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春秋左氏傳(3)

춘추좌씨전(3)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춘추좌씨전(3)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經]十有二年春 周公出奔晉하다
[經]夏 公會晉侯衛侯于瑣澤注+瑣澤 地闕 [附注] 林曰 此 晉楚爲成也 於是晉士燮會楚公子罷許偃盟于宋西門之外 不書 存中國也 하다
[經]秋 晉人敗狄于交剛注+交剛 地闕 하다
[經]冬十月이라
[傳]十二年春 王使以周公之難來告注+周公奔在前年 하다
書曰周公出奔晉이라하니 凡自周無出이나 周公自出故也注+天子無外 故奔者不言出 周公爲王所復 而自絶於周 故書出以非之
[傳]宋華元克合晉楚之成注+終前年事 [附注] 林曰 克 能也하다
夏五月 晉士燮會楚公子罷許偃注+二子 楚大夫하야 癸亥 盟于宋西門之外曰
凡晉楚無相加戎하고 好惡同之하야 同恤菑危하며 備救凶患하야 若有害楚 則晉伐之하고 在晉이면 楚亦如之하며
하야 道路無雍注+贄 幣也 하며 謀其不協注+[附注] 林曰 圖謀諸侯之不和協者 하고 而討注+討背叛不來在王庭者 이라
有渝此盟이면 明神殛之注+殛 誅也 하야其師하야 無克胙國注+俾 使也 隊 失也 [附注] 朱曰 無有能福其國者 이리라
鄭伯如晉聽成注+聽 猶受也 晉楚旣成 鄭往受命 하고 會于瑣澤하니 成故也注+晉旣與楚成 合諸侯以申成好
[傳]狄人間宋之盟以侵晉하고 而不設備하니 晉人敗狄于交剛하다
[傳]晉郤至如楚聘하고 且涖盟하다
楚子享之할새 子反相이러니 爲地室而縣焉注+縣鍾鼓也 [附注] 林曰 爲樂室於地之下 而縣鍾鼓 하다
郤至將登注+登堂 金奏作於下注+鍾而奏樂 하니 驚而走出하다
子反曰 日云莫矣 寡君須矣 吾子其入也하라
賓曰 君不忘先君之好하고 施及下臣하야 貺之以大禮하고 重之以備樂注+貺 賜也 하니 如天之福하야 兩君相見이면 何以代此
下臣不敢注+言此兩君相見之禮 이로라
子反曰 如天之福하야 兩君相見이면 焉用樂注+言兩君戰乃相見 無用此樂 이리오
寡君須矣 吾子其入也하라
賓曰注+傳諸交讓得賓主辭者 多曰賓主以明之 若讓之以一矢 禍之大者어늘 其何福之爲리오
世之治也 諸侯間於天子之事 則相朝也注+王事間缺 則修私好 하니
於是乎有享宴之禮하니라 享以訓共儉注+享有 設几而不倚 爵盈而不飮 肴乾而不食 所以訓共儉 하고 宴以示慈惠注+宴則 相與共食 하니
共儉以行禮하고 而慈惠以布政注+[附注] 林曰 禮以恭儉爲主 故恭儉所以行禮 政以慈惠爲先 故慈惠所以布政일새 하고 民是以息하야 百官承事 注+不夕 言無事 [附注] 林曰 國家安靜無事 故朝治其事而不夕見 하니 此公侯之所以扞城其民也注+扞 蔽也 言享宴結好鄰國 所以蔽扞其民
故詩曰 赳赳武夫 公侯干城注+詩 周南之風 赳赳 武貌 干 扞也 言公侯之與武夫 止于扞難而已 이라하니라
及其亂也하야는 諸侯貪冒하야 侵欲不忌注+[附注] 林曰 好財曰貪 盡利曰冒 侵奪嗜欲 無所顧忌 하고 爭尋常以盡其民注+八尺曰尋 倍尋曰常 言爭尺丈之地 以相攻伐 [附注] 林曰 盡其民力以相侵伐하고 略其武夫하야 以爲己腹心股肱爪牙注+略 取也 言世亂則公侯制禦武夫以從己志 使侵害鄰國 爲之用無已
故詩曰 注+擧詩之正 以駮亂義 詩言治世則武夫能合德公侯 外爲扞城 內制其腹心 이라하니라
天下有道 則公侯能爲民干城而制其腹心이어니와 亂則反之注+略其武夫 以爲己腹心爪牙 니라
今吾子之言 亂之道也 不可以爲法이로다
然吾子 主也 至敢不從이리오하고 遂入卒事하다
歸以語范文子하니 文子曰 無禮 必食言이리니 吾死無日矣夫注+言晉楚不能久和 必復相伐 爲十六年鄢陵戰張本 ᄂ저
楚公子罷如晉聘하고 且涖盟注+報郤至 하다
十二月 晉侯及楚公子罷盟于赤棘注+晉地 하다


12년 봄에 주공周公나라로 출분出奔하였다.
