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春秋左氏傳(3)

춘추좌씨전(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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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좌씨전(3)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經]十有七年春王正月庚子 許男錫我卒注+無傳 再與文同盟 하다
17년 봄 주왕周王정월正月경자일庚子日허남許男석아錫我하였다.注+이 없다. 두 차례 문공文公동맹同盟하였다.
[經]丁未 蔡侯申卒注+無傳 未同盟而赴以名 丁未 二月四日 하다
정미일丁未日채후蔡侯하였다.注+이 없다. 동맹同盟하지 않았으나 이름을 기록해 부고赴告하였기 때문에 그 이름을 기록한 것이다. 정미일丁未日은 2월 4일이다.
[經]夏 葬許昭公注+無傳하다
여름에 허소공許昭公장사葬事 지냈다.注+이 없다.
[經]葬蔡文公注+無傳 하다
채문공蔡文公장사葬事 지냈다.注+이 없다.
[經]六月癸卯 日有食之注+無傳 不書朔 官失之 하다
6월 계묘일癸卯日일식日食이 있었다.注+이 없다. 삭일朔日을 기록하지 않은 것은 일관日官이 잊은 것이다.
[經]己未 公會晉侯衛侯曹伯邾子同盟于斷道注+斷道 晉地 하다
기미일己未日선공宣公진후晉侯위후衛侯조백曹伯주자邾子회합會合하여 단도斷道에서 동맹同盟하였다.注+단도斷道나라 땅이다.
[經]秋 公至自會注+無傳 하다
가을에 선공宣公회맹會盟에서 돌아왔다.注+이 없다.
[經]冬十有一月壬午 注+傳例曰 公母弟하다
겨울 11월 임오일壬午日선공宣公의 아우 숙힐叔肹하였다.注+전례傳例에 “선공宣公동모제同母弟이다.”고 하였다.
[傳]十七年春 晉侯使郤克徵會于齊注+徵 召也 欲爲斷道會하다
17년 봄에 진후晉侯극극郤克나라에 보내어 제후齊侯회맹會盟초청招請[徵]하였다.注+은 부르는 것이다. 단도斷道에서 회맹會盟하고자 한 것이다.
齊頃公帷婦人하야 使觀之注+[附注] 林曰 帷 幕帟也 穀梁 謂婦人乃蕭同叔子 頃公之母하다
제경공齊頃公부인婦人에게 장막帳幕 뒤에 숨어서 극극郤克을 엿보게 하였다.注+[부주]林: 장막帳幕이다. 《곡량전穀梁傳》에 “부인婦人소동숙자蕭同叔子제경공齊頃公의 어머니이다.”고 하였다.
郤子登 婦人笑於房注+跛而登階 故笑之 [附注] 朱曰 穀梁傳 謂郤克跛 齊侯使跛者迓之 하니 獻子怒注+[附注] 林曰 獻子 卽郤克하야 出而誓曰 所不此報 無能涉河注+不復渡河而東리라
극자郤子가 계단을 오를 때 부인婦人에서 소리 내어 웃으니,注+다리를 절면서 계단階段을 올랐기 때문에 웃은 것이다. [부주]朱: 《곡량전穀梁傳》에 “극극郤克이 절름발이였기 때문에 제후齊侯가 절름발이를 시켜 그를 맞이하게 하였다.”고 하였다.헌자獻子하여注+[부주]林: 헌자獻子는 바로 극극郤克이다. 나와서 맹서盟誓하기를, “만약[所] 이 치욕恥辱을 갚지 못한다면 다시 황하黃河를 건너오지 않을 것이다.”注+다시 황하黃河를 건너 동쪽의 나라로 오지 않겠다는 말이다. 고 하였다.
