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經]冬
에 天王出居于鄭
하다注+襄王也 天子以天下爲家 故所在稱居 天子無外 而書出者 譏王蔽於匹夫之孝 不顧天下之重 因其辟母弟之難書出 言其自絶於周
傳
及河
에 子犯以
授公子
注+[附注] 朱曰 以璧授重耳 意欲要君爲誓言 此子犯之奸也 曰 臣
從君巡於天下
注+羈 馬羈 絏 馬繮 [附注] 林曰 言臣供賤役에 臣之罪甚多矣
니이다
請由此亡
注+[附注] 林曰 請由此而逃去也 朱曰 請死于此也하노이다 公子曰
注+子犯 重耳舅也 言與舅氏同心之明 如此白水 猶詩言謂予不信 有如皦日라하고 投其璧于河
하다注+質信於河
濟河
하야 圍令狐
하고 入桑泉
하야 取臼衰
하다注+桑泉在河東解縣西 解縣東南有臼城
二月甲午
에 晉師軍于廬柳
注+懷公遣軍距重耳어늘 秦伯使公子縶如晉師
하니 師退
하야 軍于郇
하다注+解縣西北有郇城 [附注] 林曰 晉師從秦命納文公 故退師
辛丑
에 狐偃及秦晉之大夫盟于郇
하다注+[附注] 林曰 爲盟于郇 以定納文公之約
丙午
에 入于曲沃
하야 丁未
에 朝于武宮
注+文公之祖武公廟 [附注] 朱曰 武公以曲沃幷晉 故立廟於其邑하고 戊申
에 使殺懷公于高梁
하다
不書
는 亦不告也
라注+懷公奔高梁 高梁在平陽楊縣西南 再發不告者 言外諸侯入及見殺 亦皆須告乃書于策
傳
[傳]呂郤畏偪
注+呂甥郤芮 惠公舊臣 故畏爲文公所偪害하야 將焚公宮而弑晉侯
하다
寺人披請見
한대 公使讓之
하고 且辭焉
注+辭不見 曰
蒲城之役
注+在五年에 君命一宿
이어늘 女卽至
注+卽日至 [附注] 林曰 獻公命汝一宿之期 女不待宿 卽日而至하고 其後
에 余從狄君以田渭濱
注+田 獵에 女爲惠公來求殺余
할새 命女三宿
이어늘 女中宿至
하니
夫袪猶在
注+披所斬文公衣袂也하니 女其行乎
注+[附注] 林曰 汝其去乎 言宥汝以遠也ㄴ저
臣謂君之入也
에 其知之矣
注+知君人之道러니 若猶未也
하니 又將及難
하니
君命無貳
가 古之制也
니이다注+[附注] 林曰 奉君命者 無有二心
除君之惡
엔 唯力是視
니 蒲人狄人
이 余何有焉
注+當二君世 君爲蒲狄之人 於我有何義 [附注] 林曰 言君在蒲則爲蒲人 在狄則爲狄人 當此之時 我知爲獻公惠公而已 何有於文公哉이리잇가
今君卽位
하시니 其無蒲狄乎
잇가注+[附注] 林曰 其無如蒲如狄欲爲公害者乎
齊桓公置射鉤
하고 而使管仲相
注+乾時之役 管仲射桓公中帶鉤하니 君若易之
시면 何辱命焉
잇가注+言若反齊桓 己將自去 不須辱君命
行者甚衆
注+[附注] 林曰 懼罪而出奔者甚多하리니 豈唯刑臣
注+披 奄人 故稱刑臣이리잇가
瑕甥郤芮不獲公하야 乃如河上이어늘 秦伯誘而殺之하다
秦伯送衛於晉三千人
하니 實
이러라注+新有呂郤之難 國未輯睦 故以兵衛文公 諸門戶僕隷之事 皆秦卒共之 爲之紀綱
傳
[傳]初
에 晉侯之豎頭須
는 守藏者也
라注+頭豎 一曰里鳧須 豎 左右小吏
其出也
에 竊藏以逃
注+文公出時하야 盡用以求納之
하다注+求納文公
及入
에 求見
한대 公辭焉以沐
注+[附注] 林曰 文公辭之不見 託以沐頭 洗頭曰沐하니
謂僕人曰 沐則心覆
하고 心覆則圖反
하니 宜吾不得見也
라注+[附注] 林曰 言沐則低頭 而心必反覆 心主謀畫 心旣反覆 則所圖謀者 宜亦反覆
居者爲社稷之守하고 行者爲羈絏之僕이 其亦可也어늘 何必罪居者오
僕人以告
한대 公遽見之
하다注+言棄小怨 所以能安衆
傳
[傳]狄人歸季隗于晉
하고 而請其二子
하다注+二子 伯鯈叔劉 [附注] 林曰 請其進退之命
文公妻趙衰
注+[附注] 林曰 文公以女妻趙衰하야 生原同屛括樓嬰
하다注+原屛樓 三子之邑
趙姬請逆盾與其母
注+趙姬 文公女也 盾 狄女叔隗之子 [附注] 林曰 蓋趙衰在狄時 娶叔隗生盾 今請迎之歸晉하니 子餘辭
하다注+子餘 趙衰字
姬曰 得寵而忘舊
면 何以使人
이릿가注+[附注] 林曰 得新寵而忘舊愛 何以使人心悅服
來
에 以盾爲才
라하야 固請于公
하야 以爲嫡子
하고 而使其三子下之
하고 以叔隗爲內子
하고 而己下之
하다注+卿之嫡妻爲內子 皆非此年事 蓋因狄人歸季隗 遂終言叔隗
傳
[傳]晉侯賞從亡者
할새 介之推不言祿
하니 祿亦不及
하다注+介推 文公微臣 之 語助 [附注] 朱曰 介 姓 推 名 推亦從亡 不言求祿 文公頒祿 亦不及於推也
惠懷無親
하야 外內棄之
注+[附注] 林曰 惠公懷公 無親黨之援 外之親鄰 內之臣民 皆共棄之로되 天未絶晉
은 必將有主
니 主晉祀者
는 非君而誰
오
竊人之財도 猶謂之盜온 況貪天之功하야 以爲己力乎아
下義其罪
하고 上賞其姦
注+[附注] 林曰 貪天之功 罪也 在下者反以爲立君之義 貪天之功 奸也 在上者反以推立君之賞하야 上下相蒙
注+蒙 欺也 하니 難與處矣
로다
以死誰懟
오注+[附注] 林曰 何不亦求其賞 不求而死 將以誰怨 對曰 尤而効之
면 罪又甚焉
注+[附注] 林曰 尤 過也 我以彼貪天者爲過 今自求賞 是效其過也이오
且出怨言
하니 不食其食
이니이다注+怨言 謂上下相蒙 難與處 [附注] 朱曰 且我已出怨言矣 不當更食其祿也
其母曰 亦使知之若何
오注+旣不求之 且欲令推達言於文公 對曰 言
은 身之文也
니
其母曰 能如是乎
아 與女偕隱
注+偕 俱也하리라하고 遂隱而死
하다
晉侯求之不獲
하야 以緜上爲之田曰 以志吾過
하고 且旌善人
하노라注+旌 表也 西河界休縣南有地名綿上 [附注] 林曰 以綿上之地爲介推私田 以供祭祀 朱曰 志 記也
傳
[傳]鄭之入滑也
에 滑人聽命
注+入滑 在二十年러니 師還
에 又卽衛
하다注+[附注] 林曰 又叛鄭通好于衛
鄭公子士洩堵
彌帥師伐滑
注+堵彌 鄭大夫하니 王使伯服游孫伯如鄭請滑
하다注+二子 周大夫
鄭伯怨惠王之入而不與厲公爵也
注+事在莊二十一年하고 又怨襄王之與衛滑也
라注+怨王助衛爲滑請
臣聞之
컨대 大上以德撫民
注+無親疏也하고 其次親親以相及也
注+先親以及疏 推恩以義라하니이다
故封建親戚
하야 以蕃屛周
