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春秋左氏傳(2)

춘추좌씨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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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經]二十有四年春王正月이라
[經]夏 狄伐鄭하다
[經]秋七月이라
[經]冬 天王出居于鄭하다注+襄王也 天子以天下爲家 故所在稱居 天子無外 而書出者 譏王蔽於匹夫之孝 不顧天下之重 因其辟母弟之難書出 言其自絶於周
[經]하다注+文公定位而後告 未同盟而赴以名
[傳]二十四年春王正月 秦伯納之하다
不書 不告入也注+納重耳也
及河 子犯以授公子注+[附注] 朱曰 以璧授重耳 意欲要君爲誓言 此子犯之奸也 曰 臣從君巡於天下注+羈 馬羈 絏 馬繮 [附注] 林曰 言臣供賤役 臣之罪甚多矣니이다
臣猶知之 而況君乎잇가
請由此亡注+[附注] 林曰 請由此而逃去也 朱曰 請死于此也하노이다 公子曰
注+子犯 重耳舅也 言與舅氏同心之明 如此白水 猶詩言謂予不信 有如皦日라하고 投其璧于河하다注+質信於河
濟河하야 圍令狐하고 入桑泉하야 取臼衰하다注+桑泉在河東解縣西 解縣東南有臼城
二月甲午 晉師軍于廬柳注+懷公遣軍距重耳어늘 秦伯使公子縶如晉師하니 師退하야 軍于郇하다注+解縣西北有郇城 [附注] 林曰 晉師從秦命納文公 故退師
辛丑 狐偃及秦晉之大夫盟于郇하다注+[附注] 林曰 爲盟于郇 以定納文公之約
壬寅 公子入于晉師하다
丙午 入于曲沃하야 丁未 朝于武宮注+文公之祖武公廟 [附注] 朱曰 武公以曲沃幷晉 故立廟於其邑하고 戊申 使殺懷公于高梁하다
不書 亦不告也注+懷公奔高梁 高梁在平陽楊縣西南 再發不告者 言外諸侯入及見殺 亦皆須告乃書于策
[傳]呂郤畏偪注+呂甥郤芮 惠公舊臣 故畏爲文公所偪害하야 將焚公宮而弑晉侯하다
寺人披請見한대 公使讓之하고 且辭焉注+辭不見
蒲城之役注+在五年 君命一宿이어늘 女卽至注+卽日至 [附注] 林曰 獻公命汝一宿之期 女不待宿 卽日而至하고 其後 余從狄君以田渭濱注+田 獵 女爲惠公來求殺余할새 命女三宿이어늘 女中宿至하니
雖有君命이나 何其速也
夫袪猶在注+披所斬文公衣袂也하니 女其行乎注+[附注] 林曰 汝其去乎 言宥汝以遠也ᄂ저
對曰
臣謂君之入也 其知之矣注+知君人之道러니 若猶未也하니 又將及難하니
君命無貳 古之制也니이다注+[附注] 林曰 奉君命者 無有二心
除君之惡 唯力是視 蒲人狄人 余何有焉注+當二君世 君爲蒲狄之人 於我有何義 [附注] 林曰 言君在蒲則爲蒲人 在狄則爲狄人 當此之時 我知爲獻公惠公而已 何有於文公哉이리잇가
今君卽位하시니 其無蒲狄乎잇가注+[附注] 林曰 其無如蒲如狄欲爲公害者乎
齊桓公置射鉤하고 而使管仲相注+乾時之役 管仲射桓公中帶鉤하니 君若易之시면 何辱命焉잇가注+言若反齊桓 己將自去 不須辱君命
行者甚衆注+[附注] 林曰 懼罪而出奔者甚多하리니 豈唯刑臣注+披 奄人 故稱刑臣이리잇가
公見之한대 以難告하다注+告呂郤欲焚公宮
三月 晉侯潛會秦伯于王城하다
己丑晦 公宮火하다
瑕甥郤芮不獲公하야 乃如河上이어늘 秦伯誘而殺之하다
晉侯逆夫人嬴氏以歸하다注+秦穆公女文嬴也
秦伯送衛於晉三千人하니이러라注+新有呂郤之難 國未輯睦 故以兵衛文公 諸門戶僕隷之事 皆秦卒共之 爲之紀綱
[傳]初 晉侯之豎頭須 守藏者也注+頭豎 一曰里鳧須 豎 左右小吏
其出也 竊藏以逃注+文公出時하야 盡用以求納之하다注+求納文公
及入 求見한대 公辭焉以沐注+[附注] 林曰 文公辭之不見 託以沐頭 洗頭曰沐하니
謂僕人曰 沐則心覆하고 心覆則圖反하니 宜吾不得見也注+[附注] 林曰 言沐則低頭 而心必反覆 心主謀畫 心旣反覆 則所圖謀者 宜亦反覆
居者爲社稷之守하고 行者爲羈絏之僕 其亦可也어늘 何必罪居者
國君而讎匹夫 懼者甚衆矣리라
僕人以告한대 公遽見之하다注+言棄小怨 所以能安衆
[傳]狄人歸季隗于晉하고 而請其二子하다注+二子 伯鯈叔劉 [附注] 林曰 請其進退之命
文公妻趙衰注+[附注] 林曰 文公以女妻趙衰하야 生原同屛括樓嬰하다注+原屛樓 三子之邑
趙姬請逆盾與其母注+趙姬 文公女也 盾 狄女叔隗之子 [附注] 林曰 蓋趙衰在狄時 娶叔隗生盾 今請迎之歸晉하니 子餘辭하다注+子餘 趙衰字
姬曰 得寵而忘舊 何以使人이릿가注+[附注] 林曰 得新寵而忘舊愛 何以使人心悅服
必逆之하소서 固請한대 許之하다
以盾爲才라하야 固請于公하야 以爲嫡子하고 而使其三子下之하고 以叔隗爲內子하고 而己下之하다注+卿之嫡妻爲內子 皆非此年事 蓋因狄人歸季隗 遂終言叔隗
[傳]晉侯賞從亡者할새 介之推不言祿하니 祿亦不及하다注+介推 文公微臣 之 語助 [附注] 朱曰 介 姓 推 名 推亦從亡 不言求祿 文公頒祿 亦不及於推也
推曰
獻公之子九人 唯君在矣
惠懷無親하야 外內棄之注+[附注] 林曰 惠公懷公 無親黨之援 外之親鄰 內之臣民 皆共棄之로되 天未絶晉 必將有主 主晉祀者 非君而誰
天實置之어늘 而二三子以爲己力하니 不亦誣乎
竊人之財 猶謂之盜 況貪天之功하야 以爲己力乎
下義其罪하고 上賞其姦注+[附注] 林曰 貪天之功 罪也 在下者反以爲立君之義 貪天之功 奸也 在上者反以推立君之賞하야 上下相蒙注+蒙 欺也 하니 難與處矣로다
其母曰 盍亦求之
以死誰懟注+[附注] 林曰 何不亦求其賞 不求而死 將以誰怨 對曰 尤而効之 罪又甚焉注+[附注] 林曰 尤 過也 我以彼貪天者爲過 今自求賞 是效其過也이오
且出怨言하니 不食其食이니이다注+怨言 謂上下相蒙 難與處 [附注] 朱曰 且我已出怨言矣 不當更食其祿也
其母曰 亦使知之若何注+旣不求之 且欲令推達言於文公 對曰 言 身之文也
身將隱이어늘 焉用文之릿가
是求顯也니이다
其母曰 能如是乎 與女偕隱注+偕 俱也하리라하고 遂隱而死하다
晉侯求之不獲하야 以緜上爲之田曰 以志吾過하고 且旌善人하노라注+旌 表也 西河界休縣南有地名綿上 [附注] 林曰 以綿上之地爲介推私田 以供祭祀 朱曰 志 記也
[傳]鄭之入滑也 滑人聽命注+入滑 在二十年러니 師還 又卽衛하다注+[附注] 林曰 又叛鄭通好于衛
鄭公子士洩堵彌帥師伐滑注+彌 鄭大夫하니 王使伯服游孫伯如鄭請滑하다注+二子 周大夫