獻子先歸하며 使欒京廬待命于齊曰 無復命矣注+欒京廬 郤克之介 使得齊之罪 乃復命 [附注] 林曰 不得齊事 不得齊人笑辱之罪라하다
헌자獻子는 먼저 돌아가며 난경려欒京廬에게 나라에서 을 기다리게 하면서 말하기를, “나라에 온 일(齊侯를 회맹會盟초청招請하는 일)을 이루지 못하면 돌아와 복명復命하지 말라.”注+난경려欒京廬극극郤克부사副使이다. 나라의 를 밝히고 돌아와 복명復命하게 한 것이다.[부주]林: 부득제사不得齊事는 비웃어 모욕侮辱제인齊人추궁追窮하지 못하는 것이다.고 하였다.
郤子至하야 請伐齊하니 晉侯弗許하고
극자郤子가 돌아와서 나라 토벌討伐하기를 하니, 진후晉侯허락許諾하지 않았다.
請以其私屬하니 又弗許注+私屬 家衆也 爲成二年戰于鞍傳 하다
극극郤克이 자기의 사속私屬(家兵)을 거느리고 가서 토벌討伐하기를 하니, 역시 허락許諾하지 않았다.注+사속私屬가중家衆(家兵)이다. 성공成公 2년에 에서 전쟁戰爭배경背景이다.
齊侯使高固晏弱蔡朝南郭偃會注+晏弱 桓子러니 及斂盂하야 高固逃歸注+聞郤克怒故하다
제후齊侯고고高固, 안약晏弱, 채조蔡朝, 남곽언南郭偃을 보내어 회맹會盟참가參加하게 하였더니,注+안약晏弱환자桓子이다.염우斂盂에 이르러 고고高固는 도망해 돌아갔다.注+극극郤克하였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會于斷道하니 討貳也
여름에 단도斷道에서 회맹會盟하였으니, 이는 두 마음 품은 나라를 토벌討伐할 것을 상의商議하기 위함이었다.
盟于卷楚注+卷楚 卽斷道 辭齊人注+[附注] 林曰 辭齊人使勿與盟 하고 晉人執晏弱于野王하고 執蔡朝于原하고 執南郭偃于溫注+執三子不書 非卿 野王縣今屬河內 하다
권초卷楚에서 회맹會盟할 때注+권초卷楚는 바로 단도斷道이다. 제인齊人참가參加사절辭絶하고서注+[부주]林: 제인齊人에게 사절謝絶하여 회맹會盟참여參與하지 못하게 한 것이다. 진인晉人야왕野王에서 안약晏弱을 잡고, 에서 채조蔡朝를 잡고, 에서 남곽언南郭偃을 잡았다.注+세 사람을 잡은 것을 에 기록하지 않은 것은 그들이 이 아니기 때문이다. 야왕현野王縣은 지금 하내河內한다.
苗賁皇使 見晏桓子注+賁皇 楚鬪椒之子 楚滅鬪氏 而奔晉 食邑于苗地 晏弱時在野王 故因使而見之 하고 歸言於晉侯曰 夫晏子何罪잇가
묘분황苗賁皇사신使臣으로 가는 길에 야왕野王을 지나다가 안환자晏桓子를 보고서注+분황賁皇나라 투초鬪椒의 아들이다. 나라가 투씨鬪氏하자, 분황賁皇나라로 도망가서 묘지苗地식읍食邑으로 받았다. 안약晏弱이 이때 야왕野王에 있었기 때문에 분황賁皇사신使臣으로 가는 길에 그를 만난 것이다. 돌아와 진후晉侯에게 말하기를, “저 안자晏子에게 무슨 가 있습니까?
昔者諸侯事吾先君 皆如不逮注+言汲汲也 러니 擧言群臣不信일새 諸侯皆有貳注+擧 亦皆也 [附注] 林曰 今則皆言晉之群臣待人不信 四方諸侯皆有携貳之志이라하니이다
제후諸侯가 우리 선군先君(晉文公을 가리킴)을 섬길 때는 제후諸侯들이 모두 미치지 못할세라注+서둘렀다는 말이다. 힘을 다해 섬겼는데, 지금은 제후諸侯들이 모두 ‘나라 군신群臣신의信義를 지키지 않으므로 제후諸侯도 모두 배반할 뜻을 품고 있다.’注+도 모두이다. [부주]林: 지금은 제후諸侯가 모두 ‘나라 군신群臣진실眞實한 마음으로 사람을 대우하지 않기 때문에 사방四方제후諸侯도 모두 배반背叛[携貳]할 뜻을 가졌다.’고 말한 것이다.고 말합니다.