注+弔 傷也 咸 同也 周公傷夏殷之叔世 疏其親戚 以至滅亡 故廣封其兄弟 [附注] 林曰 或以二叔爲管蔡者 非하니 管蔡郕霍魯衛毛聃郜雍曹滕畢原酆郇
는 文之昭也
오注+十六國 皆文王子也 管國在熒陽京縣東北 雍國在河內山陽縣西 畢國在長安縣西北 酆國在始平鄠縣東 [附注] 林曰 文王於周爲穆 穆生昭 故曰文之昭 邘晉應韓
은 武之穆也
오注+四國 皆武王子 應國在襄陽城父縣西南 韓國在河東郡界 河內野王縣西北有邘城 凡蔣邢茅胙祭
는 周公之胤也
니이다注+胤 嗣也 蔣在弋陽期思縣 高平昌邑縣西有茅鄕 東郡燕縣西南有胙亭
召穆公思周德之不類
라 故糾合宗族于成周而
注+類 善也 糾 收也 召穆公 周卿士 名虎 召 采地 扶風雍縣東南有召亭 周厲王之時 周德衰微 兄弟道缺 召穆公于東都收會宗族 特作此周公之樂歌 常棣詩 屬小雅 曰 常棣之華
여
鄂不韡韡
로다注+常棣 棣也 不韡韡 言韡韡 以喩兄弟和睦 則强盛而有光輝韡韡然 [附注] 林曰 常棣 郁李花也
은 莫如兄弟
注+言致韡韡之盛 莫如親兄弟라하고 其四章曰 兄弟䦧于墻
이나 外禦其侮
라하니이다注+䦧 訟爭貌 言內雖不和 猶宜外扞異族之侵侮
如是則兄弟雖有小忿
이라도 不廢懿親
이리이다注+懿 美也
庸勳親親
하며 暱近尊賢
은 德之大者也
오注+庸 用也 暱 親也 [附注] 林曰 昵近 親暱其隣近於我者 卽聾從昧
하며 與頑用嚚
은 姦之大者也
오 棄德崇姦
은 禍之大者也
니이다注+崇 聚也
鄭有平惠之勳
注+平王東遷 晉鄭是依 惠王出奔 虢鄭納之 是其勳也하고 又有厲宣之親
注+鄭始封之祖桓公友 周厲王之子 宣王之母弟하고 棄嬖寵而用三良
注+七年 殺嬖臣申侯 十六年 殺寵子子華也 三良 叔詹堵叔師叔 所謂尊賢하고 於諸姬爲近
注+道近當暱之 [附注] 林曰 鄭居河洛 比之姬姓諸侯 去周最近 所當暱之하니 四德具矣
니이다
耳不聽五聲之和爲聾이오 目不別五色之章爲昧오 心不則德義之經爲頑이오 口不道忠信之言爲嚚이어늘 狄皆則之하니 四姦具矣니이다
故封建之
注+當周公時 故言周之有懿德하고 其懷柔天下也
에도 猶懼有外侮
하야 扞禦侮者
엔 莫如親親
이라
故以親屛周
하니이다注+[附注] 林曰 以同姓諸侯爲周屛翰
召穆公
도 亦云
하니이다注+周公作詩 召公歌之 故言亦云
今周德旣衰
어늘 於是乎又渝周召
하야 以從諸姦
하시니 無乃不可乎
잇가注+變周召親兄弟之道
民未忘禍
어늘 王又興之
注+前有子頹之亂 中有叔帶召狄 故曰民未忘禍하시니 其若文武何
잇가注+言將廢文武之功業
傳
[傳]夏
에 狄伐鄭取櫟
하니 王
狄人
하야 將以其女爲后
한대 富辰諫曰 不可
하이다
臣聞之
컨대 曰 報者倦矣
로대 施者未厭
注+施 功勞也 有勞則望報過甚 [附注] 朱曰 大凡報人之施者 我雖曰力倦矣 彼責我之報者 其心終未厭足也이라하니 狄固貪
이어늘 王又啓之
니이다注+[附注] 朱曰 今以其女爲后 是開啓其貪也
女德無極
하고 婦怨無終
注+婦女之志 近之則不知止足 遠之則忿怨無已 終 猶已也하니 狄必爲患
하리이다 王又弗聽
하다
初甘昭公有寵於惠后
하다注+甘昭公 王子帶也 食邑於甘 河南縣西南有甘水
惠后將立之
나 未及而卒
하니 昭公奔齊
하다注+奔齊 在十二年
王復之
注+在二十二年한대 又通於隗氏
注+隗氏 王所立狄后어늘 王替隗氏
하다注+替 廢也
頹叔桃子曰 我實使狄
注+[附注] 林曰 我實使狄師伐鄭 及其女爲后하니 狄其怨我
하리라하고 遂奉大叔
하야 以狄師攻王
하다
王御士將禦之
注+周禮 王之御士十二人한대 王曰 先后其謂我何
오注+先后 惠后也 誅大叔 恐違先后志
寧使諸侯圖之
注+[附注] 林曰 蓋不欲親誅叔帶하라하고 王遂出
하야 及坎欿
하니 國人納之
하다注+坎欿 周地 在河南鞏縣東
秋
에 頹叔桃子奉大叔以狄師伐周
하야 大敗周師
하야 獲周公忌父原伯毛伯富辰
注+原毛 皆采邑하니
傳
[傳]鄭子華之弟子臧出奔宋
注+十六年 殺子華故하야 注+鷸 鳥名 聚鷸羽以爲冠 非法之服하니 鄭伯聞而惡之
注+惡其服非法하야 使盜誘之
하니 八月
에 盜殺之于陳宋之間
하다
不稱其服
注+詩 曹風 刺小人在位 言彼人之德 不稱其服이라하니 子臧之服
이 不稱也夫
ㄴ저 詩曰 自詒伊慼
이라하니 其子臧之謂矣
로다注+詩 小雅 詒 遺也 慼 憂也 取其自遺憂
夏書曰 地平天成
이라하니 稱也
니라注+夏書 逸書 地平其化 天成其施 上下相稱爲宜
傳
[傳]宋及楚平
하다注+[附注] 林曰 宋自于泓之敗 與楚不睦 至是成公改紀 始及楚平
宋成公如楚
라가 還
에 入於鄭
하니 鄭伯將享之
하야 問禮於皇武子
注+皇武子 鄭卿한대
天子有事
에 膰焉
注+有事 祭宗廟也 膰 祭肉 尊之 故賜以祭胙하고 有喪
에 拜焉
注+宋弔周喪 王特拜謝之하니 豐厚可也
니이다注+[附注] 林曰 言天子尙尊敬之 則鄭享宋公 宜豐厚其禮
鄭伯從之
하야 享宋公
에 有加
하니 禮也
라注+禮物事事加厚 善鄭能尊先代
傳
[傳]冬
에 王使來告難曰 不穀不德
하야 得罪于母弟之寵子帶
注+[附注] 林曰 王引咎自責 故云得罪于同母弟 以子帶爲惠后所寵 故云寵子帶하야 鄙在鄭地氾
注+鄙 野也일새 敢告叔父
하노라注+天子謂同姓諸侯曰叔父
臧文仲對曰 天子蒙塵于外
注+[附注] 林曰 天子出奔 謂之蒙塵하시니 敢不奔問官守
릿가注+官守 王之群臣 [附注] 朱曰 天子至尊 不敢斥言 故但曰奔問官守
王使簡師父告于晉
하고 使左鄢父告于秦
하다注+二子 周大夫
天子無出
이어늘 書曰 天王出居于鄭
이라하니 辟母弟之難也
라注+叔帶 襄王同母弟
天子凶服
이면 降名
이 禮也
라注+凶服 素服 降名 稱不穀 [附注] 林曰
傳
[傳]鄭伯與孔將鉏石甲父侯宣多
于氾
注+三子 鄭大夫 省官司 具器用하고 而後聽其私政
하니 禮也
라注+得先君後己之禮
傳
[傳]衛人將伐邢
한대 禮至曰 不得其守
면 國不可得也
注+禮至 衛大夫 守 謂邢正卿國子니 我請昆弟仕焉
注+[附注] 林曰 我請爲衛間諜 先以兄弟往邢求仕焉 此其爲得國子之道하리라하고 乃往得仕
하다注+爲明年滅邢傳
겨울에
천왕天王이
정鄭나라로 가서
거처居處하였다.
