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春秋左氏傳(2)

춘추좌씨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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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經]四年春王正月 公會齊侯宋公陳侯衛侯鄭伯許男曹伯하다
蔡潰어늘注+民逃其上曰潰 例在文三年 遂伐楚하야 次于陘하다注+遂 兩事之辭 楚强 齊欲綏之以德 故不速進而次陘 陘楚地 潁川召陵縣南有陘亭
[經]夏 許男新臣卒하다注+未同盟而赴以名 [附注] 林曰 卽許叔也
[經]楚屈完來하다注+屈完 楚大夫也 楚子遣完如師以觀齊 屈完覩齊之盛 因而求盟 故不稱使 以完來盟爲文 齊桓退舍以禮楚 故盟召陵 召陵 潁川縣也
[經]齊人執陳轅濤塗하다注+轅濤塗 陳大夫
[經]秋 하다注+受齊命討陳之罪 而以與謀爲文者 時齊不行 使魯爲主 與謀例在宣七年
[經]八月 하다注+無傳 告于廟
[經]葬許穆公하다
[經]冬十有二月 公孫玆帥師會齊人宋人衛人鄭人許人曹人侵陳하다注+公孫玆 叔牙子叔孫戴伯
[傳]四年春 齊侯以諸侯之師侵蔡하니 蔡潰하다注+[附注] 林曰 齊桓公霸諸侯攘夷狄尊天子 蔡自北杏一與中國之會 而棄我諸姬 甘心黨楚 故齊帥諸侯伐楚 而先事侵蔡 潰蔡者 先披楚之黨也
遂伐楚하니 楚子使與師言曰
君處北海하고 寡人處南海하야 唯是風馬牛不相及也注+楚界猶未至南海 因齊處北海 遂稱所近 牛馬風逸 蓋末界之微事 故以取喩 [附注] 林曰 牝牡相誘曰風 言雖馬牛風逸 牝牡相誘 亦不相及 喩齊楚遠不相干也 不虞君之涉吾地也
何故
管仲對曰
昔召康公命我先君大公注+召康公 周大保召公奭也 曰 五侯九伯 女實征之하야 以夾輔周室注+五等諸侯 九州之伯 皆得征討其罪 齊桓因此命以夸楚하라하시고
賜我先君履하되 東至于海하고 西至于河하고 南至于穆陵하고 北至于無棣하니라注+穆陵無棣 皆齊竟也 履 所踐履之界 齊桓又因以自言其盛 [附注] 林曰 索隱曰 無棣 在遼西孤竹 服虔以爲 大公受封竟界所至 不然也 蓋言其征伐所至之域也 愚按 是時管仲相齊 子文相楚 正是的對 楚旣以涉地何故爲問 則齊不應歷言受封境界以自狹 當以征討所至爲正
爾貢包茅不入하야 王祭不共이라 無以縮酒하니 寡人是徵하노라注+包 裹束也 茅 菁茅也 束茅而灌之以酒爲縮酒 尙書 包匭菁茅 茅之爲異未審 [附注] 林曰 徵 亦問也
昭王南征而不復하시니 寡人是問하노라注+昭王 成王之孫 南巡守 涉漢 船壞而溺 周人諱而不赴 諸侯不知其故 故問之
對曰 貢之不入 寡君之罪也 敢不共給이리오마는 昭王之不復 君其問諸水濱하라注+昭王時 漢非楚竟 故不受罪
師進하야 次于陘하다注+楚不服罪 故復進師 [附注] 林曰 楚語云 先君蚡冒之所以服陘隰也 陘必爲楚之要地 故齊以諸侯之師 進而據之焉
楚子使屈完如師注+如陘之師 觀强弱하니 師退하여 次于召陵하다注+完請盟故
齊侯陳諸侯之師하고 與屈完乘而觀之注+乘共載할새 齊侯曰
是爲리오
先君之好是繼 與不穀同好如何注+言諸侯之附從 非爲己 乃尋先君之好 謙而自廣 因求與楚同好 孤寡不穀 諸侯謙稱
對曰
君惠徼福於敝邑之社稷注+[附注] 朱曰 徼 求也 言齊君惠我楚國 肯與同好 則楚國社稷之神 必福齊也하야 辱收寡君 寡君之願也로소이다
齊侯曰
以此衆戰이면 誰能禦之 以此攻城이면 何城不克이리오
