傳
初
에 范氏之臣王生惡張柳朔
注+[附注] 林曰 王生張柳朔 皆范氏家族러니 言諸昭子
하야 使爲柏人
注+爲柏人宰也 昭子 范吉射也한대 昭子曰 夫非而讐乎
注+[附注] 林曰 而 汝也아
好不廢過하고 惡不去善이 義之經也니 臣敢違之리오
及范氏出
注+出柏人 奔齊하야 張柳朔謂其子
호되 爾從主勉之
하라
我將止死
注+[附注] 林曰 我將留此 距戰以死하리라
王生授我矣
注+授我死節니 吾不可以僭之
注+[附注] 林曰 僭 不信也라하고 遂死於柏人
注+爲吉射距晉戰死하다
傳
[傳]齊燕姬生子
러니 不成而死
注+燕姬 景公夫人 不成 未冠也하다
鬻姒之子荼嬖
注+諸子 庶公子也 鬻姒 景之妾 荼 安孺子하니 諸大夫恐其爲大子也
하야 言於公曰 君之齒長矣
로되 未有大子
하니 若之何
오
公曰
注+景公意欲立荼而未發 故以此言塞大夫請 [附注] 林曰 言群臣當國無憂虞而事得間暇 則恐有疾疢 不得爲樂 今無疾病 則且圖爲樂耳 又何憂於無君가
公疾
에 使國惠子高昭子立荼
注+惠子 國夏 昭子 高張하고 寘群公子於萊
注+萊 齊東鄙邑하다
冬十月
에 公子嘉公子駒公子黔奔衛
하고 公子鉏公子陽生來奔
注+皆景公子在萊者하다
萊人歌之曰 景公死乎不與埋하고 三軍之事乎不與謀하니 師乎師乎여
何黨之乎
注+師 衆也 黨 所也 之 往也 稱諡 蓋葬後而爲此歌 哀群公子失所 [附注] 아
傳
[傳]鄭駟秦富而侈
하야 嬖大夫也
注+[附注] 林曰 鄭之下大夫也로되 而常陳卿之車服於其庭
하니 鄭人惡而殺之
하다
詩曰
注+子思 子産子國參也 詩大雅 攸 所也 墍 息也 라하니 不守其位而能久者鮮矣
라
商頌曰
注+僭 差也 濫 溢也 皇 暇也 言駟秦違詩商頌 故受禍이라하니라
5년 봄에
비毗에 성을 쌓았다.
注+전傳이 없다. 진晉나라를 방비防備하기 위함이었다.
여름에
제후齊侯가
송宋나라를 토벌하였다.
注+전傳이 없다.
진晉나라 조앙趙鞅이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위衛나라를 토벌하였다.
가을 9월
계유일癸酉日에
제후齊侯저구杵臼가
졸卒하였다.
注+두 차례 동맹同盟하였다.
윤월閏月에
제경공齊景公을 장사 지냈다.
注+전傳이 없다.
傳
5년 봄에 진군晉軍이 백인柏人을 포위하니 순인荀寅과 사길석士吉射가 제齊나라로 도망갔다.
당초에
범씨范氏의
가신家臣왕생王生이
장류삭張柳朔을 미워하였는데
注+[부주]林: 왕생王生과 장류삭張柳朔은 모두 범씨范氏의 가족家族이다. ,
장류삭張柳朔을
소자昭子에게 좋게 말하여
백인柏人의
읍재邑宰로 삼게 하자
注+백인柏人의 읍재邑宰로 삼게 한 것이다. 소자昭子는 범길야范吉射이다. ,
소자昭子가 말하기를 “
장류삭張柳朔은 너의 원수가 아니더냐?
注+[부주]林: 이而는 여汝이다. ”라고 하였다.
그러자
왕생王生이 대답하기를 “개인의
원한怨恨은
공사公事와 관계가 없습니다.
注+공公은 공가公家의 일이다.
좋아하되 그 사람의 허물을 버리지 않고 미워하되 그 사람의 장점長點을 버리지 않는 것이 도의道義의 상법常法이니, 신臣이 어찌 감히 이 상법常法을 어기겠습니까?”라고 하였다.
범씨范氏가
백인柏人을
탈출脫出할 때에 미쳐
注+백인柏人을 탈출하여 제齊나라로 도망간 것이다. 장류삭張柳朔이 자기 아들에게 이르기를 “너는
주공主公을 따라가서 힘을 다해 모셔라.
나는 장차 이곳에 남아 싸우다가 죽을 것이다.
注+[부주]林: 나는 장차 이곳에 남아서 항전抗戰하다가 죽겠다는 말이다.
왕생王生이 나에게 절개를 지켜 죽을 수 있는 기회를 주었으니
注+나에게 절개를 지켜 죽을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는 말이다. , 나는
왕생王生을 믿지 않을 수 없다.
注+[부주]林: 참僭은 불신不信이다. ”라고 하고서 드디어
백인柏人에서 〈
항전抗戰하다가〉 죽었다.