鄭伯怨惠王之入而不與厲公爵也注+事在莊二十一年하고 又怨襄王之與衛滑也注+怨王助衛爲滑請
故不聽王命而執二子하다 王怒하야 將以狄伐鄭한대
富辰諫曰
不可하이다
臣聞之컨대 大上以德撫民注+無親疏也하고 其次親親以相及也注+先親以及疏 推恩以라하니이다
昔周公弔之不咸이라
故封建親戚하야 以蕃屛周注+弔 傷也 咸 同也 周公傷夏殷之叔世 疏其親戚 以至滅亡 故廣封其兄弟 [附注] 林曰 或以二叔爲管蔡者 非하니 管蔡郕霍魯衛毛聃郜雍曹滕畢原酆郇 文之昭也注+十六國 皆文王子也 管國在熒陽京縣東北 雍國在河內山陽縣西 畢國在長安縣西北 酆國在始平鄠縣東 [附注] 林曰 文王於周爲穆 穆生昭 故曰文之昭 邘晉應韓 武之穆也注+四國 皆武王子 應國在襄陽城父縣西南 韓國在河東郡界 河內野王縣西北有邘城 凡蔣邢茅胙祭 周公之胤也니이다注+胤 嗣也 蔣在弋陽期思縣 高平昌邑縣西有茅鄕 東郡燕縣西南有胙亭
召穆公思周德之不類 故糾合宗族于成周而注+類 善也 糾 收也 召穆公 周卿士 名虎 召 采地 扶風雍縣東南有召亭 周厲王之時 周德衰微 兄弟道缺 召穆公于東都收會宗族 特作此周公之樂歌 常棣詩 屬小雅 曰 常棣之華
鄂不韡韡로다注+常棣 棣也 不韡韡 言韡韡 以喩兄弟和睦 則强盛而有光輝韡韡然 [附注] 林曰 常棣 郁李花也
莫如兄弟注+言致韡韡之盛 莫如親兄弟라하고 其四章曰 兄弟䦧于墻이나 外禦其侮라하니이다注+䦧 訟爭貌 言內雖不和 猶宜外扞異族之侵侮
如是則兄弟雖有小忿이라도 不廢懿親이리이다注+懿 美也
今天子不忍小忿하사 以棄鄭親하시니 其若之何잇가
庸勳親親하며 暱近尊賢 德之大者也注+庸 用也 暱 親也 [附注] 林曰 昵近 親暱其隣近於我者 卽聾從昧하며 與頑用嚚 姦之大者也 棄德崇姦 禍之大者也니이다注+崇 聚也
鄭有平惠之勳注+平王東遷 晉鄭是依 惠王出奔 虢鄭納之 是其勳也하고 又有厲宣之親注+鄭始封之祖桓公友 周厲王之子 宣王之母弟하고 棄嬖寵而用三良注+七年 殺嬖臣申侯 十六年 殺寵子子華也 三良 叔詹堵叔師叔 所謂尊賢하고 於諸姬爲近注+道近當暱之 [附注] 林曰 鄭居河洛 比之姬姓諸侯 去周最近 所當暱之하니 四德具矣니이다
耳不聽五聲之和爲聾이오 目不別五色之章爲昧 心不則德義之經爲頑이오 口不道忠信之言爲嚚이어늘 狄皆則之하니 四姦具矣니이다
周之有懿德也에도 猶曰莫如兄弟
故封建之注+當周公時 故言周之有懿德하고 其懷柔天下也에도 猶懼有外侮하야 扞禦侮者 莫如親親이라
故以親屛周하니이다注+[附注] 林曰 以同姓諸侯爲周屛翰
召穆公 亦云하니이다注+周公作詩 召公歌之 故言亦云
今周德旣衰어늘 於是乎又渝周召하야 以從諸姦하시니 無乃不可乎잇가注+變周召親兄弟之道
民未忘禍어늘 王又興之注+前有子頹之亂 中有叔帶召狄 故曰民未忘禍하시니 其若文武何잇가注+言將廢文武之功業
王弗聽하고 使頹叔桃子하다注+二子 周大夫
[傳]夏 狄伐鄭取櫟하니狄人하야 將以其女爲后한대 富辰諫曰 不可하이다
臣聞之컨대 曰 報者倦矣로대 施者未厭注+施 功勞也 有勞則望報過甚 [附注] 朱曰 大凡報人之施者 我雖曰力倦矣 彼責我之報者 其心終未厭足也이라하니 狄固貪이어늘 王又啓之니이다注+[附注] 朱曰 今以其女爲后 是開啓其貪也
女德無極하고 婦怨無終注+婦女之志 近之則不知止足 遠之則忿怨無已 終 猶已也하니 狄必爲患하리이다 王又弗聽하다
初甘昭公有寵於惠后하다注+甘昭公 王子帶也 食邑於甘 河南縣西南有甘水
惠后將立之 未及而卒하니 昭公奔齊하다注+奔齊 在十二年
王復之注+在二十二年한대 又通於隗氏注+隗氏 王所立狄后어늘 王替隗氏하다注+替 廢也
頹叔桃子曰 我實使狄注+[附注] 林曰 我實使狄師伐鄭 及其女爲后하니 狄其怨我하리라하고 遂奉大叔하야 以狄師攻王하다
王御士將禦之注+周禮 王之御士十二人한대 王曰 先后其謂我何注+先后 惠后也 誅大叔 恐違先后志
寧使諸侯圖之注+[附注] 林曰 蓋不欲親誅叔帶하라하고 王遂出하야 及坎欿하니 國人納之하다注+坎欿 周地 在河南鞏縣東
頹叔桃子奉大叔以狄師伐周하야 大敗周師하야 獲周公忌父原伯毛伯富辰注+原毛 皆采邑하니
王出適鄭하야 處于氾하다注+鄭南氾也 在襄城縣南
大叔以隗氏居于溫하다
[傳]鄭子華之弟子臧出奔宋注+十六年 殺子華故하야 注+鷸 鳥名 聚鷸羽以爲冠 非法之服하니 鄭伯聞而惡之注+惡其服非法하야 使盜誘之하니 八月 盜殺之于陳宋之間하다
君子曰
服之不衷 身之災也注+衷 猶適也
詩曰 彼己之子
不稱其服注+詩 曹風 刺小人在位 言彼人之德 不稱其服이라하니 子臧之服 不稱也夫ᄂ저 詩曰 自詒伊慼이라하니 其子臧之謂矣로다注+詩 小雅 詒 遺也 慼 憂也 取其自遺憂
夏書曰 地平天成이라하니 稱也니라注+夏書 逸書 地平其化 天成其施 上下相稱爲宜
[傳]宋及楚平하다注+[附注] 林曰 宋自于泓之敗 與楚不睦 至是成公改紀 始及楚平
宋成公如楚라가 入於鄭하니 鄭伯將享之하야 問禮於皇武子注+皇武子 鄭卿한대
對曰 宋先代之後也 於周爲客이니이다
天子有事 膰焉注+有事 祭宗廟也 膰 祭肉 尊之 故賜以祭胙하고 有喪 拜焉注+宋弔周喪 王特拜謝之하니 豐厚可也니이다注+[附注] 林曰 言天子尙尊敬之 則鄭享宋公 宜豐厚其禮
鄭伯從之하야 享宋公 有加하니 禮也注+禮物事事加厚 善鄭能尊先代
[傳]冬 王使來告難曰 不穀不德하야 得罪于母弟之寵子帶注+[附注] 林曰 王引咎自責 故云得罪于同母弟 以子帶爲惠后所寵 故云寵子帶하야 鄙在鄭地氾注+鄙 野也일새 敢告叔父하노라注+天子謂同姓諸侯曰叔父
臧文仲對曰 天子蒙塵于外注+[附注] 林曰 天子出奔 謂之蒙塵하시니 敢不奔問官守릿가注+官守 王之群臣 [附注] 朱曰 天子至尊 不敢斥言 故但曰奔問官守
王使簡師父告于晉하고 使左鄢父告于秦하다注+二子 周大夫
天子無出이어늘 書曰 天王出居于鄭이라하니 辟母弟之難也注+叔帶 襄王同母弟
天子凶服이면 降名 禮也注+凶服 素服 降名 稱不穀 [附注] 林曰
[傳]鄭伯與孔將鉏石甲父侯宣多于氾注+三子 鄭大夫 省官司 具器用하고 而後聽其私政하니 禮也注+得先君後己之禮
[傳]衛人將伐邢한대 禮至曰 不得其守 國不可得也注+禮至 衛大夫 守 謂邢正卿國子 我請昆弟仕焉注+[附注] 林曰 我請爲衛間諜 先以兄弟往邢求仕焉 此其爲得國子之道하리라하고 乃往得仕하다注+爲明年滅邢傳


24년 봄 주왕周王정월正月이다.
