傳
[傳]十三年春에 齊師伐莒하니 莒恃晉而不事齊故也라
傳
[傳]夏
에 楚子伐宋
하니 以其救蕭也
注+救蕭 在前年라
淸丘之盟
은 唯宋可以免焉
注+宋討陳之貳 今宋見伐 晉衛不顧盟以恤宋 而經同貶宋大夫 傳嫌華椒之罪 累及其國 故曰唯宋可以免이로다
傳
[傳]秋
에 赤狄伐晉
하야 及淸
하니 先縠召之也
注+邲戰不得志 故召狄欲爲變 淸 一名淸原라
傳
[傳]冬에 晉人討邲之敗與淸之師하야 歸罪於先縠而殺之하고 盡滅其族하다
는 己則取之
라하니 其先縠之謂乎
注+盡滅其族 謂誅已甚 故曰惡之來也 ᄂ저
傳
[傳]淸丘之盟
에 晉以衛之救陳也
로 討焉
注+尋丘之盟以責衛 하다
使人弗去曰 罪無所歸
면 將加而師
注+[附注] 朱曰 而 汝也 言將以兵加汝也 하리라
孔達曰 苟利社稷
이면 請以我說
注+欲自殺以說晉 하라
하니 大國之討
를 將以誰任
注+亢 禦也 謂禦宋討陳也 [附注] 朱曰 今晉討衛罪而我不引罪自殺 是亢晉也 我爲執政而不任其罪 將歸罪於誰乎 고
13년 봄에 제군齊軍이 거莒나라를 토벌討伐하였다.
가을에
황재蝗災가
발생發生하였다.
注+전傳이 없다. 재해災害가 되었기 때문에 기록한 것이다.
겨울에
진晉나라가 그
대부大夫선곡先縠을 죽였다.
注+이름을 기록한 것은 죄罪를 징벌懲罰하였기 때문이다.
傳
13년 봄에 제군齊軍이 거莒나라를 토벌討伐하였으니, 이는 거莒나라가 진晉나라를 믿고 제齊나라를 섬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傳
여름에
초자楚子가
송宋나라를
토벌討伐하였으니, 이는
송宋나라가
소국蕭國을
구원救援하였기 때문이다.
注+소국蕭國을 구원救援한 일은 전년前年에 있었다.
군자君子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논평論評하였다.
“
청구淸丘의
결맹結盟은 오직
송宋나라만이
비난非難을
면免할 수 있다.”
注+송宋나라가 두 마음을 품은 진陳나라를 토벌討伐하였다가 지금 송宋나라가 초楚나라의 토벌討伐을 받는데도 진晉나라와 위衛나라는 결맹結盟을 생각해 송宋나라를 구원救援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경經에는 송宋나라 대부大夫까지 함께 폄하貶下하였으니, 전傳에서는 화초華椒의 죄罪가 자주 그 나라에 미쳤기 때문에 그렇게 기록한 것으로 의심할까 염려하였기 때문에 ‘오직 송宋나라만이 비난非難을 면免할 수 있다.’고 한 것이다.
傳
가을에
적적赤狄이
진晉나라를
토벌討伐하여
청읍淸邑까지 들어갔으니, 이는
진晉나라
선곡先縠이
적적赤狄을 불러들인 것이다.
注+필邲의 전쟁戰爭에서 선곡先縠이 뜻을 얻지 못했기 때문에 적狄을 불러들여 변란變亂을 일으키고자 한 것이다. 청淸의 일명一名은 청원淸原이다.
傳
겨울에 진인晉人이 필邲의 패전敗戰과 청淸의 전쟁戰爭을 추구追咎[討]하여 선곡先縠에게 죄罪를 돌려 죽이고, 그 일족一族을 모두 죽였다.
군자君子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논평論評하였다.
“
형륙刑戮[惡]이 이르는 것은 자기가 부르는 것이라고 하니, 이는
선곡先縠을 이르는 말일 것이다.”
注+그 일족一族을 모두 죽였다는 것은 주륙誅戮이 너무 심했음을 이른 것이다. 그러므로 ‘악지래야惡之來也’라고 한 것이다.
傳
청구淸丘의
동맹同盟에
의거依據해
진晉나라는
위衛나라가
진陳나라를
구원救援한 일을
추구追咎[討]하였다.
注+청구淸丘의 맹약盟約에 의거依據해 위衛나라를 책망責望한 것이다.
진晉나라
사자使者가
위衛나라를 떠나려 하지 않으며 말하기를, “
죄인罪人을 잡아
처벌處罰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장차 군대를 일으켜 너희 나라를
토벌討伐할 것이다.”
注+[부주]朱: 이而는 너이다. 장차 군대를 거느리고 와서 너희 나라를 공격攻擊[加]하겠다는 말이다. 고 하였다.
공달孔達이 말하기를, “진실로
사직社稷에
이익利益이 된다면 모든 일을 내가 했다고
진晉나라에
설명說明하십시오.
注+자살自殺하여 진晉나라에 해명解明[說]하고자 한다는 말이다.
내가
집정執政이 되어
진晉나라에
항거抗拒하였으니,
대국大國의
추구追咎를 누가
책임責任져야겠습니까?
注+항亢은 방어防禦이니, 송宋나라가 진陳나라를 토벌討伐하는 것을 막은 것을 이른다. [부주]朱: 지금 진晉나라가 위衛나라의 죄罪를 토벌討伐하는데 내가 죄를 인정하고 자살하지 않는다면 이는 진晉나라에 항거抗拒하는 것이다. 내가 집정執政이 되어 그 죄를 책임지지 않는다면 장차 그 죄가 누구에게 돌아가겠는가.
나는 그 책임을 지고 죽겠습니다.”
注+명년明年에 공달孔達을 죽인 전傳의 배경背景이다. 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