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春秋左氏傳(5)

춘추좌씨전(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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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좌씨전(5)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經]五年春王正月 舍中軍注+襄十一年 始立中軍 [附注] 林曰 襄十一年 始立中軍 至是舍之 舍中軍 皆善辭也 微國史無以知舍中軍爲季氏專魯 從祀先公爲陽虎專季氏也 하다
[經]楚殺其大夫屈申注+書名 罪之하다
[經]公如晉하다
[經]夏 莒牟夷以牟婁及防玆來奔注+城陽平昌縣西南有防亭 姑幕縣東北有玆亭 [附注] 林曰 牟婁防玆 莒三邑 하다
[經]秋七月 公至自晉하다
[經]戊辰 叔弓帥師敗莒師于蚡泉注+蚡泉 魯地하다
[經]秦伯卒注+無傳 不書名 未同盟하다
[經]冬 楚子蔡侯陳侯許男頓子沈子徐人越人伐吳注+[附注] 林曰 越始見經 而常壽過得稱人 越驟强也 通吳以疲楚者 晉謀之失也 通越以困吳者 楚謀之失也 하다
[傳]五年春王正月 舍中軍하니 卑公室也注+罷中軍 季孫稱左師 孟氏稱右師 叔孫氏則自以叔孫爲軍名
毁中軍于施氏하야 成諸臧氏注+季孫不欲親其議 勅二家會諸大夫發毁置之計 又取其令名 [附注] 林曰 毁軍之議 始於施氏 成於臧氏 하다
初作中軍하야 三分公室하야 而各有其一注+三家各有一軍家屬 季氏盡征之注+無所入於公하고 叔孫氏臣其子弟注+以父兄歸公하고 孟氏取其半焉注+復以子弟之半歸公이러니 及其舍之也하야는 四分公室하야 季氏擇二注+簡擇取二分하고 二子各一하야 皆盡征之하야 而貢于公注+國人盡屬三家 三家隨時獻公而已하다
以書使杜洩告於殯注+告叔孫之柩
子固欲毁中軍이라 旣毁之矣 故告하노라 杜洩曰 夫子唯不欲毁也
故盟諸僖閎하고 詛諸五父之衢注+皆在襄十一年 라하고 受其書而投之注+投 擲也하고而哭之注+痛叔孫之見誣하다
叔仲子謂季孫曰 帶受命於子叔孫注+[附注] 林曰 叔仲子 卽叔仲帶受豎牛賂惡杜洩者 하니 曰 葬鮮者自西門注+不以壽終爲鮮 西門 非魯朝正門 이라 季孫命杜洩注+命使從西門한대 杜洩曰 卿喪 魯禮也注+從生存朝覲之正路
吾子爲國政하야 未改禮而又遷之注+遷 易也 [附注] 林曰 遷易其法하니 群臣懼死하야 注+自 從也 [附注] 林曰 群臣懼得罪以死라하고 旣葬而行注+善杜洩能辟禍 하다
仲至自齊注+聞喪而來하니 季孫欲立之하다
南遺曰 叔孫氏厚則季氏薄이라
彼實家亂이리니 子勿與知 不亦可乎注+[附注]
南遺使國人助豎牛하야 以攻諸注+攻仲壬也 魯城內有大庭氏之虛 於其上作庫 한대 司宮射之하니 中目而死하다
豎牛取東鄙三十邑하야 以與南遺注+取叔孫氏邑 하다
昭子卽位하야 朝其家衆曰 豎牛禍叔孫氏하야 使亂大從注+使從於亂 [附注] 林曰 昭子卽叔孫婼 卽卿位 朝叔孫之家衆 言豎牛爲禍於叔孫氏 使亂大和順之道 하야 殺適立庶하고 又披其邑하야 將以赦罪注+披 析也 謂以邑與南遺 昭子不知豎牛餓殺其父 故但言其見罪 [附注] 林曰 將以求赦其罪하니 罪莫大焉이라
必速殺之하라 豎牛懼하야 奔齊어늘 孟仲之子殺諸塞關之外注+齊魯界上關 [附注] 林曰 孟丙仲壬之子하야 投其首於寧風之棘上注+寧風 齊地하다
仲尼曰
叔孫昭子之不勞 不可能也注+不以立己爲功勞 據其所言善之 時魯人不以餓死語昭子
周任有言曰 爲政者 不賞私勞하고 不罰私怨이라하고 詩云 有覺德行이면 四國順之注+詩大雅 覺 直也 言德行直則四方順從之 라하니라
穆子之生也 莊叔以周易筮之注+莊叔 穆子父得臣也하야 遇明夷☷☲注+離下坤上 明夷 之謙☷☶注+艮下坤上 謙 明夷初九變爲謙하다
以示卜楚丘注+楚丘 卜人姓名하니
是將行注+行 出奔이라가注+奉祭祀 [附注] 林曰 歸奉莊叔之祭祀 하리라
以讒人入注+[附注] 林曰 其歸也 當與讒諛之人共入 이니 其名曰牛
明夷 日也注+離爲日 夷 傷也 注+甲至癸 이라
故有十時하니 亦當十位
自王已下 其二爲公이오 其三爲卿注+日中當王 食時當公 平旦爲卿 雞鳴爲士 夜半爲皂 人定爲輿 黄昏爲隷 日入爲僚 晡時爲僕 日昳爲臺 隅中日出 闕不在第 尊王公 曠其位 [附注] 林曰 王 天子也 天子至尊 故居盛位而自王以降 公諸侯 降於天子 故其位居於第二 卿大夫也 降於諸侯 故其位居於第三 이며 日上其中注+日中盛明 故以當王 이오 食日爲二注+公位 [附注] 林曰 食時之日 旦日爲三注+卿位 이라
明夷之謙 明而未融이니 其當旦乎注+融 朗也 離在坤下 日在地中之象 又變爲謙 謙道卑退 故曰明而未融 日明未融 故曰其當旦乎 ᄂ저
故曰爲子祀注+莊叔 卿也 卜豹爲卿 故知爲子祀
日之謙 當鳥 故曰注+離爲日爲鳥 離變爲謙 日光不足 故當鳥 鳥飛行 故曰于飛 라하고 明而未融이라 故曰垂其翼注+於日爲未融 於鳥爲垂翼 이라하고
象日之動이라 故曰君子于行注+明夷初九 得位有應 君子象也 在明傷之世 故將辟難而行 이라하고 當三在旦이라 故曰三日不食注+旦位在三 又非食時 故曰三日不食 이라하니라
火也 山也
離爲火하니 火焚山이면 山敗注+離艮
於人爲言注+艮爲言 이니 敗言爲讒注+爲離所焚 故言敗 이라
故曰 有攸往이면 主人有言이라하니 言必讒也注+離變爲艮 故言有所往 往而見燒 故主人有言 言而見敗 故必讒言
純離爲牛注+易 離上離下 離 畜牝牛 吉 故言純離爲牛 世亂讒勝하고 注+離焚山則離勝 譬世亂則讒勝 山焚則離獨存 故知名牛也 豎牛非牝牛 故不吉라하니라
謙不足일새 飛不翔注+謙道沖退 故飛不遠翔 [附注] 하고 垂不峻일새 翼不廣注+峻 高也 翼垂下 故不能廣遠 이라
故曰其爲子後乎注+不遠翔 故知不遠去 ᄂ저하니라
吾子亞卿也 注+旦日 正卿之位 莊叔父子 世爲亞卿 位不足以終盡卦體 蓋이리라
[傳]楚子以屈申爲貳於吳라하야 乃殺之注+造生貳心하고 以屈生爲莫敖注+生 屈建子하야 使與令尹子蕩如晉逆女하다
過鄭할새 鄭伯勞子蕩于하고 勞屈生于菟氏注+氾菟氏皆鄭地 [附注] 林曰 别勞二使者 盡敬也 하다
晉侯送女于邢丘하니 子産相鄭伯會晉侯于邢丘注+傳言楚强 諸侯畏敬其使 하다
[傳]公如晉注+卽位而往見 하야 注+來有郊勞 去有贈賄 無失禮注+揖讓之禮하니 晉侯謂女叔齊曰 魯侯不亦善於禮乎 對曰 魯侯焉知禮릿가
公曰 何爲
自郊勞至乎贈賄 禮無違者어늘 何故不知 對曰
是儀也 不可謂禮니이다
所以守其國하고 行其政令하야 無失其民者也니이다
今政令在家注+在大夫로되 不能取也하고 有子家羈로되 弗能用也注+羈 莊公玄孫懿伯也 하고 奸大國之盟하야 陵虐小國注+謂伐莒取鄆하고 利人之難注+謂往年莒亂而取鄫 하야 不知其私注+不自知有私難니이다
公室四分하야 民食於他注+他 謂三家也 言魯君與民無異하야 思莫在公이로되 注+無爲公謀終始者 [附注] 林曰 群臣思慮 莫在公家 하고 爲國君하야 難將及身이로되 不恤其所注+[附注] 林曰 니이다
禮之本末 注+在恤民與憂國어늘 而屑屑焉習儀以亟注+言以習儀爲急 하니 言善於禮 不亦遠乎잇가
君子謂 叔侯於是乎知禮注+時晉侯亦失政 叔齊以此諷諫라하니라
[傳]晉韓宣子如楚送女할새 叔向爲介러니 鄭子皮子大叔勞諸索氏注+河南城臯縣東有大索城 [附注] 林曰 二子過鄭 故鄭二子迎勞於索氏之地하다
大叔謂叔向曰 楚王汰侈已甚하니 子其戒之하라 叔向曰 汰侈已甚 身之災也 焉能及人이리오
