傳
진후晉侯가
망명亡命했을 때
수종隨從했던 사람들에게
상賞을 줄 때에
개지추介之推가
녹위祿位를 구하지 않으니
녹祿 또한 그에게 미치지 않았다.
注+개추介推는 문공文公의 미신微臣이다. 지之는 어조사語助辭이다.[부주]朱: 개介는 성姓이고 추推는 이름이다. 추推도 망명亡命 때 수종隨從하였으나 녹위祿位를 구하는 말을 하지 않으니, 문공文公도 녹祿을 반사頒賜할 때 추推에게 미치지 않은 것이다.
“헌공獻公의 아들 아홉 사람 중에 유일하게 주군主君만이 살아 계신다.
혜공惠公과
회공懷公은
친근親近한 사람이 없어서
국내國內와
국외國外가 모두 그들을 버렸는데도
注+[부주]林: 혜공惠公과 회공懷公은 친당親黨의 응원應援이 없어서 밖의 친린親隣과 안의 신민臣民이 모두 함께 그를 버렸다는 말이다. 하늘이
진晉나라를
멸절滅絶시키지 않은 것은 반드시 나라에
주재자主宰者가 있게 하려 한 것이니
진晉나라의
제사祭祀를
주재主宰할 사람이
주군主君이 아니고 누구이겠는가?
실로 하늘이 주군主君을 임금으로 세운 것인데 몇몇 사람은 자신들의 공로功勞[力]로 여기니 남을 속이는 것이 아닌가?
남의 재물을 훔치는 것도 오히려 도둑이라 하는데 하물며 하늘의 공로功勞를 탐하여 자신들의 공로功勞로 삼는 것이겠는가?
아래 사람은 그
죄罪를
의義로 여기고 윗사람은 그
간악奸惡한 행위에
상賞을 내려
注+[부주]林: 하늘의 공功을 탐하는 것은 죄罪인데 아래 사람은 도리어 임금으로 세운 것을 의리義理로 여기고, 하늘의 공을 탐하는 것은 간악奸惡인데 윗사람은 도리어 임금으로 세워 주었다고 상賞을 내렸다는 말이다.상하上下가 서로 속이니,
注+몽蒙은 속임이다. 저들과 함께
거처居處하기 어렵다.”
그 어머니가 말하기를 “어찌하여 너도
상賞을 구하지 않느냐?
注+[부주]林: 어찌하여 너도 상賞을 구하지 않느냐? 상賞을 구하지 않고 이대로 죽으려 한다면 누구를 원망할 게 있느냐는 말이다.
이대로 죽으려 한다면 누구를 원망할 게 있겠느냐?”고 하니, 대답하기를, “저들의 행위를 허물로 여기면서 그 허물을 본받는다면
죄罪가 더욱 심하게 됩니다.
注+[부주]林: 우尤는 허물이다. 나는 하늘의 공을 탐한 저들의 행위를 허물로 여기면서 이제 스스로 상賞을 구한다면 이는 저들의 허물을 본받는 것이라는 말이다.
또 원망하는 말을 내었으니 다시는 그의
녹祿을 먹지 않겠습니다.”
注+원언怨言은 ‘상하상몽上下相蒙난여처難與處’를 이름이다. [부주]朱: 또 내가 이미 원망하는 말을 내었으니 다시 그의 녹祿을 먹어서는 부당不當하다는 말이다.라고 하였다.
그 어머니가 말하기를, “임금에게 너의 생각을 알리는 것이 어떻겠느냐?”
注+이미 녹祿을 구하지 않기로 한 것을 추推로 하여금 문공文公에게 진달陳達하게 하고자 한 것이다. 고 하니 대답하기를, “말은 몸을 꾸미는 것입니다.
장차 몸을 숨기려 하면서 무엇 때문에 꾸미겠습니까?
만약 꾸민다면 이는 현달顯達하기를 구하는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그 어머니가 말하기를, “네가 이와 같이 할 수 있다면 나도 너와 함께
은거隱居하겠다.”