注+양왕襄王이다. 천자天子는 천하天下를 가家로 여기기 때문에 머무는 곳을 ‘거居’라고 칭한다. 천자天子는 밖이 없는데[無外] ‘출出’이라고 기록한 것은 양왕襄王이 필부匹夫의 효도孝道에 가리워 중대重大한 천하天下를 돌아보지 않고서 모제母弟의 환난患難을 피避한 것으로 인해 ‘출出’이라고 기록하여 비난한 것이니, 양왕襄王 스스로가 주周나라를 버렸다는 말이다.
진후晉侯이오夷吾가
졸卒하였다.
注+문공文公이 군위君位를 정한 뒤에 노魯나라에 부고赴告하였다. 동맹同盟하지 않았으나 이름을 기록해 부고赴告하였기 때문에 경經에 이름을 기록한 것이다.
傳
24년 봄 주왕周王정월正月에 진백秦伯이 중이重耳를 진晉나라로 들여보냈다.
이를
경經에 기록하지 않은 것은
진晉나라가
중이重耳가 들어온 것을
노魯나라에
통고通告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注+중이重耳를 진晉나라로 들여보낸 것이다.
중이重耳가
황하黃河에 이르렀을 때
자범子犯이
벽옥璧玉을
공자公子에게 주면서
注+[부주]朱: 벽옥璧玉을 중이重耳에게 준 것은 자범子犯이 임금으로 하여금 서약誓約[誓言]하도록 협박脅迫[要]하려는 뜻이었으니, 이것이 자범子犯의 간교奸巧함이다. 말하기를, “
신臣이
기설羈絏을 지고 임금님을 따라
천하天下를 돌아다니는 사이에
注+기羈는 말굴레이고 설絏은 말고삐이다. [부주]林: 신하가 임금을 위해 천역賤役을 봉행奉行하는 것이다.신臣이 지은
죄罪가 매우 많습니다.
신臣도 오히려 죄罪를 알고 있는데 하물며 임금님이겠습니까?
그러니 여기에서 떠나겠습니다.”
注+[부주]林: 여기에서 도망해 가겠다고 청한 것이다.[부주]朱: 여기에서 죽겠다고 청한 것이다.라고 하니,
공자公子가 말하였다.
“만약 내가
구씨舅氏(外叔)와 마음을 한가지로 하지 않는다면
백수白水의
신神이
증인證人이 될 것이다.”
注+자범子犯은 중이重耳의 외숙外叔이다. 구씨舅氏와 마음을 한가지로 하겠다는 밝은 맹서盟誓가 이 맑은 물과 같다는 말이니 《시경詩經》 〈왕풍王風대차편大車篇〉에 “나의 말이 진실하지 못하다고 여긴다면[謂予不信] 밝을 해가 증인證人이 될 것이다.”고 한 것과 같다.고 하고는 그
벽옥璧玉을
황하黃河에 던졌다.
注+황하의 신神에게 신의信義를 입증立證[質]하기 위해 벽옥璧玉을 던진 것이다.
황하黃河를 건너
영호令狐를
포위包圍하고
상천桑泉으로
진입進入한 뒤에
구쇠臼衰를
취取하였다.
注+상천桑泉은 하동河東해현解縣 서쪽에 있고, 해현解縣 동남쪽에 구성臼城이 있다.
2월
갑오일甲午日에
진군晉軍이
여류廬柳에
주둔駐屯하거늘
注+중이重耳를 막기 위해 회공懷公이 보낸 군대이다.진백秦伯이
공자公子집縶을
진군晉軍에 보내니
진군晉軍이
퇴각退却하여
순郇에 주둔하였다.
注+해현解縣 서북쪽에 순성郇城이 있다. [부주]林: 진군晉軍이 진백秦伯의 명命에 따라 문공文公을 받아들이기로 하였기 때문에 군대를 물린 것이다.
신축일辛丑日에
호언狐偃이
진秦나라‧
진晉나라의
대부大夫와
순郇에서
결맹結盟하였다.
注+[부주]林: 순郇에서 결맹結盟하여 문공文公을 들여보내기로 약정約定한 것이다.
임인일壬寅日에 공자公子가 진군晉軍의 진영陣營으로 들어갔다.
병오일丙午日에
곡옥曲沃으로 들어가서
정미일丁未日에
무궁武宮을
알현謁見하고
注+문공文公의 조부祖父무공武公의 묘廟이다. [부주]朱: 무공武公이 곡옥백曲沃伯으로 진晉나라를 겸병兼倂하였기 때문에 곡옥曲沃에 그의 사당을 세웠다.무신일戊申日에
고량高梁으로 사람을 보내어
회공懷公을 죽였다.
이를
경經에 기록하지 않은 것은 이 또한
노魯나라에
통고通告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注+회공懷公이 고량高梁으로 도망갔기 때문이다. 고량高梁은 평양平陽양현楊縣 서남쪽이다. 전傳에 ‘불고不告’를 재차 발론發論한 것은 국외國外에 있던 제후諸侯가 들어온 일과 국내國內에 있던 임금이 죽임을 당한 일은 모두 본국本國의 통고通告가 있은 뒤에야 사책史策에 기록한다는 것을 밝히기 위함이다.
傳
여생呂甥‧
극예郤芮가
문공文公의
핍박偪迫을 두려워하여
注+여생呂甥과 극예郤芮는 혜공惠公의 구신舊臣이기 때문에 문공文公에게 박해迫害 받을 것을 두려워한 것이다.공궁公宮에 불을 질러
진후晉侯를
시해弑害하려 하였다.