若奉吾幣帛 愼吾威儀하야 守之以信하고 行之以禮하야 敬始而思終이면 終無不復注+이오
從而不失儀注+從 順也하고 敬而不失威하며 道之以訓辭하고 奉之以舊法하며 考之以先王注+以先王之禮成其好하고 度之以二國注+度晉楚之勢而行之 이면 雖汰侈 若我何
及楚하니 楚子朝其大夫曰 晉 吾仇敵也 苟得志焉이면 無恤其他
今其來者 上卿上大夫也注+[附注] 林曰 今晉所使來送女者 韓起上卿 叔向上大夫也 若吾以韓起爲閽注+刖足使守門 하고 而以羊舌肸爲司宮注+加宮刑 이면 足以辱晉이오 吾亦得志矣 可乎 大夫莫對하다
薳啓彊曰 可니이다
苟有其備 何故不可注+[附注] 林曰 苟有待晉之先備 何故不可以辱晉 릿가
恥匹夫에도 不可以無備어든 況恥國乎잇가
是以聖王務行禮 不求恥人이니이다
朝聘有珪注+珪以爲信하고 享覜有璋
注+享 饗也 覜 見也 旣朝聘而享見也 臣爲君使執璋 하며 小有述職注+諸侯適天子曰述職 하고 大有巡功注+天子巡守曰巡功 하며 注+言務行禮 [附注] 林曰 朝聘之禮 有設机進爵之時 朝禮雖亡 而聘禮有其略也 聘義曰 聘射之禮 至大禮也 質明而始行事 日幾中而後禮成 非强有力者 弗能行也 故設机而不能倚 酒淸人渴而不敢飮 肉敗人餒而不敢食 故爵盈而不飮 하며 宴有注+宴飮以貨爲好 衣服車馬 在客所無 하고 飱有陪鼎注+熟食爲飱 陪 加也 加鼎所以厚殷勤 하며 入有郊勞注+賓至 逆勞之於郊하고 出有贈賄注+去則贈之以貨賄 하니 禮之至也니이다
國家之敗 하야 則禍亂興注+失朝聘이니이다
城濮之役注+在僖二十八年 晉無楚備하야 注+在宣十二年 言兵禍始於城濮 하고 邲之役 楚無晉備하야 注+在成十六年 이니이다
自鄢以來 晉不失備하고 而加之以禮하며 注+君臣和也 이니이다
是以楚弗能報하고 而求親焉이니이다
旣獲姻親이어늘 又欲恥之하야 以召冦讐하시니 備之若何注+言何以爲備 잇가
注+言怨重릿가
若有其人이면 恥之可也注+謂有賢人以敵晉 則可恥之 어니와 若其未有 君亦圖之하소서
晉之事君 臣曰可矣注+[附注] 林曰 晉國服事楚 若以臣言之 其亦可矣 니이다
求諸侯而麇至注+麇 群也 [附注] 林曰 謂四年會申 楚求諸侯 則麇群而至 하고 求昏而薦女注+薦 進也하야 君親送之하고 上卿及上大夫致之어늘
猶欲恥之하시니 君其亦有備矣니이다
不然이면 奈何注+[附注] 林曰 苟不如此 其如晉何 잇고
韓起之下 趙成中行吳魏舒范鞅知盈注+五卿位在韓起之下 皆三軍之將佐也 成 趙武之子 吳 荀偃之子 羊舌肸之下 祁午張趯籍談女齊梁丙張骼輔躒苗賁皇 皆諸侯之選也注+言非凡人 韓襄爲公族大夫하고 韓須受命而使矣注+襄 韓無忌子也 爲公族大夫 須 起之門子 年雖幼 已任出使 箕襄邢帶注+二人 韓氏族 叔禽叔椒子羽注+皆韓起庶子 皆大家也 韓賦七邑 注+成縣 賦百乘也 [附注] 林曰 韓襄 起之兄子 箕襄邢帶二人 韓氏族 韓須叔禽叔椒子羽四人 皆韓起子 凡七人 人一邑 羊舌四族 皆彊家也注+四族 銅鞮伯華叔向叔魚叔虎兄弟四人 [附注] 林曰 皆百乘之家也 니이다
晉人若喪韓起楊肸이면 五卿八大夫注+五卿 趙成以下 八大夫 祁午以下 [附注] 林曰 楊肸卽叔向 本羊舌氏 食菜於楊 故又號楊肸也 輔韓須楊石注+石 叔向子食我也 하야 因其十家九縣注+韓氏七 羊舌氏四 而言十家 擧大數也 羊舌四家共二縣 故但言彊家 長轂九百注+長轂 戎車也 縣百乘 其餘四十縣 遺守四千注+計遺守國者 尙有四千乘 하야 奮其武怒하야 以報其大恥리이다
伯華謀之注+伯華 叔向兄하고 中行伯魏舒帥之注+伯 中行吳 其蔑不濟矣리이다
君將以親易怨注+失昏姻之親하시니 實無禮以速冦니이다
而未有其備하야 使群臣往遺之禽하야 以逞君心注+[附注] 林曰 使楚之群臣往遺晉之禽獲 以逞快楚君之心이면 何不可之有注+[附注] 林曰 反說何有不可 言其甚不可也 릿가 王曰 注+謝薳啓彊하라하고 厚爲韓子禮하다
王欲敖叔向以其所不知 而不能注+言叔向之多知 [附注] 朱曰 欲難叔向以不知之事 以爲敖樂 王之所問 叔向無不知者 하니 亦厚其禮하다
韓起反 鄭伯勞諸圉注+圉 鄭地名한대 注+奉使君命未反故
[傳]鄭罕虎如齊하야 娶於子尾氏注+自爲逆也 하다
晏子驟見之注+[附注] 林曰 數往見子皮 한대 陳桓子問其故하니 對曰
能用善人하니 民之主也注+謂授子産政
[傳]夏 莒牟夷以牟婁及防玆來奔하다
牟夷非卿而書 尊地也注+尊 重也 重地 故書以名 其人終爲不義
莒人愬于晉注+愬魯受牟夷 하니 晉侯欲止公한대
范獻子曰 不可하니이다
人朝而執之 誘也 討不以師하고 而誘以成之 注+[附注] 林曰 因人來朝而執之 是誘人而執之也니이다
爲盟主而犯此二者 無乃不可乎잇가
請歸之하고 而以師討焉注+間 暇也 하소서 하다
秋七月 公至自晉하다
[傳]莒人來討注+討受牟夷 호되 注+嫌君臣異故重發例
[傳]冬十月 楚子以諸侯及東夷伐吳하야 以報棘櫟麻之役注+役在四年 하다
以繁揚之師하야 會於夏汭注+會楚子 [附注] 林曰 薳射 楚大夫 하고 越大夫常壽過帥師會楚子于瑣注+瑣 楚地 하다
聞吳師出하고 薳啓彊帥師從之注+從吳師也호되 遽不設備하니 吳人敗諸鵲岸注+廬江舒縣有鵲尾渚 [附注] 林曰 忽遽不設戰守之備하다
楚子以馹至於羅汭注+馹傳也羅水名 하다
吳子使其弟蹶由犒師注+犒勞 하니 楚人執之하야 將以釁鼓注+[附注] 林曰 楚人將殺蹶由 以血塗釁軍鼓 하다
王使問焉曰 女卜來吉乎 對曰 吉하니이다
寡君聞君將治兵於敝邑하고 卜之以
余亟使人犒師하고 하야 以觀王怒之疾徐하야 而爲之備하노니 尙克知之注+言吳令龜如此 하노라
龜兆告吉曰 克可知也注+[附注] 林曰 灼龜而得吉兆 言其事必可豫知 卜龜之辭止此라하니이다
君若驩焉好逆使臣하야 注+休 解也 [附注] 하야 而忘其死注+[附注] 林曰 忘其死亡之禍 亡無日矣리이다
今君奮焉馮怒注+馮 盛也하야 虐執使臣하야 將以釁鼓하시니 則吳知所備矣리이다
敝邑雖羸이나 若早修完注+完器備 이면 其可以息師注+息楚之師 [附注] 林曰 其可禦楚 息止其師 難易有備注+[附注] 林曰 度事勢之難易 而有其備 可謂吉矣이니이다
且吳社稷是卜이오 豈爲一人이릿가
使臣獲釁軍鼓하야 而敝邑知備하야 以禦不虞 其爲吉孰大焉이릿가
國之守龜 注+言常卜 이릿가
一臧一否 其誰能常之릿가
城濮之兆 其報在邲注+城濮戰 楚卜吉 其效乃在邲 [附注] 林曰 僖二十八年 楚與晉戰城濮 卜得吉兆而師敗 其報效乃在於邲 戰邲 在宣十二年 하니 注+言吳有報楚意 릿가 乃弗殺하다
楚師濟於羅汭하니 沈尹赤會楚子하야 次於萊山하다
薳射帥繁揚之師하야 先入南懷하니 楚師從之하야 及汝淸注+南懷汝淸 皆楚界이나 吳不可入注+有備하다
楚子遂觀兵於坻箕之山注+觀 示也 하다
是行也 吳早設備ᄅ새 楚無功而還하야 以蹶由歸하다
楚子懼吳하야 使沈尹射待命于巢하고 薳啓彊待命于雩婁하니 禮也注+善有備 [附注] 林曰 楚靈王懼吳人報復 乃使沈尹射居巢邑 以待吳師奔命 又使薳啓彊居雩婁 以待吳師奔命 知難有備 得守國之禮
[傳]秦后子復歸於秦注+元年奔晉 하니 景公卒故也注+終五稔之言


5년 봄 주왕周王정월正月중군中軍철폐撤廢[舍]하였다.注+양공襄公 11년에 비로소 중군中軍설립設立하였다. [부주]林: 양공襄公 11년에 비로소 중군中軍설립設立하였는데 이때에 와서 철폐撤廢한 것이다. 〈이곳에 말한〉 ‘사중군舍中軍’과 〈정공定公 8년 에 말한〉 ‘종사선공從祀先公’은 모두 선사善辭(꾸며댄 말)이니, 국사國史가 없었다면 ‘사중군舍中軍’이 계씨季氏나라를 독점獨占하기 위해서이고, ‘종사선공從祀先公’이 양호陽虎계씨季氏제거除去하고서 국정國政전단專斷하기 위해서라는 것을 알 방법이 없었을 것이다.