注+범길야范吉射를 위해 진군晉軍을 막다가 전사戰死한 것이다.
여름에 조앙趙鞅이 위衛나라를 토벌하였으니, 이는 범씨范氏 때문이었다.
드디어
중모中牟를 포위하였다.
注+위衛나라가 범씨范氏를 도왔기 때문이다.
傳
제齊나라
연희燕姬가 아들을 낳았으나
성년成年이 되기 전에 죽었다.
注+연희燕姬는 경공景公의 부인夫人이다. 불성不成은 관례冠禮를 하지 않은 것이다.
제자諸子(諸妾) 중의 하나인
죽사鬻姒가 낳은 아들
도荼를 사랑하니
注+제자諸子는 서공자庶公子이다. 죽사鬻姒는 경공景公의 첩妾이다. 도荼는 안유자安孺子이다. ,
대부大夫들은 그가
태자太子가 될까 두려워하여
제경공齊景公에게 말하기를 “임금님의 연세가 높으신데 아직
태자太子가 없으시니 어찌하면 좋겠습니까?”라고 하니,
경공景公이 말하기를 “그대들의 마음에
우려憂慮가 끼어들면 질병이 생길 것이니, 우선 즐겁게 지내기를 꾀할 것이지 임금 없는 것을 걱정할 게 뭐 있소.
注+경공景公이 도荼를 태자太子로 세우고자 생각하였으나, 아직 드러내지는 않았다. 그러므로 이 말로 대부大夫들의 청請을 막은 것이다. [부주]林: 모든 대부大夫들이 국가國家에 우환憂患이 없어 일이 한가閒暇한 때를 당하면 질병疾病이 생겨서 즐거운 일을 할 수 없게 될 것이 두렵다. 지금 질병이 없으니 우선 즐겁게 지내기를 꾀할 것이지 어찌 임금이 없을 것을 걱정하느냐는 말이다. ”라고 하였다.
경공景公이
병病이 위독해지자
국혜자國惠子와
고소자高昭子로 하여금
도荼를
태자太子로 세우고
注+혜자惠子는 국하國夏이고 소자昭子는 고장高張이다. , 모든
공자公子들을
내萊에
안치安置하게 하였다.
注+내萊는 제齊나라 동쪽 변방邊方의 읍邑이다.
겨울 10월에
공자公子가嘉,
공자公子구駒,
공자公子검黔은
위衛나라로 도망가고,
공자公子서鉏,
공자公子양생陽生은
노魯나라로 도망해 왔다.
注+모두 경공景公의 아들로 내萊에 있던 자들이다.
내인萊人이 노래하기를 “경공景公이 죽었는데도 매장埋葬에도 참여하지 못하고, 삼군三軍의 일에도 참여해 모의하지 못하였으니, 공자公子들이여! 공자公子들이여!
장차 어디로 가실 것인가?
注+사師는 중衆이고, 당黨은 소所이고, 지之는 왕往이다. 경공景公이란 시호諡號를 칭한 것으로 보아 장후葬後에 이 노래를 지어 공자公子들이 처소處所를 잃은 것을 슬퍼한 것인 듯하다. [부주]林: 경공景公이 죽었는데도 여러 공자公子들은 장사葬事에 참여하여 그 효성孝誠을 다하지 못하고, 제齊나라에 삼군三軍의 일이 있는데도 모의謀議에 참여하여 그 충성과 힘을 다하지 못하였다는 말이다. 사師는 중衆이니 중공자衆公子를 말한 것이다. 거듭 말한 것은 매우 애석哀惜해 한 것이다. ”고 하였다.
傳
정鄭나라
사진駟秦은
부유富裕하고 사치스러워서
폐대부嬖大夫(下大夫)이면서도
注+[부주]林: 정鄭나라의 하대부下大夫이다. 항상
경卿의
거복車服을 그 뜰에
진열陳列해놓으니,
정인鄭人이 그를 미워하여 죽였다.
“
시詩에 ‘
직위職位에 게을리 하지 않는 것이 백성들이
안식安息을 얻는 까닭이다.
注+자사子思는 자산子産의 아들 국참國參이다. 시詩는 《시경詩經》 〈대아大雅가락假樂〉篇의 시구詩句이다. 유攸는 소所이고 기墍는 식息이다. ’라고 하였으니, 그 직위를 지키지 못하고서
장구長久할 수 있는 자는 드물다.
상송商頌에 ‘
참차僭差(분수를 넘어 법도를 어김)하지 않고
남일濫溢(정해진 법도를 넘음)하지 않으며, 감히
태타怠惰하게 한가로이 지내지 않으니 하늘이 많은
복福으로
명命하셨다.
注+참僭은 차差(분수에 어긋남)이고, 남濫은 일溢(넘침)이고, 황皇은 가暇(閑暇)이다. 사진駟秦이 시詩와 상송商頌을 어겼기 때문에 화禍를 받은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