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春秋左氏傳(2)

춘추좌씨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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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經]十有八年春王正月 宋公曹伯衛人邾人伐齊하다注+納孝公
18년 봄 주왕周王 정월에 송공宋公조백曹伯위인衛人주인邾人나라를 토벌하였다.注+효공孝公나라로 들여보내기 위해서였다.
[經]夏 師救齊하다注+無傳
여름에 노군魯軍나라를 구원救援하였다.注+이 없다.
[經]五月戊寅 宋師及齊師戰于甗하야 齊師敗績하다注+無虧旣死 曹衛邾先去 魯亦罷歸 故宋師獨與齊戰 不稱宋公 不親戰也 大崩曰敗績 甗 齊地
5월 무인일戊寅日송군宋軍제군齊軍에서 전쟁戰爭하였는데 제군齊軍대패大敗하였다.注+무휴無虧가 죽자, 나라‧나라‧나라는 먼저 떠났고, 나라도 구원救援포기抛棄하고 돌아왔기 때문에 송군宋軍이 홀로 제군齊軍전쟁戰爭한 것이다. 송공宋公을 칭하지 않은 것은 송공宋公이 직접 전쟁에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크게 무너지는 것을 ‘패적敗績’이라 한다. 나라 땅이다.
[經]狄救齊하다注+無傳 救四公子之徒
적인狄人나라를 구원救援하였다.注+이 없다. 네 공자公子의 무리를 구원救援한 것이다.
[經]秋八月丁亥 葬齊桓公하다注+十一月而葬 亂故 八月無丁亥 日誤
가을 8월 정해일丁亥日제환공齊桓公을 장사 지냈다. 注+11개월 만에 장사 지낸 것은 난리 때문이었다. 8월에는 정해일丁亥日이 없으니, 일진日辰이 틀린 것이다.
[經]冬 邢人狄人伐衛하다注+狄稱人者 史異辭 傳無義例 [附注] 林曰 狄稱人之始
겨울에 형인刑人적인狄人나라를 토벌하였다. 注+으로 칭한 것은 사관史官문사文辭를 달리한 것인데, 에 그에 대한 의례義例를 말하지 않았다. [부주]林: 이것이 으로 칭한 시초始初이다.
[傳]十八年春 宋襄公以諸侯伐齊하니 三月 하다注+以說宋
18년 봄에 송양공宋襄公제후諸侯의 군대를 거느리고서 나라를 토벌하니 3월에 제인齊人무휴無虧를 죽였다. 注+나라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무휴無虧를 죽인 것이다.
[傳]鄭伯始朝于楚注+中國無霸故하니 楚子賜之金하고 旣而悔之하야 與之盟曰 無以鑄兵하라注+楚金利故
정백鄭伯이 비로소 나라에 조현朝見하니,注+중국中國패자霸者가 없었기 때문이다.초자楚子정백鄭伯에게 를 주고는 곧 후회後悔하여, 정백과 맹약盟約하기를 “이 으로 병기兵器를 만들지 말라.”注+으로 병기兵器를 만들면 예리銳利하기 때문이다.고 하였다.
故以鑄三鐘하다注+古者以銅爲兵 傳言楚無霸者遠略
그러므로 정백鄭伯은 이 으로 세 개의 종을 주조鑄造하였다.注+옛날에는 으로 병기兵器를 만들었다. 의 말은 나라가 패자霸者로서의 원대遠大책략策略이 없다는 뜻이다.
[傳]齊人將立孝公이나 不勝四公子之徒하니 遂與宋人戰하다注+無虧已死 故曰四公子
제인齊人효공孝公을 세우고자 하였으나 네 공자公子 무리를 이기지 못하니, 네 공자公子의 무리가 드디어 송인宋人전쟁戰爭하였다.注+무휴無虧가 이미 죽었기 때문에 ‘네 공자公子’라고 한 것이다.
夏五月 宋敗齊師于甗하고 하다
여름 5월에 송군宋軍제군齊軍에서 패배시키고 효공孝公을 세우고서 환군還軍하였다.
[傳]秋八月 葬齊桓公하다注+孝公立而後得葬
가을 8월에 제환공齊桓公을 장사 지냈다.注+효공孝公즉위卽位한 뒤에 장사 지낸 것이다.
