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春秋左氏傳(1)

춘추좌씨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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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좌씨전(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經]二十有六年春 公伐戎注+無傳하다
26년 봄에 장공莊公을 쳤다.注+이 없다.
[經]夏 公至自伐戎注+無傳하다
여름에 장공莊公을 치고서 돌아왔다.注+이 없다.
[經]曹殺其大夫注+無傳 不稱名 非其罪 하다
나라가 그 대부大夫를 죽였다.注+이 없다. 대부의 이름을 칭하지 않은 것은 대부의 죄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 문공文公 7년에 보인다.
[經]秋 公會宋人齊人 伐徐注+無傳 宋序齊上 主兵하다
가을에 장공莊公송인宋人제인齊人과 연합하여 서국徐國을 토벌하였다.注+이 없다. 나라의 서차序次나라 위에 둔 것은 나라가 주장主將이었기 때문이다.
[經]冬十有二月癸亥 朔 日有食之注+無傳하다
겨울 12월 초하루 계해일에 일식日食이 있었다.注+이 없다.
[傳]二十六年春 晉士蔿爲大司空注+大司空 卿官 [附注] 林曰 賞去桓莊之功하다
26년 봄에 사위士蔿대사공大司空이 되었다.注+대사공大司空관직官職이다.[부주]林: 환숙桓叔장백莊伯종족宗族제거除去으로 이 벼슬을 으로 준 것이다.
[傳]夏 士蔿城絳하고 以深其宮注+絳 晉所都也 今平陽絳邑縣 [附注] 林曰 史記是年晉始都絳 以深公官 備豫也하다
여름에 사위士蔿에 성을 수축修築하고 공궁公宮의 담을 높이 쌓았다.注+나라의 소도小都(第二首都)이다. 지금의 평양平陽강읍현絳邑縣이다.[부주]林: 《사기史記》에 의하면 이해에 나라가 비로소 으로 도읍都邑을 옮겼다. 공궁公宮에 담을 높이 쌓은 것은 불의不意의 사태를 미리 대비對備하기 위함이었다.
[傳]秋 虢人侵晉하고 虢人又侵晉注+爲傳明年晉將伐虢張本 此年經傳 各自言其事者 或經是直文 或策書雖存 而簡牘散落 不究其本末 故傳不復申解 但言傳事而已하다
가을에 괵인虢人나라를 침공侵攻하고, 겨울에 괵인虢人이 또 나라를 침공하였다.注+명년明年나라가 괵국虢國토벌討伐장본張本이다. 이 해의 에 각각 별개의 사건들을 말한 것은 에 솔직하게 표현하였기 때문에 을 낼 필요가 없어서이거나, 혹은 사책史策에 글은 비록 남아 있으나 간독簡牘(竹簡)이 흩어지고 떨어져 나가서 그 본말本末고구考究할 수 없기 때문에 에 다시 되풀이해 해석하지 않고, 전해지는 일만을 말한 것인 듯하다.
역주
역주1 禮在文七年 : 文公 7년 傳에 “宋人이 그 大夫를 죽였는데, 經에 죽은 자의 이름을 기록하지 않은 것은 죽은 자가 여럿이고, 또 그들의 죄가 아니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춘추좌씨전(1) 책은 2019.05.2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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