나라가 그 대부大夫굴신屈申을 죽였다.注+이름을 기록하여 를 그에게 돌린 것이다.
소공昭公나라에 갔다.
여름에 나라의 모이牟夷모루牟婁방읍防邑자읍玆邑를 가지고 나라로 도망해 왔다.注+성양城陽평창현平昌縣 서남쪽에 방정防亭이 있고, 고막현姑幕縣 동북쪽에 자정玆亭이 있다. [부주]林: 모루牟婁나라의 세 이다.
가을 7월에 소공昭公나라에서 돌아왔다.
무신일戊辰日숙궁叔弓이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분천蚡泉에서 나라 군대를 패배敗北시켰다.注+분천蚡泉나라 땅이다.
진백秦伯하였다.注+이 없다. 이름을 기록하지 않은 것은 동맹국同盟國이 아니기 때문이다.
겨울에 초자楚子채후蔡侯진후陳侯허남許男돈자頓子심자沈子서인徐人월인越人나라를 토벌討伐하였다.注+[부주]林: 나라가 에 보이기 시작하였다. 나라의 대부大夫상수과常壽過를 ‘’으로 한 것은 나라가 갑자기 해졌기 때문이다. 나라를 통하여 나라를 피곤疲困하게 하려 한 것은 나라의 실책失策이고 나라를 통하여 나라를 피곤疲困하게 하려 한 것은 나라의 실책失策이다.
5년 봄 주왕周王정월正月중군中軍철폐撤廢하였으니, 이는 공실公室약화弱化시키기 위함이었다.注+중군中軍폐지廢止하고서 계손季孫은 〈그 군대를〉 좌사左師하고, 맹씨孟氏우사右師하고, 숙손씨叔孫氏는 스스로 숙손叔孫으로 군명軍名을 삼았다.
시씨施氏를 시켜 중군中軍훼철毁撤발의發議하게 하고 장씨臧氏를 시켜 그 논의論議완성完成하게 하였다.注+계손季孫은 직접 그 일을 논의論議하고자 하지 않아, 두 사람에게 하여 대부大夫들과 회의會議하여 훼철毁撤계획計劃발의發議하게 하여, 자기는 아름다운 명성名聲하려 한 것이다. [부주]林: 중군中軍훼철毁撤하자는 논의論議시씨施氏에게서 시작始作되어, 장씨臧氏에게서 이루어졌다는 말이다.
당초 삼군三軍편성編成할 때에 공실公室의 〈군대를〉 삼등분三等分하여 삼가三家가 각각 일분一分씩을 차지하고서注+삼가三家가 각각 일군一軍가속家屬소유所有한 것이다. , 계씨季氏는 〈자기 몫으로 돌아온 백성〉 모두에게 징병徵兵징세徵稅의무義務를 지우고注+공실公室납입納入하는 것이 없다. , 숙손씨叔孫氏자제子弟(壯丁)만을 가신家臣(家奴)으로 삼고注+부형父兄(老衰한 자)을 공실公室귀속歸屬시킨 것이다. , 맹씨孟氏는 절반만을 가신家臣으로 삼았었는데注+다시 자제子弟(壯丁)의 절반을 공실公室귀속歸屬시킨 것이다. , 중군中軍철폐撤廢함에 미쳐서는 공실公室의 군대를 사등분四等分하여 계씨季氏가 그중의 이분二分을 골라 하고注+골라서 이분二分한 것이다. , 이자二子는 각각 일분一分씩을 차지하고서, 모두에게 징세徵稅하여 그 일부를 공실公室공납貢納하였다.注+국인國人을 전부 삼가三家소속所屬시키고서 삼가三家수시隨時공실公室공납貢納할 뿐이다.
계손季孫은 “그대도 본래 중군中軍훼철毁撤하고자 하였지요.
이미 중군中軍훼철毁撤하였기 때문에 합니다.”는 내용의 글을 써서 두설杜洩에게 주어 숙손叔孫빈소殯所하게 하니注+숙손叔孫영구靈柩하게 하려 한 것이다. , 두설杜洩은 “부자夫子께서는 훼철毁撤하고자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희공僖公종묘宗廟에서 맹서盟誓하고 오보五父의 거리에서 저주詛呪한 것입니다.注+모두 양공襄公 11년 에 보인다. ”고 하고서 그 글을 받아 땅바닥에 던지고注+는 던지는 것이다. 가신家臣[士]들을 거느리고서 하였다.注+숙손叔孫무고誣告 당한 것을 원통冤痛해한 것이다.
숙중자叔仲子계손季孫에게 말하기를 “제가 자숙손子叔孫에게 을 받았는데注+[부주]林: 숙중자叔仲子는 바로 숙중대叔仲帶수우豎牛뇌물賂物을 받고서 계손季孫에게 두설杜洩중상中傷한 자이다., 그 에 ‘제명에 죽지 못한 사람을 송장送葬할 때는 상여喪輿서문西門으로 나간다고 하였습니다.注+수명壽命으로 죽지 못한 것을 ‘’이라 한다. 서문西門나라 조정朝廷정문正門이 아니다. ”고 하니, 계손季孫두설杜洩에게 그렇게 하라고 하자注+서문西門으로 나가도록 한 것이다. , 두설杜洩은 “상사喪事상여喪輿조문朝門으로 나가는 것이 나라의 입니다.注+생존시生存時조근朝覲하던 정로正路를 따라 나가는 것이다.
당신이 나라의 집정執政이 되어 개정改正한 적이 없는데, 또 를 바꾸니注+은 바꾸는 것이다. [부주]林: 그 을 바꾸는 것이다. , 군신群臣은 죽을까 두려워 감히 따르지 못하는 것입니다.注+는 따름이다. [부주]林: 군신群臣를 얻어 죽을 것을 두려워한다는 말이다. ”고 하고서 장사葬事를 마치고는 나라로 도망갔다.注+두설杜洩를 잘 피한 것을 훌륭하게 여긴 것이다.
중임仲壬나라에서 돌아오니注+을 듣고 온 것이다., 계손季孫은 그를 숙손씨叔孫氏후계자後繼者로 세우려 하였다.
남유南遺가 말하기를 “숙손씨叔孫氏[厚]해지면 계씨季氏[薄]해집니다.
수우豎牛가 실로 집안을 어지럽힐 것이니, 당신께서는 모른 체하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注+[부주]林: 〈수우豎牛가〉 숙손씨叔孫氏에게 화란禍亂을 끼칠 것이므로 실로 그 집안이 저절로 어지러워질 것임을 이른 것이다. ”라고 하였다.
남유南遺국인國人들에게 수우豎牛를 도와 대고大庫정원庭院으로 가서 중임仲壬공격攻擊하게 하였는데注+중임仲壬공격攻擊한 것이다. 나라 도성都城 안에 대정씨大庭氏폐허廢墟가 있는데, 그 위에 창고倉庫를 지은 것이다. , 사궁司宮이 활을 쏘니 중임仲壬은 그 화살에 눈을 맞고 죽었다.
수우豎牛는 동쪽 변방邊方성읍城邑 30개를 하여 남유南遺에게 주었다.注+숙손씨叔孫氏한 것이다.
소자昭子후계자後繼者의 자리에 올라 그 가중家衆조현朝見을 받으며 말하기를 “수우豎牛숙손씨叔孫氏에게 화란禍亂을 끼쳐 중대重大순리順理(大從)를 어지럽혀注+에 이르게 했다는 말이다. [부주]林: 소자昭子는 바로 숙손야叔孫婼이다. 의 자리에 올라 숙손叔孫가중家衆들의 조현朝見을 받으며 “수우豎牛숙손씨叔孫氏에게 를 끼쳐 중대重大화순和順도리道理를 어지럽혔다.”고 말한 것이다. 적자適子를 죽이고서 서자庶子를 세웠고, 또 우리의 봉읍封邑을 쪼개어 남유南遺에게 주어 를 용서받고자 하였으니注+(쪼갬)이니, 남유南遺에게 준 것을 이른다. 소자昭子수우豎牛가 자기 아버지를 굶겨 죽인 것은 몰랐다. 그러므로 단지 그의 드러난 만을 말한 것이다. [부주]林: 자기의 를 용서받기를 하려 한 것이다. , 이보다 큰 가 없다.
반드시 속히 그를 죽이라.”고 하니, 수우豎牛가 겁이 나서 나라로 도망가자, 맹병孟丙중임仲壬의 아들들이 새관塞關(邊境의 ) 밖에서 그를 죽여注+나라와 나라 국경國境에 있는 이다. [부주]林: 맹병孟丙중임仲壬의 아들들이다. 그 머리를 영풍寧風의 가시나무 위에 버렸다.注+영풍寧風나라 땅이다.
중니仲尼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논평論評하였다.
숙손소자叔孫昭子가 자기를 세워준 수우豎牛공로功勞를 생각지 않고 그를 죽인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注+자기를 세워준 것을 공로功勞로 여기지 않았다는 말이니, 그(昭子)가 말한 바에 의거해 그를 훌륭하게 여긴 것이다. 이때 노인魯人목자穆子아사餓死한 것을 소자昭子에게 말해 주지 않았다.