여름에 성공成公진후晉侯, 위후衛侯쇄택瑣澤에서 회합會合하였다.注+쇄택瑣澤소재지所在地를 알 수 없어 기록하지 않았다.[부주]林: 이 회합會合나라와 나라가 화친和親하였기 때문이다. 이때 나라 사섭士燮나라 공자公子허언許偃과 만나 나라 서문西門 밖에서 결맹結盟하였는데, 이를 에 기록하지 않은 것은 중국中國보존保存하기 위함이다.
가을에 진인晉人교강交剛에서 적인狄人패배敗北시켰다.注+교강交剛소재지所在地를 알 수 없어 기록하지 않았다.
겨울 10월이다.
12년 봄에 주왕周王사자使者를 보내 와서 주공周公화난禍難(出奔한 것을 이름)을 하였다.注+주공周公출분出奔한 일은 전년前年에 있었다.
에 “주공周公나라로 출분出奔하였다.”고 기록하였으니, 범례凡例에 의하면 나라에서 밖으로 출분出奔한 것을 ‘’로 기록하지 않는데, 주공周公이 스스로 나갔기 때문에 ‘’로 기록한 것이다.注+천자天子외지外地가 없다(온 천하天下가 다 천자天子의 땅이기 때문임). 그러므로 도망간 것을 ‘’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주공周公주왕周王이 되돌아오게 하였는데도 스스로 주왕周王관계關係단절斷絶하고 떠났기 때문에 ‘’이라고 기록하여 비난非難한 것이다.
나라 화원華元나라와 나라의 화친和親성립成立시켰다.注+전년前年의 일을 종결終結한 것이다. [부주]林: 이다.
여름 5월에 나라 사섭士燮나라 공자公子허언許偃회합會合하여注+두 사람은 나라 대부大夫이다. 계해일癸亥日나라 서문西門 밖에서 맹약盟約하기를,
나라와 나라는 서로에게 무력武力행사行使하지 않고 호오好惡를 함께 하여 재해災害위난危難을 함께 구휼救恤하며, 흉사凶事환란患亂을 함께[備]구제救濟하여 나라를 치는 나라가 있으면 나라가 그 나라를 토벌討伐하고 나라에 그런 일이 있으면 나라도 그렇게 하며,
사자使者왕래往來시켜 도로道路가 막힘이 없게 하며,注+예폐禮幣이다. 협력協力하지 않는 나라의 처벌處罰을 함께 상의商議[謀]하고注+[부주]林: 협력協力하지 않는 제후諸侯처벌處罰계획計劃하는 것이다. 배반背叛하는 나라를 함께 토벌討伐하기로 한다.注+배반背叛하고서 왕정王庭내조來朝하지 않는 나라를 토벌討伐한다는 말이다.
맹약盟約위반違反하면 신명神明[殛]을 내려注+주벌誅罰하는 것이다. 그 군대를 실추失墜시켜 국가國家향유享有하지 못하게 할 것이다.”注+使(하여금)이고 이다. [부주]朱: 그 나라를 향유享有하는 을 누릴 수 있는 자가 없을 것이라는 말이다.고 하였다.