[傳]冬 邢人狄人伐衛하야 圍菟圃하다注+[附注] 林曰 圍其菟圃之邑
겨울에 형인邢人적인狄人나라를 토벌하여 토포菟圃를 포위하였다.注+[부주]林: 나라의 토포읍菟圃邑을 포위한 것이다.
衛侯以國讓父兄子弟及朝衆曰
위후衛侯부형父兄자제子弟조정朝廷중인衆人들에게 나라를 사양하며 말하였다.
苟能治之 燬請從焉하리라注+燬 衛文公名
“진실로 나라를 잘 다스릴 수 있는 자가 있다면 나는 그의 명을 따르겠다.”注+위문공衛文公의 이름이다.
衆不可하다注+不聽衛侯讓 而後師于訾婁注+陳師訾婁 訾婁 衛邑하니 狄師還하다注+獨言狄還 則 言邢所以終爲衛所滅
중인衆人불가不可하다고注+위후衛侯의 사양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한 뒤에 자루訾婁에 군대를 포진布陣시키니注+군대를 자루訾婁포진布陣시킨 것이다. 자루訾婁나라 이다.적군狄軍이 돌아갔다.注+적군狄軍이 돌아갔다고만 말하였으니, 형인邢人은 남아서 위군衛軍을 막은 것이다. 이는 나라가 마침내 나라에게 멸망滅亡된 이유를 말한 것이다.
[傳]梁伯益其國而不能實也注+多築城邑 而無民以實之하고 命曰新里라하다
양백梁伯국토國土를 넓혔으나 백성을 그곳에 채우지 못하고서,注+성읍城邑을 많이 축조築造하였으나 백성을 이주移住시켜 그 곳을 채우지 않았다는 말이다.신리新里’라고 명명命名하였다.
秦取之하다注+[附注] 林曰 秦乘其虛而取其地
나라가 그곳을 하였다.注+[부주]林: 나라가 그 이 빈 틈을 타 그 땅을 취한 것이다.
역주
역주1 齊人殺無虧 : 李震相은 “無虧가 齊君이 된 것은 桓公의 命에 의한 것이 아니고 간악한 嬖人들에 의해 推戴된 것이므로 國人들이 따르지 않고, 昭公을 세우는 것이 정당하고 생각했기 때문에 宋나라가 쳐들어오는 기회를 이용해 國人들이 無虧를 죽인 것이다.”고 하였다.
역주2 立孝公而還 : 17년 傳의 ‘齊侯의 夫人이 셋이다.’는 데서부터 18년 傳의 ‘孝公을 세우고서 還軍했다.’는 데까지에 대해 徐壽錫은 “이 傳에는 의심스러운 점이 더욱 많다. 左氏의 記事에는 본래 거짓이 많지만, 公羊氏와 穀梁氏도 뜻을 설명한 것이 相反되는 점이 있으니, 經文을 참고해 보면 세 傳 모두 經文과 부합하지 않는다. 齊桓公이 죽은 지 한 달이 넘기도 전에 네 나라가 聯合해 齊나라를 토벌하기로 한 것은 무엇 때문에 그리 서둘렀다는 말인가? 公子昭가 宋나라로 도망가고 齊人이 無虧를 죽인 것은 모두 예사로운 일이 아닌데도 經文에 보이지 않고, 네 나라가 함께 토벌하기로 하고서 전쟁은 宋나라 홀로 한 것은 또 어째서인가? 無虧가 이미 죽었는데 魯軍이 齊軍을 구원했다는 것은 누구를 구원했다는 말이며, 齊軍이 이미 패전하여 嗣君을 세웠는데 狄人이 齊나라를 구원했다는 것은 또 누구를 구원했다는 말인가? 文辭는 간략하지만 일의 내용이 완비되도록 기록하는 聖人의 글이 결코 이와 같지는 않을 것 같은데 상고할 수가 없다.”고 하였다.
역주3 邢留拒衛 : 楊伯峻은 “狄軍이 돌아갔으면 邢軍도 반드시 돌아갔을 것인데, 杜注에 ‘邢軍은 남아서 衛軍을 막았다.’는 말은 믿을 수 없다.”고 하였다.

춘추좌씨전(2) 책은 2019.05.2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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