對曰
君若以德綏諸侯 誰敢不服이리오마는 君若以力이면 楚國方城以爲城하고 漢水以爲池注+方城山 在南陽葉縣南 以言竟土之遠 漢水出武都 至江夏南入江 言其險固以當城池하리니 雖衆이나 無所用之리이다
屈完及諸侯盟하다
[傳]陳轅濤塗謂鄭申侯曰
師出於陳鄭之間이면 國必甚病注+申侯 鄭大夫 當有共給之費故이어니와 若出於東方하야 觀兵於東夷하고 循海而歸 其可也리라注+東夷 郯莒徐夷也 觀兵 示威 申侯曰 善타하다
濤塗以告한대 齊侯許之하다注+許出東方
申侯見曰 師老矣 若出於東方而遇敵이면 懼不可用也注+[附注] 朱曰 恐吾師老不可用以戰鬪
若出於陳鄭之間하야 共其資糧屝屨 其可也리이다注+扉 草屨 齊侯說하야 與之虎牢注+還以鄭邑賜之하고 執轅濤塗하다注+[附注] 朱曰 爲明年濤塗譖申侯張本
[傳]秋 伐陳하니 討不忠也注+以濤塗爲誤軍道
[傳]許穆公卒于師어늘 葬之以侯하니 禮也注+男而以侯禮 加一等
凡諸侯薨于朝會 加一等注+諸侯命有三等 公爲上等 侯伯爲中等 子男爲下等하고 死王事 加二等注+謂以死勤事하니 於是有以袞斂이니라注+袞衣 公服也 謂加二等
[傳]冬 叔孫戴伯帥師會諸侯之師侵陳하다
陳成하니 歸轅濤塗하다注+陳服罪 故歸其大夫 戴 諡也
[傳]初 晉獻公欲以驪姬爲夫人하야 卜之하니 不吉하고 筮之하니하다
公曰
從筮하리라
卜人曰
이니이다注+物生而後有象 象而後有滋 滋而後有數 龜象筮數 故象長數短 [附注] 林曰 象在先 數在後 故以先爲長 以後爲短 朱曰 卜人欲公從卜 故托言筮短龜長 其實龜筮無分長短
且其繇曰 專之渝하야 하리라注+繇 卜兆辭 渝 變也 攘 除也 羭 美也 言變乃除公之美 [附注] 林曰 言獻公專愛 驪姬必將改變其心 專寵之變 將奪公之所美也 蓋指申生 言奪公之嫡也
一薰一蕕 十年尙猶有臭注+薰 香草 蕕 臭草 十年有臭 言善易消 惡難除 [附注] 林曰 薰譬申生之徒 蕕譬驪姬之黨 言香臭共處 則香不勝臭 猶善不勝惡라하니 必不可이니다
弗聽하고 立之하다
生奚齊하고 其娣生卓子하다
及將立奚齊 旣與中大夫成謀注+[附注] 林曰 中大夫 里克也 獻公欲廢大子 憚里克未敢 里克曰 中立其免乎 是成謀也하고 姬謂大子曰
君夢齊姜하니 必速祭之하라注+齊姜 大子母 言求食
大子祭于曲沃하고 歸胙于公注+胙 祭之酒肉하니 公田이라注+[附注] 朱曰 時獻公適出田獵
姬寘諸宮이라가 六日 公至하니 毒而獻之하다注+毒酒經宿輒敗 而經六日 明公之惑
公祭之地하니 地墳注+[附注] 林曰 驪姬謂公酒食自外來 不可不試 故令公祭地 毒酒至地 地爲墳起하고 與犬하니 犬斃하고 與小臣하니 小臣亦斃하다注+[附注] 林曰 又以其肉與犬食之 中毒而死 又以酒肉與小臣食之 亦中毒而死
姬泣曰 賊由大子라한대
大子奔新城注+新城 曲沃하니 公殺其傅杜原款하다
或謂大子호되 子辭 君必辯焉하리이다注+以六日之狀自理 大子曰
君非姬氏 居不安하고 食不飽하니
我辭 姬必有罪하리라
君老矣 吾又不樂하노라注+吾自理則姬死 姬死則君必不樂 不樂 爲由吾也
子其行乎ㄴ저
大子曰
君實不察其罪注+[附注] 朱曰 言獻公不知我實無罪而信姬氏之讒 謂我欲弑君하시니 被此名也以出이면 人誰納我리오
十二月戊申 縊于新城하다
姬遂譖二公子曰 皆知之注+[附注] 林曰 言二公子皆知大子置毒之謀라하니 重耳奔蒲하고 夷吾奔屈하다注+二子時在朝 爲明年晉殺申生傳


4년 봄 주왕周王 정월에 제후齊侯송공宋公진후陳侯위후衛侯정백鄭伯허남許男조백曹伯과 연합하여 나라를 침공侵攻하였다.