여름에 적인狄人나라를 토벌討伐하였다.
가을 7월이다.
겨울에 천왕天王나라로 가서 거처居處하였다.注+양왕襄王이다. 천자天子천하天下로 여기기 때문에 머무는 곳을 ‘’라고 칭한다. 천자天子는 밖이 없는데[無外] ‘’이라고 기록한 것은 양왕襄王필부匹夫효도孝道에 가리워 중대重大천하天下를 돌아보지 않고서 모제母弟환난患難한 것으로 인해 ‘’이라고 기록하여 비난한 것이니, 양왕襄王 스스로가 나라를 버렸다는 말이다.
진후晉侯이오夷吾하였다.注+문공文公군위君位를 정한 뒤에 나라에 부고赴告하였다. 동맹同盟하지 않았으나 이름을 기록해 부고赴告하였기 때문에 에 이름을 기록한 것이다.
24년 봄 주왕周王정월正月진백秦伯중이重耳나라로 들여보냈다.
이를 에 기록하지 않은 것은 나라가 중이重耳가 들어온 것을 나라에 통고通告하지 않았기 때문이다.注+중이重耳나라로 들여보낸 것이다.
중이重耳황하黃河에 이르렀을 때 자범子犯벽옥璧玉공자公子에게 주면서注+[부주]朱: 벽옥璧玉중이重耳에게 준 것은 자범子犯이 임금으로 하여금 서약誓約[誓言]하도록 협박脅迫[要]하려는 뜻이었으니, 이것이 자범子犯간교奸巧함이다. 말하기를, “기설羈絏을 지고 임금님을 따라 천하天下를 돌아다니는 사이에注+는 말굴레이고 은 말고삐이다. [부주]林: 신하가 임금을 위해 천역賤役봉행奉行하는 것이다.이 지은 가 매우 많습니다.
도 오히려 를 알고 있는데 하물며 임금님이겠습니까?
그러니 여기에서 떠나겠습니다.”注+[부주]林: 여기에서 도망해 가겠다고 청한 것이다.[부주]朱: 여기에서 죽겠다고 청한 것이다.라고 하니, 공자公子가 말하였다.
“만약 내가 구씨舅氏(外叔)와 마음을 한가지로 하지 않는다면 백수白水증인證人이 될 것이다.”注+자범子犯중이重耳외숙外叔이다. 구씨舅氏와 마음을 한가지로 하겠다는 밝은 맹서盟誓가 이 맑은 물과 같다는 말이니 《시경詩經》 〈왕풍王風대거편大車篇〉에 “나의 말이 진실하지 못하다고 여긴다면[謂予不信] 밝을 해가 증인證人이 될 것이다.”고 한 것과 같다.고 하고는 그 벽옥璧玉황하黃河에 던졌다.注+황하의 에게 신의信義입증立證[質]하기 위해 벽옥璧玉을 던진 것이다.
황하黃河를 건너 영호令狐포위包圍하고 상천桑泉으로 진입進入한 뒤에 구쇠臼衰하였다.注+상천桑泉하동河東해현解縣 서쪽에 있고, 해현解縣 동남쪽에 구성臼城이 있다.
2월 갑오일甲午日진군晉軍여류廬柳주둔駐屯하거늘注+중이重耳를 막기 위해 회공懷公이 보낸 군대이다.진백秦伯공자公子진군晉軍에 보내니 진군晉軍퇴각退却하여 에 주둔하였다.注+해현解縣 서북쪽에 순성郇城이 있다. [부주]林: 진군晉軍진백秦伯에 따라 문공文公을 받아들이기로 하였기 때문에 군대를 물린 것이다.
신축일辛丑日호언狐偃나라‧나라의 대부大夫에서 결맹結盟하였다.注+[부주]林: 에서 결맹結盟하여 문공文公을 들여보내기로 약정約定한 것이다.
임인일壬寅日공자公子진군晉軍진영陣營으로 들어갔다.
병오일丙午日곡옥曲沃으로 들어가서 정미일丁未日무궁武宮알현謁見하고注+문공文公조부祖父무공武公이다. [부주]朱: 무공武公곡옥백曲沃伯으로 나라를 겸병兼倂하였기 때문에 곡옥曲沃에 그의 사당을 세웠다.무신일戊申日고량高梁으로 사람을 보내어 회공懷公을 죽였다.
이를 에 기록하지 않은 것은 이 또한 나라에 통고通告하지 않았기 때문이다.注+회공懷公고량高梁으로 도망갔기 때문이다. 고량高梁평양平陽양현楊縣 서남쪽이다. 에 ‘불고不告’를 재차 발론發論한 것은 국외國外에 있던 제후諸侯가 들어온 일과 국내國內에 있던 임금이 죽임을 당한 일은 모두 본국本國통고通告가 있은 뒤에야 사책史策에 기록한다는 것을 밝히기 위함이다.
여생呂甥극예郤芮문공文公핍박偪迫을 두려워하여注+여생呂甥극예郤芮혜공惠公구신舊臣이기 때문에 문공文公에게 박해迫害 받을 것을 두려워한 것이다.공궁公宮에 불을 질러 진후晉侯시해弑害하려 하였다.
시인寺人가 뵙기를 청하자 이 사람을 시켜 꾸짖고 또 접견接見을 거절하며 말하였다.注+만나지 않겠다고 사절한 것이다.