시인寺人피披가 뵙기를 청하자
공公이 사람을 시켜 꾸짖고 또
접견接見을 거절하며 말하였다.
注+만나지 않겠다고 사절한 것이다.
“
포성蒲城의
전쟁戰爭 때
注+희공僖公 5년에 있었다. 임금(獻公)께서는 하루 밤을 묵으면서 가라고 명하셨는데 너는
즉일卽日로 달려왔고,
注+즉일卽日에 이른 것이다. [부주]林: 헌공獻公은 너에게 하룻밤의 기한期限으로 명하였는데 너는 하룻밤도 묵지 않고 즉일卽日로 왔다는 말이다. 그 뒤에 내가
적군狄君과
위수渭水 가에서 사냥할 때
注+전田은 사냥이다. 너는 또
혜공惠公을 위해 와서 나를 죽이려 하였는데 그때
혜공惠公은 너에게 사흘 밤을 묵으면서 가라고 명하였는데, 너는 이틀 만에 달려왔다.
비록 군명君命이 있기는 하였지만 무엇 때문에 그리도 속히 왔느냐?
그때 너에게 소매가 잘린 옷을 아직도 보관하고 있으니
注+피披에게 소매가 잘린 문공文公의 옷이다. 너는 떠나거라.”
注+[부주]林: ‘너는 떠나가라.’는 말은 너를 용서해 멀리 보내겠다는 말이다.
“
신臣은 임금님께서 들어와 임금이 되셨으니 당연히 임금의
도리道理를 아실 것으로 생각하였는데
注+임금의 도리를 아는 것이다. 아직도 임금의 도리를 모르시는 것 같으니 또 장차
환난患難에 미치게 될 것입니다.
임금의
명命을
봉행奉行함에 있어 두 마음을 품지 않는 것이 옛
제도制度입니다.
注+[부주]林: 군명君命을 봉행奉行하는 자는 두 마음을 품지 않는다는 말이다.
임금의
해악害惡을
제거除去함에는 오직 힘만을 볼 뿐이니
포인蒲人과
적인狄人이 어찌 나의
안중眼中에 있었겠습니까?
注+헌공獻公과 혜공惠公시대時代에는 군君께서는 포인蒲人과 적인狄人이었으니 나와의 사이에 무슨 의리義理가 있었겠느냐는 말이다. [부주]林: 군君께서 포蒲에 있을 때는 포인蒲人이고 적狄에 있을 때는 적인狄人이었다. 그 당시當時 나는 헌공獻公과 혜공惠公만을 알 뿐이었으니, 문공文公에게 무슨 관심이 있었겠느냐는 말이다.
이제 임금께서
즉위卽位하였으니 어찌
포인蒲人‧
적인狄人이 없겠습니까?
注+[부주]林: 어찌 군君께서 포蒲와 적狄에 있을 때처럼 공公을 해치고자 하는 자가 없겠느냐는 말이다.
제환공齊桓公은
대구帶鉤를 쏜
원한怨恨을 버리고서
관중管仲을
승상丞相으로 삼았으니
注+건시乾時의 전쟁戰爭에서 관중管仲이 환공桓公에게 활을 쏘아 대구帶鉤를 맞혔다.군君께서 만약
환공桓公과 반대로 옛
원한怨恨을 잊지 않으시겠다면 어찌
명命을 내리시는 수고를 끼치겠습니까?
注+만약 제환공齊桓公과 반대로 하려 한다면 스스로 떠날 것이고 떠나라는 명을 내리는 수고를 끼치지 않겠다는 말이다.
떠나는 자가 매우 많을 것이니
注+[부주]林: 죄罪를 받게 될까 두려워 떠나는 자가 매우 많을 것이라는 말이다. 어찌
형신刑臣뿐이겠습니까?”
注+피披는 엄인奄人(去勢 당한 사람)이기 때문에 ‘형신刑臣’이라고 자칭自稱한 것이다.
공公이 그를
접견接見하니
변난變難을
고告하였다.
注+여생呂甥과 극예郤芮가 공궁公宮에 불을 지르려고 한 일을 고한 것이다.
3월에 진후晉侯가 진백秦伯과 은밀隱密히 왕성王城에서 회합會合하였다.
하생瑕甥‧극예郤芮가 문공文公을 잡지 못하고 황하黃河 가로 가니, 진백秦伯이 그들을 유인해 죽였다.
진후晉侯가
부인夫人영씨嬴氏를 맞이해
진晉나라로 돌아왔다.
注+진목공秦穆公의 딸 문영文嬴이다.
진백秦伯이
호위병護衛兵 3천
인人을
진晉나라에 보내주었으니 이들은 모두
기강복紀綱僕이었다.
注+새로 여생呂甥‧극예郤芮의 변난變難이 일어나서 나라가 안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병사兵士들에게 문공文公을 호위護衛하도록 하고 모든 문호門戶에 복례僕隷의 일을 모두 진병秦兵에게 맡겨 기강紀綱으로 삼은 것이다.
傳
당초當初에
진후晉侯의
소리小吏두수頭須는 창고를 지키는 자였다.
注+두수頭須의 일명一名은 이부수里鳧須이다. 수豎는 좌우左右의 소리小吏이다.
문공文公이
출분出奔했을 때 창고의
재물財物을 훔쳐 가지고 도망하여
注+문공文公이 출분出奔할 때이다. 그 재물을 다 써가며
제후諸侯들에게
문공文公을 도와
귀국歸國시켜 주기를 구하였다.
注+문공文公을 귀국歸國시켜 주기를 구한 것이다.
문공文公이
귀국歸國함에 미쳐
두수頭須가 뵙기를 청하자
문공文公은 머리를 감는다는 핑계로
접견接見을
사절辭絶하였다.
注+[부주]林: 문공文公이 머리를 감는다는 핑계로 접견接見을 사절한 것이다. 머리 감는 것을 ‘목沐’이라 한다.
두수頭須가
복인僕人에게 말하였다, “머리를 감으면 심장이
전도顚倒[覆]되고 심장이 전도되면 생각[圖]도 전도되는 것이니 내가
알현謁見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注+[부주]林: 머리를 감으면 머리를 숙여야 하고 머리를 숙이면 심장이 반드시 전도된다. 심장은 계획計劃을 주관하는 기관機關이니 심장이 이미 전도되었다면 생각도 당연히 전도된다는 말이다.
국내國內에 남았던 사람들은[居者]공자公子를 위해 사직社稷을 지키고, 출분出奔에 따라간 사람들은[行者]공자公子를 위해 말굴레와 말고삐를 잡는 노복奴僕 노릇을 한 것은 모두 할 일을 한 것인데, 무엇 때문에 반드시 남았던 사람들만을 죄주려 하는가?
국군國君으로서 필부匹夫를 원수로 대한다면 두려워할 사람이 매우 많을 것이다.”
복인僕人이 이 말을 고하자
공公은 서둘러 그를
접견接見하였다.
注+작은 원한怨恨을 버리는 것이 많은 사람을 안정시키는 방법이라는 말이다.
傳
적인狄人이
계외季隗를
진晉나라로 보내면서 그 두 아들의
거취去就를 물었다.