注+해偕는 함께이다.라고 하고서 드디어
은거隱居하다가 죽었다.
진후晉侯는
개추介推를 찾았으나 찾지 못하자
면상緜上을 그의
봉전封田으로 삼고서 말하기를, “이것으로 나의 잘못을 기억하고, 또
선인善人을
정표旌表한다.”고 하였다.
注+정旌은 표表이다. 서하西河계휴현界休縣에 지명地名이 면상綿上인 곳이 있다. [부주]林: 면상綿上의 땅을 개추介推의 사전私田으로 삼아 그 제사를 받들게 한 것이다.[부주]朱: 지志는 기억記憶하는 것이다.
傳
정군鄭軍이
활滑나라로 쳐들어갔을 때는
활인滑人이
정鄭나라의
명命을 듣겠다고 하더니
注+활滑나라로 쳐들어간 일은 희공僖公 20년에 있었다.정군鄭軍이 돌아가자
활滑나라는 다시
위衛나라에 붙었다.
注+[부주]林: 또 정鄭나라를 배반背叛하고 위衛나라와 통호通好한 것이다.
정공자鄭公子사士‧
설도유미洩堵兪彌가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활滑나라를 토벌하니,
注+도유미堵兪彌는 정鄭나라 대부大夫이다.왕王이
백복伯服‧
유손백游孫伯을
정鄭나라로 보내어
활滑나라를 치지 말라고 요청하였다.
注+두 사람은 주周나라 대부大夫이다.
정백鄭伯은
혜왕惠王이 들어갔을 때
여공厲公에게 술잔[爵]을 주지 않은 일을 원망하고,
注+이 일은 장공莊公 21년에 있었다. 또
양왕襄王이
위衛나라와
활滑나라를 편드는 것을 원망하였다.
注+왕王이 위衛나라를 돕고 활滑나라를 위해 청한 것을 원망한 것이다.
그러므로 왕명王命을 듣지 않고 두 사람을 잡아 가두니, 왕王은 노하여 적군狄軍을 거느리고서 정鄭나라를 치려 하였다.
신臣이 듣건대
최상最上의 방법은
덕德으로 백성을 어루만지는 것이요,
注+친소親疎를 따지지 않고 모두를 어루만지는 것이다. 그 다음은
친속親屬을
친애親愛하여
소원疎遠한 사람에게 미치는 것이라고 합니다.
注+먼저 친속親屬을 친애親愛한 다음에 소원疎遠한 사람에 미치는 것이 바로 은혜를 미루어 의義를 행行하는 것이다.
옛날에 주공周公은 관숙管叔‧채숙蔡叔[二叔]이 불화不和[不咸]했던 것을 가슴 아프게 여겼습니다.
그러므로
친척親戚을
봉건封建하여
주周나라
왕실王室의 울타리로 삼았으니,
注+조弔는 상傷이고 함咸은 동同(화합)이다. 주공周公은 하은夏殷의 숙세叔世(末世)에 그 친척親戚을 소원疎遠히 하여 멸망滅亡에 이른 것을 가슴 아프게 여겼기 때문에 널리 그 형제兄弟를 제후諸侯로 봉하였다는 말이다. [부주]林: 이숙二叔을 관숙管叔‧채숙蔡叔으로 보는 자가 더러 있는데 이는 옳지 않다.관管‧
채蔡‧
성郕‧
곽霍‧
노魯‧
위衛‧
모毛‧
담聃‧
고郜‧
옹雍‧
조曹‧
등滕‧
필畢‧
원原‧
풍酆‧
순郇는
문왕文王의
소昭이고,
注+이 16 국國은 모두 문왕文王의 아들이다. 관管나라는 형양熒陽경현京縣 동북쪽에 있고, 옹雍나라는 하내河內산양현山陽縣 서쪽에 있고, 필畢나라는 장안현長安縣 서북쪽에 있고, 풍酆나라는 시평始平호현鄠縣 동쪽에 있다. [부주]林: 문왕文王이 주周나라에 있어 목穆이 된다. 목穆이 소昭를 낳기 때문에 문왕文王의 소昭라고 한 것이다.우邘‧
진晉‧
응應‧
한韓은
무왕武王의
목穆이며,
注+이 네 나라는 모두 무왕武王의 아들이다. 응應나라는 양양襄陽성부현城父縣 서남쪽에 있고, 한韓나라는 하동군계河東郡界에 있다. 하내河內야왕현野王縣 서북쪽에 우성邘城이 있다.범凡‧
장蔣‧
형邢‧
모茅‧
조胙‧
제祭는
주공周公의
후손後孫입니다.