포성蒲城전쟁戰爭注+희공僖公 5년에 있었다. 임금(獻公)께서는 하루 밤을 묵으면서 가라고 명하셨는데 너는 즉일卽日로 달려왔고,注+즉일卽日에 이른 것이다. [부주]林: 헌공獻公은 너에게 하룻밤의 기한期限으로 명하였는데 너는 하룻밤도 묵지 않고 즉일卽日로 왔다는 말이다. 그 뒤에 내가 적군狄君위수渭水 가에서 사냥할 때注+은 사냥이다. 너는 또 혜공惠公을 위해 와서 나를 죽이려 하였는데 그때 혜공惠公은 너에게 사흘 밤을 묵으면서 가라고 명하였는데, 너는 이틀 만에 달려왔다.
비록 군명君命이 있기는 하였지만 무엇 때문에 그리도 속히 왔느냐?
그때 너에게 소매가 잘린 옷을 아직도 보관하고 있으니注+에게 소매가 잘린 문공文公의 옷이다. 너는 떠나거라.”注+[부주]林: ‘너는 떠나가라.’는 말은 너를 용서해 멀리 보내겠다는 말이다.
가 대답하였다.
은 임금님께서 들어와 임금이 되셨으니 당연히 임금의 도리道理를 아실 것으로 생각하였는데注+임금의 도리를 아는 것이다. 아직도 임금의 도리를 모르시는 것 같으니 또 장차 환난患難에 미치게 될 것입니다.
임금의 봉행奉行함에 있어 두 마음을 품지 않는 것이 옛 제도制度입니다.注+[부주]林: 군명君命봉행奉行하는 자는 두 마음을 품지 않는다는 말이다.
임금의 해악害惡제거除去함에는 오직 힘만을 볼 뿐이니 포인蒲人적인狄人이 어찌 나의 안중眼中에 있었겠습니까?注+헌공獻公혜공惠公시대時代에는 께서는 포인蒲人적인狄人이었으니 나와의 사이에 무슨 의리義理가 있었겠느냐는 말이다. [부주]林: 께서 에 있을 때는 포인蒲人이고 에 있을 때는 적인狄人이었다. 그 당시當時 나는 헌공獻公혜공惠公만을 알 뿐이었으니, 문공文公에게 무슨 관심이 있었겠느냐는 말이다.
이제 임금께서 즉위卽位하였으니 어찌 포인蒲人적인狄人이 없겠습니까?注+[부주]林: 어찌 께서 에 있을 때처럼 을 해치고자 하는 자가 없겠느냐는 말이다.
제환공齊桓公대구帶鉤를 쏜 원한怨恨을 버리고서 관중管仲승상丞相으로 삼았으니注+건시乾時전쟁戰爭에서 관중管仲환공桓公에게 활을 쏘아 대구帶鉤를 맞혔다.께서 만약 환공桓公과 반대로 옛 원한怨恨을 잊지 않으시겠다면 어찌 을 내리시는 수고를 끼치겠습니까?注+만약 제환공齊桓公과 반대로 하려 한다면 스스로 떠날 것이고 떠나라는 명을 내리는 수고를 끼치지 않겠다는 말이다.
떠나는 자가 매우 많을 것이니注+[부주]林: 를 받게 될까 두려워 떠나는 자가 매우 많을 것이라는 말이다. 어찌 형신刑臣뿐이겠습니까?”注+엄인奄人(去勢 당한 사람)이기 때문에 ‘형신刑臣’이라고 자칭自稱한 것이다.
이 그를 접견接見하니 변난變難하였다.注+여생呂甥극예郤芮공궁公宮에 불을 지르려고 한 일을 고한 것이다.
3월에 진후晉侯진백秦伯은밀隱密왕성王城에서 회합會合하였다.
그믐인 기축일己丑日공궁公宮이 불에 탔다.
하생瑕甥극예郤芮문공文公을 잡지 못하고 황하黃河 가로 가니, 진백秦伯이 그들을 유인해 죽였다.
진후晉侯부인夫人영씨嬴氏를 맞이해 나라로 돌아왔다.注+진목공秦穆公의 딸 문영文嬴이다.
진백秦伯호위병護衛兵 3천 나라에 보내주었으니 이들은 모두 기강복紀綱僕이었다.注+새로 여생呂甥극예郤芮변난變難이 일어나서 나라가 안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병사兵士들에게 문공文公호위護衛하도록 하고 모든 문호門戶복례僕隷의 일을 모두 진병秦兵에게 맡겨 기강紀綱으로 삼은 것이다.
당초當初진후晉侯소리小吏두수頭須는 창고를 지키는 자였다.注+두수頭須일명一名이부수里鳧須이다. 좌우左右소리小吏이다.
문공文公출분出奔했을 때 창고의 재물財物을 훔쳐 가지고 도망하여注+문공文公출분出奔할 때이다. 그 재물을 다 써가며 제후諸侯들에게 문공文公을 도와 귀국歸國시켜 주기를 구하였다.注+문공文公귀국歸國시켜 주기를 구한 것이다.
문공文公귀국歸國함에 미쳐 두수頭須가 뵙기를 청하자 문공文公은 머리를 감는다는 핑계로 접견接見사절辭絶하였다.注+[부주]林: 문공文公이 머리를 감는다는 핑계로 접견接見을 사절한 것이다. 머리 감는 것을 ‘’이라 한다.
두수頭須복인僕人에게 말하였다, “머리를 감으면 심장이 전도顚倒[覆]되고 심장이 전도되면 생각[圖]도 전도되는 것이니 내가 알현謁見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注+[부주]林: 머리를 감으면 머리를 숙여야 하고 머리를 숙이면 심장이 반드시 전도된다. 심장은 계획計劃을 주관하는 기관機關이니 심장이 이미 전도되었다면 생각도 당연히 전도된다는 말이다.
국내國內에 남았던 사람들은[居者]공자公子를 위해 사직社稷을 지키고, 출분出奔에 따라간 사람들은[行者]공자公子를 위해 말굴레와 말고삐를 잡는 노복奴僕 노릇을 한 것은 모두 할 일을 한 것인데, 무엇 때문에 반드시 남았던 사람들만을 죄주려 하는가?
국군國君으로서 필부匹夫를 원수로 대한다면 두려워할 사람이 매우 많을 것이다.”
복인僕人이 이 말을 고하자 은 서둘러 그를 접견接見하였다.注+작은 원한怨恨을 버리는 것이 많은 사람을 안정시키는 방법이라는 말이다.
적인狄人계외季隗나라로 보내면서 그 두 아들의 거취去就를 물었다.注+두 아들은 백조伯鯈숙류叔劉이다. [부주]林: 보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進退]하명下命해 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문공文公이 딸을 조쇠趙衰에게 아내로 주어注+[부주]林: 문공文公이 딸을 조쇠趙衰에게 아내로 준 것이다.원동原同병괄屛括누영樓嬰을 낳았다.注+는 세 아들의 이다.
조희趙姬조쇠趙衰에게 과 그 어미를 맞아해 오기를 청하니注+조희趙姬문공文公의 딸이다. 적녀狄女숙외叔隗가 낳은 아들이다. [부주]林: 조쇠趙衰에 있을 때 숙외叔隗를 아내로 맞아 을 낳았으므로 이제 그들을 맞이해 나라로 데려오기를 청한 것이다.자여子餘가 거절하였다.注+자여子餘조쇠趙衰이다.
