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春秋左氏傳(3)

춘추좌씨전(3)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춘추좌씨전(3)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經]八年春 公至自會注+無傳 義與五年書過同하다
8년 봄에 선공宣公회맹會盟에서 돌아왔다.注+이 없다. 선공宣公 5년 의 ‘서과書過’와 같은 뜻이다.
[經]夏六月 公子遂如齊타가 至黃乃復注+無傳 蓋有疾而還 大夫受命而出 雖死 遂以疾還 非禮也하다
여름 6월에 공자公子나라에 가다가 에 이르러 되돌아왔다.注+이 없다. 이 나서 돌아온 것인 듯하다. 대부大夫가 임금의 을 받고 나갔으면 비록 죽더라도 이시장사以尸將事해야 하는데, 으로 돌아왔으니 가 아니다.
辛巳 有事于大廟러니 仲遂卒于垂注+有事 祭也 仲遂卒 與祭同日 略書有事 爲繹張本 不言公子 因上行還間無異事 省文從可知也 稱字 時君所嘉 無義例也 하다
신사일辛巳日태묘太廟제사祭祀를 지내는데, 중수仲遂에서 하였다.注+유사有事제사祭祀이다. 중수仲遂가 제삿날에 죽었기 때문에 간략하게 유사有事라고 기록한 것이니, 이것이 역제繹祭를 지낸 장본張本이다. ‘공자公子’라고 말하지 않은 것은 위에 갔다가 돌아온 사이에 다른 일이 없기 때문이니, 글을 생략省略하여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를 기록한 것은 당시當時의 임금이 가상嘉尙히 여겼기 때문이고 의례義例는 아니다. 나라 땅이니 나라의 경내境內가 아니기 때문에 기록한 것이다.
壬午 注+繹 又祭 陳昨日之禮 所以賓尸 萬 舞名 籥 管也 猶者 可止之辭 魯人知卿佐之喪不宜作樂 而不知廢繹 故內舞去籥 惡其聲聞하다
임오일壬午日에 오히려 역제繹祭를 지내면서 만무萬舞만을 추고 약무籥舞는 버리고 쓰지 않았다.注+은 또 지내는 제사祭祀로, 어제의 시행施行하여 어제 제사祭祀가 되었던 사람을 접대接待하는 것이다. 무명舞名이고 관악기管樂器이다. ‘’는 그만두어도 되는데 그만두지 않을 때 쓰는 말이다. 노인魯人경좌卿佐음악音樂연주演奏해서는 안 된다는 것만을 알고 역제繹祭폐지廢止해야 한다는 것은 몰랐다. 그러므로 소리가 나는 것을 싫어하여 만무萬舞만을 바치고, 은 쓰지 않은 것이다.
[經]戊子 夫人嬴氏薨注+無傳 宣公母也 하다
무자일戊子日부인夫人영씨嬴氏하였다.注+이 없다. 선공宣公의 어머니이다.
[經]晉師白狄伐秦注+[附注] 林曰 白狄始見經 하다
진군晉軍백적白狄연합聯合나라를 쳤다.注+[부주]林: 백적白狄이 비로소 에 보인다.
[經]楚人滅舒蓼하다
초인楚人서국舒國요국蓼國격멸擊滅하였다.
[經]秋七月甲子 日有食之하니注+無傳 月三十日食러라
가을 7월 갑자일甲子日일식日食하였는데 개기일식皆旣日食이었다.注+이 없다. 7월 30일에 일식日食하였다.
[經]冬十月己丑 葬我小君敬嬴注+敬 諡 嬴 姓也 反哭成喪 故稱葬小君할새하야 不克葬하고 庚寅 日中而克葬注+하다
겨울 10월 기축일己丑日에 우리 소군小君경영敬嬴장사葬事 지내는데,注+이고, 이다. 반곡反哭하고 상례喪禮완비完備[成喪]하였기 때문에 ‘장아소군葬我小君’이라고 기록한 것이다. 비가 와서 장사葬事를 지내지 못하고, 경인일庚寅日정오正午장례葬禮를 지냈다.注+은 마치는 것이다.