정백鄭伯나라에 가서 화약和約접수接受하고注+와 같다. 나라와 나라가 이미 화친和親하였기 때문에 정백鄭伯나라에 가서 명령命令접수接受한 것이다. 쇄택瑣澤에서 회맹會盟하였으니, 이는 나라와 나라가 화친和親하였기 때문이다.注+나라가 이미 나라와 수호修好하고서 제후諸侯회합會合하여 수호修好[成好]를 천명闡明했기 때문이다.
적인狄人나라와 나라가 나라에서 결맹結盟하는 기회期會를 틈타 나라를 침공侵攻하고서 방비防備설치設置하지 않으니, 가을에 진인晉人교강交剛에서 적인狄人패배敗北시켰다.
나라 극지郤至나라에 가서 빙문聘問하고, 동시에 결맹結盟에 참여하였다.
초자楚子향례享禮를 열어 극지郤至접대接待할 때 자반子反이었는데, 지하실地下室을 만들어 거기에 종고鍾鼓 등의 악기樂器를 걸어 놓았다.注+종고鍾鼓를 단 것이다. [부주]林: 지하地下악실樂室을 만들고서 종고鍾鼓를 건 것이다.
극지郤至으로 오르려 할 때注+으로 오른 것이다. 갑자기 을 쳐서 음악音樂연주演奏[金奏]하니注+을 쳐서 음악音樂연주演奏한 것이다. 극지郤至가 놀라 빠른 걸음으로 물러 나왔다.
그러자 자반子反이 말하기를, “날은 이미 저물었고 우리 임금께서 기다리고 계시니, 그대는 속히 들어가십시오.”라고 하였다.
극지郤至[賓]가 말하기를, “초군楚君께서 우리 선군先君과의 우호友好를 잊지 않으시고 하신下臣에게까지 은혜恩惠를 베푸시어 성대盛大(享禮)를 내려 주시고 거듭 완비完備음악音樂(金奏)까지 연주演奏해 주시니,注+은 줌이다. 만약 하늘이 을 내려 나라와 나라의 두 임금이 서로 만난다면 어떤 음악音樂으로 이를 대신하겠습니까?
하신下臣은 감히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注+이것은 두 나라 임금이 서로 만날 때의 라는 말이다. 라고 하였다.
자반子反이 대답하기를, “만약 하늘이 복을 내려 두 나라의 임금이 서로 만나게 된다면 서로 한 대의 화살을 쏘아[加] 보낼[遺] 뿐이니 어찌 음악音樂사용使用하겠습니까?注+두 나라 임금은 전쟁戰爭이 있어야 서로 만날 것이니, 이런 음악音樂사용使用할 일이 없다는 말이다.
우리 임금께서 기다리고 계시니 그대는 속히 들어가십시오.”라고 하였다.
극지郤至가 말하기를,注+에 모든 교양交讓(서로 겸양謙讓함)이 빈주賓主 사이의 사령辭令이 되기에 합당合當한 자는 대부분 빈주賓主기록記錄하여 교양交讓임을 밝혔다. “만약 양국兩國의 임금이 한 대의 화살로 서로 책망責望한다면 이는 중에 큰 이니 어찌 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세상世上이 다스려졌던 때에는 제후諸侯천자天子완수完遂하고 한가閑暇한 틈이 나면 서로 조현朝見하였습니다.注+왕사王事를 마치고 틈[間缺]이 생기면 사사로이 인국隣國수호修好한다는 말이다.
이때에 향례享禮연례宴禮가 있었는데, 향례享禮로써 공검恭儉을 가르치고,注+향례享禮에는 체천體薦이 있는데, 안석案席을 설치하되 기대지 않고, 잔에 술이 가득하되 마시지 않으며, 벌여 놓은 고기가 마르되 먹지 않는 것은 공검恭儉을 가르치기 위함이다. 연례宴禮로써 자혜慈惠를 보였습니다.注+연례宴禮에는 절조折俎하여 서로 함께 먹는다.