조희趙姬가 말하기를, “새로 사랑하는 사람을 얻었다 하여 옛 사람을 잊는다면 어떻게 사람을 부릴 수 있겠습니까?注+[부주]林: 새로 사랑하는 사람을 얻었다 하여 옛 사랑을 잊는다면 어떻게 사람들의 마음을 열복悅服시킬 수 있겠느냐는 말이다.
반드시 맞이해 오십시오!”라고 하면서 굳이 청하니 조쇠趙衰는 허락하였다.
과 그 어미가 온 뒤에 조희趙姬이 재주가 있다고 여겨 문공文公에게 굳이 청하여 적자嫡子로 삼고서 자기의 세 아들을 그의 하위下位에 있게 하고, 숙외叔隗내자內子로 삼고서 자기는 그의 하위下位가 되었다.注+적처嫡妻를 ‘내자內子’라 한다. 이것은 모두 이해의 일이 아니나, 적인狄人계외季隗를 돌려보낸 일로 인해 드디어 숙외叔隗의 일까지 말한 것이다.
진후晉侯망명亡命했을 때 수종隨從했던 사람들에게 을 줄 때에 개지추介之推녹위祿位를 구하지 않으니 祿 또한 그에게 미치지 않았다.注+개추介推문공文公미신微臣이다. 어조사語助辭이다.[부주]朱: 이고 는 이름이다. 망명亡命수종隨從하였으나 녹위祿位를 구하는 말을 하지 않으니, 문공文公祿반사頒賜할 때 에게 미치지 않은 것이다.
개지추介之推가 말하였다.
헌공獻公의 아들 아홉 사람 중에 유일하게 주군主君만이 살아 계신다.
혜공惠公회공懷公친근親近한 사람이 없어서 국내國內국외國外가 모두 그들을 버렸는데도注+[부주]林: 혜공惠公회공懷公친당親黨응원應援이 없어서 밖의 친린親隣과 안의 신민臣民이 모두 함께 그를 버렸다는 말이다. 하늘이 나라를 멸절滅絶시키지 않은 것은 반드시 나라에 주재자主宰者가 있게 하려 한 것이니 나라의 제사祭祀주재主宰할 사람이 주군主君이 아니고 누구이겠는가?
실로 하늘이 주군主君을 임금으로 세운 것인데 몇몇 사람은 자신들의 공로功勞[力]로 여기니 남을 속이는 것이 아닌가?
남의 재물을 훔치는 것도 오히려 도둑이라 하는데 하물며 하늘의 공로功勞를 탐하여 자신들의 공로功勞로 삼는 것이겠는가?
아래 사람은 그 로 여기고 윗사람은 그 간악奸惡한 행위에 을 내려注+[부주]林: 하늘의 을 탐하는 것은 인데 아래 사람은 도리어 임금으로 세운 것을 의리義理로 여기고, 하늘의 공을 탐하는 것은 간악奸惡인데 윗사람은 도리어 임금으로 세워 주었다고 을 내렸다는 말이다.상하上下가 서로 속이니,注+은 속임이다. 저들과 함께 거처居處하기 어렵다.”
그 어머니가 말하기를 “어찌하여 너도 을 구하지 않느냐?注+[부주]林: 어찌하여 너도 을 구하지 않느냐? 을 구하지 않고 이대로 죽으려 한다면 누구를 원망할 게 있느냐는 말이다.
이대로 죽으려 한다면 누구를 원망할 게 있겠느냐?”고 하니, 대답하기를, “저들의 행위를 허물로 여기면서 그 허물을 본받는다면 가 더욱 심하게 됩니다.注+[부주]林: 는 허물이다. 나는 하늘의 공을 탐한 저들의 행위를 허물로 여기면서 이제 스스로 을 구한다면 이는 저들의 허물을 본받는 것이라는 말이다.
또 원망하는 말을 내었으니 다시는 그의 祿을 먹지 않겠습니다.”注+원언怨言은 ‘상하상몽上下相蒙난여처難與處’를 이름이다. [부주]朱: 또 내가 이미 원망하는 말을 내었으니 다시 그의 祿을 먹어서는 부당不當하다는 말이다.라고 하였다.
그 어머니가 말하기를, “임금에게 너의 생각을 알리는 것이 어떻겠느냐?”注+이미 祿을 구하지 않기로 한 것을 로 하여금 문공文公에게 진달陳達하게 하고자 한 것이다. 고 하니 대답하기를, “말은 몸을 꾸미는 것입니다.
장차 몸을 숨기려 하면서 무엇 때문에 꾸미겠습니까?
만약 꾸민다면 이는 현달顯達하기를 구하는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그 어머니가 말하기를, “네가 이와 같이 할 수 있다면 나도 너와 함께 은거隱居하겠다.”注+는 함께이다.라고 하고서 드디어 은거隱居하다가 죽었다.
진후晉侯개추介推를 찾았으나 찾지 못하자 면상緜上을 그의 봉전封田으로 삼고서 말하기를, “이것으로 나의 잘못을 기억하고, 또 선인善人정표旌表한다.”고 하였다.注+이다. 서하西河계휴현界休縣지명地名면상綿上인 곳이 있다. [부주]林: 면상綿上의 땅을 개추介推사전私田으로 삼아 그 제사를 받들게 한 것이다.[부주]朱: 기억記憶하는 것이다.
정군鄭軍나라로 쳐들어갔을 때는 활인滑人나라의 을 듣겠다고 하더니注+나라로 쳐들어간 일은 희공僖公 20년에 있었다.정군鄭軍이 돌아가자 나라는 다시 나라에 붙었다.注+[부주]林: 또 나라를 배반背叛하고 나라와 통호通好한 것이다.
정공자鄭公子설도유미洩堵兪彌가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나라를 토벌하니,注+도유미堵兪彌나라 대부大夫이다.백복伯服유손백游孫伯나라로 보내어 나라를 치지 말라고 요청하였다.注+두 사람은 나라 대부大夫이다.
정백鄭伯혜왕惠王이 들어갔을 때 여공厲公에게 술잔[爵]을 주지 않은 일을 원망하고,注+이 일은 장공莊公 21년에 있었다.양왕襄王나라와 나라를 편드는 것을 원망하였다.注+나라를 돕고 나라를 위해 청한 것을 원망한 것이다.
그러므로 왕명王命을 듣지 않고 두 사람을 잡아 가두니, 은 노하여 적군狄軍을 거느리고서 나라를 치려 하였다.
부신富辰하였다.
“안 됩니다.
이 듣건대 최상最上의 방법은 으로 백성을 어루만지는 것이요,注+친소親疎를 따지지 않고 모두를 어루만지는 것이다. 그 다음은 친속親屬친애親愛하여 소원疎遠한 사람에게 미치는 것이라고 합니다.注+먼저 친속親屬친애親愛한 다음에 소원疎遠한 사람에 미치는 것이 바로 은혜를 미루어 하는 것이다.
옛날에 주공周公관숙管叔채숙蔡叔[二叔]이 불화不和[不咸]했던 것을 가슴 아프게 여겼습니다.