注+두 아들은 백조伯鯈와 숙류叔劉이다. [부주]林: 보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進退]하명下命해 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문공文公이 딸을
조쇠趙衰에게 아내로 주어
注+[부주]林: 문공文公이 딸을 조쇠趙衰에게 아내로 준 것이다.원동原同‧
병괄屛括‧
누영樓嬰을 낳았다.
注+원原‧병屛‧누樓는 세 아들의 읍邑이다.
조희趙姬가
조쇠趙衰에게
순盾과 그 어미를 맞아해 오기를 청하니
注+조희趙姬는 문공文公의 딸이다. 순盾은 적녀狄女숙외叔隗가 낳은 아들이다. [부주]林: 조쇠趙衰가 적狄에 있을 때 숙외叔隗를 아내로 맞아 순盾을 낳았으므로 이제 그들을 맞이해 진晉나라로 데려오기를 청한 것이다.자여子餘가 거절하였다.
注+자여子餘는 조쇠趙衰의 자字이다.
조희趙姬가 말하기를, “새로 사랑하는 사람을 얻었다 하여 옛 사람을 잊는다면 어떻게 사람을 부릴 수 있겠습니까?
注+[부주]林: 새로 사랑하는 사람을 얻었다 하여 옛 사랑을 잊는다면 어떻게 사람들의 마음을 열복悅服시킬 수 있겠느냐는 말이다.
반드시 맞이해 오십시오!”라고 하면서 굳이 청하니 조쇠趙衰는 허락하였다.
순盾과 그 어미가 온 뒤에
조희趙姬는
순盾이 재주가 있다고 여겨
문공文公에게 굳이 청하여
순盾을
적자嫡子로 삼고서 자기의 세 아들을 그의
하위下位에 있게 하고,
숙외叔隗를
내자內子로 삼고서 자기는 그의
하위下位가 되었다.
注+경卿의 적처嫡妻를 ‘내자內子’라 한다. 이것은 모두 이해의 일이 아니나, 적인狄人이 계외季隗를 돌려보낸 일로 인해 드디어 숙외叔隗의 일까지 말한 것이다.
傳
진후晉侯가
망명亡命했을 때
수종隨從했던 사람들에게
상賞을 줄 때에
개지추介之推가
녹위祿位를 구하지 않으니
녹祿 또한 그에게 미치지 않았다.
注+개추介推는 문공文公의 미신微臣이다. 지之는 어조사語助辭이다.[부주]朱: 개介는 성姓이고 추推는 이름이다. 추推도 망명亡命 때 수종隨從하였으나 녹위祿位를 구하는 말을 하지 않으니, 문공文公도 녹祿을 반사頒賜할 때 추推에게 미치지 않은 것이다.
“헌공獻公의 아들 아홉 사람 중에 유일하게 주군主君만이 살아 계신다.
혜공惠公과
회공懷公은
친근親近한 사람이 없어서
국내國內와
국외國外가 모두 그들을 버렸는데도
注+[부주]林: 혜공惠公과 회공懷公은 친당親黨의 응원應援이 없어서 밖의 친린親隣과 안의 신민臣民이 모두 함께 그를 버렸다는 말이다. 하늘이
진晉나라를
멸절滅絶시키지 않은 것은 반드시 나라에
주재자主宰者가 있게 하려 한 것이니
진晉나라의
제사祭祀를
주재主宰할 사람이
주군主君이 아니고 누구이겠는가?
실로 하늘이 주군主君을 임금으로 세운 것인데 몇몇 사람은 자신들의 공로功勞[力]로 여기니 남을 속이는 것이 아닌가?
남의 재물을 훔치는 것도 오히려 도둑이라 하는데 하물며 하늘의 공로功勞를 탐하여 자신들의 공로功勞로 삼는 것이겠는가?
아래 사람은 그
죄罪를
의義로 여기고 윗사람은 그
간악奸惡한 행위에
상賞을 내려
注+[부주]林: 하늘의 공功을 탐하는 것은 죄罪인데 아래 사람은 도리어 임금으로 세운 것을 의리義理로 여기고, 하늘의 공을 탐하는 것은 간악奸惡인데 윗사람은 도리어 임금으로 세워 주었다고 상賞을 내렸다는 말이다.상하上下가 서로 속이니,
注+몽蒙은 속임이다. 저들과 함께
거처居處하기 어렵다.”
그 어머니가 말하기를 “어찌하여 너도
상賞을 구하지 않느냐?
注+[부주]林: 어찌하여 너도 상賞을 구하지 않느냐? 상賞을 구하지 않고 이대로 죽으려 한다면 누구를 원망할 게 있느냐는 말이다.
이대로 죽으려 한다면 누구를 원망할 게 있겠느냐?”고 하니, 대답하기를, “저들의 행위를 허물로 여기면서 그 허물을 본받는다면
죄罪가 더욱 심하게 됩니다.
注+[부주]林: 우尤는 허물이다. 나는 하늘의 공을 탐한 저들의 행위를 허물로 여기면서 이제 스스로 상賞을 구한다면 이는 저들의 허물을 본받는 것이라는 말이다.
또 원망하는 말을 내었으니 다시는 그의
녹祿을 먹지 않겠습니다.”
注+원언怨言은 ‘상하상몽上下相蒙난여처難與處’를 이름이다. [부주]朱: 또 내가 이미 원망하는 말을 내었으니 다시 그의 녹祿을 먹어서는 부당不當하다는 말이다.라고 하였다.
그 어머니가 말하기를, “임금에게 너의 생각을 알리는 것이 어떻겠느냐?”
注+이미 녹祿을 구하지 않기로 한 것을 추推로 하여금 문공文公에게 진달陳達하게 하고자 한 것이다. 고 하니 대답하기를, “말은 몸을 꾸미는 것입니다.
장차 몸을 숨기려 하면서 무엇 때문에 꾸미겠습니까?
만약 꾸민다면 이는 현달顯達하기를 구하는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그 어머니가 말하기를, “네가 이와 같이 할 수 있다면 나도 너와 함께
은거隱居하겠다.”
注+해偕는 함께이다.라고 하고서 드디어
은거隱居하다가 죽었다.
진후晉侯는
개추介推를 찾았으나 찾지 못하자
면상緜上을 그의
봉전封田으로 삼고서 말하기를, “이것으로 나의 잘못을 기억하고, 또
선인善人을
정표旌表한다.”고 하였다.
注+정旌은 표表이다. 서하西河계휴현界休縣에 지명地名이 면상綿上인 곳이 있다. [부주]林: 면상綿上의 땅을 개추介推의 사전私田으로 삼아 그 제사를 받들게 한 것이다.[부주]朱: 지志는 기억記憶하는 것이다.
傳
정군鄭軍이
활滑나라로 쳐들어갔을 때는
활인滑人이
정鄭나라의
명命을 듣겠다고 하더니
注+활滑나라로 쳐들어간 일은 희공僖公 20년에 있었다.정군鄭軍이 돌아가자
활滑나라는 다시
위衛나라에 붙었다.
注+[부주]林: 또 정鄭나라를 배반背叛하고 위衛나라와 통호通好한 것이다.
정공자鄭公子사士‧
설도유미洩堵兪彌가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활滑나라를 토벌하니,
注+도유미堵兪彌는 정鄭나라 대부大夫이다.왕王이
백복伯服‧
유손백游孫伯을
정鄭나라로 보내어
활滑나라를 치지 말라고 요청하였다.