주임周任의 말에 ‘위정자爲政者는 사사로운 공로功勞보상報償하지 않고 사사로운 원한怨恨징벌懲罰하지 않는다.’고 하였고, 《시경詩經》에 ‘정직한 덕행德行이 있으면 사방의 나라가 순종順從한다.注+는 《시경詩經》 〈대아大雅억편抑篇〉의 시구詩句이다. 이다. 덕행德行정직正直하면 사방四方순종順從한다는 말이다.’고 하였다.”
당초當初목자穆子출생出生하였을 적에 장숙莊叔주역周易으로 점을 쳐서注+장숙莊叔목자穆子의 아버지 득신得臣이다.명이괘明夷卦注+하괘下卦이고 상괘上卦인 것이 명이明夷이다. 겸괘謙卦로 변한 를 만났다.注+하괘下卦이고 상괘上卦인 것이 이니, 명이明夷초구初九하여 겸괘謙卦가 된 것이다.
점괘占卦복인卜人초구楚丘에게 보이니注+초구楚丘복인卜人성명姓名이다. , 초구楚丘는 다음과 같이 풀이하였다.
“이 아이는 장차 출분出奔하였다가注+출분出奔이다. 돌아와서 당신을 위해 제사祭祀를 받들 것입니다.注+제사祭祀를 받든다는 말이다. [부주]林: 돌아와서 장숙莊叔제사祭祀를 받들 것이라는 말이다.
돌아올 때 참인讒人을 데리고 들어올 것인데注+[부주]林: 그가 돌아올 때 참소讒訴하고 아첨阿諂하는 사람과 함께 들어오게 될 것이라는 말이다. , 그자의 이름은 입니다.
이 아이는 끝내 이 자로 인해 굶어 죽게 될 것입니다.
명이明夷는 해이고注+이괘離卦태양太陽상징象徵하고 손상損傷이니, 태양太陽의 밝음이 손상損傷된 것이다. 해의 수는 입니다.注+갑시甲時부터 계시癸時까지이다.
그러므로 하루에 십시十時가 있으니 이 또한 사람의 열 등급等級위차位次해당該當합니다.
이하로 두 번째가 이고 세 번째가 이며注+일중日中(正午)은 해당該當하고, 식시食時(아침밥을 먹을 때)는 에 해당하고, 평단平旦(새벽)은 에 해당하고, 계명시雞鳴時에 해당하고, 야반夜半에 해당하고, 인정시人定時輿에 해당하고, 황혼黃昏에 해당하고, 일몰시日沒時에 해당하고, 포시晡時(申時)는 에 해당하고, 해가 기울 때는 에 해당한다. 동우東隅남우南隅의 중간에서 해가 돋을 때는 빼놓고 차례에 넣지 않은 것은 왕공王公을 높여 그 위차位次를 비워 둔 것이다. [부주]林: 천자天子이다. 천자天子는 지극히 존귀尊貴하기 때문에 성위盛位(最高의 지위地位)에 있고, 으로부터 내려오면서 제후諸侯천자天子보다 낮기 때문에 제이위第二位에 있고, 대부大夫제후諸侯보다 낮기 때문에 그 위차位次제삼위第三位에 있는 것이다. , 태양太陽최상위最上位중천中天에 이른 때로注+해가 중천中天에 이르면 크게 밝으므로 그것을 에 해당시킨 것이다. 에 해당하고,〉 조반朝飯을 먹을 때의 태양太陽이위二位에 해당하고注+지위地位이다. [부주]林: 아침밥을 먹을 때의 태양太陽이다. , 새벽의 태양太陽삼위三位에 해당합니다.注+지위地位이다.
명이괘明夷卦가 변하여 겸괘謙卦가 된 것은 날이 밝았으나 아직 완전히 밝지 않은 것이니, 아마 새벽(卿位)에 해당할 것입니다.注+(밝음)이다. 이괘離卦곤괘坤卦 밑에 있으니 해가 땅속에 있는 형상形象이고, 또 하여 겸괘謙卦가 되었으니 도리道理는 몸을 낮추고 겸양謙讓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밝았으나 아직 완전히 밝지 않았다.’고 하고, 해가 밝았으나 완전히 밝지 않았기 때문에 ‘아마도 새벽(卿位)에 해당할 것이다.’고 한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을 위해 제사祭祀를 받들 것이다.注+장숙莊叔이다. 숙손표叔孫豹이 될 것을 예측豫測[卜]하였기 때문에 장숙莊叔제사祭祀를 받들 것을 안 것이다. ’고 한 것입니다.
해(離)가 변하여 이 된 것은 새[鳥]에 해당하기 때문에 효사爻辭에 ‘명이明夷가 난다.注+는 해를 상징象徵하기도 하고, 새를 상징象徵하기도 한다. 이괘離卦가 변하여 겸괘謙卦가 되어 일광日光부족不足하기 때문에 새에 해당하고, 새는 날아다니기 때문에 ‘난다’고 한 것이다. ’고 하였고, 날이 밝았으나 아직 완전히 밝지 않았기 때문에 ‘날개를 늘어뜨렸다.注+해에 있어서는 아직 완전히 밝지 않은 것이 되고, 새에 있어서는 날개를 늘어뜨린 것이 된다. ’고 하였고,
명이明夷초구初九는〉 해의 움직임을 상징象徵하였기 때문에 ‘군자君子가 떠나간다.注+명이明夷초구初九가 제자리를 얻어 응대應對가 있으니, 군자君子이다. 밝음이 손상된 세상에 있고 겸하謙下의 자리에 있기 때문에 장차 을 피해 출분出奔[行]할 것을 안 것이다. ’고 하였고, 제삼위第三位인 새벽에 해당하기 때문에 ‘3일 동안 먹지 못한다.注+새벽의 위차位次가 세 번째이고, 또 아침밥을 먹을 때가 아니기 때문에 “삼일三日을 먹지 못한다.”고 한 것이다. ’고 한 것입니다.
이고 입니다.
가 되었으니 을 태우면 패괴敗壞(破壞)됩니다.注+이괘離卦간괘艮卦합체合體이기 때문이다.
이 사람에 있어서는 언어言語가 되는데注+이 〈사람에 있어서는〉 언어言語가 된다. , 남을 패괴敗壞하는 말이 참언讒言입니다.注+(火)에 태워졌기 때문에 ‘’라고 말한 것이다.
그러므로 효사爻辭에 ‘가는 곳이 있으면 주인主人이 말을 한다.’고 하였으니, 이 말은 반드시 참언讒言입니다.注+이괘離卦가 변하여 간괘艮卦가 되었기 때문에 ‘유소왕有所往’이라 말하고, 가서 태워짐을 당하기 때문에 ‘주인主人의 말이 있다.’고 하고, 말로 인해 패괴敗壞되기 때문에 ‘반드시 참언讒言이다’고 한 것이다.
순리純離(上下卦가 모두 이괘離卦인 것)가 인데注+에 “상괘上卦이고 하괘下卦인 것이 이괘離卦이다. 암소를 기르는 것이 하다.”고 하였기 때문에 ‘순리純離이다.’고 말한 것이다. , 세상이 어지러우면 참언讒言승리勝利하고 승리勝利하면 〈이 도로 로〉 돌아가기 때문에 ‘그 이름이 이다.注+(火)가 을 태우면 승리勝利하는 것이니, 세상世上이 어지러우면 참언讒言승리勝利한다는 것을 비유한 것이다. 이 불에 타면 만이 남기 때문에 이름이 일 것을 안 것이다. 수우豎牛는 암소가 아니기 때문에 불길不吉한 것이다. ’고 한 것입니다.
부족不足이므로 날되 멀리 날지 못하고注+도리道理충퇴沖退(謙遜)이기 때문에 날아도 멀리 날지 못하는 것이다. [부주]林: 도리道理겸퇴謙退(謙讓)를 근본으로 삼기 때문에 겸손하여 만족하게 행동하지 않는다. 가 새가 되어 겸손謙遜하기 때문에 멀리 날지 못하는 것이다. , 날개를 늘어뜨렸으므로 멀리 날지 못하는 것입니다.注+은 높이 드는 것이다. 날개를 늘어뜨렸기 때문에 광원廣遠하게 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마도 당신의 후계자後繼者가 될 것이다.注+멀리 날 수 없기 때문에 멀리 가지 못할 것을 안 것이다. ’고 한 것입니다.
당신이 아경亞卿이니 〈이 아이도 아경亞卿이 되겠지만〉 이 아이[少]는 제명에 죽지 못할 것입니다.注+단일旦日정경正卿위차位次인데, 장숙莊叔부자父子는 대대로 아경亞卿이었으니, 지위地位괘체卦體의 뜻에 맞기에는 부족不足하다. 대체로 위의 말을 이끌어 이렇게 말한 것인 듯하다.
초자楚子굴신屈申이 두마음을 품고 나라와 내통內通한다 하여, 그를 죽이고注+두마음을 품었다고 날조捏造[造生]한 것이다.굴생屈生막오莫敖로 삼아注+굴생屈生굴건屈建의 아들이다. 영윤令尹자탕子蕩과 함께 나라로 가서 진녀晉女를 맞이해 오게 하였다.
이들이 나라를 지나자, 정백鄭伯에서 자탕子蕩위로慰勞하고 토씨菟氏에서 굴생屈生위로慰勞하였다.注+토씨菟氏는 모두 나라 땅이다. [부주]林: 두 사자使者를 따로 위로慰勞하여 공경恭敬을 다한 것이다.
진후晉侯형구邢丘까지 가서 딸을 전송餞送하니, 자산子産정백鄭伯보좌輔佐형구邢丘로 가서 진후晉侯회합會合하였다.注+전문傳文나라가 하여, 제후諸侯가 그 사자使者외경畏敬(尊敬)한 것을 말한 것이다.