注+윤胤은 사嗣이다. 장蔣은 익양弋陽기사현期思縣에 있고, 고평高平창읍현昌邑縣 서쪽에 모향茅鄕이 있고, 동군東郡연현燕縣 서남쪽에 조정胙亭이 있다.
소목공召穆公은
주周나라의
덕德이
선善하지 못함을
상심傷心[思]하여
종족宗族을
성주成周에 모아 놓고서
시詩를 짓기를[作]
注+유類는 선善이고, 규糾는 모음이다. 소목공召穆公은 주周나라의 경사卿士로 이름은 호虎이고, 소召는 채지采地이다. 부풍扶風옹현雍縣 동남쪽에 소정召亭이 있다. 주여왕周厲王 때에 주周나라의 덕德이 쇠미衰微하여 형제의 도리가 이지러지자, 소목공召穆公이 동도東都에 종족宗族을 모아 놓고서 특별히 이 주공周公의 악가樂歌를 읊은 것이다. 〈상체常棣〉는 《시경詩經》 〈소아小雅〉에 속해 있다. ‘아가위 꽃이여!
꽃잎과 꽃받침이 어울려 아름답구나.
注+상체常棣는 아가위이고, 악鄂은 악연鄂然히 꽃이 밖으로 드러난 것이다. 선명鮮明하지 않으냐[不韡韡]는 선명하다는 말인데 형제가 화목和睦하면 집안이 강성强盛해져서 빛이 선명鮮明하다는 것을 비유한 것이다. [부주]林: 상체常棣는 욱리화郁李花이다.
지금 사람 중에는 형제 만한 이가 없다.’
注+광명光明이 성대해지게 하는 데는 형제를 친애親愛하는 것만 한 게 없다는 말이다.고 하였고, 그
사장四章에 ‘형제가 담장 안에선 다투더라도 밖에서 오는
모욕侮辱은 함께 막는다.’
注+䦧은 쟁송爭訟하는 모양이다. 안에서는 비록 불화不和하더라도 밖에서 오는 이민족異民族의 침모侵侮는 막아야 한다는 말이다. 고 하였습니다.
시詩의 말이 이와 같으니, 형제간에는 아무리 작은
분원忿怨이 있다 하더라도
의친懿親(至親)을 버리지 않아야 합니다.
注+의懿는 미美이다.
그런데 지금 천자天子께서 작은 분원忿怨을 참지 못하여 정친鄭親(親戚인 정鄭나라)을 버리신다면 장차 문왕文王‧무왕武王의 공덕功德을 어찌할 생각이십니까?
공훈功勳이 있는 자를 등용하고
친속親屬을
친애親愛하며,
근린近隣을 가까이하고
현자賢者를
존경尊敬하는 것은
덕행德行 중에 큰
덕행德行이고,
注+용庸은 용用이고, 일暱은 가까이하는 것이다.[부주]林: 일근昵近은 우리의 인근隣近에 있는 자들을 친닐親暱하는 것이다. 귀머거리[聾]를 가까이 하고, 눈먼 자[昧]를 따르며,
완고頑固한 자와
교유交遊하고, 말 많은 자[嚚]를 등용하는 것은
간악奸惡 중에 큰 간악이며,
덕행德行을 버리고 간악을 숭상하는 것은
화禍 중에 큰 화입니다.