注+두 사람은 주周나라 대부大夫이다.
정백鄭伯은
혜왕惠王이 들어갔을 때
여공厲公에게 술잔[爵]을 주지 않은 일을 원망하고,
注+이 일은 장공莊公 21년에 있었다. 또
양왕襄王이
위衛나라와
활滑나라를 편드는 것을 원망하였다.
注+왕王이 위衛나라를 돕고 활滑나라를 위해 청한 것을 원망한 것이다.
그러므로 왕명王命을 듣지 않고 두 사람을 잡아 가두니, 왕王은 노하여 적군狄軍을 거느리고서 정鄭나라를 치려 하였다.
신臣이 듣건대
최상最上의 방법은
덕德으로 백성을 어루만지는 것이요,
注+친소親疎를 따지지 않고 모두를 어루만지는 것이다. 그 다음은
친속親屬을
친애親愛하여
소원疎遠한 사람에게 미치는 것이라고 합니다.
注+먼저 친속親屬을 친애親愛한 다음에 소원疎遠한 사람에 미치는 것이 바로 은혜를 미루어 의義를 행行하는 것이다.
옛날에 주공周公은 관숙管叔‧채숙蔡叔[二叔]이 불화不和[不咸]했던 것을 가슴 아프게 여겼습니다.
그러므로
친척親戚을
봉건封建하여
주周나라
왕실王室의 울타리로 삼았으니,
注+조弔는 상傷이고 함咸은 동同(화합)이다. 주공周公은 하은夏殷의 숙세叔世(末世)에 그 친척親戚을 소원疎遠히 하여 멸망滅亡에 이른 것을 가슴 아프게 여겼기 때문에 널리 그 형제兄弟를 제후諸侯로 봉하였다는 말이다. [부주]林: 이숙二叔을 관숙管叔‧채숙蔡叔으로 보는 자가 더러 있는데 이는 옳지 않다.관管‧
채蔡‧
성郕‧
곽霍‧
노魯‧
위衛‧
모毛‧
담聃‧
고郜‧
옹雍‧
조曹‧
등滕‧
필畢‧
원原‧
풍酆‧
순郇는
문왕文王의
소昭이고,
注+이 16 국國은 모두 문왕文王의 아들이다. 관管나라는 형양熒陽경현京縣 동북쪽에 있고, 옹雍나라는 하내河內산양현山陽縣 서쪽에 있고, 필畢나라는 장안현長安縣 서북쪽에 있고, 풍酆나라는 시평始平호현鄠縣 동쪽에 있다. [부주]林: 문왕文王이 주周나라에 있어 목穆이 된다. 목穆이 소昭를 낳기 때문에 문왕文王의 소昭라고 한 것이다.우邘‧
진晉‧
응應‧
한韓은
무왕武王의
목穆이며,
注+이 네 나라는 모두 무왕武王의 아들이다. 응應나라는 양양襄陽성보현城父縣 서남쪽에 있고, 한韓나라는 하동군계河東郡界에 있다. 하내河內야왕현野王縣 서북쪽에 우성邘城이 있다.범凡‧
장蔣‧
형邢‧
모茅‧
조胙‧
제祭는
주공周公의
후손後孫입니다.
注+윤胤은 사嗣이다. 장蔣은 익양弋陽기사현期思縣에 있고, 고평高平창읍현昌邑縣 서쪽에 모향茅鄕이 있고, 동군東郡연현燕縣 서남쪽에 조정胙亭이 있다.
소목공召穆公은
주周나라의
덕德이
선善하지 못함을
상심傷心[思]하여
종족宗族을
성주成周에 모아 놓고서
시詩를 짓기를[作]
注+유類는 선善이고, 규糾는 모음이다. 소목공召穆公은 주周나라의 경사卿士로 이름은 호虎이고, 소召는 채지采地이다. 부풍扶風옹현雍縣 동남쪽에 소정召亭이 있다. 주여왕周厲王 때에 주周나라의 덕德이 쇠미衰微하여 형제의 도리가 이지러지자, 소목공召穆公이 동도東都에 종족宗族을 모아 놓고서 특별히 이 주공周公의 악가樂歌를 읊은 것이다. 〈상체常棣〉는 《시경詩經》 〈소아小雅〉에 속해 있다. ‘아가위 꽃이여!
꽃잎과 꽃받침이 어울려 아름답구나.
注+상체常棣는 아가위이고, 악鄂은 악연鄂然히 꽃이 밖으로 드러난 것이다. 선명鮮明하지 않으냐[不韡韡]는 선명하다는 말인데 형제가 화목和睦하면 집안이 강성强盛해져서 빛이 선명鮮明하다는 것을 비유한 것이다. [부주]林: 상체常棣는 욱리화郁李花이다.
지금 사람 중에는 형제 만한 이가 없다.’
注+광명光明이 성대해지게 하는 데는 형제를 친애親愛하는 것만 한 게 없다는 말이다.고 하였고, 그
사장四章에 ‘형제가 담장 안에선 다투더라도 밖에서 오는
모욕侮辱은 함께 막는다.’
注+䦧은 쟁송爭訟하는 모양이다. 안에서는 비록 불화不和하더라도 밖에서 오는 이민족異民族의 침모侵侮는 막아야 한다는 말이다. 고 하였습니다.
시詩의 말이 이와 같으니, 형제간에는 아무리 작은
분원忿怨이 있다 하더라도
의친懿親(至親)을 버리지 않아야 합니다.
注+의懿는 미美이다.
그런데 지금 천자天子께서 작은 분원忿怨을 참지 못하여 정친鄭親(親戚인 정鄭나라)을 버리신다면 장차 문왕文王‧무왕武王의 공덕功德을 어찌할 생각이십니까?
공훈功勳이 있는 자를 등용하고
친속親屬을
친애親愛하며,
근린近隣을 가까이하고
현자賢者를
존경尊敬하는 것은
덕행德行 중에 큰
덕행德行이고,
注+용庸은 용用이고, 일暱은 가까이하는 것이다.[부주]林: 일근昵近은 우리의 인근隣近에 있는 자들을 친닐親暱하는 것이다. 귀머거리[聾]를 가까이 하고, 눈먼 자[昧]를 따르며,
완고頑固한 자와
교유交遊하고, 말 많은 자[嚚]를 등용하는 것은
간악奸惡 중에 큰 간악이며,
덕행德行을 버리고 간악을 숭상하는 것은
화禍 중에 큰 화입니다.
注+숭崇은 모으는 것이다.
정鄭나라는
평왕平王과
혜왕惠王을 도운
공로功勞가 있고,
注+평왕平王이 동천東遷할 때 진晉나라와 정鄭나라에 의지하였고, 혜왕惠王이 출분出奔하였을 때 괵虢나라와 정鄭나라가 복위復位시켰으니, 이것이 정鄭나라의 공훈功勳이다. 또
여왕厲王과
선왕宣王의
친속親屬이며,
注+처음으로 봉封해진 정鄭나라의 시조始祖환공桓公우友가 주여왕周厲王의 아들이고 선왕宣王의 모제母弟이다.폐총嬖寵을 버리고
삼량三良을 등용하였으며,
注+희공僖公 7년에 폐신嬖臣신후申侯를 죽이고, 16년에 총자寵子자화子華를 죽였다. 삼량三良은 숙첨叔詹‧도숙堵叔‧사숙師叔이다. 이들을 등용한 것이 이른바 ‘존현尊賢’이다. 여러
희성姬姓제후諸侯 중에 가장 가까우니
注+노정路程이 가까우니 친닐親暱해야 한다는 말이다. [부주]林: 정鄭나라는 하락河洛에 위치位置하여 다른 희성姬姓제후諸侯에 비해 주周나라와 거리가 가장 가까우니 친닐親暱해야 한다는 말이다. 네 가지
덕德을 모두 갖추었습니다.
