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春秋左氏傳(7)

춘추좌씨전(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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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좌씨전(7)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經]五年春 城毗注+無傳 備晉也하다
5년 봄에 에 성을 쌓았다.注+이 없다. 나라를 방비防備하기 위함이었다.
[經]夏 齊侯伐宋注+無傳하다
여름에 제후齊侯나라를 토벌하였다.注+이 없다.
[經]晉趙鞅帥師伐衛하다
나라 조앙趙鞅이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나라를 토벌하였다.
[經]秋九月癸酉 齊侯杵臼卒注+再同盟也하다
가을 9월 계유일癸酉日제후齊侯저구杵臼하였다.注+두 차례 동맹同盟하였다.
[經]冬 叔還如齊하다
겨울에 숙환叔還나라에 갔다.
[經]閏月 葬齊景公注+無傳하다
윤월閏月제경공齊景公을 장사 지냈다.注+이 없다.
[傳]五年春 晉圍柏人하니 荀寅士吉射奔齊하다
5년 봄에 진군晉軍백인柏人을 포위하니 순인荀寅사길석士吉射나라로 도망갔다.
范氏之臣王生惡張柳朔注+[附注] 林曰 王生張柳朔 皆范氏家族러니 言諸昭子하야 使爲柏人注+爲柏人宰也 昭子 范吉射也한대 昭子曰 夫非而讐乎注+[附注] 林曰 而 汝也
당초에 범씨范氏가신家臣왕생王生장류삭張柳朔을 미워하였는데注+[부주]林: 왕생王生장류삭張柳朔은 모두 범씨范氏가족家族이다. , 장류삭張柳朔소자昭子에게 좋게 말하여 백인柏人읍재邑宰로 삼게 하자注+백인柏人읍재邑宰로 삼게 한 것이다. 소자昭子범길야范吉射이다. , 소자昭子가 말하기를 “장류삭張柳朔은 너의 원수가 아니더냐?注+[부주]林: 이다. ”라고 하였다.
對曰 私讐不及公注+公家之事也이라
그러자 왕생王生이 대답하기를 “개인의 원한怨恨공사公事와 관계가 없습니다.注+공가公家의 일이다.
好不廢過하고 惡不去善 義之經也 臣敢違之리오
좋아하되 그 사람의 허물을 버리지 않고 미워하되 그 사람의 장점長點을 버리지 않는 것이 도의道義상법常法이니, 이 어찌 감히 이 상법常法을 어기겠습니까?”라고 하였다.
及范氏出注+出柏人 奔齊하야 張柳朔謂其子호되 爾從主勉之하라
범씨范氏백인柏人탈출脫出할 때에 미쳐注+백인柏人을 탈출하여 나라로 도망간 것이다. 장류삭張柳朔이 자기 아들에게 이르기를 “너는 주공主公을 따라가서 힘을 다해 모셔라.
我將止死注+[附注] 林曰 我將留此 距戰以死하리라
나는 장차 이곳에 남아 싸우다가 죽을 것이다.注+[부주]林: 나는 장차 이곳에 남아서 항전抗戰하다가 죽겠다는 말이다.
王生授我矣注+授我死節 吾不可以僭之注+[附注] 林曰 僭 不信也라하고 遂死於柏人注+爲吉射距晉戰死하다
왕생王生이 나에게 절개를 지켜 죽을 수 있는 기회를 주었으니注+나에게 절개를 지켜 죽을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는 말이다. , 나는 왕생王生을 믿지 않을 수 없다.注+[부주]林: 불신不信이다. ”라고 하고서 드디어 백인柏人에서 〈항전抗戰하다가〉 죽었다.注+범길야范吉射를 위해 진군晉軍을 막다가 전사戰死한 것이다.
趙鞅伐衛하니 范氏之故也
여름에 조앙趙鞅나라를 토벌하였으니, 이는 범씨范氏 때문이었다.