注+숭崇은 모으는 것이다.
정鄭나라는
평왕平王과
혜왕惠王을 도운
공로功勞가 있고,
注+평왕平王이 동천東遷할 때 진晉나라와 정鄭나라에 의지하였고, 혜왕惠王이 출분出奔하였을 때 괵虢나라와 정鄭나라가 복위復位시켰으니, 이것이 정鄭나라의 공훈功勳이다. 또
여왕厲王과
선왕宣王의
친속親屬이며,
注+처음으로 봉封해진 정鄭나라의 시조始祖환공桓公우友가 주여왕周厲王의 아들이고 선왕宣王의 모제母弟이다.폐총嬖寵을 버리고
삼량三良을 등용하였으며,
注+희공僖公 7년에 폐신嬖臣신후申侯를 죽이고, 16년에 총자寵子자화子華를 죽였다. 삼량三良은 숙첨叔詹‧도숙堵叔‧사숙師叔이다. 이들을 등용한 것이 이른바 ‘존현尊賢’이다. 여러
희성姬姓제후諸侯 중에 가장 가까우니
注+노정路程이 가까우니 친닐親暱해야 한다는 말이다. [부주]林: 정鄭나라는 하락河洛에 위치位置하여 다른 희성姬姓제후諸侯에 비해 주周나라와 거리가 가장 가까우니 친닐親暱해야 한다는 말이다. 네 가지
덕德을 모두 갖추었습니다.
귀로 오성五聲의 조화調和된 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을 ‘농聾’이라 하고, 눈으로 오색五色의 문채를 구별하지 못하는 것을 ‘매昧’라 하고, 마음으로 덕의德義의 상도常道[經]를 본받지 않는 것을 ‘완頑’이라 하고, 입으로 충신忠信한 말을 하지 않는 것을 ‘은嚚’이라 하는데, 적인狄人은 이것을 모두 본받았으니 네 가지 간악이 모두 구비되었습니다.
주周나라에 아름다운 덕德이 있을 때에도 오히려 ‘형제兄弟만한 이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형제兄弟를
봉건封建하였고,
注+주공周公 때에 해당하기 때문에 ‘주지유의덕周之有懿德’이라고 한 것이다.천하天下를
회유懷柔할 때에도 오히려
외모外侮를
우려憂慮[懼]하여
외모外侮를 막는 데는
친속親屬을
친애親愛하는 것 만한 게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친속親屬을
제후諸侯로
봉封해
주周나라의 울타리로 삼았습니다.
注+[부주]林: 동성제후同姓諸侯로 주周나라의 울타리를 삼았다는 말이다.
소목공召穆公도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注+주공周公이 지은 시詩를 소공召公이 노래하였기 때문에 ‘역운亦云’이라 한 것이다.
지금은
주周나라의
덕德이 이미 쇠하였는데 이러한 때에 또
주공周公‧
소공召公의
법法을
변개變改[渝]하여 모든
간악奸惡을 갖춘
적인狄人을 따르신다면
불가不可하지 않겠습니까?
注+형제를 친애親愛한 주공周公‧소공召公의 도리를 변경變更한다는 말이다.
백성이 아직도
화난禍難을 잊지 못하고 있는데
왕王께서 또
화난禍難을 일으키려 하시니
注+전에 자퇴子頹의 난亂이 있었고, 중간에 숙대叔帶가 적인狄人을 불러들인 난亂이 있었기 때문에 ‘민미망화民未忘禍’라고 한 것이다. 장차
문왕文王‧
무왕武王의
공업功業을 어찌하실 생각이십니까?”
注+앞으로 문왕文王‧무왕武王의 공업功業을 폐기廢棄하게 된다는 말이다.
그러나
왕王은 듣지 않고서
퇴숙頹叔와
도자桃子를 보내어
적군狄軍을
출동出動시키게 하였다.
注+두 사람은 주周나라 대부大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