공검恭儉으로써 하고, 자혜慈惠로써 정교政敎를 폈기 때문에注+[부주]林: 공검恭儉을 근본[主]으로 삼기 때문에 공검恭儉이 예를 행하는 근본[所以]이고, 정치政治자혜慈惠를 근본으로 삼기 때문에 자혜慈惠정치政治를 펴는 근본이라는 말이다. 정교政敎로 인해 이루어지고 백성이 이로 인해 안식安息하여, 백관百官정무政務처리處理를 낮에만 하고 저녁에는 하지 않았으니,注+불석不夕은 일이 없음을 말한 것이다. [부주]林: 국가國家안정安靜하여 무사無事하기 때문에 오전午前에만 그 일을 처리處理하고 오후午後에는 조현朝見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것이 공후公侯가 그 백성을 보호保護했던 방법方法이었습니다.注+은 가리는[蔽] 것이다. 향례享禮연례宴禮를 베풀어 외국外國우호友好를 맺는 것은 자국自國의 백성을 보호保護[蔽扞]하기 위함이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에 ‘용감勇敢[赳赳]한 무부武夫공후公侯간성干城이라네.’注+는 《시경詩經》 〈주남周南토저편兎罝篇〉이다. 규규赳赳용감勇敢한 모양이고, 은 막는 것이다. 공후公侯무부武夫와 함께하는 일은 난리亂離를 막는 것뿐이라는 말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세상世上이 어지러워짐에 미쳐서는 제후諸侯들이 이익利益침탈侵奪욕망慾望기탄忌憚 없이 부려注+[부주]林: 재물財物을 좋아하는 것을 ‘’이라 하고 이익利益을 독차지 하는 것을 ‘’라 한다. 침탈侵奪욕망慾望을 마음껏 부리고서 마음에 꺼리거나 개의치 않음을 말한다. 척촌尺寸의 땅을 쟁탈爭奪하기 위해 그 백성들을 전쟁戰爭으로 내몰아 다 죽이고,注+8이고, 양심兩尋이니, 척장尺丈의 땅을 쟁탈爭奪하기 위해 서로 공벌攻伐한다는 말이다.[부주]林: 백성들의 힘을 모두 동원하여 서로 침벌侵伐한다는 말이다.무부武夫들을 하여 자기의 복심腹心, 고굉股肱, 조아爪牙로 삼았습니다.注+함이다. 세상이 어지러우면 공후公侯무부武夫들을 제어制禦해 자기의 뜻을 따르게 하여, 이웃 나라를 침해侵害하게 하여 개(犬)처럼 부리기를 마지않는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에 ‘용감勇敢무부武夫공후公侯복심腹心이라네.’注+정풍正風(周南)의 를 들어 난세亂世상황狀況반박反駁한 것이다. 이 치세治世에는 무부武夫공후公侯합덕合德(同一한 목표目標를 위해 진력盡力함)하여 밖으로는 간성干城이 되고 안으로는 그 복심腹心제어制禦했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천하天下가 있으면 공후公侯가 백성의 간성干城이 되어 자기의 복심腹心(武夫)을 통제統制하지만, 어지러운 세상에는 이와 반대反對입니다.注+그 나라의 무부武夫들을 모두 [略]하여 자기의 복심腹心, 조아爪牙로 삼는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지금 그대의 말은 난세亂世이니 으로 삼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대는 주인主人이니, 내[至]가 감히 따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고서, 드디어 들어가서 일을 마치었다.
극지郤至가 돌아가서 범문자范文子에게 이를 이야기하니, 문자文子가 말하기를, “무례無禮한 사람은 반드시 언약言約을 지키지 않으니, 우리가 죽을 날도 멀지 않았다.”注+나라와 나라는 오래도록 화목和睦하지 못하고 반드시 다시 서로 침벌侵伐할 것이라는 말이다. 성공成公 16년에 언릉鄢陵에서 전쟁戰爭장본張本이다. 라고 하였다.
겨울에 나라 공자公子나라에 가서 빙문聘問하고 동시에 결맹結盟참여參與하였다.注+극지郤至내빙來聘보빙報聘한 것이다.
12월에 진후晉侯나라 공자公子적극赤棘에서 결맹結盟하였다.注+적극赤棘나라 땅이다.