채군蔡軍이 흩어져 도망하자,注+백성들이 그 임금에게서 도망하는 것을 ‘’라 한다. 문공文公 3년 에 보인다. 드디어 나라를 토벌討伐하여 에 주둔하였다. 注+는 두 일이 계속될 때 쓰이는 말이다. 나라가 하기 때문에 나라는 으로 회유懷柔하고자 하였다. 그러므로 급속히 진격進擊하지 않고 에 주둔한 것이다. 나라 땅이다. 영천潁川소릉현召陵縣 남쪽에 형정陘亭이 있다.
여름에 허남許男신신新臣하였다. 注+동맹국同盟國이 아닌데도 이름으로 부고赴告하였기 때문에 에 그 이름을 기록한 것이다. [부주]林: 신신新臣은 바로 허숙許叔이다.
나라 굴완屈完제후諸侯군중軍中으로 와서 맹약하고, 소릉召陵에서 결맹結盟하였다. 注+굴완屈完나라 대부大夫이다. 초자楚子굴완屈完제후諸侯군중軍中으로 보내어 나라의 동정動靜을 살피게 하니, 굴완屈完제군齊軍강성强盛한 것을 보고 결맹結盟하기를 요구하였다. 그러므로 ‘使’라고 칭하지 않고, 굴완屈完이 와서 결맹結盟한 것으로 글을 만든 것이다. 제환공齊桓公이 30리를 물러나 나라를 예우禮遇하였기 때문에 소릉召陵에서 결맹結盟한 것이다. 소릉召陵영천현潁川縣이다.
제인齊人나라 원도도轅濤塗를 잡았다. 注+원도도轅濤塗나라 대부大夫이다.
가을에 강인江人황인黃人나라를 토벌하였다.注+나라의 명을 받아 나라의 죄를 친 것인데 여모與謀(모의에 참여함)로 글을 만든 것은 이때 나라는 가지 않고 나라로 하여금 토벌을 주관하게 하였기 때문이다. 여모與謀선공宣公 7년에 보인다.
8월에 희공僖公나라 토벌討伐에서 돌아왔다.注+이 없다. 종묘宗廟에 고한 것이다.
허목공許穆公을 장사 지냈다.
겨울 12월에 공손자公孫玆가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제인齊人송인宋人위인衛人정인鄭人허인許人조인曹人과 연합하여 나라를 침공侵攻하였다.注+공손자公孫玆숙아叔牙의 아들 숙손대백叔孫戴伯이다.
4년 봄에 제후齊侯제후諸侯의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나라를 침공侵攻하니 채사蔡師가 흩어져 도망하였다.注+[부주]林: 제환공齊桓公제후諸侯패자霸者가 되어 이적夷狄을 물리치고 천자天子를 높였다. 나라는 북행北杏에서 한 번 중국中國회맹會盟에 참가한 뒤로는 우리 여러 희성국姬姓國을 버리고 즐거운 마음으로 나라의 편이 되었다. 그러므로 제환공齊桓公제후諸侯의 군대를 거느리고 나라를 토벌할 때 먼저 나라를 쳐서 나라를 궤멸潰滅시킨 것은 먼저 나라의 편을 갈라 놓은 것이다.