遂圍中牟注+衛助范氏故也하다
드디어 중모中牟를 포위하였다.注+나라가 범씨范氏를 도왔기 때문이다.
[傳]齊燕姬生子러니 不成而死注+燕姬 景公夫人 不成 未冠也하다
나라 연희燕姬가 아들을 낳았으나 성년成年이 되기 전에 죽었다.注+연희燕姬경공景公부인夫人이다. 불성不成관례冠禮를 하지 않은 것이다.
鬻姒之子荼嬖注+諸子 庶公子也 鬻姒 景之妾 荼 安孺子하니 諸大夫恐其爲大子也하야 言於公曰 君之齒長矣로되 未有大子하니 若之何
제자諸子(諸妾) 중의 하나인 죽사鬻姒가 낳은 아들 를 사랑하니注+제자諸子서공자庶公子이다. 죽사鬻姒경공景公이다. 안유자安孺子이다. , 대부大夫들은 그가 태자太子가 될까 두려워하여 제경공齊景公에게 말하기를 “임금님의 연세가 높으신데 아직 태자太子가 없으시니 어찌하면 좋겠습니까?”라고 하니,
公曰 注+景公意欲立荼而未發 故以此言塞大夫請 [附注] 林曰 言群臣當國無憂虞而事得間暇 則恐有疾疢 不得爲樂 今無疾病 則且圖爲樂耳 又何憂於無君
경공景公이 말하기를 “그대들의 마음에 우려憂慮가 끼어들면 질병이 생길 것이니, 우선 즐겁게 지내기를 꾀할 것이지 임금 없는 것을 걱정할 게 뭐 있소.注+경공景公태자太子로 세우고자 생각하였으나, 아직 드러내지는 않았다. 그러므로 이 말로 대부大夫들의 을 막은 것이다. [부주]林: 모든 대부大夫들이 국가國家우환憂患이 없어 일이 한가閒暇한 때를 당하면 질병疾病이 생겨서 즐거운 일을 할 수 없게 될 것이 두렵다. 지금 질병이 없으니 우선 즐겁게 지내기를 꾀할 것이지 어찌 임금이 없을 것을 걱정하느냐는 말이다. ”라고 하였다.
公疾 使國惠子高昭子立荼注+惠子 國夏 昭子 高張하고 寘群公子於萊注+萊 齊東鄙邑하다
경공景公이 위독해지자 국혜자國惠子고소자高昭子로 하여금 태자太子로 세우고注+혜자惠子국하國夏이고 소자昭子고장高張이다. , 모든 공자公子들을 안치安置하게 하였다.注+나라 동쪽 변방邊方이다.
齊景公卒하다
가을에 제경공齊景公하였다.
冬十月 公子嘉公子駒公子黔奔衛하고 公子鉏公子陽生來奔注+皆景公子在萊者하다
겨울 10월에 공자公子, 공자公子, 공자公子나라로 도망가고, 공자公子, 공자公子양생陽生나라로 도망해 왔다.注+모두 경공景公의 아들로 에 있던 자들이다.
萊人歌之曰 景公死乎不與埋하고 三軍之事乎不與謀하니 師乎師乎
내인萊人이 노래하기를 “경공景公이 죽었는데도 매장埋葬에도 참여하지 못하고, 삼군三軍의 일에도 참여해 모의하지 못하였으니, 공자公子들이여! 공자公子들이여!
장차 어디로 가실 것인가?注+이고, 이고, 이다. 경공景公이란 시호諡號를 칭한 것으로 보아 장후葬後에 이 노래를 지어 공자公子들이 처소處所를 잃은 것을 슬퍼한 것인 듯하다. [부주]林: 경공景公이 죽었는데도 여러 공자公子들은 장사葬事에 참여하여 그 효성孝誠을 다하지 못하고, 나라에 삼군三軍의 일이 있는데도 모의謀議에 참여하여 그 충성과 힘을 다하지 못하였다는 말이다. 이니 중공자衆公子를 말한 것이다. 거듭 말한 것은 매우 애석哀惜해 한 것이다. ”고 하였다.