그러므로 친척親戚봉건封建하여 나라 왕실王室의 울타리로 삼았으니,注+이고 (화합)이다. 주공周公하은夏殷숙세叔世(末世)에 그 친척親戚소원疎遠히 하여 멸망滅亡에 이른 것을 가슴 아프게 여겼기 때문에 널리 그 형제兄弟제후諸侯로 봉하였다는 말이다. [부주]林: 이숙二叔관숙管叔채숙蔡叔으로 보는 자가 더러 있는데 이는 옳지 않다.문왕文王이고,注+이 16 은 모두 문왕文王의 아들이다. 나라는 형양熒陽경현京縣 동북쪽에 있고, 나라는 하내河內산양현山陽縣 서쪽에 있고, 나라는 장안현長安縣 서북쪽에 있고, 나라는 시평始平호현鄠縣 동쪽에 있다. [부주]林: 문왕文王나라에 있어 이 된다. 를 낳기 때문에 문왕文王라고 한 것이다.무왕武王이며,注+이 네 나라는 모두 무왕武王의 아들이다. 나라는 양양襄陽성부현城父縣 서남쪽에 있고, 나라는 하동군계河東郡界에 있다. 하내河內야왕현野王縣 서북쪽에 우성邘城이 있다.주공周公후손後孫입니다.注+이다. 익양弋陽기사현期思縣에 있고, 고평高平창읍현昌邑縣 서쪽에 모향茅鄕이 있고, 동군東郡연현燕縣 서남쪽에 조정胙亭이 있다.
소목공召穆公나라의 하지 못함을 상심傷心[思]하여 종족宗族성주成周에 모아 놓고서 를 짓기를[作]注+이고, 는 모음이다. 소목공召穆公나라의 경사卿士로 이름은 이고, 채지采地이다. 부풍扶風옹현雍縣 동남쪽에 소정召亭이 있다. 주여왕周厲王 때에 나라의 쇠미衰微하여 형제의 도리가 이지러지자, 소목공召穆公동도東都종족宗族을 모아 놓고서 특별히 이 주공周公악가樂歌를 읊은 것이다. 〈상체常棣〉는 《시경詩經》 〈소아小雅〉에 속해 있다. ‘아가위 꽃이여!
꽃잎과 꽃받침이 어울려 아름답구나.注+상체常棣는 아가위이고, 악연鄂然히 꽃이 밖으로 드러난 것이다. 선명鮮明하지 않으냐[不韡韡]는 선명하다는 말인데 형제가 화목和睦하면 집안이 강성强盛해져서 빛이 선명鮮明하다는 것을 비유한 것이다. [부주]林: 상체常棣욱리화郁李花이다.
지금 사람 중에는 형제 만한 이가 없다.’注+광명光明이 성대해지게 하는 데는 형제를 친애親愛하는 것만 한 게 없다는 말이다.고 하였고, 그 사장四章에 ‘형제가 담장 안에선 다투더라도 밖에서 오는 모욕侮辱은 함께 막는다.’注+䦧은 쟁송爭訟하는 모양이다. 안에서는 비록 불화不和하더라도 밖에서 오는 이민족異民族침모侵侮는 막아야 한다는 말이다. 고 하였습니다.
의 말이 이와 같으니, 형제간에는 아무리 작은 분원忿怨이 있다 하더라도 의친懿親(至親)을 버리지 않아야 합니다.注+이다.
그런데 지금 천자天子께서 작은 분원忿怨을 참지 못하여 정친鄭親(親戚인 나라)을 버리신다면 장차 문왕文王무왕武王공덕功德을 어찌할 생각이십니까?
공훈功勳이 있는 자를 등용하고 친속親屬친애親愛하며, 근린近隣을 가까이하고 현자賢者존경尊敬하는 것은 덕행德行 중에 큰 덕행德行이고,注+이고, 은 가까이하는 것이다.[부주]林: 일근昵近은 우리의 인근隣近에 있는 자들을 친닐親暱하는 것이다. 귀머거리[聾]를 가까이 하고, 눈먼 자[昧]를 따르며, 완고頑固한 자와 교유交遊하고, 말 많은 자[嚚]를 등용하는 것은 간악奸惡 중에 큰 간악이며, 덕행德行을 버리고 간악을 숭상하는 것은 중에 큰 화입니다.注+은 모으는 것이다.
나라는 평왕平王혜왕惠王을 도운 공로功勞가 있고,注+평왕平王동천東遷할 때 나라와 나라에 의지하였고, 혜왕惠王출분出奔하였을 때 나라와 나라가 복위復位시켰으니, 이것이 나라의 공훈功勳이다.여왕厲王선왕宣王친속親屬이며,注+처음으로 해진 나라의 시조始祖환공桓公주여왕周厲王의 아들이고 선왕宣王모제母弟이다.폐총嬖寵을 버리고 삼량三良을 등용하였으며,注+희공僖公 7년에 폐신嬖臣신후申侯를 죽이고, 16년에 총자寵子자화子華를 죽였다. 삼량三良숙첨叔詹도숙堵叔사숙師叔이다. 이들을 등용한 것이 이른바 ‘존현尊賢’이다. 여러 희성姬姓제후諸侯 중에 가장 가까우니注+노정路程이 가까우니 친닐親暱해야 한다는 말이다. [부주]林: 나라는 하락河洛위치位置하여 다른 희성姬姓제후諸侯에 비해 나라와 거리가 가장 가까우니 친닐親暱해야 한다는 말이다. 네 가지 을 모두 갖추었습니다.
귀로 오성五聲조화調和된 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을 ‘’이라 하고, 눈으로 오색五色의 문채를 구별하지 못하는 것을 ‘’라 하고, 마음으로 덕의德義상도常道[經]를 본받지 않는 것을 ‘’이라 하고, 입으로 충신忠信한 말을 하지 않는 것을 ‘’이라 하는데, 적인狄人은 이것을 모두 본받았으니 네 가지 간악이 모두 구비되었습니다.
나라에 아름다운 이 있을 때에도 오히려 ‘형제兄弟만한 이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형제兄弟봉건封建하였고,注+주공周公 때에 해당하기 때문에 ‘주지유의덕周之有懿德’이라고 한 것이다.천하天下회유懷柔할 때에도 오히려 외모外侮우려憂慮[懼]하여 외모外侮를 막는 데는 친속親屬친애親愛하는 것 만한 게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친속親屬제후諸侯나라의 울타리로 삼았습니다.注+[부주]林: 동성제후同姓諸侯나라의 울타리를 삼았다는 말이다.
소목공召穆公도 이렇게 말하였습니다.注+주공周公이 지은 소공召公이 노래하였기 때문에 ‘역운亦云’이라 한 것이다.
지금은 나라의 이 이미 쇠하였는데 이러한 때에 또 주공周公소공召公변개變改[渝]하여 모든 간악奸惡을 갖춘 적인狄人을 따르신다면 불가不可하지 않겠습니까?注+형제를 친애親愛주공周公소공召公의 도리를 변경變更한다는 말이다.
백성이 아직도 화난禍難을 잊지 못하고 있는데 께서 또 화난禍難을 일으키려 하시니注+전에 자퇴子頹이 있었고, 중간에 숙대叔帶적인狄人을 불러들인 이 있었기 때문에 ‘민미망화民未忘禍’라고 한 것이다. 장차 문왕文王무왕武王공업功業을 어찌하실 생각이십니까?”注+앞으로 문왕文王무왕武王공업功業폐기廢棄하게 된다는 말이다.
그러나 은 듣지 않고서 퇴숙頹叔도자桃子를 보내어 적군狄軍출동出動시키게 하였다.注+두 사람은 나라 대부大夫이다.
여름에 적인狄人나라를 토벌하여 을 취하니 적인狄人을 입었다고 여겨 적인狄人의 딸을 왕후王后로 삼으려 하자 부신富辰이 “안 됩니다.