드디어 나라를 토벌하니 초자楚子제후諸侯군중軍中으로 사신使臣을 보내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임금은 북해北海에 살고 과인寡人남해南海에 살아 바람난 우마牛馬도 서로 미칠 수 없는 먼 거리이니,注+나라의 경계가 남해南海까지는 이르지 않았으나 나라가 북해北海에 있으므로 인해 가까운 곳을 들어 말한 것이다. 우마牛馬가 바람이 나서 달아나는 것은 동물세계動物世界의 작은 일이기 때문에 그것을 비유로 취한 것이다. [부주]林: 암수가 서로 유혹하는 것을 바람[風]이라 한다. 마소가 바람이 나 달아나서 암수가 서로 유혹하려 해도 거리가 멀어 미칠 수 없다는 말이니, 나라와 나라는 서로 멀리 떨어져 있어 서로 관계가 없다는 것을 비유한 것이다. 임금께서 우리의 땅에 오실 줄은 생각지 못하였소.
무엇 때문에 오셨소?”
관중管仲이 대답하였다.
“옛날에 소강공召康公이 우리 선군先君태공太公에게 하기를注+소강공召康公나라 태보太保소공召公이다. ‘5‧9을 그대가 실로 토벌討伐하여 왕실王室보좌輔佐하라.’고 하고서,注+오등제후五等諸侯구주백九州伯의 죄를 모두 정토征討할 수 있는 것이다. 제환공齊桓公은 이 을 가지고 나라에 과시誇示한 것이다.
우리 선군先君에게 정벌征伐할 수 있는 범위를 으로는 바다까지 西로는 황하黃河까지 으로는 목릉穆陵까지 으로는 무체無棣까지로 정해 주셨다.注+목릉穆陵무체無棣는 모두 나라 경계이다. 는 정벌할 수 있는 땅의 경계이다. 제환공齊桓公은 또 이것을 가지고서 스스로 나라의 강성함을 말한 것이다. [부주]林: 《사기색은史記索隱》에 “무체無棣요서遼西고죽孤竹에 있으니, 복건服虔이 ‘태공太公봉지封地로 받은 경계가 이곳까지이다.’고 한 것은 옳지 않다. 대체로 정벌해 갈 수 있는 지역을 말한 것이다.”고 하였다. 내가 고찰하건대 이때 관중管仲나라의 승상이었고, 자문子文나라의 승상이었으니, 서로 걸맞은 상대였다. 나라가 이미 ‘우리의 땅에 온 것은 무엇 때문이냐’고 물었고 보면 나라는 봉지封地로 받은 경계를 차례로 말하여 스스로의 활동 범위를 좁히지 않았을 것이니, 정벌할 수 있는 경계로 보는 것이 옳다.
, 과인寡人은 이 죄를 묻노라.注+는 싸서 묶은 다발이고, 정모菁茅이다. 다발로 묶은 띠 위에 술을 부어 거르는 것을 축주縮酒라 한다. 《상서尙書》에 말한 ‘포궤정모包匭菁茅’가 이명異名인지 자세히 알 수 없다.[부주]林: 도 묻는 것이다.
그리고 소왕昭王남방南方순수巡狩하다가 돌아오지 못하셨으니, 과인寡人은 이것도 묻노라.”注+소왕昭王성왕成王의 손자이다. 소왕昭王이 남방을 순수巡狩할 때 한수漢水를 건너다가 배가 부서져 익사溺死하였으나, 주인周人이 이를 숨기고 부고赴告하지 않으니, 제후諸侯는 그 까닭을 몰랐다. 그러므로 물은 것이다.
그러자 나라 사자使者가 “공물貢物을 바치지 않은 것은 우리 임금의 이니, 감히 바치지 않겠는가마는 소왕昭王이 돌아가지 못한 것은 물가에 가서 물어 보라.”라고 하였다.注+소왕昭王 때는 한수漢水나라의 경내境內가 아니었기 때문에 죄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제후諸侯의 군대가 전진하여 에 주둔하였다.注+나라가 승복承服하지 않기 때문에 다시 군대를 전진시킨 것이다. [부주]林: 《초어楚語》에 “선군先君분모蚡冒형습陘隰을 굴복시킨 방법이다.”고 하였으니, 은 필시 나라의 요지要地인 듯하다. 그러므로 나라가 제후의 군대를 거느리고 전진하여 그곳을 점거占據한 것이다.