역주
역주1 交贄往來 : 使者의 往來를 이른다. 옛날의 聘問에는 使者가 반드시 禮物[贄]을 가지고 갔다.
역주2 不庭 : 王者의 朝廷에 朝覲하지 않는 諸侯를 이름인데, 여기서는 晉나라와 楚나라를 背叛하는 諸侯의 뜻으로 쓰인 듯하다.
역주3 : 추
역주4 摯[擊] : 저본에는 ‘摯’로 되어 있으나 《十三經注疏》本에 의거하여 ‘擊’으로 바로잡았다.
역주5 無亦唯是一矢以相加遺 : 〈疏〉에 의하면 晉나라와 楚나라가 모두 大國이어서 서로 朝見하려 하지 않으니, 오직 戰爭이 있어야만 두 나라 임금이 서로 만날 수 있다는 말이다. 《左氏會箋》에 “加는 활을 쏘아 맞히는 것이다.”고 하였다. 이 說을 取해 飜譯하였다. 〈楊注〉에 “無는 句首助詞로 뜻이 없고, 加遺는 同義連詞로 晉나라와 楚나라의 두 임금은 오직 戰爭이 있어야만 비로소 만날 수 있다는 말이다.”고 하였다.
역주6 體薦 : 體薦은 犧牲의 半體를 통째로 도마(俎)에 올린 것이다. 宣公 16년 傳注參考할 것.
역주7 折俎 : 折俎는 사람이 먹을 수 있도록 犧牲을 解體해 도마에 올린 것이다. 宣公 16년 傳注參考할 것.
역주8 政以禮成 : 慈惠한 政治는 반드시 恭儉한 禮로 인해 이루어지는 것인데, 지금 楚나라는 大賓을 接待하는 禮를 잃었기 때문에 먼저 넌지시 꾸짖은 것이다. 《左氏會箋》
역주9 朝而不夕 : 아침에 임금을 謁見하는 것을 ‘朝’라 하고 저녁에 임금을 謁見하는 것을 ‘夕’이라 한다. 人民이 安息하여 일이 적기 때문에 百官이 모두 아침에만 謁見하고, 저녁에는 謁見하지 않는 것이니, 일이 없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疏〉
역주10 搏噬 : 搏은 치는 것이고 噬는 깨무는 것이다. 개는 主人의 命에 따라 사람을 물어뜯으므로 主君의 命에 따라 이웃 나라를 侵害하는 武夫를 개에 비유한 것이다.
역주11 赳赳武夫 公侯腹心 : 杜氏는 腹心을 임금의 마음[腹心]으로 解釋하였으나, 譯者는 心腹(믿을 수 있는 매우 가까운 사람)의 뜻으로 飜譯하였다. 〈疏〉에 의하면, 武夫는 武勇이 있어 사람을 보호하는 울타리[扞蔽]가 될 수 있으므로 治世에는 公侯와 武夫가 그 마음[腹心]을 한가지로 하여 그 백성을 보호[扞]하였을 뿐, 다른 사람을 侵犯하지 않았다. 그러나 亂世에는 公侯가 武夫에게 자기와 같은 생각을 하게 하여, 公侯가 國土를 開拓하고 싶으면 武夫를 자기의 腹心으로 삼아 이웃 나라를 侵害하게 하였다. 이 詩는 《詩經》 〈周南兎罝篇〉의 詩로 賢人의 일을 讚美한 것인데, 이 詩를 引用해 亂世의 狀況을 證明한 것이다. 그러므로 ‘正風의 詩를 들어 亂世의 狀況을 反駁했다.’고 한 것이다. 이 詩는 사람의 마음은 본래 貪慾스럽기 때문에 그 貪慾을 抑制하지 않고 그대로 두면 상대를 해치게 되는데, 公侯가 武夫로 하여금 자기의 마음을 制御하게 하여 自國을 지켜 難을 막을 뿐, 남을 해치지 않는 것을 讚美한 것이다.

춘추좌씨전(3) 책은 2019.05.2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50 서울시 종로구 삼봉로81, 1332호(두산위브파빌리온)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22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