소공昭公나라에 가서注+소공昭公즉위卽位한 뒤에 나라에 가서 진후晉侯조현朝見한 것이다.교로郊勞에서 증회贈賄 때까지注+올 때에는 교로郊勞가 있고, 돌아갈 때에는 증회贈賄가 있다. 를 잃음이 없으니注+읍양揖讓이다. , 진후晉侯여숙제女叔齊에게 “노후魯侯에 뛰어나지 않은가?”라고 하자, 여숙제女叔齊가 “노후魯侯가 어찌 를 알겠습니까?”라고 대답하였다.
진평공晉平公이 “어째서 그리 말하는가?
교로郊勞에서 증회贈賄 때까지 에 어긋난 것이 없는데, 어째서 를 모른다고 하는가?”라고 하니, 여숙제女叔齊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이는 의식儀式이니 라고 할 수 없습니다.
는 나라를 지키고 정령政令(政權을 뜻함)을 하여 백성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나라는 정령政令삼가三家수중手中에 있는데도注+정권政權대부大夫수중手中에 있다는 말이다. 회수回收하지 못하고, 자가기子家羈 같은 현자賢者가 있는데도 등용登用하지 못하고注+자가기子家羈장공莊公현손玄孫의백懿伯이다. , 대국大國과 맺은 맹약盟約을 어기고서 소국小國능멸陵蔑학대虐待하고注+나라를 토벌하여 운읍鄆邑한 것을 이른다. , 남의 화난禍難을 자기의 이익利益으로만 여기고注+작년에 나라가 혼란混亂할 때 한 것을 이른다. 자기에게 화란禍亂이 닥칠 줄은 모릅니다.注+자기 개인個人에게 화난禍難이 생길 것은 모른다는 말이다.
공실公室이 넷으로 쪼개져서 백성들은 저들(三家)의 도움으로 의식衣食함으로注+삼가三家를 이른다. 노군魯君의 〈처지處地가〉 백성과 다름이 없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임금을 생각하는 자가 없는데도 노후魯侯는 앞으로 닥칠 결과結果[其終]를 생각하지 않고注+소공昭公을 위해 종시終始를 생각하는 자가 없다는 말이다. [부주]林: 군신群臣의 생각이 공가公家에 있지 않다는 말이다. , 나라의 임금이 되어 화난禍難이 몸에 미치려 하는데도 자기의 지위地位[其所]를 걱정하지 않습니다.注+[부주]林: 자기가 멈출 곳을 걱정할 줄을 모른다는 말이다.
본말本末이 여기(守國‧행정行政무실민無失民)에 있는 것인데도注+본말本末휼민恤民우국憂國에 있다는 말이다. , 부지런히 의식儀式만을 익히기에 급급하니注+의식儀式을 익히는 것을 급무急務로 삼는다는 말이다. 에 뛰어나다는 말이 〈실제實際와〉 거리가 멀지 않습니까?”
군자君子는 “여숙제女叔齊가 이처럼 를 알았다.注+이때 진후晉侯정권政權상실喪失하였기 때문에 여숙제女叔齊가 이 말로 넌지시 한 것이다. ”고 논평論評하였다.
나라 한선자韓宣子(韓起)가 진녀晉女호송護送나라로 갈 때 숙향叔向개사介使였는데, 나라 자피子皮(罕虎)와 자태숙子太叔(游吉)이 색씨索氏에서 이들을 위로慰勞하였다.注+하남河南성고현城臯縣 동쪽에 대색성大索城이 있다. [부주]林: 두 사람이 나라를 지나기 때문에 나라의 두 사람이 색씨索氏의 땅에서 이들을 맞이해 위로慰勞한 것이다.
태숙太叔숙향叔向에게 말하기를 “초왕楚王태치汰侈(驕慢放恣)가 너무 심하니 그대는 그를 경계警戒하십시오.”라고 하니, 숙향叔向이 말하기를 “태치汰侈가 너무 심한 것은 그 자신의 재난災難이니 어찌 남에게 미칠 수 있겠습니까?
만약 우리의 폐백幣帛을 바칠 때 우리의 위의威儀를 삼가서 신의信義를 지키고, 예의禮儀를 행하여 시작을 신중愼重히 하여 좋은 결말結末[終]이 있기를 생각하면 앞으로[終] 다시 행할 수 없지 않을 것이고注+일을 모두 다시 행할 수 있다는 말이다. ,
순종順從하되 예의禮儀를 잃지 않고注+이다. 공경恭敬하되 위의威儀를 잃지 않으며, 선왕先王훈사訓辭인도引導하고 구법舊法으로 받들어 섬기며, 선왕先王을 상고하고注+선왕先王로써 두 나라 사이의 우호友好를 이루는 것이다. 두 나라의 형세形勢를 헤아려注+나라와 나라의 형세를 헤아려 행사行事하는 것이다. 처신處身한다면〉 저가 비록 태치汰侈하다 하더라도 우리를 어찌하겠습니까?”라고 하였다.
나라에 당도當到하자, 초자楚子가 그 대부大夫들을 조정朝廷으로 불러 말하기를 “나라는 나의 원수怨讐이니, 만약 내가 뜻한 바를 이룰 수만 있다면 다른 것은 돌아보지 않겠다.
지금 나라에서 온 자가 상경上卿상대부上大夫이니注+[부주]林: 지금 나라의 사자使者진녀晉女호송護送나라에 온 한기韓起상경上卿이고, 숙향叔向상대부上大夫라는 말이다. , 내가 한기韓起혼인閽人(守門人)으로 삼고注+월족刖足하여 문지기를 시킨다는 말이다. 양설힐羊舌肸사궁司宮으로 삼는다면注+궁형宮刑하는 것이다. 나라에 치욕恥辱을 안겨 주기에 충분하고 나 또한 뜻한 바를 이룰 수 있으니, 그래도 되겠는가?”라고 물으니, 대답하는 대부大夫가 없었다.
위계강薳啓彊이 말하기를 “그리하셔도 됩니다.
진실로 그에 대한 대비對備가 있다면 안 될 게 뭐 있겠습니까?注+[부주]林: 진실로 나라를 대적對敵[待]할 만한 선비先備(豫備)가 있다면 나라에 치욕恥辱을 끼치는 일이 불가不可할 게 뭐 있겠느냐는 말이다.
필부匹夫에게 치욕恥辱을 안겨 주는 데도 대비對備가 없을 수 없는데 더구나 한 나라에 치욕恥辱을 안겨 주는 데이겠습니까?
그러므로 성왕聖王하는 데 힘썼고 남에게 치욕恥辱을 안겨 주기를 추구追求하지 않았습니다.
조빙朝聘에는 가 있고注+로써 신표信標를 삼는다. , 향조享覜에는 이 있었으며注+이고 는 만나 보는 것이다. 조현朝見이나 빙문聘問을 마치고서 향연饗宴에서 서로 만나 보는 것이다. 신하臣下가 임금을 위해 사신使臣으로 가면 손에 을 잡는다. , 소국小國술직述職이 있고注+제후諸侯천자天子에게 가는 것을 술직述職이라 한다. , 대국大國순공巡功이 있었으며注+천자天子순수巡守하는 것을 순공巡功이라 한다. , 설치設置하였으되 기대지 않고, 잔에 술이 가득하되 마시지 않았으며注+하는 데 힘썼다는 말이다. [부주]林: 조례朝禮빙례聘禮설치設置하고 잔을 올릴 때가 있다. 조례朝禮는 비록 없어졌으나 빙례聘禮는 그 대략大略이 남아 있다. 《예기禮記》 〈빙의聘義〉에 “빙례聘禮사례射禮는 지극히 중대重大이다. 날이 새려 할 때 행사行事를 시작하여 거의 정오正午가 된 뒤에 가 끝나니, 체력體力한 자가 아니면 할 수 없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를 설치하였으되 기대지 않는다. 술이 싸늘하게 식었으므로 사람이 목이 말라도 감히 마시지 않고, 고기가 썩었으므로 사람이 배가 고파도 감히 먹지 않는다. 그러므로 잔에 술이 가득하되 마시지 않는 것이다. , 연향宴享에는 호화好貨가 있고注+잔치를 열어 술을 마실 때 재화財貨로써 우호友好하는데, 에게 없는 의복衣服이나 거마車馬를 준다. , 익힌 음식을 먹을 때는 추가追加하였으며注+익힌 음식을 이라 한다. 추가追加하는 것이니, 추가追加하는 것은 후대厚待하여 은근殷勤(깊은 )함을 보이기 위함이다. , 들어올 때는 교로郊勞가 있고注+도착到着하면 교외郊外에서 그를 영접迎接하여 위로慰勞한다. , 나갈 때는 증회贈賄가 있었으니注+이 돌아가면 그에게 재화財貨를 준다. , 예의禮儀가 지극하였습니다.
국가國家패망敗亡은 이런 도리道理상실喪失하여 화난禍難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注+조빙朝聘연호宴好의 도리를 잃은 것이다.
성복城濮전쟁戰爭注+성복城濮전쟁戰爭희공僖公 28년에 있었다. 나라가 승리勝利하였으나,〉 나라를 대비對備하지 않아서 에서 패배敗北하였고注+패전敗戰선공宣公 12년에 있었다. 병화兵禍성복城濮에서 비롯했음을 말한 것이다. , 전쟁戰爭에 〈나라가 승리勝利하였으나,〉 나라를 대비對備하지 않아 언릉鄢陵에서 패배敗北하였습니다.注+언릉鄢陵패전敗戰성공成公 16년에 있었다.
언릉鄢陵전쟁戰爭 이후로 나라는 대비對備소홀疎忽히 하지 않았고, 상규常規 이상의 나라를 대우待遇하고, 거듭 나라에 화목和睦하게 지내기를 하였습니다.注+군신君臣화목和睦한 것이다.
그러므로 나라는 〈언릉鄢陵패배敗北를〉 보복報復하지 않고 혼인婚姻을 맺어 친척親戚이 되기를 요구要求했던 것입니다.
