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春秋左氏傳(3)

춘추좌씨전(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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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좌씨전(3)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經]十有八年春 晉侯衛世子臧伐齊하다
18년 봄에 진후晉侯위세자衛世子과 함께 나라를 토벌討伐하였다.
[經]公伐杞注+無傳 [附注] 林曰 自是內不書君將 征伐在大夫也 宣公而下 征伐在大夫 是故自伐邾取繹 凡取皆不書其人 自伐杞 凡伐 皆不書公하다
선공宣公나라를 토벌討伐하였다.注+이 없다. [부주]林: 이때부터 나라의 출정出征정벌征伐한 임금과 장수將帥를 기록하지 않았으니, 이는 정벌征伐권한權限대부大夫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선공宣公 이후로는 정벌征伐권한權限대부大夫에게 있었기 때문에 나라를 토벌討伐하여 한 뒤로는 모든 에 모두 한 사람을 기록하지 않았고, 나라를 토벌討伐한 뒤로는 모든 토벌討伐에 모두 을 기록하지 않았다.
[經]夏四月이라
여름 4월이다.
[經]秋七月 邾人戕鄫子于鄫注+傳例曰 自外曰戕 邾大夫就鄫殺鄫子하다
가을 7월에 주인邾人증국鄫國에서 증자鄫子장살戕殺하였다.注+전례傳例에 “외국인外國人이 와서 그 나라 임금을 살해殺害하는 것을 ‘’이라 한다.”고 하였다. 나라의 대부大夫증국鄫國으로 가서 증자鄫子살해殺害한 것이다.
[經]甲戌 楚子旅卒注+未同盟而赴以名 吳楚之葬 僭而不典 故絶而不書 同之夷蠻 하다
갑술일甲戌日초자楚子하였다.注+동맹同盟하지 않았으나 이름을 기록해 부고赴告하였기 때문에 그 이름을 기록한 것이다. 오군吳君초군楚君장사葬事에는 왕호王號참용僭用하여 전례典禮를 어겼기 때문에 폄절貶絶(貶下)해 기록하지 않고, 이만夷蠻과 동일하게 취급取扱하여 명호名號(王의 호칭號稱)를 구한 것을 징계懲戒하였다.
[經]公孫歸父如晉하다
공손公孫귀보歸父나라에 갔다.
[經]冬十月壬戌 公薨于路寢하다
겨울 10월 임술일壬戌日선공宣公노침路寢에서 하였다.
[經]歸父還自晉 至笙하야 遂奔齊注+大夫還 不書 春秋之常也 今書歸父還奔 善其能以禮退 不書族者 非常所及 今特書 略之 笙 魯境外 故不言出 하다
귀보歸父나라에서 돌아올 때 에 이르러 드디어 나라로 달아났다.注+대부大夫귀환歸還을 기록하지 않는 것이 《춘추春秋》의 상례常例인데, 지금 귀보歸父귀환歸還출분出奔을 기록한 것은 그가 로써 물러난 것을 훌륭하게 여긴 것이고, 을 기록하지 않은 것은 상례常例언급言及할 바가 아니기 때문에 지금 단지 ‘귀보歸父’라고만 기록하고 ‘공손公孫’은 생략省略한 것이다. 나라의 경외境外이다. 그러므로 ‘’이라고 하지 않았다.
[傳]十八年春 晉侯衛大子臧伐齊하야 至于陽穀하다
18년 봄에 진후晉侯위태자衛太子나라를 토벌討伐하여 양곡陽穀에 이르렀다.
齊侯會晉侯盟于繒注+[附注] 林曰 齊服晉 故會晉侯 盟于繒하고 以公子疆爲質于晉하니 晉師還하다
제후齊侯진후晉侯회합會合하여 에서 결맹結盟하고서注+[부주]林: 나라가 나라에 항복降服하였기 때문에 진후晉侯회합會合하여 에서 결맹結盟한 것이다. 공자公子나라에 인질人質로 보내니 진군晉軍이 돌아갔다.