여름에 초자楚子굴완屈完제후諸侯군중軍中으로 보내니,注+에 주둔한 제후諸侯군중軍中으로 보낸 것은 제후군諸侯軍강약强弱을 살피기 위함이었다.제후諸侯의 군대가 퇴각退却하여 소릉召陵에 주둔하였다.注+굴완屈完결맹結盟하기를 청하였기 때문이다.
제후齊侯제후諸侯의 군대를 포진布陣하고서 굴완屈完과 한 수레에 동승同乘하여 군대를 사열査閱할 때注+은 수레에 함께 탄 것이다.제후齊侯가 말하였다.
“내가 군대를 이끌고 이곳까지 온 것이 어찌 나 개인을 위해서이겠는가?注+제후諸侯가 나에게 의지해 순종하는 것은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선군先君 때의 우호友好를 다시 다지기 위함이라는 말이다. 불곡不穀이라고 겸칭謙稱하여 스스로의 입지立地를 넓히고서 이어 우호友好하기를 요구한 것이다. 불곡不穀은 모두 제후諸侯겸칭謙稱이다.
우리 선군先君들께서 맺은 우호友好계승繼承하기 위함이니, 나와 우호友好하는 것이 어떻겠는가?”
굴완屈完이 대답하였다.
“임금님께서 우리나라에 왕림枉臨[惠]하시어 우리나라의 사직社稷을 구하시고注+[부주]朱: 는 구하는 것이니, 제군齊君이 우리 나라에 은혜를 베풀어 기꺼이 우호友好를 맺는다면 나라 사직社稷이 반드시 나라에게 을 줄 것이라는 말이다. 우리 임금님을 거두어 주시는 것이 우리 임금님의 바람입니다.”
제후齊侯가 말하였다.
“이 무리를 거느리고서 전쟁한다면 그 누가 막을 수 있으며, 이 무리를 거느리고서 성을 공격한다면 어떤 성인들 함락陷落하지 못하겠는가?”
굴완屈完이 대답하였다.
“임금님께서 만약 으로 제후諸侯들을 회유懷柔한다면 누가 감히 복종하지 않겠습니까마는 임금님께서 만약 무력을 사용하신다면 우리 나라는 방성산方城山으로 삼고 한수漢水를 해자로 삼을 것이니, 군대가 아무리 많아도 사용할 곳이 없을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굴완屈完제후諸侯결맹結盟하였다. 注+방성산方城山남양南陽섭현葉縣 남쪽에 있다. 이는 강토疆土광원廣遠하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한수漢水무도武都에서 발원發源해서 강하江夏에 이르러 남쪽으로 흘러 장강長江으로 들어간다. 이는 그 험고險固함이 성지城池와 맞먹는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나라 원도도轅濤塗나라 신후申侯에게 말하기를
“군대가 나라와 나라 사이로 행군行軍하면 우리 양국兩國이 틀림없이 심한 피해被害를 입을 것이지만注+신후申侯나라 대부이다. 당연히 비용을 공급해야 하기 때문이다 동쪽으로 행군行軍하여 동이東夷에게 무력武力과시誇示하고서 해변海邊을 따라 회군回軍한다면 우리 양국兩國에는 아무 피해가 없을 것이다.”고 하니,注+동이東夷담이郯夷거이莒夷서이徐夷이다. 관병觀兵위력威力을 과시하는 것이다.신후申侯가 “좋다.”고 하였다.
원도도轅濤塗제후齊侯에게 하니 제후齊侯가 허락하였다.注+동쪽으로 행군行軍하도록 허락한 것이다.