이미 혼인婚姻하여 친척親戚이 되었는데, 또 그들에게 치욕恥辱을 안겨 원수怨讐가 되기를 자초自招하시니, 저들을 어떻게 방비防備하실 생각이십니까?注+어떻게 방비防備하겠느냐는 말이다.
누가 있어 이 일을 담당擔當[重]하겠습니까?注+원한怨恨이 깊다는 말이다.
만약 〈나라를 대적對敵할 만한〉 사람이 있다면 치욕恥辱을 안겨 주어도 좋겠습니다만注+현인賢人이 있어서 나라를 대적對敵할 수 있다면 나라에 치욕恥辱을 안겨 주어도 좋다는 말이다. 만약 그런 사람이 없다면 임금님 또한 깊이 생각하소서.
나라가 임금님(楚王)을 잘 섬기고 있다고 생각합니다.注+[부주]林: 나라가 굴복屈伏나라를 섬기니, 〈나라가 나라의〉 신하臣下라고 말해도 좋다는 말이다.
제후諸侯회합會合요구要求하자 일제히 몰려왔고注+이다. [부주]林: 소공昭公 4년에 에서 회합會合하기 위해, 나라가 제후諸侯에게 회합會合참여參與하기를 요구要求하자, 제후諸侯가 무리 지어 몰려온 것을 이른다. , 혼인婚姻요구要求하자 딸을 바치면서注+(바침)이다. 진군晉君이 직접 전송餞送하고 상경上卿상대부上大夫호송護送해 와서 인계引繼[致之]하였습니다.
그런데도 오히려 저들에게 치욕恥辱을 안겨 주려 하시니, 임금님께서는 아마도 저들에 대한 대비책對備策이 있으신 모양입니다.
만약 대비책對備策이 없으시다면 나라의 보복報復을 어찌 막을 수 있겠습니까?注+[부주]林: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나라를 어찌 대적對敵하겠느냐는 말이다.
한기韓起의 밑에 있는 조성趙成중항오中行吳위서魏舒범앙范鞅지영知盈注+오경五卿지위地位한기韓起의 아래이니, 모두 삼군三軍장좌將佐이다. 조성趙成조무자趙武子의 아들이고 중항오中行吳순언荀偃의 아들이다. , 양설힐羊舌肸 밑에 있는 기오祁午장적張趯적담籍談여제女齊양병梁丙장격張骼보력輔躒묘분황苗賁皇은 모두 제후諸侯신하臣下 중에 뛰어난 자들이며注+범상凡常한 사람이 아니라는 말이다. , 공족대부公族大夫로 있는 한양韓襄을 받고 출사出使한수韓須注+한양韓襄한무기韓無忌의 아들로 공족대부公族大夫가 되었고. 한수韓須한기韓起의 아들로 나이는 비록 어리지만 이미 출사出使책무責務를 맡았다. 기양箕襄형대邢帶注+두 사람은 한씨韓氏족속族屬이다. 叔禽‧숙초叔椒자우子羽注+모두 한기韓起서자庶子이다. 모두 대가大家이며, 한씨韓氏부세賦稅징수徵收하는 일곱 성읍城邑은 모두 성현成縣(大縣)이고注+성현成縣병거兵車백승百乘을 낼 수 있는 이다. [부주]林: 한양韓襄한기韓起의 아들이고, 기양箕襄형대邢帶 두 사람은 한씨韓氏족속族屬이고, 한수韓須숙금叔禽숙초叔椒자우子羽 네 사람은 다 한기韓起의 아들이다. 모두 일곱 사람이 한 씩을 맡은 것이다. , 양설씨羊舌氏의 네 종족宗族은 모두 강가彊家(强盛한 가문家門)입니다.注+사족四族동제銅鞮백화伯華숙향叔向, 숙어叔魚, 숙호叔虎형제兄弟 등 4을 이른다. [부주]林: 모두 백승百乘대부가大夫家이다.
진인晉人이 만약 한기韓起양힐楊肸을 잃는다면 오경五卿팔대부八大夫注+오경五卿조성趙成과 그 이하 네 사람을 이르고, 팔대부八大夫기오祁午와 그 이하 일곱 사람을 이른다. [부주]林: 양힐楊肸은 바로 숙향叔向이다. 본래 양설씨羊舌氏였는데 양읍楊邑채지采地로 받았기 때문에 양힐楊肸로 불리기도 한다. 한수韓須양석楊石을 도와注+양석楊石숙향叔向의 아들 식아食我이다. , 그 십가十家가 〈통치統治하는〉 구현九縣注+한씨韓氏가 일곱이고, 양설씨羊舌氏가 넷인데, ‘십가十家’라고 한 것은 대수大數를 들어 말한 것이다. 양설씨羊舌氏사가四家이현二縣공유共有하였기 때문에 단지 ‘강가彊家’라고만 말한 것이다. 장곡長轂(兵車) 9백 注+장곡長轂융거戎車이다. 일현一縣융거戎車가 1백 씩이다. 그 밖의 40유수遺守(남아서 지킴)하는 병거兵車 4천 을 이용하여注+남아서 나라를 지키는 융거戎車계산計算하면 아직 4천 이 있다. 무용武勇분노憤怒를 떨쳐 큰 치욕恥辱보복報復하려 할 것입니다.
백화伯華계책計策을 내고注+백화伯華숙향叔向이다. 중행백中行伯위서魏舒가 군대를 거느린다면注+중행백中行伯중항오中行吳이다. 아마도 성공成功하지 못함이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임금님께서는 친척親戚원수怨讐[易]하게 하려 하시니注+혼인婚姻친척親戚 사이에 불화不和하는 것이다. , 이는 실로 무례無禮행위行爲원수怨讐를 불러들이는 일입니다.
대비책對備策도 없이 군신群臣을 전쟁에 내보내어 저들의 포로捕虜가 되게 하고도 임금님의 마음이 만족滿足하시다면注+[부주]林: 나라 군신群臣이 가서 나라를 대적對敵하다가 포로捕虜로 잡혀 가더라도 초군楚君의 마음에 만족滿足하다면 〈나라에 치욕恥辱을 안겨 주는 일을 해도 안 될 것이 없다.〉는 말이다. 불가不可할 게 뭐 있겠습니까?注+[부주]林: ‘무엇이 불가不可함이 있겠느냐?’고 반어법反語法사용使用한 것은 그것이 매우 불가不可하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라고 하니, 초왕楚王은 “이는 나의 잘못이니, 대부大夫는 수고하지 말라.注+위계강薳啓彊에게 사과謝過한 것이다. ”고 하고서, 한기韓起를 위해 예물禮物하게 주었다.
초왕楚王숙향叔向이 모르는 일을 물어 그를 조롱嘲弄[敖]하려 하였으나, 조롱嘲弄할 수가 없으니注+숙향叔向지식知識이 많음을 말한 것이다. [부주]朱: 초왕楚王숙향叔向이 모르는 일을 문난問難(따져 묻고 논박論駁함)하여 그를 조롱嘲弄하며 즐기고자 하였으나, 초왕楚王이 묻는 것에 숙향叔向은 모르는 것이 없었다. , 그에게도 예물禮物하게 주었다.
한기韓起가 돌아갈 때 정백鄭伯에서 그를 위로慰勞하려 하자注+나라 땅의 이름이다., 한기韓起는 사양하고 정백鄭伯알현謁見하지 않았으니, 에 맞았다.注+군명君命을 받들고 출사出使하여 〈사명使命완수完遂하고서 돌아와〉 반명反命(復命)하기 전이기 때문이다.
나라 한호罕虎나라에 가서 자미씨子尾氏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였다.注+자기를 위해 아내를 맞이한 것이다.
안자晏子가 그를 자주 찾아보자注+[부주]林: 자주 찾아가서 자피子皮를 만나 본 것이다. 진환자陳桓子가 그 까닭을 물으니, 안자晏子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선인善人을 잘 등용登用하니 백성百姓주인主人이기 때문입니다.注+자산子産에게 정권政權을 넘겨준 것을 이른다.
여름에 나라의 모이牟夷모루牟婁방읍防邑자읍玆邑을 가지고 나라로 도망해 왔다.
모이牟夷이 아닌데도 에 그 이름을 기록한 것은 땅을 중시重視한 것이다.注+이다. 땅을 중시重視했기 때문에 이름을 기록한 것이다. 그 사람은 끝내 불의不義를 행한 사람이 되었다.
거인莒人이 이 일을 나라에 고소告訴하니注+나라가 모이牟夷접수接收한 것을 고소告訴한 것이다. , 진후晉侯노소공魯昭公억류抑留하려 하였다.
그러자 범헌자范獻子가 말하기를 “옳지 않습니다.
남이 조현朝見하기 위해 왔는데 그를 잡는 것은 유인誘引이고, 토벌討伐하는 데 군대를 사용使用하지 않고 유인誘引하여 목적目的달성達成하는 것은 태만怠慢입니다.注+[부주]林: 사람이 조현朝見하기 위해 온 기회機會를 이용해 그 사람을 잡는 것은 바로 사람을 오도록 유인誘引하여 잡는 것과 같다는 말이다.
맹주盟主가 되어 이 두 가지를 한다면 불가不可하지 않습니까?
그를 돌려보내시고 여가餘暇가 있을 때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토벌討伐하소서.注+여가餘暇이다. ”라고 하니, 진후晉侯는 이에 소공昭公을 돌려보냈다.
가을 7월에 소공昭公나라에서 돌아왔다.
거인莒人이 와서 나라를 토벌討伐하되注+모이牟夷를 받아들인 것을 〈로 삼아 나라를〉 토벌討伐한 것이다.방비防備설치設置하지 않자, 무신일戊辰日숙궁叔弓거인莒人분천蚡泉에서 패배敗北시켰으니, 이는 거인莒人을 치지 않았기 때문이다.注+군신君臣가 다른 것으로 의심할까 우려憂慮했기 때문에 거듭 를 드러낸 것이다.