蔡朝南郭偃逃歸注+晉旣與齊盟 守者解緩 故得逃 하다
채조蔡朝남곽언南郭偃이 도망해 돌아갔다.注+나라가 나라와 결맹結盟하자, 지키는 자가 해이解弛해져 느슨히 지켰기 때문에 도망할 수 있었던 것이다.
[傳]夏 公使如楚乞師하니 欲以伐齊注+公不事齊 齊與晉盟 故懼而乞師于楚 不書 微者行 하다
여름에 선공宣公나라에 사자使者를 보내어 원군援軍하였으니, 이는 나라를 토벌討伐하고자 해서였다.注+선공宣公나라를 섬기지 않으니, 나라가 나라와 동맹同盟하였다. 그러므로 선공宣公은 겁이 나서 나라에 원군援軍한 것이다. 사자使者로 간 사람을 기록하지 않은 것은 미천微賤한 자가 갔기 때문이다.
[傳]秋 邾人戕鄫子于鄫하다
가을에 주인邾人증국鄫國으로 가서 증자鄫子장살戕殺하였다.
凡自虐其君曰弑 自外曰戕注+弑戕 皆殺也 所以別內外之名 弑者積微而起 所以相測量 非一朝一夕之漸 戕者 卒暴之名이라
범례凡例에 의하면 내국인內國人이 그 임금을 학살虐殺하는 것을 ‘’라 하고, 외국인外國人이 와서 그 나라 임금을 죽이는 것을 ‘’이라 한다.注+은 모두 살해殺害하는 것인데, 내국인內國人이 죽였느냐 외국인外國人이 죽였느냐를 구별하는 명칭名稱이다. 역심逆心이 조금씩 쌓여 일어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측량測量(長時間을 두고 헤아림)하고, 일조일석一朝一夕진행進行되는 것이 아니다. 은 갑자기 살해殺害하는 명칭名稱이다.
[傳]楚莊王卒하야 楚師不出하니 旣而用晉師注+成二年戰鞍是 하다
초장왕楚莊王하여 초군楚軍출동出動하지 않으니, 나라는 얼마 뒤에 진군晉軍이용利用하였다.注+성공成公 2년에 에서 전쟁戰爭한 것이 이것이다.
楚於是乎有蜀之役注+在成二年冬 蜀 魯地 泰山博縣西北有蜀亭하다
나라는 이로 인해 을 치는 전쟁戰爭을 일으켰다.注+전쟁戰爭성공成公 2년 겨울에 있었다. 나라 땅으로 태산泰山박현博縣 서북쪽에 촉정蜀亭이 있다.
[傳]公孫歸父以襄仲之立公也 有寵注+歸父 襄仲子 이라하야
공손公孫귀보歸父양중襄仲선공宣公을 세웠기 때문에 선공宣公총애寵愛를 받았다.注+귀보歸父양중襄仲의 아들이다.
欲去하야 以張公室注+時三桓强 公室弱 故欲去之 以張大公室하야 與公謀하고 而聘于晉하니 欲以晉人去之
귀보歸父삼환三桓제거除去하고 공실公室권위權威신장伸張시키고자 하여,注+이때 삼환三桓하고 공실公室하였다. 그러므로 삼환三桓제거除去하여 공실公室강성强盛[張大]하게 하고자 한 것이다. 선공宣公모의謀議하고서 나라에 빙문聘問하였으니, 이는 진인晉人의 힘을 빌어 삼환三桓제거除去하고자 해서였다.
[傳]冬 公夢하다
겨울에 선공宣公하였다.