[傳]鄭駟秦富而侈하야 嬖大夫也注+[附注] 林曰 鄭之下大夫也로되 而常陳卿之車服於其庭하니 鄭人惡而殺之하다
나라 사진駟秦부유富裕하고 사치스러워서 폐대부嬖大夫(下大夫)이면서도注+[부주]林: 나라의 하대부下大夫이다. 항상 거복車服을 그 뜰에 진열陳列해놓으니, 정인鄭人이 그를 미워하여 죽였다.
子思曰
자사子思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詩曰 注+子思 子産子國參也 詩大雅 攸 所也 墍 息也 라하니 不守其位而能久者鮮矣
에 ‘직위職位에 게을리 하지 않는 것이 백성들이 안식安息을 얻는 까닭이다.注+자사子思자산子産의 아들 국참國參이다. 는 《시경詩經》 〈대아大雅가락假樂〉篇의 시구詩句이다. 이고 이다. ’라고 하였으니, 그 직위를 지키지 못하고서 장구長久할 수 있는 자는 드물다.
商頌曰 注+僭 差也 濫 溢也 皇 暇也 言駟秦違詩商頌 故受禍이라하니라
상송商頌에 ‘참차僭差(분수를 넘어 법도를 어김)하지 않고 남일濫溢(정해진 법도를 넘음)하지 않으며, 감히 태타怠惰하게 한가로이 지내지 않으니 하늘이 많은 으로 하셨다.注+(분수에 어긋남)이고, (넘침)이고, (閑暇)이다. 사진駟秦상송商頌을 어겼기 때문에 를 받은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고 하였다.”
역주
역주1 諸子 : 襄公 19년 傳杜注에 “諸子는 姓이 子인 여러 妾이다.”고 하였다.
역주2 二三子間於憂虞……何憂於無君 : 〈楊注〉에 “間은 參與이니, 間厠(끼어들다)의 뜻이다. 莊公 10년 傳에 ‘又何間焉’의 ‘間’과 같다. 이는 너희들에게 만약 憂慮하는 일이 있으면 疾病이 생긴다는 말이다.”고 하였다. 이 說에 의거하면 그대들의 마음에 우려가 끼어들면 질병이 생길 것이니, 太子가 없는 것을 우려하지 말고 우선 즐겁게 지내기를 꾀하라는 뜻이 된다. 譯者는 이 說을 취하여 번역하였다.
역주3 林曰 景公死乎 群公子不得與葬以盡其孝誠 齊有三軍之事乎 不得與謀以盡其忠力 師 衆也 言衆公子也 重言之者 哀之甚也 : 이 林注는 《四庫全書左傳杜林合注》本에는 보이지 않는다.
역주4 不解于位 民之攸墍 : 윗자리에 있는 자가 그 職位(職務)를 게을리 하지 않는 것이 백성들이 安息을 얻을 수 있는 까닭이라는 말이다. 〈正義〉
역주5 不僭不濫 不敢怠皇 命以多福 : 《詩經》 〈商頌殷武〉篇의 詩句이다. 成湯의 德이 僭差하지 않고 濫溢하지 않으며, 감히 怠惰하게 한가로이 지내지 않으니, 이 때문에 上天이 많은 福으로 命하였다고 노래한 것이다. 詩에는 ‘怠皇’ 아래에 ‘命于下國封建厥福’이라는 말이 있는데, 傳에 ‘命以多福’이라고 말하고, 다시 詩의 글을 다 引用하지 않은 것은 그 뜻만을 취하여 말한 것이다. 〈正義〉 詩曰 이하는 杜注와 孔疏의 解釋에 따라 飜譯하였으므로 本文의 懸吐를 〈注疏〉에 의해 달았고, 《詩傳諺解》의 懸吐를 취하지 않았다.

춘추좌씨전(7) 책은 2019.05.2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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