신후申侯제후齊侯알현謁見하고서 말하기를 “군대가 출정出征한 지 오래되어 모두 지쳐 있으니 만약 동쪽으로 행군하다가 적이라도 만난다면 군대를 쓸 수 없을까 두렵습니다.注+[부주]朱: 우리 군대가 지쳤으므로 이들을 사용해 전투할 수 없을까 두렵다는 말이다.
나라와 나라 사이로 행군行軍하면서 군량軍糧‧신발 등을 공급받는다면 아무 염려가 없을 것입니다.”라고 하니,注+는 짚신이다.제후齊侯는 기뻐하여 신후申侯에게 호뢰虎牢를 주고,注+나라의 을 도로 그에게 으로 준 것이다.원도도轅濤塗를 잡아 가두었다.注+[부주]朱: 명년明年원도도轅濤塗신후申侯를 참소한 장본張本이다.
가을에 나라를 토벌討伐하였으니, 이는 원도도轅濤塗불충不忠토벌討伐한 것이다.注+원도도轅濤塗행군行軍하는 길을 그르쳤다고 여겨서이다.
허목공許穆公군중軍中에서 하였으므로 장사葬事 지냈으니 에 맞았다.注+남작男爵인데 후작侯爵의 예로 장사 지낸 것은 한 등급을 올려 준 것이다.
제후諸侯조현朝見이나 회맹會盟 중에 죽으면 한 등급等級 올려 주고,注+제후諸侯에는 세 등급이 있는데, 상등上等이고 중등中等이고, 하등下等이다.왕사王事에 죽으면 두 등급等級을 올려 주니,注+죽음으로써 왕사王事에 힘을 다했다는 말이다. 이런 경우에 한해 곤복袞服으로 할 수 있다.注+곤의袞衣의복衣服이니, 두 등급을 올려 준다는 말이다.
겨울에 숙손대백叔孫戴伯이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제후諸侯의 군대와 연합聯合나라를 침공侵攻하였다.
나라가 화친和親을 요청하니 원도도轅濤塗나라로 돌려보냈다.注+나라가 승복承服하였기 때문에 그 대부大夫를 돌려보낸 것이다. 시호諡號이다.
당초에 진헌공晉獻公여희驪姬부인夫人으로 삼고자 하여 거북점을 치니 불길不吉하고 시초점蓍草占을 치니 하였다.
헌공獻公이 말하였다.
“시초점을 따르겠다.”
복인卜人이 말하였다.
“시초점은 맞는 확률이 낮고 거북점은 확률이 높으니, 높은 쪽을 따르는 것만 못합니다.注+태초太初동물動物식물植物이 생긴 뒤에 형상形象이 생겼고, 형상이 생긴 뒤에 동식물動植物이 점차 많아졌고, 많아진 뒤에 다소多少가 생겼다. 거북점은 형상을 가지고 길흉吉凶을 점치고, 시초점은 숫자數字를 가지고 화복禍福을 점친다. 그러므로 형상으로 점치는 것이 맞는 확률이 높고, 숫자로 점치는 것이 확률이 낮다는 말이다. [부주]林: 형상이 먼저 생기고, 수가 뒤에 생겼기 때문에 먼저 생긴 형상이 맞는 확률이 높고, 뒤에 생긴 수가 맞는 확률이 낮다는 말이다.[부주]朱: 복인卜人헌공獻公이 거북점을 따르기를 원했기 때문에 시초점은 맞는 확률이 낮고 거북점은 확률이 높다고 핑계 댄 것일 뿐이고, 실은 거북점과 시초점의 장단長短을 구분할 수는 없다.
그리고 그 에 ‘오로지 그만을 총애寵愛하면 마음이 변하여 의 숫양[羭]을 빼앗을 것이다.注+점사占辭이다. 함이고, 은 제거함이고, 는 아름다움이다. 여희驪姬의 마음이 변하여 이 아름답게 여기는 사람을 제거한다는 말이다. [부주]林: 헌공獻公이 오로지 여희驪姬만을 총애하면 여희驪姬는 반드시 마음을 바꾸어 먹을 것이라는 말이다. 오로지 여희驪姬만을 총애하면 여희驪姬의 마음이 변하여 장차 공이 아름답게 여기는 것을 빼앗아 간다는 것은 신생申生을 가리킨 것이니, 적자嫡子를 빼앗아 간다는 말이다.