이 듣건대 ‘은혜를 갚는 사람은 이미 지쳤으되 은혜를 베푼 자는 만족해 하지 않는다.’注+공로功勞이다. 공로가 있는 자는 보답을 바라는 마음이 지나치게 심하다는 말이다. [부주]朱: 대체로 남의 은혜를 갚는 자는 은혜를 갚느라고 이미 힘이 지쳤는데도 저 나에게 보답을 요구하는 자는 끝내 만족해 하는 마음이 없다는 말이다.고 하니 적인狄人은 본래 탐욕스러운데 께서는 또 저들에게 탐욕의 길을 열어 주는 것입니다.注+[부주]朱: 지금 의 딸을 왕후王后로 삼는 것은 저들에게 탐욕의 길을 열어 주는 것이라는 말이다.
여인女人의 뜻[德]은 끝이 없고 부녀婦女의 원망은 그침이 없으니注+부녀婦女의 뜻은 가까이 하면 만족할 줄을 모르고, 멀리하면 분원忿怨을 그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침)와 같다.적인狄人이 반드시 환난患難이 될 것입니다.”라고 하였으나, 은 또 듣지 않았다.
당초當初감소공甘昭公혜후惠后의 총애를 받았다.注+감소공甘召公왕자王子인데 식읍食邑으로 가졌다. 하남현河南縣 서남쪽에 감수甘水가 있다.
혜후惠后가 그를 으로 세우려 하였으나 미처 세우지 못하고 하니 소공昭公나라로 도망하였다.注+나라로 도망간 일은 희공僖公 12년에 있었다.
뒤에 이 그를 돌아오게 하니注+희공僖公 22년에 있었다. 돌아와서는 또 외씨隗氏사통私通하였으므로注+외씨隗氏이 세운 적후狄后이다. 외씨隗氏폐출廢黜하였다.注+하는 것이다.
퇴숙頹叔도자桃子가 말하기를, “우리가 실로 적인狄人에게 딸을 왕후王后로 바치도록 시켰으니,注+[부주]林: 우리가 실로 적군狄軍으로 하여금 나라를 치게 하였고, 또 그 딸을 왕후王后로 바치게 하였다는 말이다.적인狄人이 우리를 원망할 것이다.”라고 하고서, 드디어 태숙太叔을 받들어 모시고 적군狄軍을 거느리고서 을 공격하였다.
어사御士방어防禦하려 하자注+주례周禮》에 “어사御士는 12이다.”고 하였다.이 말하기를, “선후先后께서 나를 무어라고 하시겠느냐?注+선후先后혜후惠后이다. 태숙太叔주벌誅伐하면 선후先后의 뜻을 어기는 것이 될까 두렵다는 말이다.
차라리 제후諸侯들에게 도모圖謀하도록 하겠다.”注+[부주]林: 친히 숙대叔帶주벌誅伐하고자 하지 않은 것이다.라고 하고서 은 드디어 경사京師를 떠나 감감坎欿으로 가니 국인國人이 도로 모셔들였다.注+감감坎欿나라 땅으로 하남河南공현鞏縣 동쪽에 있다.
가을에 퇴숙頹叔도자桃子태숙太叔을 받들어 모시고 적군狄軍을 거느리고서 나라를 토벌討伐하여 주군周軍대패大敗시키고서 주공周公기보忌父원백原伯모백毛伯부신富辰포로捕虜로 잡았다.注+는 모두 채읍采邑이다.
경사京師를 떠나 나라로 가서 에 머물렀다.注+나라의 남범南氾으로 양성현襄城縣 남쪽에 있다.
태숙太叔외씨隗氏를 데리고 에서 거처居處하였다.
나라 자화子華의 아우 자장子臧나라로 도망가서注+희공喜公 16년에 자화子華를 죽였기 때문이다. 물총새 깃털로 만든 을 모으기를 좋아하니,注+은 새의 이름이다. 물총새의 깃털을 모아 만든 은 법도에 맞는 복장服裝이 아니다.정백鄭伯(文公)이 이 소문을 듣고 미워하여注+그 복장이 법도에 맞지 않음을 미워한 것이다.자객刺客을 보내어 유인해 죽이게 하니, 8월에 자객刺客나라와 나라 사이에서 그를 죽였다.
군자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논평하였다.
“의복이 신분에 맞지 않는 것은 몸의 재앙이다.注+(맞음)과 같다.
에 ‘저 사람이여!
그 의복이 맞지 않았다.’고 하였으니注+는 《시경詩經》 〈조풍曹風후인편候人篇〉이다. 소인小人이 존귀한 지위에 있는 것을 풍자한 것이니 저 사람의 덕이 그 복장에 걸맞지 않다는 말이다.자장子臧의 의복이 신분에 맞지 않은 것을 말한 것이고, 에 ‘스스로 이런 우환憂患을 끼친다.’고 하니注+는 《시경詩經》 〈소아小雅소명편小明篇〉이다. (끼침)이다. (우환)이다. 스스로 우환憂患을 끼쳤다는 뜻을 취한 것이다.자장子臧을 두고 한 말이다.
하서夏書〉에 ‘대지大地평정平定되고 상천上天성전成全하였다.’고 하였으니 상하上下가 서로 맞은 것을 말한 것이다.”注+하서夏書〉는 일서逸書이다. 대지大地는 하늘의 화육化育을 공평하게 돕고 상천上天은 땅이 베푸는 일을 도와 완성完成시키는 데는 상천上天하지下地가 서로 맞아야 잘 된다는 말이다.
나라가 나라와 화평和平하였다.注+[부주]林: 나라가 에서 패전敗戰한 뒤로 나라와 불목不睦하였는데, 이때에 이르러 송성공宋成公정책政策을 바꾸어[改紀] 비로소 나라와 화평和平하였다.
송성공宋成公나라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나라에 들르니 정백鄭伯이 그를 접대하려고 황무자皇武子에게注+황무자皇武子나라 이다.를 물었다.
대답하기를, “나라는 선대先代후예後裔이니 나라에는 손님이 됩니다.
천자天子가 제사를 지낸 뒤에는 번육膰肉을 내리고,注+유사有事종묘宗廟에 제사 지내는 것이다. 제육祭肉이다. 나라를 존경尊敬하기 때문에 제사 지낸 조육胙肉하사下賜한 것이다.나라의 상사喪事송인宋人조문弔問하면 천자天子가 절을 하니,注+송인宋人나라 상사喪事조문弔問하면 이 특별히 절하고서 사례謝禮한다는 말이다.풍후豊厚하게 접대해야 합니다.”注+[부주]林: 천자天子도 오히려 송공宋公을 존경하니, 정백鄭伯송공宋公을 접대함에는 그 풍후豊厚하게 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말이다.고 하였다.
정백鄭伯이 이 말에 따라 송공宋公을 접대할 때 추가追加함이 있었으니 에 맞았다.注+예물禮物건건件件[事事]이 후하게 추가한 것이다. 이는 선대先代후손後孫존경尊敬정백鄭伯을 훌륭하게 여긴 것이다.