齊君恐不得禮注+不見禮待 故不出하고 而使四子來니이다
제군齊君예우禮遇받지 못할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에注+예우禮遇를 받지 못할 것을 두려워한 것이다.회맹會盟에 오지 않고, 네 사람을 대신 보낸 것입니다.
左右或沮之注+沮 止也曰 君不出이면 必執吾使리라
그때 제군齊君좌우左右 중에 어떤 자가 보내지 말라고 말리며注+는 말리는 것이다.(齊君을 이름)께서 가지 않으시면 진인晉人은 반드시 우리 사자使者를 잡을 것입니다.’고 하였습니다.
故高子及斂盂而逃로되 夫三子者曰 若注+[附注] 林曰 若逃歸以絶晉君之好 寧來會而歸死於晉이라
그러므로 고자高子염우斂盂에 이르러 도망하였으나, 저 세 사람은 ‘두 나라 임금의 우호友好단절斷絶시키느니 차라리 회맹會盟에 가서 죽겠다.’注+[부주]林: 도망해 돌아가서 진군晉君과의 우호友好단절斷絶하느니 차라리 회맹會盟에 가서 나라에서 죽겠다는 말이다. 고 하였습니다.
爲是犯難而來하니 注+彼 齊三人 [附注] 林曰 我若以好迎彼三子하야 以懷來者어늘 吾又執之하야 以信齊沮注+[附注] 林曰 以信齊人沮止三子之言하니 吾不旣過矣乎잇가
이 때문에 저들이 위난危難을 무릅쓰고 왔으니, 우리는 저들을 잘 맞이하여注+나라에서 온 세 사람을 이른다.[부주]林: ‘우리가 만약 좋은 마음으로 저 세 사람을 영접迎接한다면’이라는 말이다. 모든 제후諸侯들이 오도록 회유懷柔하는 것이 마땅한데[若], 우리는 저들을 잡아서 ‘보내지 말라.’고 말린 제인齊人의 말을 사실로 만들었으니,注+[부주]林: 세 사람이 회맹會盟에 가는 것을 저지沮止했던 제인齊人의 말을 사실로 만들었다는 말이다. 우리가 이미 잘못한 것이 아닌지요.
過而不改하고 而又久之注+[附注] 林曰 又久執三子 하여 以成其悔 何利之有焉이릿가
잘못을 범하고도 고치지 않고 저들을 오래 잡아두어注+[부주]林: 또 세 사람을 오래 잡아두는 것이다. 저들이 온 것을 후회後悔하게 한다면 무슨 이익利益이 있겠습니까?
使反者得辭注+反者 高固 謂得不當來之辭하고 而害來者하야 以懼諸侯 將焉用之릿가
이는 중도中途에서 도망간 자에게는 변명辨明구실口實을 주고,注+돌아간 자는 고고高固이다. 회맹會盟에 가는 것이 부당不當하다는 변명辨明을 할 수 있게 하였다는 말이다. 온 자에게는 를 입혀 제후諸侯들을 두렵게 하는 것이니, 장차 무슨 소용所用이 있겠습니까?”라고 하였다.
晉人緩之하니注+緩 不拘執 使得逃去也 傳言晉不能修禮 諸侯所以貳하다
진인晉人이 이들의 감시監視를 느슨히 하니 도망해 돌아갔다.注+구금拘禁하지 않아 도망갈 수 있게 한 것이다. 전문傳文나라가 를 닦지 않은 것이 제후諸侯가 두 마음을 품게 된 원인原因임을 말한 것이다.