향초香草악초惡草를 한 그릇에 담아두면 10년이 지나도 오히려 악취惡臭가 난다.’고 하였으니,注+향초香草이고, 취초臭草이다. 10년이 지나도 악취惡臭가 난다는 것은 소멸消滅되기 쉽고, 악은 제거하기 어렵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부주]林: 신생申生의 무리를 비유하고, 여희驪姬의 무리를 비유한 것이다. 향초香草취초臭草를 한 그릇에 담아두면 향취香臭악취惡臭를 이길 수 없는 것이 선인善人악인惡人을 이길 수 없는 것과 같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절대로 안 됩니다.”
헌공獻公은 듣지 않고 그를 부인으로 삼았다.
뒤에 여희驪姬해제奚齊를 낳고, 그 동생은 탁자卓子를 낳았다.
해제奚齊태자太子로 세우려할 때에 미쳐 이미 중대부中大夫와 계획을 정하고서注+[부주]林: 중대부中大夫이극里克이다. 헌공獻公태자太子하고 싶었지만 이극里克을 꺼려 감히 하지 못하자, 이극里克은 “내가 중립中立을 지켜야 를 면할 수 있겠구나.”라고 하였으니, 이것이 계획을 정한 것이다.여희驪姬태자太子에게 말하였다.
“임금께서 꿈에 제강齊姜을 보셨다고 하니 태자太子는 속히 제사를 지내시오.”注+제강齊姜태자太子의 어머니이다. 이는 음식을 요구한다는 말이다.
태자太子곡옥曲沃으로 가서 제사를 지내고서 헌공獻公에게 를 올리니,注+는 제사 지낸 술과 고기이다. 이때 헌공獻公은 사냥을 나가고 없었다.注+[부주]朱: 이때 헌공獻公은 마침 사냥을 나가고 없었다.
여희驪姬가 그것을 궁중宮中에 두었다가 6일 만에 헌공獻公이 돌아오자 그 을 쳐서 올렸다.注+독을 친 술은 하루 밤만 지나도 바로 색깔이 변하는데 6일이 지난 것이야 더 말할 것도 없다. 이는 헌공獻公미혹迷惑함을 밝힌 것이다.
헌공獻公이 그 술을 땅에 뿌리니 땅이 끓어오르고,注+[부주]林: 여희驪姬헌공獻公에게 “밖에서 들어온 주식酒食은 시험하지 않아서는 안 된다.”고 하고서 에게 술을 땅에 뿌리게 한 것이다. 독주毒酒가 땅에 닿자 땅이 끓어오른 것이다. 그 고기를 개에게 주니 개가 죽고, 그 고기와 술을 소신小臣에게 주니 소신小臣도 죽었다.注+[부주]林: 또 그 고기를 개에게 주어서 먹게 하니 개가 중독中毒되어 죽고, 또 그 술과 고기를 소신小臣에게 주어 먹게 하니 소신도 중독中毒되어 죽었다.
여희驪姬가 눈물을 흘리며 말하기를 “이 음모陰謀태자太子에게서 나온 것입니다.”
태자太子신성新城으로 도망가니注+신성新城곡옥曲沃이다.헌공獻公태자太子의 스승 두원관杜原款을 죽였다.
어떤 사람이 태자太子에게 말하기를 “태자太子께서 변명하시면 임금께서 반드시 유무有無분변分辨하실 것입니다.”라고 하자,注+궁중宮中에 6일 동안 두었던 상황狀況을 가지고 변명辨明[自理]하라는 말이다.태자太子가 말하였다.
“임금께서는 여희驪姬가 없으면 편히 거처居處하지 못하시고 배불리 자시지도 않으신다.
내가 무죄無罪함을 밝힌다면 여희驪姬는 반드시 를 받게 될 것이다.
임금께서는 늙으셨으니 여희驪姬를 잃으면 반드시 즐거워하지 않으실 것이고 이렇게 되는 것을 나도 즐거워하지 않는다.”注+내가 변명하면 여희驪姬는 죽을 것이고, 여희驪姬가 죽으면 임금께서는 즐거워하지 않을 것이다. 나로 말미암아 이러한 일이 생기는 것을 즐거워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이 말하였다.