겨울에 이 사람을 보내어 와서 난리가 난 것을 통고通告하며 말하기를, “불곡不穀부덕不德하여 모후母后의 총애하는 아들 에게 를 얻어注+[부주]林: 이 자신의 허물로 여겨 자책自責하였기 때문에 동모제同母弟에게 를 얻었다고 한 것이다. 자대子帶혜후惠后총애寵愛하는 아들이었기 때문에 ‘총자대寵子帶’라고 한 것이다.나라 향촌鄕村(野)에서 머물고 있기에注+이다. 감히 숙부叔父에게 고하노라.”注+천자天子동성제후同姓諸侯숙부叔父라고 한다. 라고 하였다.
장문중臧文仲이 대답하기를 “천자天子께서 밖으로 몽진蒙塵하셨으니注+[부주]林: 천자天子출분出奔하는 것을 몽진蒙塵이라 한다. 감히 달려가 관수官守에게 문후問候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注+관수官守군신群臣이다. [부주]朱: 천자天子지존至尊이니 감히 지적해 말할 수 없다. 그러므로 ‘분문관수奔問官守’라고만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간사부簡師父를 보내어 나라에 고하고 좌언보左鄢父를 보내어 나라에 고하였다.注+두 사람은 나라 대부大夫이다.
천자天子는 나감이[出] 없는데 에 “천왕天王이 나가서 나라에 거처居處하였다.”고 기록한 것은 모제母弟의 난리를 피해 온 것을 비난한 것이다.注+숙대叔帶양왕襄王동모제同母弟이다.
천자天子흉복凶服을 입으면 명칭名稱을 낮추는 것이 이다.注+흉복凶服소복素服이고, 강명降名은 ‘불곡不穀’으로 자칭自稱한 것이다. [부주]林: 공구수성恐懼修省에 맞은 것이다.
정백鄭伯공장서孔將鉏석갑보石甲父후선다侯宣多와 함께 으로 가서 관수官守에게 문후問候[省]하고 천자天子기구器具검시檢視한 뒤에注+세 사람은 나라 대부大夫이다. 관사官司를 살피고 기용器用(用器)을 갖춘 것이다.정국鄭國사정私政을 처리하였으니, 에 맞았다.注+임금의 일을 먼저하고 자기의 일을 뒤에 하는 예에 맞았다는 말이다.
위인衛人나라를 치려 하자 예지禮至가 말하기를, “그 나라의 를 잡지 못하면 나라를 얻을 수 없으니,注+예지禮至나라 대부大夫이다. 나라의 정경正卿국자國子(姓이 고관高官)이다. 우리 형제가 나라로 가서 벼슬하겠습니다.”注+[부주]林: 우리가 나라를 위해 간첩間諜이 되어 먼저 형제가 나라로 가서 벼슬하는 것이 국자國子를 잡을 수 있는 방도라는 말이다.고 하고서 나라로 가서 벼슬을 얻었다.注+이것이 명년明年나라가 나라를 격멸擊滅의 배경이다.


역주
역주1 晉侯夷吾卒 : 傳에 의거하면 惠公이 작년 9월에 卒하였는데, 經에 금년 겨울에 卒한 것으로 기록한 것은 文公이 들어와서 惠公의 아들 懷公을 죽이고서 임금이 된 뒤에 魯나라에 赴告하였기 때문에 그렇게 기록한 것이다.
역주2 : 子犯이 임시로 保管했던 文公의 璧玉인 듯하다.
역주3 負羈絏 : 亡命한 임금을 隨從한 자가 자신을 일컫는 套式語이다.
역주4 所不與舅氏同心 有如白水 : 所는 若의 뜻으로 誓詞에 많이 쓰인다. 有如도 誓詞 중에 常用하는 말이다. 이 곳의 有如白水, 文公 12년의 有如河, 襄公 25년의 有如上帝, 定公 6년의 有如先君, 哀公 14년의 有如陳宗 등은 모두 神이 盟誓의 證人이 되어 盟誓를 어기면 神이 罰을 내린다는 뜻이다. 楊伯峻 《春秋左傳注》‧《左氏會箋》
역주5 紀綱僕 : 모든 僕隷를 통솔하는 사람이다.
역주6 命[兪] : 저본에는 ‘命’으로 되어 있으나 《十三經注疏》本에 의거하여 ‘兪’로 바로잡았다.
역주7 命[兪] : 저본에는 ‘命’으로 되어 있으나 經文을 바로잡으면서 따라 고쳤다.
역주8 成[行] : 저본에는 ‘成’으로 되어 있으나 《十三經注疏》本에 의거하여 ‘行’으로 바로잡았다.
역주9 二叔 : 叔과 世 두 글자가 합쳐져야 叔世라는 말이 되는데, 杜注와 林註에 모두 ‘叔’ 한 字를 叔世로 해석한 것은 옳지 않다. 《文選》 〈曹植求通親表〉에는 二叔을 管叔‧蔡叔로 보아 “昔周公弔管蔡之不咸”이라고 하였다. 譯者는 楊伯峻의 注와 《左氏會箋》 등의 설을 취하여 管‧蔡로 번역하였다.
역주10 作詩 : 〈常棣〉는 周公이 지은 詩이다. 《左氏會箋》에 의하면 ‘作’에는 두 가지 뜻이 있는데, 하나는 創作이고 또 하나는 이미 創作된 것을 再整理하는 것이다. 여기의 ‘作’은 재정리의 뜻이다.
역주11 卾 卾然華外發 : 杜注에 鄂을 鄂然으로 해석하여 光明의 形容詞로 본 것은 옳지 않다. 鄂에는 光明이나 鮮明의 뜻이 없다. 鄂은 萼의 假借字로 꽃받침이고, 不는 跗의 假借字로 꽃받침을 받치고 있는 줄기이다. 꽃 밑에 꽃받침이 있고 꽃받침 밑에 줄기가 있어 서로 덮어주고 받쳐주기 때문에 光明한 빛을 내는 것이 마치 형제가 서로 和睦하여 家門이 榮達하는 것과 같다는 뜻이다. 楊伯峻 《春秋左傳注》
역주12 凡今之人 : 온 세상 사람을 말한 것이다. 세상 사람 중에 형제보다 가까운 사람이 없다는 말이다.
역주13 出狄師 : 鄭나라는 畿內이 있어 周王이 의지하는 나라였으니, 鄭나라를 친 것은 결코 王의 뜻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해 겨울에 王이 鄭나라로 가서 居處한 것을 보면 鄭나라를 친 것이 王의 뜻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만약 王의 뜻이었다면 이미 토벌하고서 다시 그 나라에 의지하는 것이 어찌 사리에 맞겠는가? 아마도 頹叔이 叔帶를 위해 王을 배반하려 하였기 때문에 먼저 狄軍을 동원해 鄭나라를 친 것인 듯하다. 左氏의 傳은 信憑할 수 없을 듯하다. 葉酉 《春秋究遺》
역주14 : 남에게 입은 은혜이다.
역주15 惏(람) : 音訓에 “사람을 죽이고서 재물을 掠奪하는 것을 ‘惏’이라 한다.”고 하였다.
역주16 好聚鷸冠 : 杜注에는 물총새의 깃털을 모아 만든 관을 좋아했다는 뜻으로 해석하였으나, 譯者는 이 설을 따르지 않고 鷸冠을 收集하기 좋아했다는 뜻으로 번역하였다.
역주17 恐懼脩省之禮 : 恐懼修省은 災難을 당하면 임금이 두려워하여 몸을 닦고 반성하는 것이다.
역주18 省視官具 : 省官視具의 뜻으로 官守에게 문후하고 천자가 사용하는 器具를 檢視한 것이다.

춘추좌씨전(2) 책은 2019.05.2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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