[經]城平陽注+今泰山有平陽縣하다
평양平陽을 쌓았다.注+지금 태산泰山평양현平陽縣이 있다.
[經]楚師伐陳하다
초군楚軍나라를 토벌討伐하였다.
[傳]八年春 白狄及晉平하다
8년 봄에 백적白狄나라와 화평和平하였다.
會晉伐秦注+하다
여름에 백적白狄나라와 연합聯合하여 나라를 토벌討伐하였다.注+에 ‘진사백적벌진晉師白狄伐秦’이 ‘중수졸仲遂卒’ 아래에 있는 것은 나라의 부고赴告를 따랐기 때문이다.
晉人獲秦諜하야 殺諸絳市러니 六日而蘇注+蓋記異也 [附注] 林曰 諜 往來間探者 絳市 晉所都之市也 하다
진인晉人나라의 첩자諜者를 잡아 시가市街에서 죽였는데, 6일 뒤에 다시 살아났다.注+이변異變을 기록한 것인 듯하다. [부주]林: 은 두 진영陣營왕래往來하며 비밀秘密정탐偵探하는 사람이다. 강시絳市나라 국도國都시가市街이다.
[傳]有事于大廟 襄仲卒而繹하니 非禮也
태묘太廟제사祭祀를 지낼 적에 양중襄仲이 죽었는데도 역제繹祭를 지냈으니 가 아니다.
[傳]楚爲衆舒叛이라 故伐舒蓼하야 滅之注+舒蓼 二國名하고
나라는 서성舒姓의 여러 나라가 배반背叛했기 때문에 서국舒國요국蓼國토벌討伐하여 멸망시켰다.注+는 두 나라 이름이다.
楚子疆之注+正其界也하야 及滑汭注+滑 水名 [附注] 林曰 水之隈曲曰汭 蓋楚拓疆至滑汭之界하고 盟吳越而還注+吳國 今吳郡 越國 今會稽山陰縣也 傳言楚彊 吳越服從 하다
초자楚子가 직접 국경國境획정劃定하여注+경계境界를 바로잡은 것이다. 활수滑水의 굽이까지 영토領土로 삼고,注+수명水名이다.[부주]林: 물의 굽이를 ‘’라 한다. 나라가 강토疆土를 넓혀 활예滑汭경계境界까지 이른 것이다.나라 나라와 결맹結盟하고서 환국還國하였다.注+나라는 지금의 오군吳郡이고, 나라는 지금의 회계會稽산음현山陰縣이다. 전문傳文나라가 하여 나라와 나라가 복종服從한 것을 말한 것이다.
[傳]晉胥克有蠱疾注+惑以喪志 [附注] 林曰 胥克 晉下軍佐也하니 郤缺爲政注+代趙盾 이라
나라 서극胥克에게 고질蠱疾이 있었으니,注+혹란惑亂(混亂)하여 심지心志를 잃은 것이다. [부주]林: 서극胥克나라 하군좌下軍佐였다. 이때 극결郤缺집정執政이었다.注+조돈趙盾의 뒤를 이어 집정執政이 된 것이다.
廢胥克하고 使趙朔佐下軍注+朔 盾之子 代胥克 爲成十七年胥童怨郤氏張本 하다
가을에 서극胥克하고 조삭趙朔하군좌下軍佐로 삼았다.注+조삭趙朔조돈趙盾의 아들로 서극胥克의 뒤를 이어 하군좌下軍佐가 된 것이다. 성공成公 17년에 서극胥克의 아비 서동胥童극씨郤氏를 원망한 장본張本이다.
[傳]冬 葬敬嬴할새하야 無麻하니 始用葛茀注+記禮變之所由 茀 所以引柩 葬則以下柩 하다
겨울에 경영敬嬴장사葬事 지내는데, 가뭄이 들어 삼(麻)이 없으니, 비로소 칡을 꼬아 관구棺柩를 끄는 줄로 사용하였다.注+유래由來를 기록한 것이다. 관구棺柩를 끄는 줄인데, 할 때에는 이 줄을 순거輴車(관을 실은 수레)에 매어 두어 화재火災대비對備하고, 장사葬事 때는 이 줄을 사용해 광중壙中으로 내린다.