“그렇다면 태자太子는 도망가십시오.”
태자가 말하였다.
임금께서 실로 나에게 죄가 없음을 살피시지 못하시니,注+[부주]朱: 헌공獻公은 나에게 참으로 죄가 없다는 것을 모르고, 희씨姬氏의 참소만을 믿고서 내가 임금을 시해弑害하려 했다고 여긴다는 말이다. 이런 죄명罪名을 쓰고서 도망간다면 누가 나를 받아주겠는가?”
12월 무신일戊申日태자太子신성新城에서 스스로 목매어 죽었다.
여희驪姬가 드디어 “두 공자公子도 모두 이 음모陰謀를 알고 있었다.”注+[부주]林: 두 공자公子도 모두 태자太子가 독을 친 음모陰謀를 알고 있다는 말이다.참소讒訴하니, 중이重耳포성蒲城으로 도망가고, 이오夷吾굴읍屈邑으로 도망갔다.注+공자公子가 이때 조정朝廷에 있었다. 이것이 명년明年나라가 신생申生을 죽인 의 배경이다.


역주
역주1 侵蔡 : 朴致遠은 “蔡나라가 中國의 會盟에 참여하지 않고 楚나라의 편이 되었다. 그러므로 齊桓公이 먼저 蔡나라를 치고 다음에 楚나라를 친 것은 먼저 그 羽翼을 제거하려는 뜻이었다. 어찌 蔡姬가 다른 곳으로 시집갔다 하여 쳤겠는가? 桓公이 비록 霸道를 追求하였으나 이런 짓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역주2 盟于師 盟于召陵 : 徐壽錫은 “齊侯가 楚나라와 和解한 뒤에 還軍하여 召陵에 주둔한 것이니, 盟于師와 盟于召陵은 각기 별개의 盟約이다.”고 하였다.
역주3 及江人黃人伐陳 : 宣公 7년 傳에 “凡例의 의하면 出兵에 관한 謀議에 참여하였으면 ‘及’으로 기록하고 모의에 참여하지 않았으면 ‘會’로 기록한다.”고 하였다.
역주4 公至自伐楚 : 李震相은 “두 가지 일이 연달아 있었을 경우에는 後事만을 宗廟에 고한다. 그러나 後事가 작은 일인 경우에는 前事를 고한다. 楚나라를 토벌한 後事를 고한 것은 陳나라를 토벌한 前事보다 큰일이었기 때문이다.”고 하였다.
역주5 그런데 楚나라는……제사를 지내지 못하게 하였으니 : 본문 王祭不共無以縮酒는 倒置句인 듯하므로 “楚나라는 包茅를 바치지 않아 縮酒할 수가 없어 天王의 제사를 지내지 못하게 하였으니”로 번역하였다.
역주6 不穀 : 곡식은 사람을 기르는 물건인데, 자신은 곡식처럼 사람을 기르지 못한다는 뜻으로 임금의 겸칭이다.
역주7 卜人曰……不如從長 : 朴致遠의 《雪溪隨錄》에 “左氏가 일을 말할 때는 먼저 卜筮를 말해 그 일의 張本으로 삼아 마치 符節을 맞추듯이 꼭 들어맞게 말하여 오로지 神奇만을 취하였으니 참으로 衰世의 글이다.”고 하였다.
역주8 攘公之羭 : 羭은 楊伯峻의 설을 취해 숫양(牡羊)으로 번역하였다. 楊伯峻의 《春秋左傳注》에 “羭는 숫양이다. 이것은 전적으로 그만을 총애하면 장차 變이 생겨 公의 숫양을 빼앗아 갈 것이라는 말이다. 숫양은 申生 등을 가리킨 것이다.”고 하였다.
역주9 發[廢] : 저본에는 ‘發’로 되어 있으나 《四庫全書左傳杜林合注》本에 의거하여 ‘廢’로 바로잡았다.

춘추좌씨전(2) 책은 2022.01.20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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