 도망갈 수도 있다고 염려한 것이다. 신이 그들의 수레바퀴 자국을 보니 어지럽고, 그들의 를 바라보니 기가 누웠습니다.
故逐之注+旗靡轍亂 怖遽니이다
그러므로 추격했던 것입니다.”라고 하였다.注+가 눕고 수레바퀴 자국이 어지러운 것은 겁을 먹고 급히 도망갔기 때문이다.
[傳]夏六月 齊師宋師次于郞하다
여름 6월에 제군齊軍송군宋軍를 치기 위해 에 주둔하였다.
公子偃曰 宋師不整하니 可敗也注+公子偃 魯大夫니이다
공자公子이 말하기를 “송군宋軍진용陳容엄정嚴整하지 않으니, 패배시킬 수 있습니다.注+공자公子나라 대부이다.
宋敗 齊必還하리니 請擊之注+[附注] 林曰 請伐宋師하소서 公弗許한대
송군이 패전敗戰하면 제군齊軍도 반드시 돌아갈 것이니 공격하소서.注+[부주]林: 송군宋軍을 공격하자고 청한 것이다.”라고 하였으나, 장공莊公이 허락하지 않았다.
自雩門竊出하야 蒙皐比而先犯之注+雩門 魯南城門 皐比虎皮 [附注] 林曰 公子偃又請自雩門潛師竊出 以虎皮蒙馬而先犯宋師어늘 公從之하야 大敗宋師于乘丘하니 齊師乃還하다
그러자 공자公子우문雩門으로 몰래 나가 말에 고비皐比를 씌우고 먼저 송군宋軍을 공격하였다注+우문雩門나라의 남쪽 성문城門이다. 고비皐比호피虎皮이다.[부주]林: 공자公子이 또 군대를 은밀히 이동시켜 우문雩門으로 나가서 말에 호피를 씌우고 먼저 송군宋軍을 공격하자고 청한 것이다. 그러자 장공莊公도 군대를 거느리고 그 뒤를 따라 진격하여 승구乘丘에서 송군宋軍대패大敗시키니 제사齊師가 돌아갔다.
[傳]蔡哀侯娶于陳하고 息侯亦娶焉이라
채애후蔡哀侯나라에서 아내를 맞이하였고, 식후息侯나라에서 아내를 맞이하였다.
息嬀將歸 過蔡注+[附注] 林曰 息侯之夫人 將歸寧于陳 道過蔡國하니 蔡侯曰 吾姨也注+妻之姊妹曰姨라하고 止而見之하되 弗賓注+不禮敬也하다
식규息嬀귀녕歸寧(부모를 뵙기 위해 친정親庭으로 가는 것)할 때 나라를 지나니,注+[부주]林: 식후息侯의 부인이 나라로 귀녕歸寧 가는 길에 나라를 지난 것이다.채후蔡侯가 “나의 처제妻弟이다.注+아내의 자매姊妹를 ‘’라 한다.”라고 하고서 머물게 하고는 서로 만나볼 때에 공경해 예우禮遇하지 않았다.注+예우禮遇해 공경하지 않은 것이다.
息侯聞之하고하야 使謂楚文王曰 伐我 吾求救於蔡하리니 而伐之하라 楚子從之하다
얼마 뒤에 식후息侯가 이 사실을 듣고 하여 초문왕楚文王에게 사신使臣을 보내어 말하기를 “우리나라를 치시면 우리가 나라에 구원을 요청하여 그들의 군대를 끌어낼 것이니, 그때를 이용해 나라를 토벌하십시오.” 라고 하니, 초자楚子가 그 말을 따랐다.
秋九月 楚敗蔡師于莘하고 以蔡侯獻舞歸注+[附注] 林曰 敗蔡而執其君 經不言執蔡侯以歸 蓋蔡自是服於楚也하다
가을 9월에 나라가 에서 채군蔡軍을 패배시키고 채후蔡侯헌무獻舞를 데리고 돌아갔다.注+[부주]林: 채군蔡軍을 패배시키고서 그 임금을 잡은 것인데, 에 “잡았다[執]”고 말하지 않고 “채후蔡侯를 데리고 돌아갔다.”고 한 것은 나라가 이로부터 나라에 복종하였기 때문인 듯하다.
[傳]齊侯之出也 過譚하니 譚不禮焉하고 及其入也 諸侯皆賀호대 譚又不至注+以九年入하다
과거 제후齊侯(桓公)가 도망다닐 때 나라에 들르니, 나라가 예우禮遇하지 않았고, 뒤에 환공桓公이 들어와 임금이 되었을 때 제후諸侯들은 모두 와서 하례賀禮하였으나 나라는 오지 않았다.注+노장공魯莊公 9년에 제환공齊桓公이 들어가 임금이 되었다.
齊師滅譚하니 譚無禮也
겨울에 제사齊師나라를 멸망시켰으니, 이는 나라가 무례無禮하였기 때문이다.
譚子奔莒하니 同盟故也注+傳言譚不能及遠 所以亡
담자譚子나라로 도주하였으니 동맹同盟하였기 때문이다.注+전문傳文나라가 멀리 앞을 내다보지 못하였기 때문에 망한 것을 말한 것이다.
역주
역주1 故以未陳爲文 例在十一年 : 莊公 11년 傳에 “敵이 陣을 치기 전에 攻擊해 승리하는 것을 ‘敗某師’라 한다.”고 하였다.
역주2 侵例在二十九年 : 莊公 29년 傳에 “鍾鼓를 울리며 쳐들어가는 것을 ‘伐’이라 하고, 鍾鼓의 소리를 내지 않고 쳐들어가는 것을 ‘侵’이라 한다.”고 하였다.
역주3 文異於邢遷 : 諸侯들이 狄人의 侵攻에서 邢國을 구원하고 住民을 夷儀로 移住시킨 것을, 僖公元年經에 “邢遷于夷儀”라고 기록하여, 마치 邢人이 자발적으로 옮겨 간 것처럼 글을 만든 것과 다르다는 말이다.
역주4 不言侵伐……義與長勺同 : 지금 齊軍과 宋軍이 郎에 주둔한 것도 魯나라를 치기 위해 온 것인데, 經에 ‘侵伐(討罪를 뜻하는 말)’이라고 기록하지 않은 것은 魯나라에 잘못이 없다는 것을 나타낸 뜻으로, 위의 長勺의 전쟁도 魯나라에 아무 잘못이 없기 때문에 ‘侵伐’이라고 기록하지 않은 뜻과 같다는 말이다.
역주5 書次厥貉 : 文公 10년 經에 보인다.
역주6 書次于鄫 : 襄公元年經에 보인다.
역주7 春秋以吳終焉 : 哀公 13년 經에 보이는 “公會晉侯及吳子于潢池”를 이름이다.
역주8 滅例在文十五年 : 文公 15년 傳에 “그 나라를 이겨 그 나라 社稷의 祭祀을 끊고 그 국토를 소유하는 것을 ‘滅’이라 한다.”고 하였다.
역주9 此管仲攻瑕之術也 : 《管子》 〈制分〉에 나오는 말로, ‘瑕’는 ‘隙’과 通한다.
역주10 : 出奔은 出國하여 다른 나라로 도망하는 것인데, 譚은 나라가 이미 망하여 出國할 나라가 없기 때문에 ‘出’을 기록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역주11 반드시……처리하겠다 : 杜注에는 ‘情’을 莊公의 마음으로 해석하였으나, 楊伯峻의 설에 따라 罪의 情狀으로 번역하였다.

춘추좌씨전(1) 책은 2019.05.2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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