雨不克葬 禮也
비가 와서 장사葬事를 지내지 않은 것은 예에 맞는 일이다.
에 의하면 을 쳐서 장일葬日을 정할 때 먼저 먼 날을 택하는 것은 죽은 이를 생각하지 않는다는 비난을 피하기 위함이다.注+는 생각하는 것이다.
[傳] 城平陽하니 時也
평양平陽을 쌓았으니, 에 이를 기록記錄한 것은 때에 맞았기 때문이다.
[傳]陳及晉平하니 楚師伐陳하야 取成而還注+言晉楚爭强 하다
나라가 나라와 화평和平하니, 초군楚軍나라를 토벌討伐하여 화친和親하고서[取成] 돌아갔다.注+나라와 나라가 서로 강자强者가 되고자 다툰 것을 말한 것이다.
역주
역주1 以尸將事 : 使命을 받고 나간 使臣이 中道에서 죽으면 副使가 그 屍身을 殮襲해 상대 나라로 가지고 가서 使命을 完遂한다는 말이다. 〈哀公 15년 傳〉
역주2 垂 齊地 非魯竟 故書地 : 國內에서 죽었으면 죽은 곳의 地名을 기록하지 않는 것이 《春秋》의 例인데, 지금 地名을 기록하였으니, 垂가 齊나라 땅임을 알 수 있다. 〈楊注〉
역주3 猶繹 萬入去籥 : 繹은 祭祀 지낸 다음 날에 다시 지내는 祭祀 이름이다. 萬舞는 방패를 들고 추는 춤으로 武舞이고, 籥舞는 피리를 불면서 추는 춤으로 文舞이다. 繹祭日에 仲遂가 죽었기 때문에 소리가 없는 萬舞만을 추고 소리가 있는 籥舞는 추지 않은 것이다. 《禮記集說》 〈檀弓下〉 陳註
역주4 克 成也 : 克은 能이니, ‘成’으로 訓詁할 필요가 없다. 《左氏會箋》
역주5 經在仲遂卒下 從赴 : ‘晉師白狄伐秦’은 봄에 있었고 ‘仲遂卒’은 여름에 있었으니, 《春秋》에 伐秦을 앞에 기록하고 仲遂卒을 뒤에 기록해야 하는데, 魯나라가 晉나라의 赴告를 받은 것이 ‘仲遂卒’ 이후였기 때문에 ‘伐秦’을 뒤에 기록했다는 말이다.
역주6 殯則有之 以備火 : 殯은 死者를 殮襲해 棺에 넣어 葬事 때까지 임시로 安置해 두는 것이다. 임금의 殯에는 棺을 輴車에 실어 安置한 뒤에 나뭇가지로 外槨처럼 만들어 그 위를 덮는데, 火災가 나면 끌어내기 위해 미리 칡으로 꼰 줄을 輴車에 매어 둔다.
역주7 卜葬 先遠日 辟不懷也 : 옛날에는 身分에 따라 葬期가 定해져 있었는데, 天子는 7개월, 諸侯는 5개월, 大夫는 3개월 만에 葬事 지내고, 士庶人은 踰月而葬(달을 넘겨 장사 지냄)하였다. 先遠日은 葬月이 되면 占을 쳐서 葬日을 정하되 먼저 그 달 下旬에서 吉日을 찾는 것인데, 이는 父母의 屍身을 하루라도 더 집에 모시고 싶은 마음에서 될 수 있는 대로 葬日을 멀리 定하려는 것이다. ‘辟不懷’는 葬日을 멀리 定하지 않으면 父母에 대한 戀慕의 情이 없어 서둘러 葬事 지내려 한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기 때문에 먼 날로 葬日을 定하여 外人의 비난을 피한다는 말이다.

춘추좌씨전(3) 책은 2019.05.2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18 By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