겨울 10월에 초자楚子제후諸侯동이東夷의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오인吳人에 쳐들어왔던 전쟁戰爭보복報復하려 하였다.注+전쟁戰爭소공昭公 4년에 있었다.
위석薳射번양繁揚의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하예夏汭에서 초자楚子회합會合하고注+초자楚子회합會合한 것이다. [부주]林: 위석薳射나라 대부大夫이다. , 나라 대부大夫상수과常壽過는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에서 초자楚子회합會合하였다.注+나라 땅이다.
오군吳軍출동出動했다는 말을 듣고 위계강薳啓彊이 군대를 거느리고 추격追擊하되注+오군吳軍추격追擊한 것이다. , 급한 나머지 미처 방비防備설치設置하지 않으니, 오인吳人위계강薳啓彊의 군대를 작안鵲岸에서 패배敗北시켰다.注+여강廬江서현舒縣작미저鵲尾渚가 있다. [부주]林: 갑작스럽고 급하여 전수戰守방비防備설치設置하지 않은 것이다.
초자楚子일거馹車를 타고 나예羅汭당도當到하였다.注+(驛站)이고, 수명水名이다.
오자吳子가 그 아우 궐유蹶由를 보내어 초군楚軍호궤犒饋하니注+군대에게 음식을 주어 위로慰勞하는 것이다., 초인楚人이 그를 잡아 흔고釁鼓하려 하였다.注+[부주]林: 초인楚人궐유蹶由를 죽여 피를 받아 군고軍鼓에 바르려 한 것이다.
초왕楚王궐유蹶由에게 사람을 보내어 “네가 이곳에 오는 것을 치니 하였느냐?”고 물으니, 궐유蹶由가 대답하기를 “하였습니다.
우리 임금님은 초왕楚王께서 우리나라에 무력武力행사行使하려 한다는 말을 듣고서 수귀守龜을 치며 수귀守龜에게 하기를
‘내가 급히 사람을 보내 초군楚軍호궤犒饋하며 사기師期를 묻고, 초왕楚王분노憤怒가 크냐 작으냐를 살피고 돌아오게 하여, 그에 상응相應대비책對備策을 세우려 하니 길흉吉凶을 알려 주기 바란다.注+오왕吳王귀갑龜甲에 이와 같이 하였다는 말이다. ’고 하니,
귀갑龜甲길조吉兆를 알려 ‘승리勝利할 것을 알 수 있다.注+[부주]林: 귀갑龜甲을 불에 구어 길조吉兆를 얻은 것이다. 그 일을 반드시 미리 알 수 있다는 말이니, 복구卜龜(龜兆에 나타난 점사占辭인 듯함)의 말이 여기에서 끝났다. ’고 하였습니다.
초왕楚王께서 만약 즐거운 마음으로 사신使臣을 반갑게 맞으시어, 우리나라 사람들을 해타懈惰하게 만들어注+(게으름)이다. [부주]林: 초군楚君이 만약 즐거운 마음으로 사신使臣영접迎接한다면 오인吳人은 반드시 초왕楚王분노憤怒가 크지 않다고 여길 것이니, 이것이 바로 오인吳人해태懈怠증가增加시켜 위태危殆롭게 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사망死亡위험危險망각忘却하게 한다면注+[부주]林: 오인吳人사망死亡화난禍難망각忘却하는 것이다. 우리 나라는 오래지 않아 멸망滅亡할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께서는 크게 하시어注+이다. 모질게 사신使臣을 잡아 흔고釁鼓하려 하시니, 나라는 대비對備할 바를 알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비록 하지만 조기早期성곽城郭수선修繕하고 무기武器완비完備한다면注+기비器備(器具)를 완전히 갖추는 것이다. 초군楚軍을 막을 수 있으니注+나라 군대를 막는 것이다. [부주]林: 초군楚軍방어防禦하여 그 군대를 저지沮止할 수 있다는 말이다. , 환난患難이 있을 때나 태평泰平할 때를 막론하고 모두 대비對備하게 된다면注+[부주]林: 사세事勢난이難易를 헤아려 그에 대한 방비防備를 한다는 말이다. 이 이곳에 온 것이〉 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 나라가 을 친 것은 국가國家길흉吉凶친 것이지, 어찌 한 개인個人길흉吉凶을 점친 것이겠습니까?
가령 의 피가 군고軍鼓에 칠해져서 우리나라가 대비對備할 바를 알아 의외意外사태事態를 막을 수 있다면 이보다 큰 이 어디 있겠습니까?
국가國家수귀守龜는 무슨 일인들 그 길흉吉凶예측豫測[卜]하지 못하겠습니까?注+항상 을 친다는 말이다.
그러나 한번 하면 한번 한 것이니 누가 그 이 항상 한 가지 일에만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성복城濮전쟁戰爭나라 길조吉兆는 그 응험應驗[報]이 전쟁戰爭에 드러났으니注+성복城濮전쟁戰爭나라의 하였으나, 그 효험效驗전쟁戰爭에 나타났다. [부주]林: 희공僖公 28년에 나라가 나라와 성복城濮에서 전쟁戰爭할 때 점을 쳐서 점괘占卦를 얻었으나 패전敗戰하였고, 그 보응報應효험效驗전쟁戰爭에서 드러났다는 말이다. 전쟁戰爭선공宣公 12년에 있었다. , 이번에 이 올 때 얻은 길점吉占도 그 응험應驗이 우리나라가 뜻을 얻는 것으로 드러나지 않겠습니까?注+나라는 나라에 보복報復할 뜻이 있다는 말이다. ”라고 하니, 초왕楚王은 그를 죽이지 않았다.
초군楚軍나예羅汭에서 도하渡河하니, 심윤沈尹초자楚子회합會合하여 내산萊山주둔駐屯하였다.
위석薳射번양繁揚의 군대를 거느리고 먼저 남회南懷진입進入하니 초군楚軍이 그 뒤를 따라 여청汝淸까지 갔으나注+남회南懷여청汝淸은 모두 나라와 나라의 경계境界에 있는 땅이다. , 오군吳軍방비防備가 있어 더 진입進入할 수 없었다.注+나라에 방비防備가 있기 때문이다.
초자楚子는 드디어 지기산坻箕山에서 군대를 사열査閱하여 병력兵力과시誇示하였다.注+은 보임이다.
이번 출정出征나라가 일찍 방비防備설치設置하였으므로 초군楚軍을 세우지 못하고 환군還軍하면서 궐유蹶由를 데리고 돌아왔다.
초자楚子오군吳軍이 보복할 것을 우려憂慮하여 심윤沈尹에게 에서 을 기다리게 하고, 위계강薳啓彊에게 우루雩婁에서 을 기다리게 하였으니, 에 맞았다.注+미리 방비防備한 것을 훌륭하게 여겨 〈에 맞았다고 한 것이다.〉 [부주]林: 초영왕楚靈王오군吳軍보복報復할 것을 두려워하여 심윤沈尹으로 하여금 소읍巢邑주둔駐屯[居]하여 오군吳軍출동出動하기를 기다려 분명奔命(出戰)하게 하고, 또 위계강薳啓彊으로 하여금 우루雩婁주둔駐屯하여 오군吳軍출동出動하기를 기다려 분명奔命하게 한 것이다. 외난外難이 있을 것을 알고서 방비防備를 두었으니 나라를 지키는 를 얻은 것이다.
나라 후자后子나라로 복귀復歸하였으니注+소공昭公원년元年나라로 출분出奔하였다., 이는 진경공秦景公하였기 때문이다.注+5년이란 말이 들어맞았다. 〈소공昭公원년元年에 ‘5년을 넘기지 못하는 경우가 드물다.’고 한 후자后子의 말을 이름〉


역주
역주1 從祀先公 : 從은 順이고 先公은 閔公과 僖公이다. 文公 2년에 僖公의 神主를 閔公의 神主 위로 올려 그 位次를 바꾸어 逆祀하던 것을 이번에 바로잡아 그 順序에 따라 閔公에게 먼저 祭祀하고 僖公에게 뒤에 祭祀한 것이다. 〈文公 2년 傳과 定公 8년 傳을 參考할 것〉
역주2 : 叔孫의 家臣이다. 《左氏會箋》
역주3 自朝 : 朝는 朝門으로 國都의 正門인 南門이다.
역주4 不敢自也 : 自는 從이다. 不敢從은 正式으로 國家에서 法을 고친 적이 없는데, 마음대로 법을 바꾸어 西門으로 나가라고 하니, 季孫의 命을 따른다면 後日에 法을 어긴 罪에 걸릴 것이 두려워 감히 命을 따를 수 없다는 말이다.
역주5 林曰謂叔孫氏實其家白亂 : 이 林注는 《四庫全書左傳杜林合注》本에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白亂의 白은 自의 誤字가 아닌지 모르겠다.
역주6 大庫之庭 : 杜注를 따르면 ‘大庭氏의 倉庫’로 번역해야 하지만, 傳文에 따라 大庫의 庭院으로 번역하였다.
역주7 歸爲子祀 : 돌아와서 後繼者가 된다는 말이다.
역주8 卒以餒死 : 끝내 牛로 인해 餓死한다는 말이다.
역주9 日明傷 : 彖傳에 ‘밝음(太陽)이 地中으로 들어간 것이 明夷이다.’고 하였으니, 太陽이 땅속에 있어 빛이 밖으로 發散되지 않으면 밝음이 손상된다. 《左氏會箋》
역주10 日之數十 : 古代에는 하루를 열 時間으로 나눈 듯하다.