귀로 오성五聲의 조화調和된 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을 ‘농聾’이라 하고, 눈으로 오색五色의 문채를 구별하지 못하는 것을 ‘매昧’라 하고, 마음으로 덕의德義의 상도常道[經]를 본받지 않는 것을 ‘완頑’이라 하고, 입으로 충신忠信한 말을 하지 않는 것을 ‘은嚚’이라 하는데, 적인狄人은 이것을 모두 본받았으니 네 가지 간악이 모두 구비되었습니다.
주周나라에 아름다운 덕德이 있을 때에도 오히려 ‘형제兄弟만한 이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형제兄弟를
봉건封建하였고,
注+주공周公 때에 해당하기 때문에 ‘주지유의덕周之有懿德’이라고 한 것이다.천하天下를
회유懷柔할 때에도 오히려
외모外侮를
우려憂慮[懼]하여
외모外侮를 막는 데는
친속親屬을
친애親愛하는 것 만한 게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친속親屬을
제후諸侯로
봉封해
주周나라의 울타리로 삼았습니다.
注+[부주]林: 동성제후同姓諸侯로 주周나라의 울타리를 삼았다는 말이다.
소목공召穆公도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注+주공周公이 지은 시詩를 소공召公이 노래하였기 때문에 ‘역운亦云’이라 한 것이다.
지금은
주周나라의
덕德이 이미 쇠하였는데 이러한 때에 또
주공周公‧
소공召公의
법法을
변개變改[渝]하여 모든
간악奸惡을 갖춘
적인狄人을 따르신다면
불가不可하지 않겠습니까?
注+형제를 친애親愛한 주공周公‧소공召公의 도리를 변경變更한다는 말이다.
백성이 아직도
화난禍難을 잊지 못하고 있는데
왕王께서 또
화난禍難을 일으키려 하시니
注+전에 자퇴子頹의 난亂이 있었고, 중간에 숙대叔帶가 적인狄人을 불러들인 난亂이 있었기 때문에 ‘민미망화民未忘禍’라고 한 것이다. 장차
문왕文王‧
무왕武王의
공업功業을 어찌하실 생각이십니까?”
注+앞으로 문왕文王‧무왕武王의 공업功業을 폐기廢棄하게 된다는 말이다.
그러나
왕王은 듣지 않고서
퇴숙頹叔와
도자桃子를 보내어
적군狄軍을
출동出動시키게 하였다.
注+두 사람은 주周나라 대부大夫이다.
傳
여름에 적인狄人이 정鄭나라를 토벌하여 역櫟을 취하니 왕王은 적인狄人의 덕德을 입었다고 여겨 적인狄人의 딸을 왕후王后로 삼으려 하자 부신富辰이 “안 됩니다.
신臣이 듣건대 ‘은혜를 갚는 사람은 이미 지쳤으되 은혜를 베푼 자는 만족해 하지 않는다.’
注+시施는 공로功勞이다. 공로가 있는 자는 보답을 바라는 마음이 지나치게 심하다는 말이다. [부주]朱: 대체로 남의 은혜를 갚는 자는 은혜를 갚느라고 이미 힘이 지쳤는데도 저 나에게 보답을 요구하는 자는 끝내 만족해 하는 마음이 없다는 말이다.고 하니
적인狄人은 본래 탐욕스러운데
왕王께서는 또 저들에게 탐욕의 길을 열어 주는 것입니다.
注+[부주]朱: 지금 적狄의 딸을 왕후王后로 삼는 것은 저들에게 탐욕의 길을 열어 주는 것이라는 말이다.
여인女人의 뜻[德]은 끝이 없고
부녀婦女의 원망은 그침이 없으니
注+부녀婦女의 뜻은 가까이 하면 만족할 줄을 모르고, 멀리하면 분원忿怨을 그치지 않는다는 말이다. 종終은 이已(그침)와 같다.적인狄人이 반드시
환난患難이 될 것입니다.”라고
간諫하였으나,
왕王은 또 듣지 않았다.
당초當初에
감소공甘昭公은
혜후惠后의 총애를 받았다.
注+감소공甘召公은 왕자王子대帶인데 감甘을 식읍食邑으로 가졌다. 하남현河南縣 서남쪽에 감수甘水가 있다.
혜후惠后가 그를
왕王으로 세우려 하였으나 미처 세우지 못하고
졸卒하니
소공昭公은
제齊나라로 도망하였다.
注+제齊나라로 도망간 일은 희공僖公 12년에 있었다.
뒤에
왕王이 그를 돌아오게 하니
注+희공僖公 22년에 있었다. 돌아와서는 또
외씨隗氏와
사통私通하였으므로
注+외씨隗氏는 왕王이 세운 적후狄后이다. 왕王은
외씨隗氏를
폐출廢黜하였다.
注+체替는 폐廢하는 것이다.
퇴숙頹叔‧
도자桃子가 말하기를, “우리가 실로
적인狄人에게 딸을
왕후王后로 바치도록 시켰으니,
注+[부주]林: 우리가 실로 적군狄軍으로 하여금 정鄭나라를 치게 하였고, 또 그 딸을 왕후王后로 바치게 하였다는 말이다.적인狄人이 우리를 원망할 것이다.”라고 하고서, 드디어
태숙太叔을 받들어 모시고
적군狄軍을 거느리고서
왕王을 공격하였다.
왕王의
어사御士가
방어防禦하려 하자
注+《주례周禮》에 “왕王의 어사御士는 12인人이다.”고 하였다.왕王이 말하기를, “
선후先后께서 나를 무어라고 하시겠느냐?
注+선후先后는 혜후惠后이다. 태숙太叔을 주벌誅伐하면 선후先后의 뜻을 어기는 것이 될까 두렵다는 말이다.
차라리
제후諸侯들에게
도모圖謀하도록 하겠다.”
注+[부주]林: 친히 숙대叔帶를 주벌誅伐하고자 하지 않은 것이다.라고 하고서
왕王은 드디어
경사京師를 떠나
감감坎欿으로 가니
국인國人이 도로 모셔들였다.
注+감감坎欿은 주周나라 땅으로 하남河南공현鞏縣 동쪽에 있다.
가을에
퇴숙頹叔‧
도자桃子가
태숙太叔을 받들어 모시고
적군狄軍을 거느리고서
주周나라를
토벌討伐하여
주군周軍을
대패大敗시키고서
주공周公기보忌父‧
원백原伯‧
모백毛伯‧
부신富辰을
포로捕虜로 잡았다.
注+원原과 모毛는 모두 채읍采邑이다.
왕王이
경사京師를 떠나
정鄭나라로 가서
범氾에 머물렀다.
注+정鄭나라의 남범南氾으로 양성현襄城縣 남쪽에 있다.