[傳]秋八月 晉師還注+[附注] 林曰 君行師從 故斷道盟歸 稱晉師還
가을 8월에 진군晉軍이 돌아갔다.注+[부주]林: 임금의 출행出行에는 군대가 따른다. 그러므로 단도斷道에서 회맹會盟하고 돌아간 것을 ‘진사환晉師還’으로 기록記錄한 것이다.
[傳]范武子將老注+老 致仕 初受隨 故曰隨武子 後更受范 復爲范武子 할새 召文子曰 燮乎 吾聞之컨대 喜怒以類者鮮注+文子 士會之子 燮 其名 [附注] 朱曰 言人之喜怒 但主一事者 此最少也 하고 易者實多注+易 遷怒也라하니라
범무자范武子고로告老(致仕)하려 할 때注+치사致仕이다. 처음에는 수읍隨邑채지采地로 받았기 때문에 수무자隨武子라 하였고, 뒤에 다시 범읍范邑을 받았기 때문에 다시 범무자范武子라 한 것이다. 그 아들 문자文子를 불러 말하기를, “아, 내가 듣건대 희로喜怒도리道理에 맞게 하는 는 드물고,注+문자文子사회士會의 아들이다. 은 그의 이름이다. [부주]朱: 기쁨과 노여움이 다른 데로 옮겨 가지 않고 단지 한 일에만 드러나는 사람이 매우 적다고 말한 것이다. 반대로 하는 자는 실로 많다고 한다.注+분노憤怒를 다른 사람에게 옮기는 것이다.
詩曰 君子如怒 亂庶遄沮하고 亂庶遄已注+詩小雅也 遄 速也 沮 止也 祉 福也 [附注] 林曰 如 而也 言君子而有所怒 禍亂庶其速可沮止也 君子而受福祉 禍亂庶其速已止也 라하니 君子之喜怒 以已亂也注+[附注] 朱曰 君子喜怒 皆得其正 故皆可以止禍亂也
시경詩經》에 ‘군자君子가 만약 한다면 화란禍亂이 이내 그치고, 군자君子가 만약 기뻐한다면 화란禍亂이 이내 그친다.’注+는 《시경詩經》 〈소아小雅교언편巧言篇〉이다. 이고, 이고, 이다. [부주]林: 이니, 군자君子로서 하는 바가 있으면 화란禍亂이 거의 히 그치고, 군자君子로서 을 받으면 화란禍亂이 거의 히 그친다는 말이다.고 하였으니, 이는 군자君子희로喜怒화란禍亂저지沮止하기 위함이라는 말이다.注+[부주]朱: 군자君子희로喜怒가 모두 공정公正하기 때문에 모두 화란禍亂을 그치게 할 수 있다는 말이다.
弗已者 必益之注+[附注] 朱曰 若非君子 則喜怒不得其正 不能止亂而反增益之也 郤子其或者欲已亂於齊乎
화란禍亂저지沮止하고자 하지 않는 자는 반드시 화란禍亂증가增加시킬 것이니,注+[부주]朱: 만약 군자君子가 아니면 희로喜怒공정公正하지 못하여 화란禍亂을 그치게 하지 못하고, 도리어 화란禍亂증가增加시킨다는 말이다. 극자郤子는 혹시 나라의 화란禍亂저지沮止하고자 하는가?
不然이면 余懼其益之也注+[附注] 朱曰 若不使逞其報齊之志 我恐其遷怒以害於晉 而增益其亂也
그렇지 않다면 나는 그가 화란禍亂증가增加시킬까 두렵다.注+[부주]朱: 만약 극자郤子로 하여금 나라에 보복報復하려는 마음을 만족하게 풀지 못하게 한다면 나는 그가 분노憤怒를 옮겨 나라를 해쳐서 화란禍亂증가增加시킬까 두렵다는 말이다.