역주11 明夷于飛 : 明夷卦初九爻辭에 “明夷于飛垂其翼君子于行三日不食有攸往主人有言”이라 하였다. 離는 새이고 艮은 山이니, 새가 산 위를 나는 형상이 있기 때문에 ‘明夷于飛’라고 한 것이다.
역주12 居謙下之位 : 〈正義〉에 “卦에는 六位가 있는데, 初爻三爻五爻는 奇數로 陽의 자리이고, 二爻四爻上爻는 耦數로 陰의 자리이다. 初爻와 四爻, 二爻와 五爻, 三爻와 上爻가 서로 마주치는 것이 서로 應對하는 것이다. 陽이 求하는 相對는 陰이고, 陰이 구하는 相對는 陽이니, 陽과 陰이 서로 마주치는 것은 應對가 있는 것이고, 陰와 陰이 서로 마주치는 것은 應對가 없는 것이다. 明夷의 初九는 陽爻로서 奇數의 자리에 있으니 제자리를 얻은 것이고, 應對할 상대가 四爻인데 四爻가 陰爻이니 應對가 있는 것이다. 居處에 제자리를 얻고 相對가 應對하니 君子의 形象이다. 初九가 밝음이 損傷된 세상에 있으니 大難이 있는 것이고, 謙下의 자리에 있으니 謙讓함이 마땅하기 때문에 장차 難을 피해 出奔할 것을 안 것이다.”고 하였다. 謙下는 謙卦의 下爻를 이른 말로 謙遜하게 몸을 낮추는 것이다. 象日之動은 離(日)의 初九가 動하여 陰이 된 것을 말한 것이다.
역주13 合體 : 離卦의 初九가 변하여 艮卦가 되었기 때문에 合體라고 한 것이다.
역주14 勝將適離 故曰其名曰牛 : 適을 杜注에는 但으로 해석하였으나, 譯者는 歸로 번역하였다. 離火가 艮山을 태우면 艮이 離에 의해 消滅되어, 도로 離로 돌아간다. 純離가 牛이기 때문에 ‘其名曰牛’라고 한 것이다.
역주15 林曰 謙道主退 故謙而不足 離鳥而謙 故飛不翔遠 : 이 林注는 《四庫全書左傳杜林合注》本에 보이지 않는다.
역주16 抑少不終 : 杜氏는 少를 不足으로, 不終을 ‘旦日正卿’이란 卦體의 含意와 맞지 않는 것으로 해석하였고, 〈楊注〉에는 “抑은 但이고, 少不終은 穆子가 비록 長壽하겠지만 제명에 죽지는 못한다는 말이다.”고 하였다. 譯者는 이 說들을 따르지 않고, “抑은 雖然과 같으니, 비록 아비의 뒤를 이어 亞卿이 되겠지만 壽命으로 죽지는 못할 것이라는 말이다.”고 한 《左氏會箋》의 설을 취해 번역하였다.
역주17 引而致之 : 위의 말들을 이끌어 혼합해 說明했다는 말이다.
역주18 汜[氾] : 저본에는 ‘汜’로 되어 있으나 《十三經注疏》本에 의거하여 ‘氾’으로 바로잡았다.
역주19 自郊勞至于贈賄 : 郊勞는 外國의 임금이나 使臣의 行次가 近郊에 당도하면 主國의 임금이 卿을 보내어 慰勞하는 것이고, 贈賄는 外國使節이 돌아갈 때 禮物을 주는 것이다.
역주20 不圖其終 : 魯君이 앞으로 닥칠 事態를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不圖其終은 위의 不知其私와 아래의 不恤其所와 함께 모두 同一句法으로 昭公이 하지 않는 것이다.
역주21 不知夏恤其所底止 : 이 林注는 《四庫全書左傳杜林合注》本에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夏恤의 夏는 憂의 誤字인 듯하다. 其所는 자기의 地位이다. 〈楊注〉에 “자기의 地位가 위태로워질 것을 걱정하지 않는 것이다.”고 하였다.
역주22 將於此乎在 : 禮의 本末은 守國行政無失民에 있다는 말이다. 〈楊注〉
역주23 事皆可復行 : 襄公 25년 傳에 “君子之行思其終也思其復也(군자의 행동은 그 결과를 생각하고 그 일을 다시 행할 수 있기를 생각한다.)”고 하였다.
역주24 朝聘有珪 享覜有璋 : 珪와 璋은 玉으로 만든 重要한 器物로 使臣으로 가는 자가 가지고 가서 珪는 訪問國의 임금에게 바치고, 璋은 君夫人에게 바친다. 《禮記》 〈禮器孔疏〉
역주25 設机而不倚 爵盈而不飮 : 힘쓰는 바가 禮를 行하는 데 있기 때문에 감히 机에 기대지도 않고, 감히 술을 마시지도 않는 것이다. 〈正義〉
역주26 好貨 : 잔치를 열어 賓을 接待할 때 友好를 表하기 위해 賓에게 주는 禮物을 이른다.
역주27 失之道也 : 之道의 之는 此이다. 〈楊注〉
역주28 宴好之道 : 잔치를 열어 賓을 接待할 때 賓에게 禮物을 주어 友好를 表하는 儀式을 이른다.
역주29 以敗於邲 : 晉軍이 城濮에서 楚軍을 擊破하고서, 드디어 楚나라를 輕視하고 對備하지 않았기 때문에 邲에서 敗戰했다는 말이다. 《左氏會箋》
역주30 以敗於鄢 : 楚나라가 邲에서 晉軍에 勝利하고서, 晉나라를 輕視하고 對備하지 않았기 때문에 鄢陵에서 敗戰했다는 말이다.
역주31 重之以睦 : 杜氏는 晉君이 거듭 君臣間에 和睦하기를 구한 것으로 解釋하였으나, 譯者는 加之와 重之의 두 ‘之’를 모두 楚나라의 指示代詞로 보아, 이상과 같이 번역하였다.
역주32 誰其重此 : 兪樾은 ‘重은 任이다.’고 하였으니, 誰其重此는 곧 誰其任此로 누가 이 責務를 擔當하겠느냐는 말이다. 下文에 ‘若有其人恥之可也若其未有君亦圖之’가 바로 ‘誰其重此’를 받아서 한 말이다. 만약 重을 怨重으로 解釋한다면 下文과 貫通하지 않는다. 《左氏會箋》
역주33 皆成縣也 : 襄公 14년 傳에 ‘成國半天子之軍’의 ‘成國’을 杜注에 大國이라 하였으니, 그렇다면 成縣도 大縣으로 解釋하는 것이 옳을 것 같으므로 이상과 같이 번역하였다.
역주34 不穀之過也 大夫無辱 : 辱은 勞이니, 薳啓彊이 諫할 때 반드시 절하고 꿇어앉아 엎드린 뒤에 말하였을 것이다. 그러므로 楚王이 “나의 잘못이니, 大夫는 수고하지 말고 도로 편안히 앉으라.”고 한 것이다. 《左氏會箋》
역주35 辭不敢見 禮也 : 臣下로서 임금의 慰勞를 받는 것이 非禮이기 때문이다. 《左氏會箋》
역주36 惰也 : 惰는 군대를 사용해 不義의 나라를 討伐하는 일에 怠慢하다는 말이다. 〈楊注〉
역주37 閒[間] : 저본에는 ‘閒’으로 되어 있으나 《十三經注疏》本에 依據하여 ‘間’으로 바로잡았다.
역주38 乃歸公 : 經에 依據하면 昭公이 晉나라에 간 것은 봄에 있었고, 牟夷가 莒나라를 背叛하고 魯나라로 도망해 오고, 魯나라가 그를 받아들인 것은 여름에 있었다. 이때 昭公이 晉나라에 있었으니 牟夷를 받아들인 것은 三家이다. 〈楊注〉
역주39 莒人來討……莒未陳也 : 莊公 11년 傳에 “凡師敵未陳曰敗某師(모든 戰爭에 敵이 陳을 치기 전에 攻擊해 敗北시키는 것을 ‘아무 군대를 패배시켰다.’고 한다.)”고 한 것이 이와 同一한 例이다.
역주40 : 석
역주41 守龜 : 天子나 諸侯가 점칠 때 사용하는 龜甲인데, 龜人이 맡아 지키기 때문에 ‘守龜’라 한다.
역주42 請行 : 師期(出兵時期)를 묻는 것이다. 《左氏會箋》
역주43 滋敝邑休怠 : 滋는 使의 뜻으로 쓰인 듯하다. 隱公 11년 傳의 ‘無滋他族實偪處此’의 ‘滋’가 ‘使’의 訓으로 쓰인 例가 있다.
역주44 林曰 君若加以驩好迎接使臣 則吳必以爲楚怒不疾 是滋益其休解危殆 : 林注와 아래 注384의 林注는 《四庫全書左傳杜林合注》本에 보이지 않는다.
역주45 震電 : 번개와 천둥으로 君王의 激怒를 이른다.
역주46 何事不卜 : 무슨 일이든지 豫測할 수 있다는 말인 듯하다.
역주47 今此行也 其庸有報志 : 이번에 使臣으로 나오는 것의 吉凶을 점쳐 吉한 占卦를 얻었으나, 내가 만약 必殺되는 不吉을 당한다면 그 占의 應驗이 楚나라에 報復하여 吳나라가 뜻을 얻는 것으로 드러날 것이라는 말인 듯하다. 〈楊注〉에 “其庸은 反詰副詞로 ‘豈’이다. 豈有報志는 使者로 오는 것의 吉凶을 점쳐 비록 길한 占卦를 얻었으나, 내가 被殺된다면 그 吉한 占의 應驗이 楚나라와 戰爭하여 勝利하는 것으로 드러날 것이라는 말이다.”고 하였다.

춘추좌씨전(5) 책은 2019.05.2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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