태숙太叔은 외씨隗氏를 데리고 온溫에서 거처居處하였다.
傳
정鄭나라
자화子華의 아우
자장子臧이
송宋나라로 도망가서
注+희공喜公 16년에 자화子華를 죽였기 때문이다. 물총새 깃털로 만든
관冠을 모으기를 좋아하니,
注+휼鷸은 새의 이름이다. 물총새의 깃털을 모아 만든 관冠은 법도에 맞는 복장服裝이 아니다.정백鄭伯(文公)이 이 소문을 듣고 미워하여
注+그 복장이 법도에 맞지 않음을 미워한 것이다.자객刺客을 보내어 유인해 죽이게 하니, 8월에
자객刺客이
진陳나라와
송宋나라 사이에서 그를 죽였다.
“의복이 신분에 맞지 않는 것은 몸의 재앙이다.
注+충衷은 적適(맞음)과 같다.
그 의복이 맞지 않았다.’고 하였으니
注+시詩는 《시경詩經》 〈조풍曹風후인편候人篇〉이다. 소인小人이 존귀한 지위에 있는 것을 풍자한 것이니 저 사람의 덕이 그 복장에 걸맞지 않다는 말이다.자장子臧의 의복이 신분에 맞지 않은 것을 말한 것이고,
시詩에 ‘스스로 이런
우환憂患을 끼친다.’고 하니
注+시詩는 《시경詩經》 〈소아小雅소명편小明篇〉이다. 이詒는 유遺(끼침)이다. 척慼은 우憂(우환)이다. 스스로 우환憂患을 끼쳤다는 뜻을 취한 것이다.자장子臧을 두고 한 말이다.
〈
하서夏書〉에 ‘
대지大地가
평정平定되고
상천上天이
성전成全하였다.’고 하였으니
상하上下가 서로 맞은 것을 말한 것이다.”
注+〈하서夏書〉는 일서逸書이다. 대지大地는 하늘의 화육化育을 공평하게 돕고 상천上天은 땅이 베푸는 일을 도와 완성完成시키는 데는 상천上天과 하지下地가 서로 맞아야 잘 된다는 말이다.
傳
송宋나라가
초楚나라와
화평和平하였다.
注+[부주]林: 송宋나라가 홍泓에서 패전敗戰한 뒤로 초楚나라와 불목不睦하였는데, 이때에 이르러 송성공宋成公이 정책政策을 바꾸어[改紀] 비로소 초楚나라와 화평和平하였다.
송성공宋成公이
초楚나라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정鄭나라에 들르니
정백鄭伯이 그를 접대하려고
황무자皇武子에게
注+황무자皇武子는 정鄭나라 경卿이다.예禮를 물었다.
대답하기를, “송宋나라는 선대先代의 후예後裔이니 주周나라에는 손님이 됩니다.
천자天子가 제사를 지낸 뒤에는
번육膰肉을 내리고,
注+유사有事는 종묘宗廟에 제사 지내는 것이다. 번膰은 제육祭肉이다. 송宋나라를 존경尊敬하기 때문에 제사 지낸 조육胙肉을 하사下賜한 것이다.주周나라의
상사喪事에
송인宋人이
조문弔問하면
천자天子가 절을 하니,
注+송인宋人이 주周나라 상사喪事에 조문弔問하면 왕王이 특별히 절하고서 사례謝禮한다는 말이다.풍후豊厚하게 접대해야 합니다.”
注+[부주]林: 천자天子도 오히려 송공宋公을 존경하니, 정백鄭伯이 송공宋公을 접대함에는 그 예禮를 풍후豊厚하게 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말이다.고 하였다.
정백鄭伯이 이 말에 따라
송공宋公을 접대할 때
추가追加함이 있었으니
예禮에 맞았다.
注+예물禮物을 건건件件[事事]이 후하게 추가한 것이다. 이는 선대先代의 후손後孫을 존경尊敬한 정백鄭伯을 훌륭하게 여긴 것이다.
傳
겨울에
왕王이 사람을 보내어 와서 난리가 난 것을
통고通告하며 말하기를, “
불곡不穀이
부덕不德하여
모후母后의 총애하는 아들
대帶에게
죄罪를 얻어
注+[부주]林: 왕王이 자신의 허물로 여겨 자책自責하였기 때문에 동모제同母弟에게 죄罪를 얻었다고 한 것이다. 자대子帶는 혜후惠后가 총애寵愛하는 아들이었기 때문에 ‘총자대寵子帶’라고 한 것이다.정鄭나라
범氾의
향촌鄕村(野)에서 머물고 있기에
注+비鄙는 야野이다. 감히
숙부叔父에게 고하노라.”
注+천자天子가 동성제후同姓諸侯를 숙부叔父라고 한다. 라고 하였다.
장문중臧文仲이 대답하기를 “
천자天子께서 밖으로
몽진蒙塵하셨으니
注+[부주]林: 천자天子가 출분出奔하는 것을 몽진蒙塵이라 한다. 감히 달려가
관수官守에게
문후問候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注+관수官守는 왕王의 군신群臣이다. [부주]朱: 천자天子는 지존至尊이니 감히 지적해 말할 수 없다. 그러므로 ‘분문관수奔問官守’라고만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왕王이
간사보簡師父를 보내어
진晉나라에 고하고
좌언보左鄢父를 보내어
진秦나라에 고하였다.
注+두 사람은 주周나라 대부大夫이다.
천자天子는 나감이[出] 없는데
경經에 “
천왕天王이 나가서
정鄭나라에
거처居處하였다.”고 기록한 것은
모제母弟의 난리를 피해 온 것을 비난한 것이다.
注+숙대叔帶는 양왕襄王의 동모제同母弟이다.
천자天子가
흉복凶服을 입으면
명칭名稱을 낮추는 것이
예禮이다.
注+흉복凶服은 소복素服이고, 강명降名은 ‘불곡不穀’으로 자칭自稱한 것이다. [부주]林: 공구수성恐懼修省의 예禮에 맞은 것이다.
傳
정백鄭伯이
공장서孔將鉏‧
석갑보石甲父‧
후선다侯宣多와 함께
범氾으로 가서
관수官守에게
문후問候[省]하고
천자天子의
기구器具를
검시檢視한 뒤에
注+세 사람은 정鄭나라 대부大夫이다. 관사官司를 살피고 기용器用(用器)을 갖춘 것이다.정국鄭國의
사정私政을 처리하였으니,
예禮에 맞았다.
注+임금의 일을 먼저하고 자기의 일을 뒤에 하는 예에 맞았다는 말이다.
傳
위인衛人이
형邢나라를 치려 하자
예지禮至가 말하기를, “그 나라의
수守를 잡지 못하면 나라를 얻을 수 없으니,
注+예지禮至는 위衛나라 대부大夫이다. 수守는 형邢나라의 정경正卿국자國子(姓이 국國인 고관高官)이다. 우리 형제가
형邢나라로 가서 벼슬하겠습니다.”
注+[부주]林: 우리가 위衛나라를 위해 간첩間諜이 되어 먼저 형제가 형邢나라로 가서 벼슬하는 것이 국자國子를 잡을 수 있는 방도라는 말이다.고 하고서
형邢나라로 가서 벼슬을 얻었다.
注+이것이 명년明年에 위衛나라가 형邢나라를 격멸擊滅한 전傳의 배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