余將老하야 使郤子逞其志 庶有豸乎注+豸 解也 欲使郤子從政 快志以止亂ᄂ저 爾從二三子하야 唯敬注+二三子 晉諸大夫 하라하고 乃請老하니 郤獻子爲政하다
고로告老하여 극자郤子의 마음을 만족滿足하게 한다면 거의 화란禍亂이 풀릴 것이니,注+는 푸는 것이다. 극자郤子로 하여금 집정執政이 되어 마음대로 행사行事하여 화란禍亂을 그치게 하고자 한다는 말이다. 너는 여러 대부大夫들을 따라 일 처리에 공경恭敬하라.”고 하고서 치사致仕하니, 극헌자郤獻子집정執政이 되었다.注+이삼자二三子나라의 제대부諸大夫이다.
[傳]冬 公弟叔肹卒하니 公母弟也
겨울에 선공宣公의 아우 숙힐叔肹하였으니 선공宣公모제母弟이다.
凡大子之母弟 公在曰公子 不在曰弟注+以兄爲尊
범례凡例에 의하면 태자太子모제母弟생존生存했을 때는 ‘공자公子’로 하고, 사망死亡한 뒤에는 ‘’로 한다.注+으로 인해 존귀尊貴해진 것이다.
凡稱弟 皆母弟也注+此策書之通例也 庶弟不得稱公弟 而母弟或稱公子 若嘉好之事 則仍舊史之文 所以篤親親之恩 崇友于之好 釋例論之備矣
모든 곳의 ‘’라 한 것은 모두 모제母弟이다.注+이것은 책서策書일반적一般的규례規例이다. 서제庶弟공제公弟할 수 없고, 모제母弟를 간혹 공자公子하기도 한다. 만약 좋은 일이면 구사舊史의 글을 그대로 따르고, 오직 서로 살해殺害한 뒤에만 에 의거해 뜻을 보이니, 이는 친친親親의 은혜를 돈독敦篤히 하고, 형제兄弟우호友好중시重視하게 하기 위함이다. 《석례釋例》에 자세히 하였다.
역주
역주1 公弟叔肹卒 : ‘公弟’라고 기록한 것은 다른 公子로서 卿이 된 자와 구별하기 위함이다. 《雪溪隨錄》
역주2 不得齊事 : 齊나라에 온 使命을 完遂하지 못하는 것이다. 杜注에 ‘使得齊之罪’라고 한 것은 옳지 않다. 〈楊注〉 이 說을 取해 飜譯하였다.
역주3 心[志] : 저본에는 ‘心’으로 되어 있으나 《十三經注疏》本에 의거하여 ‘志’로 바로잡았다.
역주4 若絶君好 寧歸死焉 : 차라리[寧]라는 말 위에는 ‘하느니’ 또는 ‘하는 것보다’라는 의미의 ‘與其’라는 말이 있어야 하는데, ‘與其’라는 글자가 없고 ‘若’이란 글자가 있다. 글에 있는 대로 ‘若’을 ‘만약’으로 解釋하면 아래의 말과 接續이 되지 않으므로 ‘若’을 처리하지 않고 以上과 같이 飜譯하였다.
역주5 吾若善逆彼 : 여기의 ‘若’字도 ‘만약’으로 解釋하면 말이 잘 連結되지 않으므로 〈楊注〉의 說을 取해 ‘當’의 뜻으로 飜譯하였다.
역주6 君子如祉 : 杜氏는 祉를 福으로 해석하였으나, 譯者는 이를 따르지 않고 《詩傳集註》의 朱註를 取해 ‘喜’로 飜譯하였다.
역주7 唯相殺害然後 據例以示義 : 兄이 弟를 殺害한 경우에는 ‘弟’라고 稱하여 兄의 죄를 드러내고, 弟가 兄을 殺害한 경우에는 ‘弟’라고 稱하지 않아 弟의 罪임을 드러낸다는 말이다. 〈疏〉

춘추좌씨전(3) 책은 2019.05.2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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