季文子言於朝曰 使我殺適立庶하야 以失大援者 仲也夫注+適謂子惡 齊外甥 襄仲殺之而立宣公 南通於楚 旣不固 又不能堅事齊晉 故云失大援也 [附注] 林曰 季文子怨歸父欲去三桓 故借此以爲之罪 ᄂ저 臧宣叔怒曰 當其時不能治也하니 後之人何罪
계문자季文子조정朝廷에서 말하기를, “우리로 하여금 적자適子(文公의 태자太子)를 죽이고 서자庶子(宣公)를 세워 대국大國외원外援을 잃게 한 것은 양중襄仲이다.”注+적자適子태자太子을 이른다. 제후齊侯생질甥姪인데, 양중襄仲이 그를 죽이고 선공宣公을 세우고서 남쪽으로 나라와 통호通好하였으나, 이미 나라를 강고强固히 하지 못하였고, 또 나라와 나라를 견실堅實히 섬기지 않았기 때문에 대국大國외원外援을 잃었다고 한 것이다. [부주]林: 계문자季文子귀보歸父삼환三桓제거除去하려는 것을 원망怨望하였기 때문에 양중襄仲를 빌려다가 귀보歸父로 삼고자 한 것이다.고 하니, 장선숙臧宣叔이 화를 내며 말하기를, “그 당시當時에는 양중襄仲를 다스리지 않았으니, 그 아들(後人)에게 무슨 가 있는가?
子欲去之 許請去之注+宣叔 文仲子 武仲父 許其名也 時爲司寇 主行刑 言子自以歸父害己欲去者 許請爲子去之하리라하고 遂逐東門氏注+襄仲居東門 故曰東門氏하다
그러나 그대가 그를 제거除去하고자 한다면 내가 그를 제거除去하겠다.”注+선숙宣叔문중자文仲子무중武仲부친父親이다. 는 그의 이름이다. 이때 사구司寇가 되어 행형行刑주관主管하였기 때문에 ‘그대는 귀보歸父가 그대를 해칠 사람으로 여겨 제거除去하고자 한다면 내가[許] 그대를 위해 그를 제거除去하겠다.’고 말한 것이다. 라고 하고서, 드디어 동문씨東門氏(襄仲의 족속族屬)를 축출逐出하였다.注+양중襄仲동문東門에 살았기 때문에 동문씨東門氏라 한 것이다.
子家還 及笙注+子家 歸父하야 壇帷하고 復命於介注+除地爲壇而張帷 介 副也 將去 使介反命於君하다 旣復命注+[附注] 林曰 旣致使命於其副介 袒括髮注+以麻約髮하고 卽位哭하고 三踊而出注+依在國喪禮 設哭位 公薨故하야 遂奔齊하다
자가子家(歸父)가 돌아올 때 에 이르러注+자가子家귀보歸父이다. 을 쌓아 휘장을 치고서 개사介使(副使)에게注+땅을 깨끗이 쓴 뒤에 을 만들고서 휘장을 친 것이다. 부사副使이다. 떠나려 할 때 개사介使로 하여금 임금께 복명復命하게 한 것이다. 복명復命한 뒤에注+[부주]林: 이미 그 사명使命을 자기의 부사副使에게 [致]한 것이다. 윗옷의 왼쪽 소매를 벗고 머리를 삼으로 묶고서注+삼으로 머리를 묶은 것이다. 자기 자리로 가서 선공宣公을 위해 하고 발을 세 번 구르고 나와서,注+국내國內에 있을 때의 상례喪禮에 의해 곡위哭位설치設置한 것은 선공宣公하였기 때문이다. 드디어 나라로 도망갔다.
書曰 歸父還自晉이라하니 善之也
에 ‘귀부환자진歸父還自晉’이라고 기록한 것은 그를 훌륭하게 여긴 것이다.
역주
역주1 以懲求名之僞 : 僭僞한 地方을 占據하고서 分數에 넘는 呼稱을 使用하는 傳統性이 없는 나라를 懲戒하였다는 말이다.
역주2 中[于] : 저본에는 ‘中’으로 되어 있으나 《十三經注疏》本에 의거하여 ‘于’로 바로잡았다.
역주3 三桓 : 魯나라 大夫孟孫氏(仲孫氏), 叔孫氏, 季孫氏를 이르는데, 이들이 모두 魯桓公의 後孫이기 때문에 ‘三桓’으로 칭한다.
역주4 〈能〉 : 저본에는 ‘能’자가 없으나 《十三經注疏》本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

춘추좌씨전(3) 책은 2019.05.2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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